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호[연재] 임신과 출산이 아닌 ‘나’를 위한 질과 자궁 알기 | 나영

202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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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과 출산이 아닌  

‘나’를 위한 질과 자궁 알기



나영

curiousnyny@gmail.com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지금 종이를 펴고 질과 자궁, 외음부의 모양을 그려 보자. 외음부의 전체적인 모양과 각 부위, 각각의 명칭을 적어 보고, 질과 자궁은 정면에서 본 모습과 측면에서 본 모습을 모두 그려 보자. 가능하다면 질과 자궁 주변의 신체 기관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도 그려 보자. 각 기관과 부위의 모습과 위치, 명칭을 정확하게 그리고 쓸 수 있을까? 자궁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을까? 

남성뿐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 여성이 자신의 질과 자궁, 외음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탐폰이나 월경컵을 처음 사용하는 여성들은 질이 기울어진 각도로 위치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해 삽입에 애를 먹기도 하고, 질 입구와 그 주변을 질이라고 생각하는 여성들도 많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여성들이 자신의 생식 기관에 대해 잘 알지 못해 병원에서도 문진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자신이 어느 부위에서 증상을 느끼고 있는지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많은 여성이 질과 자궁, 내외부 생식기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유는 이에 대한 교육이 임신과 출산이라는 기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교 성교육에서 자궁은 그저 ‘새 생명’을 임신하고 출산하는 기관으로 설명되고 있으며, 월경은 이를 준비하기 위한 과정으로, 질은 출산 시 아기가 나오는 통로로 설명된다. 질과 자궁을 비롯해 클리토리스, 소음순, 대음순 등 내외부에 있는 여러 부위의 감각이나 건강에 관해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반면 온라인에서 질과 자궁에 관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질문은 대체로 2개의 주제와 관련되어 있다. 하나는 자궁경부암, 자궁내막증, 질염, 월경의 양이나 월경통 등 건강에 관한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주로 남성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성관계 시의 쾌감을 높이기 위한 질문이다. 후자는 대부분 여성의 질과 자궁, 성적 만족감에 대한 일종의 소문과 판타지에 가까운 내용이다. 학교를 포함해 공적 공간에서 접할 수 있는 교육은 실제 삶에서 필요한 지식이나 정보와는 괴리되어 있고, 막상 그것을 얻고자 할 때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정보들 사이를 헤매야 하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현실이 너무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져 온 나머지, 임신과 출산 외에 질과 자궁에 대해서 더 이야기할 것들이 무엇인지, 개인의 삶과 건강을 고려할 때 교육 현장에서 더 다뤄져야 하는 내용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질문이나 논의조차 거의 없다는 점이다. 때문에 우리는 지금의 현실에 관한 질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질과 자궁에 대한 교육은 개인의 삶과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가깝지만 멀고, 내 몸이지만 자주 불화하게 되는 질과 자궁


지난 9월 진행된 ‘무엇이든 물어보셰어’의 다섯 번째 시간 자궁 건강 편에 이야기 손님으로 참여한 인디(별칭)는 ‘자궁이 내 거라는 생각이 한 번도 든 적이 없어서’ 40세가 넘어서야 처음으로 산부인과 병원에 가 보았다고 한다. 평소에 탐폰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월경혈의 양이 갑자기 확 증가해서 병원에 갔더니 난소에는 큰 혹이, 자궁에는 근종이 있고, 자궁내막증도 심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자궁과 난소의 적출을 권유하면서 “다시는 산부인과 올 일 없게 해 드리겠다”고 말했고, 인디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자궁과 난소 한쪽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막상 난소 한쪽을 떼고 나니 이른 갱년기 증상이 시작되어 오히려 정기적으로 산부인과를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부치 성향의 레즈비언이면서 한때 자신이 트랜스젠더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본 적이 있다는 인디는 “평생 자궁의 ‘자’ 자도 싫었는데 이제는 MTF인 친구가 복용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여성호르몬제를 먹고 있다”고 하면서 “인생이 참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인디가 남성적 성향이 강한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은 물론 이 이야기의 많은 부분과 관련되어 있지만, 동시에 인디의 경험은 생각보다 보편적인 일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이야깃거리를 많이 담고 있다. 

