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대학생운동 인터뷰 - 대학의 위기와 대학 안의 운동
2024년 노학연대의 고군분투와 쟁점들
- 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김태현 대표
강석남
kim3soo91@hanmail.net
본지 편집위원,
중앙대 사회학과 박사 수료
1980년대 광주 민중항쟁을 계기로 당시 학생운동은 운동의 주관적, 객관적 조건에 대한 논쟁을 적극 제기한다. 그 결과 ‘한국 사회 변혁운동의 주체 형성을 위한 학생운동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심화되면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관계 설정을 둘러싸고 부상한 개념이 ‘노학연대’였다. 이른바 ‘위장 취업’을 통한 ‘학출’로 구성된 학생운동 주체들은 1980년대 노동운동의 새로운 주체로 등장해 노동운동의 변혁 지향성을 강화해 왔다.[ref]유경순(2015), 〈1980년대 학생운동가들의 노학연대 활동과 노동현장투신 방식의 변화〉, 《기억과 전망》 32, 200~246쪽.[/ref] 이후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노동운동의 제도화 및 학생운동의 쇠락 속에 활기를 잃어 가던 노학연대는 2000년대 중후반 공공운수노조 서울경기지부(서경지부)의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 ‘전략 조직화 사업’을 계기로 전환점을 맞는다. 2006년 650명가량의 조합원으로 출범했던 서경지부는 2013년 대학 분회 11곳, 조합원 2,000여 명이 되는 극적인 확장을 이뤘다. 과거 대학 바깥의 노동자와 연대하던 노학연대가 대학 내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연대로 변화한 것이다.[ref]강남규(2022), 〈대학생과 노동자의 연대는 어떻게 가능했나〉, 《오늘의 교육》, 69(2022년 7·8월).[/ref]
2024년 2월 6일, 연세대 재학생 3명이 청소·경비 노동자들을 상대로 낸 600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했다. ‘시위 소음으로 수업권을 침해받았다’는 이유의 소송이었다. 2022년 학교와의 단체교섭과 조정까지 결렬되며 학내 집회에 나섰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연세대 분회의 집회로부터 22개월 만이었다. 처음 대학생들의 민형사상 고소·고발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대학 바깥에서는 어떤 한탄이나 안타까움, 혹은 배신감이 팽배했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학내외에서 연대의 손길이 이어지며 최종적으로 소를 제기한 학생들이 패소하여 최악의 불상사는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질문은 남아 있다. 대학 내에서의 시위 등 투쟁, 특히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대학 내 노동자들의 저항에 대한 대학생들의 반감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강남규가 지적했던 것처럼, “2011년 홍익대와 2014년 중앙대, 2015년 서울여대에서 각 대학 총학생회가 민주노총을 두고 ‘외부 세력’ 운운하거나 미관상 불쾌하다는 이유로 현수막을 철거”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지 않았다.[ref]강남규(2022), 앞의 글.[/ref] 당장 2022년 가을에는 서울 지역 13개 대학 중 유일하게 시급 400원 인상을 거부한 덕성여대에서 청소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자 이를 비난하는 학생들의 대자보와 메모지 수십 장이 붙었다.
‘학생들을 인질로 삼으면서 학교를 위한다, 학생을 위한다 위선 떨지 말라. 저희는 인질이 아니다.’ (……) ‘공감 없는 시위 그만하라’ ‘청소 노동자 시위 지지 않는다’ ‘노동자 OUT’ ‘학생 볼모 하청 파업 반대한다 철회하라’ ‘학생 임금 9,160원, 청소 근로자 임금 9,390원’ (……) 트위터 등 온라인에서도 “청소 노동자들이 거짓 정보로 선동해 학교 이미지만 나빠진다” “고작 400원 때문에 학교 화장실이 쓰레기장이 되는 게 상상된다”는 등 청소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학생들 글이 쏟아졌다.[ref]박지영, “시급 400원 인상 거부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OUT” 혐오도”, 〈한겨레〉, 2022년 10월 21일. [/ref]
고소·고발이라는 극단적인 방식 자체는 예외적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대학 사회 전반에 자리 잡은 노동운동에 대한 혐오가 비단 특정 대학만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대학 바깥에서는 대학(생)들의 학내 노동자에 대한 연대를 당연시하는 기대가 만연하고, 대학 안에서는 학내 노동자들에 대한 무관심과 거부가 일상화된 모순은 오늘날 대학에서의 노동자와 대학생의 연대, ‘노학연대’에 대한 질문을 적극 제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맥락을 따라 2022년부터 한국 사회에 의도치 않게 쟁점을 던졌던 연세대 대학 사회에서 노학연대를 기치로 활동하고 있는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비정규 공대위)를 만나 오늘날의 노학연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인터뷰는 2024년
5월 9일 온라인 화상 대화로 진행했다.
응급실처럼 사건 터지면 대응하는 게 노학연대
강석남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김태현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학과 22학번 김태현이다. 대표를 맡고 있다.
강석남
비정규 공대위가 결성된 계기가 궁금하다.
김태현
비정규 공대위는 2008년도에 처음으로 설립되었다. 공대위의 전신으로 당시 연세대 내 비정규직 문제를 고민하는 모임 ‘살맛’이란 단체가 있었다고 한다. 아마 2007년이었을 텐데, 살맛에서 이전까지 학외의 노동 현황은 많이 고민했지만, 학내 노동 현황에 대한 고민은 안 해 봤다는 생각에 실태 조사를 해 보니 학내 노동 현황이 너무 열악했던 거다. 그래서 살맛을 중심으로 노조를 띄워 보자는 의견이 모였고, 실태 조사 때 뵈었던 노동자들을 쫓아다니며 설득해 노조를 창립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함께했고, 노조가 만들어진 이후 2008년, 살맛의 주도로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강석남
2008년 이후 비정규 공대위의 간략한 역사를 소개해 달라.
김태현
활동 방향은 계속 변화해 왔다. 학내 사안이 터지면 연대해 왔는데, 현재 연대하고 있는 노조는 연세대 신촌캠퍼스의 청소 노동조합, 연세대 송도캠퍼스의 청소 노동조합, 신촌캠퍼스의 한국어학당 강사 노동조합, 세브란스병원 노동조합이 있다. 송도캠퍼스 청소 노동조합은 2015년 정리 해고 사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세브란스병원 노동조합은 노조 파괴 사건에서부터 연대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어학당 강사 노조는 코로나19가 터지면서 강사 처우 문제가 부각돼 노조가 결성되면서부터 같이 연대해 왔다.
기본적으로 어떤 학내 사안이 터지면 그때그때 대응하고 연대하는 방식이었다. 다만 단체 기록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도 아니라 어떻게 이어져 내려왔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대략적으로 이런 사건들이 있었다고 알고 있다.
처음에는 총학생회와 각 단과대 학생회, 동아리 등이 들어오는 연대체 형식이었다. 제가 들어왔을 때는 이미 연대체라기보다는 하나의 동아리로 운영되고 있었다. 명확하게 체계가 이렇게 바뀐 시점은 따로 없는 것 같다.
강석남
노조가 생길 때마다, 학내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대응해 오는 활동을 꾸준히 반복한 역사로 이해된다. 벌써 16년 역사인데, 내부적으로 느끼는 기조의 변화가 있었을지 궁금하다.
김태현
역사는 16년이지만 제가 활동한 건 2년밖에 안 돼서.(웃음) 단체에 명확한 기조란 게 정해져 있지 않다. 좀 부끄럽지만 노학연대란 것 자체가 응급실마냥 사건 뜨면 우르르 붙고, 사건 없으면 긴장이 풀렸다가, 사건 뜨면 다시 우르르 붙는 식으로 많이 활동한다. 우리 단체가 뭔가 활동하는 건 사건이 터졌을 때다. 집회를 한다, 고소를 한다, 해고가 터졌다 등. 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 이상으로는 통일된 기조를 잘 느끼지 못한다. 옛날에 활동했던 사람들은 어땠는지 잘 모르겠다. 노동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 주변의 노동자들이랑 연대할 수 있고, 또 학외 상황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는 그 정도 단체로 굴러가는 것 같다.
강석남
비정규 공대위의 조직 구성은 어떻게 될까? 학생회 같은 전통적인 학생 자치 조직과 비교해서 소개를 부탁드린다.
김태현
기본적으로 집행부원과 연대회원이 있고, 집행부원들이 주 1회 회의를 가지고 있다. 연대회원은 과거 연대체로 운영되던 시절 다양한 단체에서 파견된 사람들을 위한 구분이었는데, 최근에는 약간 유명무실한 점도 없지 않다. 전체 구성원은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소수다.
제가 학생회 경험도 없고 입학했을 땐 애초에 총학생회가 공석이라 비대위 상태였어서 전통적인 학생 자치 조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잘 몰라 답하기가 애매하다. 굳이 비교하자면 전통적인 단체라면 따라오는 위계, 권위, 주어진 예산, 제한 그런 것이 전혀 없다는 점일까? 학생들이 모여서 궁리하며 활동을 하는 것에 가깝다. 주 1회 회의 말고는 정해진 것이 없다. 앞서 동아리 같다고 소개한 건 정말 동아리처럼 3월 초에 신입 회원을 모집해서 이것저것 하고, 방학 끝나면 다시 9월에 또 회원을 모집하는 식으로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
예산은 가끔 행사 패널로 참가하고 받는 수고비 등을 모으기도 하고, 노조에서 후원해 주신 적도 있다. 선배들로부터 후원을 받기도 한다. 예전 송도캠퍼스 정리 해고를 해결한 이후 축제 부스 사업을 해서 그 수익금을 재정에 넣었다. 연세대 노수석추모사업회에서 운영하는 학생 단체 지원 사업에 신청해 지원받기도 했다. 사실 포스터 뽑고, 대자보 만들고 하는 정도라 크게 돈이 들 부분은 없다.
