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호[기고] 사건이 문제가 되고, 문제가 해결이 되려면 | 희정

202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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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문제가 되고, 

문제가 해결이 되려면

- 지혜복 교사의 전보 거부 투쟁이 제기한 A학교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의 문제



희정

hihiihih@naver.com 

기록노동자



“청소년들은 무엇이 성폭력이고, 여성혐오인지를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다. 그 대신 책과 트위터를 통해 스스로를 깨우쳤으며 #미투 #위드유에 동참하는 사회적 흐름에서 실천의 가치를 배웠다.”(이계은, 부천청소년인권운동공동체 세움 활동가)❶


스쿨 미투를 지나오며 의문이 있었다. 학교에는 ‘여자 학생’만 있지 않다. “무엇이 성폭력이고 여성혐오인지를” 알려 주지 않는 학교에서 남자 청소년들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스스로 깨우칠까? 이 질문의 답을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으로 돌려받았다. 기술 발전에 따라 도리어 ‘그들만의 놀이’는 진화했다. 그들이 모두 가해자가 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알려 주지 않으면 배울 길이 없음을 보았을 뿐이다. 연대를 통해 동료 청소년으로부터 깨우친 이들이 있듯이, ‘알려 주는’ 주체가 꼭 학교의 교사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학교교육의 주체 중에는 분명 교사(를 비롯한 교육 노동자)가 있고, 학내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시 이 문제를 직면하는 이도 교사다. 그래서 궁금해했다. 이들은 스쿨 미투를 지나오며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깨우쳐 왔을까. 

학교는 이들에게도 ‘무엇이 성폭력이고, 여성혐오인지’를 알려 주지 않았다. 배우지 않은 것을 알려 주어야 하는 위치에 놓인 교사(를 비롯한 교육 노동자)들이다. 당시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교사가 필요합니다’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일었다. 페미니스트 교사가 학교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넘어, 그런 이가 존재할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을 학교가 갖추어야 한다는 요구였다. 스스로 깨우친 학생들에게는 학교 안에서 연대할 동료가 필요했다. 시민은 홀로 만들어지지 않으니까. (자신을 동료로 인정하는) 동료 시민이 필요하다. 

하지만 학교 안에서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과제로 남았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스쿨 미투 이후 각 교육청은 학내 성폭력 대응 매뉴얼을 배포하고, 성고충심의위원회 설치 등 관련 기구를 신설한다. 학내 성폭력·성희롱 대응 절차가 만들어진 것은 스쿨 미투의 성과라 할 수 있지만, 이를 해결이라 부를 수는 없었다. 사건의 심각성은 구성원들이 사건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결정된다.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지 못하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문제”로 여겨져 “결국은 심각하지 않은 문제”가 된다.❷ 사건을 문제로 인정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진지한 모색이 있을 때, 문제는 ‘문제’일 수 있다. 해결 방안을 적극적으로 논하고 모색하고 시도하지 않는 것은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변화는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을 때 만들어진다. 학교 현장은 진지한 모색을 해 왔는가? 

‘문제’가 되지 못한 사건들이 연이어 질문만 던져 줄 때, A학교 지혜복 교사의 징계 소식을 들었다. 한 언론사에서 지혜복을 언급한 내용을 가져온다. 


“학내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앞장섰지만, 전보 처분을 받은 데 더해 해임 위기에 처한 교사가 있다.”❸ 

당시는 9월 초. “지금이 국가 비상사태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딥페이크 성범죄 강력 수사 촉구 집회가 열린 것이 같은 해 8월 31일이었다. 주최 측에 따르면 1,000여 명이 참석한 대규모 집회였다. 사회적 공분이 이토록 높은데, 학교의 성폭력 문제가 해결은 고사하고 그 문제에 연루된 교사의 해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가 농성 중인 서울시교육청 앞을 찾았다. 



사건을 접하다


지혜복은 1월부터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부당 전보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다. 부당 전보 거부 투쟁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A학교 성폭력 문제는 사실 특이할 것 없는 일이었다. ‘학교가 원래 그렇지 뭐’ 하고 지나칠 법도 했다. 하지만 사건을 해결하려 애를 쓰는 교사 한 명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런 냉소를 드러내기 어려웠다. 

