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호[연속 기획] 양양에서 태어나 양양에서 사는 게 뭐 어때서 (이준수)

2023-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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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기획 - 변방에서 온 편지



양양에서 태어나 양양에서 사는 게 뭐 어때서

- 양양의 태양은 밝고, 하조대의 피자는 맛있다



이준수  

leejs12345@hanmail.net

강원 양양 광정초 교사




“아, 나도 여기서 살고 싶다. 먹고살 수만 있으면.”


주말에 짬을 내어 강릉을 방문한 친지들은 하나같이 아쉬움에 한숨을 내쉰다. 느긋하게 강원도에서 살고 싶다며. 나는 ‘그럼 정리하고 내려와’라고 속으로만 말한다. 오라고 한들 그럴 수는 없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KTX를 타고 서울로 슝 돌아가야 할 운명이다. 

심한 농담도 괜찮은 사이에서는 “그냥 지방 공무원 시험을 봐. 아니면 교대 입학해. 요새 입학 컷 왕창 낮아졌던데”라고 막 지른다. 어차피 등짝을 얻어맞으려고 하는 소리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괜찮은 일자리는 수도권에 몰려 있고, 이 한 몸 건사하려면 시대의 흐름에 맞춰야 한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푸른 동해와 거울처럼 맑은 경포호를 보고 있으면 미련이 드나 보다. 몽글몽글한 순두부찌개에 스페셜티 커피 한잔까지 즐기고 나면 내 친구들은 명예 강원도민이 되어 버린다. 그들은 다음에 또 오겠다는 미련 섞인 약속을 남기고 떠난다.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수도권에 살아 본 적 없지만, 기차 타고 돌아가는 심정을 짐작할 수 있다. 단순히 생각해 보아도 힘들 것 같다. 좁디좁은 수도권에 인구의 과반이 끼어 살고 있으니 얼마나 스트레스 받을까. 내 친구들은 수도권의 비싼 보금자리를 마련하려고 아득바득 일한다. 아이를 낳을지 말지 수없이 고민한다. 인생이 한 번뿐이라는 진리를 되새기면 참으로 고단한 현실이다. 1987년생인 내 또래 부부 중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이들이 많지 않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지방에서 사는 것이 좋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초등학교 교사로 지방에 사는 인생이 나는 좋다. 10점 만점에 8점은 주고 싶다. 월급이 아주 넉넉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아끼면 적당히 즐겁고 행복하게 두 아이를 키우며 살 수 있다. 아마도 야망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전문직 시험을 치거나 승진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지금의 라이프 패턴이면 족하다. 평교사로 예순이 되어도 담임을 할 수 있도록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꾸는 것이 장기 목표다. 나는 매일 운동하고, 최소 7시간 이상 잔다.

먹고사는 부분만 해결되고 나면 지방은 아름다운 곳이다. 인구 밀도가 낮아 모든 면에서 덜 치인다. 교통 체증도, 미세 먼지도, 부동산 지옥도 없다. 원만하게 독립만 가능하다면 지방은 훌륭한 곳이다. 무한 경쟁이 비효율적인 데다 소모적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특히 그렇다.

나는 소위 변방이라 불리는 곳에 흥미가 있다. SNS나 언론에서 중앙, 중심의 이슈를 주로 다루어서 그렇지 변방이 중심보다 면적상으로 더 넓다. 수도권 신도시의 풍경은 비슷비슷한 반면, 강원도 고성과 전라남도 해남은 기후도, 문화도, 산에 자라는 수목과 화초도 다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을 두고 왝더독(wag the dog)이라고 한다. 지방에 사는 내가 보기에는 서울 중심부의 규칙과 욕망이 나머지 다수의 삶을 지나치게 좌지우지하는 것 같다. 그것도 매우 센 강도로.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인생으로 분류되는 기준은 까다롭고 경직되어 있다. 의대를 위시한 SKY 인 서울 대학 라인, 한강 이남의 대단지 아파트, 부동산과 금융 자산을 아우르는 집안 차원의 막대한 부. 문자 그대로 무자비한 기준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위너가 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나의 직업은 공교육 교사다. 기초 지식을 가르치고, 기본 생활 습관을 형성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나는 특정 계층의 아이들이 의대에 가지 못해 반수를 고민하는 이야기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활 환경에 관심이 많다. 원래부터 취향이 그랬다기보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무난하기 때문이다.

