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동맹의 교실, 해방의 교육학 ①
복수의 교육학
- 학교 없는 곳에서 세워진 학교, 노들장애인야학이 던진 질문들
글
서한영교
poetrypunx@gmail.com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중학교 들어가서 학교폭력과 괴롭힘에 시달려 학교를 그만두고 7년간 방 밖으로 한걸음도 나오지 않았던 그에 관한 소식. 이후 몇 해를 주로 집에서만 지내며 생활했다던, 고기능 자폐스펙트럼장애로 장애인 등록도 되지 않는다던, 십몇 년 만에 집 밖 생활로 야학에 와 흥분된다며 숨을 잘게 고르던, 오랫동안 참아 왔던 말을 다 하느라 말을 한번 시작하면 온종일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던, 야학에 오기 위해 환승에 환승을 거듭하며 왕복 3시간씩 걸린다던, 빈 교실을 빙빙 돌며 가끔 혼자 중얼거리던, 그에 관한 소식.
그가 죽었다, 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주를 마셔 본다며 물끄러미 잔을 바라보던 그, 가 떠올랐다. 태어나서 처음 바다를 봤다며 반짝이던 그, 가 떠올랐다. 그렇게 며칠 밤낮으로 무수한 처음을 겪어 내고 있던 그, 가 떠올랐다. 자기 이야기를 이렇게 잘 들어 주는 사람은 처음, 느닷없이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아 본 것도 처음, 집 밖에서 맘 편하게 시간 보낸 것도 처음, 이라고 했을 때 무수한 그의 첫, 이야기는 기쁨에 차올라 있어 계속 그 첫, 번째 경험들의 증인으로 남아 있고 싶었는데
그가 죽었다, 는 소식에 매일 아침 눈뜨면 전속력으로 그, 가 먼저 떠올랐다. 한번 말을 시작하면 쏟아 내듯 말을 하던 그, 가 쏟아졌다. 3인칭이 아니라 1.8인칭, 2.6인칭의 그, 가 꿈에도 자주 출현했다. 어떤 날은 1.1인칭의 그, 가 내 모든 시선을 장악하기도 했다. 속눈썹까지 다 아팠다. 죽음 직전에 어떤 느낌에 휩싸여 있었을까. 그가 느꼈던 이 세계는 얼마큼 뾰족한 것이었을까. 나의 ‘첫’과 그의 ‘첫’ 사이의 시차 간격은 어떻게 이토록 거대한 걸까. 장애 등록 하여 사회적 울타리 안에서 장애인으로 받아들여지고자 하였던 그를, 장애인으로 받아들여 주지 않는 세계. 등록되지 않고, 인용되지 않고, 주석이 달리지 않는 이 세계. 미등록-체류의 시간과 격리-표류의 시간 사이에서 폭력, 고립, 수치심, 열등의 사각형 꼭짓점으로 할당된 그의 세계 면적을 계산하기 위한 몇 가지 숫자들.
자폐성 장애인 평균 수명 : 23.8세
사망 원인 1위 : 사고사 41%(자살, 추락……)
관련 연구 : 0(해당 없음)
장애인 1인당 평생 교육 예산 : 2,287원(연간)❶
스물일곱 살의 고기능 자폐스펙트럼장애인 변호사 우영우는 그나마 오래 살아남은 편이고, 아파서 죽는 게 아니라 각종 사고로 죽어 나가고 있고, 자폐성 장애인 평균 수명 54세의 북유럽권의 정책과 비교 분석하는 관련 정책 연구 하나 없고, 학령기를 놓칠 수밖에 없던 장애인들의 교육에는 커피 한잔 값으로 “우리도 장애인들을 위해 애쓰고 있다”며 시늉하고 있는 이 숫자들로 계산해 보았을 때 그에게 할당되어 있던 이 지상의 방 한 칸의 면적. 그 안에 그가, 있었다.
차라리 죽는 편과 어차피 죽은 셈
올해 노들장애인야학(노들야학)의 1학기 한소리반 급훈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 하루하루 소중히 살자”다. 매학기 다소 가볍게 지어지기도 하는 반별 급훈이 이번 학기엔 마냥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언젠가는 죽는다, 는 막연한 형이상학적 문장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지 모른다, 는 육박하는 실존의 문장으로 들렸다. 노들야학에는 많은 학생들이 죽음에 맹렬했던 적이 있다.
34년간 창문을 통해 보았던 세계가 전부였던 그가 매일 창문 밖으로 뛰어내릴 생각에 맹렬했다거나.(그들 A) 31년간 집 안에만 박혀 살면서 죽는 것도 자기 맘대로 할 수 없어서 누가 와서 목 졸라 죽이든지, 칼로 찔러 죽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맹렬했다거나.(그들 B) 부모가 이상하리만치 방문을 꼭 닫은 날. “같이 죽자. 이렇게 살 바엔 같이 죽자”며 연탄을 피운 여덟 살 때의 기억을 맹렬하게 떠올린다거나.(그들 C) 많은 학생들이 육박해 오는 죽음의 맹렬함을 넘어가며 생존해 있다는 것에 놀라울 때가 잦다.
2022년 5월 16일에, 전국장애인부모연대에서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시민 분향소’를 차리기 위해 삼각지역에 모였다, 는 소식이 있고 잠시 뒤 분향소 설치를 막아선 경찰 권력과 큰 소란이 벌어지고 있으니 결집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날짜와 장소만 서로 다를 뿐 발달장애인 자녀를 죽이고 그 자신도 죽는 참사가 맹렬하게 이어지던 때였다. 급히, 자리를 접고 삼각지역으로 향했다. 도착했을 때, 제자리를 잡지 못한 임시 추모 분향소를 둘러싸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은 오랜 농성으로 지쳐 서로에게 무릎을 기댄 채 좁게 앉아 있었다. 그곳에 둘러앉은 회원들 대부분이 단체 삭발(557명)을 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두피까지 다 보일 정도였다. 협상단이 삼각지역장과 협상을 하러 간 사이, 마이크가 돌기 시작했다. 발언의 시작은 울음으로 시작되거나, 울음을 견디며 시작되거나, 울음을 밟고 선 목소리로 시작되었다. 어느 누구 하나 잘 정돈된 발음이 아니었다. 울음과 신음을 번갈아 발음하며 그들은 말했다.
“아이가 어렸을 때 매일같이 재활병원에 다녔어요. 병원을 갈 때 늘 다리를 하나 지나야 했는데요. 그 다리를 건널 때마다 핸들이 떨렸어요. 지금 확, 핸들을 꺾어 이 다리 밑으로 떨어질 생각을 몇 년 동안 했어요. 같이 죽어 버리고 싶어서요.”(그들 D)
“저희 집 베란다에는 커튼이 늘 쳐져 있어요. 베란다 앞에만 서면 뛰어내리고 싶어서요. 잠든 아이를 안고 매일 생각했어요. 이대로, 이대로 그냥 콱.”(그들 E)
“제 아이가 저보다 하루 먼저 죽길 바라요. 제가 먼저 떠나고 나면 이 아이는 어떻게 해요. 제발 하루만 저보다 제 아이가 먼저 죽었으면 해요.”(그들 F)
지뢰를 밟은 듯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죽음의 문법. 나도 이런 문법의 문장을 함께 살고 있는 시각장애인 반려자에게 숱하게 들었다.
