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호[특집] 더 포용적인 학교가 답이다 (김헌용)

2023-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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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_ 교실의 슬픔, 교육의 불가능성②



더 포용적인 학교가 답이다

- 서이초와 주호민, 그리고 ‘왕의 DNA’를 경유하여



김헌용

engccer@gmail.com

서울 신명중 교사,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위원장




들어가며 : ‘교사 미투’ 현상


서이초 교사 사망 이후 여름 내내 광장에 울려 퍼진 교사들의 외침은 2018년 이후 이어진 미투 운동의 그것과 많은 점에서 비슷했다. 다른 점은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이 교사들이었다는 점과 ‘나도 당했다’라고 고발한 것이 성 범죄가 아니라 과도한 교권 침해라는 점뿐이었다. 교사들이 울부짖으며 증언한 사연은 모두 안타깝기만 했다. 그중에서도 5차 교사 집회에서 발언한 한 시각장애인 선생님의 이야기는 특히 가슴이 아팠다. 그 선생님은 가출했다 돌아온 담당 학생을 그 부모의 제안에 따라 훈육했다고 한다. 그런데 학생의 주머니에는 녹음기가 있었고 부모로부터 아동학대 신고를 당해 2500만 원의 합의금으로 사건이 종결되었다고 한다. “교육이라는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무대에서 끌어내려지는” 억울함을 그토록 처절하게 토로하는 선생님의 이야기에 눈시울을 적시지 않은 교사가 과연 있었을까?

해당 사건을 증언한 시각장애인 선생님과 따로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7차 교사 집회가 끝나고 나서 장애를 가진 교사들끼리 저녁 식사 자리가 마련된 덕분이었다. 선생님은 무척 조용하고 내향적인 사람이었다. 한창 장애인 교원들이 겪는 고충을 나눈 후에 선생님은 문제의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서 한숨을 쉬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수단이 많지가 않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말밖에 없는데 이렇게 신고하고 말을 못 하게 막아 버리면 저는 어떻게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을까요?”

다른 교사들의 사연도 그 시각장애인 선생님의 사연과 맥을 같이했다. 생활 지도 중에 튀어나온 언행을 교육적 맥락을 소거한 채 그 자체로만 봐서 아동학대로 판단하는 것이 정당하냐는 것이었다. 교사들의 절망은 핵심적으로는 교육의 일환으로 한 행동과 말이 범죄 혐의를 받는다는 사실로부터 기인한다. 보도에 따르면 실제로 신고된 아동학대 사건 중 단 1.5% 정도만이 기소된다고 한다. 대부분은 무혐의나 불기소 처분이 된다는 것인데 이는 교사의 행위가 범죄로 성립하지 못하거나 공소를 제기할 만큼의 잘못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무분별한 고소를 남발하게 하는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 처벌법’(「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개정하여 법률의 모호성을 소거하고 교사의 교육 활동이 부당하게 중단되는 상황을 원천 차단하자는 교사들의 요구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한편, 고소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지만 아동학대 신고를 교사와의 상담에서 협상 카드로 사용하는 학부모도 있다고 한다. 자신의 아이에게 편의를 봐 달라고 하거나 공정한 훈육을 저지하려는 목적으로 아동학대 신고라는 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숫자가 많고 적음을 떠나서 교육 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키는 부당한 간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아동을 폭력으로부터 지키고 안전한 환경에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해 만든 법이 도리어 교육을 위축시키는 도구로 악용된다면 명확성을 결여한 법률 자체를 개정하는 것도 충분히 타당한 일일 것이다.