“정말 미안하다. 지금부터는 선생님과 같이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

지혜복이 사건을 인지하고 학생들에게 했다는 말을 들으며 나 또한 위로받았다. 듣고 싶은 말이었는데, 그 시절 우리에게 이 말을 해 준 교사가 없었다. ‘한때 학생’으로 지혜복의 존재가 위로를 주었으나, 젠더폭력이 만연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위로에 그치지 않았다. “같이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했다. 스쿨 미투 이후 학교에서 성폭력 문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좌초되는지를 알고 싶었다. 지혜복을 통해 그 과정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를 인터뷰한 이유다. 

학교의 변화는 단지 정책이나 매뉴얼로 추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현장에서 이 문제를 직면하는 주체들이 어떤 행동을 취하고 어떤 곤혹에 빠지는지. 조직과 제도 그리고 구성원들이 주체들의 곤혹과 행동을 어떤 방식으로 지원하거나 제재하는지. 이 과정을 겪고 보고 남기고 평가하는 것이 사건의 해결을 위한 논의이고 모색이다. 그래야 ‘해결’이라는 출구를 찾을 수 있다. 이것은 2018년 스쿨 미투 이후로 다시금 학교로 소환된 나에게 있어도 중요한 과제였다. 학교 안에 갇힌 ‘미투’의 시간을 지나올 출구를 찾고 싶었다. 



사건이 되다


2023년 5월, 상담부장 지혜복은 학생들과 간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던 중 교실에서 성희롱·성폭력 문제가 만연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학년 때부터 남자 학생들의 성폭력 행위에 시달린 경험을 학생들이 토로한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지혜복은 다음 날 교장·교감·생활지도부장을 함께 만난다. 이 자리에서 “여학생들이 어떤 내용과 수위로 이런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실태 파악을 위해서라도 학생들이 겪은 일을 무기명 설문 조사를 해 보자”라고 제안한다. 

A학교는 유난히 남자 학생들이 많은 학교였다. “남학생들이 많다 보니”, “남자애들이 좀 거칠어서” 정도로 이야기되던 현상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첫 번째 시도였다. 여자 학생들에게 무기명 설문 조사를 했다. 그 결과, 다수가 피해를 겪었다고 답했다. 외설적인 말과 행동, 외모와 신체 평가, 강제적인 신체 접촉 등이 답변에 담겼다. 이름이 거론된 학생만 20명이 넘었다. 가해자로 특정할 학생이 이토록 많다는 건 성폭력 문화가 만연한 교실 현장을 고스란히 보여 주었다.

실태 조사를 하자, A학교는 ‘남자아이들의 놀이’를 이제 사건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를 젠더폭력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시선은 여전했다. 그 시선은 사건의 경중을 낮추어 보도록 했다. 서면 사과 정도로 그칠 일이라며 현실적 처벌 수위를 언급하거나 생활기록부에 기록이 남거나 (운동부일 경우) 경기 출전 기회를 박탈당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놀이가 아니었다. 

“선생님, 1년 전에 들은 성희롱이 아직도 안 잊혀요.”❹ 한 학생이 지혜복에게 했다는 말. 나도 이 말이 안 잊혔다. ‘우리’에게도 잊지 못하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이 자극적이라 잊지 못하는 게 아니다. 그 언행이 잘못된 것임을 내가 속한 공동체로부터 확인받지 못했기에 잊지 못한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신뢰할 수 없을 때 사람은 취약해진다. 설문지에 이런 문항이 있었다. ‘피해를 겪었을 때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는가.’ 일부 학생들은 이렇게 적어 냈다. “담임에게 말하거나 생활지도부에 신고했다.” 무언가를 했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은 타이르기만 하고 끝났다”. “생활지도부로 불려 간 (가해) 학생은 웃으면서 교실로 돌아왔다.” 피해자를 취약하게 만드는 세상이다. 사건의 해결은 공동체가 피해자의 취약성을 탈각시켜 나가는 측면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현실은 사건을 ‘학교폭력’으로 신고할 것인지 하는 문제로부터 좌충우돌했다. 