강석남
비정규 공대위의 개괄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신 것 같다. 혹시 다른 학교 사정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 전체 대학가의 노학연대 조직들의 현황이 궁금하다.
김태현
아무래도 학교가 위치한 서울권 대학 위주로 답변할 수 있을 것 같다. 노학연대 자체를 기치로 내건 단체들은 이화여대 ‘바위’, 서울대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단국대 ‘새벽’ 등이 현재도 활동 중인 것 같다. 홍익대 ‘모닥불’이나 숙명여대 ‘만년설’ 같은 경우에는 현재 활동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노학연대 자체를 내건 단체가 장기적으로 활동하기가 어렵다. 응급실처럼 활동하다 보니 체계도 사업도 없고, 체계를 세우려 해도 사건이 터지면 거기에 역량을 집중하니 그러기 어렵다. 노학연대 조직 자체는 많이 줄어든 것 같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가 구성한 ‘2024 노학연대기획단’[ref]고려대, 서강대, 서울대, 연세대, 인덕대, 성공회대 등 다양한 대학에서 노학연대를 실천하는 학생과 학생단체가 모여 학내외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노학연대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는 연대체다.(“대학 청소 노동자의 든든한 ‘뒷배’, 2024 노학연대기획단”, 〈오마이뉴스〉, 2024년 4월 22일)[/ref]에 참여해 활동해 보니 인권동아리나 소수자인권위원회, 작게는 사회학과 학회까지 다양한 단위가 많이 결합하고 있다. 전문적으로 노학연대를 하는 단위들은 옛날보다 적어도, 다양한 단위에서 노학연대 의제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아서 전체적인 노학연대 활동이 줄어들었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차이점은 과거엔 학생회에서 적극적으로 붙었겠지만 요즘엔 턱도 없다는 점? 그나마 이대 쪽은 학생회를 수권했다고 듣긴 했는데, 거기를 제외하면 총학은커녕 단과대 학생회의 지원조차 이제는 별로 기대하지 않는 실정이다.
2008년부터 16년째 이어 오는 비정규 공대위의 역사는 말 그대로 고군분투의 연속으로 이해된다. ‘응급실’로 스스로의 활동을 정리하는 비유가 인상 깊다. 굵직굵직한 노조의 결성과 교섭 및 쟁의에 매년 보폭을 맞춘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밝히고 있는 엄밀한 기조나 체계의 부재는 어찌 보면 비정규 공대위가 그간의 역사 속에서 매번의 이슈에 전력을 다해 왔다는 상흔으로서의 증거가 아닐까.
한편, 인터뷰에서 언급된 것처럼 스스로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학내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며 노동조합을 출범시킬 정도의 역량이 지난 16년간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 특히 학생운동과 학생 사회의 부침에 따라 점차 약화된 점 또한 인정해야 할 단면이기도 하다. 2000년대 후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의 전략 조직화에 따른 서울권 대학 비정규직 노조 운동의 성공 속에 나름 활성화되었던 노학연대 학생 조직들의 감소세도 관찰되는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다양한 형태의 학생 단위들(인권동아리나 소수자위원회 등)이 노학연대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꾸준히 결합해 오고 있다는 데서 희망을 찾는다. 이제 보다 구체적인 활동에 대한 질문과 함께, 몇 가지 현재의 노학연대 활동에 던지고자 하는 쟁점들을 질문했다.
노동자들과 어떻게 만날까 하는 고민
강석남
주요 활동이나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나? 직면하는 이슈마다 대응해 왔던 역사가 인상적인데, 그렇다면 정기적인, 이른바 캘린더 사업은 어떻게 구성되는지 궁금하다.
김태현
비정규 공대위가 딱히 명확한 구조가 없다 보니까, 정말 ‘하자’ 하면 다양하게 하게 되는 것 같다. 캘린더 사업이라고 할 만한 건 없다. 비정규 공대위는 학내 노동 이슈에 대응하는 게 기본이고 그게 캘린더다. 연세대 청소 노동조합은 2023년만 빼고 매년 집회를 해 왔다. 3월에 교섭 시작하고 계속 쟁의를 하니까 거기에 연대하는 게 주요 사업이다. 이 기간에 집회 나가서 발언하고, 간담회를 열어 노동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청소연대활동(청활)’이나 노동영화제는 여기서 약간 벗어난 활동이다. 2023년에 교섭이 잘 돼서 쟁의를 할 필요가 없으니 노조에겐 좋은 일이었지만 우린 하던 사업이 증발해 버린 셈이었다. 그래서 학내 청소 노동자와 어떻게 더 만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나름의 일상 사업으로 청활, 노동영화제를 준비했다. 우리가 맨날 투쟁에 가서 연대하지만 정작 청소 노동자들을 잘 알지 못한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2024년 4월, 비정규 공대위는 연세대 청소노동자 간담회 ‘노동자에게 직접 듣는 노동 이야기’를 열었다.
가장 오른쪽의 발언 중인 사람이 김태현 대표.
강석남
방금 이야기한 일상 사업들이 흥미롭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인지 설명해 주시면?
김태현
노동영화제는 정말 간단하게 사람들을 불러 모아 노동과 관련된 영화를 보는 것이다. 공동체 상영이나 GV도 가끔 하지만 대개 그냥 노동 영화 하나 골라 잡아서 다 같이 포스터 붙이고, 올 사람들 모여서 영화 보고 소감 나누고 간식 먹고 헤어진다. 쉽게 다가갈 수 있으면서도 영화 보러 모인 사람들에게 학내 노동 사안도 소개할 수 있는 시간이다.
청활 같은 경우는 2022년쯤부터 논의가 시작됐다. 매번 청소 노동자들의 청소 노동에 대해 너무 이해도가 낮다는 이야기가 내부에서 있었다. 그래서 농민학생연대활동(농활)에서 따와서 청활이라고 이름 짓고, 청소 노동자들이 출근하는 새벽 5~6시부터 함께 청소를 했다. 청소를 마친 후에는 모여서 소감을 나누고 간단하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서 청소 노동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했다.
‘호호체육관’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 사업은 문화연대와 서강대 인권실천모임 ‘노고지리’가 공동 주최하는데, 여성 청소 노동자의 스포츠권 확보를 목적으로 학교에서 학생들과 배구 교실을 연 것이다. 연세대에서도 제안을 받아,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매주 목요일 점심마다 모여서 농구를 하고 있다. 역시나 만나서 같이 이야기 좀 해 보자, 친해지자는 활동이다. 만나고 누구인지 서로 알아야 연대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비정규 공대위 단독으로 진행하는 사업은 아니지만 다른 학내 단체들과 함께 ‘쓰레기 탐험대’라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학내 쓰레기 문제나 분리수거 문제에 대해서 환경과 노동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는 취지로, 청소 노동자들이 평소 분리수거 과정에서 어떤 애로 사항이 있는지 들어 보는 캠페인이었다. 환경과 노동 의제에 관심 있는 단위들이 참여하고 있다.
청소 노동자들과 일상적으로 만나고 친해지기 위해 매주 목요일 점심마다 모여서
농구를 하는 호호체육관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강석남
비정규 공대위가 일상에서 노동자들을 만나는 고민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셨다. 2022년 학내 청소 노동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고소·고발 사건에 대해서도 질문을 드려야 할 것 같다. 물론 논란이 됐던 사건이라서 관련된 질문을 많이 받아 보셨겠지만, 당시의 전후 맥락이나 비정규 공대위의 활동에 대해서 듣고 싶다.
김태현
워낙 큰 사건이다 보니 인터뷰를 할 때마다 항상 나오곤 한다. 여기엔 양가적인 감정이 있다. 우선 우리는 고소 건 자체나 고소한 학생을 엄청나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당시 여기저기서 ‘요즘 대학생들은……’ 하면서 대학 사회를 논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들이 노동 문제에 관심이 없는 건 맞아도, 그런 이들이 흔히 지적하는 것만큼 극단적인 건 아니다. 고소한 학생은 ‘시끄럽다’는 이유를 들었고, 에브리타임에서도 동조하는 의견들이 준동했으니 명백히 백래시의 흐름이긴 하다. 하지만 정작 그 흐름이 현실로 뛰쳐나왔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학생회 등이 조치를 취해서 집회를 막은 것도 아니었다. 언론 보도로 인해 사건이 커졌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백래시가 2011년 홍익대에서도 있지 않았나.[ref]2011년 1월, 홍익대에서 청소 노동자 140여 명이 집단 해고에 맞서 본관에서 점거 농성을 했을 때, 총학생회가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선 안 된다, 외부 세력은 나가 달라’라는 등의 요구를 한 사건이다. 〈총학만 뭇매 맞고 대학은 ‘나 몰라라’〉, 《시사인》, 175(2011년 1월 22일). [/ref] 이번 고소 사건은 그때 총학생회 차원 백래시에 비하면 오히려 사소한 일이었다.