뿌리 깊은 문제


하지만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정도로 복잡한 사회 문제에 하나의 원인만 있을 리는 만무하다. 예컨대, 서이초 사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은 ‘주호민 작가 특수 교사 신고 사건’은 단순한 학부모 갑질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통합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해당 사건의 전개 과정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특수 교사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는 2022년 9월에 이루어졌다. 유명 웹툰 작가 주호민 씨가 자폐성장애가 있는 아들 A를 담당하는 특수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한 것이다.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A에 대하여 처리 방향이 논의되는 사이에 특수 교사가 A에게 폭언 등 학대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애초에 A가 원학급에서 ‘문제 행동’을 보였을 때 피해 학생의 부모는 A를 아예 전학시키기를 원했다고 한다. 일종의 분리 요구인 셈이다. 그 후 해당 사건은 두 차례의 회의를 통해 학교폭력 사안이 아닌 특수 학급에 분리 조치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학교가 징계 대상으로 다루는 대신 A의 장애 특성을 고려하여 교육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기도 전에 해당 사건은 순식간에 법적 공방으로 비화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위에서 지적한 학부모의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 중 대표적 사례로 회자되며 많은 교사의 공분을 샀다. 그러나 사람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 것은 왜 아버지인 주호민 씨가 해당 사건에 대한 학교의 조치가 채 이행되기도 전에 다른 사람도 아닌 A를 보호하고자 했던 특수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했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사건과 관련하여 〈슬로우뉴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것이 일반 학교에서 궁지에 몰린 장애 아동의 학부모와 그들을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특수 교사 사이에 벌어지는 전형적인 ‘생존 게임’의 양상을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내 주장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학교에는 여전히 장애 아동에 대한 차별적 메커니즘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장애가 가장 경한 아이는 일반 학급에 배치되고, 그 다음으로 조금 중한 아이는 특수 학급에 배치되며, 문제 행동이 심한 아이는 대안학교로 보내지고, 장애가 가장 중하고 의학적 치료까지 필요한 아이는 특수학교로 보내지는 식이다. 각각의 학교 유형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학생에 맞는 학교를 선택할 자유가 학생 및 부모에게 실질적으로 주어지지 않고 학교 간 유동성이 낮은 것이 문제이다. 장애의 정도가 심해질수록 학생이 이동하는 경로는 일반 학교에서 특수학교로 일방향으로 흐른다. 가히 ‘우생학적 카스트 제도’라고 부를 만하다. 이러한 추세는 너무 공고해서 14년째 일반 중학교에서 일하는 동안 나 또한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실에서 사라져 가는 장애 학생을 여럿 보았다.

이렇듯 차별적 메커니즘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교육 환경에서 장애 아동의 부모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어떻게든 아이가 일반 학교, 일반 학급에서 살아남게 하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특수 교사는 장애 아동이 일반 학교에 남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교 역할을 하지만 반대로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될 때는 학부모가 학교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첫 번째 표적이 된다. 주호민 씨 같은 경우가 바로 그러한 사례의 전형이다. A를 아예 전학시키라는 피해 학생의 부모에게는 일관되게 머리를 숙이지만 A에 대한 분리 조치를 이행하는 학교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이는 특수 교사에게는 날을 세워 맞선다. 아들을 ‘강등 조치’하려는 학교에 궁지로 몰린 부모가 펼치는 일종의 벼랑 끝 전술인 셈이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 현장을 아동학대 신고의 전장으로 만든 ‘빌런’은 누구일까? 내가 보기에는 전선의 가장 앞에서 부딪히는 특수 교사와 부모가 아닌 그들을 벼랑 끝에서 대치하게 만든 차별적인 교육 환경이다.



‘왕의 DNA’ 사건의 이면


주호민 작가 논란이 불거진 후 며칠도 지나지 않아 학부모 갑질의 ‘끝판왕’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른바 ‘왕의 DNA’ 사건이다. 2022년 10월, 교육부 직원이었던 한 학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담당한 초등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여 직위 해제에 이르게 하고 새로 부임한 담임에게도 아들이 “왕의 DNA를 가진 아이이기 때문에 (……) ‘하지 마, 안 돼, 그만’ 등 제지하는 말은 ‘절대’ 하지 말라”는 말을 포함해 부당한 요구를 편지로 전달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직위 해제된 교사는 올해 2월에 경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고 복직했으며 5월에는 검찰로부터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사건을 최초로 알린 전국초등교사노조에 따르면 해당 교사는 여전히 우울장애를 겪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도 잘 다뤄지지 않는 이면이 존재한다. 갑질 부모의 자녀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가 있는 아동으로 알려졌는데, 왜 해당 부모가 자녀에 대한 비과학적 교육법을 교사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했는가 하는 부분이다. ADHD를 ‘왕의 DNA’로 지칭하는 행태는 한 사설 연구소가 그 출처로 알려졌다. 이 연구소는 ADHD를 약물 치료 없이 낫게 할 수 있다고 홍보하면서 ADHD 아동에게는 밀가루가 많이 들어간 음식이 좋다는 둥 의학적 근거가 없는 주장을 다수 펼쳤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연구소장은 ADHD 아동에 관하여 잘 모르고 대하는 교사를 비난하는 듯한 영상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도 올렸다고 한다.