나는 2009년 이래 강원도 영동 지방에서만 교직 생활을 했다. 강릉의 13학급 규모 학교를 시작으로, 삼척 탄광촌 벽지 학교에서 4년을 근무하기도 했고, 지금은 양양군 하조대 해변 옆의 전교생 스물다섯인 학교에서 지내고 있다. 중심과 변방이라는 축으로 분류하자면, 변방 중의 변방으로 분류될 곳이다. 

우리 학교는 바닷가에서 400미터 떨어져 있다. 후문 골목길로 나서면 10분도 안 되어 동해에 발을 담글 수 있다. 서핑 교육이 특성화되어 있어 저학년 아이도 능숙하게 보드에 오른다. 비가 오면 체육관에서 랜드 서핑(스케이트보드와 비슷하게 생겨서 실내에서 파도타기 연습을 가능케 하는 스포츠)을 즐긴다. 생존 수영도 해안에서 한다. 파도가 치면 코로 짠물이 들어와 캑캑거리지만, 어쩔 수 없다. 자연은 원래 거칠다. 도시의 얌전한 수영장 물과는 야생의 밀도가 다르다. 바다에는 언제나 위험이 도사린다. 어른 몸통만 한 노무라입깃해파리가 떠다니고, 배를 타고 나서면 청상아리와 백상아리가 삐죽빼죽한 이빨을 드러낸다.

서핑 성지답게 해변에는 힙한 카페와 숙소, 펍, 음식점들이 성황리에 영업 중이다. 6학년 학부모님 중 한 분은 스케이트보드 보울 파크를 운영한다. 여러 차례 광고 배경으로 쓰였고, 이효리와 유재석도 다녀갔다. 여름이면 인플루언서들이 둥둥 비트를 울리며 파티를 연다. 동네 분위기가 이러니 아이들의 문화적 눈높이도 꽤 높다. 세련된 디자인의 티셔츠를 입고, 괜찮은 카페에서 나오는 음악이나 인테리어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해변에서의 방송국 촬영은 일상적인 행사다. 

불황이라고들 하지만 하조대부터 인구, 죽도, 남애 해변에 이르기까지 양양의 바다는 갈수록 화려해지고, 번성하고 있다. 마치 20년 전 제주에 개발 열풍이 일었을 때 시시각각 달라지던 모습 같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이 모든 변화가 아이들에게는 잠재적 교육과정으로 작용한다. 우리 학교 여학생 중에는 전국에서 순위권으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아이가 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오빠는 서핑 종목 국가 대표이기도 하다. 양양의 바닷가 마을에는 전교생이 25명밖에 없어도 신기한 가족들이 여럿 있다.



하지만 물질적 지원으로도 막을 수 없는 흐름이 있다


공업 도시 울산에서 자란 나에게 하조대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은 근사해 보인다. 교대에 입학해서 막연히 상상했던 평화롭고 여유로운, 그러나 깨끗하고 발전된 시골 학교의 이미지에 가깝다. 그럼에도 양양 해안가의 학교들은 존폐 기로에 서 있다. 마을에는 입학생 모집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매년 조금씩 학생 수가 줄어든다. 도시 학교 아이들이 돈을 내고 이용하는 우유 급식과 방과 후 교실이 이곳에서는 무료이지만 별 소용이 없다.

사실 우리 학교 학생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혜택은 이 외에도 여럿 있다. 수학여행은 5학년과 6학년이 함께 간다. 그래서 졸업 전까지 수학여행이 두 번 있다. 대형 학교 대비 학생 1인에게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 넉넉해 원주 ‘뮤지엄산’과 같이 입장료 비싼 핫 플레이스도 현장 체험 학습으로 다녀온다. 작년에는 전교생이 버스를 대절하여 서울에서 뮤지컬 〈마틸다〉를 보고, 국립 중앙박물관의 합스부르크 왕가 전시회를 둘러보았다. 지난달에는 농어촌 지원 사업으로 재즈 뮤지션들과 함께 하조대의 자연음을 담은 음악을 만들었고, 대학교 코딩 교육 지원 프로그램 팀이 과외 수준으로 아이들을 지도했다. 평소의 교육과정 진행도 이상적이다. 교실은 넓고 아이들은 적으니 맞춤형 수업이 이루어진다. 교육학 교재에 실려도 좋을 만한 환경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노력에도 입학생을 모으기에는 역부족이다.

