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지내는 당연한 것의 부재
- 지금을 살아가는 부모님들께
글
발랑(신선웅)
woong_51@hanmail.net
관악교육복지센터 센터장
잠시 길을 잃었던 순간
최근의 일이다. 활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막연함을 느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막다른 길에 우두커니 선 것 같았다. 돌아설 길도 보이지 않고, 눈앞에 마주한 높은 벽을 넘어설 방법도 없는 것만 같았다.
지역 학교 및 기관 간 사례 회의 자리❶에서 한 교사로부터 위기 상황의 청소년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동쪽중학교에 재학 중인 어느 청소년이 양육자 없이 혼자 지내고 있다고 했다. 형제가 있으나 소년원에 수감 중이고, 양육자는 경제 활동을 위해 타 지역으로 갔다. 같이 생활하던 친척이 있었으나 앓고 있던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으로 모셔졌다. 이와 같은 이유로 중학생 청소년 혼자 거주하게 되었다고 했다. 교사는 혼자 지내는 청소년도 걱정되고, 그가 홀로 지내게 된 공간이 또래 청소년들의 아지트가 될 것으로 예상되어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사례 회의 안건으로 올려 자문을 구하는 내용이었다. 위기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았다. 환경적 배경의 면면이 비슷한 청소년을 지원하고 있었는데, 설마 그 가정인가 싶었다. 청소년 지원 활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연습하는 부분이 ‘묻고 확인하기’이다. 짐작이 얼마나 큰 오류를 낳는지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사에게 확인했다. 아니기를 바랐으나, 역시 그랬다. 우리 센터가 지원하던 청소년들 이야기였다. 그렇게 청소년 하늬바람과 샛바람의 소식을 들었다.
두 청소년은 내가 교육복지센터 활동을 시작하던 해에 만났던 이들이다. 서쪽초등학교에서 의뢰되어 지원하던 이들이었다. 불과 작년에도 담당 실무자와 함께 직접 가정 방문을 했고, 양육자 면담도 진행했으며, 하늬바람과 맞춤 지원 활동도 함께 했다. 그 후로 만나기로 한 약속이 몇 번 어그러지면서 다소 센터와 관계가 소홀해지는 느낌이었는데, 이런 상황까지 치닫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하늬바람이 구금 상태이고, 양육자가 샛바람을 양육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은 믿을 수가 없었다. ‘설마, 아닐 거야’, ‘아, 어떻게 해야 하지?’, ‘왜 이렇게 됐지?’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그날 밤 내내 이어졌다.
교육복지 활동이 녹록지 않아도 지치지 않고 계속 해낼 수 있는 동력은 청소년의 변화 지점이 반드시 언젠가는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마냥 긍정적이거나 희망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청소년에 대해서는 어떤 상황을 겪고 있더라도 전환점이 있다고 믿는 편이다. 그 타이밍이 저마다 다르고, 어느 순간이 그에게 작용하여 삶에 동력을 얻게 되는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성장의 가능성을 지닌 청소년 시기는 어려움을 겪다가도 자신의 설 자리를 찾게 되면 안정되고 점차 달라지기 시작한다. 청소년 본인도, 주변 이들도 그 변화는 느끼기 마련이다. 청소년을 지원하는 일은 청소년이 겪는 위기 상황을 모두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육이나 복지, 다른 그 무엇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가장 위태로운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하고, 지금의 어려운 지점을 잘 견뎌 낼 수 있도록 지지 체계가 되어 주는 데에 의미가 있다. 그리고 청소년이 내적인 힘을 키워 본인의 상황에 대처하고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활동 안에서 이렇게 정리하고 정의한 지점들이 모두 틀린 것만 같았다.
처음으로 막연하다고 느꼈다. 어린 시절부터 지켜봤고 가족으로나 청소년 개인으로나 소통해 왔다. 양육자 한 사람이 경제 활동과 양육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기력하다는 점이 가장 어려웠지만,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고 일촉즉발의 위태로운 상황 역시 아니었다. 하늬바람과 연락이 잘 닿지 않은 몇 개월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 믿기지 않았다. 지금의 상황이 오기까지 우리 센터를 비롯해서 가정과 학교와 지역 기관이 그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청소년 지원에 대해 실패를 논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날에는 실패감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할 수 있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청소년의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었다. 우선 교사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 중에서 확인이 필요한 부분들이 있었다. 큰 기대감 없이 양육자와 하늬바람에게 연락을 시도했는데 놀랍게도 두 사람 모두 통화가 되었다. 우리는 그들이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교사가 전해 준 내용 중에서 추측에 해당하는 부분을 구분할 수 있었다. 하늬바람이 구금되었다면 휴대전화로 통화가 될 리 없다. 이처럼 몇 가지 오류를 바로잡았다. 하늬바람은 법적으로 연루된 사건이 있어 소년 보호 처분을 받았으나 현재 구금 상황은 아니었다. 다만 현재 다른 문제 상황이 있어 관련 지원 시설에 머물고 있었다. 동생 샛바람이 혼자 거주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양육자가 생계 유지를 위해 타 지역으로 가자고 했으나 샛바람이 거부하여 함께 생활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양육자도 곤란했지만 어쩔 수 없이 샛바람을 가끔이나마 살피러 온다고 했다. 내용을 확인하여 수정된 부분들이 있지만, 조금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없었다. 현재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상황들은 위기의 정도가 높았고, 새로운 접근과 지속적 지원이 필요했다.
그저 스쳐 간 기회의 날들
하늬바람과 샛바람이 몇 년 전부터 가정 내에서부터 비롯하여 학교생활에도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인·물적 자원이 연결되어 있었다. 학교에서도 꾸준히 관심을 가졌으며, 지역 기관에서도 청소년들을 계속 지원해 왔다. 우리 센터에서는 위기의 순간에 연락을 받으면 긴급 출동을 하거나 면담을 진행하면서 그들 옆에 있었다. 여러 자원이 움직이면서 하늬바람과 샛바람에게 일어난 어려운 일들을 잘 해결해 왔다. 그런데 여러 기관의 사람들이 협력해 보아도 해결할 수 없는 핵심적 부분이 있었다. 양육자의 무기력과 양육 태도였다. 하늬바람과 샛바람의 지금 상황에 대해 학교, 지역 기관, 우리 센터 등의 역할과 기능을 점검하는 것은 현장의 몫으로 넘기고, 여기에서는 가정과 양육자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가 보고자 한다.
한부모 가정에서 한 사람이 양육과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을 모두 감당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부와 모, 두 사람이 함께 해도 지치고 힘든 일이다. 이 가정의 양육자는 경제 활동을 하면 자녀들에게 문제 상황이 일어나서 일을 할 여력이 없다고 했다. 그 이유로 오랫동안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았고, 곧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는 말만 여러 해 동안 반복하면서 결국 아무 활동도 하지 않았다. 자녀 양육을 위해 외부 활동을 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그 말이 무색할 만큼 자녀들에게 관심은 적었다. 하늬바람과 샛바람은 가정에서 대부분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늦게 일어나서 학교에 지각을 하는 날이 대부분이었고, 학교에 어렵게 가더라도 조퇴가 빈번했다. 가정 방문을 하면서 다소 놀란 부분이 있었는데, 거주 공간이 하늬바람과 샛바람이 아주 어릴 적에 생활하던 세팅으로 유지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유아기 자녀를 양육하는 가정에 있을 법한 물건들이 아주 오랫동안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것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물건들 위로 쌓인 것은 먼지가 아닌 세월이라고 느껴졌었다. 아마도 양육자가 배우자와 함께 거주하지 않았던 시점부터 가정 내의 시간이 멈추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사이에 자녀들은 아동에서 청소년으로 훌쩍 자라 있었다. 자녀와 양육자의 관계가 좋은 편도 아니었다. 큰소리가 나서 아동학대 신고가 된 일도 있었다. 아주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결코 안전한 상황도 아니었다.