비정규 공대위에서 계속 이야기한 건 이 사건이 노동자 대 학생의 대립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노동자는 학교와 교섭하고 있는 거고, 노동자 대 학생의 대립으로 몰아가선 안 된다. 어떤 한 사람이 시끄럽다고 고소했을 뿐인, 어쩌다 한번 있는 이상하고 기이한 사건 정도라고 생각한다. 극히 예외적인 사건으로 대학 사회를 판단하는 건 말 그대로 일부를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것이다. 비정규 공대위는 사건이 뉴스에 크게 나왔을 때 지지 연서명을 돌렸고, 우리나 노조에서는 일관적으로 이야기했다. ‘노동자는 학생과 싸우고 싶지 않다. 노동자분들도 (고소한) 학생을 딱히 원망하지 않는다. 우리가 교섭하는 대상은 학교고 학생들에게는 시끄럽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 있다. 하지만 교섭을 위해 양해를 부탁한다.’ 이 사건이 노동자 대 학생, 학생 대 학생의 대립 구도로 끌려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고소당한 분들은 심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워하셨다. 그래도 고소 이후 사회적 관심을 크게 받았다. 반쯤 우스갯소리로 고소한 학생들이 ‘어둠의 공대위’는 아니었을까 이야기했다. 학생 사회에서도 별 반응이 없었는데, 에브리타임에서도 처음엔 잘했다는 말이 많다가 언론 보도 이후 분위기가 돌아서니까 이번엔 왜 고소를 했냐는 말이 많아졌다. 온라인상의 여론이 현실로 나오지 못했다는 점에서 2018년 총여학생회 백래시[ref]“연세대 학생들, ‘은하선 강연’ 개최한 총여학생회 폐지 요구… 총여학생회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 〈경향신문〉, 2018년 5월 25일.[/ref]와는 다른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여론이 휙휙 뒤집히는 걸 보고 ‘별것 아니었는데 너무 겁먹었었나?’ 싶기도 했다. 현실에서 우리가 뭔가를 해 나가는 게 중요하지, 온라인 여론에 매몰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도 강하게 든다.
최근에 연세대 인권 축제가 있었다. 비정규 공대위도 공동 주최 단체로 참여해 부스도 차렸다. 사실 걱정이 많았다. 2018년 총여학생회 폐지의 계기가 인권 축제에서 은하선 씨를 연사로 불렀다가 반대 학생들과 충돌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인권 축제는 평화롭게 잘 마무리됐다. 현실로 나오지 않은 걸 걱정할 필요가 없었구나 싶다.
2024년 3월 연세대 제4회 인권 축제에 공공운수노조 연세대분회와 함께 부스로 참가해 청소 노동자의 일과 현실에 대해 알렸다.
강석남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씀이 많았다는 느낌이 든다. 우선 고소 사건이 상당히 예외적인 사건이라는 데 공감한다. 그럼에도 그 사건이 사회적 이목을 끈 것은 고소·고발이라는 극단적이고 예외적인 방식 문제도 있지만,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학생 사회의 대학 내 노동운동, 특히 민주노총에 대한 혐오의 표출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실제로 사건은 대학의 외부에서 사법적 절차로 해소된 것이고, 여전히 쟁점은 남아 있지 않나?
김태현
민주노총이 북한이니, 간첩이니 하는 이상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지만, 사실 학생들 태반은 민주노총을 잘 모른다. 대다수는 관심 자체가 없을 거다. 애초에 학교에 있는 노조가 어디 소속인지도 잘 모르고, 노조 집회가 시끄럽다는 학생들도 민주노총인지 모른다. 정리하자면 학생들 사이에선 민주노총에 대한 반감보다는 노조에 대한 이해 자체가 없다는 감각이 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저는 입학하자마자 노조를 만나 버려서 다른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학생들은 ‘외부 세력’이라고 하면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민주노총은 손을 떼라, 민주노총 다 해고하고 새로 고용해라 등의 말들이다. 외부 세력으로서의 민주노총에 대한 반감을 이용하는 거 같은데, 그 반감이 정말로 피상적인 것 같다. 민주노총에 대해 제대로 비판하자면 대기업 노조나 임금 격차 같은 키워드를 우회할 수 없지 않나?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않고 “민주노총” 4글자에만 반감이 심어져 있는데 그 반감 자체가 막연하다.
오늘날 노학연대의 쟁점들
강석남
개인적으로 2013년 중앙대 청소·경비·시설 노동자들의 비정규직 노조 출범과 투쟁을 지켜본 경험이 있다. 그때 스스로 풀지 못했던 질문이 있어 여쭤보고자 한다. 왜 2010년대 이후의 노학연대는 특히 청소 노동으로 대표되는 학내 비정규직 노동운동에 주로 결합할까? 이는 학내 청소 노동에 대한 대학생들의 시혜적 태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한편으로 노조가 투쟁의 전략으로 시혜적 태도를 활용하는 면도 있는 것 같다.
김태현
시혜적인 면이 있다. 노조가 그런 투쟁 전략을 활용하는 것도 맞다. 2010년대 노학연대 투쟁을 그렇게 보셔도 크게 반박할 여지는 없다. 비정규 공대위에 들어온 사람들도 처음엔 시혜적인 시선으로 접근한 게 아닌가 싶다. 저도 그랬고. 쉽게 벗어던질 수 없는 거란 생각도 든다. 학내 노동자들과의 관계가 옛날 운동권이 말하던 ‘동지적 관계’ 같은 게 전혀 아니다. 일반적으로 제가 느끼는 분위기는 거의 무슨 할머니와 손주뻘의 관계다. 명백한 나이의 위계나, 반대로 노동자 대 학생이란 신분 사이의 관계가 작동하는 지점이 있다. 앞서 소개한 비정규 공대위에서 하는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는 일상 사업들도 이러한 시혜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약간 녹아 있다.
흔히 청소 노동을 ‘유령 노동’이라고 부른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란 거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가 만나는 노동자들은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들로 프레이밍되기 쉽다. 연대라는 것도 어떤 면에서 봉사와 쉽게 구별되지 않는 것 같다. 청활을 할 때도 청소 봉사 나왔다고 말씀하시는 조합원분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봉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 하면 연대할 수 있지?’가 계속 고민하는 점이다. 관계를 어떻게 쌓을지조차도 막막한 지점이다. 같은 학교에 있는 노동자와 학생이란 것 말곤 공통점이 없다시피 하니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 시혜적 태도를 극복하건 어쩌건, 일단 만나서 이야기해야 한다. 시혜적 태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어떻게 봉사가 아닌 연대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답이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학생들을 ‘우리 도와주러 온 학생들’이라고 부르던 노동자들이 만남을 통해 ‘얘는 뭔데 연세대까지 와 가지고 맨날 우리 집회에서 이러고 있냐’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 인간적으로 같이 운동하고 대화하는 자리들이 있어야 시혜적 태도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석남
한편으로 2010년대, 2020년대 이후의 노학연대에서 학생 단위나 학생 주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도 제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서 말씀하셨듯 노동조합 대 학생의 대립이 아니라 노동조합과 학교 사이에 교섭과 투쟁이 진행된다면, 학생 주체는 직접 당사자는 아니지만 연대나 불만 표출의 형태로만 개입하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이 지점에서 학생들은 문제 해결의 주체도, 투쟁의 주체도 아닌 주변화된 역할만 부여받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노학연대 운동이 대학 내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노동 문제가 대학생들 스스로의 의제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아닐까?
김태현
반 정도는 동의가 되고, 반 정도는 이견이 있다. 학내 비정규직 노동은 학생들과 연이 없는 노동이기는 하다. 청소 노동은 중장년 여성층 노동자들이 주로 하고, 학생들이 나중에 청소 노동에 진출한다 하더라도 그때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럼에도 노학연대는 노동 문제에 무지한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창구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대학에서의 경비 무인화, 노동 시간을 쪼개서 파트타임 고용으로 나누는 전법 등을 보면서 비정규직과 특수고용, 비정규직이라고 불러 주지도 않는 이상한 ‘개인사업자’가 되는 등의 현재 노동의 실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학생 사회의 신성함’ 같은 걸 딱히 믿지 않기 때문에, 노학연대 같은 연대 자체는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학교와 학생이란 건 어디에나 있는 공동체 중 하나이고, 학생은 한국 사회 안에서 굉장히 많은 권위와 자유를 부여받은, 꽤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진 공동체일 뿐이다. 노학연대라고 해서 다른 단체들의 연대와 질적으로 구분된다고 보지도 않고, 학교가 학문의 금자탑이라서 사회적으로 옳아야 한다는 당위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학교가 옳아야 하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옳아야 하는 거니까.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학교에서 소비자로서 존재하지만 동시에 학교라는 공동체의 일원이다. 등록금을 냈으니까 쓰레기를 막 버리자는 태도가 아니라, 학교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노동자들을 알아 가고 존중하는 자세를 길러 나간다는 측면에서 노학연대에 접근하려 한다. 당장 내가 버리는 쓰레기를 치우는 노동의 문제에 무지하다면 사회의 어떤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 나의 부당함을 인지하는 데 중요한 계기는 누군가가 부당한 처지에 항거하는 것을 보는 일이다. 노학연대가 그런 걸 보여 주는 것 자체로도 학생들에게 자극이 된다. 웬만한 교양 강의보다 집회하는 걸 보며 지나가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디에 가서 연대 발언을 하게 되면 자주 ‘우리는 미래의 노동자’ 혹은 ‘미래의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호명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완전히 같은 경로일 수는 없다. 따지고 보면 연세대는 소위 명문대니까 나도 그 상징 자산을 파먹으면서 활동하고 있는 입장에서 우리가 모두 같다고 말하기는 민망하다. 그럼에도 뭐가 또 그렇게까지 다른가 하는 측면에서 접근하고 싶다. 차이는 인정하되 그 과정에서 우리가 가지는 공통점이나 말할 수 있는 지점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강석남
그렇다면 비정규 공대위에서 스스로 규정하는 ‘노학연대’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지?
김태현
노학연대의 의미가 옛날과는 차원이 달라졌다. 과거엔 대학에서 노학연대 한다고 하면 ‘아, 사람들 위장 취업 시키는구나’ 하고 이해될 거니까. 지금의 운동은 집회 따라 나가서 발언하기, 간담회 열기 같은 활동들이다. 2008년까지만 해도 노조를 띄울 수 있을 정도의 조직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노조를 띄우긴커녕 참여하는 정도다. 어떻게 보면 노학연대가 굉장히 좁아지고 있다. 요즘엔 노학연대가 어떤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다. 그래서 ‘노학연대체’라고도 말 안 하고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있는 단체라고 소개한다.
