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성평등 성교육 도서 논란
성평등·성교육 도서는
‘잼얘’가 될 수 있을까
도서관에서 폐기하느냐, 마느냐의 논쟁을 넘어
몽
canicular67@gmail.com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낙심하지 않길 바란다. 나도 나만의 방을 얻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지만, 언제나 곁에는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는 여성들과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공공 도서관이 있었다.[ref]카르멘 G. 데 라 쿠에바, 최이슬기 옮김(2020), 《엄마,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어》, 을유문화사.[/ref]
스페인 여성 작가의 책 《엄마,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어》의 서문은 인생에서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응원으로 가득하다.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저자에게 중요했던 건 바로 ‘연결감’이다. 앞서 비슷한 고민을 했던 여성들의 경험, 그 경험들이 축적된 지식이자 역사로서 도서관은 ‘나만의 방’을 가질 수 있었던 소중한 토대다. 그런데 마음 편하게 의지하기 어려운 존재, 나를 반기지 않는 장소가 나를 둘러싸고 있다면 어떨까?
전국 공공 도서관 및 학교 도서관에서 성평등·성교육 도서에 대한 폐기와 열람 제한이 진행 중인 현재, 한국 어린이·청소년들의 삶은 오히려 소설 《금서를 빌려드립니다》[ref]데이브 코니스, 한원희 옮김(2022), 《금서를 빌려드립니다》, 우리교육.[/ref]의 주인공 클라라와 닮아 있다. 자신을 ‘책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책벌레인 고등학생 클라라는 교장의 일방적인 지시로 50권의 책이 금서로 지정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교사는 수업 교재에서, 사서는 도서관에서 해당 금서들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 (물론 이 뒤의 이야기는 한국 상황과 무척 다르다.) 클라라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클라라의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응답은 청소년의 ‘권리’를 불허하는 장소 그 자체가 됨으로써 의지할 수 없는 존재가 되겠다는 선언에 가까운 듯하다.
‘보수 학부모단체의 우려’로 포장된 성평등 도서 공격
2023년 5월, 충남·충북 지역을 중심으로 성평등 도서를 공공 도서관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보수 학부모단체의 집요한 민원이 시작되었다.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낯 뜨거운 표현이 대부분으로 아이들의 교육 목적이라고 보기 어려웠다”며 7종의 도서를 36개 공공 도서관에서 열람 제한한 바 있다. 그리고 올해 초에는 경기도교육청이 초·중·고 각급 학교에 민원을 전달하며 ‘선정적’이고 ‘동성애를 조장’하는 도서에 대해 처리 결과를 보고하도록 압박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결과로 517종 2,528권이라는 충격적인 숫자의 도서가 경기도 내 학교 도서관에서 사라졌고, 경기도교육청은 ‘각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한 것’이라며 발뺌하고 있다.[ref]2023년 9월 충남도지사, 충남 교육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대상으로, 2024년 6월에는 경기 교육감을 대상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제기했다.[/ref]
자연스럽게 2020년 여성가족부가 ‘나다움어린이책’(나다움책)을 회수했던 사태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당시에도 나다움책이 ‘동성애를 미화·조장’하고 ‘조기 성애화’를 부추긴다는 보수 개신교 학부모단체의 논리를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이 그대로 받아서 교육부 장관을 질타했고, 다음 날 여성가족부가 나서서 도서 회수를 발표했다. 2021년에는 ‘포르노 같은 도서와 페미니즘 주입 도서’가 학교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며 서울시 교육감의 사퇴를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이후에도 나다움책 선정위원들이 《오늘의 어린이책》 출판을 이어 가고, 개인들이 공공 도서관에 성평등 도서 구입과 비치를 신청하는 캠페인을 펼치며, 지역의 작은 도서관들이 ‘금서 도서전’이나 책 읽기 행사를 여는 등 시민들의 대항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국가 기관의 변화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왜 이런 사태가 반복될까? 