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호[특집] “교육부는 경제 부처”라는 ‘공급 만능론’의 허상 (강석남)

202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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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교육 정책은 경제 정책인가


“교육부는 경제 부처”라는 ‘공급 만능론’의 허상



강석남

kim3soo91@hanmail.net

본지 편집위원,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박사 과정




왜 반도체‘를’이 아니라, 왜 반도체‘도’?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떠나, 어쨌든 전임 정부의 마지막 교육부 장관은 정부 수립 이래 최장수 임기를 기록했다. 그런데 여기저기 파열음이 빗발치는 정권 교체 직후의 난맥상이 유독 교육부와 그 장관 자리를 둘러싸고 수습이 난망해 보인다. 온갖 논란 속에서 인사 청문회도 생략하고 등판한 박순애 교육부 장관은 본인의 행적에 관한 논란과 더불어 초등학교 입학 연령 하향 학제 개편 논란과 함께 1개월여 만에 물러났고, 그 빈자리는 9월의 막바지인 현 시점까지 수많은 하마평만 흩뿌리며 비어 있다. 장관 자리만 문제가 아니다. 출범이 지나치게 지연된 국가교육위원회 구성도 조용히 마무리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이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에 이배용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을 임명하면서, 지난 국정 역사 교과서 발간을 주도했다는 점 그리고 교육 정책에서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역사학계와 교육계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교육 정책 전반의 혼란과 별개로 윤석열 정부의 고등 교육 정책 지향은 확고해 보인다. 지난 6월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대통령은 “교육부의 첫 번째 의무는 산업 인재 공급”, “교육부가 스스로 경제 부처라고 생각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산업 발전에 필요한 인재 공급이 교육부의 첫 번째 임무”라는 것이다. 교육부 차관이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 때문에 인력 양성이 힘들다고 발언하자, 대통령은 “무슨 규제 타령이냐”며 “국가의 운명이 걸려 있는 역점 사업을 우리가 치고 나가지 못한다면 이런 교육부는 필요가 없다. 시대에 뒤처진 일을 내세운 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이런 교육부는 폐지돼야 한다”라는 강경 발언을 이어 갔다.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는 곧장 현실이 됐다. 후보 시절부터 정부 부처 폐지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자기 부처(여성가족부)의 폐지를 사명으로 삼는 장관부터 임명시키는 그 결단력의 영향일까. 6월부터 교육부는 국무회의에서의 소박한 반대가 민망할 정도로 반도체 인력 양성을 표방하는 첨단 산업 관련 정원 확대 방안을 쏟아 내고 있다. 이어 7월 19일 교육부는 ‘일정 기준 이상 교수만 확보해도 대학이 첨단 분야 학과를 신·증설해 정원을 늘릴 수 있도록 허용’하는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한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 방안’을 발표했다. 본래 학과 정원을 늘리기 위한 4대 요건인 교지, 교원, 교사, 수익용 기본 재산 중에서 필요 교원 수만 확보하면 정원 증원을 허용해 2031년까지 반도체 부문 인력 15만 명을 추가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 내년도 교육부 예산에서 관련 예산이 대폭 증가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문제는 산업이든 노동 시장이든 무엇이 되었든 간에 어떤 수요를 전제로 대학 정원의 공급을 조절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식의 단호한 결의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결의를 ‘공급 만능론’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1980년대 중공업 중심 산업화 당시 전국 국립대의 조선공학과 설립, 2000년대 벤처 거품의 소멸과 정보 기술(IT) 입학 정원 감축, 박근혜 정부의 이공계 양성 추진과 ‘프라임 사업’ 등의 사례들은 어떠했나? 만약 관련 분야 정원 확대가 각종 사회적, 산업적, 경제적 수요를 충족해 왔다면 한국의 대학들이 노동 시장과의 미스 매치의 원흉이라는 비난은 옛날 옛적에 사라져야 하지 않았을까? 교육부는 경제 부처라는 대통령의 일갈이 민망할 정도로, 교육부가 들고나온 대안은 수십 년 전부터 반복해 온 ‘공급을 늘린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게 아닌가.


따라서 쟁점은 ‘왜 반도체 정원을 확대하느냐’가 아니다. 오히려 ‘왜 반도체 정원도 확대하느냐?’라는 것에 가깝다. 교육부가 들고 나온 ‘15만 양병설’이 현실의 반도체 업계 수요를 얼마나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양성 목표치가 대체 왜 문재인 정권 시기 3만 6,000명에서 1년 만에 15만 명으로 껑충 뛴 것인지를 따지기 이전의 의문이다.


