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호[특집] 교육에서 노동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설규주)

2022-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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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학교에서 노동을 교육한다는 것 



교육에서 노동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설규주

qzoos@ginue.ac.kr

경인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오늘은 어떤 노동을 만났니?”


몇 년 전 사회과 교수-학습 자료 개발 과제를 할 때, 한 교사가 법 단원 활동 자료를 구성하면서 “오늘은 어떤 법을 만났니?”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다. 내게는 이 질문이 참 인상적이었다. 학생들은 흔히 법이란 어렵고 딱딱한 것, 피하고 싶은 것, 가급적 만날 일 없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우리 일상생활 곳곳에서는 오히려 법과 무관한 장면을 찾기 어렵다. 예컨대 교통 수단을 이용할 때는 「도로교통법」을, 학교 급식을 먹을 때는 「식품위생법」을, 인터넷에서 자료를 다운받을 때는 「저작권법」을, 학교에서 수업할 때는 「초·중등교육법」을 만난다. 우리가 법을 의식하지 못할 뿐, 현실은 그렇다.


노동과의 만남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학생들에게 노동과 관련해서도 같은 질문, 즉 “오늘은 어떤 노동을 만났니?”라는 질문을 해 본다면? 지금 한창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 노동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지만, 사실은 학생도 일상 곳곳에서 노동을 마주한다. 예컨대 버스를 탈 때는 버스 기사의 노동을, 학교 급식을 먹을 때는 영양사, 조리사의 노동을,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는 계산대 직원의 노동을, 주문한 물건을 배송받을 때는 택배 기사의 노동과 만난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 속에서도 크고 작은 노동과의 숱한 만남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노동을 의식하지 못할 뿐, 현실은 그렇다.



우리 교육에서는 어떤 노동을 어떻게 만나고 있을까?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우리 삶에 스며들어 있는 노동을 우리 교육은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현실과는 달리, 그동안 우리 교육에서 노동에 대한 접근은 대체로 조심스럽고 소극적인 모양새를 취해 왔다.


일단 학교 교육과정에서는 일반적으로 ‘노동교육’이라는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1950년대 1차 교육과정기부터 2015 개정 교육과정까지 수십 개에 달했던, 정말 웬만한 학습 주제는 다 포함되어 있다고 할 만큼 많은 범교과 학습 주제 목록에서도 노동교육은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노동교육과 가장 유사해 보이는 명칭의 범교과 학습 주제를 꼽는다면 6차 교육과정부터 2009 개정 교육과정까지 있었던 ‘근로정신함양교육’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용어는 오늘날 노동(인권)교육에서 많이 다루는 노동 관련 권리보다는 산업화 시대에 특히 강조되었던 ‘근로 정신’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인권)교육과는 그 지향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학교 현장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실시되고 있는 인권교육, 다문화교육, 양성평등교육, 통일교육 등은 범교과 학습 주제에도 포함되어 있고 각 교과 교육과정에도 포함되어 있지만, 노동(인권)교육은 교육과정 내에서 공식 명칭이나 범주로서가 아니라 일부 교과의 내용 요소로서만 다루어져 왔다. 예컨대 사회과 교육과정의 법 단원에서 근로자의 권리 또는 노동권 침해 사례 등을 제시하고, 사회문화 단원에서 사회 문제의 하나로 노동 문제를 소개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내용은 해당 단원의 학습 목표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것으로, 노동(인권)교육이라는 명칭으로 범주화될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나 깊이까지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신, 공식 교육과정과는 별도로 ‘노동인권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교과 교육과정 속에 산재해 있는 노동 관련 내용 학습을 지원하거나 창의적 체험 활동에서 활용될 수 있는 교육 자료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2022년 6월에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노동인권 교육과정 성취 기준을 근거로 하여 개발한 〈청소년, 노동인권을 만나다〉라는 중학교, 고등학교 노동인권교육 교수-학습 자료가 보급된 바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노동인권은?