많은 이들이 현 사태의 배경에 반동성애를 신조로 하는 보수 개신교 정치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짐작할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핵심에는 보수 개신교 세력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조응하며 차별·혐오를 직접 실행하는 국가권력의 문제가 있다. 낙태죄 폐지 반대와 태아 생명 보호 입법 요구,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및 가족 3법(혼인평등법, 비혼출산지원법, 생활동반자법) 제정 반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최근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흐름까지 한국 사회의 평등, 인권과 반차별의 원칙을 무력화시키려는 보수 개신교의 활동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제도 정치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전선이다.[ref]이에 대한 자세한 문제 제기는 다음 글을 참조. 몽, 〈퇴행하는 성평등, 민주주의〉, ‘공공도서관을 향한 성평등 책 금서 요구,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 2023년 8월 1일.[/ref] 게다가 ‘권리주의(right-ism)’ 혹은 ‘민원주의(complaint-ism)[ref]나윤경, 〈(반)페미니즘 ‘프로’들의 세상에서 페미니스트 페다고지를 실현한다는 것은〉, 제123차 KWDI 양성평등정책포럼 ‘코로나19와 성평등의 미래’, 2020년 12월 16일.[/ref]’로 지목되는 것처럼 최근 교육 영역에서 민주적 절차 혹은 공론장을 통해 인권을 침해하거나 페미니즘 및 동성애에 반대할 ‘권리’를 요구하고 이를 관철시키려는 흐름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 또한 문제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도서 퇴출 사안에 대응하며 느낀 당혹스러움은 바로 성평등 도서가 문제적이라는 보수단체의 ‘학부모’ 정체성이 질문 없이 수용되고 ‘학부모’의 이름으로 제기된 우려들이 다수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는 점이었다. 이 사태의 광범위한 피해자이자 교육·문화의 권리를 주장하기에 취약한 위치인 청소년 당사자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왜 잘 들리지 않을까.
자녀 교육의 선택권이 학부모에게 있다?
“부모는 자기 자녀가 어떤 교육을 받을지를 우선적으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
- 〈세계 인권 선언〉 제26조 제3항
충남에서 성평등 도서 퇴출 요구 민원이 지자체장의 열람 제한 지시라는 가시적인 결과로 나타나자, 보수 학부모단체는 ‘음란 유해 도서 퇴출’을 목표로 전국적인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당시 내건 운동의 근거가 바로 1948년 유엔 총회에서 제정된 〈세계 인권 선언〉의 교육권 조항이다. 이는 가장 대표적인 인권 규범조차도 전유하는 반(反)인권 보수 개신교 세력의 황당한 시도일 뿐일까.
사실 〈세계 인권 선언〉의 제26조 제3항은 나치의 히틀러 청소년단(Hitler Jugend)과 같이 교육을 전체주의적 통치와 사상 교육의 수단으로 활용했던 체제에 대한 비판이 담긴 조항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라는 특정한 역사 속에서 ‘인류의 반성’으로 등장했다.[ref]조효제(2016), 《인권을 찾아서 - 신세대를 위한 세계인권선언》, 한울.[/ref] 부모의 선택권은 강제적 교육 체제의 부당한 폭력, 국가권력의 남용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명시된 것이다. 이 맥락을 소거한 채로 청소년의 실제 현실과 경험과는 동떨어질 뿐만 아니라 청소년의 권리와 동의를 압도하는 학부모의 선택권 주장은 전혀 온당하지 않다.
하지만 현실에서 “인격을 온전하게 발달시키고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더욱 존중할 수 있도록”(제26조 제2항) 하는 청소년의 권리는 학부모의 권리와 늘 경합하고 우위에 고려되기 어려웠다. 미국의 아동 문학 검열을 연구한 이수학은 1960년대 이전 미국에서는 “책임감 있는 어른들(responsible adults)이 어린이에 대해 보호적인 태도(protective attitude)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화”되어 있었고, 이러한 성인의 특권적 지위는 아동 문학에 대한 검열을 ‘사회적 합의’로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조건이 되었다고 분석한다.[ref]이수학(2010), 〈미국 아동문학과 검열〉, 《동화와 번역》, 20.[/ref] 미국은 1960년대 중반 이른바 ‘신사회운동(New social movements)’의 등장으로 여러 사회적 변동과 함께 이러한 우위와 합의가 도전받기 시작했다지만, 한국 사회는 어떨까?