이와 같이 생활과 양육에 있어서 무기력한 양육자의 태도는 고착화되었고, 그 사이에 자녀들은 청소년 시기를 맞이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양육자는 자녀들이 겪는 과정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결과론적 접근이지만 하늬바람과 샛바람이 왜 지금의 상황까지 흘러갔는지 되짚어 볼 때, 양육자가 청소년이 된 자녀들이 겪는 일에 대해 반응한 태도가 그 파장을 잠재우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크게 만든 격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들의 생활 패턴이 조금씩 틀어졌을 때, 지각이 잦아지고 학교에 가기 싫어했을 때, 또래 관계에서 갈등이 생겨 따돌림을 겪을 때, 이성 친구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경험할 때, 그 외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러 소소하고 수많은 순간마다 양육자는 청소년 곁에 있었다. 하지만 적절하게 역할을 하지 못했고, 무언가를 했다고 하더라도 적극적이지 않은 태도로 일방적인 말로 대응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 청소년이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양육자는 청소년을 다그치고 외면했다. 집을 나가라는 말로 서로 돌아섰으며, 청소년은 그렇게 집을 나온 후로 돌아가지 못한 채 범죄와 그 외의 상황들에 얽혀 있었다.
걷잡을 수 없게 된 것 같은 이 일이 하늬바람과 샛바람 두 청소년만의 아주 특별한 경험은 아니다. 우리 주변의 미성년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비슷한 일들을 겪는다. 이슈나 사건의 양상이 다르더라도 꽤 많은 공통점들을 찾아낼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하늬바람과 샛바람이 지금의 상황을 맞이하기 전, 양육자에게는 몇 번이나 일을 돌이키거나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자녀 양육의 어려움을 여러 가정을 통해 들을 때, 양육자가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놓쳐 버린 수많은 순간들이 뼈아프게 아쉬울 때가 많다. 청소년 시기에 본인 스스로도 혼란스럽고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을 겪을 때, 양육자들은 정작 관심이 없거나 자녀를 다그치고 몰아세운다. 그 과정이 자녀와의 손이 놓아지는 순간들이라는 걸 알면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양육자가 자녀의 일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고 말할 수 없이 속상할 때, 청소년 당사자는 더 암담하고 겁이 난다. 상황을 수습하고 바로잡아 보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는 않고, 결국 청소년은 조금씩 더 큰 위기의 상황을 맞는다. 이 과정에서 양육자가 자신을 관심 있게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나 성장 과정에서 채워지지 않은 결핍의 부분을 채우고자 하는 마음이 뒤섞이기도 하지만 그 무엇도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무엇이 청소년들을, 미성년 자녀들을 점점 더 위기의 상황으로 치닫게 하는 것일까? 양육자가 어떻게 하면 기회의 순간을 알아챌 수 있으며, 청소년 자녀의 어려움을 수습 가능한 때에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쩌면 당연해야 하는 것들
교육복지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난해한 상황은 양육자가 청소년이 받을 수 있는 지원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때이다. 간단하게 ‘보호자 비동의 사례’라고 하자. 청소년에게 어떤 일이든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보호자의 거부로 지원이 불가한 경우가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몇 건 있는 정도가 아니라 꽤 잦은 빈도로 마주할 만큼 많다. 사실 이런 케이스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학교와 지역교육복지센터, 또는 아동·청소년 지원 기관 종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양육자가 동의할 때까지 누군가가 설득하는 것 뿐이다.
봄봄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청소년 꽃샘바람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의뢰가 들어와서 중학교 3년을 거쳐 어느덧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을 남겨 두고 있다. 기초 학습에 도움이 필요했고, 또래 관계를 전혀 이루지 못해서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경우 대개 종합 심리 검사를 통해 발달의 전반을 확인하고 어느 지점에 대해 지원할지 계획을 세운다. 꽃샘바람 역시 그 과정이 필요해서 제안했지만 양육자가 검사를 거부했다. 미성년 자녀에 대해 전문 심리 검사를 실시할 경우, 양육자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현재 미성년 자녀에 대한 양육자의 권한이 법적으로 그렇게 설정되어 있다. 결국 꽃샘바람은 양육자의 거부로 검사도 실시하지 못한 채 10대 후반을 맞이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생활도 어려웠지만, 고등학교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단순한 과제조차 이해하지 못했고, 그러니 수행조차 할 수도 없었다. 꽃샘바람과 친하게 지내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본인을 이용하려는 몇몇을 친구라고 받아들여서 곤란한 상황도 여러 번이었다. 경계선 이하의 지능이 예상되는 정도였지만, 확인할 수 없으니 전문적 교육과 지원을 받을 수도 없었다. 우리 센터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학습과 심리·정서의 부분을 살펴 줄 수 있는 선생님을 통한 멘토링이었다.
아주 운이 좋아서 전문 심리 상담가인 멘토를 만났다. 3년 동안 멘토링으로 꾸준한 만남을 지속하던 중 멘토는 우리 기관에 요청했다. 같이 양육자를 설득하자는 내용이었다. 아무리 살펴도 꽃샘바람에게 정확한 진단과 전문적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담당 실무자와 멘토가 양육자를 만났고, 현재 발달 단계에 따라 진로 설정이라는 과업을 이루는 데 있어 종합 심리 검사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어렵게 동의를 얻었다. 드디어 꽃샘바람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결과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지 않았다. 경계선 지능 즈음으로 예측했던 것과 달리 지적장애 진단을 받을 수 있는 정도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속도로 같은 양의 지식을 받아들이기 힘든 상태였다. 그동안 꽃샘바람은 일반 학교 일반 교육과정에서 여러 가지 것들이 이해되지 않는 채로 생활해 온 것이었다. 맞춤형 교육과 지원이 필요했다. 검사 이후 양육자도 해석 상담을 받았다. 하지만 양육자는 여기에서 또 한 번 외면했다.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꽃샘바람이 받을 수 있는 교육과 지원 등에 대해 일체 거부했다.
또 1년의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멘토 선생님이 꽃샘바람을 만나고 있다. 다행히 멘토가 느린학습자 전문 교육 기관의 종사자처럼 꽃샘바람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해 주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메뉴를 선정하고 주문하고 결제하는 과정을 해낼 수 있게 했다. 아주 느리지만 반복적으로, 함께 경험해 보고 혼자 도전하게 하면서 멘토는 옆에서 응원하고 뒤에서 지켜봐 주었다. 이제 멘토와 우리 기관은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을 앞두고 있는 꽃샘바람에게 1년 동안 어떤 자립의 과정을 갖게 할지, 진로 설정이나 이후의 삶을 어떻게 계획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할지 고민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양육자를 설득하고 싶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구체적 진로를 설정하고 준비해야 하는 과정에서 꽃샘바람은 어떤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 현재 성적이나 자격 등을 고려하지 못한 채 명성 높은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어도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 센터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지원이 종결된다. 이후에 꽃샘바람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해야 할지 막연하기만 한 상황이다.
