80호[연재 | 무엇이든, 누구에게든 성교육이되] 섹스를 발음해 보세요 | 나영정(타리)

20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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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무엇이든, 누구에게든 성교육이되] 


섹스를 발음해 보세요

 

나영정(타리)

taripink@gmail.com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에브리바디 플레져랩팀장



 

연재를 시작하며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의 에브리바디 플레져랩팀(에플팀)은 나이, 성별, 장애,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인종, 언어 등 각자가 가진 특성에 맞춘 최선의 방법으로, 위험에 대처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즐거움에 대해서 알아 가는 성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에플팀은 2022년 편견 없는 성교육 워크북 《에브리바디 플레져북》과 교구 ‘섹스 빙고’를 제작했는데 이 워크북과 섹스 빙고는 위험과 원칙만을 강조하는 성교육이 아니라 나와 상대방의 즐거움을 찾아갈 수 있는 성교육, 지식으로 아는 성교육이 아닌 직접 나의 경험과 만나는 성교육, 다양한 관계와 성관계 방식, 몸과 감각에 대한 편견 없는 이야기와 정보를 나누는 성교육을 위해 제작되었다. 이러한 내용으로 장애인, 이주민, 청소년, 성소수자, 노동자, 빈민 등 여러 현장의 단체들과 연계하여 현장에 맞는 성교육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다.

 

《에브리바디 플레져북》과 ‘섹스 빙고’ ⓒ 〈한겨레〉 이정용 기자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나영, 나영정, 최예훈, 공혜원

 

2023년에는 ‘색다른 토크하셰어’라는 이름의 공개 행사를 열어 성 건강, 성적 권리, 성적 즐거움에 관한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 나누고 그 내용을 자료집으로 발간하였다. 2024년에는 ‘무엇이든 물어보셰어’라는 이름으로 참여자들이 직접 자신의 사연을 나누는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연재에서 애플팀은 다양한 현장의 단체들과 만들어 왔던 성교육 워크숍을 통해서 느끼고 배운 관점과 방법을 공유하고자 한다. “무엇이든, 누구에게든 성교육이되”라는 제목은 바로 그걸 표현한다(‘~~이되’라는 밈을 차용한 것으로 의도적인 오타이다). 셰어는 성교육으로 다루지 않았던 주제나 성교육의 대상이 아니라고 여겨진 사람을 중심으로 끌고 와서 금기와 낙인 없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정보를 나누고, 즐거움을 찾아 가기 위한 모험을 시도하려고 한다. 또한 즐거움을 위해서 허락되지 않은 도전을 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고, 혹여나 생길 수 있는 부담이나 후회를 최소화하고 회복하는 방법을 찾아 가려고 한다. 살아가면서 타인과 관계 맺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다 보면 미리 정해지지 않은 길을 갈 가능성이 더 높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경우의 수를 예상하고, 준비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다시 평가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 나가는 ‘되어 가는 과정’에 함께하는 것이다.

프롤로그를 통해서 성 건강과 성적 즐거움을 둘러싼 에플팀의 지향과
고민을 소개하고, 이후 6회를 통해서는 올해 ‘무엇이든 물어보셰어’에서 다루는 주제인 항문 섹스, 월경, 질과 자궁 건강, 트랜지션, 성 매개 감염, 피임과 임신 중지를 성교육의 방법과 연결하여 다룰 예정이다.
글은 에플팀의 팀원인 공혜원, 나영, 나영정(타리), 최예훈이 돌아가면서 작성한다.

 

연재 순서

① 플레져와 항문

② 월경 건강

③ 질과 자궁

④ 트랜지션

⑤ 성 매개 감염

⑥ 피임과 임신 중지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는

국내 최초로 성별, 연령, 장애, 인종, 국적,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 등에 관계 없이 모두에게 성 건강 전문 상담과 의료 지원, 포괄적 성교육 접근성을 보장하고, 이를 위한 법과 정책을 연구하는 통합 센터를 지향하며 2019년 설립되었습니다.