“나보다 하루 늦게 죽어. 나보다 먼저 죽으면 안 돼. 무조건 내 다음에 죽어. 암스테르담에 가서 총을 하나 살 거야. 아이가 스무 살이 되면 거기서 죽기로 결정했어. 결심 따위가 아니라. 그러니까, 나는 이 아이에게 지금부터 내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가르치기 시작할 거야. 거리에 말라붙은 지렁이와 살충제를 먹고 다리를 떨고 있는 지네에 대해서 이야기해 줄 거야.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넌 살아 있어.”(그들 G)
다양한 버전으로 자기 죽음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내는 반려자의 목소리에 살기가 느껴질 때면 곰곰한 세계로 진입하곤 했다. 이 열렬한 고요함 속에서 언제나 나는 곰곰이 있었다. 할 말을 하지 않고 그저 그 곰곰한 자세로 함께 있는 것. 할 말을 잃은 뒤에 발음할 수 있는 단어도 없이 그저 떠오를 말을 기다리며 그저 곰곰이 듣고 있는 것. 그것이 나의 윤리라고 생각했다. 반려자가 향하고 있는 그 죽음에 대해서 나는 곰곰한 침묵으로 응답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아니었다. 혼자 견디는 곰곰한 침묵이 아니라 함께 견디는 곤곤한 웅성거림으로 있었다. 넘어가는 목숨의 발성으로 삼각지역 한편에서 죽음에 맞선 정치를 수행하고 있었다. 모음들로만 발음되는 울분들, 감응의 모음들로 발음되는 분한 울음소리가 넘치는 이 곤곤한 말들을 들으며, 불현듯 깨달았다. 모음으로만 발음되는 울분을 함께 발음하며 말해야 한다는 것. 죽음과 울음과 신음으로 뭉쳐진 물음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음분열증(schizophonia) 속에서도 고유한 자기 목숨의 형태로 앉아 고백하고, 발언해야 한다는 것. “막다른도로”를 질주하며 “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들 모두 죽음의 공포로 가득 찬 도로 위에서도 “뚫린골목”(이상)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 죽음을 발음하며 무서운, 무서워하는, 무섭다고, 무서워지는, 무섭기만 한, 무서워지려 하는 공포 속에서 곤곤한 문장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
“제 자식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지 않기 위해 저는 이곳에 나왔습니다.”(그들 H)
아주 오랫동안 먼저, 죽어 왔다. 신대륙으로 가는 노예선 위에서 장애인은 가장 먼저 상어 밥이 되었고, 의료 권력에 의해 치료받아야 할 대상으로 먼저 시설로 보내져 재활의 목적에 따라 잘려지고 문드러져 죽었고, 파시즘 권력으로부터 공공의 부담이라며 가장 먼저 가스실에 들어갔고, 자본주의라는 ‘문명’의 열차에는 탈 수 없는 ‘비문명’의 열등-낙인을 찍어 죽였고, 시설에 가둬 놓고 “죽은 아이라 생각하며 살라”고 권유하며 죽였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구걸할 수밖에 없게 해 놓고 죽였고,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는 것 말고는 다른 상상을 할 수 없게 만들어 죽였다.
독일계 미국의 특수교육학자 울펜스버거는 이를 두고 죽음-제조(death making)❷라고 개념화한다. 쓸모없게 여겨지는 사회적 계급은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죽음-제조 문법 속에서 손쉽게 지워진다. 자본주의와 함께 시작된 장애인을 향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격리와 배제를 낳았고, 쪼그리든 세계에서 경제적 빈곤, 경험의 빈곤으로 이어져 빛이 들지 않는 방구석/집구석/시설 구석에 처박힌 채 “죽음-속박(death-bound)”되어 집, 거리, 학교, 정책, 예산, 국가 기관으로 얽힌 “죽음 동맹(death alliance)”은 사회 가장 구석에 자리 잡은 장애인을 체계적으로 죽이고 있다, 고 본다. “오히려 잘 죽었다”로 각색되는 죽음과 죽음들 속에 체계적인 학살이 보이지 않게 자행되고 있다, 고 본다.
카메룬 출신의 역사정치학자인 아쉴 음벰베는 이를 시체정치(necropolitics)❸, 라는 개념으로 보다 정교화시킨다.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삶의 조건에 종속된 “살아 있는 죽은 자”를 만들어 내는 시체정치는 “권력이 죽이는 권리로 작동하며” 삶을 통제하고 굴복시키는 생명정치의 현행적 형태라고 말한다. 폐기 가능한 사람들을 폐기 가능하지 않은 이들로부터 구분하여 “손실로 인지되지 않는 죽음”으로 만든다, 고 한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퀴어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는 음벰베의 논의를 이어받아 누구의 건강과 생명이 보호받아야 하고 누구의 건강과 생명은 그럴 필요가 없는지를 “시장 합리성과 효율성이란 명목 아래서 그들을 그냥 죽게 내버려 두는 구조적 방치의 조건들을 생산하는 정책”을 꼽으며, “누가 살 수 있고 누가 살 수 없는지에 대한 그 어떤 선택도 언제나 대량 학살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❹
하와이의 평화학자 루돌프 럼멜은 보다 적극적으로 민중학살(democide)❺, 즉 국가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행위, 에 대해서 말한다. “죽여 없애기와 죽게 내버려 두기” 이 모두를 학살로 규정한다. 국가의 무책임, 방임, 고의적 정책으로 인해 대규모 사망이 초래된 행위 역시 그는 민중학살의 한 형태라고 본다. 국제적 기준치에 까마득히 뒤처지는 통계 앞에서도 ‘쓸모없음’으로 낙인찍힌 이들에게 여전히 ‘쓸 돈 없음’으로 일관하며 ‘죽게 내버려 두기’를 하고 있는 기획재정부가 있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며 요구하고 있는 장애인 권리 예산안에 “그런 거 다 들어주면 나라 망한다”고 이야기하는 기획재정부 장관의 나라에서는 보이지 않는 학살이 진행되고 있다.
인권학자 조효제는 과감하게 학살세(caedemocene)❻라는 용어를 제안하기도 한다. 역사상 최악의 인간 학살과 대멸종을 촉발시킨 생태 학살의 현세기를 보다 전면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용어이다. 이는 파국적 기후 위기 상황 속 죽음의 형태가 학살로 수행되고 있음을 드러내고, 학살의 네트워크가 전 지구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죽음의 그림자는 맹렬하게 뻗어 나가고 있다. 34년 방구석에서만 바라보던 창문을 지나, 닫힌 문안에 피워 올린 연탄가스를 지나, 굳게 닫힌 베란다 커튼을 지나, 암스테르담 권총을 지나, 지나, 지나, 비정규/특수고용/외국인 노동자들에게로, 쪽방과 거리로 밀려난 홈리스들에게로, 존재 자체로 혐오 낙인이 찍힌 퀴어들에게로, 상품으로 등급 매겨진 동물들에게로, 상품 씨앗에 밀려 땅을 잃어버린 채 멸종되어 가는 토종 씨앗들에게로, 계산조차 할 수 없는 단위로 쓰레기화되는 일회용 사물들에게로, 그리고 그, 에게로.
나는 그, 의 죽음 앞에서 울상으로 시간을 온통 보냈다. 비 오는 날 대법원 앞에 누워 있는 기분으로. 내가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궁상맞게. 그저, 안타까운 죽음으로 남겨 두기엔 속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작은 추모 공간이 노들야학 복도 한복판에서 열렸다. “부디”로 시작하는 포스트잇들이 그 공간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추모 기간이 끝난 바로 그 다음 날 아침, 눈을 뜨기도 전에 하나의 문장이 달려들었다. 번쩍 일어나, 받아 적었다. 부디,
“복수해 달라”.
복수의 교육학
이 말은 누군가의 유언이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아원에 버려졌고, 스물한 살에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였고, 다방을 돌며 껌을 팔았고, 시장 바닥에서 수세미와 카세트테이프를 팔던 누군가였다. 미등록 노점상 단속으로 왼쪽 다리가 부러져 그마저도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되었고, 빼앗긴 스피커와 배터리를 돌려 달라고 구청에 갔다가 공무원이 무시하며 “병신 새끼” 하는 말을 듣고 서초구청 한복판에서 준비해 온 시너 1리터를 제 몸에 쏟아 붓고 불을 붙인 그, 최정환 열사의 유언이었다.
이 문장이 유언 하나 없이 떠난 그, 의 마지막 말이었을 것이다, 라고 직감했다. 목소리를 빼앗긴 자들이 쓰러지며 남긴 마지막 말일 것이라고 직감했다. 말없이 죽어 가야 했던 인간/동물/식물/미생물/사물/정령들의 마지막 말일 수도 있겠다, 고 여겨졌다. “지구를 조금 더 사랑해 주세요. 여러분 모두들 평화롭게 살아 주세요”가 아니라 방사능 물질에, 제초제 오염에, 혐오 폭력에 시달리며 멸종당해 가며 한 말은, 바로 복수해 달라, 가 아니었을까. 유언으로 남는 말. 나는 목소리 없이 죽어 가는 것들의 유언으로 “복수해 달라”를 받아들이기 위한 감각실험생활을 시작했다. “모든 죽어 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윤동주), 에서 모든 죽어 가는 것들과 복수해야지, 로.
최정환 열사의 유언을 직접 들은 김흥현 씨는 “복수해 달라, 이게 누구 때려 죽여 달라는 얘기겠어? 다신 나 같은 사람 안 나오도록 해 달라, 이런 얘기겠지”❼라며 그의 유언을 받는다. 그리고 유언을 받아든 장애인들과 노점상들이 서초구청에 모여 최정환 열사와 함께 그의 사회적 신체들인 삼륜 오토바이, 카세트, 좌판에도 불을 붙였다. 구청 마당에서 타오른 복수의 불씨가 아직도 노들야학 곳곳에 불붙이며 살아 있다.