사건을 접수하고 조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학교폭력 전담 기구’를 맡은 교감과 생활지도부장은 학교폭력을 신고하려면 “신고자 이름이 특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 신고자 이름은 무기명으로 해도 되거든요. 교장 선생님은 전수 조사를 피해 제보가 많은 그룹의 학생들에게 따로 해 보자 하고. 그런데 두 방법 다 피해자의 존재가 드러날 위험이 있어 보이는 거예요.”(지혜복)❺


이 일화는 담당 교사가 학내 성폭력 대응 매뉴얼을 인지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직무를 소홀히 한 교사를 탓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교육부는 스쿨 미투 이후 정책 성과 중 하나로 ‘사안 처리 역량 강화’를 들었다. ‘직무 연수 및 맞춤형 업무 매뉴얼 개발·보급’ 등으로 인해 ‘현장의 대응 역량’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❻ 하지만 이는 교육부의 바람일 뿐. ‘대응 매뉴얼 보급’이 ‘대응 역량’ 강화로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매뉴얼은 준비물일 뿐이다. 펜이 있다고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학교폭력 전담 기구의 기구장은 교감이었다. 그조차 성폭력 대응 매뉴얼 숙지가 부족했다. 개인의 무능을 탓하는 것이 아니며, 매뉴얼 숙지가 곧 대응 역량도 아니다. 


“‘학폭’이라 규정된 순간 교사들은 무기력해져요. 사안에 대한 형식적인 서류 처리 이외에 모든 것에서 손을 떼야 해요. 자료를 모두 교육지원청에 보내고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데, 결과라고 나오는 내용도 사실 별것이 없어요. 대부분은 권고 조치들인데, 학교 상황에 맞지 않는 내용들이 권고로 오기도 하죠. 학교는 개입도 못 하면서 교육도 못 하는 상황이 되는 거죠.”(김진)


중등 교사이자 교육노동자현장실천 집행위원장인 김진의 말을 빌려 온다. 학교폭력 사건은 접수 후 48시간 내 신속히 교육지원청으로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학교가 개입도, 교육도 못 하는 상황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가 교육지원청 소관이기 때문이 아니다. 2020년 학폭위가 개별 학교에서 교육지원청으로 옮겨진 데는 업무를 경감해 달라는 교사들의 요구가 있었다. 교육청에 신고하기 전 단계 ― 사건 조사, 초기 조치, 보고 업무 ― 마저 부담을 느끼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학내 성폭력에 관한 교사 직무 교육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연 1회 교육. 대부분 동영상 시청으로 대체한다), 문제는 교육 횟수나 커리큘럼이 아니다. 


“선생님들이 기본적으로 시간이 없어요.”(김진) 


교사들의 업무 과중(감)이 어디서 기인하는지에 관해 여기서 서술하진 않겠다. 어디서부터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지 몰라도, 성폭력 문제를 비롯해 학교 안 폭력 문제가 역량을 키워 ‘해결’해야 하는 사안이 아니라 ‘처리’ 사안으로 여겨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권한이 없을수록, 본업(교육)과 멀어질수록 처리 업무로 여겨진다. 학교만이 아니다. 어느 일터든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아예 사건을 ‘사건’으로 만들지 않고자 하는 경향과 ‘사건’을 처리하기 좋게 만들려는 경향이 동시에 생겨난다. 이에 따라 ‘사건을 명확히’ 하고자 하는 욕구가 등장한다. 문제의 소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 중에 증거도 진술도 모호한 성폭력 사안은 유독 골칫거리다. 사건이 폭탄으로 여겨질 때, 폭탄을 들고 온 사람에게 원망이 몰린다. 피해 사실 조사를 해야 한다고 제안한 사람, 가해 학생을 추려 교육청에 신고 접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A학교에선 그 사람이 지혜복이었을 테다.