한국 사회에서 특권적이거나 때로는 일방적인 학부모의 권리는 미성숙하다고 여겨지는 청소년의 ‘의사’를 대변·대리·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게다가 성인-아동의 비대칭적인 권력관계 속에서 기성세대인 성인 부모의 보수적 통제와 억압 담론이 ‘사회적 합의’로서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의제가 바로 성과 섹슈얼리티다. 이는 보수 개신교가 그토록 희구하는 젠더 본질주의와 이성애 규범에 기반한 ‘생명 존중’, ‘가족 가치’, ‘정상 가족’ 질서가 (진보냐 보수냐와 무관하게) 다수의 학부모들과 공유하고 있는 인식 기반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ref]신보정은 자신의 연구에서 학부모들이 퀴어 주제를 다루는 아동·청소년 문학을 다양성교육에 도움이 될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실제 아동·청소년이 해당 주제에 관심을 보일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내 자녀에게는 퀴어 도서를 권할 의향도 없고 후기 청소년이나 성인이 되어서 보기를 바라는 등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을 짚은 바 있다. 학부모들에 의한 퀴어 도서 검열은 도서를 자녀 교육의 일환으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바라는 아동의 이미지”를 기준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신보정, 〈국내 아동청소년문학 시스템 주체 퀴어 수용의 통시적 분석 : 출판사, 권장도서목록, 교사, 학부모, 번역가를 중심으로〉, 석사 학위 논문,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영어번역학과)[/ref] 바로 이러한 사회적 조건과 연결고리 속에서 보수 개신교 세력은 ‘학부모단체’라는 집단 정체성을 보다 더 가시화하는 풀뿌리 전략을 선택했고, 성평등 도서를 비치하거나 가르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구심을 키워 가고 있다.
물론 보수 학부모단체가 주장하는 것처럼 성평등 도서가 공교육 내에서 사라진다고 해서 대다수의 학부모가 자녀의 성평등·성교육에 대해 더 나은 선택권을 갖게 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 성 이야기를 미루고 싶은 건 부모 아닐까? ‘아이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었다’가 아니라, ‘말할 준비가 안 되었다’가 정직한 이야기 아닐까?”[ref]〈준비 안 된 건 부모가 아닐까〉, 《시사인》, 681호, 2020년 10월 17일.[/ref] 나다움책 회수 사태를 취재했던 기자의 질문처럼 자녀에게 성평등·성교육을 할 수 있는, 유무형의 지식과 조건을 갖춘 양육자는 그리 많지 않다.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공교육에 가장 크게 의존하며, ‘성교육 과외를 시키는 부모들’ 기사가 화제가 되는 것처럼 일부 계층은 ‘사교육 시장’에 외주를 준다.[ref]김선아, “사교육화되는 청소년 성교육 현장에 여성주의적으로 개입하기”,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 2024년 3월 20일. [/ref]
충남에서 열린 성평등 도서 관련 토론회에서 한 학부모 활동가는 자신에 대해 “‘그래도 잘 자랐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성을 금기시하는 문화 속에서 몸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의식 속에 살았고, 자기 자녀를 생각하기 전에 자기 자신이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와 권리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라고 했다.[ref]김용실, “더 많은 학부모들과 함께 ‘금서’를 읽어 보고 싶습니다”, 〈오마이뉴스〉, 2023년 8월 4일. [/ref] 지금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건 ‘음란 도서’ 퇴출이 아니라 학부모와 청소년이 과거와 현재의 경험을 서로 인용하고, 새로운 지식으로 만들어 내려는 부단한 도전이어야 하지 않을까.
성평등·성교육 ‘도서’만으로 충분한가?
‘스쿨 미투’ 운동,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 해시태그 운동, 초·중·고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은 ① 공교육 내 성평등 교육에 대한 요구이자, ② 성평등하고 민주적인 관계에 기반한 교육 체계에 대한 요구이면서, ③ 동시에 이러한 교육이 사회 전체의 ‘성평등’이라는 뚜렷한 전망 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구이기도 했다. 2015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교육 2030 행동 프레임〉과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여성 및 소녀의 교육권에 관한 일반 권고 36호〉에서 “성평등은 모든 사람의 교육권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라고 강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양육자, 교사, 학교가 성평등을 함께 배우고 서로의 변화를 촉진하지 않으면서, 청소년을 성평등·성교육의 대상으로만 설정하거나 홀로 성평등의 주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성평등 도서가 실제로 ‘모두’와 결부되고 ‘모두’에게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성평등 도서가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던 시기와 상황을 떠올려 봐도 한국 교육 체계에서 성평등·성교육이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성평등 교육은 도서만으로 가능하지 않으며, 지속적이고 특정한 ‘체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 체계 속에서 성평등 도서는 어떻게 ‘혼자 읽기’가 아니라 ‘함께 읽기’의 출발점이자 토대가 될 수 있을까.