한편에서 교육도 산업과 연계되어야 한다며 진보 교육계를 점잖게 타이르는 입장도 있지만, 교육-산업 연계의 탈을 쓴 공급 만능론의 반복이 타당한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교육의 독립성이나 교육적 가치에 비해 반도체 현안이 사소해서가 아니라, 날로 첨예해져 가는 미-중 패권 다툼 속에 반도체를 둘러싼 세계 체계적 가치 사슬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산업 수요에 교육 부문이 공급 확대로 대응하는 것이 연계이며, 그리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가?



공급 만능론의 가정들


공급만능론의 역사는 유구하다. 이미 박정희 정권 시절 ‘제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과 맞물린 「과학교육진흥법」 제정으로부터 국가가 육성하고자 하는 산업 부문의 고숙련 노동력 수요를 고등교육 부문을 통해 충족시키려 했던 정책적 시도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졸업 정원제로 대표되는 전두환 정권의 7.30 교육 개혁도 대학교육의 사회적 수요 증가를 주된 명분으로 삼고 있었다. 오늘날 학령 인구 감소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대학 팽창의 제도적 기원으로서, 김영삼 정부의 5.31 교육 개혁은 도래하는 21세기 정보화 시대의 산업 수요에 부응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품고 있기도 했다. 각종 특성화 학과의 흥망성쇠나 무슨 무슨 붐이 얼마 뒤 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대학가의 익숙한 풍경이 한국 대학의 예외나 위기가 아니라 정상적인 상태였을 것이다. 거칠게 말하면 박정희 정권 이래 실상 한국의 대학 정원 정책이란 어떠한 형태로든 공급 만능론의 범주 안에서 반복되어 왔다.


이러한 공급 만능론의 가장 핵심적인 첫 번째 가정은 ‘정원 확대에 따라 관련 분야 졸업생이 늘어나면 산업 수요가 충족된다’는 것이다. 공급 만능론에 입각한 교육 정책은 바로 이 가정 때문에 탄생한다. 윤석열 정부의 반도체 인재 양성을 위한 정원 확대의 기준이 향후 10년간 15만 명인 이유는 같은 기간 예상되는 반도체 산업에서의 신규 인력 수요가 12만 7,000명이기 때문이다. 즉 예상되는 수요만큼 정원을 늘려 졸업생 공급을 확대하면 수요가 충족된다는 단순한 논리다. 이를 위해 때로는 인적 자본론을 동원하거나, 실무 위주의 교육과 커리큘럼을 강조하거나, 산학 협력 등을 내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수사들이 근본적인 의문을 해소시켜 주지는 못한다. 일부 특수한 대학이나 전공 분야를 제외하면 교육 부문에서의 ‘졸업’이 산업 부문으로의 ‘취업’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공급 만능론은 스스로 전제로 삼고 있는 경제적, 산업적 수요가 마치 항상 증가하거나 증가한 규모를 유지할 것처럼 여긴다. 그리고 그 수요를 수험생들의 관련 분야 학과의 수요와 등치시킨다. 교육부 보도 자료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예상되는 반도체 신규 인력 수요 12만 7,000명은 향후 매출액 전망과 노동 계수를 활용하여 인력 수요가 10년간 연 평균 5.6%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 결과라고 한다.