우리의 고민은 주로 노동자들과 어떻게 만나는지에 대한 것이었던 것 같다. ‘연대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학생으로서 시혜적 태도로 접근하는 걸 어떻게 넘어서지?’ 같은 고민들.
그래서 노학연대란 말 자체에도 노동자와 학생이 만난다고 하는 사전적 의미 이상을 두고 있진 않다고 생각한다. 비정규 공대위도 그 단어에 어떤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다. 이제 각자의 활동의 의미를 각자가 찾아 간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그래서 다른 구성원들의 의미까지 제가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느끼는 노학연대란, 내가 속한 공동체에 대해 일정한 책임감을 느끼고 거기서 노동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연대이고, 우리가 학생이고 대학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노학연대가 된 게 아닐까 정도이다.
강석남
지금까지 비정규 공대위의 주요 활동과 노학연대에 대한 고민까지 폭넓게 이야기를 나눴다. 조금 방향을 틀어서, 대학 일반의 위기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보고자 한다. 먼저 학령 인구 감소로 대표되는 일반적인 대학의 위기 진단 담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런 위기 진단이 대학생들의 문제의식을 잘 담아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김태현
학령 인구 감소가 대학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에 대해선 딱히 의견은 없다. 실제로 위기니까. 다만 비정규 공대위가 활동하고 있는 연세대는 상대적으로 영향이 적은 게 사실이다. 지방의 대학에서는 큰 현안일 텐데.
대학 바깥의 이러한 위기 진단이 대학생들의 문제의식을 잘 담아내는가 물으면, 사실 대학생들의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비정규 공대위도 잘 모르는 상태다. 우리의 문제의식은 노동 문제인데, 대학생들의 문제의식은 그게 아닌 것 같다. 대학생 정치 세력화도 근 몇 년간 청년 정치와 함께 몰락한 것 같다.
강석남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구조 조정의 여파가 노동 문제로 비화되는 예로 2021년 신라대 청소 노동자 투쟁 사례[ref]2021년 신라대가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재정 악화를 이유로 청소 노동자들을 집단 해고했고, 142일간의 투쟁 끝에 조합원 전원의 직접 고용과 65세까지 정년 보장에 합의했다.(“신라대 청소노동자에게 장미를 전해 주세요”, 〈한겨레〉, 2021년 3월 7일)[/ref]를 들 수 있다. 대학 구조 조정의 충격이 전체 대학에서도 가장 취약한 지방 사립대로 몰리지만, 그 안에서도 가장 취약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희생을 요구하며 집단 해고와 투쟁이 발생하고 있다.
김태현
부끄럽게도 당시 신라대 투쟁에 결합하지 못해서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결로 등록금 문제가 있을 것 같다.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려면 등록금을 올려야 한다는 논리 말이다. 그게 덕성여대에서 노동자와 학생을 갈라치기하는, 소비자 정체성으로 대학생들을 무장시키는 수법이었다.
지방 사립대가 학령 인구 감소로 어떻게든 살길을 모색해야 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문제인 것 같다. 다만 가장 취약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터를 지켜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비정규 공대위가 투쟁할 때 ‘연세대 돈 많은데 왜 저러냐’ 하고 말하곤 하는데, 정말 재정이 없는 대학이라면 이런 논리를 펴기도 애매해진다. 결국은 그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울타리로서 노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최선일 것 같다.
우선 2022년 연세대 청소·경비 노동자 고소 사건에 대한 비정규 공대위의 확고한 평가가 인상적이다. 연세대 외부에서의 파장과 달리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진 온라인 커뮤니티의 여론, 온라인에서의 백래시가 결코 현실로 나오지 못했다는 진단, 그리고 학생 사회 전반의 반응은 민주노총 혹은 대학 내 노동 문제에 대한 혐오나 적대가 아니라 무관심이 본질이라는 진단이다. 물론 고소·고발의 예외성은 인정하지만,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노동자 대 학생의 구도가 아니라 노동자 대 학교의 구도’라는 메시지를 일관적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대부분 동의하면서도 학생 사회 전반의 학내 노동 문제에 대한 ‘무관심’에서부터 논점을 제기해 본다. 사실 노학연대나 노동 문제를 포함한 각종 사회적 문제에 대한 대학 사회의 무관심 자체는 그리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대학(생) 사회의 탈정치화의 결과로 정리할 수 있겠다. 하지만, 또 모두가 질문을 제기하듯, 과연 대학생들이 항상 각종 문제나 의제에 무관심했을까? 등록금으로 대표되는 대학생 집단의 이해관계의 문제, 혹은 대학 구조 조정 과정에서 대학 간 서열 체제가 매개된 갈등 등 2024년 현재의 대학(생) 사회는 나름의 역동성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노학연대에 대한 무관심은 부정할 수 없는 탈정치화의 국면 속에 대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담론이 부재한 결과는 아닐까.
2020년대 노학연대의 핵심적인 담론이나 준거는 취약한 대학 비정규직 노동에 대한 대학생들의 시혜적 태도에 의존하고 있다는 쟁점을 던져 보았다. 인터뷰에서 언급된 것처럼 대학생들의 특권적 지위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 필수적인 노동이라는 대학 내 비정규 노동의 특성은, 자연히 대학생들의 측은지심을 (때로는 전략적으로) 불러일으킨다. 연세대 고소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인 논란의 기저에도 분명 시혜적 태도에 대한 기대가 섞여 있었을 것이다.
시혜성은 그 자체로 문제적인가? 연대의 상호 관계가 위계적으로 왜곡된다는 윤리의 문제, 혹은 시혜란 언제든지 거두어질 수 있는 취약한 관계성이라는 한계가 문제라면 비정규 공대위가 다방면에서 전개하는 일상 사업들은 너무나 훌륭한 대응이다. 만남을 통한 서로의 이해는 비록 시혜적 태도 그 자체를 한 번에 해소하는 마법을 부리지는 못할지라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학연대에서 시혜적 태도가 문제적인 중요한 이유는 노학연대의 현장으로서 학내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전선에서 학생 주체들의 참여가 주변화된다는 것이다. 운동의 주요한 래퍼토리로서 ‘노동자 대 학생의 구도가 아니라 노동자 대 학교의 구도’에서 학생 주체들의 자리는 주변부의 보조적인 역할에 국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교섭과 쟁의는 노동조합을 매개로 노동자들이 책임 있는 사용자로서 학교와 형성하는 전선이기 때문에, 그 운동의 주인은 단연 노동자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오늘날 대부분의 노학연대 활동에서 드러나는 구체적인 활동들은 일관적으로 ‘연대와 지지, 응원의 메시지’로 요약되고 있진 않나. 물론 지금까지 노학연대 활동을 구성해 왔던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연대 혹은 지원은 너무나 유효하며 꼭 필요한 활동이다. 다만 노학연대의 범주가 노동자 투쟁의 지원에만 국한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다.
노학연대가 대학에서 마주하는 노동이자 운동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대학 구성원들에게 분명히 전달되는 의미가 작지 않다. 하지만 학생 주체들이 노학연대의 주변부가 아니라 어떻게 스스로의 문제로서 노동과 노학연대를 마주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시론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예를 들어 노동 문제와 대학 문제의 결합을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신라대 사례에서 드러나듯 대학 구조 조정은 필연적으로 노학연대의 주요 과제였던 학내 비정규직 노동에 대한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다.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신입생 충원의 어려움이 대학의 재정 위기로 이어지고, 그 쉬운 해법으로 대학 내 가장 취약한 부문인 비정규직 노동을 소거하는 패턴이 포착된다. 때문에 대학 구조 조정 국면에서 노학연대는 논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학령 인구 감소의 압력과 대학 구조 조정의 여파가 대학 서열 체제에 따라 불균등하게 배분되고 있다는 조건이 고려될 필요가 있겠다. 새로운 노학연대 담론은 단일한 대학 사회에 국한될 것이 아니라 캠퍼스의 경계를 넘어 대학 사회 일반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돼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08년 비정규 공대위가 학교 밖 노동에 대한 관심에서 학교 안 노동의 문제의식으로 이행한 것처럼, 대학 의제로서의 노학연대는 학교 안 노동에 대한 관심에서 대학 문제 일반으로의 이행을 통해, 우리의 문제로서 노학연대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제기해 보길 기대해 본다.
학생운동으로서의 노학연대
강석남
마무리하기에 앞서 다른 인터뷰에서도 물어본 공통 질문을 드린다. ‘비정규 공대위는 학생운동인가?’라고 묻는다면?
김태현
맞다. 학생운동을 하는 곳이다. 우리는 학생이고 운동적 지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운동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각자의 시민이 각자의 위치에서 목소리를 내고 각자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게 운동이라면, 학생으로서 하는 운동이니까 학생운동이다. 여기에 무슨 대학이 진리의 금자탑이니, 학문의 산실이니 같은 윤리적인 수사들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저는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렇기 때문에 학생운동을 하고 있다.