꽃샘바람의 양육자는 자녀의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도움이 되는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이 외에도 보호자 비동의 사례는 양육자가 자녀에 대해 관심이 적거나, 다른 일들이 더 우선시되거나, 양육자의 권한이 자녀에게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작용하지 못하는 등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현재 교육부에서 법안을 발의하여 논의 과정에 있는 ‘학생맞춤통합지원법’❷ 중에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선지원 후동의’ 내용이 담겨 있다. 위기 상황의 청소년이 발견된 경우, 우선적으로 필요한 지원을 실시할 수 있도록 허용 지점을 마련하는 것이다. 아동·청소년을 지원하는 영역에서는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지만, 미성년 자녀에 대한 법적 권한이 양육자에게 부여된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효용성 있게 작용할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적어도 막을 수 있는 비극은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지역에서는 극심한 우울을 호소하는 청소년에게 교사가 정신의학과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연결했으나 양육자가 이를 허용하지 않아서 진행이 무산되고, 바로 다음 날 청소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도 있었다. 청소년이 도움을 요청했던 그날, 보호자 동의 전에 지원이 가능했다면 지금 우리 곁에 그 청소년이 존재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마음을 싣게 된다. 그렇게 놓쳐 버린 한 인생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런 지점에서 청소년의 위기 상황에 대해 근본적 해결을 얻을 수는 없지만, 우리가 청소년을 조금 더 지켜 낼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는 과정이라는 데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❸
차선보다 최선이 필요한 시점
먹고살기에도 어려운 시대에 감히 양육을 말한다. 정치, 경제, 무엇 하나 꼬집어 말할 수 없이 힘들어 우리네 삶이 휘청거린다. 그러나 생계가 우선되는 상황 때문에 계속 일어나고 확산되는 비극을 방치할 수 없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도, 내가 경험한 가난을 자녀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도, 내가 살아오면서 돈이 많은 게 가장 유리했던 경험들 때문에 부의 축적이 가장 중요한 과업처럼 되어 버렸어도 우리의 자녀를, 청소년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다음 세대를 만들어 갈 청소년이 행복하지 않다. 세대가 내려갈수록 더 이상 자녀를 낳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진다고 하여 왜 출산을 계획하지 않는지에 대해 조사했던 자료가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자녀 양육에 있어서 남녀의 성역할이 많이 평등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 갖는 부담이 크다는 점, 국가가 상당 부분 지원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실에 대해서도 조명했다. 그중 가장 귀 기울이게 된 대목은 ‘현재 내가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수많은 이야기를 해도 결국 ‘행복’이라는 두 글자 앞에 소환되는 것 같다. 세계 행복 지수 통계에서 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이 나라에서 조금이라도 행복으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처럼 성찰하며 한 걸음의 애씀을 더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서 실효성 있는 실천을 위해 양육자의 자리에 선 분들께 청소년이 보내는 비상 신호를 전하고 도움을 청한다.
앞서 ‘보호자 비동의 사례’를 다뤘다. 학교 안에서 청소년에게 어려움이 드러났을 때, 교사는 양육자에게 연락을 취한다.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우울하고 조용하게 보내는지, 흥분하여 폭력적인지, 수업 시간에 잠에서 깨지 못하는지, 매 수업마다 방해 요소를 가지고 교실을 혼란스럽게 하는지, 친구가 없는지, 너무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지만 문제 상황을 일으키는지 등 청소년은 학교에서 어떠한 모습을 보인다. 학교 밖 청소년들을 제외하고서라도 한 반에 20명 내외로 존재하는 초등부터 고등까지의 청소년들이 저마다의 태도로 학교생활을 하면서 일상을 보내는데, 교사들이 이상기류를 감지할 정도라는 것은 양육자가 자녀에 대해 살펴야 할 지점이 있다는 의미이다. 내 아이가 안전하게 있어야 할 교육 기관에서 양육자에게 연락을 취할 때, 양육자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보호자들이 학교, 학원, 유치원 등에서 전화가 오면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무슨 일이 있어야 연락이 오기 때문에, 전화벨이 울리는 순간부터 긴장이다. 또한 안타깝게도 학교와 양육자 사이에서 갈등이 깊어진 케이스들도 여럿 보았다. 작은 규모의 사회일수록 누군가의 언행이 집중되고 빠르게 소문이 퍼지는데, 그 피해를 보았다는 양육자들도 많다. 학교에서 교사들과 또래 친구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고, 결국 사실을 해명할 틈도 없이 피해를 입은 채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 상황들도 있다. 이처럼 안타까운 사례는 다른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학교 안에서 문제 상황이 일방적으로 한 대상을 매도하거나 대상화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이런 케이스로 일축될 수는 없고, 분명 양육자가 취해야 할 입장과 태도는 잇따르기 때문에 이에 대해 요청하고 싶다.
여러 단위에서 ‘수용적 태도’가 사라졌다. 우선 양육자가 교사의 목소리에 대한 수용적 태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선 교사는 청소년을 양육자 다음으로 가장 오랜 시간 곁을 지키는 사람이다. 한국 교육이 아직은 다양성을 담아내기 어려운 현장의 모습에 머물러 있지만, 교실에서도 어느 정도의 개인적 성향은 존중된다. 그러나 학교생활에서 사회의 규칙과 질서를 체득해 가는 과정에서 교사가 양육자에게 연락을 취하는 정도라면 적어도 내 자녀가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음을 알아채야 한다.
최근 지원 요청을 했던 회오리초등학교에서 청소년 돌개바람에 대해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여 교육청 관계자와 센터가 들어가 회의를 진행했다. 돌개바람은 매 수업 시간마다 책상이나 물건을 두드리며 소리를 내고, 교실 밖으로 나가는 등 돌발 행동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회오리초등학교 내에서 그 누구도 양육자와 정확하게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점이었다. 돌개바람이 무엇 때문에 이런 행동이 나타나는지, 보이는 것 외에 어떤 어려움들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접근해 들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작조차 못 하는 상태로 학교는 도움을 요청했다. 담임 교사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병 휴직을 내고 싶다고 했고, 이에 따라 우리 센터는 위기 상황에 있는 돌개바람을 어떻게 만나면 좋을지 고민해 보았다. 어떻게 하면 돌개바람에게 낙인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하여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혹은 돌개바람이 교실 환경과 수업 시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지 방안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길고 긴 회의 끝에 전혀 다른 핵심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궁극적으로 학교가 원하는 바는 양육자에게 돌개바람이 정신의학과의 전문적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는 제언을 다른 누군가가 대신 해 주는 것이었다.
학교 입장에서 돌개바람은 회오리초등학교로 전학을 온 이력이 있지만, 이전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학을 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확인할 길이 없다고 했다. 양육자에게 질의해 보았지만 개인정보라는 명목으로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전 학교에서도 어떤 일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모든 것을 엄폐하려는 양육자의 태도로 꽤 난처한 상황이었다. 돌개바람이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보이지만 학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교사의 눈에 돌개바람은 정신의학과의 전문 진료와 진단,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확인되었지만 제언조차 할 수 없었다. 취약 계층의 가정도 아니었다. 생계비나 치료비 등으로 회유하고 설득할 여지도 보이지 않았다. 양육자가 강한 민원성 발언들을 했던 정황도 있어서 교사는 더욱 뒷걸음질 치고, 마땅히 교사가 해야 할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우선 교사의 역할을 다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대해 지적하고, 학교가 해야 할 일이며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안타까웠다. 교사들은 더없이 위축된 모습이었다. 2023년 7월 18일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사건이 단지 개인의 일이 아님을 보여 준다. 학교 현장의 한계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다각도에서 제시되어야 한다. 그중 아주 단편적인 부분이지만 특별히 양육자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한 가지는 부디 교사의 의도를 왜곡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최소한 교사는 청소년에 대해 관심을 가졌을 때 움직인다. 정상의 범주를 가늠할 수 없는 요즘이지만, 특별히 심리 정서적 어려움이 없고 교직에 애정을 가진 교사라면 위기 상황에 놓인 청소년을 모르는 체하지 않는다. 양육자로서 내 자녀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청소년 곁에서 그를 바라보고 제언하는 교사의 말에 대해 수용적 태도를 갖는다면, 내 자녀의 속마음까지는 모르더라도 그가 보내는 비상 신호에 대해서는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작은 마음의 틈이 주는 가능성
양육자는 교사의 의견과 동시에 청소년 당사자의 입장 역시 수용해 주어야 한다. 양육의 권한을 갖더라도 자녀의 의견을 묻고, 그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해야만 한다. 자칫 양육자는 자녀를 자신에게 종속된 존재로 여겨지기 십상이며, 양육자 본인의 상황이 우선시되기 때문에 가정 내 갈등이 심화되는 경우를 많이 목격한다. 성인 한 사람의 신체·심리적 건강, 경제 활동, 부부 또는 연인과의 관계, 기타 사회적 관계, 생계비, 긴급한 위기 사안 등 다양한 영역의 상황이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어서 자녀에 대한 내용이 늘 다음 순서로 다뤄진다. 그러나 청소년은 더 이상 어리기만 한, 무엇을 잘 모르는 존재가 아니다. 더구나 청소년 역시 삶의 영역에서 주요하게 다뤄져야 할 내용들이 많다. 우리가 청소년과 대화를 이어가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많다. 1년에 적게는 수백 명에서 천 명 사이를 오가며 깊고 얕은 대화들을 해 나가는데, 그중 백여 명의 청소년들은 학교나 가정에서 어려움이 있다고 하는 이들이다. 양육자도 교사도 대화에 실패하여 센터 실무자와 함께 청소년을 만나러 나가면 청소년과 마주한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마치고 으레 청소년에게 묻는다.