반도체 산업에 아는 바가 없어 함부로 말을 얹기는 부담스럽지만, 당장 현시점부터 제기되고 있는 코로나19 특수 이후의 반도체 산업 불황에 대한 진단들을 보자면 인력 수요가 매년 증가한다고 장담할 수 있을지는 좀 의문이다. 적어도 확실한 건 산업 수요를 위해 대학 정원 확대를 표방하는 교육 정책들이 유독 그 산업 분야의 불황이나 침체, 수요의 감소 가능성은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육부 보도 자료의 제목은 “정부는 반도체 산업 미래 상황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계획입니다”였지만 반도체 산업의 양적 성장에 대한 확신만큼은 지나치게 견고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마지막 세 번째로 공급 만능론은 산업과 교육 부문을 연결짓는 예비 노동자로서 학생·졸업생들의 입장, 특히 노동 시장의 조건은 철저히 무시한다고 가정해야만 성립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졸업이 곧 취업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에, 예비 노동자인 학생들이 실제 노동자로서 산업 부문에 진출해야 정원 확대 정책의 효과가 실현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산업 수요 충족을 표방하는 교육 정책들은 정작 학생들의 이해관계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정확히 표현 하자면 정원 확대에 따라 노동 시장에 예비 노동자의 공급이 증가하면서 필연적으로 변화할 노동 시장의 조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대신 국가 경쟁력, 사회 성장의 원동력, 선진국 도약 등의 수식어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처럼 노동 시장의 조건을 무시하는 가정은 참으로 의아스러운데, 교육 부문이 경제·산업 부문의 수요에 적응한다면서, 정작 교육과 경제·산업 부문을 매개하는 예비 노동자인 학생들과 그들이 진입할 노동 시장의 변화는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공급 만능론의 가정들은 공통적으로 경제· 산업 부문의 필요를 경제·산업 부문의 변화가 아니라 교육 부문의 변화‘만’으로 충족시키려는 시도이기에 실패하는 기획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대통령의 일갈처럼 교육부가 경제 부처가 되는 것, 즉 교육 정책이 곧 경제 정책이며 교육 부문이 경제·산업 부문에 종속된다는 전제가 정책적 차원으로 구체화된 결과가 곧 공급 만능론일 것이다. 사실 이것을 ‘경제 정책’이라 할 수 있을지도 망설여진다. 복잡한 현실의 문제를 외면한 채 오로지 수요와 공급의 논리, 특히 공급을 늘리면 자연히 수요가 충족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에만 의존하고 있다.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공급 만능론


만약 공급 만능론의 가정이 타당했다면 대통령이 교육부 폐지를 운운하며 경제 부처로서 교육부를 호명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정부는 항상 산업 수요에 맞추어 대학 정원의 공급을 조절해 왔기 때문에 대통령이 분개하는 첨단 산업 인력 수요-공급의 문제가 진즉에 해결됐을 테니까. 하지만 오늘날의 현실은 공급 만능론의 반복되는 실패를 보여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공급 만능론은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 그 가정들이 타당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부터 따져 봐야 한다.


가장 핵심적인 첫 번째 가정의 문제는 졸업생의 증가에 따른 공급 확대가 항상 인력 수요의 충족으로 직결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취업, 즉 노동 시장으로의 진입이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관문이 졸업(공급 확대)과 수요 충족 사이에 위치해 있다. 일부 특수한 대학이나 전공, 계약 학과 등을 제외하면 졸업이 곧 노동 시장으로의 관성적인 이행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교육 부문과는 상이한 노동 시장의 독자적인 논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관련 학과 졸업생이 그 분야로의 진출을 원하지 않을 수도, 더욱 흔한 이유로는 기업과 자본들이 교육의 질이나 졸업생의 역량, 경기 침체 등을 핑계로 고용을 안 할 수도 있다.


구체적이고 시기상 가까운 실제 사례로 간호사 양성 제도와 간호학과 정원 확대 정책을 살펴보자. 2008년부터 간호 서비스 수요 증가를 예상한 정부는 수요 충족과 수도권·지방 간 의료 격차 해소를 목표로 간호학과의 신·증설을 추진해 2015년까지 69개교의 개설, 7,000명의 입학 정원이 증원되었다. 이에 따라 전국 간호 교육 기관 입학 정원은 2008년 11,789명에서 2019년 20,123명으로 증가했다. 정원 외 입학까지 합치면 모집 규모는 더욱 커지는데, 2008년 14,539명에서 2019년 25,358명에 이른다.❾ 문제는 간호학과 정원 확대에 따라 간호학과 졸업자, 즉 간호사 면허자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나 정작 간호사로 활동하는 비율은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3년 전체 간호사 면허자 수는 307,797명인데, 이 중 취업자 수는 220,000여명으로 현장에서 취업해 활동하는 ‘활동 간호사’의 비율은 71.4%였다. 반면 2018년 면허자 수는 394,627명까지 증가한 데 반해 전체 취업자 수는 253,000여 명에 머물러 활동 비율이 64.1%까지 하락하면서, 면허는 소지하고 있으나 취업을 하지 않아 단절된 ‘유휴 간호사’들이 양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의료 부문의 간호사 수요는 제대로 충족되고 있을까? 복지부가 발표한 〈2021 보건 의료 인력 실태 조사〉에 따르면 간호사 수의 절대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의 인구 1,000명당 간호사 수는 OECD 평균의 52%에 머무르고 있다.⓫ 특히 문제가 심각한 것은 지역 간 의료 격차가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부터 시행된 간호학과 정원 확대는 지방·중소 병원의 간호사 수 확보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⓬ 《2020 간호 통계 연보》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간호사 수를 비교해 봤을 때 부산시 서구는 35.6 명, 충북 증평군은 0.1명으로 최대 350배나 차이가 난다.⓭ 그 결과, 정부는 공공 의대와 유사하게 지역에서 선발한 일정 수의 간호사들에게 의무 복무 기간을 부여하겠다는 ‘지역 공공 간호사제’를 2021년부터 추진하고 있다. 결국 공급으로 해결하겠다는 얘기다.