고병권 노들야학 교사는 “장애인운동으로부터”라는 부제를 단 〈점거와 총파업〉❽이라는 글에서 “응징해야 한다”고 한다. “국가가 ‘우리가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한 증명이 아니라 (……) 특정 계급과 분파의 이해에만 복무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우리는 국가의 배신에 마땅한 응징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체제가 확실히 변형될 때까지 어떤 협력도 거부한 채, 아주 냉담하게, 아주 급진적으로, 철저히 고개를 돌려” 응징해야 한다고 한다. 복수해 달라, 는 말에 응징해야 한다, 는 말로 받아 이어진다.
홍은전 노들야학 교사는 〈꽃님씨의 복수〉❾라는 글에서 복수당한 경험에 대해서 썼다. 주민등록조차 되지 않아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이름조차 없이 갓난아, 로 불리던 중증장애인 꽃님씨. 수급비의 절반 가까이를 10년간 현금으로 모아 야학에 2000만 원을 기부하며 탈시설 운동에 써 달라고 했다던 이야기. 소외된 이웃이 거액의 후원자로 변신한 순간, “어떤 권력관계가 뒤집히는 순간” 복수를 느낀다. 권력관계가 뒤집어지는 사건, 으로서의 복수가 있기도 하다.
“복수해 달라”라는 문장은 “권력관계를 뒤집어 달라”라는 문장과 “응징해야 한다”라는 문장과 “다시는 나 같은 죽음을 만들지 말라”는 문장과 서로 동맹하고 있다. 이는 복수(avenge)의 라틴어 어원(vindicationem)의 동사(vindicare)가 가진 “해방시키다, 자유를 주장하다, 권리를 주장하다, 옹호하다”라는 의미들의 풍경과도 이어진다. 복수해 달라, 는 문장이 미래를 끌어당기며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복수라는 것이 개인적 앙심(ressentiment)을 품은 채 무력 액션이 펼쳐지며 때려죽이는 복수극이 아니라 양심을 품은 채 지배 권력의 세상을 전복시켜 나가는 활극을 이어 나가 달라는 것일 것이다.
미등록 노점상 최정환, 출생 미등록 꽃님 씨, 미등록 장애인 그, 는 한결같이 등록되지 못했다. 등록되지 못한 채 쫓겨나고, 보이지 않게 되고, 정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등록되지 않는 이 세계를 향해 복수하지 않으면, 응징하지 않으면, 반격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는 사실을 노들야학의 많은 것들이 나에게 가르쳤다.
목에 쇠사슬을 걸고 출근길 지하철을 오르려는 야학 학생들에게, 장애인 화장실 문에 휠체어가 끼어 갇혀 있다가 간신히 나와 스프레이 페인트를 사서 화장실 벽면에 “가짜 장애인 화장실”이라고 휘갈겨 쓴 야학 동료 교사들에게, 불법이라고 낙인찍는 경찰 방패를 향해 돌진하는 휠체어에게, 야학 입구에 놓인 죽은 자들을 기억하는 액자 옆을 지키는 식물들에게, 투쟁을 외치며 수천 가지 방법으로 손을 들어 올리는 저 손짓에게,
배웠다. 나를 둘러싼 거의 대부분의 것들이 남성-비장애인 특권 속에서 존재해 왔다는 것,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고 식당에서 밥 먹는 일에 대해 단 한 번도 특권이라고 느끼지 못한 채 살아와도 괜찮았다는 것, 여기 있음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감응의 정치학에 대해서, 퀴어 해방과 동물 해방과 빈민 해방과 장애 해방이 어떻게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지에 대해서, 존재 그 자체로 인해 기존의 권력에 균열을 낼 수밖에 없는 ‘자동사적 저항’(호미 바바)에 대해서, 나라고 불리는 것들을 뒤흔들고 나의 경계를 교란시키는 배움을 한다는 것의 매혹에 대해서 배웠다. 나/나들/너/너희/그/그들/그것들은 미세인칭으로 서로 침투하는 배움의 과정 속에서 생동하며 노들야학은 나에게 복수, 를 가르쳐 주었다.
학살세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복수를 궁리해야 하지 않을까. 증오의 복수가 아니라 분노의 복수로. 충동의 복수가 아니라 느껴진 사유의 복수로. 파괴의 복수가 아니라 생성의 복수로. 일일이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수히 고유한 방식의 복수로. 시체정치가 펼쳐지는 학살세 속에서 “내쫓긴 자, 이름 없이 살고, 그 이름으로 남기지도 않으며, 도시 국가의 상징적 구성 속에서 하나의 부분으로 셈해지지 않는, 그저 살고 번식하는 자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는 아무나의 이름, 내쫓긴 자들의 이름”(자크 랑시에르)을 긍지로 삼은 만물의 프롤레타리아들의 현장 속에서.
매일을 위협하는 불안을 더 이상 견디지 않겠노라! 깃발을 올린 비정규직/특수고용/외국인-프롤레타리아들과 인간으로서의 삶을 하루하루 구걸해야만 한다는 수치스러운 부조리를 더 이상 견디지 않겠노라! 둥지를 틀고 있는 빈곤차별반대 홈리스-프롤레타리아들과 이 밀려난 인생에 혐오의 시선을 던지는 타자들의 무게를 더 이상 견디지 않겠노라! 쏟아져 나온 퀴어-프롤레타리아들과 이대로 죽을 수 없다! 고속도로를 뒤덮어 버리려는 식물-프롤레타리아들과 도시인간들을 돌보며 동네 곳곳에 우발적 코뮌을 만들어 내고 있는 동물-프롤레타리아들과 때 이르게 버려질 때조차도 묵묵하고 충실하게 매일같이 거리에 나와 전봇대 밑을 점거하고 있는 사물-프롤레타리아와 함께 싸워 나가고 있음을, 되새기며. 만물의 프롤레타리아들과 “동맹의 괴물적 역량”(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까스뜨루)을 느끼며. 복수해야겠다.
악랄하고 발칙한
노들야학에서 상근 교사 생활을 시작하던 날 한 동료 교사가 내게 3단 책상 서랍 하나를 물려주었다. 가장 아래 가장 큰 칸을 여는데 쉽게 열리지 않을 정도로 무거웠다. 쇠사슬이었다. 그 곁으로 청테이프와 노끈, 다양한 길이의 케이블 타이, 칼과 가위 같은 것도 함께 들어 있었다. 어디든 붙들어 매고 있기 위해서, 사생을 결단해야 하는 어떤 각오의 형태가 함께 들어 있는 듯했다. 노들야학에서 서식하고 있는 투쟁, 이라는 말의 질량과 닮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이곳은 투쟁, 이라는 말을 빼고는 불가능한 학교다. 단체 사진 찍을 때, 체육대회를 할 때, 가만히 있기 심심할 때, 답을 찾아야 하는 고민에 빠졌을 때, 수업 시간 중에도 투쟁, 이라는 낱말이 식을 새가 없는 학교다. 투쟁, 이라는 말을 빼고는 불가능한 학교에서 투쟁, 이라는 말의 용법 역시 무수하다. 애도하고, 슬퍼하고, 기념하고, 기억하고, 마음을 먹고, 기뻐하고, 인사하고, 결의를 다지고, 고맙고, 미안하고, 이동하고, 교육받고, 밥 사 먹고 등등. 투쟁은 생동한다. 이토록 투쟁의 뜻이 무수한 이유는 비장애 중심주의 세계와 끊임없이 불화하고 투쟁할 수밖에 없는 조건 때문이다. “사탕수수 농장의 흑인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투쟁뿐이기 때문이다. (……) 착취와 굴욕적인 삶, 굶주림에 대한 투쟁의 형식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삶과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프란츠 파농)라는 말과도 이어진다. 자신에게 허락된 온당한 자리가 비-존재인 사람들(주디스 버틀러)이 벌이는 존재 투쟁, “죽여도 되는 걸로 만들지 말라”(도나 해러웨이)는 투쟁, 이 여기 있다.
학교 없는 곳에서 만들어진 학교인 노들야학에 와서, 교육과 학교에 대한 질문이 내게 다시 시작되었다. “배운다는 건 / 꿈을 꾸는 것 / 가르친다는 건 / 희망을 노래하는 것”(〈꿈꾸지 않으면〉, 간디학교 교가)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자란 내가 배운다는 것이 투쟁이고, 가르친다는 것이 해방을 향해 있는 이 학교에서 내가 먼저 배운 노래는 “아 이 개 같은 세상의 시계를 멈춰라 / 차별과 착취 없는 장애 해방 그날을 향해”이다.(〈장애인차별철폐투쟁가〉) “사랑과 자발성”을 모토로 하던 학교에서 자란 내가 “투쟁과 상호 의존성”을 모토로 하는 학교에 왔다.