누구도 차별받거나 배제되지 않고, 자유롭고 건강하게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누리며 충분한 정보와 평등한 자원을 바탕으로 서로의 역량을 키워 나가는 사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셰어에는 포괄적 성교육을 진행하고 성 건강, 성적 권리, 성적 즐거움을 증진하기 위한 여러가지 기획 활동을 벌이는 에브리바디 플래져랩팀이 있습니다. 또한 차별 없는 성·재생산 의료, 정보 접근성 보장과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활동의 일환으로 아래와 같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검은시위에서 국회까지 : 성·재생산권리 보장 기본법〉(안)과 해설집 발간(2020)

● 성과 재생산 건강 관련 지원을 연계할 의료인, 의료기관, 지원 단체 네트워크 구축

● 소수자 친화적인 의료 환경과 의료, 정보 접근성 향상을 위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성과 재생산 건강 관련 자원과 정보, 가이드라인 제작·배포

    ○ 상담자와 의료인을 위한 임신 중지 가이드북 〈곁에, 함께〉 발간, 배포(2020) 

  ○ 임신의 유지와 중지에 대한 정보를 안내하는 반응형 웹페이지 [고민하고 있는 당신에게 - 곁에, 함께 www.byyourside-share.org]


또한 성/재생산건강 전문 클리닉 ‘색다른의원’이라는 연계 클리닉이 있고, 국내/외다양한 연대 활동과 네트워크에 참여합니다.

사이트 srhr.kr

 

 


성적으로 건강하세요?

 

건강은 분명히 복잡한 개념이다. 건강은 삶의 목적으로 인식되기도 하고, 조건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개인의 차원에서 추구하고 바라는 삶의 방향이 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 정책의 목표로서 제시되고,[ref]「건강가정기본법」과 같은 법·제도의 명칭은 중요한 예시이다. [/ref] 제도가 만들어지면 개인들을 국가 기조에 따르도록 추동한다. 사망률이나 질병 발생률을 통해서 수치화되기도 하고, ‘건강한 것은 정상적인 것’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규범으로 활용되기도 한다.[ref]2013년에 창립한 건강한사회를위한국민연대는 반성소수자 혐오 선동을 벌이고,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는 운동,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운동을 하는 대표적인 단체이다. 이들은 ‘동성애가 가정과 국가를 망친다’고 주장하면서 건강을 반인권을 위한 도구로 내세운다. 하지만 1990년에 설립되어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는 ‘이윤이 아닌 생명을!’이라는 유명한 구호를 제시하며 체제 비판적인 운동을 하는 대표적인 단체이고, 임신 중지 권리를 위해서 함께 싸운다. 극명하게 다른 두 가지 예시를 통해서 건강이라는 개념이 시민 사회에서 시대적으로 부상한 맥락을 엿볼 수 있다.[/ref] 따라서 건강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건강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밝히고,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하고, 건강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비용과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지 결정해야 하며, 이 모든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이 차별받거나 배제되는가를 반드시 살펴야 한다.

개인들이 삶의 방향을 설정하고, 삶의 조건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환경은 국가의 정책 기조에 따라 상당 부분 좌우된다. 국가가 인구 정책의 관점에서, 특히나 자본주의 체제에서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식으로 개인들의 삶을 도구화하는 정책 기조 아래에서는 건강 또한 도구화된다. 건강을 추구하는 목표가 생산 노동에 참여하기 위한 것으로 틀 지워질 때 질병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고, 질병이 발생했을 때 치료하는 목표 자체가 개인의 행복이나 만족과 괴리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기조에서는 특히나 일하다 아프거나 다친 것이냐, 놀다가 아프거나 다친 것이냐에 따라 사회적 평가나 지원의 방식이 달라진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정부의 태도나 사회 일각의 평가가 이를 잘 보여 준다. 한편 성 건강은 보다 더 인구 정책과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인구 정책 기조에서 벗어난 방식의 성 행동으로 인해 질병이 발생하면 훨씬 큰 낙인과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 인구 재생산을 위한 성적 행위를 정상화하고,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 — 예를 들면 성적 만족 자체를 위한 불특정한 상대와의 섹스 — 자체에 대한 낙인이 젠더, 나이, 장애,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인종 등에 따라 더 심각하게 부여되며 삶에 영향을 미친다. 정부는 2019년 낙태죄가 폐지되기 전까지 정상 가족을 향한 가족 계획을 위한 임신 중지는 합법적인 영역에서 허용해 왔지만 인구가 줄어들자 임신 중지 시술 단속과 처벌을 강화함과 동시에 결혼 장려 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또한 부부 관계를 벗어난 성적 행위로 인해서 비롯되는 성 건강, 성적 즐거움에 대한 의료 서비스와 정보 제공을 위한 자원과 비용의 배분은 전혀 사회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건강할 권리를 인권으로서 보장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국제보건기구(WHO) 헌장은 국가가 개인이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누릴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또한 성적 건강은 “섹슈얼리티와 관련되는 육체적, 정서적, 정신적, 그리고 사회적 안녕 상태”라고 정의한다. 인권의 관점에서 건강하지 않거나 질병이 있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국가는 인권에 관한 책임을 부담하며 개인들이 건강을 실현할 수 있도록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 실현할 의무를 갖는다.[ref]WHO 헌장.[/ref] 한편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가 펴낸 〈성과 재생산 건강 권리에 관한 일반논평 제22호〉(2016)[ref]국문 번역본을 셰어 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srhr.kr/issuepapers/?idx=6243402&bmode=view[/ref]를 통해서 성재생산 건강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볼 수 있다. 이 문서는 성과 재생산 건강이 법적, 절차적, 현실적, 사회적 장벽 때문에 접근이 제한된다는 점을 밝히고 특히나 성소수자, 장애인과 같은 특정 개인과 인구 집단은 다중적, 교차하는 형태의 차별을 경험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이러한 차별이 법과 관행에 의해서 발생하기 때문에 국가의 책임을 강조한다. 성 건강을 침해하는 요소가 산재와 같은 여타의 건강 이슈처럼 사회 구조적인 요인으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공적인 해결이 필요하다. 성 건강이 침해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차별과 폭력이나, 성 건강이 침해됐다는 이유로 발생하는 낙인이 야기하는 연쇄적인 차별 모두 중대한 문제이다. 이러한 점은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가 필연적으로 노동권, 주거권, 교육권을 비롯해 여타의 권리들과 연관성이 중요해진다는 점을 알려 준다.