이러한 간호학과 정원 확대의 사례는 반도체를 포함한 공급 만능론의 첫 번째 가정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잘 보여 준다. 간호학과 졸업생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현장에서 취업해 활동하는 활동 간호사 비율의 감소, 그 연장선에서 여전히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간호 수요의 미충족과 해소되지 않는 지역 간 격차에는 간호 노동의 고유한 맥락이 작동할 것이다. 열악한 노동 조건이나 경력 단절 등 간호 노동의 구체적인 양상은 따로 논해야겠으나, 적어도 관련 대학 전공의 정원 확대에 따른 졸업자 수의 증가가 그 부문 수요의 양적이고 질적인 충족으로 이어진다는 단순한 가정이 허상이라는 것만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반도체 산업과 의료· 간호 부문은 전혀 다른 영역으로 비교가 적절치 않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두 부문의 관련 학과 정원 팽창을 추동시키고자 하는 공급 만능론의 정원 정책 자체가 두 부문의 고유한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 비교가 성립된다. 예상되는 간호(반도체) 수요에 비해 간호(반도체)학과의 정원을 늘려 공급을 확대시키겠다는 정책 논리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간호 부문이나 반도체 산업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은 조금도 고려되고 있지 않다.


두 번째 가정의 경우, 가장 중요한 시장 상황에 따른 산업 부문의 경기 전망은 전문가들의 몫이니 다루지 않는다 하더라도, 시장의 영향을 피할 수 없는 인력 수요에 맞추어 관련 학과의 정원을 늘리는 것이 타당한지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된다. 먼저 산업의 수요가 무한히 증가하고 그 규모가 유지될 거란 보장은 없다. 고소득과 고용 안정성을 언제나 보장할 것 같았던 조선업 호황기에 신설된 조선업 관련 학과는 조선업 불황이 다가오자 일부 대학에서 폐과되는 수순을 밟았다.⓯ 


게다가 설령 수요가 있더라도 그 수요가 반드시 관련 전공이나 학과의 수요로 이어진다는 보장 또한 없다. 박근혜 정권 당시 대학 재정 지원을 미끼로 이공계 정원 확대를 추진했을 때 이에 호응했던 지방 대학들은 정원 미달이 대거 발생하며 ‘프라임 사업의 저주’를 실감하고 있다.⓰ 사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당장 이미 운영 중인 반도체 학과도 마찬가지다. 이미 전체 반도체학과 중도 탈락자의 71%는 지방대 학생들로 서울의 6.6배에 이르고 있으며 심지어 정원 미달로 학과가 폐과되는 사례도 알려졌다. 대통령이 나설 만큼 반도체 산업의 인력 수요가 그리 급박했다면 이미 있는 멀쩡한 반도체학과가 정원 미달을 이유로 폐과될 이유가 없다.⓲ 코로나19 특수를 누리면서 반도체 인력 수요가 부족하다고 정원을 확대하는데, 한쪽에선 있는 학과도 정원 미달을 이유로 사라지는 기현상은 대체 ‘수요’의 실체가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즉, 공급 만능론은 언제든 불안정한 시장 상황에 따라, 교육 부문이 인력 수요보다 더 많은 졸업생을 배출하는 과잉 공급으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실 지난 문재인 정권 시절 ‘K-반도체 전략’은 반도체산업협회의 추산에 근거해 10년간 3만 6,000명의 인력 양성 목표를 발표했다. 불과 1년 만에 윤석열 정부는 마찬가지로 반도체산업협회의 성장 ‘전망치’를 반영해 4배나 많은 15만 명 양성을 발표했다.⓳ 한국에서 가장 반도체 산업 성장을 염원할 것 같은 단체의 장밋빛 전망에 기대 고무줄처럼 오락가락하는 인력 수요의 타당성은 제대로 검토되고 있는 것일까? 덧붙여 반도체 산업에 대한 국가적 기대가 충만함에도 불구하고 왜 지방대 반도체학과 학생들이 중도 탈락을 택하는지, 왜 정원이 미달 하는지를 질문하지 않는 공급 만능론의 태생적 한계도 명확하다.