“바람 님이 가장 고민되거나 힘든 점은 뭐예요?”
“바람이가 생각할 때 학교생활이 왜 힘들어요?”
“바람 청소년이랑 가정이나 학교에서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누구예요?”
“여러 가지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데, 바람 님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건 뭐예요?”
물론 처음부터 자기 생각을 잘 말해 주지는 않는다. 그런 때에는 청소년이 관심 있어 하는 활동을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묻고, 괜찮은 카페에도 가면서 시간을 보낸다. 길게는 두어 시간, 짧게는 1시간 정도 만나면서 말을 섞을 만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고받는다. 그러고 나면 청소년들은 저마다 자기 이야기가 있다. 전혀 아무 이야기도 해 줄 것 같지 않은 청소년도 어느 날 입을 떼고 스스로 말한다. 우리가 만난 이들 중 은둔 고립으로 가장 어려운 케이스에 꼽히는 청소년 꽁지바람은 최근에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친한 친구 한 명이 있었어요. 고1 때까지 같은 반이었는데, 같이 학교도 다니고 급식도 같이 먹었어요. 방과 후에는 같이 게임도 했고요. 그런데 2학년이 되면서 다른 반이 되었어요. 저는 다른 친구는 사귀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유일했던 그 친구와 점점 멀어지면서 학교생활이 힘들어진 것 같아요. 그 친구와 계속 친하게 지냈다면 제가 이렇게 학교에 가지 않고 자퇴하는 일은 없었을 것 같기도 해요.”
처음 만났을 때 눈도 마주치지 않던 청소년이었다. 1년의 시간이 지나 은둔 고립의 생활은 심화되었고, 결국 자퇴를 결정했다. 가족과도 소통하지 않지만 유일하게 우리 센터에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꺼내 주었다. 이제라도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이 상황까지 오지 않도록 할 수 있었던 지점을 돌이켜 볼 수밖에 없었다. 자녀에 대해 관심이 있는 양육자는 학교생활, 또래 관계, 학업 성취도, 정서 상황, 신체 발달 등 다양한 부분에 대해 살피고 어려움이 있는 지점에 대해서는 도움을 주고자 애쓴다. 만약 꽁지바람이 고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양육자가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꽁지바람과 양육자가 대화했다면, 그리고 청소년의 어려움을 알아챘다면 담임 교사에게 다음 학년이 될 때 큰 무리가 없다면 친한 친구와 같은 반으로 배정될 수 있도록 요청했을 수 있다. 코로나19에 영유아, 청소년기를 지난 이들은 사회성을 개발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무리하지 않게 조금씩 관계를 넓혀 갈 수 있도록 친밀하게 느끼는 친구와 같은 반으로 배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안정감을 느끼고 조금씩 다른 사람과 사귀어 가며 힘든 시기를 지나간다. 하지만 꽁지바람의 양육자는 조부모였다. 부모는 동거하지 않았고, 조부모는 생계를 이어 가며 청소년을 돌봐야 했기 때문에 여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꽁지바람의 부 또는 모가 양육을 계속했다면, 꽁지바람이 유아기 때 홀로 버려진 것 같은 두려움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그 후에라도 상처가 잘 보듬어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등의 아쉬움은 많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학교생활을 포기하게 된 시점에 양육자가 조금의 관심과 도움을 주었더라면, 꽁지바람이 적어도 은둔 고립의 생활로 들어가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갑작스럽게 심각한 대화를 해 나갈 수 없다. 일상의 공유 또는 사소한 대화가 이어질 때, 삶의 고민을 마주한 상황에서 대화할 수 있는 양육자와 청소년 자녀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청소년들이 학교 안에서 겪는 갈등의 정도와 빈도수가 점차 심각성을 띈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 상황에 대해 학교 체계 안에서 시스템을 갖추고 접근하며 해결해야 하는 지점도 있지만, 그 몫은 교육부의 역할로 맡기고 양육자가 가정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단순하게 취약 계층의 자녀가 문제를 일으킨다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경제적 상황이 낫고 어렵고 관계없이, 자녀에게 관심이 많고 적고 관계없이, 대다수의 학부모가 본인이나 자기 자녀만의 권리와 입장을 내세운다. 학부모가 가진 사회적 지위와 권력으로 교사를 괴롭게 하거나, 경제·문화·심리적 상황 등을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숨기려고만 하는 행위는 자녀를 위한다고 취하는 양육자의 태도겠지만 자칫 개인의 이기심으로 사회적 어려움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함께 잘 살아야 한다. 같이 행복해야 한다. 그 길에 나와 내 자녀가 있음을 기억하고 청소년에게 그리고 교사에게 마음의 공간을 한 뼘씩 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부디 내 자녀에 대한 양육을 포기하지 않기를 당부한다.
교실을 지켜 내는 교사분들에게 연대를 말한 바 있다. 양육자분들에게 몇 가지 요청을 해 보았지만, 사실상 개인에게만 양육을 온전히 책임지고 모든 역할을 다 해내라고 요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위기 상황에 놓인 가정에서는 생계 또는 생명과 직결된 일들을 해결해야 할 수 있고, 어쩌면 그들도 도움을 요청하고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일 수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청소년이 겪는 위기 상황의 현주소,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교사와 양육자가 어떠한 경각심을 가지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살펴보았다. 개인의 역량이 더해지고 협력의 체계를 갖추어 가자고 했다. 그러나 조금 더 거시적인 측면에서 다각도의 지원과 변화가 필요하다. 이제는 어려움을 겪는 위기에 놓인 청소년, 학교 현장, 이와 연결된 구성원들을 위해 근본적 해결 방안에 다가설 수 있도록 사회 구조적 접근을 살펴보아야 할 때이다.
❶
학교와 지역 기관 관계자가 모여 청소년 지원 사례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실명을 다루지 않으며, 협력이 필요하거나 지원 방향에 대해 도움을 얻고자 할 때 안건을 올려 다룸.
❷
“모든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기존 ‘사업별 학생 지원 체계’를 ‘학생 맞춤형 통합지원 체계’로 개편한다. 학생맞춤통합지원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올해 중 ‘학생맞춤통합지원법’ 제정을 추진한다. 제정안에는 위기학생 긴급지원,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교육감의 학업복귀 지원 근거 등이 명시된다.”(교육부 정책 브리핑, 2023년
2월 22일.)
