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서이초 사건 1년, 우리 사회에 남긴 것들에 대한 성찰
보호자와 소통하며 교육 활동을 보호하려는 학교의 고민
학교-보호자 간 소통 체제 구축과 운영 사례[ref]이 글은 곧 출간 예정인 《교장 직무 가이드라인》(가제)에 수록된 원고를 축약한 것이다.[/ref]
전인숙
bori0915@sen.go.kr
서울율현초 교장
민원 대응 시스템[ref]우리 학교에서는 ‘민원 대응 시스템’이라는 용어가 보호자를 민원인으로 규정하고 교사와 보호자 간 소통과 협력적 관계 형성에 방해가 될 수 있으며 보호자의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교사들의 의견을 모아 최종적으로 ‘학교-보호자 간 소통 체제’로 이름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모든 학교와 공문서에서 통상적으로 쓰이는 민원 대응 시스템이라는 용어로 쓴다.[/ref] 구축의 필요성
2023년 일어난 서이초 교사의 죽음은 한 개인의 일이 아니다. 같은 시기 우리 학교에서도 교사-학생 간 신뢰와 존중이 깨지고 학급 붕괴의 조짐이 보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다중 지원 체제로 담임과 학급을 지원하려고 애썼지만 안타깝게도 담임 교사가 잠시 교단을 떠났다. 이런 일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요즘 학교에서 흔히 나타난다. 이것은 경쟁 위주의 능력주의와 입시, 학벌주의, 학교폭력 사안 처리의 법화, 보호자와 학생의 학교와 교사에 대한 신뢰 약화 등 그간 축적된 우리 사회와 교육의 병리가 드러난 것으로, 우리 사회 전체에 그 책임이 있다. 그리고 교육의 3주체인 교사·학생·보호자가 그 핵심에 있다.
코로나19 시기를 통과하며 학생 간 학습 격차와 고립감 심화, 관계 단절 등이 낳은 부작용과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학교마다 시급한 과제이다. 그 기저에는 ‘내 아이가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까?’,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까?’ 등 보호자의 불안 심리가 깊게 작용하고 있다. 10여 년 전 서울형 혁신학교가 문을 열면서 ‘보호자 자치’를 운영 과제로 삼고 보호자의 배움과 성장, 공동체성 키우기를 위해 보호자 연수와 교육, 자치 동아리 활동, 학교교육에 대한 기여와 참여, 보호자회 활성화에 애써 왔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이런 실천들이 멈추면서 보호자들의 내 아이 중심주의와 불안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상담가들은 학생의 행동 변화를 이끌려면 보호자 상담이 우선되어야 하며 이것이 학생 상담의 출발이라고들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보호자의 교육, 학교, 배움에 대한 인식과 철학은 학교가 학생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 출발점이자 토대이다. 그것은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하는 이 시대에, 학교가 교과 지식을 넘어 정의나 인권을 더 가르치는 사회정의교육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ref]성열관 외(2019), 《학교는 어떤 공동체인가?》, 살림터.[/ref]더더욱 그렇다. 보호자들이 ‘내 아이 중심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사회정의교육이 아이의 삶으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기 교사들은 비대면 원격 수업을 진행하는 가운데 학생·보호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기 위해 하이톡, 하이클래스, 티처콜, 오픈 채팅방, 밴드, 카카오톡, 말톡 등 다양한 SNS를 이용했다. 그 이후 즉각적 소통이 자연스럽게 교사와 보호자 간의 소통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즉각적 소통은 편의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소통 방식은 아이가 교사와 직접 소통해야 할 것, 아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것, 가정에서 교육할 것, 교사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 인권을 침해하는 것 등의 경계 구분이 없는 무수한 민원의 온상이 되었다. 게다가 보호자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불리한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SNS를 통해 교사에게 질문하고 무리한 요구를 하곤 했다. 그러는 사이 보호자는 학교의 ‘민원인’이 되었다.
그렇다면 교사가 간과한 것은 없을까? 수업 상황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고 편집하여 보호자와의 소통 채널에 업로드하기, 매일 알림장 올리기 등에 시간을 할애하는 교사들이 늘었다. 그것이 시대가 요구하는 교사상인 것처럼. 보호자들은 이런 교사를 수요자 중심의 교육자, 좋은 담임으로 여기면서 그렇지 않은 교사와 비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학생이 배움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보호자가 학생을 대신해서 교사와 소통하고 학생의 갈등 해결자로 나서는 상황이 되었다. 그야말로 보호자가 학교를 다니는 것과 같은 모양새다. 교사들은 이런 보호자를 ‘문제 보호자’라고 성토하면서도 한편으로 교사들의 이런 소통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교사를 시대에 뒤떨어진 ‘꼰대 교사’로 여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물론 SNS를 통한 소통에는 순기능도 있지만, 교사들이 수업 연구와 나눔 그리고 성찰, 학생 관찰과 면담, 보호자 면담, 교사 간 연대와 협의 등을 교사 본연의 일로 인식하지 않고, 여기에 더 많은 시간과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간과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교사와 보호자가 학생의 성장과 발달을 지원하기 위해 일관된 철학과 방법으로 교육해야 학생이 혼란스럽지 않게 배우고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교사와 보호자가 협력적으로 학생을 지원하는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지만 우리에게는 그와 관련한 실천이 빈약하다. 보호자도 교사도 그런 관계 맺음의 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그런 학교(관리자)와 동료 교사를 만나기도 어렵다. 그런 점에서 우리 학교에서 교사와 보호자 간 소통 방식을 구축하기 위해 도전하고 실천한 사례가 각 학교의 생태에 맞는 소통 체제를 구축하는 데 디딤돌이 되었으면 한다.