어떤 청소년이든 불안과 죄의식 없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성평등 도서를 포함한 지식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궁금하거나 혼란스러운 것이 있을 때 이를 적절하게 안내하며 이끌어 줄 수 있는, 잘 양성되고 훈련된 전문적인 교사, 사서 교사 혹은 양육자의 지원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래서 교사나 사서는 교육과 장서에 대한 ‘지적 자유’를 침해하려는 어떤 내외부적 시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하며, 지속적으로 교육·훈련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청소년에게 자신의 몸이나 자기만의 세계가 아니라 타인의 몸과 세계를 접하고 알아 갈 수 있는 대화와 경험의 장을 열어 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 장은 청소년이 자신의 경험과 가치관에 기반해 기존의 성교육 지식과 방식에 의문을 품고 도전하며 배우는 것이 가능한 공간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권리 기반 접근’을 원칙으로 각 학교와 교육 당국의 포괄적인 지원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성평등 지식의 생산과 교류(상호적인 배움, 도전과 갱신)를 활성화하려는 사회적인 노력 속에서, 청소년을 비롯해 성평등·성교육이 필요한 그 누구도 외롭게 분투하는 독학자로 남겨지지 않을 수 있다.
성평등 도서는 ‘잼얘’가 될 수 있을까?
지난 6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활동가들이 모인 워크숍에서 성평등 도서에 대한 대응 논의를 하던 중, 성평등 도서를 ‘잼얘(재밌는 얘기의 줄임말)’라고 말한 한 동료의 말이 기억에 남아 있다. 도서들이 폐기되고 있는 지금도 누군가에게 그 도서들은 ‘재미있는 이야기’이자 꼭 필요한 이야기, 어떤 순간에는 절박한 이야기일 수 있다.
성평등 도서의 퇴출 사태가 안타까운 건 한국 사회가 반드시 통과해야 할 필수적인 논쟁들은 저 멀리 치워 놓은 채로 도서에 대한 ‘폐기 혹은 비치’ 여부만이 중요한 것처럼 논의되고 있는 현실이다. 나다움책은 종합적으로 아동에게 적절한 수준의 ‘포괄적 성교육’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고 평가되기도 하지만[ref]서지은·양성은(2021), 〈포괄적 성교육 개념에 근거한 나다움어린이책의 젠더감수성 분석〉,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21(8). [/ref], HIV와 AIDS에 대한 낙인, 돌봄, 치료, 지원이나 ‘젠더 기반 폭력’과 같은 핵심적인 주제들을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고(약 18%), 한 도서 내에서 젠더 규범과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일관적이지 않은 내용이 담겨 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는 신체적·정신적 변화와 대처에 대한 내용이 중심이 되고 “사회적 맥락에서 성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은 부족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ref]임여주(2022), 〈어린이·청소년 대상 성교육 도서의 현황 분석 연구〉, 《한국비블리아학회지》 33(1).[/ref] 성평등 도서로 분류되는 도서들조차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더 많은, 더 어린이·청소년의 성 경험 현실과 욕구에 부합하는, 더욱더 확장되고 다채로운 성평등·성교육 도서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실질적인 논쟁들을 회피할 수는 없다.
어린이·청소년을 무성적인 존재로 취급하는 것이 적절한가? 인간의 성적 행위를 언제부터, 어디까지 가르쳐야 하는가? 구강 성교, 항문 섹스는 음란하고 비도덕적인가? 청소년에게 임신·출산 과정과 무관한 성적 즐거움, 성적 권리를 가르치는 것은 비교육적인가? 그렇다면 이것을 어디에서 가르치거나 배워야 하는가? 성에 대한 관념, 성적 권리에 대한 인식에서 나타나는 젠더 차이와 격차는 교육으로 해소할 수 있는가? 청소년이 ‘동의’의 주체로 여겨지지 않는 교육 환경에서 ‘성적 동의’가 가능한가?
나는 이런 질문들을 공론의 장에서 가시화되고 함께 답해 가는 과정이, 바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와 ‘평등하게 존중받고 교육받을 권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답을 찾아 가는 과정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김태흠 충남도지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성교육 도서를 부모 동행하에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으므로 금지나 검열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차별도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것보다는 더 세상을 평등하게 만드는 방법이라 믿는다.