❸
학생맞춤형통합지원법안은 2024년 11월 27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의결되었다. 하지만 위기학생의 학습·심리·진로·안전 등이 현저하게 위협받거나 다른 학생을 위협하는 경우 보호자 동의 없이도 학생 맞춤 통합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잊고 지내는 당연한 것의 부재
- 지금을 살아가는 부모님들께
글
발랑(신선웅)
woong_51@hanmail.net
관악교육복지센터 센터장
잠시 길을 잃었던 순간
최근의 일이다. 활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막연함을 느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막다른 길에 우두커니 선 것 같았다. 돌아설 길도 보이지 않고, 눈앞에 마주한 높은 벽을 넘어설 방법도 없는 것만 같았다.
지역 학교 및 기관 간 사례 회의 자리❶에서 한 교사로부터 위기 상황의 청소년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동쪽중학교에 재학 중인 어느 청소년이 양육자 없이 혼자 지내고 있다고 했다. 형제가 있으나 소년원에 수감 중이고, 양육자는 경제 활동을 위해 타 지역으로 갔다. 같이 생활하던 친척이 있었으나 앓고 있던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으로 모셔졌다. 이와 같은 이유로 중학생 청소년 혼자 거주하게 되었다고 했다. 교사는 혼자 지내는 청소년도 걱정되고, 그가 홀로 지내게 된 공간이 또래 청소년들의 아지트가 될 것으로 예상되어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사례 회의 안건으로 올려 자문을 구하는 내용이었다. 위기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았다. 환경적 배경의 면면이 비슷한 청소년을 지원하고 있었는데, 설마 그 가정인가 싶었다. 청소년 지원 활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연습하는 부분이 ‘묻고 확인하기’이다. 짐작이 얼마나 큰 오류를 낳는지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사에게 확인했다. 아니기를 바랐으나, 역시 그랬다. 우리 센터가 지원하던 청소년들 이야기였다. 그렇게 청소년 하늬바람과 샛바람의 소식을 들었다.
두 청소년은 내가 교육복지센터 활동을 시작하던 해에 만났던 이들이다. 서쪽초등학교에서 의뢰되어 지원하던 이들이었다. 불과 작년에도 담당 실무자와 함께 직접 가정 방문을 했고, 양육자 면담도 진행했으며, 하늬바람과 맞춤 지원 활동도 함께 했다. 그 후로 만나기로 한 약속이 몇 번 어그러지면서 다소 센터와 관계가 소홀해지는 느낌이었는데, 이런 상황까지 치닫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하늬바람이 구금 상태이고, 양육자가 샛바람을 양육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은 믿을 수가 없었다. ‘설마, 아닐 거야’, ‘아, 어떻게 해야 하지?’, ‘왜 이렇게 됐지?’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그날 밤 내내 이어졌다.
교육복지 활동이 녹록지 않아도 지치지 않고 계속 해낼 수 있는 동력은 청소년의 변화 지점이 반드시 언젠가는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마냥 긍정적이거나 희망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청소년에 대해서는 어떤 상황을 겪고 있더라도 전환점이 있다고 믿는 편이다. 그 타이밍이 저마다 다르고, 어느 순간이 그에게 작용하여 삶에 동력을 얻게 되는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성장의 가능성을 지닌 청소년 시기는 어려움을 겪다가도 자신의 설 자리를 찾게 되면 안정되고 점차 달라지기 시작한다. 청소년 본인도, 주변 이들도 그 변화는 느끼기 마련이다. 청소년을 지원하는 일은 청소년이 겪는 위기 상황을 모두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육이나 복지, 다른 그 무엇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가장 위태로운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하고, 지금의 어려운 지점을 잘 견뎌 낼 수 있도록 지지 체계가 되어 주는 데에 의미가 있다. 그리고 청소년이 내적인 힘을 키워 본인의 상황에 대처하고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활동 안에서 이렇게 정리하고 정의한 지점들이 모두 틀린 것만 같았다.
처음으로 막연하다고 느꼈다. 어린 시절부터 지켜봤고 가족으로나 청소년 개인으로나 소통해 왔다. 양육자 한 사람이 경제 활동과 양육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기력하다는 점이 가장 어려웠지만,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고 일촉즉발의 위태로운 상황 역시 아니었다. 하늬바람과 연락이 잘 닿지 않은 몇 개월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 믿기지 않았다. 지금의 상황이 오기까지 우리 센터를 비롯해서 가정과 학교와 지역 기관이 그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청소년 지원에 대해 실패를 논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날에는 실패감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할 수 있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청소년의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었다. 우선 교사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 중에서 확인이 필요한 부분들이 있었다. 큰 기대감 없이 양육자와 하늬바람에게 연락을 시도했는데 놀랍게도 두 사람 모두 통화가 되었다. 우리는 그들이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교사가 전해 준 내용 중에서 추측에 해당하는 부분을 구분할 수 있었다. 하늬바람이 구금되었다면 휴대전화로 통화가 될 리 없다. 이처럼 몇 가지 오류를 바로잡았다. 하늬바람은 법적으로 연루된 사건이 있어 소년 보호 처분을 받았으나 현재 구금 상황은 아니었다. 다만 현재 다른 문제 상황이 있어 관련 지원 시설에 머물고 있었다. 동생 샛바람이 혼자 거주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양육자가 생계 유지를 위해 타 지역으로 가자고 했으나 샛바람이 거부하여 함께 생활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양육자도 곤란했지만 어쩔 수 없이 샛바람을 가끔이나마 살피러 온다고 했다. 내용을 확인하여 수정된 부분들이 있지만, 조금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없었다. 현재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상황들은 위기의 정도가 높았고, 새로운 접근과 지속적 지원이 필요했다.
그저 스쳐 간 기회의 날들
하늬바람과 샛바람이 몇 년 전부터 가정 내에서부터 비롯하여 학교생활에도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인·물적 자원이 연결되어 있었다. 학교에서도 꾸준히 관심을 가졌으며, 지역 기관에서도 청소년들을 계속 지원해 왔다. 우리 센터에서는 위기의 순간에 연락을 받으면 긴급 출동을 하거나 면담을 진행하면서 그들 옆에 있었다. 여러 자원이 움직이면서 하늬바람과 샛바람에게 일어난 어려운 일들을 잘 해결해 왔다. 그런데 여러 기관의 사람들이 협력해 보아도 해결할 수 없는 핵심적 부분이 있었다. 양육자의 무기력과 양육 태도였다. 하늬바람과 샛바람의 지금 상황에 대해 학교, 지역 기관, 우리 센터 등의 역할과 기능을 점검하는 것은 현장의 몫으로 넘기고, 여기에서는 가정과 양육자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가 보고자 한다.
한부모 가정에서 한 사람이 양육과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을 모두 감당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부와 모, 두 사람이 함께 해도 지치고 힘든 일이다. 이 가정의 양육자는 경제 활동을 하면 자녀들에게 문제 상황이 일어나서 일을 할 여력이 없다고 했다. 그 이유로 오랫동안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았고, 곧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는 말만 여러 해 동안 반복하면서 결국 아무 활동도 하지 않았다. 자녀 양육을 위해 외부 활동을 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그 말이 무색할 만큼 자녀들에게 관심은 적었다. 하늬바람과 샛바람은 가정에서 대부분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늦게 일어나서 학교에 지각을 하는 날이 대부분이었고, 학교에 어렵게 가더라도 조퇴가 빈번했다. 가정 방문을 하면서 다소 놀란 부분이 있었는데, 거주 공간이 하늬바람과 샛바람이 아주 어릴 적에 생활하던 세팅으로 유지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유아기 자녀를 양육하는 가정에 있을 법한 물건들이 아주 오랫동안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것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물건들 위로 쌓인 것은 먼지가 아닌 세월이라고 느껴졌었다. 아마도 양육자가 배우자와 함께 거주하지 않았던 시점부터 가정 내의 시간이 멈추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사이에 자녀들은 아동에서 청소년으로 훌쩍 자라 있었다. 자녀와 양육자의 관계가 좋은 편도 아니었다. 큰소리가 나서 아동학대 신고가 된 일도 있었다. 아주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결코 안전한 상황도 아니었다.