교사 혼자 민원 감당을 하지 않기 위해
민원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논의에 들어가며, 먼저 학교의 생태 특성을 파악해 보았다. 학교마다 다른 방식과 내용으로 민원 대응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는 것은 학교마다 생태와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교장으로 있는 서울율현초등학교의 경우 서울형 혁신학교를 10년 차 운영 중인데, 공동 수업 연구와 공동 생활교육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과 참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보호자들의 학교와 아이에 대한 관심이 높으나 코로나19 이후 보호자회 참여도는 저조해졌다. 연 4회 보호자 간담회를 갖고 있는데 협력과 연대의 교육 관련 주제에 대한 협의보다는 주로 입시와 능력 관련 교육을 학교에 요구하기도 한다.
대응 체계 구축을 위한 TF는 학년별 교사 1인과 교장감으로 구성하였다. ‘9.4 공교육 멈춤의 날’을 재량휴업일로 지정하는 논의를 했으나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보호자 위원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교사 개인의 역량 문제 또는 심리적인 요인으로 보는 보호자들을 끝내 설득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는 학교운영위원회 심의에서 가결되어 재량휴업일로 지정하였다. 그런 분위기에서 1차 TF 회의를 가졌다.
1차 회의는 교감이 주관하였는데 회의 전 민원 대응 시스템 구축의 목적을 충분히 이야기하는 것에 집중하자고 교장과 사전에 협의하였다. 그런데 교사들은 회의 초반부터 구체적인 대응 방법을 중심으로 논의하고 학교 차원에서 대응책을 마련하고 결정해 주기를 요구하기도 했다. 회의를 통해 교사들이 홀로 감당한 민원이 적지 않다는 점, 보호자와의 소통을 줄이는 것은 위험하다는 점을 공유했다. 그래서 2차 회의 전에 전체 교사 회의에서 교사들이 받은 민원(교권 침해 사례)을 꺼내 놓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1차 TF 회의에서는 구체적으로는 ▲ 하이클래스, 하이톡, 티처콜의 문자, 오픈 채팅방 등 개별 연락 수단을 학교 차원에서 전면 폐지(개별 교사가 개설한 SNS를 학교 차원에서 전면 폐지하는 것에 대한 의견 수렴 필요), ▲ 교실 직통 번호 통제, ▲ 보호자 상담 주간 운영의 목적 명확하게 하기, ▲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을 최대한 활용(출결, 질문, 상담 예약 등), ▲ 보호자에게 소통 방식 변경에 따른 적응 기간 필요함(소통을 막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사전에 학교 설명회, 간담회 등을 통해 이해시키기) 등을 결정했다.
교권 침해 경험 나누기와 사례 파악
전체 교사 협의회에서 교사들이 보호자로부터 받은 민원은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것이 교사의 자존감, 자부심, 교육력을 떨어뜨린 사례를 나누는 교사 마음 열기 시간을 가졌다. 보호자를 성토하는 자리가 아니라 담임으로서 혼자 감당해 온 것들을 동료에게 꺼내 놓음으로써 스스로와 서로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교사마다 다양한 대응 방식을 공유하며 보호자와 지속적으로 소통한 경험을 통해 자기를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보호자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반응도 나왔다. 부담없이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도록 ‘진진가’ 놀이로 진행했다. 울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음 열기 시간입니다~ 선생님의 교직 생활에서 교권을 침해받은 적이 있나요? 저는 신규 때 보호자가 “아침 활동 시간에 한자를 해 주세요”라고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심각한 교권 침해였습니다. 아래 세 가지는 제가 겪은 교권 침해 사례입니다. 그런데 (동료 교사가 겪은 일도 해당됨) 세 가지 내용 중 2개는 사실이고, 1개는 거짓(100% 창작)이랍니다. 무엇이 거짓일까요? 맞혀 보는 활동입니다.
1. 수업 시간에 학생이 “××”라고 욕하고 교실을 나감
2. 전학 간 학생의 보호자가 국민신문고에 허위 사실로 민원을 넣음
3. 학생 몇 명이 수업 시간에 수업을 의도적으로 방해함(“왜요?”, “아, 재미없어!” 등)
그런 뒤 TF에서는 보호자의 교권 침해에 관해 다룬 언론 기사를 함께 읽고 우리 학교 교사들의 교권 침해 사례를 모아 정리하였다. “급식 지도 시 학생에게 채소를 먹어 보도록 권유한 담임에게 학부모가 항의성 민원”, “준비물을 챙기지 않은 아이를 호명한 담임에게 보호자가 “왜 아이 기를 죽이냐”며 항의함”, “학생의 문제 행동을 말씀드리니 작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올해는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미워해서 그런 거’라며 담임을 탓함”, “A 학생과 B 학생이 친하지 않으니 교실 자리를 멀리 떨어뜨려 달라는 요구를 함” 등 많은 사례들이 나왔다. 교무실로 자주 오는 민원, 방과후교실 관련 민원, 통합교육 관련 민원, 보건실 관련 민원 등 영역도 분류해 봤다.