기획 |성평등 성교육 도서 논란
성평등·성교육 도서는
‘잼얘’가 될 수 있을까
도서관에서 폐기하느냐, 마느냐의 논쟁을 넘어
몽
canicular67@gmail.com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낙심하지 않길 바란다. 나도 나만의 방을 얻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지만, 언제나 곁에는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는 여성들과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공공 도서관이 있었다.[ref]카르멘 G. 데 라 쿠에바, 최이슬기 옮김(2020), 《엄마,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어》, 을유문화사.[/ref]
스페인 여성 작가의 책 《엄마,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어》의 서문은 인생에서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응원으로 가득하다.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저자에게 중요했던 건 바로 ‘연결감’이다. 앞서 비슷한 고민을 했던 여성들의 경험, 그 경험들이 축적된 지식이자 역사로서 도서관은 ‘나만의 방’을 가질 수 있었던 소중한 토대다. 그런데 마음 편하게 의지하기 어려운 존재, 나를 반기지 않는 장소가 나를 둘러싸고 있다면 어떨까?
전국 공공 도서관 및 학교 도서관에서 성평등·성교육 도서에 대한 폐기와 열람 제한이 진행 중인 현재, 한국 어린이·청소년들의 삶은 오히려 소설 《금서를 빌려드립니다》[ref]데이브 코니스, 한원희 옮김(2022), 《금서를 빌려드립니다》, 우리교육.[/ref]의 주인공 클라라와 닮아 있다. 자신을 ‘책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책벌레인 고등학생 클라라는 교장의 일방적인 지시로 50권의 책이 금서로 지정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교사는 수업 교재에서, 사서는 도서관에서 해당 금서들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 (물론 이 뒤의 이야기는 한국 상황과 무척 다르다.) 클라라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클라라의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응답은 청소년의 ‘권리’를 불허하는 장소 그 자체가 됨으로써 의지할 수 없는 존재가 되겠다는 선언에 가까운 듯하다.
‘보수 학부모단체의 우려’로 포장된 성평등 도서 공격
2023년 5월, 충남·충북 지역을 중심으로 성평등 도서를 공공 도서관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보수 학부모단체의 집요한 민원이 시작되었다.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낯 뜨거운 표현이 대부분으로 아이들의 교육 목적이라고 보기 어려웠다”며 7종의 도서를 36개 공공 도서관에서 열람 제한한 바 있다. 그리고 올해 초에는 경기도교육청이 초·중·고 각급 학교에 민원을 전달하며 ‘선정적’이고 ‘동성애를 조장’하는 도서에 대해 처리 결과를 보고하도록 압박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결과로 517종 2,528권이라는 충격적인 숫자의 도서가 경기도 내 학교 도서관에서 사라졌고, 경기도교육청은 ‘각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한 것’이라며 발뺌하고 있다.[ref]2023년 9월 충남도지사, 충남 교육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대상으로, 2024년 6월에는 경기 교육감을 대상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제기했다.[/ref]
자연스럽게 2020년 여성가족부가 ‘나다움어린이책’(나다움책)을 회수했던 사태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당시에도 나다움책이 ‘동성애를 미화·조장’하고 ‘조기 성애화’를 부추긴다는 보수 개신교 학부모단체의 논리를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이 그대로 받아서 교육부 장관을 질타했고, 다음 날 여성가족부가 나서서 도서 회수를 발표했다. 2021년에는 ‘포르노 같은 도서와 페미니즘 주입 도서’가 학교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며 서울시 교육감의 사퇴를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이후에도 나다움책 선정위원들이 《오늘의 어린이책》 출판을 이어 가고, 개인들이 공공 도서관에 성평등 도서 구입과 비치를 신청하는 캠페인을 펼치며, 지역의 작은 도서관들이 ‘금서 도서전’이나 책 읽기 행사를 여는 등 시민들의 대항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국가 기관의 변화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왜 이런 사태가 반복될까? 