“당신의 해방과 나의 해방”이 이어져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생동하는 교육 철학. 배움과 투쟁을 함께 엮어 내기 위해 치열하고 치밀했던 30년의 교육 역사. ‘투쟁’을 야학의 무의식으로 심어 둔 교육 심리. 14년째 한글 공부에도 간판 하나 읽기에는 애타는 속도에 맞춘 교육 평가. 춤추는 시간에 온갖 활자로 칠판 가득 쓰기만 하는 학습자와 함께하는 교육과정. 말하는 방법이 달라 한 문장을 알아듣기 위해 몇 분 정도씩도 걸리는 교실에서의 교수 이론. “그 누구도 남겨 두지 않는다”에서 시작되는 교육 기획. 정상/보편/일반/평균/보통에 대한 가정 없이 진행되는 수업 설계. 학생 하나 이사 간다고 하면 팔 걷고 나서는 교사들의 생활 상담. 서울시청 앞에서 이슬 맞으며 1박 2일 노숙 투쟁도 불사하는 학사 일정, 을 가꾸고 있는 노란들판 위의 학교, 노들야학은 내게 질문하고 있다.
목에 쇠사슬을 걸고 지하철을 멈춰 세우는 야학의 학생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지하철 바닥을 기며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 스티커를 붙이는 야학의 학생과 함께 어떤 기백을 가지고 세계를 기어 가야 하는가? 도래할 파국의 예감, 죽음의 예감을 넘어서는 교육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어떤 목소리들과 동맹하여 교실을 가꿀 것인가? 포식(捕食)적 자본주의 네트워크 속에서 생존을 이어 나갈 수단을 가진 것들만이 살아남는 계급적 질서에 맞선 복수의 문장은 누구의 목소리로 증언되어야 하나?
그리고 그가, 있다. 미등록 장애인으로 사회적 울타리 밖에서 자신의 존재를 출현시키며 함께 살아갈 가능성에 대해서 질문하는 그가, 있다. 함께 배울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질문하는 그가, 있다. 죽은 뒤에도 끊임없이 내게 질문을 해 대고 있다. 죽을 사람과 죽이는 사람에 대한 안목이 좀 생겼냐고. 장애 등록 좀 어떻게 되었는지 1년에 한 번씩 깨어날 테니 알려 달라고. 복수해 달라는 유언을 잘 돌보고 있냐고. 완전한 죽음은 없는 거라고. 아직도 할 말이 많이 남은 그와 함께 나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자리에 섰다. 그 자리에 불끈 쥔 주먹 모양의 씨앗에서 악랄하고 발칙한 뿌리가
내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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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❶ 보건복지부(2021), 《2019년도 장애인 건강보건통계》; 최종윤 의원실, 《장애인 건강보건통계》 재가공(2016~2020); 국립특수교육원(2019), 《장애인 평생교육 중장기계획 수립을 위한 기초 연구》.
❷ Wolfensberger, W.(2002), The new genocide of handicapped and afflicted people(3rd ed.), Syrause, NY: Author.
❸ Mbembé, J. A.(2003), Necropolitics , Public Culture, 15(1), pp. 11–40.
❹ 주디스 버틀러, 김응산·양효실 옮김(2020),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창비.
❺ Rummel, R.(1994), Death by government: genocide and mass murder since 1900, New Brunswick, N.J. : Transaction Publishers.
❻ 조효제(2022),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 창비.
❼ 비마이너 기획(2021), 《유언을 만난 세계》, 오월의봄.
❽ 고병권(2014), 《살아가겠다》, 삶창.
❾ 홍은전(2022), 《그냥, 사람》, 봄날의책.
노들장애인야학 개교 30주년 ‘노들방탄기금’ 후원 안내 1993년에 개교하여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노들장애인야학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학령기를 놓친 장애인들이 모여 공부하고, 차별의 세계에 맞서 투쟁하며 30년간 꿋꿋이 지켜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노들장애인야학을 향해 습격하듯 날아드는 표적 수사와 전속력으로 오르는 공간 보증금은 점점 버거워져만 가고 있습니다. 휘몰아치는 위협 속에 매년 아슬아슬 버텨 내고 있습니다. 몰아치는 거센 바람을 걸러 주고 새싹과 작물을 지켜 주는 밭담처럼 노들장애인야학을 함께 지켜 주십시오. 무수히 고유한 목소리들이 계속해서 해방의 미래를 길러 낼 수 있도록! 모금 계좌 신한은행 100-025-323501 노들장애인야학 문의 02-766-9101 |
연재를 시작하며 노란들판 위 그, 들의 학교 노란들판 위 학교, 노들장애인야학은 기어이 30주년을 맞았다. 1993년 점거 투쟁을 통해 쟁취한 정립회관 2층 작은 탁구장 한편에서 시작된 밤의 학교는 2008년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한편을 점거한 채 “장애 성인 교육권 확보” 현수막을 걸고 천막학교로 이동하였다. “길거리에 나앉아도 수업은 계속”되었다. 이후 “밤에 공부하는 학교(야학)가 아니라 풀뿌리 민중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들판 위의 학교(야학)”로 뜻을 새롭게 결의하여 마로니에 공원 바로 옆에 자리한, 엘리베이터가 있는, 입구에 계단이 없는, 도심 한가운데 있는 유리빌딩 2층에 학교 자리를 잡았다. 이야기하기, 공부하기, 투쟁하기를 멈추지 않는 노란들판 위 학교, 노들장애인야학은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 견고하고 기묘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노들장애인야학 정교사 임명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 땅의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사회적 차별에 맞서 싸우”라! 사무실엔 이런 문구가 액자에 담겨 있다. “당신의 해방과 나의 해방이 연결되는 공간” 휴게실엔 야학 소개문이 이렇게 붙어 있다. “우리의 교육은 억압적인 세상을 바꾸는 집단적인 실천”이다! 어쩌자고 나는 기세 좋은 학교가 거느린 기백에 휘말려, 쓰지 않을 수가 없어서 쓰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무수히 고유한 그, 들을 만났다. “우리는 병신입니다. 그러나 당당한 병신으로 살고자 합니다” 외치는 그, 와 “초코새우 꽃게아이스크림”을 반복해서 몇 시간째 쓰고 있는 그, 와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꿈에서 매일” 가족을 만난다는 그, 와 “나의 신념은 장애인차별철폐”라 여기는 그, 와 “투쟁 없는 삶으로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는 그, 들을 노들에서 만났다. 무수히 고유한 그, 들을 만나 무수히 배웠다. 섬뜩하게 배웠고, 환호하며 배웠고, 참담하게 배웠고, 경이롭게 배웠고, 절망하며 배웠다. 휘몰아치는 배움의 감응을 쓰지 않을 수가 없어서 쓰기 시작했다. 쓰다 보니 어떤 문장은 내가 썼고, 어떤 낱말은 그가 썼고, 어떤 부사는 그, 들이 썼고, 어떤 쉼표는 그것, 들이 썼고, 어떤 문장은 정돈되지 않은 채 학교 구석구석을 점거하고 있는 피켓들이 썼고, 어떤 인용은 정연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온갖 체위로 꽂혀 있는 학교 책장의 책들이 썼다. 무한수열로 분열하며 쓰인 조각 문장들을 병렬로 엮었다. 글의 짜임새와 쓰임새에 대해 생각하면 정돈과 정연함을 갖추어야 했지만, 이렇게 쓸 수밖에 없어서 쓰기 시작했다. 이 연재는 ‘이야기한다는 것’에 대한 시적 현장 보고서, ‘투쟁한다는 것’에 대한 미래-유물론적 견문록, ‘배운다는 것’에 대한 현상학적 에세이가 뒤섞여 있다. 이러한 뒤섞임 속에서 나침반이 되어 준 문장이 있다. 야학 교사를 시작하려면 반드시 낭독해야 하는 문장. 노들야학 여러 자료들마다 끊임없이 인용되는 문장. 살아 있는 생명(문)체로 노들야학에서 생동하고 있는 문장. 독자들에게 선물하고자 연재 첫 자리에 이 문장을 놓는다.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 멕시코 치아파스의 어느 원주민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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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동맹의 교실, 해방의 교육학 ①
복수의 교육학
- 학교 없는 곳에서 세워진 학교, 노들장애인야학이 던진 질문들
글
서한영교
poetrypunx@gmail.com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중학교 들어가서 학교폭력과 괴롭힘에 시달려 학교를 그만두고 7년간 방 밖으로 한걸음도 나오지 않았던 그에 관한 소식. 이후 몇 해를 주로 집에서만 지내며 생활했다던, 고기능 자폐스펙트럼장애로 장애인 등록도 되지 않는다던, 십몇 년 만에 집 밖 생활로 야학에 와 흥분된다며 숨을 잘게 고르던, 오랫동안 참아 왔던 말을 다 하느라 말을 한번 시작하면 온종일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던, 야학에 오기 위해 환승에 환승을 거듭하며 왕복 3시간씩 걸린다던, 빈 교실을 빙빙 돌며 가끔 혼자 중얼거리던, 그에 관한 소식.