머지않아 양양 남부권은 하나의 초등학교로 통폐합해서 운영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아직까지는 잠재적 계획이지만 10년 내외로 실질적인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강원도 내 학교 절반 이상은 전교생 60명 이하의 ‘작은 학교’다. 그나마 서핑 붐을 타고 인구가 살짝 늘어난 양양군이 이 정도이니 다른 지역은 더 심각한 상황인 것은 확실하다.

주민분들께 여쭈어 보니, 하조대 인근에서 태어나는 아이의 수가 적을뿐더러 학교에 갈 무렵이 되면 다른 곳으로 떠난다는 의견이 많았다. 나도 공감할 수 있었다. 올해 우리 학교의 1학년, 3학년 남매가 속초 시내로 전학을 갔다. 남매가 이사 간 곳은 최근에 지어진 고층 아파트였다. 속초와 강릉은 양양 주민에게 같은 생활권으로 여겨지므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경우 이동이 비교적 쉽게 일어난다. 

다른 도시로 가지 않더라도, 양양군 내에서의 이동도 빈번하다. 양양군에서 자녀를 키우는 분들은 아파트 단지가 있는 읍내로 많이 몰린다. 읍내에는 태권도와 피아노를 비롯한 학원가가 형성되어 있고, 교육도서관과 종합운동장도 가깝다.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동해안 세컨드 하우스 바람이 일면서 근래에 브랜드 아파트도 여럿 들어섰다. 

시내에 위치한 양양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500명 가까이 된다. 양양군의 다른 초등학교 중 학생 수가 100명을 넘기는 곳은 없다. 50명 수준의 학교가 딱 한 곳 있을 뿐 나머지는 30명 언저리다. 거시적으로 대한민국의 인구가 수도권에 집중되듯, 미시적으로는 작은 행정 구역 안에서도 사람이 몰리는 곳이 있는 것이다. 예전에 근무한 삼척시에서도, 8년간 살았던 동해시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나곤 했다.



시골의 학교가 좋다, 단 초등학교까지만?


생활 인프라가 열악한 지방 소도시에서 자녀를 키우는 가정이 읍내에 몰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지자체의 핵심 시설이 중심지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만 해도 25명 중 절반가량이 양양 시내에서 통학 버스를 타고 등교한다. 엄밀히 말하면 관외 학생인 셈인데, 그 아이들은 교통의 불편함과 시간의 소모를 감수하면서까지 작은 학교로 온다. 혹여 개인 사정으로 조퇴를 하게 되면 학부모가 일일이 데리러 와야 한다. 나는 학부모님께 멀리서 다니시기에 불편하지 않느냐고, 조심스레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자 초등학교만이라도 시골에서 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름드리 전나무와 소나무로 구성된 학교 둘레 숲과 천연 잔디 운동장도 얼마나 귀하냐고 하셨다. 나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시골 초등학교는 ‘중학교 전까지는’ 오감 발달과 다양한 가능성 탐색이 중요하다고 믿는 학부모가 있어서 그나마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본격적인 입시 레이스에 투입되기 전에 배움의 여러 측면을 경험해 보는 것이 옳다고 믿는 심리가 없다면 농어촌 소규모 학교 상당수는 문 닫을 걱정을 해야 한다. 공교육 교사로서 비참한 심정이지만, 중학교부터는 입시의 나이다. 국민 대다수가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전인 교육이 학교교육의 목표입니다!’라고 자신만만하게 외칠 수 있는 시기는 현실적으로 초등 단계까지가 아닌가 하고 느낀다. 중학교부터는 경쟁과 생존으로서의 교육이 모든 걸 집어삼키는 기분이 든다.

우리 학교만 해도 중학교를 양양 읍내 혹은 다른 도시에서 다닐 예정이라는 아이가 절반이다. 학부모도 그렇게 말하고, 학생도 그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시골 지역의 중학교는 인근 초등학교 졸업 예정 학생 수보다 입학생이 적다. 아이를 입시에 시달리지 않게 하려고 소신껏 인근 중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도 있지만, 여건만 된다면 옮기려는 분들이 많다. 그렇다고 모든 아이가 시골을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읍내나 다른 학군지에 가려면 비용이 발생한다. 지방이라고 해도 학군지는 다른 동네에 비해 주택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다. 