‘자궁이 내 거라는 생각이 한 번도 든 적이 없다’는 인디의 말이나, 자궁과 난소 한쪽을 떼었을 때 갱년기 증상이 시작될 수 있음에도 “다시는 산부인과 올 일 없게 해 드리겠다”고 한 의사의 말은 모두 자궁은 임신과 출산을 위한 신체 기관이라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인디뿐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자궁은 나의 몸 안에 있지만 왠지 나를 위한 곳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 곳이다. 자궁은 임신을 하거나 임신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는 기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장은 나에게 계속해서 혈액을 공급하고, 위장과 대장은 소화를 돕지만 자궁은 언제 그곳에 들어설지 모르는 ‘새 생명’을 위해 준비되고 있는 곳이다. 자궁의 존재를 인식하게 될 때는 새 생명을 맞이하지 못해 내막이 떨어져 나올 때, 뭔가 이상 증상이 생겼을 때뿐인데 그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자궁과 불화한다. 10대 때부터 그런 시간들을 계속해서 보내다 보면 어느새 자궁은 일생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딱히 도움도 안 되면서 아픔만 주는 곳’이 되어 있는 것이다. 

2012년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진행한 ‘산부인과 바꾸기 프로젝트’는 병원 진료를 받을 때 의료진을 통해서도 이런 인식과 경험이 반복된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설문에 참여한 응답자들은 의사로부터 “결혼 안 하셨으면 자궁경부암 검사 안 해도 돼요. 처녀막이 상할 수 있으니까 하지 마세요”라거나, 월경통이 심해서 찾아간 병원에서 “아직 미혼이죠? 생리통은 결혼하면 좀 나아져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무엇이든 물어보셰어’ 자궁 건강 편 신청 시 사전 질문을 남긴 한 참가자도 자궁내막증으로 청소년 때부터 치료를 받고 있는데, 병원에서 자궁내막증 수술에 관한 설명을 하면서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한 내용이 처녀막 손상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했다. 심지어 의료진은 이 참가자와 보호자인 엄마에게 “처녀막이 손상될 수 있는데 그러면 의료진이 꼬매 준다”는 이야기를 반복하고, 수술 후 예상보다 유착이 심해 수술 시간이 오래 걸렸음에도 ‘처녀막을 잘 꼬맸다’는 이야기를 가장 먼저 주요하게 들었다면서 “저의 몸은 저의 것이고, 저한테는 처녀막이 자궁보다 중요하지가 않은데 왜 이럴까. 여성의 몸은 남성과의 첫 경험을 위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걸까요?”라는 이야기를 남겼다.❶ 살면서 접하는 질과 자궁에 대한 대부분의 이야기가 임신과 출산, 남성과의 성관계를 위해 잘 관리되고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 세상에서 어떻게 질과 자궁을 ‘나의 몸’과 유기적으로 인식하고 잘 관계 맺을 수 있을까.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여성들은 이처럼 질과 자궁에 대한 괴리를 겪으며 정작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감각이나 관련 정보를 접하기가 어려운 반면, 남성들은 또래 남성들이나 각종 남성 커뮤니티를 통해 질과 자궁, 여성의 생식기에 대해 아동, 청소년 시기부터 매우 자극적이고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과도하게 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여성들은 자신의 질의 길이를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남성 커뮤니티에서는 자궁경부까지의 길이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관심사 중의 하나다. 자궁경부에 성기가 닿는 것을 일종의 성취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자궁경부는 자극에 취약해 심하게 자주 부딪히면 상처가 날 수 있음에도 남성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고, 여성들 사이에서는 이에 대한 정보나 경험의 공유가 부족하기 때문에, 성관계 시 여성들은 자신이 느끼는 것이 통증인지 쾌감인지, 괜찮은 건지 아닌지를 잘 알지 못하는 채로 대부분 참게 된다. 그런데 산부인과 병원을 가면 또 다른 낙인과 의료인의 차별 행위를 경험하기 때문에 증상이 점차 심각해져 더 중한 질병으로 나타날 때까지 또 참게 되는 것이다. 결국 여성들에게는 이래저래 불안과 두려움만 커지게 된다. 