그가 죽었다, 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주를 마셔 본다며 물끄러미 잔을 바라보던 그, 가 떠올랐다. 태어나서 처음 바다를 봤다며 반짝이던 그, 가 떠올랐다. 그렇게 며칠 밤낮으로 무수한 처음을 겪어 내고 있던 그, 가 떠올랐다. 자기 이야기를 이렇게 잘 들어 주는 사람은 처음, 느닷없이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아 본 것도 처음, 집 밖에서 맘 편하게 시간 보낸 것도 처음, 이라고 했을 때 무수한 그의 첫, 이야기는 기쁨에 차올라 있어 계속 그 첫, 번째 경험들의 증인으로 남아 있고 싶었는데
그가 죽었다, 는 소식에 매일 아침 눈뜨면 전속력으로 그, 가 먼저 떠올랐다. 한번 말을 시작하면 쏟아 내듯 말을 하던 그, 가 쏟아졌다. 3인칭이 아니라 1.8인칭, 2.6인칭의 그, 가 꿈에도 자주 출현했다. 어떤 날은 1.1인칭의 그, 가 내 모든 시선을 장악하기도 했다. 속눈썹까지 다 아팠다. 죽음 직전에 어떤 느낌에 휩싸여 있었을까. 그가 느꼈던 이 세계는 얼마큼 뾰족한 것이었을까. 나의 ‘첫’과 그의 ‘첫’ 사이의 시차 간격은 어떻게 이토록 거대한 걸까. 장애 등록 하여 사회적 울타리 안에서 장애인으로 받아들여지고자 하였던 그를, 장애인으로 받아들여 주지 않는 세계. 등록되지 않고, 인용되지 않고, 주석이 달리지 않는 이 세계. 미등록-체류의 시간과 격리-표류의 시간 사이에서 폭력, 고립, 수치심, 열등의 사각형 꼭짓점으로 할당된 그의 세계 면적을 계산하기 위한 몇 가지 숫자들.
자폐성 장애인 평균 수명 : 23.8세
사망 원인 1위 : 사고사 41%(자살, 추락……)
관련 연구 : 0(해당 없음)
장애인 1인당 평생 교육 예산 : 2,287원(연간)❶
스물일곱 살의 고기능 자폐스펙트럼장애인 변호사 우영우는 그나마 오래 살아남은 편이고, 아파서 죽는 게 아니라 각종 사고로 죽어 나가고 있고, 자폐성 장애인 평균 수명 54세의 북유럽권의 정책과 비교 분석하는 관련 정책 연구 하나 없고, 학령기를 놓칠 수밖에 없던 장애인들의 교육에는 커피 한잔 값으로 “우리도 장애인들을 위해 애쓰고 있다”며 시늉하고 있는 이 숫자들로 계산해 보았을 때 그에게 할당되어 있던 이 지상의 방 한 칸의 면적. 그 안에 그가, 있었다.
차라리 죽는 편과 어차피 죽은 셈
올해 노들장애인야학(노들야학)의 1학기 한소리반 급훈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 하루하루 소중히 살자”다. 매학기 다소 가볍게 지어지기도 하는 반별 급훈이 이번 학기엔 마냥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언젠가는 죽는다, 는 막연한 형이상학적 문장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지 모른다, 는 육박하는 실존의 문장으로 들렸다. 노들야학에는 많은 학생들이 죽음에 맹렬했던 적이 있다.
34년간 창문을 통해 보았던 세계가 전부였던 그가 매일 창문 밖으로 뛰어내릴 생각에 맹렬했다거나.(그들 A) 31년간 집 안에만 박혀 살면서 죽는 것도 자기 맘대로 할 수 없어서 누가 와서 목 졸라 죽이든지, 칼로 찔러 죽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맹렬했다거나.(그들 B) 부모가 이상하리만치 방문을 꼭 닫은 날. “같이 죽자. 이렇게 살 바엔 같이 죽자”며 연탄을 피운 여덟 살 때의 기억을 맹렬하게 떠올린다거나.(그들 C) 많은 학생들이 육박해 오는 죽음의 맹렬함을 넘어가며 생존해 있다는 것에 놀라울 때가 잦다.
2022년 5월 16일에, 전국장애인부모연대에서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시민 분향소’를 차리기 위해 삼각지역에 모였다, 는 소식이 있고 잠시 뒤 분향소 설치를 막아선 경찰 권력과 큰 소란이 벌어지고 있으니 결집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날짜와 장소만 서로 다를 뿐 발달장애인 자녀를 죽이고 그 자신도 죽는 참사가 맹렬하게 이어지던 때였다. 급히, 자리를 접고 삼각지역으로 향했다. 도착했을 때, 제자리를 잡지 못한 임시 추모 분향소를 둘러싸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은 오랜 농성으로 지쳐 서로에게 무릎을 기댄 채 좁게 앉아 있었다. 그곳에 둘러앉은 회원들 대부분이 단체 삭발(557명)을 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두피까지 다 보일 정도였다. 협상단이 삼각지역장과 협상을 하러 간 사이, 마이크가 돌기 시작했다. 발언의 시작은 울음으로 시작되거나, 울음을 견디며 시작되거나, 울음을 밟고 선 목소리로 시작되었다. 어느 누구 하나 잘 정돈된 발음이 아니었다. 울음과 신음을 번갈아 발음하며 그들은 말했다.
“아이가 어렸을 때 매일같이 재활병원에 다녔어요. 병원을 갈 때 늘 다리를 하나 지나야 했는데요. 그 다리를 건널 때마다 핸들이 떨렸어요. 지금 확, 핸들을 꺾어 이 다리 밑으로 떨어질 생각을 몇 년 동안 했어요. 같이 죽어 버리고 싶어서요.”(그들 D)
“저희 집 베란다에는 커튼이 늘 쳐져 있어요. 베란다 앞에만 서면 뛰어내리고 싶어서요. 잠든 아이를 안고 매일 생각했어요. 이대로, 이대로 그냥 콱.”(그들 E)
“제 아이가 저보다 하루 먼저 죽길 바라요. 제가 먼저 떠나고 나면 이 아이는 어떻게 해요. 제발 하루만 저보다 제 아이가 먼저 죽었으면 해요.”(그들 F)
지뢰를 밟은 듯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죽음의 문법. 나도 이런 문법의 문장을 함께 살고 있는 시각장애인 반려자에게 숱하게 들었다.