2022년 하반기에 고시 예정인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노동 관련 내용이 좀 더 반영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2021년 11월 24일 교육부에서는 “더 나은 미래, 모두를 위한 교육”을 지향하며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시안)〉을 발표했다. 이 문서에서는 교육과정 총론 목표의 개선안으로 “환경생태교육, 민주시민 교육 및 일과 노동에 포함된 의미와 가치 등을 교육 목표에 반영”하는 방안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기조에 따라 중학교에서는 “인공지능, 지속가능한 미래, 노동(인권) 등 모든 교과를 아우르는 주제 중심의 다양한 과목을 개발·운영”하도록 하였고, 직업계 고등학교 현장 실습과 학교교육에서 “노동인권과 안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전문 공통 과목으로 ‘노동인권과 산업안전보건’을 개설할 것을 제안하였다.


총론은 교육과정 전체의 기조와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일과 노동에 포함된 의미와 가치”라는 표현은 교과 교육과정은 물론 창의적 체험 활동과 같은 비교과 교육과정에서도 전반적으로 노동 (인권)교육 관련 내용의 비중을 높이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학교와 직업계 고등학교에서 노동(인권) 관련 과목 개발과 개설을 제안했다는 점 역시 노동(인권)교육의 확대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2022 개정 사회과 교육과정’에서도 노동(인권) 관련 표현이나 비중이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비해 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 4월 22일 공청회에서 발표된 개정 시안의 성취 기준에 포함된 노동(인권) 관련 내용을 일부 제시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교육과정 문서에 있는 성취 기준은 교수-학습을 통해 학습자가 도달하기를 기대하는 목표로서 내용 기준과 수행(행동) 기준을 진술한 문장이다. 성취 기준 1개당 대체로 교과서 4~6쪽 정도가 집필된다. 따라서 성취 기준 속에 노동 관련 단어가 들어 있으면 교과서에서도 본문, 활동, 자료 등을 통해 노동 관련 내용을 반드시 다루게 된다.


성취 기준(안)이 노동(인권)교육이라는 범주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을 모두 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식적인 교과 교육과정의 성취 기준에서 노동, 노동권, 노동자, 노동 문제 등을 명시적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교과서에서도 그러한 내용이 상당 부분 다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2022 개정 사회과 교육과정 시안에 제시된 노동(인권)교육 관련 성취 기준(안)



민주시민교육으로서의 학교 노동(인권)교육


2017년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관련 연구와 실천 노력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민주시민교육과 ○○교육, 예컨대 인권교육, 다문화교육, 미디어교육, 지구촌교육, 노동(인권)교육 등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한 한 가지 답을 경기도교육청에서 개발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이라는 인정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교과서에서는 정치(선거), 인권, 다문화, 미디어, 평화, 통일, 환경, 지구촌, 노동 등의 주제를 민주시민교육의 범주에서 다루고 있다. 학교에는 정규 교과 교육 외에도 매우 많은 ‘○○교육’을 실시해 달라는 정부 부처나 사회 각계의 요구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인권)교육을 민주시민 교육과 별개의 것으로 설정하여 별도의 시수와 강사를 확보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노동(인권)교육이라는 것이 하나의 공식적이고 독자적인 교육 주제로서의 범주와 명칭, 위상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되, 현재 시점에서는 민주시민교육 차원에서의 노동(인권)교육을 실시하는 노력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민주시민교육 차원에서 노동(인권)에 접근한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시민의 일상과 노동의 관계에 주목한다. 노동인권교육이란 노동과 관련한 인권교육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노동인권교육은 단지 당장의 노동자를 위한 교육으로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시민을 위한 교육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상당수의 시민이 노동자 자신으로 또는 노동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노동과 관련한 교육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시민은 현재 특정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현직 노동자이기도 하고 취업을 준비하거나 진로를 모색하고 있는 잠재적인 노동자이기도 하다. 또, 현직 또는 잠재적 노동자의 가족이나 친구, 지인이기도 하고, 노동의 결과물을 통해 필요를 충족하고 있는 소비자이기도 하다. 민주시민교육 차원에서의 노동인권 교육은 이처럼 시민의 일상에서 노동을 분리하기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둘째, 우리 사회 안팎의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문제 대응에 참여하는 시민의 자질을 강조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사 분규, 실업, 비정규직 문제 등과 같은 노동 문제는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최근에는 노동 관련 갑질 문제, 감정 노동자 보호, 노동 현장의 안전, 청소년의 노동권 관련 문제 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민주시민교육 차원의 노동(인권)교육은 자신의 노동과 직결되는 문제는 물론이고, 노동을 통해 자신의 이익과 필요를 충족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자신과는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우리 사회 안팎에서 부당하게 노동 관련 불이익을 당하는 구성원은 없는지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살펴보고 시민으로서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할 책임을 강조한다.