이렇게 건강을 둘러싼 사회적 요인, 불평등에 대한 논의가 진척되고 각 국가에 권고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 건강은 인권으로서 보장해야 하는, 다시 말해서 국가의 책임을 통해서 보장되어야 할 권리라는 인식이 희박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성적 권리가 인구 정책에 종속된 것으로 간주되어, 그 자체가 추구되고 보장되어야 할 가치가 아니라 정상적인 인구를 재생산하는 도구로 다루어졌던 것과 관련된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질문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왜 성적으로 건강해야 하는가, 왜 성 매개 감염을 예방해야 하는가, 왜 인간은 섹스하는가, 성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왜 중요하거나 중요하지 않은가, 왜 이다지도 성을 둘러싼 차별과 폭력이 만연하고 여전히 피해자의 삶이 위태로운가, 섹스에 대한 댓가가 교환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 진지하게 답을 구하지 않는다면 왜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조건을 가진 이들이 성 건강을 둘러싼 문제에서는 오히려 사회적으로 위험하고 타인을 위협하는 것으로 여겨지는지, 그래서 그것이 이들을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근거가 되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임신한 학생을 퇴학시키는 것, 성폭력 피해자를 해고하는 것, 탈가정했다는 이유로 노동 착취를 일삼는 것, 장애인을 시설에 수용하면서 성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 성소수자를 위한 성교육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것, 임신을 중지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협박의 빌미가 된다는 것이 부정의한 일이라고 진심으로 느끼는 사람들은 대부분 차별받는 사람들이었다. 인권을 위해서 싸우고, 보편적인 권리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들은 부당한 일을 겪었지만 부당함을 다시 정의하고, 뜻이 맞는 이들을 조직하고, 지배 권력에 맞서 왔다. 성 건강이 인권이라면 마땅히 아픈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성적 권리가 인권이라면 권리를 부정당한 이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인권을 존중하는 성교육이라면 그 장소는 그이들이 모이고, 경험을 나누고, 싸움을 준비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한편 유네스코가 마련한 포괄적 성교육 가이드북[ref]UNESCO(2018), International technical guidance on sexuality education: an evidence-informed approach. (unesdoc.unesco.org/ark:/48223/pf0000260770)[/ref]에서는 섹슈얼리티와 건강을 이렇게 다룬다. “포괄적 성교육(CSE)은 섹슈얼리티의 인지적, 정서적, 신체적, 사회적 측면에 대해 가르치고 배우는 커리큘럼 기반의 과정입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자신의 건강, 복지 및 존엄성을 깨닫고, 존중하는 사회적 및 성적 관계를 발전시키며, 자신의 선택이 자신과 타인의 복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고, 평생 동안 자신의 권리를 이해하고 보호할 수 있는 지식, 기술, 태도 및 가치를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건강이라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차원의 지식, 기술, 태도 및 가치를 갖추기 위해서는 건강뿐만 아니라 섹슈얼리티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존중이 필요한데 한국 사회에서는 그 출발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히는 느낌이다. 섹슈얼리티를 배우려면 누구나 섹스를 발음할 수 있어야 한다. 배우려면 자신의 경험을 꺼내 놓고, 회고하고, 평가하고, 타인과 협상해야 한다. 자신이 편안한 언어와 표현 방식으로 섹스를 말하고 섹스할 때 사용하는 자신과 타인의 신체적 기관에 대해서 알고 느끼고 배우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구강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고 접촉하는 것만큼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질과 항문에 대해서 자신조차 관찰하거나 접촉하지 못하는 것은 인지적, 정서적, 신체적, 사회적 측면이 함께 작동한 결과이다. 신체 기관에 대한 다른 평가와 혐오감을 가지는 것 또한 사회적인 평가와 관련이 되고, 이것이 자신의 몸에 대한 존중이나 섹슈얼리티에 대한 배움을 차단한다. 안타깝게도 보수 단체 압력에 학교와 도서관에서 사라진 성교육 교재 2,500권만큼의 접촉의 기회가 사라졌을 것이다.[ref]“경기지역 학교들, ‘유해 도서’ 압박에 성교육 도서 2500권 폐기”, 〈경향신문〉, 2024년 5월 7일.[/ref]