“자궁은 생명이에요.” 2008년 한 병원이 성교육 기관과 함께 진행해 학부모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는 한 성교육 프로그램의 제목이다.❷ 이제는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다. ‘다른 생명’을 위해 준비되고 사용되는 기관이기 이전에, ‘나에게’ 질과 자궁은 어떤 기관일까. 질과 자궁이 나에게 줄 수 있는 즐거움은 무엇일까. 질과 자궁은 나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하면 질과 자궁을 ‘나를 위해’ 잘 살피고 관계 맺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성교육의 내용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질과 자궁에 대한 다른 질문을 시작해 보자


리어 해저드의 《자궁 이야기》에서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아기를 가질 준비를 하고, 아기를 잉태하고, 아기를 출산하고, 산후 회복 중이 아닐 때 자궁은 무엇을 할까?” 그리고 이렇게 쓴다. “이 질문은 평범하면서도 급진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쉬고 있는 자궁도 탐색할 가치가 있으며 자궁이 그 소유자에게 생식 이상의 어떤 본질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저자의 말대로 자궁이 임신과 출산을 위한 기관이 아니라 그 자체로 여성의 몸과 관련된 다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자궁에 대한 관심도, 생각도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자궁 건강에 대한 이해의 폭도 크게 넓어질 수 있다. 그중 하나로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것은 ‘수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는 자궁’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궁 안에 미생물이 산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는 자궁은 ‘태아를 위해 준비된 무균의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이 이론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독일계 오스트리아인 소아과 의사인 테오도어 에셰리히인데, 그는 태변을 연구하던 중에 아기의 장이 처음에는 무균 상태이다가 자궁 밖으로 나온 첫 몇 시간 또는 며칠 동안 미생물이 그곳을 점유하게 된다고 보았다. 이 생각은 상당히 여성혐오적인 전제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태아를 위한 공간인 자궁 안에 있을 때는 태아가 무균 상태로 있지만 여성의 몸을 통해 배출되는 과정에서 모체의 질을 통과하고 생식기와 만나면서 처음으로 미생물에게 ‘오염’된다는 것이 소위 ‘무균 자궁 패러다임’이라는 이론이 세운 가설이었기 때문이다. 자궁은 각종 정신적, 신체적 질병을 일으키는 오염된 여성의 몸 안에서 오직 태아를 위해 존재하는 일종의 인큐베이터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21세기가 되어 기술이 발전하면서 자궁 안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미생물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즉, 자궁이 태아를 위해 무균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여성 몸과 연결된 신체 기관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이 전제가 지난 10년에 걸쳐 여성의 생식 건강에 변화를 가져왔고, 미래에는 산부인과 질환(자궁근종, 불임, 자궁내막증, 자간전증 등)을 예방, 진단, 치료하는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꿀 가능성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❸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성교육에서 자궁에 대해 좀 더 다른 이야기를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아기를 위해서 준비되는 곳’, ‘미래의 아기를 위해 소중하게 관리해야 할 곳’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미생물이 만들어지는 곳’으로서 말이다.