강석남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김태현
《오늘의 교육》은 교사들이 많이 읽는다고 들었다. 제가 처음 비정규 공대위에 가입했을 때 왜 가입하게 됐는지에 대한 질문에, 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선배 말로는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대학 가면 이것저것 많으니까 좀 해 보라고 말해서 공대위에 들어왔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비단 대학생이 아니더라도 교사의 한마디에 영향을 많이 받지 않나. 교사분들도 어떻게 하면 제자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혹은 대학에 갔을 때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지 고민이 많으실 것 같다. 오늘 제가 소개해 드린 내용들이 제자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실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연재 | 대학생운동 인터뷰 - 대학의 위기와 대학 안의 운동
2024년 노학연대의 고군분투와 쟁점들
- 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김태현 대표
강석남
kim3soo91@hanmail.net
본지 편집위원,
중앙대 사회학과 박사 수료
1980년대 광주 민중항쟁을 계기로 당시 학생운동은 운동의 주관적, 객관적 조건에 대한 논쟁을 적극 제기한다. 그 결과 ‘한국 사회 변혁운동의 주체 형성을 위한 학생운동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심화되면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관계 설정을 둘러싸고 부상한 개념이 ‘노학연대’였다. 이른바 ‘위장 취업’을 통한 ‘학출’로 구성된 학생운동 주체들은 1980년대 노동운동의 새로운 주체로 등장해 노동운동의 변혁 지향성을 강화해 왔다.[ref]유경순(2015), 〈1980년대 학생운동가들의 노학연대 활동과 노동현장투신 방식의 변화〉, 《기억과 전망》 32, 200~246쪽.[/ref] 이후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노동운동의 제도화 및 학생운동의 쇠락 속에 활기를 잃어 가던 노학연대는 2000년대 중후반 공공운수노조 서울경기지부(서경지부)의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 ‘전략 조직화 사업’을 계기로 전환점을 맞는다. 2006년 650명가량의 조합원으로 출범했던 서경지부는 2013년 대학 분회 11곳, 조합원 2,000여 명이 되는 극적인 확장을 이뤘다. 과거 대학 바깥의 노동자와 연대하던 노학연대가 대학 내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연대로 변화한 것이다.[ref]강남규(2022), 〈대학생과 노동자의 연대는 어떻게 가능했나〉, 《오늘의 교육》, 69(2022년 7·8월).[/ref]
2024년 2월 6일, 연세대 재학생 3명이 청소·경비 노동자들을 상대로 낸 600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했다. ‘시위 소음으로 수업권을 침해받았다’는 이유의 소송이었다. 2022년 학교와의 단체교섭과 조정까지 결렬되며 학내 집회에 나섰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연세대 분회의 집회로부터 22개월 만이었다. 처음 대학생들의 민형사상 고소·고발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대학 바깥에서는 어떤 한탄이나 안타까움, 혹은 배신감이 팽배했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학내외에서 연대의 손길이 이어지며 최종적으로 소를 제기한 학생들이 패소하여 최악의 불상사는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질문은 남아 있다. 대학 내에서의 시위 등 투쟁, 특히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대학 내 노동자들의 저항에 대한 대학생들의 반감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강남규가 지적했던 것처럼, “2011년 홍익대와 2014년 중앙대, 2015년 서울여대에서 각 대학 총학생회가 민주노총을 두고 ‘외부 세력’ 운운하거나 미관상 불쾌하다는 이유로 현수막을 철거”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지 않았다.[ref]강남규(2022), 앞의 글.[/ref] 당장 2022년 가을에는 서울 지역 13개 대학 중 유일하게 시급 400원 인상을 거부한 덕성여대에서 청소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자 이를 비난하는 학생들의 대자보와 메모지 수십 장이 붙었다.
‘학생들을 인질로 삼으면서 학교를 위한다, 학생을 위한다 위선 떨지 말라. 저희는 인질이 아니다.’ (……) ‘공감 없는 시위 그만하라’ ‘청소 노동자 시위 지지 않는다’ ‘노동자 OUT’ ‘학생 볼모 하청 파업 반대한다 철회하라’ ‘학생 임금 9,160원, 청소 근로자 임금 9,390원’ (……) 트위터 등 온라인에서도 “청소 노동자들이 거짓 정보로 선동해 학교 이미지만 나빠진다” “고작 400원 때문에 학교 화장실이 쓰레기장이 되는 게 상상된다”는 등 청소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학생들 글이 쏟아졌다.[ref]박지영, “시급 400원 인상 거부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OUT” 혐오도”, 〈한겨레〉, 2022년 10월 21일. [/ref]
고소·고발이라는 극단적인 방식 자체는 예외적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대학 사회 전반에 자리 잡은 노동운동에 대한 혐오가 비단 특정 대학만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대학 바깥에서는 대학(생)들의 학내 노동자에 대한 연대를 당연시하는 기대가 만연하고, 대학 안에서는 학내 노동자들에 대한 무관심과 거부가 일상화된 모순은 오늘날 대학에서의 노동자와 대학생의 연대, ‘노학연대’에 대한 질문을 적극 제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맥락을 따라 2022년부터 한국 사회에 의도치 않게 쟁점을 던졌던 연세대 대학 사회에서 노학연대를 기치로 활동하고 있는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비정규 공대위)를 만나 오늘날의 노학연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인터뷰는 2024년
5월 9일 온라인 화상 대화로 진행했다.
응급실처럼 사건 터지면 대응하는 게 노학연대
강석남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김태현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학과 22학번 김태현이다. 대표를 맡고 있다.
강석남
비정규 공대위가 결성된 계기가 궁금하다.
김태현
비정규 공대위는 2008년도에 처음으로 설립되었다. 공대위의 전신으로 당시 연세대 내 비정규직 문제를 고민하는 모임 ‘살맛’이란 단체가 있었다고 한다. 아마 2007년이었을 텐데, 살맛에서 이전까지 학외의 노동 현황은 많이 고민했지만, 학내 노동 현황에 대한 고민은 안 해 봤다는 생각에 실태 조사를 해 보니 학내 노동 현황이 너무 열악했던 거다. 그래서 살맛을 중심으로 노조를 띄워 보자는 의견이 모였고, 실태 조사 때 뵈었던 노동자들을 쫓아다니며 설득해 노조를 창립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함께했고, 노조가 만들어진 이후 2008년, 살맛의 주도로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강석남
2008년 이후 비정규 공대위의 간략한 역사를 소개해 달라.
김태현
활동 방향은 계속 변화해 왔다. 학내 사안이 터지면 연대해 왔는데, 현재 연대하고 있는 노조는 연세대 신촌캠퍼스의 청소 노동조합, 연세대 송도캠퍼스의 청소 노동조합, 신촌캠퍼스의 한국어학당 강사 노동조합, 세브란스병원 노동조합이 있다. 송도캠퍼스 청소 노동조합은 2015년 정리 해고 사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세브란스병원 노동조합은 노조 파괴 사건에서부터 연대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어학당 강사 노조는 코로나19가 터지면서 강사 처우 문제가 부각돼 노조가 결성되면서부터 같이 연대해 왔다.
기본적으로 어떤 학내 사안이 터지면 그때그때 대응하고 연대하는 방식이었다. 다만 단체 기록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도 아니라 어떻게 이어져 내려왔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대략적으로 이런 사건들이 있었다고 알고 있다.
처음에는 총학생회와 각 단과대 학생회, 동아리 등이 들어오는 연대체 형식이었다. 제가 들어왔을 때는 이미 연대체라기보다는 하나의 동아리로 운영되고 있었다. 명확하게 체계가 이렇게 바뀐 시점은 따로 없는 것 같다.
강석남
노조가 생길 때마다, 학내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대응해 오는 활동을 꾸준히 반복한 역사로 이해된다. 벌써 16년 역사인데, 내부적으로 느끼는 기조의 변화가 있었을지 궁금하다.
김태현
역사는 16년이지만 제가 활동한 건 2년밖에 안 돼서.(웃음) 단체에 명확한 기조란 게 정해져 있지 않다. 좀 부끄럽지만 노학연대란 것 자체가 응급실마냥 사건 뜨면 우르르 붙고, 사건 없으면 긴장이 풀렸다가, 사건 뜨면 다시 우르르 붙는 식으로 많이 활동한다. 우리 단체가 뭔가 활동하는 건 사건이 터졌을 때다. 집회를 한다, 고소를 한다, 해고가 터졌다 등. 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 이상으로는 통일된 기조를 잘 느끼지 못한다. 옛날에 활동했던 사람들은 어땠는지 잘 모르겠다. 노동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 주변의 노동자들이랑 연대할 수 있고, 또 학외 상황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는 그 정도 단체로 굴러가는 것 같다.
강석남
비정규 공대위의 조직 구성은 어떻게 될까? 학생회 같은 전통적인 학생 자치 조직과 비교해서 소개를 부탁드린다.
김태현
기본적으로 집행부원과 연대회원이 있고, 집행부원들이 주 1회 회의를 가지고 있다. 연대회원은 과거 연대체로 운영되던 시절 다양한 단체에서 파견된 사람들을 위한 구분이었는데, 최근에는 약간 유명무실한 점도 없지 않다. 전체 구성원은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소수다.
제가 학생회 경험도 없고 입학했을 땐 애초에 총학생회가 공석이라 비대위 상태였어서 전통적인 학생 자치 조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잘 몰라 답하기가 애매하다. 굳이 비교하자면 전통적인 단체라면 따라오는 위계, 권위, 주어진 예산, 제한 그런 것이 전혀 없다는 점일까? 학생들이 모여서 궁리하며 활동을 하는 것에 가깝다. 주 1회 회의 말고는 정해진 것이 없다. 앞서 동아리 같다고 소개한 건 정말 동아리처럼 3월 초에 신입 회원을 모집해서 이것저것 하고, 방학 끝나면 다시 9월에 또 회원을 모집하는 식으로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
예산은 가끔 행사 패널로 참가하고 받는 수고비 등을 모으기도 하고, 노조에서 후원해 주신 적도 있다. 선배들로부터 후원을 받기도 한다. 예전 송도캠퍼스 정리 해고를 해결한 이후 축제 부스 사업을 해서 그 수익금을 재정에 넣었다. 연세대 노수석추모사업회에서 운영하는 학생 단체 지원 사업에 신청해 지원받기도 했다. 사실 포스터 뽑고, 대자보 만들고 하는 정도라 크게 돈이 들 부분은 없다.