마지막으로 공급 만능론은 철저히 노동 시장에서 사용자와 자본의 이해만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산업 부문과 노동 시장의 수요가 공급에 비해 많든 적든 간에, 노동 시장으로의 더 많은 예비 노동자 공급은 필연적으로 노동자 간의 경쟁을 심화시키고 고용 관계를 둘러싼 협상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때문에 공급 만능론은 항상 관련 분야의 노동 조건 악화를 일으킬 위험이 크고, 결국 관련 학과를 졸업한 예비 노동자들이 그 산업 분야로의 진출을 포기하거나 이탈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예가 대학 입학 정원을 확대한 7.30 교육 개혁과 5.31 교육 개혁이 낳은 결과이다. 한국 사회의 고등교육 취학률은 급격히 상승했지만 동시에 대졸 노동 시장의 불안정성 또한 폭증했다. 대졸 실업과 대졸 비정규직 등이 흔해지면서 더 이상 대학 졸업이 노동 시장에서 안정적인 지위를 약속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때문에 교육 부문이 예비 노동자의 공급을 확대시킨다면 동시에 노동 시장의 조건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그러한 변화가 예비 노동자들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충분히 고려될 필요가 있다. 기껏 정원을 확대해 졸업생을 늘려도 그 졸업생들이 관련 산업 분야로 진출하지 않는다면, 첫 번째 가정의 문제에서 확인한 것과 같이 산업 수요는 여전히 충족되지 못한 채일 것이기 때문이다. 간호사 노동과 간호학과 정원 확대의 관계를 다시 참고해 보자. 지난 15년간 그리고 지금도 정원 확대에 따른 공급에만 주목할 뿐 간호사 노동의 고유한 문제적 맥락을 등한시한 결과, 간호사의 절대적 수는 증가하지만 정작 활동하는 간호사의 비율은 감소하는 기이한 현상이 지속되며 지역 간 의료 격차의 개선 역시 요원하다. 반도체 부문도 다르지 않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이 엔지니어들에게 매력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국가가 되게 하는 것이 제1책인데, 이대로 가면 당장 필요한 인재는 대만과 일본에 모두 빼앗기고 10년 후엔 과도하게 양성된 졸업생들의 일자리가 부족한 현상이 초래될 것”이라는 진단도 제출된다.⓴ 


특히나 한국의 고등교육이 이른바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공적 지출 대신 개인의 부담에 과도하게 의존하여 운영된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사실 공급 만능론은 아주 이상한 논리이기도 하다. 공급 만능론은 자본이 노동 시장에서의 공급 확대에 따른 수요자 우위의 협상력 강화를 가능케 하는데, 그 비용을 수혜를 보는 자본이 아니라 국가와 개별 예비 노동자들이 부담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자기 분열


이처럼 공급 만능론이 기반하고 있는 가정은 말 그대로 가정에 불과하기 때문에 정원 확대와 공급만으로 제기되는 문제를 해결할수 없음이 자명하다. 윤석열 정부의 반도체 인재 양성 정책은 앞서 무수히 반복되었던 공급 만능론의 가정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점에서 그한계가 명확하다. 다만 그렇다고 아주 새로운 단절점이 없는 것은 아닌데,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지난 6월, 40년 만에 그간 수도권 대학의 양적 팽창을 억제해 왔던 「수도권정비계획법」 개정을 추진하기 위해 국토교통부와 협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단 점이다.㉑ 다만 추후 교육부에 따르면 결과적으로는 기존 「수도권정비계획법」이 정한 수도권 대학 정원 총량에서 약 8,000명의 여유가 있기 때문에 법률을 손보지 않고도 정원 확대는 가능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법이 오늘날 한국 대학 정원 확대를 불러온 대학 설립 준칙주의를 비수도권 지역부터 단계적으로 실시한다는 단서를 달게 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법을 개정하겠단 발표는 결코 사소한 정책 변화로만 볼 수도 없다. 반도체 관련 학과의 정원 확대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추진될 것임을 표명한 것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각 지방대를 중심으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양극화, 수도권 편중, 지방대 죽이기라는 강한 반대 목소리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108개 대학 총장이 모인 7개 권역 대학총장협의회연합은 ‘대학 정원 이라는 손쉬운 방식으로 인력 양성을 하겠다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대학 정원 감축 정책에도 역행할 뿐 아니라 그 효과성도 의문인 일관성 없는 방안’이라는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㉒ 