자궁과 난소, 호르몬에 대한 익숙한 설명 방식을 바꾸어 보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주로 성 호르몬의 작용과 변화에 따라 난소와 자궁에서 배란과 임신이 어떻게 준비되고, 임신이 되지 않을 시에는 어떤 과정으로 월경이 진행되는지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성 호르몬이 임신과 출산 외에도 우리의 몸과 건강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며, 다른 호르몬과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이 또한 우리 몸의 다른 기관들과 중요하게 연결된 일부로서 자궁과 난소를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오늘의 교육》 지난 호 월경 건강 편에 있으니 꼭 읽어 보기 바란다). 예를 들어, 월경 전 증후군이나 월경통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러한 증상이 단지 임신을 준비하는 자궁과 난소가 임신을 못 해서 내막을 떨어뜨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만 설명한다면 이 증상은 대부분의 여성이 어쩔 수 없이 한 달에 한 번 견디고 참아야 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만 이해된다. 때문에 많은 여성들에게 이 과정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임신을 준비하는 자궁을 원망하는 시간으로 쌓이고, 운동이나 식이 조절 같은 제안도 번거로운 일로만 여겨진다. 그러나 월경 전 증후군과 월경통에 성 호르몬의 변화와 함께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같은 다른 호르몬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그 과정이 단지 임신의 준비로서가 아니라 나의 몸과 건강 상태에 다양하게 연결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가벼운 운동이나 음식 등이 다른 호르몬의 작용을 도와 증상을 완화시켜 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더 쉽게 이해하고 시도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질에 대한 이야기도 좀 더 풍부하게 해 보자. 질을 잘 아는 것은 여러모로 중요하다. 자신의 질의 길이, 각도, 느낌을 비롯해 건강한 질의 상태와 아픈 질의 상태 등을 잘 안다면 보다 다양한 월경 용품을 잘 사용할 수 있고, 자신의 건강 상태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자위나 상대방과의 성관계 시에도 어떤 것이 안전한지, 자신에게 쾌락을 주는 감각과 통증을 주는 감각은 무엇인지를 잘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상태와 감각을 알아야 상대방의 요구나 잘못된 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최소한 자신의 질에 대해 감각할 수 있는 교육은 학교 성교육에서도 꼭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가장 접하기 편하고 스스로 안전하게 직접 시도해 볼 수도 있는 방법은 월경컵을 사용해 보는 것이다. 월경컵의 사용에 대해 이해하는 과정에서 질주름에 대한 오해도 해소할 수 있고, 자신의 질의 위치와 길이, 각도에 대해서도 감각할 수 있으며, 질 안의 상태나 느낌, 또는 자극에 따른 통증 등도 알 수 있게 된다. 실행해 보는 것은 각자의 몫이지만 월경컵의 사용 방법과 주의 사항 등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질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 질과 자궁, 여성 성기에 대한 풍성한 정보와 이야기를 잘 담고 있는 책으로는 《질의 응답 - 우리가 궁금했던 여성 성기의 모든 것》이 있다. 이 책은 노르웨이에서 의료인으로서 젊은이들과 소수자 집단에서 성 건강에 관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니나 브로크만과 엘렌 스퇴켄 달이 함께 썼다. 보통 질은 ‘출산 시 아기가 나오는 길’, ‘월경이 나오는 곳’, ‘성관계 시 남성의 성기가 삽입되는 곳’ 정도로 소개되지만 《질의 응답》에서 소개하는 질은 훨씬 흥미롭고 다채롭다. 질은 평소에는 관의 앞쪽과 뒤쪽 벽이 착 붙어 있어서 물이 들어갈 수 없다거나 여성이 성적으로 흥분할 때는 질의 폭이 넓어지고 길이도 길어진다는 이야기, 질 벽 안쪽에는 촉촉한 점막이 있는데 이 물기는 질에서 분비된 것이 아니라 체내 수분이 질 벽으로 배어 나온 것이라는 것, 그런데 흥분하면 성기 전체에 피가 쏠려 질 벽으로도 더 많은 물기가 스며들고 자위나 성교를 할 때 질에 가해지는 마찰을 줄여 준다는 이야기 등❹은 질에 관한 정보를 남성의 성기나 태아와 관련된 정보가 아닌 자신을 위한 정보로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청소년에게 직접 읽어 보길 권할 수 있는 책으로는 산부인과 전문의 윤정원과 여성주의 활동가 김민지가 함께 쓴 《소녀×몸 교과서》가 있으니 함께 참고해 보면 좋을 것이다. 

질입구주름, 질막과 클리토리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흔히 ‘처녀막’이라고 알고 있는 질막은 질 구멍 바로 안쪽에 있는 점막 주름이다. 질막은 두께가 있고 개인에 따라 생김새도 다양하다. 대부분의 질막에는 하나 또는 여러 개의 구멍이 있다. ‘처녀막’에 대한 일반적인 상상에서처럼 질막이 질 입구를 완전히 다 막고 있으면 오히려 월경혈이 나오지 못해 문제가 생긴다. 첫 섹스를 할 때 피가 나는지 여부는 질막의 생김새와 탄력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괴롭게도 ‘처녀막 신화’는 아직까지도 영향력이 상당하다. 심지어 앞서 언급한 여성들의 경험에서처럼 일부 산부인과 병원에서도 아직까지 처녀막 이야기를 한다. 처녀막에 대한 믿음은 성관계 시의 자신감에 영향을 미쳐 상대방의 반응에 취약해지게 만들기도 하고, 월경컵이나 탐폰의 사용 경험을 방해하며, 의료 기관에서의 검사 방식이나 의료진의 태도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처녀막’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깨 나갈 수 있도록, 성교육에서 다양한 형태의 질막을 보여 주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클리토리스(음핵) 이야기를 빼놓지 말자. 일반적으로 성교육에서 외부 생식기를 설명할 때 클리토리스는 외음부 위쪽 부분에 대음순에 살짝 파묻힌 작은 덩어리 정도로 그려진 채 넘어가지만, 실제 클리토리스는 더 크고 놀라운 역할을 한다. 밖에서 보이는 것은 ‘음핵 귀두’라고 부르는 클리토리스의 아주 작은 일부이다. 클리토리스의 전체적인 모습은 음핵 귀두와 연결된 머리 부분이 있고 그 아래로 몸통과 다리가 있는 모양새다. 몸통에서 아래쪽으로 갈라진 다리 부분은 대음순과 소음순 안쪽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해면체가 있어 성적으로 흥분하면 클리토리스가 평소의 2배까지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음핵 귀두 부분에는 감각 신경 종말이 8,000개 이상 존재하며, 비슷한 개수의 신경 종말이 더 좁은 면적에 몰려 있기 때문에(음경보다 50배) 음경 귀두보다 음핵 귀두가 훨씬 민감하다.❺ 클리토리스는 여성의 성기가 단지 남성의 쾌락과 임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주고, 질로 삽입하는 것만이 섹스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해 주는 소중한 기관이다. 