“나보다 하루 늦게 죽어. 나보다 먼저 죽으면 안 돼. 무조건 내 다음에 죽어. 암스테르담에 가서 총을 하나 살 거야. 아이가 스무 살이 되면 거기서 죽기로 결정했어. 결심 따위가 아니라. 그러니까, 나는 이 아이에게 지금부터 내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가르치기 시작할 거야. 거리에 말라붙은 지렁이와 살충제를 먹고 다리를 떨고 있는 지네에 대해서 이야기해 줄 거야.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넌 살아 있어.”(그들 G)
다양한 버전으로 자기 죽음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내는 반려자의 목소리에 살기가 느껴질 때면 곰곰한 세계로 진입하곤 했다. 이 열렬한 고요함 속에서 언제나 나는 곰곰이 있었다. 할 말을 하지 않고 그저 그 곰곰한 자세로 함께 있는 것. 할 말을 잃은 뒤에 발음할 수 있는 단어도 없이 그저 떠오를 말을 기다리며 그저 곰곰이 듣고 있는 것. 그것이 나의 윤리라고 생각했다. 반려자가 향하고 있는 그 죽음에 대해서 나는 곰곰한 침묵으로 응답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아니었다. 혼자 견디는 곰곰한 침묵이 아니라 함께 견디는 곤곤한 웅성거림으로 있었다. 넘어가는 목숨의 발성으로 삼각지역 한편에서 죽음에 맞선 정치를 수행하고 있었다. 모음들로만 발음되는 울분들, 감응의 모음들로 발음되는 분한 울음소리가 넘치는 이 곤곤한 말들을 들으며, 불현듯 깨달았다. 모음으로만 발음되는 울분을 함께 발음하며 말해야 한다는 것. 죽음과 울음과 신음으로 뭉쳐진 물음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음분열증(schizophonia) 속에서도 고유한 자기 목숨의 형태로 앉아 고백하고, 발언해야 한다는 것. “막다른도로”를 질주하며 “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들 모두 죽음의 공포로 가득 찬 도로 위에서도 “뚫린골목”(이상)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 죽음을 발음하며 무서운, 무서워하는, 무섭다고, 무서워지는, 무섭기만 한, 무서워지려 하는 공포 속에서 곤곤한 문장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
“제 자식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지 않기 위해 저는 이곳에 나왔습니다.”(그들 H)
아주 오랫동안 먼저, 죽어 왔다. 신대륙으로 가는 노예선 위에서 장애인은 가장 먼저 상어 밥이 되었고, 의료 권력에 의해 치료받아야 할 대상으로 먼저 시설로 보내져 재활의 목적에 따라 잘려지고 문드러져 죽었고, 파시즘 권력으로부터 공공의 부담이라며 가장 먼저 가스실에 들어갔고, 자본주의라는 ‘문명’의 열차에는 탈 수 없는 ‘비문명’의 열등-낙인을 찍어 죽였고, 시설에 가둬 놓고 “죽은 아이라 생각하며 살라”고 권유하며 죽였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구걸할 수밖에 없게 해 놓고 죽였고,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는 것 말고는 다른 상상을 할 수 없게 만들어 죽였다.
독일계 미국의 특수교육학자 울펜스버거는 이를 두고 죽음-제조(death making)❷라고 개념화한다. 쓸모없게 여겨지는 사회적 계급은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죽음-제조 문법 속에서 손쉽게 지워진다. 자본주의와 함께 시작된 장애인을 향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격리와 배제를 낳았고, 쪼그리든 세계에서 경제적 빈곤, 경험의 빈곤으로 이어져 빛이 들지 않는 방구석/집구석/시설 구석에 처박힌 채 “죽음-속박(death-bound)”되어 집, 거리, 학교, 정책, 예산, 국가 기관으로 얽힌 “죽음 동맹(death alliance)”은 사회 가장 구석에 자리 잡은 장애인을 체계적으로 죽이고 있다, 고 본다. “오히려 잘 죽었다”로 각색되는 죽음과 죽음들 속에 체계적인 학살이 보이지 않게 자행되고 있다, 고 본다.
카메룬 출신의 역사정치학자인 아쉴 음벰베는 이를 시체정치(necropolitics)❸, 라는 개념으로 보다 정교화시킨다.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삶의 조건에 종속된 “살아 있는 죽은 자”를 만들어 내는 시체정치는 “권력이 죽이는 권리로 작동하며” 삶을 통제하고 굴복시키는 생명정치의 현행적 형태라고 말한다. 폐기 가능한 사람들을 폐기 가능하지 않은 이들로부터 구분하여 “손실로 인지되지 않는 죽음”으로 만든다, 고 한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퀴어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는 음벰베의 논의를 이어받아 누구의 건강과 생명이 보호받아야 하고 누구의 건강과 생명은 그럴 필요가 없는지를 “시장 합리성과 효율성이란 명목 아래서 그들을 그냥 죽게 내버려 두는 구조적 방치의 조건들을 생산하는 정책”을 꼽으며, “누가 살 수 있고 누가 살 수 없는지에 대한 그 어떤 선택도 언제나 대량 학살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❹
하와이의 평화학자 루돌프 럼멜은 보다 적극적으로 민중학살(democide)❺, 즉 국가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행위, 에 대해서 말한다. “죽여 없애기와 죽게 내버려 두기” 이 모두를 학살로 규정한다. 국가의 무책임, 방임, 고의적 정책으로 인해 대규모 사망이 초래된 행위 역시 그는 민중학살의 한 형태라고 본다. 국제적 기준치에 까마득히 뒤처지는 통계 앞에서도 ‘쓸모없음’으로 낙인찍힌 이들에게 여전히 ‘쓸 돈 없음’으로 일관하며 ‘죽게 내버려 두기’를 하고 있는 기획재정부가 있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며 요구하고 있는 장애인 권리 예산안에 “그런 거 다 들어주면 나라 망한다”고 이야기하는 기획재정부 장관의 나라에서는 보이지 않는 학살이 진행되고 있다.
인권학자 조효제는 과감하게 학살세(caedemocene)❻라는 용어를 제안하기도 한다. 역사상 최악의 인간 학살과 대멸종을 촉발시킨 생태 학살의 현세기를 보다 전면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용어이다. 이는 파국적 기후 위기 상황 속 죽음의 형태가 학살로 수행되고 있음을 드러내고, 학살의 네트워크가 전 지구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죽음의 그림자는 맹렬하게 뻗어 나가고 있다. 34년 방구석에서만 바라보던 창문을 지나, 닫힌 문안에 피워 올린 연탄가스를 지나, 굳게 닫힌 베란다 커튼을 지나, 암스테르담 권총을 지나, 지나, 지나, 비정규/특수고용/외국인 노동자들에게로, 쪽방과 거리로 밀려난 홈리스들에게로, 존재 자체로 혐오 낙인이 찍힌 퀴어들에게로, 상품으로 등급 매겨진 동물들에게로, 상품 씨앗에 밀려 땅을 잃어버린 채 멸종되어 가는 토종 씨앗들에게로, 계산조차 할 수 없는 단위로 쓰레기화되는 일회용 사물들에게로, 그리고 그, 에게로.
나는 그, 의 죽음 앞에서 울상으로 시간을 온통 보냈다. 비 오는 날 대법원 앞에 누워 있는 기분으로. 내가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궁상맞게. 그저, 안타까운 죽음으로 남겨 두기엔 속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작은 추모 공간이 노들야학 복도 한복판에서 열렸다. “부디”로 시작하는 포스트잇들이 그 공간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추모 기간이 끝난 바로 그 다음 날 아침, 눈을 뜨기도 전에 하나의 문장이 달려들었다. 번쩍 일어나, 받아 적었다. 부디,
“복수해 달라”.
복수의 교육학
이 말은 누군가의 유언이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아원에 버려졌고, 스물한 살에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였고, 다방을 돌며 껌을 팔았고, 시장 바닥에서 수세미와 카세트테이프를 팔던 누군가였다. 미등록 노점상 단속으로 왼쪽 다리가 부러져 그마저도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되었고, 빼앗긴 스피커와 배터리를 돌려 달라고 구청에 갔다가 공무원이 무시하며 “병신 새끼” 하는 말을 듣고 서초구청 한복판에서 준비해 온 시너 1리터를 제 몸에 쏟아 붓고 불을 붙인 그, 최정환 열사의 유언이었다.
이 문장이 유언 하나 없이 떠난 그, 의 마지막 말이었을 것이다, 라고 직감했다. 목소리를 빼앗긴 자들이 쓰러지며 남긴 마지막 말일 것이라고 직감했다. 말없이 죽어 가야 했던 인간/동물/식물/미생물/사물/정령들의 마지막 말일 수도 있겠다, 고 여겨졌다. “지구를 조금 더 사랑해 주세요. 여러분 모두들 평화롭게 살아 주세요”가 아니라 방사능 물질에, 제초제 오염에, 혐오 폭력에 시달리며 멸종당해 가며 한 말은, 바로 복수해 달라, 가 아니었을까. 유언으로 남는 말. 나는 목소리 없이 죽어 가는 것들의 유언으로 “복수해 달라”를 받아들이기 위한 감각실험생활을 시작했다. “모든 죽어 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윤동주), 에서 모든 죽어 가는 것들과 복수해야지, 로.
최정환 열사의 유언을 직접 들은 김흥현 씨는 “복수해 달라, 이게 누구 때려 죽여 달라는 얘기겠어? 다신 나 같은 사람 안 나오도록 해 달라, 이런 얘기겠지”❼라며 그의 유언을 받는다. 그리고 유언을 받아든 장애인들과 노점상들이 서초구청에 모여 최정환 열사와 함께 그의 사회적 신체들인 삼륜 오토바이, 카세트, 좌판에도 불을 붙였다. 구청 마당에서 타오른 복수의 불씨가 아직도 노들야학 곳곳에 불붙이며 살아 있다.