셰어가 작성한 기후정의 선언문[ref]“누군가를 초대할 수 없는 한국 사회, 우리가 기후정의와 함께 재생산정의를 촉구하는 이유” (bit.ly/4aBzPbp)[/ref]의 일부를 포스터로 제작한 모습. 저 포스터를 사무실에 붙여 두었는데 길을 지나는 주민들이 ‘섹스’라는 단어를 보면 눈이 커진다는 것을 여러 차례 확인했다.



성적 즐거움을 맘 편히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셰어가 그동안 성교육 워크숍을 통해서 만나 온 소수자들이 성 건강에 대해서 배우고 스스로 자신에게 알맞는 방법을 찾아 갈 수 있도록 안내했던 것은 결국 성적 즐거움과 연결하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섹스를 하거나 하지 않는다. 동의에 기반한 성관계를 원칙으로 삼고 있지만 동의를 판단하고 해 나가는 과정에도 여러 가지 변수와 고려가 영향을 미친다. 타인의 만족을 위해서 성관계에 동의하기도 하고, 생존을 위해서 성관계를 하기로 결정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복잡한 맥락을 고려하면서도 섹스는 성적 즐거움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무시하거나 잊어버리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성적 즐거움을 성교육의 중심에 두고 다루지 않으면 누군가는 배울 수 없고 섹스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당한다. 이 여파는 여타의 영역과 마찬가지로 불평등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사회적인 조건이나 지위에 따라 다른 결과를 만든다. 보편적인 교육이나 서비스에서 멀어지면 결국 특권이나 서비스 구매 능력 등으로 축소되기 십상이다.

셰어가 제작한 《에브리바디 플레져북》에는 ‘플레져미터’라는 도구가 있는데, 그것은 성적 즐거움을 인식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경험한 섹스를 자기결정권, 동의, 안전, 프라이버시, 자신감, 의사소통/협상, 심신의 만족/즐거움으로 나누어서 점수를 매겨 볼 수 있다. 그리고 척도 간의 관계를 짚어 보면서 종합적으로 심신의 만족/즐거움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을 평가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자기결정권은 10점이지만 의사소통/협상은 5점일 수 있고, 심신의 만족/즐거움은 3점일 수 있다. 한편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은 장소에서 동의에 기반한 섹스를 한 이들이 심신의 만족/즐거움의 점수를 높게 줄 수도 있다. 심신의 만족/즐거움을 위해서 무엇을 감수하고, 어떤 협상을 하는지, 자신감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고민할 때 성적 즐거움이 미치는 어쩌면 숨겨진 영향력에 대해서 인식할 수 있다. 이것은 왜 나는 성적 실천을 하는가/하지 않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만난다.



성적 즐거움을 인식하기 위한 도구 ‘플레져미터’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특정한 집단이나 사람들의 성적 행위를 불법화하거나 단속하는 국가와 제도의 관행에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 것은 성적 즐거움을 둘러싼 차별과 위계를 공고히 할 뿐이라는 점이다. 특정한 집단의 섹스를 불법화하는 법·제도와 특정한 행위를 하거나 정체성을 가진 이들에게 차별과 낙인을 씌우며, 젠더, 나이, 질병, 인종, 빈곤 등의 사회적 불평등의 요소들이 위에서 언급한 7개의 척도 모두에 영향을 끼친다.