여기에 청소년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 사회의 태도까지 더해지면, 사건은 못 믿을 것이 된다. 조사는 취조가 되고, 취조 권한이 없지만 취조를 해야 하는 교사에게 이 일은 다시금 기피 업무로 여겨진다. 기피 업무를 누가 맡는가. A학교 생활지도부장은 기간제 교사였다. 흔한 일이라 했다. 전국 초·중·고 학교에 재직 중인 기간제 교사 중 담임을 담당하는 비율은 절반을 넘어섰다(2022년 기준, 60.2%).❼ 생활지도부장 자리에도 기간제 교사들이 다수 있다. 정교사들에겐 기피할 권력이 있었다. 


“매일 회의를 했어요. 심각한 몇 건은 학폭으로 처리하고, 작은 사안들은 학생들 대상으로 교육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방향으로 논의를 했어요. 중요한 건 아이들이 왜 그런 말과 행동이 문제인지를 깨닫는 거니까.”(지혜복)


이 당연한 말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 학내 성폭력 사안 대응은 학교공동체의 역량을 고려하여 설계되지도 않았고, 학교에는 대응 역량을 갖출 시스템이 없고, 학교는 공동체로 기능하지도 않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A학교의 피해자 유출과 2차 가해는 예고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사건의 확대


“구체적인 진술을 할 수 있는 학생들이 있었어요. 그 학생들이 지목한 가해자가 8명이었어요. 그 진술을 바탕으로 학폭으로 신고를 하고, 다음 날 생활지도부장이 가해 지목 학생들을 상담했어요.”(지혜복)


2023년 6월 14일. 사건 조사 첫날, 상담 과정에 피해 진술을 한 학생의 이름이 유출됐다.


“다음 날 학교가 아침부터 난리가 난 거예요. 가해 학생과 그 친구들까지 쉬는 시간마다 몰려다니면서 신고한 애들이 있는 반에 가서 소리 지르고 조롱하고 ‘이것도 성희롱이라고 신고해라’ 이러고. 온라인에 저격 글이 올라오고.”(지혜복)


지혜복도 저격 글의 대상이었다. 교장이 직접 교실마다 들어가서 학생들의 행동을 단속하는 것 외에 2차 가해에 따른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집단행동의 효과는 분명했다. 피해 학생들은 ‘내가 쓴 진술서를 지워 달라’고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지목된 가해 학생이 8명에서 3명으로 줄었다. 집단적 2차 가해라는 새로운 사건이 등장했지만, 학내 성폭력 문제는 절차대로 처리된다. 그 절차는 피해자들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이뤄졌다. 한 예로, 생활지도부로 가지 않으려는 피해 학생을 생활지도부장이 교실까지 찾아와 지명해 데려가는 일이 있었다. 생활지도부장은 이미 피해자 신원 유출 책임자라는 혐의가 있는 상태였다.❽ 

 여기에 생활지도부장의 악의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지가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무지를 만들어 낸 현실의 권력관계가 있었다. 그는 젠더폭력에 무지할 수 있는 중년의 남성이었으며 업무를 거부할 수 없는 기간제 교사였다. 그렇다고 쉬이 이해할 일은 아니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은 비밀 누설 금지 조항을 두어 위반 시 법률 처벌까지 가능한 사안임을 밝혔다.

지혜복은 2차 가해가 불거지자 학교에 ‘외부 전문가 교육’을 제안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실이지만 학교가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은 ‘화합’을 위한 명랑 운동회다. 학교 자체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 지혜복은 서울시교육청에 민원을 넣는다. 이때 지혜복이 요구한 것은 ‘성폭력 예방 교육 조속 진행, 피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회복 프로그램, 그리고 직무를 유기한 교감과 생활지도부장에 대한 징계’였다. 



사건의 종결?