강석남
비정규 공대위의 개괄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신 것 같다. 혹시 다른 학교 사정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 전체 대학가의 노학연대 조직들의 현황이 궁금하다.
김태현
아무래도 학교가 위치한 서울권 대학 위주로 답변할 수 있을 것 같다. 노학연대 자체를 기치로 내건 단체들은 이화여대 ‘바위’, 서울대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단국대 ‘새벽’ 등이 현재도 활동 중인 것 같다. 홍익대 ‘모닥불’이나 숙명여대 ‘만년설’ 같은 경우에는 현재 활동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노학연대 자체를 내건 단체가 장기적으로 활동하기가 어렵다. 응급실처럼 활동하다 보니 체계도 사업도 없고, 체계를 세우려 해도 사건이 터지면 거기에 역량을 집중하니 그러기 어렵다. 노학연대 조직 자체는 많이 줄어든 것 같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가 구성한 ‘2024 노학연대기획단’[ref]고려대, 서강대, 서울대, 연세대, 인덕대, 성공회대 등 다양한 대학에서 노학연대를 실천하는 학생과 학생단체가 모여 학내외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노학연대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는 연대체다.(“대학 청소 노동자의 든든한 ‘뒷배’, 2024 노학연대기획단”, 〈오마이뉴스〉, 2024년 4월 22일)[/ref]에 참여해 활동해 보니 인권동아리나 소수자인권위원회, 작게는 사회학과 학회까지 다양한 단위가 많이 결합하고 있다. 전문적으로 노학연대를 하는 단위들은 옛날보다 적어도, 다양한 단위에서 노학연대 의제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아서 전체적인 노학연대 활동이 줄어들었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차이점은 과거엔 학생회에서 적극적으로 붙었겠지만 요즘엔 턱도 없다는 점? 그나마 이대 쪽은 학생회를 수권했다고 듣긴 했는데, 거기를 제외하면 총학은커녕 단과대 학생회의 지원조차 이제는 별로 기대하지 않는 실정이다.
2008년부터 16년째 이어 오는 비정규 공대위의 역사는 말 그대로 고군분투의 연속으로 이해된다. ‘응급실’로 스스로의 활동을 정리하는 비유가 인상 깊다. 굵직굵직한 노조의 결성과 교섭 및 쟁의에 매년 보폭을 맞춘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밝히고 있는 엄밀한 기조나 체계의 부재는 어찌 보면 비정규 공대위가 그간의 역사 속에서 매번의 이슈에 전력을 다해 왔다는 상흔으로서의 증거가 아닐까.
한편, 인터뷰에서 언급된 것처럼 스스로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학내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며 노동조합을 출범시킬 정도의 역량이 지난 16년간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 특히 학생운동과 학생 사회의 부침에 따라 점차 약화된 점 또한 인정해야 할 단면이기도 하다. 2000년대 후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의 전략 조직화에 따른 서울권 대학 비정규직 노조 운동의 성공 속에 나름 활성화되었던 노학연대 학생 조직들의 감소세도 관찰되는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다양한 형태의 학생 단위들(인권동아리나 소수자위원회 등)이 노학연대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꾸준히 결합해 오고 있다는 데서 희망을 찾는다. 이제 보다 구체적인 활동에 대한 질문과 함께, 몇 가지 현재의 노학연대 활동에 던지고자 하는 쟁점들을 질문했다.
노동자들과 어떻게 만날까 하는 고민
강석남
주요 활동이나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나? 직면하는 이슈마다 대응해 왔던 역사가 인상적인데, 그렇다면 정기적인, 이른바 캘린더 사업은 어떻게 구성되는지 궁금하다.
김태현
비정규 공대위가 딱히 명확한 구조가 없다 보니까, 정말 ‘하자’ 하면 다양하게 하게 되는 것 같다. 캘린더 사업이라고 할 만한 건 없다. 비정규 공대위는 학내 노동 이슈에 대응하는 게 기본이고 그게 캘린더다. 연세대 청소 노동조합은 2023년만 빼고 매년 집회를 해 왔다. 3월에 교섭 시작하고 계속 쟁의를 하니까 거기에 연대하는 게 주요 사업이다. 이 기간에 집회 나가서 발언하고, 간담회를 열어 노동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청소연대활동(청활)’이나 노동영화제는 여기서 약간 벗어난 활동이다. 2023년에 교섭이 잘 돼서 쟁의를 할 필요가 없으니 노조에겐 좋은 일이었지만 우린 하던 사업이 증발해 버린 셈이었다. 그래서 학내 청소 노동자와 어떻게 더 만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나름의 일상 사업으로 청활, 노동영화제를 준비했다. 우리가 맨날 투쟁에 가서 연대하지만 정작 청소 노동자들을 잘 알지 못한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2024년 4월, 비정규 공대위는 연세대 청소노동자 간담회 ‘노동자에게 직접 듣는 노동 이야기’를 열었다.
가장 오른쪽의 발언 중인 사람이 김태현 대표.
강석남
방금 이야기한 일상 사업들이 흥미롭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인지 설명해 주시면?
김태현
노동영화제는 정말 간단하게 사람들을 불러 모아 노동과 관련된 영화를 보는 것이다. 공동체 상영이나 GV도 가끔 하지만 대개 그냥 노동 영화 하나 골라 잡아서 다 같이 포스터 붙이고, 올 사람들 모여서 영화 보고 소감 나누고 간식 먹고 헤어진다. 쉽게 다가갈 수 있으면서도 영화 보러 모인 사람들에게 학내 노동 사안도 소개할 수 있는 시간이다.
청활 같은 경우는 2022년쯤부터 논의가 시작됐다. 매번 청소 노동자들의 청소 노동에 대해 너무 이해도가 낮다는 이야기가 내부에서 있었다. 그래서 농민학생연대활동(농활)에서 따와서 청활이라고 이름 짓고, 청소 노동자들이 출근하는 새벽 5~6시부터 함께 청소를 했다. 청소를 마친 후에는 모여서 소감을 나누고 간단하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서 청소 노동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했다.
‘호호체육관’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 사업은 문화연대와 서강대 인권실천모임 ‘노고지리’가 공동 주최하는데, 여성 청소 노동자의 스포츠권 확보를 목적으로 학교에서 학생들과 배구 교실을 연 것이다. 연세대에서도 제안을 받아,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매주 목요일 점심마다 모여서 농구를 하고 있다. 역시나 만나서 같이 이야기 좀 해 보자, 친해지자는 활동이다. 만나고 누구인지 서로 알아야 연대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비정규 공대위 단독으로 진행하는 사업은 아니지만 다른 학내 단체들과 함께 ‘쓰레기 탐험대’라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학내 쓰레기 문제나 분리수거 문제에 대해서 환경과 노동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는 취지로, 청소 노동자들이 평소 분리수거 과정에서 어떤 애로 사항이 있는지 들어 보는 캠페인이었다. 환경과 노동 의제에 관심 있는 단위들이 참여하고 있다.
청소 노동자들과 일상적으로 만나고 친해지기 위해 매주 목요일 점심마다 모여서
농구를 하는 호호체육관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강석남
비정규 공대위가 일상에서 노동자들을 만나는 고민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셨다. 2022년 학내 청소 노동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고소·고발 사건에 대해서도 질문을 드려야 할 것 같다. 물론 논란이 됐던 사건이라서 관련된 질문을 많이 받아 보셨겠지만, 당시의 전후 맥락이나 비정규 공대위의 활동에 대해서 듣고 싶다.
김태현
워낙 큰 사건이다 보니 인터뷰를 할 때마다 항상 나오곤 한다. 여기엔 양가적인 감정이 있다. 우선 우리는 고소 건 자체나 고소한 학생을 엄청나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당시 여기저기서 ‘요즘 대학생들은……’ 하면서 대학 사회를 논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들이 노동 문제에 관심이 없는 건 맞아도, 그런 이들이 흔히 지적하는 것만큼 극단적인 건 아니다. 고소한 학생은 ‘시끄럽다’는 이유를 들었고, 에브리타임에서도 동조하는 의견들이 준동했으니 명백히 백래시의 흐름이긴 하다. 하지만 정작 그 흐름이 현실로 뛰쳐나왔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학생회 등이 조치를 취해서 집회를 막은 것도 아니었다. 언론 보도로 인해 사건이 커졌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백래시가 2011년 홍익대에서도 있지 않았나.[ref]2011년 1월, 홍익대에서 청소 노동자 140여 명이 집단 해고에 맞서 본관에서 점거 농성을 했을 때, 총학생회가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선 안 된다, 외부 세력은 나가 달라’라는 등의 요구를 한 사건이다. 〈총학만 뭇매 맞고 대학은 ‘나 몰라라’〉, 《시사인》, 175(2011년 1월 22일). [/ref] 이번 고소 사건은 그때 총학생회 차원 백래시에 비하면 오히려 사소한 일이었다.