이와 같이 생활과 양육에 있어서 무기력한 양육자의 태도는 고착화되었고, 그 사이에 자녀들은 청소년 시기를 맞이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양육자는 자녀들이 겪는 과정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결과론적 접근이지만 하늬바람과 샛바람이 왜 지금의 상황까지 흘러갔는지 되짚어 볼 때, 양육자가 청소년이 된 자녀들이 겪는 일에 대해 반응한 태도가 그 파장을 잠재우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크게 만든 격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들의 생활 패턴이 조금씩 틀어졌을 때, 지각이 잦아지고 학교에 가기 싫어했을 때, 또래 관계에서 갈등이 생겨 따돌림을 겪을 때, 이성 친구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경험할 때, 그 외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러 소소하고 수많은 순간마다 양육자는 청소년 곁에 있었다. 하지만 적절하게 역할을 하지 못했고, 무언가를 했다고 하더라도 적극적이지 않은 태도로 일방적인 말로 대응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 청소년이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양육자는 청소년을 다그치고 외면했다. 집을 나가라는 말로 서로 돌아섰으며, 청소년은 그렇게 집을 나온 후로 돌아가지 못한 채 범죄와 그 외의 상황들에 얽혀 있었다.
걷잡을 수 없게 된 것 같은 이 일이 하늬바람과 샛바람 두 청소년만의 아주 특별한 경험은 아니다. 우리 주변의 미성년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비슷한 일들을 겪는다. 이슈나 사건의 양상이 다르더라도 꽤 많은 공통점들을 찾아낼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하늬바람과 샛바람이 지금의 상황을 맞이하기 전, 양육자에게는 몇 번이나 일을 돌이키거나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자녀 양육의 어려움을 여러 가정을 통해 들을 때, 양육자가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놓쳐 버린 수많은 순간들이 뼈아프게 아쉬울 때가 많다. 청소년 시기에 본인 스스로도 혼란스럽고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을 겪을 때, 양육자들은 정작 관심이 없거나 자녀를 다그치고 몰아세운다. 그 과정이 자녀와의 손이 놓아지는 순간들이라는 걸 알면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양육자가 자녀의 일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고 말할 수 없이 속상할 때, 청소년 당사자는 더 암담하고 겁이 난다. 상황을 수습하고 바로잡아 보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는 않고, 결국 청소년은 조금씩 더 큰 위기의 상황을 맞는다. 이 과정에서 양육자가 자신을 관심 있게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나 성장 과정에서 채워지지 않은 결핍의 부분을 채우고자 하는 마음이 뒤섞이기도 하지만 그 무엇도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무엇이 청소년들을, 미성년 자녀들을 점점 더 위기의 상황으로 치닫게 하는 것일까? 양육자가 어떻게 하면 기회의 순간을 알아챌 수 있으며, 청소년 자녀의 어려움을 수습 가능한 때에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쩌면 당연해야 하는 것들
교육복지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난해한 상황은 양육자가 청소년이 받을 수 있는 지원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때이다. 간단하게 ‘보호자 비동의 사례’라고 하자. 청소년에게 어떤 일이든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보호자의 거부로 지원이 불가한 경우가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몇 건 있는 정도가 아니라 꽤 잦은 빈도로 마주할 만큼 많다. 사실 이런 케이스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학교와 지역교육복지센터, 또는 아동·청소년 지원 기관 종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양육자가 동의할 때까지 누군가가 설득하는 것 뿐이다.
봄봄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청소년 꽃샘바람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의뢰가 들어와서 중학교 3년을 거쳐 어느덧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을 남겨 두고 있다. 기초 학습에 도움이 필요했고, 또래 관계를 전혀 이루지 못해서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경우 대개 종합 심리 검사를 통해 발달의 전반을 확인하고 어느 지점에 대해 지원할지 계획을 세운다. 꽃샘바람 역시 그 과정이 필요해서 제안했지만 양육자가 검사를 거부했다. 미성년 자녀에 대해 전문 심리 검사를 실시할 경우, 양육자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현재 미성년 자녀에 대한 양육자의 권한이 법적으로 그렇게 설정되어 있다. 결국 꽃샘바람은 양육자의 거부로 검사도 실시하지 못한 채 10대 후반을 맞이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생활도 어려웠지만, 고등학교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단순한 과제조차 이해하지 못했고, 그러니 수행조차 할 수도 없었다. 꽃샘바람과 친하게 지내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본인을 이용하려는 몇몇을 친구라고 받아들여서 곤란한 상황도 여러 번이었다. 경계선 이하의 지능이 예상되는 정도였지만, 확인할 수 없으니 전문적 교육과 지원을 받을 수도 없었다. 우리 센터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학습과 심리·정서의 부분을 살펴 줄 수 있는 선생님을 통한 멘토링이었다.
아주 운이 좋아서 전문 심리 상담가인 멘토를 만났다. 3년 동안 멘토링으로 꾸준한 만남을 지속하던 중 멘토는 우리 기관에 요청했다. 같이 양육자를 설득하자는 내용이었다. 아무리 살펴도 꽃샘바람에게 정확한 진단과 전문적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담당 실무자와 멘토가 양육자를 만났고, 현재 발달 단계에 따라 진로 설정이라는 과업을 이루는 데 있어 종합 심리 검사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어렵게 동의를 얻었다. 드디어 꽃샘바람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결과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지 않았다. 경계선 지능 즈음으로 예측했던 것과 달리 지적장애 진단을 받을 수 있는 정도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속도로 같은 양의 지식을 받아들이기 힘든 상태였다. 그동안 꽃샘바람은 일반 학교 일반 교육과정에서 여러 가지 것들이 이해되지 않는 채로 생활해 온 것이었다. 맞춤형 교육과 지원이 필요했다. 검사 이후 양육자도 해석 상담을 받았다. 하지만 양육자는 여기에서 또 한 번 외면했다.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꽃샘바람이 받을 수 있는 교육과 지원 등에 대해 일체 거부했다.
또 1년의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멘토 선생님이 꽃샘바람을 만나고 있다. 다행히 멘토가 느린학습자 전문 교육 기관의 종사자처럼 꽃샘바람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해 주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메뉴를 선정하고 주문하고 결제하는 과정을 해낼 수 있게 했다. 아주 느리지만 반복적으로, 함께 경험해 보고 혼자 도전하게 하면서 멘토는 옆에서 응원하고 뒤에서 지켜봐 주었다. 이제 멘토와 우리 기관은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을 앞두고 있는 꽃샘바람에게 1년 동안 어떤 자립의 과정을 갖게 할지, 진로 설정이나 이후의 삶을 어떻게 계획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할지 고민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양육자를 설득하고 싶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구체적 진로를 설정하고 준비해야 하는 과정에서 꽃샘바람은 어떤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 현재 성적이나 자격 등을 고려하지 못한 채 명성 높은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어도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 센터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지원이 종결된다. 이후에 꽃샘바람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해야 할지 막연하기만 한 상황이다.