우리가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은 보호자에 대한 반감을 키우는 것을 경계하고, 보호자와 면담할 때 설명하고 설득하고 보호자와 공유할 정보를 교사가 알고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 마음이 모아졌다. 학교 관리자가 보호자 면담을 해야 하는 상황과 담임 교사의 고충과 지원 내용 등을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교사·학생의 교육권 보호와 보호자 소통, 둘 다 챙기자
2차 TF 회의는 교장이 이끌었다. 교장이 민원 대응의 중심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 표명은 교사들에게 ‘학교 구성원이 함께하는 것’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했다. 민원 대응 체제 구축의 목적은 ① 악성 민원으로부터 교사의 인권과 교육권 보호, ② 학교장의 책무성 강화 : 악성 민원 대응과 교사 보호 역할, ③ 수업 방해 방지 및 학생의 학습권 보호, ④ 보호자와 소통을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 소통을 할 방법 마련 등으로 정리되었다.
민원 대응 체제의 방향은 ① 민원 창구 단일화, ② 교사가 업무 중(출근 내내) 교실로 오는 전화를 직접 맞닥뜨리지 않게 하기, ③ 학교장 중심의 민원 대응 체제[교장감, 행정실장, 생활부장(학교폭력 사안)] ④ 보호자와 소통 방법 모색 : 연 4회 보호자 간담회, 학교(학년) 설명회, 수업 공개, 상담, 학급별 소통망, 월 1회 소식지 등으로 정리하였다.
두 차례의 TF 회의는 학년별 협의를 바탕으로 하였다. 학년에 따라서는 TF가 학년 협의를 견인하기도 했다. 2023년까지는 담임 교사가 개별로 이용하는 SNS의 운영 여부를 담임이 결정하고 보호자와 소통하기로 결정했다.[ref]담임이 운영하는 SNS의 유지 및 폐지는 담임이 결정하기로 했다. 다만 수업 사진 등 과도한 정보 제공보다는 수업과 생활교육에 집중한다. 학급에 따라 활용 목적이 다르고 순기능도 있음을 고려했다.[/ref] 2024년부터는 교사 개별적으로 SNS를 개설하지 않고 학교 공식 소통망인 e알리미를 통해 소통하기로 했다. 배움의 주체는 보호자가 아니라 학생이라는 점을 중심에 두었다.
민원 대응 체제를 관리자와 부장이 기획하고 교사들에게 통보하는 방식이 아니라, 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전체 협의를 하고 다시 의견을 듣고 협의하는 과정을 갖는 것, 그 자체가 교사들에게는 보호자의 민원에 대한 감각과 대응력 또는 교사가 보호자와 소통하는 목적과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이 되었다. 어떤 교사는 학교에서 정해서 알려 달라고 하기도 했지만, 민주주의는 지난한 협의와 숙고의 과정이라는 것을 교사들이 경험하기를 바랐다. 그래야 주인의식도 생길 것이고 그것이 공동체성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할 때 실천과 참여로 이어진다.
민원 대응 체제 운영의 실제
2023년 11월부터 e알리미로 공식적인 학교-보호자 간 소통을 하고 있다.[ref]서울형 혁신학교 서울강명초에서 운영하고 있는 e알리미를 통한 소통 방식을 토대로 우리 학교에 맞게 수정 보완하였다.[/ref] 보호자는 교장과 담임, 두 차원으로 소통이 가능하다. 교장으로 민원 창구를 단일화하는 것보다 담임에게 문의할 것과 교장과 소통할 것을 분리하자는 교사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SNS 대신 서면으로 제출하게 하여 보호자도 교사도 숙고할 시간을 갖고 상대를 존중하는 언어를 사용하도록 권하였다. 이것은 교사도 보호자도 조금 불편한 방식이지만, 편의성을 좇는 대신 교사가 학생 교육에 집중하고, 학생과 교사가 직접 소통하는 기회를 늘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가운데, 학생의 주체성을 키우고 보호자는 교사를 신뢰하고 학생을 기다려 주며 지원하는 역할을 하자는 구성원들의 약속이자 실천 의지다. 소통 방식에 대한 가정통신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교원과 보호자 간 소통은 e알리미, 가정통신문, 학급 알림장, 학급별 소통망(담임 권한).
2) 학생 및 교육 활동 관련 긴급한 소통은 교무실과 행정실로 연락.
(각 교실로 전화가 연결되지 않으며 학교와의 통화 내용은 모두 녹음됩니다.[ref]통화 시 안내 음성은 이렇다. “안녕하십니까, 서울율현초등학교입니다. 교육 활동과 교직원 보호를 위해 발신 번호가 표시되며 통화 내용이 녹음됩니다. 교실로 전화 연결이 되지 않으며 궁금한 점은 교무실로 문의해 주십시오.”[/ref] 학생의 학년, 반, 이름, 보호자명을 밝힌 후 문의해 주십시오.)
3) 담임과의 소통 : e알리미를 통해 결석계와 체험학습 신청서/보고서 제출, 상담 및 민원 신청.