비정규 공대위에서 계속 이야기한 건 이 사건이 노동자 대 학생의 대립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노동자는 학교와 교섭하고 있는 거고, 노동자 대 학생의 대립으로 몰아가선 안 된다. 어떤 한 사람이 시끄럽다고 고소했을 뿐인, 어쩌다 한번 있는 이상하고 기이한 사건 정도라고 생각한다. 극히 예외적인 사건으로 대학 사회를 판단하는 건 말 그대로 일부를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것이다. 비정규 공대위는 사건이 뉴스에 크게 나왔을 때 지지 연서명을 돌렸고, 우리나 노조에서는 일관적으로 이야기했다. ‘노동자는 학생과 싸우고 싶지 않다. 노동자분들도 (고소한) 학생을 딱히 원망하지 않는다. 우리가 교섭하는 대상은 학교고 학생들에게는 시끄럽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 있다. 하지만 교섭을 위해 양해를 부탁한다.’ 이 사건이 노동자 대 학생, 학생 대 학생의 대립 구도로 끌려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고소당한 분들은 심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워하셨다. 그래도 고소 이후 사회적 관심을 크게 받았다. 반쯤 우스갯소리로 고소한 학생들이 ‘어둠의 공대위’는 아니었을까 이야기했다. 학생 사회에서도 별 반응이 없었는데, 에브리타임에서도 처음엔 잘했다는 말이 많다가 언론 보도 이후 분위기가 돌아서니까 이번엔 왜 고소를 했냐는 말이 많아졌다. 온라인상의 여론이 현실로 나오지 못했다는 점에서 2018년 총여학생회 백래시[ref]“연세대 학생들, ‘은하선 강연’ 개최한 총여학생회 폐지 요구… 총여학생회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 〈경향신문〉, 2018년 5월 25일.[/ref]와는 다른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여론이 휙휙 뒤집히는 걸 보고 ‘별것 아니었는데 너무 겁먹었었나?’ 싶기도 했다. 현실에서 우리가 뭔가를 해 나가는 게 중요하지, 온라인 여론에 매몰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도 강하게 든다.
최근에 연세대 인권 축제가 있었다. 비정규 공대위도 공동 주최 단체로 참여해 부스도 차렸다. 사실 걱정이 많았다. 2018년 총여학생회 폐지의 계기가 인권 축제에서 은하선 씨를 연사로 불렀다가 반대 학생들과 충돌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인권 축제는 평화롭게 잘 마무리됐다. 현실로 나오지 않은 걸 걱정할 필요가 없었구나 싶다.
2024년 3월 연세대 제4회 인권 축제에 공공운수노조 연세대분회와 함께 부스로 참가해 청소 노동자의 일과 현실에 대해 알렸다.
강석남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씀이 많았다는 느낌이 든다. 우선 고소 사건이 상당히 예외적인 사건이라는 데 공감한다. 그럼에도 그 사건이 사회적 이목을 끈 것은 고소·고발이라는 극단적이고 예외적인 방식 문제도 있지만,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학생 사회의 대학 내 노동운동, 특히 민주노총에 대한 혐오의 표출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실제로 사건은 대학의 외부에서 사법적 절차로 해소된 것이고, 여전히 쟁점은 남아 있지 않나?
김태현
민주노총이 북한이니, 간첩이니 하는 이상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지만, 사실 학생들 태반은 민주노총을 잘 모른다. 대다수는 관심 자체가 없을 거다. 애초에 학교에 있는 노조가 어디 소속인지도 잘 모르고, 노조 집회가 시끄럽다는 학생들도 민주노총인지 모른다. 정리하자면 학생들 사이에선 민주노총에 대한 반감보다는 노조에 대한 이해 자체가 없다는 감각이 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저는 입학하자마자 노조를 만나 버려서 다른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학생들은 ‘외부 세력’이라고 하면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민주노총은 손을 떼라, 민주노총 다 해고하고 새로 고용해라 등의 말들이다. 외부 세력으로서의 민주노총에 대한 반감을 이용하는 거 같은데, 그 반감이 정말로 피상적인 것 같다. 민주노총에 대해 제대로 비판하자면 대기업 노조나 임금 격차 같은 키워드를 우회할 수 없지 않나?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않고 “민주노총” 4글자에만 반감이 심어져 있는데 그 반감 자체가 막연하다.
오늘날 노학연대의 쟁점들
강석남
개인적으로 2013년 중앙대 청소·경비·시설 노동자들의 비정규직 노조 출범과 투쟁을 지켜본 경험이 있다. 그때 스스로 풀지 못했던 질문이 있어 여쭤보고자 한다. 왜 2010년대 이후의 노학연대는 특히 청소 노동으로 대표되는 학내 비정규직 노동운동에 주로 결합할까? 이는 학내 청소 노동에 대한 대학생들의 시혜적 태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한편으로 노조가 투쟁의 전략으로 시혜적 태도를 활용하는 면도 있는 것 같다.
김태현
시혜적인 면이 있다. 노조가 그런 투쟁 전략을 활용하는 것도 맞다. 2010년대 노학연대 투쟁을 그렇게 보셔도 크게 반박할 여지는 없다. 비정규 공대위에 들어온 사람들도 처음엔 시혜적인 시선으로 접근한 게 아닌가 싶다. 저도 그랬고. 쉽게 벗어던질 수 없는 거란 생각도 든다. 학내 노동자들과의 관계가 옛날 운동권이 말하던 ‘동지적 관계’ 같은 게 전혀 아니다. 일반적으로 제가 느끼는 분위기는 거의 무슨 할머니와 손주뻘의 관계다. 명백한 나이의 위계나, 반대로 노동자 대 학생이란 신분 사이의 관계가 작동하는 지점이 있다. 앞서 소개한 비정규 공대위에서 하는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는 일상 사업들도 이러한 시혜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약간 녹아 있다.
흔히 청소 노동을 ‘유령 노동’이라고 부른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란 거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가 만나는 노동자들은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들로 프레이밍되기 쉽다. 연대라는 것도 어떤 면에서 봉사와 쉽게 구별되지 않는 것 같다. 청활을 할 때도 청소 봉사 나왔다고 말씀하시는 조합원분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봉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 하면 연대할 수 있지?’가 계속 고민하는 점이다. 관계를 어떻게 쌓을지조차도 막막한 지점이다. 같은 학교에 있는 노동자와 학생이란 것 말곤 공통점이 없다시피 하니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 시혜적 태도를 극복하건 어쩌건, 일단 만나서 이야기해야 한다. 시혜적 태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어떻게 봉사가 아닌 연대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답이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학생들을 ‘우리 도와주러 온 학생들’이라고 부르던 노동자들이 만남을 통해 ‘얘는 뭔데 연세대까지 와 가지고 맨날 우리 집회에서 이러고 있냐’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 인간적으로 같이 운동하고 대화하는 자리들이 있어야 시혜적 태도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석남
한편으로 2010년대, 2020년대 이후의 노학연대에서 학생 단위나 학생 주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도 제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서 말씀하셨듯 노동조합 대 학생의 대립이 아니라 노동조합과 학교 사이에 교섭과 투쟁이 진행된다면, 학생 주체는 직접 당사자는 아니지만 연대나 불만 표출의 형태로만 개입하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이 지점에서 학생들은 문제 해결의 주체도, 투쟁의 주체도 아닌 주변화된 역할만 부여받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노학연대 운동이 대학 내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노동 문제가 대학생들 스스로의 의제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아닐까?
김태현
반 정도는 동의가 되고, 반 정도는 이견이 있다. 학내 비정규직 노동은 학생들과 연이 없는 노동이기는 하다. 청소 노동은 중장년 여성층 노동자들이 주로 하고, 학생들이 나중에 청소 노동에 진출한다 하더라도 그때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럼에도 노학연대는 노동 문제에 무지한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창구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대학에서의 경비 무인화, 노동 시간을 쪼개서 파트타임 고용으로 나누는 전법 등을 보면서 비정규직과 특수고용, 비정규직이라고 불러 주지도 않는 이상한 ‘개인사업자’가 되는 등의 현재 노동의 실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학생 사회의 신성함’ 같은 걸 딱히 믿지 않기 때문에, 노학연대 같은 연대 자체는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학교와 학생이란 건 어디에나 있는 공동체 중 하나이고, 학생은 한국 사회 안에서 굉장히 많은 권위와 자유를 부여받은, 꽤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진 공동체일 뿐이다. 노학연대라고 해서 다른 단체들의 연대와 질적으로 구분된다고 보지도 않고, 학교가 학문의 금자탑이라서 사회적으로 옳아야 한다는 당위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학교가 옳아야 하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옳아야 하는 거니까.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학교에서 소비자로서 존재하지만 동시에 학교라는 공동체의 일원이다. 등록금을 냈으니까 쓰레기를 막 버리자는 태도가 아니라, 학교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노동자들을 알아 가고 존중하는 자세를 길러 나간다는 측면에서 노학연대에 접근하려 한다. 당장 내가 버리는 쓰레기를 치우는 노동의 문제에 무지하다면 사회의 어떤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 나의 부당함을 인지하는 데 중요한 계기는 누군가가 부당한 처지에 항거하는 것을 보는 일이다. 노학연대가 그런 걸 보여 주는 것 자체로도 학생들에게 자극이 된다. 웬만한 교양 강의보다 집회하는 걸 보며 지나가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디에 가서 연대 발언을 하게 되면 자주 ‘우리는 미래의 노동자’ 혹은 ‘미래의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호명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완전히 같은 경로일 수는 없다. 따지고 보면 연세대는 소위 명문대니까 나도 그 상징 자산을 파먹으면서 활동하고 있는 입장에서 우리가 모두 같다고 말하기는 민망하다. 그럼에도 뭐가 또 그렇게까지 다른가 하는 측면에서 접근하고 싶다. 차이는 인정하되 그 과정에서 우리가 가지는 공통점이나 말할 수 있는 지점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강석남
그렇다면 비정규 공대위에서 스스로 규정하는 ‘노학연대’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지?
김태현
노학연대의 의미가 옛날과는 차원이 달라졌다. 과거엔 대학에서 노학연대 한다고 하면 ‘아, 사람들 위장 취업 시키는구나’ 하고 이해될 거니까. 지금의 운동은 집회 따라 나가서 발언하기, 간담회 열기 같은 활동들이다. 2008년까지만 해도 노조를 띄울 수 있을 정도의 조직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노조를 띄우긴커녕 참여하는 정도다. 어떻게 보면 노학연대가 굉장히 좁아지고 있다. 요즘엔 노학연대가 어떤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다. 그래서 ‘노학연대체’라고도 말 안 하고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있는 단체라고 소개한다.