꽃샘바람의 양육자는 자녀의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도움이 되는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이 외에도 보호자 비동의 사례는 양육자가 자녀에 대해 관심이 적거나, 다른 일들이 더 우선시되거나, 양육자의 권한이 자녀에게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작용하지 못하는 등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현재 교육부에서 법안을 발의하여 논의 과정에 있는 ‘학생맞춤통합지원법’❷ 중에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선지원 후동의’ 내용이 담겨 있다. 위기 상황의 청소년이 발견된 경우, 우선적으로 필요한 지원을 실시할 수 있도록 허용 지점을 마련하는 것이다. 아동·청소년을 지원하는 영역에서는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지만, 미성년 자녀에 대한 법적 권한이 양육자에게 부여된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효용성 있게 작용할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적어도 막을 수 있는 비극은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지역에서는 극심한 우울을 호소하는 청소년에게 교사가 정신의학과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연결했으나 양육자가 이를 허용하지 않아서 진행이 무산되고, 바로 다음 날 청소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도 있었다. 청소년이 도움을 요청했던 그날, 보호자 동의 전에 지원이 가능했다면 지금 우리 곁에 그 청소년이 존재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마음을 싣게 된다. 그렇게 놓쳐 버린 한 인생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런 지점에서 청소년의 위기 상황에 대해 근본적 해결을 얻을 수는 없지만, 우리가 청소년을 조금 더 지켜 낼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는 과정이라는 데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❸
차선보다 최선이 필요한 시점
먹고살기에도 어려운 시대에 감히 양육을 말한다. 정치, 경제, 무엇 하나 꼬집어 말할 수 없이 힘들어 우리네 삶이 휘청거린다. 그러나 생계가 우선되는 상황 때문에 계속 일어나고 확산되는 비극을 방치할 수 없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도, 내가 경험한 가난을 자녀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도, 내가 살아오면서 돈이 많은 게 가장 유리했던 경험들 때문에 부의 축적이 가장 중요한 과업처럼 되어 버렸어도 우리의 자녀를, 청소년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다음 세대를 만들어 갈 청소년이 행복하지 않다. 세대가 내려갈수록 더 이상 자녀를 낳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진다고 하여 왜 출산을 계획하지 않는지에 대해 조사했던 자료가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자녀 양육에 있어서 남녀의 성역할이 많이 평등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 갖는 부담이 크다는 점, 국가가 상당 부분 지원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실에 대해서도 조명했다. 그중 가장 귀 기울이게 된 대목은 ‘현재 내가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수많은 이야기를 해도 결국 ‘행복’이라는 두 글자 앞에 소환되는 것 같다. 세계 행복 지수 통계에서 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이 나라에서 조금이라도 행복으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처럼 성찰하며 한 걸음의 애씀을 더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서 실효성 있는 실천을 위해 양육자의 자리에 선 분들께 청소년이 보내는 비상 신호를 전하고 도움을 청한다.
앞서 ‘보호자 비동의 사례’를 다뤘다. 학교 안에서 청소년에게 어려움이 드러났을 때, 교사는 양육자에게 연락을 취한다.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우울하고 조용하게 보내는지, 흥분하여 폭력적인지, 수업 시간에 잠에서 깨지 못하는지, 매 수업마다 방해 요소를 가지고 교실을 혼란스럽게 하는지, 친구가 없는지, 너무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지만 문제 상황을 일으키는지 등 청소년은 학교에서 어떠한 모습을 보인다. 학교 밖 청소년들을 제외하고서라도 한 반에 20명 내외로 존재하는 초등부터 고등까지의 청소년들이 저마다의 태도로 학교생활을 하면서 일상을 보내는데, 교사들이 이상기류를 감지할 정도라는 것은 양육자가 자녀에 대해 살펴야 할 지점이 있다는 의미이다. 내 아이가 안전하게 있어야 할 교육 기관에서 양육자에게 연락을 취할 때, 양육자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보호자들이 학교, 학원, 유치원 등에서 전화가 오면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무슨 일이 있어야 연락이 오기 때문에, 전화벨이 울리는 순간부터 긴장이다. 또한 안타깝게도 학교와 양육자 사이에서 갈등이 깊어진 케이스들도 여럿 보았다. 작은 규모의 사회일수록 누군가의 언행이 집중되고 빠르게 소문이 퍼지는데, 그 피해를 보았다는 양육자들도 많다. 학교에서 교사들과 또래 친구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고, 결국 사실을 해명할 틈도 없이 피해를 입은 채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 상황들도 있다. 이처럼 안타까운 사례는 다른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학교 안에서 문제 상황이 일방적으로 한 대상을 매도하거나 대상화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이런 케이스로 일축될 수는 없고, 분명 양육자가 취해야 할 입장과 태도는 잇따르기 때문에 이에 대해 요청하고 싶다.
여러 단위에서 ‘수용적 태도’가 사라졌다. 우선 양육자가 교사의 목소리에 대한 수용적 태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선 교사는 청소년을 양육자 다음으로 가장 오랜 시간 곁을 지키는 사람이다. 한국 교육이 아직은 다양성을 담아내기 어려운 현장의 모습에 머물러 있지만, 교실에서도 어느 정도의 개인적 성향은 존중된다. 그러나 학교생활에서 사회의 규칙과 질서를 체득해 가는 과정에서 교사가 양육자에게 연락을 취하는 정도라면 적어도 내 자녀가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음을 알아채야 한다.
최근 지원 요청을 했던 회오리초등학교에서 청소년 돌개바람에 대해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여 교육청 관계자와 센터가 들어가 회의를 진행했다. 돌개바람은 매 수업 시간마다 책상이나 물건을 두드리며 소리를 내고, 교실 밖으로 나가는 등 돌발 행동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회오리초등학교 내에서 그 누구도 양육자와 정확하게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점이었다. 돌개바람이 무엇 때문에 이런 행동이 나타나는지, 보이는 것 외에 어떤 어려움들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접근해 들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작조차 못 하는 상태로 학교는 도움을 요청했다. 담임 교사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병 휴직을 내고 싶다고 했고, 이에 따라 우리 센터는 위기 상황에 있는 돌개바람을 어떻게 만나면 좋을지 고민해 보았다. 어떻게 하면 돌개바람에게 낙인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하여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혹은 돌개바람이 교실 환경과 수업 시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지 방안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길고 긴 회의 끝에 전혀 다른 핵심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궁극적으로 학교가 원하는 바는 양육자에게 돌개바람이 정신의학과의 전문적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는 제언을 다른 누군가가 대신 해 주는 것이었다.
학교 입장에서 돌개바람은 회오리초등학교로 전학을 온 이력이 있지만, 이전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학을 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확인할 길이 없다고 했다. 양육자에게 질의해 보았지만 개인정보라는 명목으로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전 학교에서도 어떤 일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모든 것을 엄폐하려는 양육자의 태도로 꽤 난처한 상황이었다. 돌개바람이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보이지만 학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교사의 눈에 돌개바람은 정신의학과의 전문 진료와 진단,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확인되었지만 제언조차 할 수 없었다. 취약 계층의 가정도 아니었다. 생계비나 치료비 등으로 회유하고 설득할 여지도 보이지 않았다. 양육자가 강한 민원성 발언들을 했던 정황도 있어서 교사는 더욱 뒷걸음질 치고, 마땅히 교사가 해야 할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우선 교사의 역할을 다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대해 지적하고, 학교가 해야 할 일이며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안타까웠다. 교사들은 더없이 위축된 모습이었다. 2023년 7월 18일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사건이 단지 개인의 일이 아님을 보여 준다. 학교 현장의 한계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다각도에서 제시되어야 한다. 그중 아주 단편적인 부분이지만 특별히 양육자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한 가지는 부디 교사의 의도를 왜곡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최소한 교사는 청소년에 대해 관심을 가졌을 때 움직인다. 정상의 범주를 가늠할 수 없는 요즘이지만, 특별히 심리 정서적 어려움이 없고 교직에 애정을 가진 교사라면 위기 상황에 놓인 청소년을 모르는 체하지 않는다. 양육자로서 내 자녀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청소년 곁에서 그를 바라보고 제언하는 교사의 말에 대해 수용적 태도를 갖는다면, 내 자녀의 속마음까지는 모르더라도 그가 보내는 비상 신호에 대해서는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작은 마음의 틈이 주는 가능성
양육자는 교사의 의견과 동시에 청소년 당사자의 입장 역시 수용해 주어야 한다. 양육의 권한을 갖더라도 자녀의 의견을 묻고, 그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해야만 한다. 자칫 양육자는 자녀를 자신에게 종속된 존재로 여겨지기 십상이며, 양육자 본인의 상황이 우선시되기 때문에 가정 내 갈등이 심화되는 경우를 많이 목격한다. 성인 한 사람의 신체·심리적 건강, 경제 활동, 부부 또는 연인과의 관계, 기타 사회적 관계, 생계비, 긴급한 위기 사안 등 다양한 영역의 상황이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어서 자녀에 대한 내용이 늘 다음 순서로 다뤄진다. 그러나 청소년은 더 이상 어리기만 한, 무엇을 잘 모르는 존재가 아니다. 더구나 청소년 역시 삶의 영역에서 주요하게 다뤄져야 할 내용들이 많다. 우리가 청소년과 대화를 이어가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많다. 1년에 적게는 수백 명에서 천 명 사이를 오가며 깊고 얕은 대화들을 해 나가는데, 그중 백여 명의 청소년들은 학교나 가정에서 어려움이 있다고 하는 이들이다. 양육자도 교사도 대화에 실패하여 센터 실무자와 함께 청소년을 만나러 나가면 청소년과 마주한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마치고 으레 청소년에게 묻는다.