 

즐거움을 권리로 만든다는 것은 구조적인 억압과 자신의 몸이 연결되는 지점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콘돔 협상에서 실패해서 혹은 콘돔을 사용하고 싶지 않아서 원치 않은 임신이 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새삼 떠올려 보자. 임신의 당사자가 겪어야 했던 일련의 고통은 낙태죄로 인해서 형사 처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떨어질 수 없다. 게다가 낙태죄는 혼인 상황, 경제적 상황, 나이, 장애,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국적 등의 조건에 따라서 매우 다른 효과를 발휘했고, 실제로는 혼외 성관계를 한 여성, 자율적으로 자신의 신체와 성적 실천을 결정한 여성에 대해 처벌하는 기능을 해 왔다. 이러한 행위를 단속하는 국가는 성풍속을 규제하기 위해서 금전 거래가 매개된 성관계를 금지하고(형법 제242조) 음화 제작과 반포를 금지하며(형법 제243, 244조) 공연 음란을 감시한다(형법 제245조). 정조 이데올로기와 모성 이데올로기에 근거해서 젠더화된 폭력이 생산되는 구조를 사실상 국가가 만들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강간과 강제 추행을 피해자의 권리가 아니라 부계 혈통과 성풍속 유지를 위해서 금지해 왔던 유구한 역사 속에서 군형법상 추행죄(군형법 제92조6)가 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으로 기능하는 것과 연결되며, 에이즈예방법상 전파 매개 행위가 공중보건이 아니라 문란한 성적 행위로 인해 감염병에 걸린 이들의 성을 통제하는 것으로 작용했다(에이즈예방법 제19조). 또한 장애인, 부랑인, 홈리스, 미혼모, 성노동자를 수용하고 감금해 왔던 역사는 성적 권리를 박탈하는 핵심적인 장치였다. 이렇게 성적 권리의 침해는 오랜 역사 속에서 국가가 행해 왔던 처벌과 인권 침해의 모습으로 소수자들의 몸에 켜켜이 쌓여 왔다. 이러한 억압의 역사와 장치들을 이해하는 것은 현재 자신이 처한 부당한 경험의 출처와 원인을 이해하며 자신을 탓하지 않으면서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해 나갈 수 있을지를 상상하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ref]“동의, 합의, 욕망 사이 – 소수자의 즐거움을 바라지 않는 사회에 저항하는 성교육”,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이슈페이퍼〉, 2023년 1월.[/ref]

 

앞으로 다루어질 항문 섹스, 월경, 질과 자궁 건강, 트랜지션, 성 매개 감염, 피임과 임신 중지에 대한 주제에 모두 성 건강에 대한 재정의, 성적 즐거움과의 연관성, 차별적인 법·제도의 문제가 포함될 것이다. 2023년에 개최한 ‘색다른토크하셰어’가 성 건강 이슈와 연결된 다양한 현장의 활동가들, 당사자들, 전문가들을 패널로 초대한 공개적인 행사였다면, 올해 진행하는 ‘무엇이든 물어보셰어’는 관련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소규모로 모여 각자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면서 대안적인 지식을 만들고, 그것을 콘텐츠로 제작해 널리 알리는 것이 목적이다. 작년에는 질과 자궁 건강, 성매개 감염, 항문 섹스 3개의 주제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월경, 트랜지션, 피임과 임신 중지까지 6가지 주제로 세분화해 진행한다. 특히 한국농인LGBT와 공동으로 기획하고 진행하며, 이후 만들어질 콘텐츠도 수어 제작을 병행한다. 두 가지 방식 모두 전형적인 성교육 워크숍의 형태는 아니지만 ‘소수자의 즐거움을 바라지 않는 사회에 저항하는 방법을 모색하기’라는 목표는 다르지 않다. 이 지면을 통해서 각각의 주제에 대해서 사람들이 나눈 경험과 고민을 정리하고, 나아가 성교육 현장에서는 이 주제와 관련해서 어떤 정보가 제공되어야 하는지,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전달될 수 있는지와 관련된 내용을 덧붙여 보려고 한다. 학교를 비롯한 다양한 현장에서 성 건강, 성적 즐거움, 성적 권리를 고민하고 분투하는 이들과 만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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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