우리의 고민은 주로 노동자들과 어떻게 만나는지에 대한 것이었던 것 같다. ‘연대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학생으로서 시혜적 태도로 접근하는 걸 어떻게 넘어서지?’ 같은 고민들.
그래서 노학연대란 말 자체에도 노동자와 학생이 만난다고 하는 사전적 의미 이상을 두고 있진 않다고 생각한다. 비정규 공대위도 그 단어에 어떤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다. 이제 각자의 활동의 의미를 각자가 찾아 간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그래서 다른 구성원들의 의미까지 제가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느끼는 노학연대란, 내가 속한 공동체에 대해 일정한 책임감을 느끼고 거기서 노동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연대이고, 우리가 학생이고 대학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노학연대가 된 게 아닐까 정도이다.
강석남
지금까지 비정규 공대위의 주요 활동과 노학연대에 대한 고민까지 폭넓게 이야기를 나눴다. 조금 방향을 틀어서, 대학 일반의 위기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보고자 한다. 먼저 학령 인구 감소로 대표되는 일반적인 대학의 위기 진단 담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런 위기 진단이 대학생들의 문제의식을 잘 담아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김태현
학령 인구 감소가 대학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에 대해선 딱히 의견은 없다. 실제로 위기니까. 다만 비정규 공대위가 활동하고 있는 연세대는 상대적으로 영향이 적은 게 사실이다. 지방의 대학에서는 큰 현안일 텐데.
대학 바깥의 이러한 위기 진단이 대학생들의 문제의식을 잘 담아내는가 물으면, 사실 대학생들의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비정규 공대위도 잘 모르는 상태다. 우리의 문제의식은 노동 문제인데, 대학생들의 문제의식은 그게 아닌 것 같다. 대학생 정치 세력화도 근 몇 년간 청년 정치와 함께 몰락한 것 같다.
강석남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구조 조정의 여파가 노동 문제로 비화되는 예로 2021년 신라대 청소 노동자 투쟁 사례[ref]2021년 신라대가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재정 악화를 이유로 청소 노동자들을 집단 해고했고, 142일간의 투쟁 끝에 조합원 전원의 직접 고용과 65세까지 정년 보장에 합의했다.(“신라대 청소노동자에게 장미를 전해 주세요”, 〈한겨레〉, 2021년 3월 7일)[/ref]를 들 수 있다. 대학 구조 조정의 충격이 전체 대학에서도 가장 취약한 지방 사립대로 몰리지만, 그 안에서도 가장 취약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희생을 요구하며 집단 해고와 투쟁이 발생하고 있다.
김태현
부끄럽게도 당시 신라대 투쟁에 결합하지 못해서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결로 등록금 문제가 있을 것 같다.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려면 등록금을 올려야 한다는 논리 말이다. 그게 덕성여대에서 노동자와 학생을 갈라치기하는, 소비자 정체성으로 대학생들을 무장시키는 수법이었다.
지방 사립대가 학령 인구 감소로 어떻게든 살길을 모색해야 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문제인 것 같다. 다만 가장 취약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터를 지켜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비정규 공대위가 투쟁할 때 ‘연세대 돈 많은데 왜 저러냐’ 하고 말하곤 하는데, 정말 재정이 없는 대학이라면 이런 논리를 펴기도 애매해진다. 결국은 그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울타리로서 노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최선일 것 같다.
우선 2022년 연세대 청소·경비 노동자 고소 사건에 대한 비정규 공대위의 확고한 평가가 인상적이다. 연세대 외부에서의 파장과 달리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진 온라인 커뮤니티의 여론, 온라인에서의 백래시가 결코 현실로 나오지 못했다는 진단, 그리고 학생 사회 전반의 반응은 민주노총 혹은 대학 내 노동 문제에 대한 혐오나 적대가 아니라 무관심이 본질이라는 진단이다. 물론 고소·고발의 예외성은 인정하지만,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노동자 대 학생의 구도가 아니라 노동자 대 학교의 구도’라는 메시지를 일관적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대부분 동의하면서도 학생 사회 전반의 학내 노동 문제에 대한 ‘무관심’에서부터 논점을 제기해 본다. 사실 노학연대나 노동 문제를 포함한 각종 사회적 문제에 대한 대학 사회의 무관심 자체는 그리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대학(생) 사회의 탈정치화의 결과로 정리할 수 있겠다. 하지만, 또 모두가 질문을 제기하듯, 과연 대학생들이 항상 각종 문제나 의제에 무관심했을까? 등록금으로 대표되는 대학생 집단의 이해관계의 문제, 혹은 대학 구조 조정 과정에서 대학 간 서열 체제가 매개된 갈등 등 2024년 현재의 대학(생) 사회는 나름의 역동성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노학연대에 대한 무관심은 부정할 수 없는 탈정치화의 국면 속에 대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담론이 부재한 결과는 아닐까.
2020년대 노학연대의 핵심적인 담론이나 준거는 취약한 대학 비정규직 노동에 대한 대학생들의 시혜적 태도에 의존하고 있다는 쟁점을 던져 보았다. 인터뷰에서 언급된 것처럼 대학생들의 특권적 지위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 필수적인 노동이라는 대학 내 비정규 노동의 특성은, 자연히 대학생들의 측은지심을 (때로는 전략적으로) 불러일으킨다. 연세대 고소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인 논란의 기저에도 분명 시혜적 태도에 대한 기대가 섞여 있었을 것이다.
시혜성은 그 자체로 문제적인가? 연대의 상호 관계가 위계적으로 왜곡된다는 윤리의 문제, 혹은 시혜란 언제든지 거두어질 수 있는 취약한 관계성이라는 한계가 문제라면 비정규 공대위가 다방면에서 전개하는 일상 사업들은 너무나 훌륭한 대응이다. 만남을 통한 서로의 이해는 비록 시혜적 태도 그 자체를 한 번에 해소하는 마법을 부리지는 못할지라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학연대에서 시혜적 태도가 문제적인 중요한 이유는 노학연대의 현장으로서 학내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전선에서 학생 주체들의 참여가 주변화된다는 것이다. 운동의 주요한 래퍼토리로서 ‘노동자 대 학생의 구도가 아니라 노동자 대 학교의 구도’에서 학생 주체들의 자리는 주변부의 보조적인 역할에 국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교섭과 쟁의는 노동조합을 매개로 노동자들이 책임 있는 사용자로서 학교와 형성하는 전선이기 때문에, 그 운동의 주인은 단연 노동자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오늘날 대부분의 노학연대 활동에서 드러나는 구체적인 활동들은 일관적으로 ‘연대와 지지, 응원의 메시지’로 요약되고 있진 않나. 물론 지금까지 노학연대 활동을 구성해 왔던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연대 혹은 지원은 너무나 유효하며 꼭 필요한 활동이다. 다만 노학연대의 범주가 노동자 투쟁의 지원에만 국한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다.
노학연대가 대학에서 마주하는 노동이자 운동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대학 구성원들에게 분명히 전달되는 의미가 작지 않다. 하지만 학생 주체들이 노학연대의 주변부가 아니라 어떻게 스스로의 문제로서 노동과 노학연대를 마주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시론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예를 들어 노동 문제와 대학 문제의 결합을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신라대 사례에서 드러나듯 대학 구조 조정은 필연적으로 노학연대의 주요 과제였던 학내 비정규직 노동에 대한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다.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신입생 충원의 어려움이 대학의 재정 위기로 이어지고, 그 쉬운 해법으로 대학 내 가장 취약한 부문인 비정규직 노동을 소거하는 패턴이 포착된다. 때문에 대학 구조 조정 국면에서 노학연대는 논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학령 인구 감소의 압력과 대학 구조 조정의 여파가 대학 서열 체제에 따라 불균등하게 배분되고 있다는 조건이 고려될 필요가 있겠다. 새로운 노학연대 담론은 단일한 대학 사회에 국한될 것이 아니라 캠퍼스의 경계를 넘어 대학 사회 일반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돼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08년 비정규 공대위가 학교 밖 노동에 대한 관심에서 학교 안 노동의 문제의식으로 이행한 것처럼, 대학 의제로서의 노학연대는 학교 안 노동에 대한 관심에서 대학 문제 일반으로의 이행을 통해, 우리의 문제로서 노학연대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제기해 보길 기대해 본다.
학생운동으로서의 노학연대
강석남
마무리하기에 앞서 다른 인터뷰에서도 물어본 공통 질문을 드린다. ‘비정규 공대위는 학생운동인가?’라고 묻는다면?
김태현
맞다. 학생운동을 하는 곳이다. 우리는 학생이고 운동적 지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운동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각자의 시민이 각자의 위치에서 목소리를 내고 각자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게 운동이라면, 학생으로서 하는 운동이니까 학생운동이다. 여기에 무슨 대학이 진리의 금자탑이니, 학문의 산실이니 같은 윤리적인 수사들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저는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렇기 때문에 학생운동을 하고 있다.
강석남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김태현
《오늘의 교육》은 교사들이 많이 읽는다고 들었다. 제가 처음 비정규 공대위에 가입했을 때 왜 가입하게 됐는지에 대한 질문에, 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선배 말로는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대학 가면 이것저것 많으니까 좀 해 보라고 말해서 공대위에 들어왔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비단 대학생이 아니더라도 교사의 한마디에 영향을 많이 받지 않나. 교사분들도 어떻게 하면 제자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혹은 대학에 갔을 때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지 고민이 많으실 것 같다. 오늘 제가 소개해 드린 내용들이 제자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실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