4) 결석계(조퇴, 지각, 결석)를 신청하면 담임 확인 후 보호자에게 알림이 전송됨.
5) 체험학습 신청서는 체험 시작일 1일 전, 오후 2시까지 제출. 담임 확인 및 승인함.
6) 상담 신청(면담, 제안, 질의 등)은 담임 접수 후 담임이 서면, 전화, 면담 등으로 답변. 사안에 따라 학교장 차원에서 답변 또는 면담이 이루어짐.
7) 긴급한 결석 통보 및 긴급한 담임과의 소통이 필요한 경우 교무실에서 접수 답변함.
8) 학교 관리자와 소통 방법 : 〈e알리미-서울율현초등학교-소리함〉으로 제출 → 학교장 접수 후 답변. 필요 시 대면 면담.
2개월 남짓 적용 후 의견을 들어 보니, 교사들은 수업 활동 사진 찍기, 보호자 민원 응대 등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수업 중 울리는 전화로 수업을 방해받지 않으며, 서면으로 제출한 상담이나 문의에 대해 답변을 차근히 준비할 수 있어서 안전하다고 했다.
교육 활동 보호를 위한 학교공동체의 노력
민원 대응 체제 구축은 보호자의 학교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이해와 협력을 위한 공동체의 노력 중 일부일 뿐이다. 학교 전체 그리고 TF에서 우리는 보호자와 소통을 줄이는 방식이 아니라 더 안전하고 상호 존중하는 소통을 넓혀야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보호자 상담과 공개 수업은 보호자가 아이의 학교생활을 이해하고 협력하게 하는 방법이므로, 형제가 있는 보호자의 의견을 반영하여 학년별로 다른 요일에 진행하는 방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공동생활교육[ref]교사가 자기 학급에 국한하지 않고 학년 또는 학교 전체 단위로 ‘모든 아이에게 관심 갖기’를 하는 것이다. 교사가 먼저 인사하고 말을 걸고 눈 맞추고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은 지나치지 않고 누구든 교육하는 것이다. 학생 관찰도 학년 단위로 함께 하고 관리자의 지원이 필요할 시 교장과 교감, 상담사가 학생의 수업과 행동을 관찰하고 보호자 면담을 함께 한다. 교사들은 공동 생활교육 참여도와 성취감이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이는 교사들의 연대를 강화하고 학교를 공동체로 만드는 기능도 한다. 교장의 등교 맞이도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진다.[/ref]도 강화하기로 했다. SNS 대신 다른 소통 방식을 찾는 과정에서 초등학교에서 알림장을 쓰는 목적과 필요성에 대해 나누었다. 아이가 알림장을 쓰는 대신 수업에서 집중하며 기억하도록 반복 강조하여 외우는 것 역시 좋은 학습이라는 제안도 나왔다.
학생과 보호자의 자치 활성화를 위해 우선 학생들이 자기 생각과 의견을 갖고 제안하는 기회를 늘리는 방향에서 교장 수업을 진행하며 대의원제 운영도 고려하기로 했다. 보호자회 활동이 학생 교육과 연계되는 부분을 더 확대하려고 한다. 교사들이 TF를 통해 보호자와의 소통 방식의 얼개를 짜는 시기에 보호자 간담회를 가져 보호자의 요구를 들었고, 이를 민원 대응 체제를 구축하는 데 반영하였다.
학교 밖 관리자 학습공동체의 도움과 이웃 학교로의 확산
학교 밖에서는 혁신학교 내부형 공모 교장 중심으로 구성된 학습공동체에서 민원 대응 시스템 구축과 관리자 역할에 대해 정기적으로 협의하고 경험을 나누었다. 다들 민원 대응 체제 구축에서 교장이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고 그렇게 실천하고 있었다. 각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을 지원하는 방식을 공유하고, 보호자 면담에 있어서 교장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 학교 교육과정 운영 전반을 교사들과 협의하고 실천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우리 학교가 민원 대응 체제를 e알리미 방식으로 구축하는 데에는 이런 체제를 운영해 오고 있던 다른 혁신학교의 경험과 사례가 큰 도움이 되었다. 이 학습공동체에 참석하는 교장 중에는 학교에 심각한 민원 사안이 거의 없어 교사도 보호자도 별도의 소통 체제 마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경우도 있다.
지구별 교장 협의회에서 각 학교 민원 대응 체제 구축 상황에 대해 넌지시 얘기를 꺼냈을 때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접했다. 우리 학교 사례를 이야기하며 교사협의회를 통해 소통 체제를 마련했는데 어렵더라도 관리자가 민원 대응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 협의 과정에서 교사들도 보호자와 협력적 관계 구축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는 점,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시도해 보자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우리 학교의 e알리미를 통한 소통 체제를 공유했다.