많은 이들이 현 사태의 배경에 반동성애를 신조로 하는 보수 개신교 정치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짐작할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핵심에는 보수 개신교 세력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조응하며 차별·혐오를 직접 실행하는 국가권력의 문제가 있다. 낙태죄 폐지 반대와 태아 생명 보호 입법 요구,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및 가족 3법(혼인평등법, 비혼출산지원법, 생활동반자법) 제정 반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최근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흐름까지 한국 사회의 평등, 인권과 반차별의 원칙을 무력화시키려는 보수 개신교의 활동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제도 정치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전선이다.[ref]이에 대한 자세한 문제 제기는 다음 글을 참조. 몽, 〈퇴행하는 성평등, 민주주의〉, ‘공공도서관을 향한 성평등 책 금서 요구,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 2023년 8월 1일.[/ref] 게다가 ‘권리주의(right-ism)’ 혹은 ‘민원주의(complaint-ism)[ref]나윤경, 〈(반)페미니즘 ‘프로’들의 세상에서 페미니스트 페다고지를 실현한다는 것은〉, 제123차 KWDI 양성평등정책포럼 ‘코로나19와 성평등의 미래’, 2020년 12월 16일.[/ref]’로 지목되는 것처럼 최근 교육 영역에서 민주적 절차 혹은 공론장을 통해 인권을 침해하거나 페미니즘 및 동성애에 반대할 ‘권리’를 요구하고 이를 관철시키려는 흐름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 또한 문제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도서 퇴출 사안에 대응하며 느낀 당혹스러움은 바로 성평등 도서가 문제적이라는 보수단체의 ‘학부모’ 정체성이 질문 없이 수용되고 ‘학부모’의 이름으로 제기된 우려들이 다수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는 점이었다. 이 사태의 광범위한 피해자이자 교육·문화의 권리를 주장하기에 취약한 위치인 청소년 당사자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왜 잘 들리지 않을까.
자녀 교육의 선택권이 학부모에게 있다?
“부모는 자기 자녀가 어떤 교육을 받을지를 우선적으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
- 〈세계 인권 선언〉 제26조 제3항
충남에서 성평등 도서 퇴출 요구 민원이 지자체장의 열람 제한 지시라는 가시적인 결과로 나타나자, 보수 학부모단체는 ‘음란 유해 도서 퇴출’을 목표로 전국적인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당시 내건 운동의 근거가 바로 1948년 유엔 총회에서 제정된 〈세계 인권 선언〉의 교육권 조항이다. 이는 가장 대표적인 인권 규범조차도 전유하는 반(反)인권 보수 개신교 세력의 황당한 시도일 뿐일까.
사실 〈세계 인권 선언〉의 제26조 제3항은 나치의 히틀러 청소년단(Hitler Jugend)과 같이 교육을 전체주의적 통치와 사상 교육의 수단으로 활용했던 체제에 대한 비판이 담긴 조항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라는 특정한 역사 속에서 ‘인류의 반성’으로 등장했다.[ref]조효제(2016), 《인권을 찾아서 - 신세대를 위한 세계인권선언》, 한울.[/ref] 부모의 선택권은 강제적 교육 체제의 부당한 폭력, 국가권력의 남용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명시된 것이다. 이 맥락을 소거한 채로 청소년의 실제 현실과 경험과는 동떨어질 뿐만 아니라 청소년의 권리와 동의를 압도하는 학부모의 선택권 주장은 전혀 온당하지 않다.
하지만 현실에서 “인격을 온전하게 발달시키고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더욱 존중할 수 있도록”(제26조 제2항) 하는 청소년의 권리는 학부모의 권리와 늘 경합하고 우위에 고려되기 어려웠다. 미국의 아동 문학 검열을 연구한 이수학은 1960년대 이전 미국에서는 “책임감 있는 어른들(responsible adults)이 어린이에 대해 보호적인 태도(protective attitude)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화”되어 있었고, 이러한 성인의 특권적 지위는 아동 문학에 대한 검열을 ‘사회적 합의’로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조건이 되었다고 분석한다.[ref]이수학(2010), 〈미국 아동문학과 검열〉, 《동화와 번역》, 20.[/ref] 미국은 1960년대 중반 이른바 ‘신사회운동(New social movements)’의 등장으로 여러 사회적 변동과 함께 이러한 우위와 합의가 도전받기 시작했다지만, 한국 사회는 어떨까?