지혜복이 서울시교육청에 민원을 접수한 지 5개월 후인, 12월 27일 교육청은 A학교에 시정 권고 조치를 한다. 권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인권 감수성 향상을 위한 학교 차원의 대책 수립 및 이행 

- 학교장의 학생과 보호자의 면담 및 의견 청취를 통해 학교 내 갈등 해소 방안 마련

- 전문 기관을 통한 학생·교직원·보호자 대상 성교육 연수

- 피해 학생들에 대한 구체적인 회복 프로그램 실시

- 학교 관리자 및 관련 교사의 사과 및 재발 방지 입장 표명


A학교는 한 달 후, 교육청의 시정 권고를 수행했다는 보고를 올리며 사건 종결을 알린다. 2월, 겨울 방학이었다. 권고를 이행하기에 적합한 시간이 아니었다. 가해 수준이 가장 높은 학생 한 명은 서면 사과와 교내 봉사 5일 처분을 받았다. 피해자들은 회복 프로그램을 받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이러면 사건은 해결된 건가. 

앞서 말했듯 A학교의 사안은 특별할 것이 없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의 문제, 성인지 감수성의 부재, 문제를 제대로 풀어갈 인력도 시간도 없는 학교, 그로 인해 기피 업무가 되어 버린 학교폭력 업무, 기간제 교사들에게 떠넘겨진 책임, 학교가 시끄러워지는 것을 싫어하는 관리자, 학교 안 권력의 문제 등”❾이 중첩된 모습, 그 자체였다. 그리고 많은 학교에서 이러한 사건은 ‘해결’되지 않고 종결되었다. A학교 사건도 지혜복의 전보 거부가 없었다면, 종결된 채 교무처 서류 폴더 안에 보관되었을 일이었다. 

교육청의 권고안이 온 그해 12월, 지혜복은 전보 대상자가 된다. 교사 정원 감축으로 인해 예정된 전보였으나, 전보 당사자를 선출하는 데 있어 정황상 의심이 드는 대목들이 있었다. 근거가 부족한, 무리한 인사 이동이라는 판단은 ‘다른 이유가 있다’는 의심을 불러왔다. A학교는 사건이 완료되었기에, 전보 명령은 학내 성폭력 사건과 무관하다고 했다. 하지만 지혜복은 전보 명령을 거부한다. 출근을 하지 않았고, 이는 이후 그를 징계위원회에 서게 했다.

‘전보 근거’의 정당성/부당성에 대해 입장이 첨예하다. 이를 따지고자 하면, 서울시교육청의 인사 관리 원칙에서 중등 교사 전보 기준을 세세하게 살피고, 공익 제보자 지위의 법적 근거까지 살펴야 한다. 이 글에선 하지 않겠다. 관련 내용을 다룬 기사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다만 나는 묻고 싶을 뿐이다.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는 전보 조치가 ‘있을 수 있는 일’인지. ‘행정 폭력’이라 부를 만한 일이다. 이것을 폭력으로 인지하지 않는다면 그 일터는 어떤 곳일까 의문하게 된다. 폭력에는 원인이 있다. 그 원인에 반년 전 지혜복이 들고 온 폭탄이 있다는 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지혜복의 부당 전보 싸움을 보며, 나는 이중적인 마음이 들었다. 학내 성폭력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 피해 학생들이 받을 상처가 염려된 동시에, 반가웠다. 사건이 ‘종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많은 사건이 ‘문제’가 되지 못하고 ‘종결’된다. 해결은 없다. 사건은 또 다른 모습으로 거듭 등장하다가 결국 “어쩔 수 없는 문제”가 되어 문제로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몇 년 후에도 이 말을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학교를 매개로 한 성범죄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닙니다. 이미 스쿨 미투가 있었고 N번방이 있었습니다. A학교 성폭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가 기술 발달을 등에 업고 더 큰 파도로 몰아닥쳤을 뿐입니다.”(백운희,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그러니 사건을 ‘종결’할 수 없는 상황이 반가웠다. 내게는 “다시 A학교로 돌아가겠다”는 지혜복의 의지가 ‘장기 투쟁’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닌, ‘사건의 해결을 꿈꿔 볼 수 있는 장’을 여는 문으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지혜복이 복직해 A학교로 돌아가 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아니다. 그런 일은 가능하지도 않고, 젠더폭력 문화를 끊어 내는 일이 송곳 같은 교사 한 명의 분투로 이뤄지는 일도 아니다. 반대로, 지혜복의 부당 전보-해임 징계 싸움의 끝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해도 A학교 성폭력 사건은 문제로 명명되고, 해결을 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혜복이 투쟁을 통해 시간을 열어 두었기 때문이다. 성폭력 문제가 사건으로 ‘처리’되는 과정에서 제대로 물어본 적 없는 것을 물을 수 있는 시간 말이다. 학교는 왜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사건의 포문