마지막으로, 기본적인 자궁 질환에 대한 이해를
성교육에서 꼭 포함하자


많은 여성들이 10대부터 월경 전 증후군과 월경통에 시달리고 있으며, 월경 불순이나 부정 출혈을 경험하고, 다낭성난소증후군과 자궁내막증이 발생하는 연령대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월경과 관련한 증상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회의 분위기는 병원을 찾아가거나, 심지어 진통제를 먹는 것까지도 망설이게 만든다. 월경 관련 증상을 포함해 자궁과 관련한 증상이 있을 때, 증상을 알아차리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관리 방법도 찾아 갈 수 있도록 자궁에 생길 수 있는 질환을 성교육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 당연히 이 역시 임신을 예비하는 몸으로서가 아닌 자신의 몸을 위한 방식으로 다뤄져야 한다. 

월경은 호르몬의 변화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몸의 상태를 알려 주는 중요한 지표다. 월경을 아예 안 한다거나 몇 개월에 한 번씩 하는 정도라면 다낭성난소증후군을 의심해 볼 수 있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은 난소에 작은 물집 같은 낭종이 자라는 것인데 호르몬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난소뿐 아니라 췌장, 소화계, 뇌하수체도 영향을 받는다. 난소와 뇌하수체가 호르몬을 제대로 분비하지 못하므로 월경과 배란에 문제가 생기며 난임이나 유산, 임신성 당뇨 같은 임신과 관련된 어려움을 유발한다. 뿐만 아니라 자궁내막암 발병률도 높아진다. 내막이 월경 때를 맞춰 떨어지지 못하고 계속 쌓이고 두꺼워지면서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피임약 같은 호르몬제를 이용해 1년에 최소 서너 번 정도라도 월경을 하면 쉽게 예방될 수 있다.❻ 다낭성난소증후군은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을 많이 생산시킴으로써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높일 수 있고, 췌장에도 영향을 미쳐 인슐린 저항성을 유발한다.

셰어의 ‘무엇이든 물어보셰어’ 자궁 건강 편에서도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래는 한 참가자가 사전 신청 양식에 남긴 질문이다. 


“다낭성난소증후군에 관해 알고 싶습니다. 초경 이후로 단 한 번도 자연적인 월경 주기라는 것을 갖춰 본 적이 없어요. 10대에는 1년에 1~2회 월경을 했고, 성인이 된 이후 ‘임신하지 못하는 자궁’이 될까 봐 경구 피임약을 장기 복용하며 생리 주기를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 다낭성난소증후군에 관해서 산부인과에 가서 들은 솔루션은 언제나 ‘체중 감량을 해라’, ‘달맞이종자유를 먹어라’였어요. 제가 보기에는 마른 여성들도 많이들 다낭성난소증후군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요. 참나~ 과체중 여성으로 살며 모든 질병에 있어 살부터 빼라는 말을 듣는 게 익숙하기는 하지만…….^^ 체중과 다낭성난소증후군 사이의 관계를 좀 제대로 알고 싶습니다.(진짜 관계 있으면 진짜 쫌 빼 볼게요.)”