얼마 후 이웃 학교에서 우리 학교 민원 대응 체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며 학교 관리자가 방문하겠다고 한다. 민원 대응 체제가 ‘진공의 방식’으로 이식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보호자와의 소통을 줄이는 방식으로 작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학교를 안전한 배움의 공동체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자 구성원들의 민원에 대한 인식을 점검하고 성찰하는 작업이라는 점도 짚으려고 한다. 이를 통해 교사가 학생 교육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전념하고 보호자는 진정한 협력자로 교사와 함께 학생 발달을 돕는 역할로 제자리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기획 | 서이초 사건 1년, 우리 사회에 남긴 것들에 대한 성찰
보호자와 소통하며 교육 활동을 보호하려는 학교의 고민
학교-보호자 간 소통 체제 구축과 운영 사례[ref]이 글은 곧 출간 예정인 《교장 직무 가이드라인》(가제)에 수록된 원고를 축약한 것이다.[/ref]
전인숙
bori0915@sen.go.kr
서울율현초 교장
민원 대응 시스템[ref]우리 학교에서는 ‘민원 대응 시스템’이라는 용어가 보호자를 민원인으로 규정하고 교사와 보호자 간 소통과 협력적 관계 형성에 방해가 될 수 있으며 보호자의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교사들의 의견을 모아 최종적으로 ‘학교-보호자 간 소통 체제’로 이름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모든 학교와 공문서에서 통상적으로 쓰이는 민원 대응 시스템이라는 용어로 쓴다.[/ref] 구축의 필요성
2023년 일어난 서이초 교사의 죽음은 한 개인의 일이 아니다. 같은 시기 우리 학교에서도 교사-학생 간 신뢰와 존중이 깨지고 학급 붕괴의 조짐이 보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다중 지원 체제로 담임과 학급을 지원하려고 애썼지만 안타깝게도 담임 교사가 잠시 교단을 떠났다. 이런 일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요즘 학교에서 흔히 나타난다. 이것은 경쟁 위주의 능력주의와 입시, 학벌주의, 학교폭력 사안 처리의 법화, 보호자와 학생의 학교와 교사에 대한 신뢰 약화 등 그간 축적된 우리 사회와 교육의 병리가 드러난 것으로, 우리 사회 전체에 그 책임이 있다. 그리고 교육의 3주체인 교사·학생·보호자가 그 핵심에 있다.
코로나19 시기를 통과하며 학생 간 학습 격차와 고립감 심화, 관계 단절 등이 낳은 부작용과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학교마다 시급한 과제이다. 그 기저에는 ‘내 아이가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까?’,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까?’ 등 보호자의 불안 심리가 깊게 작용하고 있다. 10여 년 전 서울형 혁신학교가 문을 열면서 ‘보호자 자치’를 운영 과제로 삼고 보호자의 배움과 성장, 공동체성 키우기를 위해 보호자 연수와 교육, 자치 동아리 활동, 학교교육에 대한 기여와 참여, 보호자회 활성화에 애써 왔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이런 실천들이 멈추면서 보호자들의 내 아이 중심주의와 불안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상담가들은 학생의 행동 변화를 이끌려면 보호자 상담이 우선되어야 하며 이것이 학생 상담의 출발이라고들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보호자의 교육, 학교, 배움에 대한 인식과 철학은 학교가 학생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 출발점이자 토대이다. 그것은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하는 이 시대에, 학교가 교과 지식을 넘어 정의나 인권을 더 가르치는 사회정의교육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ref]성열관 외(2019), 《학교는 어떤 공동체인가?》, 살림터.[/ref]더더욱 그렇다. 보호자들이 ‘내 아이 중심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사회정의교육이 아이의 삶으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기 교사들은 비대면 원격 수업을 진행하는 가운데 학생·보호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기 위해 하이톡, 하이클래스, 티처콜, 오픈 채팅방, 밴드, 카카오톡, 말톡 등 다양한 SNS를 이용했다. 그 이후 즉각적 소통이 자연스럽게 교사와 보호자 간의 소통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즉각적 소통은 편의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소통 방식은 아이가 교사와 직접 소통해야 할 것, 아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것, 가정에서 교육할 것, 교사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 인권을 침해하는 것 등의 경계 구분이 없는 무수한 민원의 온상이 되었다. 게다가 보호자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불리한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SNS를 통해 교사에게 질문하고 무리한 요구를 하곤 했다. 그러는 사이 보호자는 학교의 ‘민원인’이 되었다.
그렇다면 교사가 간과한 것은 없을까? 수업 상황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고 편집하여 보호자와의 소통 채널에 업로드하기, 매일 알림장 올리기 등에 시간을 할애하는 교사들이 늘었다. 그것이 시대가 요구하는 교사상인 것처럼. 보호자들은 이런 교사를 수요자 중심의 교육자, 좋은 담임으로 여기면서 그렇지 않은 교사와 비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학생이 배움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보호자가 학생을 대신해서 교사와 소통하고 학생의 갈등 해결자로 나서는 상황이 되었다. 그야말로 보호자가 학교를 다니는 것과 같은 모양새다. 교사들은 이런 보호자를 ‘문제 보호자’라고 성토하면서도 한편으로 교사들의 이런 소통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교사를 시대에 뒤떨어진 ‘꼰대 교사’로 여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물론 SNS를 통한 소통에는 순기능도 있지만, 교사들이 수업 연구와 나눔 그리고 성찰, 학생 관찰과 면담, 보호자 면담, 교사 간 연대와 협의 등을 교사 본연의 일로 인식하지 않고, 여기에 더 많은 시간과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간과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교사와 보호자가 학생의 성장과 발달을 지원하기 위해 일관된 철학과 방법으로 교육해야 학생이 혼란스럽지 않게 배우고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교사와 보호자가 협력적으로 학생을 지원하는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지만 우리에게는 그와 관련한 실천이 빈약하다. 보호자도 교사도 그런 관계 맺음의 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그런 학교(관리자)와 동료 교사를 만나기도 어렵다. 그런 점에서 우리 학교에서 교사와 보호자 간 소통 방식을 구축하기 위해 도전하고 실천한 사례가 각 학교의 생태에 맞는 소통 체제를 구축하는 데 디딤돌이 되었으면 한다.