틀린 얘기도 아니다. 앞서 확인한 바와 같이 이미 지방대 반도체학과가 정원 미달로 사라지는 마당에 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반도체학과 정원이 확대될 경우 안 그래도 벌어진 수도권 대학과 비수도권 대학의 격차는 더욱 심화될 것이 뻔하다.


반도체 인재 양성을 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추진한다는 윤석열 정부의 시도는 자신들이 국정 과제로 내세웠던 ‘지방 대학 시대’와도 정면 충돌한다는 점에서 의문스럽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는 ‘지역·대학 간 연계·협력으로 지역 인재 육성·지역 발전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며 지자체 권한 강화, 지역 거점 대학 육성을 골자로 하는 교육 분야 국정 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㉓ 


그런데 교육부뿐만 아니라 전 부처를 동원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겠다면서 다시 중앙의 교육부를 중심으로 수도권 규제까지 우회하려 하니, 윤석열 정부의 교육 정책은 자기 분열하며 상충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공급 만능론을 그대로 답습하는 반도체학과 정원 확대 시도는 스스로의 실패를 예고하며 동시에 윤석열 정부 교육 정책 전반의 실패로 귀결될 위험마저도 키우고 있는 형국이다. 


교육부 수장의 공석도 지속되며 초등 학교 입학 연령 하향 학제 개편도 흐지부지된 마당에, 유일하게 형태를 갖춰 가는 반도체학과 정원 확대 시도는 교육 분야 국정 과제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난맥상이다. 덩달아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고등교육 체계 개편의 골든타임마저도 이대로라면 때를 놓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경제에 종속되지 않는 교육과 산업의 연계는 불가능한가


결국 이 모든 것은 교육부도 경제 부처이고 교육 정책도 경제 정책일 뿐이라는 윤석열 정부의 교육 정책 지향에 대한 재검토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윤석열 정부만의 문제도 아니지만, 공급 만능론은 교육 부문과 경제 부문의 복잡성을 소거한 채 단순한 수요-공급의 논리로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손쉬운 해법의 뻔한 귀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교육 부문의 공급을 늘리면 경제와 산업 부문의 수요가 충족될 것이라는 단순한 가정도 오류지만, 핵심은 교육 부문을 오로지 경제 부문에만 종속된 것으로 상상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대학 취학률의 증대로 대학교육이 사회 일부 구성원의 특별한 경로가 아니라 보편화되었고, 동시에 대학교육을 선택하는 이들은 노동 시장으로의 진입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 결과 대학이 노동 시장 진입을 위한 최종 학교로 기능하는 현시점에 교육 부문이 경제 부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육 부문이 경제 부문에 완전히 종속된 것도 아니다. 대학이 기업이 아닌 것처럼 교육 부문과 경제 부문은 상이한 각자의 논리로 작동하는 각각의 체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 부문과 경제 부문의 연계는 교육 부문이 경제 부문에 적응하는 만큼, 경제 부문도 교육 부문에 적응하는 상호보완적 관계를 상상하는 데서부터 가능하다.


정부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정말로 반도체 산업의 인력 수요가 날로 증대하고 있다면 교육 부문이 공급을 늘리는 만큼 산업 부문에 대한 정책적 개입도 당연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고등교육 비용의 수익자 부담 원칙을 고수하려면 산업 수요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 부문의 비용을 마땅히 자본이 분담하거나, 적어도 국가가 공적 비용으로 부담해야 하지 않을까? 