고병권 노들야학 교사는 “장애인운동으로부터”라는 부제를 단 〈점거와 총파업〉❽이라는 글에서 “응징해야 한다”고 한다. “국가가 ‘우리가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한 증명이 아니라 (……) 특정 계급과 분파의 이해에만 복무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우리는 국가의 배신에 마땅한 응징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체제가 확실히 변형될 때까지 어떤 협력도 거부한 채, 아주 냉담하게, 아주 급진적으로, 철저히 고개를 돌려” 응징해야 한다고 한다. 복수해 달라, 는 말에 응징해야 한다, 는 말로 받아 이어진다.
홍은전 노들야학 교사는 〈꽃님씨의 복수〉❾라는 글에서 복수당한 경험에 대해서 썼다. 주민등록조차 되지 않아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이름조차 없이 갓난아, 로 불리던 중증장애인 꽃님씨. 수급비의 절반 가까이를 10년간 현금으로 모아 야학에 2000만 원을 기부하며 탈시설 운동에 써 달라고 했다던 이야기. 소외된 이웃이 거액의 후원자로 변신한 순간, “어떤 권력관계가 뒤집히는 순간” 복수를 느낀다. 권력관계가 뒤집어지는 사건, 으로서의 복수가 있기도 하다.
“복수해 달라”라는 문장은 “권력관계를 뒤집어 달라”라는 문장과 “응징해야 한다”라는 문장과 “다시는 나 같은 죽음을 만들지 말라”는 문장과 서로 동맹하고 있다. 이는 복수(avenge)의 라틴어 어원(vindicationem)의 동사(vindicare)가 가진 “해방시키다, 자유를 주장하다, 권리를 주장하다, 옹호하다”라는 의미들의 풍경과도 이어진다. 복수해 달라, 는 문장이 미래를 끌어당기며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복수라는 것이 개인적 앙심(ressentiment)을 품은 채 무력 액션이 펼쳐지며 때려죽이는 복수극이 아니라 양심을 품은 채 지배 권력의 세상을 전복시켜 나가는 활극을 이어 나가 달라는 것일 것이다.
미등록 노점상 최정환, 출생 미등록 꽃님 씨, 미등록 장애인 그, 는 한결같이 등록되지 못했다. 등록되지 못한 채 쫓겨나고, 보이지 않게 되고, 정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등록되지 않는 이 세계를 향해 복수하지 않으면, 응징하지 않으면, 반격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는 사실을 노들야학의 많은 것들이 나에게 가르쳤다.
목에 쇠사슬을 걸고 출근길 지하철을 오르려는 야학 학생들에게, 장애인 화장실 문에 휠체어가 끼어 갇혀 있다가 간신히 나와 스프레이 페인트를 사서 화장실 벽면에 “가짜 장애인 화장실”이라고 휘갈겨 쓴 야학 동료 교사들에게, 불법이라고 낙인찍는 경찰 방패를 향해 돌진하는 휠체어에게, 야학 입구에 놓인 죽은 자들을 기억하는 액자 옆을 지키는 식물들에게, 투쟁을 외치며 수천 가지 방법으로 손을 들어 올리는 저 손짓에게,
배웠다. 나를 둘러싼 거의 대부분의 것들이 남성-비장애인 특권 속에서 존재해 왔다는 것,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고 식당에서 밥 먹는 일에 대해 단 한 번도 특권이라고 느끼지 못한 채 살아와도 괜찮았다는 것, 여기 있음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감응의 정치학에 대해서, 퀴어 해방과 동물 해방과 빈민 해방과 장애 해방이 어떻게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지에 대해서, 존재 그 자체로 인해 기존의 권력에 균열을 낼 수밖에 없는 ‘자동사적 저항’(호미 바바)에 대해서, 나라고 불리는 것들을 뒤흔들고 나의 경계를 교란시키는 배움을 한다는 것의 매혹에 대해서 배웠다. 나/나들/너/너희/그/그들/그것들은 미세인칭으로 서로 침투하는 배움의 과정 속에서 생동하며 노들야학은 나에게 복수, 를 가르쳐 주었다.
학살세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복수를 궁리해야 하지 않을까. 증오의 복수가 아니라 분노의 복수로. 충동의 복수가 아니라 느껴진 사유의 복수로. 파괴의 복수가 아니라 생성의 복수로. 일일이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수히 고유한 방식의 복수로. 시체정치가 펼쳐지는 학살세 속에서 “내쫓긴 자, 이름 없이 살고, 그 이름으로 남기지도 않으며, 도시 국가의 상징적 구성 속에서 하나의 부분으로 셈해지지 않는, 그저 살고 번식하는 자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는 아무나의 이름, 내쫓긴 자들의 이름”(자크 랑시에르)을 긍지로 삼은 만물의 프롤레타리아들의 현장 속에서.
매일을 위협하는 불안을 더 이상 견디지 않겠노라! 깃발을 올린 비정규직/특수고용/외국인-프롤레타리아들과 인간으로서의 삶을 하루하루 구걸해야만 한다는 수치스러운 부조리를 더 이상 견디지 않겠노라! 둥지를 틀고 있는 빈곤차별반대 홈리스-프롤레타리아들과 이 밀려난 인생에 혐오의 시선을 던지는 타자들의 무게를 더 이상 견디지 않겠노라! 쏟아져 나온 퀴어-프롤레타리아들과 이대로 죽을 수 없다! 고속도로를 뒤덮어 버리려는 식물-프롤레타리아들과 도시인간들을 돌보며 동네 곳곳에 우발적 코뮌을 만들어 내고 있는 동물-프롤레타리아들과 때 이르게 버려질 때조차도 묵묵하고 충실하게 매일같이 거리에 나와 전봇대 밑을 점거하고 있는 사물-프롤레타리아와 함께 싸워 나가고 있음을, 되새기며. 만물의 프롤레타리아들과 “동맹의 괴물적 역량”(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까스뜨루)을 느끼며. 복수해야겠다.
악랄하고 발칙한
노들야학에서 상근 교사 생활을 시작하던 날 한 동료 교사가 내게 3단 책상 서랍 하나를 물려주었다. 가장 아래 가장 큰 칸을 여는데 쉽게 열리지 않을 정도로 무거웠다. 쇠사슬이었다. 그 곁으로 청테이프와 노끈, 다양한 길이의 케이블 타이, 칼과 가위 같은 것도 함께 들어 있었다. 어디든 붙들어 매고 있기 위해서, 사생을 결단해야 하는 어떤 각오의 형태가 함께 들어 있는 듯했다. 노들야학에서 서식하고 있는 투쟁, 이라는 말의 질량과 닮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이곳은 투쟁, 이라는 말을 빼고는 불가능한 학교다. 단체 사진 찍을 때, 체육대회를 할 때, 가만히 있기 심심할 때, 답을 찾아야 하는 고민에 빠졌을 때, 수업 시간 중에도 투쟁, 이라는 낱말이 식을 새가 없는 학교다. 투쟁, 이라는 말을 빼고는 불가능한 학교에서 투쟁, 이라는 말의 용법 역시 무수하다. 애도하고, 슬퍼하고, 기념하고, 기억하고, 마음을 먹고, 기뻐하고, 인사하고, 결의를 다지고, 고맙고, 미안하고, 이동하고, 교육받고, 밥 사 먹고 등등. 투쟁은 생동한다. 이토록 투쟁의 뜻이 무수한 이유는 비장애 중심주의 세계와 끊임없이 불화하고 투쟁할 수밖에 없는 조건 때문이다. “사탕수수 농장의 흑인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투쟁뿐이기 때문이다. (……) 착취와 굴욕적인 삶, 굶주림에 대한 투쟁의 형식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삶과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프란츠 파농)라는 말과도 이어진다. 자신에게 허락된 온당한 자리가 비-존재인 사람들(주디스 버틀러)이 벌이는 존재 투쟁, “죽여도 되는 걸로 만들지 말라”(도나 해러웨이)는 투쟁, 이 여기 있다.
학교 없는 곳에서 만들어진 학교인 노들야학에 와서, 교육과 학교에 대한 질문이 내게 다시 시작되었다. “배운다는 건 / 꿈을 꾸는 것 / 가르친다는 건 / 희망을 노래하는 것”(〈꿈꾸지 않으면〉, 간디학교 교가)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자란 내가 배운다는 것이 투쟁이고, 가르친다는 것이 해방을 향해 있는 이 학교에서 내가 먼저 배운 노래는 “아 이 개 같은 세상의 시계를 멈춰라 / 차별과 착취 없는 장애 해방 그날을 향해”이다.(〈장애인차별철폐투쟁가〉) “사랑과 자발성”을 모토로 하던 학교에서 자란 내가 “투쟁과 상호 의존성”을 모토로 하는 학교에 왔다.