교사 혼자 민원 감당을 하지 않기 위해
민원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논의에 들어가며, 먼저 학교의 생태 특성을 파악해 보았다. 학교마다 다른 방식과 내용으로 민원 대응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는 것은 학교마다 생태와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교장으로 있는 서울율현초등학교의 경우 서울형 혁신학교를 10년 차 운영 중인데, 공동 수업 연구와 공동 생활교육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과 참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보호자들의 학교와 아이에 대한 관심이 높으나 코로나19 이후 보호자회 참여도는 저조해졌다. 연 4회 보호자 간담회를 갖고 있는데 협력과 연대의 교육 관련 주제에 대한 협의보다는 주로 입시와 능력 관련 교육을 학교에 요구하기도 한다.
대응 체계 구축을 위한 TF는 학년별 교사 1인과 교장감으로 구성하였다. ‘9.4 공교육 멈춤의 날’을 재량휴업일로 지정하는 논의를 했으나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보호자 위원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교사 개인의 역량 문제 또는 심리적인 요인으로 보는 보호자들을 끝내 설득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는 학교운영위원회 심의에서 가결되어 재량휴업일로 지정하였다. 그런 분위기에서 1차 TF 회의를 가졌다.
1차 회의는 교감이 주관하였는데 회의 전 민원 대응 시스템 구축의 목적을 충분히 이야기하는 것에 집중하자고 교장과 사전에 협의하였다. 그런데 교사들은 회의 초반부터 구체적인 대응 방법을 중심으로 논의하고 학교 차원에서 대응책을 마련하고 결정해 주기를 요구하기도 했다. 회의를 통해 교사들이 홀로 감당한 민원이 적지 않다는 점, 보호자와의 소통을 줄이는 것은 위험하다는 점을 공유했다. 그래서 2차 회의 전에 전체 교사 회의에서 교사들이 받은 민원(교권 침해 사례)을 꺼내 놓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1차 TF 회의에서는 구체적으로는 ▲ 하이클래스, 하이톡, 티처콜의 문자, 오픈 채팅방 등 개별 연락 수단을 학교 차원에서 전면 폐지(개별 교사가 개설한 SNS를 학교 차원에서 전면 폐지하는 것에 대한 의견 수렴 필요), ▲ 교실 직통 번호 통제, ▲ 보호자 상담 주간 운영의 목적 명확하게 하기, ▲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을 최대한 활용(출결, 질문, 상담 예약 등), ▲ 보호자에게 소통 방식 변경에 따른 적응 기간 필요함(소통을 막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사전에 학교 설명회, 간담회 등을 통해 이해시키기) 등을 결정했다.
교권 침해 경험 나누기와 사례 파악
전체 교사 협의회에서 교사들이 보호자로부터 받은 민원은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것이 교사의 자존감, 자부심, 교육력을 떨어뜨린 사례를 나누는 교사 마음 열기 시간을 가졌다. 보호자를 성토하는 자리가 아니라 담임으로서 혼자 감당해 온 것들을 동료에게 꺼내 놓음으로써 스스로와 서로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교사마다 다양한 대응 방식을 공유하며 보호자와 지속적으로 소통한 경험을 통해 자기를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보호자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반응도 나왔다. 부담없이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도록 ‘진진가’ 놀이로 진행했다. 울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음 열기 시간입니다~ 선생님의 교직 생활에서 교권을 침해받은 적이 있나요? 저는 신규 때 보호자가 “아침 활동 시간에 한자를 해 주세요”라고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심각한 교권 침해였습니다. 아래 세 가지는 제가 겪은 교권 침해 사례입니다. 그런데 (동료 교사가 겪은 일도 해당됨) 세 가지 내용 중 2개는 사실이고, 1개는 거짓(100% 창작)이랍니다. 무엇이 거짓일까요? 맞혀 보는 활동입니다.
1. 수업 시간에 학생이 “××”라고 욕하고 교실을 나감
2. 전학 간 학생의 보호자가 국민신문고에 허위 사실로 민원을 넣음
3. 학생 몇 명이 수업 시간에 수업을 의도적으로 방해함(“왜요?”, “아, 재미없어!” 등)
그런 뒤 TF에서는 보호자의 교권 침해에 관해 다룬 언론 기사를 함께 읽고 우리 학교 교사들의 교권 침해 사례를 모아 정리하였다. “급식 지도 시 학생에게 채소를 먹어 보도록 권유한 담임에게 학부모가 항의성 민원”, “준비물을 챙기지 않은 아이를 호명한 담임에게 보호자가 “왜 아이 기를 죽이냐”며 항의함”, “학생의 문제 행동을 말씀드리니 작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올해는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미워해서 그런 거’라며 담임을 탓함”, “A 학생과 B 학생이 친하지 않으니 교실 자리를 멀리 떨어뜨려 달라는 요구를 함” 등 많은 사례들이 나왔다. 교무실로 자주 오는 민원, 방과후교실 관련 민원, 통합교육 관련 민원, 보건실 관련 민원 등 영역도 분류해 봤다.