학교 노동(인권)교육의 교수-학습 원칙


노동이라는 주제를 학교에서 다룰 때 교사들은 부담을 느낄 수 있다. 노동을 학습 주제로 다루는 것만으로도 혹시 이념 논쟁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편파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하지 않을지 하는 염려 때문이다. 이로 인해 노동 관련 주제를 학교교육에서 가급적 회피하거나 축소하는 움직임도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은 분명히 교육 과정에 명시되어 있는 주제로서 적정한 시간과 분량을 확보해 충실하게 학습되어야 할 요소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인권)교육을 위한 교수-학습 원칙에 대해 논의하고 이를 정립해 놓을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독일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민주시민교육의 교수-학습 원칙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참고할 수 있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1976년 독일에서 민주시민교육(정치교육)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이 교육의 기본 원칙으로 함께 작성한 것으로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학생에게 특정 생각을 주입하거나 교화하지 않는다. 둘째, 학문과 정치에서 논쟁적인 것은 수업에서도 논쟁적인 방식으로 다룬다. 셋째, 학습자가 정치 상황과 자신의 이해관계 간의 관계를 판단하고 거기에 맞추어 행동할 수 있는 역량을 함양한다.


이 합의 내용을 토대로 하여 학교에서의 노동(인권)교육에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노동(인권)교육을 위한 교수-학습 원칙(안)

① 노동에 관한 바람직한 인식과 가치를 증진할 수 있는 정보를 다양하고 균형 있게 제시한다.

② 노동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을 학생들이 논쟁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룬다.

③ 노동 관련 내용이 학습자의 생활 세계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실제 삶에 적용될 수 있도록 구성한다.


여기서 제안하고 있는 노동(인권)교육 교수-학습 원칙(안)은 노동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일반적인 위상과, 학교에서 노동이 다루어지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보이텔스바흐 합의 내용을 해석하고 적용한 것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①은 학교에서 노동교육을 할 때 노동에 관해 특정한 주장을 주입하기보다는 노동과 관련한 다양한 지식과 가치에 대한 학생의 인식을 강조하는 원칙이다. ②는 노동(인권)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노동에 관련된 사회적 논쟁(관점, 제도, 실천 등)의 양상에 대한 이해와 판단을 강조하는 원칙이다. ③은 노동 문제가 학생의 삶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알고 그러한 인식에 기초하여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영위할 것을 강조하는 원칙이다.


이렇게 학교에서 노동을 다룰 때의 교수-학습 원칙을 정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노동(인권)교육의 교수-학습 원칙은 학교에서 노동(인권)교육을 실시하는 교사들이 안정적으로 수업할 수 있도록 돕는 보호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단지 교육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각계각층이 그에 대해 각기 다른 입장을 표방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교사들이 노동과 같은 주제를 다룰 때 위축되거나 부담을 가질 수 있다.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기초한 노동(인권)교육 교수-학습 원칙은 노동을 어느 특정한 방향으로 가르치라는 것이 아니라 논쟁의 방식을 통해 다양한 입장을 살펴보고 학생 스스로 판단하는 것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노동(인권)교육이 편향적이라는 오해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둘째, 노동(인권)교육의 교수-학습 원칙은 현재의 노동(인권) 교육 실태를 성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원칙을 통해 우리가 실시하고 있는 노동(인권)교육의 현실을 돌아봄으로써, 내용적 측면에서 노동(인권)교육에 포함해야 할 것과 포함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수업 방법적 측면에서는 노동 관련 지식이나 가치를 주입하고 있는지, 논쟁하고 있는지 등을 판단하는 준거로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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