수요 예측 실패에 따라 예비 노동자의 과잉 공급이나 교육 부문의 구조 조정이 필요하다면, 이때 발생하는 비용과 부담이 교육 부문과 학생들에게 전가되지 않게 하는 제도적 안전 장치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과정 속에 교육 부문의 자율성, 특히 대학 구성원들의 자치와 대학의 사회적 공공성을 철저히 보장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이미 역사적으로 그 한계와 반복적 실패가 확인되는 공급 만능론을 포기하고, 경제에 종속되지 않는 교육과 산업의 연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다.




❶ “국가교육위원회 명단 공개… ‘정치적 중립성’ 보이지 않는다”, 〈한겨레〉, 2022년 9월 22일.

❷ “윤 대통령 “교육부 1번 의무는 산업 인재 공급… 경제 부처 자각해야””, 〈한겨레〉, 2022년 6월 7일

❸ “교육부 질타한 尹 “과학 기술 인재 공급 안 하면 개혁 대상”(종합)”, 〈연합뉴스〉, 2022년 6월 8일.

❹ “대학 정원 늘려 ‘반도체 인력’ 10년간 15만 육성… 수도권 쏠림 ‘우려’”, 〈한겨레〉, 2022년 7월 19일.

❺ “‘산업 인재 양성’이 초래했던 이공계의 위기와 프라임 사업의 저주… 반도체 인재 양성 방안의 미래는”, 〈경향신문〉, 2022년 7월 20일.

❻ 곽지섭(2015), 〈제3공화국의 고등교육정책과 국가주의 대학관의 형성〉, 건국대학교 사학과 석사 학위 논문.

❼ “[반도체 혹한기] ① 반도체 불황은 왜 찾아왔나”, 〈뉴시스〉, 2022년 9월 3일.

❽ 배현지(2016), 〈간호학과 입학 정원 확대 정책이 지방·중소병원의 간호사 확보 수준에 미친 영향〉, 서울대 간호학과 박사 학위 논문.

❾ 대한간호협회(2020), 《2020 간호 통계 연보》.

❿ “통계로 본 간호사 분야별 활동 영역”, 〈간호사타 임즈〉, 2020년 1월 15일.

⓫ “업무 과중에 직장 괴롭힘까지… 간호사 인력 OECD의 절반”, 〈노컷뉴스〉, 2022년 7월 7일.

⓬ 배현지(2016), 앞의 논문.

⓭ “의료 기관 근무 간호사 지역 격차 ‘심각’… 350배 차이 ‘극과 극’”, 〈청년의사〉, 2021년 3월 17일.

⓮ 보건복지부가 2021년 ‘제2차 공공 보건 의료 기본 계획’에서 발표한 제도. 지역 필수·공공 분야에서 일정 기간 의무 복무하는 지역 간호사 정원을 1년에 약 250명 간호대 정원에 반영해 선발한후, 약 10년간 총 2,500여 명을 지역 간호사로 선발하며, 의무 복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면허를 취소하는 등의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⓯ “졸업생 취업 못하고, 신입생 안 뽑고… 대학 조선업 학과 문 닫는다”, 〈연합뉴스〉, 2016년 7월 18일.

⓰ “‘프라임 사업’의 저주… 지역 대학, 공대 충원율 대규모 미달”, 〈부산일보〉, 2022년 3월 2일.

⓱ “‘반도체학과 중도 탈락자’ 71%는 지방대생… 서울의 6.6배”, 〈뉴시스〉, 2022년 6월 16일.

⓲ ““반도체학과만 늘린다고 경쟁력 안 높아져””, 〈경향신문〉, 2022년 6월 13일.

⓳ “반도체 성장은 마냥 ‘장밋빛’?… 인력 양성 목표, 1년 만에 4배 껑충”, 〈한겨레〉, 2022년 7월 20일.

⓴ “반도체 인재 양성도 수도권·비수도권 양극화 우려”, 〈경향신문〉, 2022년 7월 19일.

㉑ “반도체가 40년 된 ‘수도권정비계획법’ 정비한다… 교육부 “국가 전략 산업, 수도권·비수도권 없다””, 〈U’s Line〉, 2022년 6월 12일.

㉒ “지방대 108곳 총장들 “수도권대 반도체학과 증원 정책 철회하라””, 〈동아사이언스〉, 2022년 8월 29일.

㉓ “윤석열 정부의 ‘지방 대학 시대’… 엇갈린 시각”, 〈한국대학신문〉, 2022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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