우리가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은 보호자에 대한 반감을 키우는 것을 경계하고, 보호자와 면담할 때 설명하고 설득하고 보호자와 공유할 정보를 교사가 알고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 마음이 모아졌다. 학교 관리자가 보호자 면담을 해야 하는 상황과 담임 교사의 고충과 지원 내용 등을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교사·학생의 교육권 보호와 보호자 소통, 둘 다 챙기자
2차 TF 회의는 교장이 이끌었다. 교장이 민원 대응의 중심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 표명은 교사들에게 ‘학교 구성원이 함께하는 것’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했다. 민원 대응 체제 구축의 목적은 ① 악성 민원으로부터 교사의 인권과 교육권 보호, ② 학교장의 책무성 강화 : 악성 민원 대응과 교사 보호 역할, ③ 수업 방해 방지 및 학생의 학습권 보호, ④ 보호자와 소통을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 소통을 할 방법 마련 등으로 정리되었다.
민원 대응 체제의 방향은 ① 민원 창구 단일화, ② 교사가 업무 중(출근 내내) 교실로 오는 전화를 직접 맞닥뜨리지 않게 하기, ③ 학교장 중심의 민원 대응 체제[교장감, 행정실장, 생활부장(학교폭력 사안)] ④ 보호자와 소통 방법 모색 : 연 4회 보호자 간담회, 학교(학년) 설명회, 수업 공개, 상담, 학급별 소통망, 월 1회 소식지 등으로 정리하였다.
두 차례의 TF 회의는 학년별 협의를 바탕으로 하였다. 학년에 따라서는 TF가 학년 협의를 견인하기도 했다. 2023년까지는 담임 교사가 개별로 이용하는 SNS의 운영 여부를 담임이 결정하고 보호자와 소통하기로 결정했다.[ref]담임이 운영하는 SNS의 유지 및 폐지는 담임이 결정하기로 했다. 다만 수업 사진 등 과도한 정보 제공보다는 수업과 생활교육에 집중한다. 학급에 따라 활용 목적이 다르고 순기능도 있음을 고려했다.[/ref] 2024년부터는 교사 개별적으로 SNS를 개설하지 않고 학교 공식 소통망인 e알리미를 통해 소통하기로 했다. 배움의 주체는 보호자가 아니라 학생이라는 점을 중심에 두었다.
민원 대응 체제를 관리자와 부장이 기획하고 교사들에게 통보하는 방식이 아니라, 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전체 협의를 하고 다시 의견을 듣고 협의하는 과정을 갖는 것, 그 자체가 교사들에게는 보호자의 민원에 대한 감각과 대응력 또는 교사가 보호자와 소통하는 목적과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이 되었다. 어떤 교사는 학교에서 정해서 알려 달라고 하기도 했지만, 민주주의는 지난한 협의와 숙고의 과정이라는 것을 교사들이 경험하기를 바랐다. 그래야 주인의식도 생길 것이고 그것이 공동체성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할 때 실천과 참여로 이어진다.
민원 대응 체제 운영의 실제
2023년 11월부터 e알리미로 공식적인 학교-보호자 간 소통을 하고 있다.[ref]서울형 혁신학교 서울강명초에서 운영하고 있는 e알리미를 통한 소통 방식을 토대로 우리 학교에 맞게 수정 보완하였다.[/ref] 보호자는 교장과 담임, 두 차원으로 소통이 가능하다. 교장으로 민원 창구를 단일화하는 것보다 담임에게 문의할 것과 교장과 소통할 것을 분리하자는 교사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SNS 대신 서면으로 제출하게 하여 보호자도 교사도 숙고할 시간을 갖고 상대를 존중하는 언어를 사용하도록 권하였다. 이것은 교사도 보호자도 조금 불편한 방식이지만, 편의성을 좇는 대신 교사가 학생 교육에 집중하고, 학생과 교사가 직접 소통하는 기회를 늘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가운데, 학생의 주체성을 키우고 보호자는 교사를 신뢰하고 학생을 기다려 주며 지원하는 역할을 하자는 구성원들의 약속이자 실천 의지다. 소통 방식에 대한 가정통신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교원과 보호자 간 소통은 e알리미, 가정통신문, 학급 알림장, 학급별 소통망(담임 권한).
2) 학생 및 교육 활동 관련 긴급한 소통은 교무실과 행정실로 연락.
(각 교실로 전화가 연결되지 않으며 학교와의 통화 내용은 모두 녹음됩니다.[ref]통화 시 안내 음성은 이렇다. “안녕하십니까, 서울율현초등학교입니다. 교육 활동과 교직원 보호를 위해 발신 번호가 표시되며 통화 내용이 녹음됩니다. 교실로 전화 연결이 되지 않으며 궁금한 점은 교무실로 문의해 주십시오.”[/ref] 학생의 학년, 반, 이름, 보호자명을 밝힌 후 문의해 주십시오.)
3) 담임과의 소통 : e알리미를 통해 결석계와 체험학습 신청서/보고서 제출, 상담 및 민원 신청.