한국 사회에서 특권적이거나 때로는 일방적인 학부모의 권리는 미성숙하다고 여겨지는 청소년의 ‘의사’를 대변·대리·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게다가 성인-아동의 비대칭적인 권력관계 속에서 기성세대인 성인 부모의 보수적 통제와 억압 담론이 ‘사회적 합의’로서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의제가 바로 성과 섹슈얼리티다. 이는 보수 개신교가 그토록 희구하는 젠더 본질주의와 이성애 규범에 기반한 ‘생명 존중’, ‘가족 가치’, ‘정상 가족’ 질서가 (진보냐 보수냐와 무관하게) 다수의 학부모들과 공유하고 있는 인식 기반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ref]신보정은 자신의 연구에서 학부모들이 퀴어 주제를 다루는 아동·청소년 문학을 다양성교육에 도움이 될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실제 아동·청소년이 해당 주제에 관심을 보일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내 자녀에게는 퀴어 도서를 권할 의향도 없고 후기 청소년이나 성인이 되어서 보기를 바라는 등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을 짚은 바 있다. 학부모들에 의한 퀴어 도서 검열은 도서를 자녀 교육의 일환으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바라는 아동의 이미지”를 기준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신보정, 〈국내 아동청소년문학 시스템 주체 퀴어 수용의 통시적 분석 : 출판사, 권장도서목록, 교사, 학부모, 번역가를 중심으로〉, 석사 학위 논문,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영어번역학과)[/ref] 바로 이러한 사회적 조건과 연결고리 속에서 보수 개신교 세력은 ‘학부모단체’라는 집단 정체성을 보다 더 가시화하는 풀뿌리 전략을 선택했고, 성평등 도서를 비치하거나 가르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구심을 키워 가고 있다.
물론 보수 학부모단체가 주장하는 것처럼 성평등 도서가 공교육 내에서 사라진다고 해서 대다수의 학부모가 자녀의 성평등·성교육에 대해 더 나은 선택권을 갖게 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 성 이야기를 미루고 싶은 건 부모 아닐까? ‘아이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었다’가 아니라, ‘말할 준비가 안 되었다’가 정직한 이야기 아닐까?”[ref]〈준비 안 된 건 부모가 아닐까〉, 《시사인》, 681호, 2020년 10월 17일.[/ref] 나다움책 회수 사태를 취재했던 기자의 질문처럼 자녀에게 성평등·성교육을 할 수 있는, 유무형의 지식과 조건을 갖춘 양육자는 그리 많지 않다.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공교육에 가장 크게 의존하며, ‘성교육 과외를 시키는 부모들’ 기사가 화제가 되는 것처럼 일부 계층은 ‘사교육 시장’에 외주를 준다.[ref]김선아, “사교육화되는 청소년 성교육 현장에 여성주의적으로 개입하기”,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 2024년 3월 20일. [/ref]
충남에서 열린 성평등 도서 관련 토론회에서 한 학부모 활동가는 자신에 대해 “‘그래도 잘 자랐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성을 금기시하는 문화 속에서 몸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의식 속에 살았고, 자기 자녀를 생각하기 전에 자기 자신이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와 권리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라고 했다.[ref]김용실, “더 많은 학부모들과 함께 ‘금서’를 읽어 보고 싶습니다”, 〈오마이뉴스〉, 2023년 8월 4일. [/ref] 지금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건 ‘음란 도서’ 퇴출이 아니라 학부모와 청소년이 과거와 현재의 경험을 서로 인용하고, 새로운 지식으로 만들어 내려는 부단한 도전이어야 하지 않을까.
성평등·성교육 ‘도서’만으로 충분한가?
‘스쿨 미투’ 운동,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 해시태그 운동, 초·중·고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은 ① 공교육 내 성평등 교육에 대한 요구이자, ② 성평등하고 민주적인 관계에 기반한 교육 체계에 대한 요구이면서, ③ 동시에 이러한 교육이 사회 전체의 ‘성평등’이라는 뚜렷한 전망 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구이기도 했다. 2015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교육 2030 행동 프레임〉과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여성 및 소녀의 교육권에 관한 일반 권고 36호〉에서 “성평등은 모든 사람의 교육권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라고 강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양육자, 교사, 학교가 성평등을 함께 배우고 서로의 변화를 촉진하지 않으면서, 청소년을 성평등·성교육의 대상으로만 설정하거나 홀로 성평등의 주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성평등 도서가 실제로 ‘모두’와 결부되고 ‘모두’에게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성평등 도서가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던 시기와 상황을 떠올려 봐도 한국 교육 체계에서 성평등·성교육이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성평등 교육은 도서만으로 가능하지 않으며, 지속적이고 특정한 ‘체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 체계 속에서 성평등 도서는 어떻게 ‘혼자 읽기’가 아니라 ‘함께 읽기’의 출발점이자 토대가 될 수 있을까.