입시 전선에 뛰어드는 제자와 학부모를 비난할 마음은 없다. 오히려 미안할 따름이다. 한국의 직업별 노동 환경과 소득 수준은 격차가 뚜렷하다. 대학 입시로 학벌이 생겨나고, 그 학벌이 실질적으로 유효한 자격 수단이자, 성취로 기능하는 사회에서 명분론만을 외칠 수는 없다. 한국은 입신양명이 오랫동안 사회적 가치로 존중받아 온 나라이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속담이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서러우면 출세하라는 조언이 버젓이 통용되는 사회에서 입시는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관문인지도 모른다.

지방민이자 시골 학교 교사로서 나는 아이들이 상처받기를 원치 않는다. 무조건 경쟁을 회피하라는 것이 아니다. 중앙 집권화된 승자 소수 사회에서 성공의 기준 안에 들지 못했다고 해서 낮은 자존감을 품고 살아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농어촌의 어느 학교든 가 보면 구구절절한 사연이 많지만, 아이들은 하나같이 예쁘고 영특하다. 대치동 학원가에 다니지 않고, 생활 패턴에서 차이가 있고, 부모의 소득 수준이 다를 뿐 아이들의 능력치나 가능성은 어딜 가나 비슷비슷했다. 초등학교까지는 시골 아이들의 표정은 밝다. 성적에 석차를 매기지 않고, 내신 성적에 목숨 걸지 않아도 되니 웃으며 학교생활을 한다. 그러다 중학교를 거쳐 10대 후반으로 가게 될수록 어깨가 무거워진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현수막에 이름을 실으려면 경진 대회에서 수상하거나, 상위권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 지역 장학회에서도 입시에 성공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시골 학생에게는 입시가 끝이 아니다. 설사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기반이 없는 수도권에서 생활하려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시골 출신 상경자가 서울에서 정착해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지역에서 수재로 이름난 친구가 서울의 모 대학에 합격했는데, 월세 40만 원을 주고 작은 원룸을 구했다. 햇볕도 잘 들지 않아 자주 그늘이 지고 시설도 노후화된 곳이었다. 반면 서울 출신인 동기생은 본가에서 따뜻한 밥을 먹으며 다녔다. 나는 시골 ‘에이스’가 주거비와 생활비, 식비, 삶의 질 측면에서 도시 출신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한숨 쉬는 모습을 보았다. 어느 도시의 어느 가정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중요한 부분이 상당 부분 결정된다는 것을 절감한 순간이었다. 출생이라는 랜덤 박스에서 지방 사람은 다소 불리해 보인다.



그래도 아이들은 지역에 자부심을 가진다


어른의 사정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5학년 우리 반 아이들은 양양 군민임을 자랑스러워한다. 남대천의 근사한 갈대밭을 사랑하고, 읍내의 작은 영화관에서 최신 영화를 저렴한 입장료로 틀어 주는 사실에 기뻐한다. 설악산 바위를 타고 오르는 산양을 아끼며, 하조대 해안의 눈부신 햇살과 청량한 바람을 소중히 여긴다. 양양 아이들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삼척 도계의 탄광촌 아이들은 장엄한 백두대간을 경외했다. 도계에서는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면 어딜 바라보아도 산이었다. 산촌 아이들은 미세 먼지 없는 하늘을 축복받은 눈망울로 올려다보았다. 아이들은 자기 가족을 다른 가족과 비교하여 깎아내리지 않듯이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사랑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이 보편적인 습성 같았다.

익명성을 사랑하는 도시인은 시골의 토착성을 꺼리지만, 내가 가까이서 지켜본 바로는 시골의 토착성은 따뜻한 마음이기도 했다. 이곳 아이들은 남대천 플로깅 행사나 하조대 해안가 쓰레기 줍기에 참여할 때 임하는 자세가 사뭇 진지하다. 도시 사람들이 취미나 봉사 차원에서 하는 환경 미화 활동과는 미묘하게 차이가 난다. 일단, 우리 땅을 우리가 직접 치운다는 자발성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내가 살아가는 땅을 좋아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걸 보고 있으면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이곳에서 어른이 되어서도 뿌리내리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진로 교육 시간에 우리 고장 살펴보기를 꼼꼼하게 진행하는 편이다. 수업 시간에 오가는 내용이 꽤 실용적이다. 가령 양양군 일대에서 생업 활동을 하며 살아가려면 어떤 공부나 일을 하는 것이 좋을까, 하고 학습 주제를 정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주변에서 본 개성 있는 숙박 시설을 운영하거나, 서핑 강습 및 파티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그럼 나는 아주 멋진 발상이지만 20대 초반에는 자본이 없어 사업을 시작하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다른 대안도 찾아보자고 한다.