“당신의 해방과 나의 해방”이 이어져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생동하는 교육 철학. 배움과 투쟁을 함께 엮어 내기 위해 치열하고 치밀했던 30년의 교육 역사. ‘투쟁’을 야학의 무의식으로 심어 둔 교육 심리. 14년째 한글 공부에도 간판 하나 읽기에는 애타는 속도에 맞춘 교육 평가. 춤추는 시간에 온갖 활자로 칠판 가득 쓰기만 하는 학습자와 함께하는 교육과정. 말하는 방법이 달라 한 문장을 알아듣기 위해 몇 분 정도씩도 걸리는 교실에서의 교수 이론. “그 누구도 남겨 두지 않는다”에서 시작되는 교육 기획. 정상/보편/일반/평균/보통에 대한 가정 없이 진행되는 수업 설계. 학생 하나 이사 간다고 하면 팔 걷고 나서는 교사들의 생활 상담. 서울시청 앞에서 이슬 맞으며 1박 2일 노숙 투쟁도 불사하는 학사 일정, 을 가꾸고 있는 노란들판 위의 학교, 노들야학은 내게 질문하고 있다.
목에 쇠사슬을 걸고 지하철을 멈춰 세우는 야학의 학생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지하철 바닥을 기며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 스티커를 붙이는 야학의 학생과 함께 어떤 기백을 가지고 세계를 기어 가야 하는가? 도래할 파국의 예감, 죽음의 예감을 넘어서는 교육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어떤 목소리들과 동맹하여 교실을 가꿀 것인가? 포식(捕食)적 자본주의 네트워크 속에서 생존을 이어 나갈 수단을 가진 것들만이 살아남는 계급적 질서에 맞선 복수의 문장은 누구의 목소리로 증언되어야 하나?
그리고 그가, 있다. 미등록 장애인으로 사회적 울타리 밖에서 자신의 존재를 출현시키며 함께 살아갈 가능성에 대해서 질문하는 그가, 있다. 함께 배울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질문하는 그가, 있다. 죽은 뒤에도 끊임없이 내게 질문을 해 대고 있다. 죽을 사람과 죽이는 사람에 대한 안목이 좀 생겼냐고. 장애 등록 좀 어떻게 되었는지 1년에 한 번씩 깨어날 테니 알려 달라고. 복수해 달라는 유언을 잘 돌보고 있냐고. 완전한 죽음은 없는 거라고. 아직도 할 말이 많이 남은 그와 함께 나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자리에 섰다. 그 자리에 불끈 쥔 주먹 모양의 씨앗에서 악랄하고 발칙한 뿌리가
내
리
기
시
작
했
다.
❶ 보건복지부(2021), 《2019년도 장애인 건강보건통계》; 최종윤 의원실, 《장애인 건강보건통계》 재가공(2016~2020); 국립특수교육원(2019), 《장애인 평생교육 중장기계획 수립을 위한 기초 연구》.
❷ Wolfensberger, W.(2002), The new genocide of handicapped and afflicted people(3rd ed.), Syrause, NY: Author.
❸ Mbembé, J. A.(2003), Necropolitics , Public Culture, 15(1), pp. 11–40.
❹ 주디스 버틀러, 김응산·양효실 옮김(2020),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창비.
❺ Rummel, R.(1994), Death by government: genocide and mass murder since 1900, New Brunswick, N.J. : Transaction Publishers.
❻ 조효제(2022),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 창비.
❼ 비마이너 기획(2021), 《유언을 만난 세계》, 오월의봄.
❽ 고병권(2014), 《살아가겠다》, 삶창.
❾ 홍은전(2022), 《그냥, 사람》, 봄날의책.
노들장애인야학 개교 30주년 ‘노들방탄기금’ 후원 안내
1993년에 개교하여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노들장애인야학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학령기를 놓친 장애인들이 모여 공부하고, 차별의 세계에 맞서 투쟁하며 30년간 꿋꿋이 지켜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노들장애인야학을 향해 습격하듯 날아드는 표적 수사와 전속력으로 오르는 공간 보증금은 점점 버거워져만 가고 있습니다. 휘몰아치는 위협 속에 매년 아슬아슬 버텨 내고 있습니다. 몰아치는 거센 바람을 걸러 주고 새싹과 작물을 지켜 주는 밭담처럼 노들장애인야학을 함께 지켜 주십시오. 무수히 고유한 목소리들이 계속해서 해방의 미래를 길러 낼 수 있도록!
모금 계좌 신한은행 100-025-323501 노들장애인야학
문의 02-766-9101
연재를 시작하며
노란들판 위 그, 들의 학교
노란들판 위 학교, 노들장애인야학은 기어이 30주년을 맞았다. 1993년 점거 투쟁을 통해 쟁취한 정립회관 2층 작은 탁구장 한편에서 시작된 밤의 학교는 2008년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한편을 점거한 채 “장애 성인 교육권 확보” 현수막을 걸고 천막학교로 이동하였다. “길거리에 나앉아도 수업은 계속”되었다. 이후 “밤에 공부하는 학교(야학)가 아니라 풀뿌리 민중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들판 위의 학교(야학)”로 뜻을 새롭게 결의하여 마로니에 공원 바로 옆에 자리한, 엘리베이터가 있는, 입구에 계단이 없는, 도심 한가운데 있는 유리빌딩 2층에 학교 자리를 잡았다. 이야기하기, 공부하기, 투쟁하기를 멈추지 않는 노란들판 위 학교, 노들장애인야학은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 견고하고 기묘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노들장애인야학 정교사 임명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 땅의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사회적 차별에 맞서 싸우”라!
사무실엔 이런 문구가 액자에 담겨 있다.
“당신의 해방과 나의 해방이 연결되는 공간”
휴게실엔 야학 소개문이 이렇게 붙어 있다.
“우리의 교육은 억압적인 세상을 바꾸는 집단적인 실천”이다!
어쩌자고 나는 기세 좋은 학교가 거느린 기백에 휘말려, 쓰지 않을 수가 없어서 쓰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무수히 고유한 그, 들을 만났다.
“우리는 병신입니다. 그러나 당당한 병신으로 살고자 합니다” 외치는 그, 와
“초코새우 꽃게아이스크림”을 반복해서 몇 시간째 쓰고 있는 그, 와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꿈에서 매일” 가족을 만난다는 그, 와
“나의 신념은 장애인차별철폐”라 여기는 그, 와
“투쟁 없는 삶으로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는 그, 들을
노들에서 만났다. 무수히 고유한 그, 들을 만나 무수히 배웠다. 섬뜩하게 배웠고, 환호하며 배웠고, 참담하게 배웠고, 경이롭게 배웠고, 절망하며 배웠다. 휘몰아치는 배움의 감응을 쓰지 않을 수가 없어서 쓰기 시작했다.
쓰다 보니 어떤 문장은 내가 썼고,
어떤 낱말은 그가 썼고,
어떤 부사는 그, 들이 썼고,
어떤 쉼표는 그것, 들이 썼고,
어떤 문장은 정돈되지 않은 채 학교 구석구석을 점거하고 있는 피켓들이 썼고,
어떤 인용은 정연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온갖 체위로 꽂혀 있는 학교 책장의 책들이 썼다. 무한수열로 분열하며 쓰인 조각 문장들을 병렬로 엮었다. 글의 짜임새와 쓰임새에 대해 생각하면 정돈과 정연함을 갖추어야 했지만, 이렇게 쓸 수밖에 없어서 쓰기 시작했다.
이 연재는 ‘이야기한다는 것’에 대한 시적 현장 보고서, ‘투쟁한다는 것’에 대한 미래-유물론적 견문록, ‘배운다는 것’에 대한 현상학적 에세이가 뒤섞여 있다. 이러한 뒤섞임 속에서 나침반이 되어 준 문장이 있다. 야학 교사를 시작하려면 반드시 낭독해야 하는 문장. 노들야학 여러 자료들마다 끊임없이 인용되는 문장. 살아 있는 생명(문)체로 노들야학에서 생동하고 있는 문장. 독자들에게 선물하고자 연재 첫 자리에 이 문장을 놓는다.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 멕시코 치아파스의 어느 원주민 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