어떤 청소년이든 불안과 죄의식 없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성평등 도서를 포함한 지식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궁금하거나 혼란스러운 것이 있을 때 이를 적절하게 안내하며 이끌어 줄 수 있는, 잘 양성되고 훈련된 전문적인 교사, 사서 교사 혹은 양육자의 지원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래서 교사나 사서는 교육과 장서에 대한 ‘지적 자유’를 침해하려는 어떤 내외부적 시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하며, 지속적으로 교육·훈련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청소년에게 자신의 몸이나 자기만의 세계가 아니라 타인의 몸과 세계를 접하고 알아 갈 수 있는 대화와 경험의 장을 열어 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 장은 청소년이 자신의 경험과 가치관에 기반해 기존의 성교육 지식과 방식에 의문을 품고 도전하며 배우는 것이 가능한 공간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권리 기반 접근’을 원칙으로 각 학교와 교육 당국의 포괄적인 지원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성평등 지식의 생산과 교류(상호적인 배움, 도전과 갱신)를 활성화하려는 사회적인 노력 속에서, 청소년을 비롯해 성평등·성교육이 필요한 그 누구도 외롭게 분투하는 독학자로 남겨지지 않을 수 있다.
성평등 도서는 ‘잼얘’가 될 수 있을까?
지난 6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활동가들이 모인 워크숍에서 성평등 도서에 대한 대응 논의를 하던 중, 성평등 도서를 ‘잼얘(재밌는 얘기의 줄임말)’라고 말한 한 동료의 말이 기억에 남아 있다. 도서들이 폐기되고 있는 지금도 누군가에게 그 도서들은 ‘재미있는 이야기’이자 꼭 필요한 이야기, 어떤 순간에는 절박한 이야기일 수 있다.
성평등 도서의 퇴출 사태가 안타까운 건 한국 사회가 반드시 통과해야 할 필수적인 논쟁들은 저 멀리 치워 놓은 채로 도서에 대한 ‘폐기 혹은 비치’ 여부만이 중요한 것처럼 논의되고 있는 현실이다. 나다움책은 종합적으로 아동에게 적절한 수준의 ‘포괄적 성교육’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고 평가되기도 하지만[ref]서지은·양성은(2021), 〈포괄적 성교육 개념에 근거한 나다움어린이책의 젠더감수성 분석〉,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21(8). [/ref], HIV와 AIDS에 대한 낙인, 돌봄, 치료, 지원이나 ‘젠더 기반 폭력’과 같은 핵심적인 주제들을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고(약 18%), 한 도서 내에서 젠더 규범과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일관적이지 않은 내용이 담겨 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는 신체적·정신적 변화와 대처에 대한 내용이 중심이 되고 “사회적 맥락에서 성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은 부족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ref]임여주(2022), 〈어린이·청소년 대상 성교육 도서의 현황 분석 연구〉, 《한국비블리아학회지》 33(1).[/ref] 성평등 도서로 분류되는 도서들조차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더 많은, 더 어린이·청소년의 성 경험 현실과 욕구에 부합하는, 더욱더 확장되고 다채로운 성평등·성교육 도서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실질적인 논쟁들을 회피할 수는 없다.
어린이·청소년을 무성적인 존재로 취급하는 것이 적절한가? 인간의 성적 행위를 언제부터, 어디까지 가르쳐야 하는가? 구강 성교, 항문 섹스는 음란하고 비도덕적인가? 청소년에게 임신·출산 과정과 무관한 성적 즐거움, 성적 권리를 가르치는 것은 비교육적인가? 그렇다면 이것을 어디에서 가르치거나 배워야 하는가? 성에 대한 관념, 성적 권리에 대한 인식에서 나타나는 젠더 차이와 격차는 교육으로 해소할 수 있는가? 청소년이 ‘동의’의 주체로 여겨지지 않는 교육 환경에서 ‘성적 동의’가 가능한가?
나는 이런 질문들을 공론의 장에서 가시화되고 함께 답해 가는 과정이, 바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와 ‘평등하게 존중받고 교육받을 권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답을 찾아 가는 과정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김태흠 충남도지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성교육 도서를 부모 동행하에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으므로 금지나 검열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차별도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것보다는 더 세상을 평등하게 만드는 방법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