‘학교 밖’에 위치한 사람으로서 묻고 싶은 것이 많다. 교육청 소속 담당관부터 학내 담당 교사까지, 이들 중 누가 이 사건을 학교의 역할과 학내 권력관계라는 측면에서 성찰하며 접근했을까. 교권에 대해 목소리가 높지만, 생활지도부장 직무는 자칫하면 아동학대 신고나 당하는 자리라며 기피하는 가운데 비정규직 교사들로 그 자리를 채우는 문제는 어떤 ‘권리’로 이야기되고 있는가. 교권의 얼굴은 정규직-남성의 것을 하고 있는 걸까. 묻고 싶은 게 많다는 건 풀어 나가고 싶은 것이 많다는 이야기다.

딥페이크부터 A학교 사안까지. 우리는 묻고 답하고 논하고 모색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지혜복이 본래의 학교로 돌아가길 지금보다 더 간절히 바랐다. 교실에 있는 이들 때문이었다. 그 학생들이 이번 사건을 통해 얻은 교훈이 지혜복의 해고라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이후 그들이 어떻게 부당한 일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이 공동체가 안전하다고 신뢰할 수 있을까. 

그러나 최근 들어 그 마음이 조금 옅어졌다. 지혜복의 복직을 바라는 마음과 별개로, 교실 안 이들이 얻을 교훈은 단지 지혜복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혜복 교사가 투쟁으로 열어 둔 ‘종결할 수 없는’ A학교 사건으로부터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을 진지하게 논해야 한다. 논하고 모색하고 시도하여 ‘해결’에 도달하려는 모습을, 그 성찰의 모습을 A학교의 당사자들에게 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스쿨 미투를 비롯해 A학교 성폭력 사건을 거쳐 딥페이크 성폭력까지. 당사자들에게 우리가 보내는 (그땐 보내지 못한) 연대와 지지가 아닐까. 



《청소년은 달라졌다. 이제 교육과 사회가 달라질 차례!》, ‘미투(#Me too) 이후 지역실천과제 토론회’ 자료집, 부천여성청소년재단, 2018년 10월 17일.

2024년 9월 10일에 여성단체 공동 주최로 열린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관련 긴급 집담회’ 중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의 발언에서 가져왔다. 

“교내 성폭력 알렸다가 해임 위기에 놓인 지혜복 선생님을 아시나요?”, 〈여성신문〉, 2024년 9월 5일.

〈피해자는 입을 닫고 선생님은 쫓겨났다〉,《시사인》, 890(2024년 10월 10일).

이 글에 출처가 기재되지 않은 채 등장하는 지혜복의 구술은, 2024년 10월 8일에 진행한 인터뷰의 내용이다. 

2022년 2월 25일 교육부가 주최한 ‘스쿨 미투 이후 교육분야 양성평등 정책 성과와 과제’ 포럼 발표 내용 중에서.

국민의힘 이태규 의원실(2023), 〈2013~2022 지역별 기간제 교원 담임 교사 현황〉.

“가해 관련 학생들이 ‘조사받는 과정에서 생활지도부장으로부터 신고자의 이름을 들었다’는 취지로 (피해 학생들에게) 말하며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생활지도부장 및 학교 답변으로 보아도 사안을 조사·확인하는 과정에서 남학생들과 여학생들 사이에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분위기가 형성되었음.” 학생인권교육센터에서 학교장에게 시정을 권고한 문서에 적혀 있는 문구를 가져온다. 

김진(2024), 〈서울시교육청은 학생과 교사를 보호하라〉, 《오늘의 교육》, 81(2024년 7·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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