이야기 손님으로 참여한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다낭성난소증후군을 가진 경우 난소가 인슐린에 잘 반응하지 않으면서 호르몬의 균형이 깨진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래서 과체중이거나 비만인 경우 근육을 늘리고 적정 체중으로 조절하면 인슐린 호르몬이 균형을 찾으면서 당이 조절되고, 그 결과 다낭성난소증후군으로 불규칙해진 월경 주기를 조절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임신하지 못하는 자궁이 될까 봐’ 약을 복용하며 월경을 조절하면서 체중을 줄이라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는 동안, 이 참가자는 오랫동안 자신의 자궁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다가 임신에 어려움이 생기면 과체중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맞물려 자책하게 되기도 한다. 단순히 “다낭성난소증후군으로 임신에 문제가 생기지 않으려면 살을 빼야 한다”는 식의 말을 듣는 대신, 월경 주기와 함께 일어나는 호르몬의 영향이나 몸의 변화를 함께 이해한다면, 말썽 많은 자궁과의 관계를 그저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궁과 연결된 몸의 변화에 더 잘 대응하고 맞춰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자궁내막증도 10대부터 많이 겪는 질환이다. 월경통이 너무 심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라면 자궁내막증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자궁내막증은 자궁 내막이 난소, 골반, 요도, 대장 등 자궁이 아닌 부분에서 자라는 것이다. 자궁 내막이 자궁이 아닌 곳에서 자라면 염증이 발생하고, 오래 방치하면 내막이 생긴 부위에 섬유화가 발생하거나 해당 장기와 유착이 생길 수 있다. 자궁내막증의 치료 역시 대부분 피임약을 복용하거나 삽입형 피임 기구를 사용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아직도 피임약은 임신을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만 생각해서 청소년이 피임약을 복용하면 성관계를 한다는 의심을 받을까 봐 꺼리는 경우가 많고, 자궁에 생기는 질환들은 대부분 임신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만 설명하는 경우도 많아 임신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면 치료를 다소 부차적으로 여기기도 한다. 때문에 성교육에서 이런 부분들을 정확히 이야기하고 인식을 바꿔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자궁 질환은 호르몬 변화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스트레스, 수면 부족, 식생활 등 일상 환경이 호르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성교육은 성관계에 대한 교육만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자. 포괄적 성교육은 ‘성’이라는 주제가 우리의 몸과 일상, 관계, 사회 문화, 정치 경제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를 이해하고 성에 대한 문해력을 높여 나가는 과정이다. 자궁 건강에 대한 주제를 다루면서 학교, 직장, 가족, 사회의 여러 환경에서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일지 함께 토론해 본다면 또 다른 연결된 장으로 인식을 확장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질과 자궁에 관한 이야기가 성교육에서 더 많이, 더 다양한 방식으로 다뤄질 수 있기를 바란다. 클리토리스 모형이 성교육에서 익숙한 친구처럼 항상 자리하고 있으면 좋겠다. 질과 자궁이 삽입을 기다리는 텅 빈 관이나 아기가 자랄 주머니로만 상상되지 않기를 바란다. 질과 자궁을 둘러싼 많은 이야기 속에 여성의 자율성과 즐거움을 주는 감각에 대한 부분은 빠져 있다는 점, ‘처녀막’에 대한 남성 중심적 관념과 잘못된 신화, 피임, 임신에 관한 교육이 대부분 ‘위험’ 아니면 ‘생명’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일부터 앞으로의 성교육에 중요한 첫 단계로 삼아 보자. 



한국여성민우회(2012), 《‘2012 산부인과 바꾸기 프로젝트 토론회’ 자료집》, 15쪽.

“우리 아이 위한 성교육, ‘자궁은 생명이에요’”, 〈의약뉴스〉, 2008년 8월 21일.

리어 해저드, 김명주 옮김(2024), 《자궁 이야기 - 몸의 중심에서 우리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하는 존재에 관하여》, 김영사, 21~29쪽.

니나 브로크만·엘렌 스퇴켄 달, 김명남 옮김, 윤정원 감수(2019), 《질의 응답 - 우리가 궁금했던 여성 성기의 모든 것》, 열린책들, 23쪽.

니나 브로크만·엘렌 스퇴켄 달(2019), 앞의 책, 29쪽.

니나 브로크만·엘렌 스퇴켄 달(2019), 앞의 책, 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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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