5학년은 실물 경제를 잘 모르니 내가 힌트를 준다. ‘선생님이 되어 양양군 전입을 신청하는 방법이 있다. 또 하조대 파출소 경찰 아저씨나 현북면 사무소 주무관님처럼 공무원이 되어도 좋다.’ 그러면 아이들은 “공무원이 짱이네” 하면서 탄성을 내지른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직업 선택의 다양성이 떨어진다. 나는 설악산이나 해안가 주변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사장님의 사례를 소개하며,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 준다. 또는 양양군의 특산품인 송이버섯을 브랜드화하여 온라인에서 수익을 거두는 판매자의 홈페이지를 띄운다. 아이들의 입이 쩍쩍 벌어진다. 

우리 고장을 속속들이 파헤치는 시간은 아주 재밌다. 뉴스에 등장하는 낯선 도시 사례가 아니라 오늘이라도 당장 가서 확인할 수 있는 장소는 흥미를 배가시킨다. 마지막에는 각자의 부모님이 어떻게 일하시고, 우리를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고백하며 훈훈하게 수업을 마친다.

‘지역에서 생존하기’ 수업은 준비하는 데 품과 시간이 든다. 유튜브와 네이버 뉴스를 부지런히 봐야 하고, 관내에 거주지를 둔 동료 교사의 이야기를 잘 갈무리해 두어야 한다. 우리 학교에서는 농사짓는 인권 변호사, 등나무 줄기로 생활 소품을 만드는 공예가를 수소문하여 마을 선생님으로 모셔 오기도 한다. 마을 선생님의 이야기는 쉽고 생생하다.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20대에 다른 도시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나중에 고향에 돌아와 정착해 살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아이들에게 강제로 고향에 와서 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강원도 시골 지역 아이들의 대입 성적은 그리 좋지 못하다. 군 단위에서 초·중·고를 나오면 농어촌 특별 전형으로 가산점이 주어진다. 가산점이 있어도 입시 결과는 화려하지 않다. 강원도 내에서도 대입에 성공하는 확률을 높이려면 강릉, 춘천, 원주 등 도시 지역으로 나가야 한다. 강릉, 춘천, 원주 시내 학생들은 농어촌 가산점이 없어도 대입 결과가 더 좋다. 입시는 단순히 가산점 몇 점으로 지역 차를 극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이다. 현실적으로 시골 아이들이 수능으로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을 확률은 매우 낮다. 그래서 나는 하나의 방편으로서 아이들에게 지방에서의 삶이라는 선택지를 소개하는 것이다. 


여름에 접어들자 한산하던 하조대는 하와이의 어느 해변가처럼 들썩인다. 백사장 위 파라솔은 둥글게 빛을 튕겨 내고, 펜션과 리조트의 프론트에는 캐리어 끄는 관광객의 발걸음 소리가 타박타박 울린다. 지난 20년간 땅값은 20배가 넘게 올랐고, 수평선이 보이는 언덕에는 지금도 고층 호텔이 착실히 올라가고 있다. 우리 아이들의 기반은 여기다. 이곳에는 부모님과 친척들이 살고 그분들이 땀 흘려 일군 집과 땅이 있다. 

축구도 야구도 홈그라운드에서는 반쯤 이기고 시작한다. 농어촌 아이들이 굳이 승률 떨어지는 ‘서울 아파트에 등기 치고 괜찮은 회사 다니는 중산층 되기 게임’에 매달릴 필요가 있을까. 그냥 지방에서 작지만 단단하게, 마음 편하고 경제적으로 자립 가능한 모습을 보여 주면 되지 않을까. 

등잔 밑이 어둡고, 남의 떡이 커 보인다. 양양의 태양은 밝고, 하조대의 피자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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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