“바람 님이 가장 고민되거나 힘든 점은 뭐예요?”
“바람이가 생각할 때 학교생활이 왜 힘들어요?”
“바람 청소년이랑 가정이나 학교에서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누구예요?”
“여러 가지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데, 바람 님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건 뭐예요?”
물론 처음부터 자기 생각을 잘 말해 주지는 않는다. 그런 때에는 청소년이 관심 있어 하는 활동을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묻고, 괜찮은 카페에도 가면서 시간을 보낸다. 길게는 두어 시간, 짧게는 1시간 정도 만나면서 말을 섞을 만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고받는다. 그러고 나면 청소년들은 저마다 자기 이야기가 있다. 전혀 아무 이야기도 해 줄 것 같지 않은 청소년도 어느 날 입을 떼고 스스로 말한다. 우리가 만난 이들 중 은둔 고립으로 가장 어려운 케이스에 꼽히는 청소년 꽁지바람은 최근에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친한 친구 한 명이 있었어요. 고1 때까지 같은 반이었는데, 같이 학교도 다니고 급식도 같이 먹었어요. 방과 후에는 같이 게임도 했고요. 그런데 2학년이 되면서 다른 반이 되었어요. 저는 다른 친구는 사귀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유일했던 그 친구와 점점 멀어지면서 학교생활이 힘들어진 것 같아요. 그 친구와 계속 친하게 지냈다면 제가 이렇게 학교에 가지 않고 자퇴하는 일은 없었을 것 같기도 해요.”
처음 만났을 때 눈도 마주치지 않던 청소년이었다. 1년의 시간이 지나 은둔 고립의 생활은 심화되었고, 결국 자퇴를 결정했다. 가족과도 소통하지 않지만 유일하게 우리 센터에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꺼내 주었다. 이제라도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이 상황까지 오지 않도록 할 수 있었던 지점을 돌이켜 볼 수밖에 없었다. 자녀에 대해 관심이 있는 양육자는 학교생활, 또래 관계, 학업 성취도, 정서 상황, 신체 발달 등 다양한 부분에 대해 살피고 어려움이 있는 지점에 대해서는 도움을 주고자 애쓴다. 만약 꽁지바람이 고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양육자가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꽁지바람과 양육자가 대화했다면, 그리고 청소년의 어려움을 알아챘다면 담임 교사에게 다음 학년이 될 때 큰 무리가 없다면 친한 친구와 같은 반으로 배정될 수 있도록 요청했을 수 있다. 코로나19에 영유아, 청소년기를 지난 이들은 사회성을 개발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무리하지 않게 조금씩 관계를 넓혀 갈 수 있도록 친밀하게 느끼는 친구와 같은 반으로 배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안정감을 느끼고 조금씩 다른 사람과 사귀어 가며 힘든 시기를 지나간다. 하지만 꽁지바람의 양육자는 조부모였다. 부모는 동거하지 않았고, 조부모는 생계를 이어 가며 청소년을 돌봐야 했기 때문에 여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꽁지바람의 부 또는 모가 양육을 계속했다면, 꽁지바람이 유아기 때 홀로 버려진 것 같은 두려움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그 후에라도 상처가 잘 보듬어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등의 아쉬움은 많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학교생활을 포기하게 된 시점에 양육자가 조금의 관심과 도움을 주었더라면, 꽁지바람이 적어도 은둔 고립의 생활로 들어가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갑작스럽게 심각한 대화를 해 나갈 수 없다. 일상의 공유 또는 사소한 대화가 이어질 때, 삶의 고민을 마주한 상황에서 대화할 수 있는 양육자와 청소년 자녀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청소년들이 학교 안에서 겪는 갈등의 정도와 빈도수가 점차 심각성을 띈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 상황에 대해 학교 체계 안에서 시스템을 갖추고 접근하며 해결해야 하는 지점도 있지만, 그 몫은 교육부의 역할로 맡기고 양육자가 가정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단순하게 취약 계층의 자녀가 문제를 일으킨다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경제적 상황이 낫고 어렵고 관계없이, 자녀에게 관심이 많고 적고 관계없이, 대다수의 학부모가 본인이나 자기 자녀만의 권리와 입장을 내세운다. 학부모가 가진 사회적 지위와 권력으로 교사를 괴롭게 하거나, 경제·문화·심리적 상황 등을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숨기려고만 하는 행위는 자녀를 위한다고 취하는 양육자의 태도겠지만 자칫 개인의 이기심으로 사회적 어려움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함께 잘 살아야 한다. 같이 행복해야 한다. 그 길에 나와 내 자녀가 있음을 기억하고 청소년에게 그리고 교사에게 마음의 공간을 한 뼘씩 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부디 내 자녀에 대한 양육을 포기하지 않기를 당부한다.
교실을 지켜 내는 교사분들에게 연대를 말한 바 있다. 양육자분들에게 몇 가지 요청을 해 보았지만, 사실상 개인에게만 양육을 온전히 책임지고 모든 역할을 다 해내라고 요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위기 상황에 놓인 가정에서는 생계 또는 생명과 직결된 일들을 해결해야 할 수 있고, 어쩌면 그들도 도움을 요청하고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일 수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청소년이 겪는 위기 상황의 현주소,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교사와 양육자가 어떠한 경각심을 가지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살펴보았다. 개인의 역량이 더해지고 협력의 체계를 갖추어 가자고 했다. 그러나 조금 더 거시적인 측면에서 다각도의 지원과 변화가 필요하다. 이제는 어려움을 겪는 위기에 놓인 청소년, 학교 현장, 이와 연결된 구성원들을 위해 근본적 해결 방안에 다가설 수 있도록 사회 구조적 접근을 살펴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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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지역 기관 관계자가 모여 청소년 지원 사례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실명을 다루지 않으며, 협력이 필요하거나 지원 방향에 대해 도움을 얻고자 할 때 안건을 올려 다룸.
❷
“모든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기존 ‘사업별 학생 지원 체계’를 ‘학생 맞춤형 통합지원 체계’로 개편한다. 학생맞춤통합지원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올해 중 ‘학생맞춤통합지원법’ 제정을 추진한다. 제정안에는 위기학생 긴급지원,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교육감의 학업복귀 지원 근거 등이 명시된다.”(교육부 정책 브리핑, 2023년
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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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맞춤형통합지원법안은 2024년 11월 27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의결되었다. 하지만 위기학생의 학습·심리·진로·안전 등이 현저하게 위협받거나 다른 학생을 위협하는 경우 보호자 동의 없이도 학생 맞춤 통합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