4) 결석계(조퇴, 지각, 결석)를 신청하면 담임 확인 후 보호자에게 알림이 전송됨.
5) 체험학습 신청서는 체험 시작일 1일 전, 오후 2시까지 제출. 담임 확인 및 승인함.
6) 상담 신청(면담, 제안, 질의 등)은 담임 접수 후 담임이 서면, 전화, 면담 등으로 답변. 사안에 따라 학교장 차원에서 답변 또는 면담이 이루어짐.
7) 긴급한 결석 통보 및 긴급한 담임과의 소통이 필요한 경우 교무실에서 접수 답변함.
8) 학교 관리자와 소통 방법 : 〈e알리미-서울율현초등학교-소리함〉으로 제출 → 학교장 접수 후 답변. 필요 시 대면 면담.
2개월 남짓 적용 후 의견을 들어 보니, 교사들은 수업 활동 사진 찍기, 보호자 민원 응대 등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수업 중 울리는 전화로 수업을 방해받지 않으며, 서면으로 제출한 상담이나 문의에 대해 답변을 차근히 준비할 수 있어서 안전하다고 했다.
교육 활동 보호를 위한 학교공동체의 노력
민원 대응 체제 구축은 보호자의 학교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이해와 협력을 위한 공동체의 노력 중 일부일 뿐이다. 학교 전체 그리고 TF에서 우리는 보호자와 소통을 줄이는 방식이 아니라 더 안전하고 상호 존중하는 소통을 넓혀야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보호자 상담과 공개 수업은 보호자가 아이의 학교생활을 이해하고 협력하게 하는 방법이므로, 형제가 있는 보호자의 의견을 반영하여 학년별로 다른 요일에 진행하는 방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공동생활교육[ref]교사가 자기 학급에 국한하지 않고 학년 또는 학교 전체 단위로 ‘모든 아이에게 관심 갖기’를 하는 것이다. 교사가 먼저 인사하고 말을 걸고 눈 맞추고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은 지나치지 않고 누구든 교육하는 것이다. 학생 관찰도 학년 단위로 함께 하고 관리자의 지원이 필요할 시 교장과 교감, 상담사가 학생의 수업과 행동을 관찰하고 보호자 면담을 함께 한다. 교사들은 공동 생활교육 참여도와 성취감이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이는 교사들의 연대를 강화하고 학교를 공동체로 만드는 기능도 한다. 교장의 등교 맞이도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진다.[/ref]도 강화하기로 했다. SNS 대신 다른 소통 방식을 찾는 과정에서 초등학교에서 알림장을 쓰는 목적과 필요성에 대해 나누었다. 아이가 알림장을 쓰는 대신 수업에서 집중하며 기억하도록 반복 강조하여 외우는 것 역시 좋은 학습이라는 제안도 나왔다.
학생과 보호자의 자치 활성화를 위해 우선 학생들이 자기 생각과 의견을 갖고 제안하는 기회를 늘리는 방향에서 교장 수업을 진행하며 대의원제 운영도 고려하기로 했다. 보호자회 활동이 학생 교육과 연계되는 부분을 더 확대하려고 한다. 교사들이 TF를 통해 보호자와의 소통 방식의 얼개를 짜는 시기에 보호자 간담회를 가져 보호자의 요구를 들었고, 이를 민원 대응 체제를 구축하는 데 반영하였다.
학교 밖 관리자 학습공동체의 도움과 이웃 학교로의 확산
학교 밖에서는 혁신학교 내부형 공모 교장 중심으로 구성된 학습공동체에서 민원 대응 시스템 구축과 관리자 역할에 대해 정기적으로 협의하고 경험을 나누었다. 다들 민원 대응 체제 구축에서 교장이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고 그렇게 실천하고 있었다. 각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을 지원하는 방식을 공유하고, 보호자 면담에 있어서 교장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 학교 교육과정 운영 전반을 교사들과 협의하고 실천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우리 학교가 민원 대응 체제를 e알리미 방식으로 구축하는 데에는 이런 체제를 운영해 오고 있던 다른 혁신학교의 경험과 사례가 큰 도움이 되었다. 이 학습공동체에 참석하는 교장 중에는 학교에 심각한 민원 사안이 거의 없어 교사도 보호자도 별도의 소통 체제 마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경우도 있다.
지구별 교장 협의회에서 각 학교 민원 대응 체제 구축 상황에 대해 넌지시 얘기를 꺼냈을 때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접했다. 우리 학교 사례를 이야기하며 교사협의회를 통해 소통 체제를 마련했는데 어렵더라도 관리자가 민원 대응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 협의 과정에서 교사들도 보호자와 협력적 관계 구축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는 점,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시도해 보자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우리 학교의 e알리미를 통한 소통 체제를 공유했다.
얼마 후 이웃 학교에서 우리 학교 민원 대응 체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며 학교 관리자가 방문하겠다고 한다. 민원 대응 체제가 ‘진공의 방식’으로 이식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보호자와의 소통을 줄이는 방식으로 작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학교를 안전한 배움의 공동체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자 구성원들의 민원에 대한 인식을 점검하고 성찰하는 작업이라는 점도 짚으려고 한다. 이를 통해 교사가 학생 교육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전념하고 보호자는 진정한 협력자로 교사와 함께 학생 발달을 돕는 역할로 제자리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