물론 어느 사회에나 비과학적 신념이 남아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왜 교육부 직원이나 되는 부모가 자녀의 ADHD 치료를 위해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연구소를 찾고 그 교육법을 교사에게 강요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나는 이 질문에 대답할 책임의 일부는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대한민국 학교는 ADHD 학생을 ‘문제아’, ‘수업에 방해가 되는 아이’, ‘손이 많이 가는 아이’ 혹은 ‘일반 교실에서 있기 힘든 아이’로만 치부해 온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내가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본 정서행동장애 학생은 1년도 안 되어 결국 대안학교로 보내졌었다. 불과 2~3년 전의 일이다. 자폐나 ADHD와 같이 뇌 기능, 인지 능력 등 내적 차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다양한 상태를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이라고 부른다. 소위 교육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신경다양성을 가진 아동을 ‘특별한 지원이 필요한 아동’으로 보고 교육적으로 지원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국가들에서는 학교 내 특별한 지원 요구 아동의 숫자가 20%에 육박하기도 한다.

한편, 우리나라는 어떨까? 2022년 특수교육 통계에 따르면 특수교육 대상자의 수가 전체 학령기 인구 중 1.7%에 불과하다. 애초에 특별한 지원이 필요한 학생을 특수교육 대상자로 한정하고 번거로운 행정 절차를 거쳐 인정된 아이들만 특별한 교육 대상자로 보다 보니 특수교육 시스템에서 누락되는 아동이 속출한다. 교육 선진국들과 비교해서 학교에서 어떤 형태이든 교육적 지원을 받는 특별한 요구가 있는 아동의 비율이 10분의 1밖에 안 되는 것은 대한민국의 학교가 아~주 오랫동안 이 아이들을 그저 문제아 취급만 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교육 정책의 안전망에서 벗어난 아동과 그 부모가 기댈 곳은 학교 안은 물론 지역 사회 안에도 변변찮다. 다른 학생이 좋은 대학 가겠다고 사교육 시장을 찾는 동안 이 학생들은 병원이나 복지 시설을 전전하게 되고, 심지어는 사이비 연구소에 의존하는 비정상적 상태에 빠지고 만다.

이처럼 상황이 열악하다고 해서 부모의 갑질이 정당화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학교에 ADHD 진단을 받은 아이와 부모를 상담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것도 아니다. 특수 교사와 전문 상담 교사가 제도의 공백을 최대한 메우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이러한 문제를 교육의 문제로 인식하는 교사도 많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구라도 아이에게 ADHD 진단이 떨어진다면 바로 죄인 모드가 될 것이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른 곳에 가서 아이를 ‘고칠’ 방법을 찾아 헤맬 것이다. 학교에서는 ADHD가 ‘비정상적’ 상태라고 단정 짓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왕의 DNA’는 어떤 미치광이의 창작물이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다양성과 포용성을 포기한 대한민국 교실이 만들어 낸 괴물인지도 모른다.



나오며 : 더 포용적인 학교를 꿈꾼다


지난여름 광장으로 표출된 교사들의 외침은 한결같았다. 교권 침해에 대한 임시변통이 아닌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라는 주장이 그것이었다. 교사들은 국회에는 법률 개정을, 교육부와 교육청에는 교권 보호 대책을 요구했다. 법률 개정은 분명 일련의 행동 양식의 테두리를 정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어떤 행동 양식이더라도 구체적인 지원과 모니터링이 가능하여야 현실에서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지원 정책의 마련 또한 필요한 수순이다. 그러나 법률이 개정되고 정책이 집행되더라도 그러한 수단을 통하여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달성하고자 하는가에 관해서는 아직 합의가 충분히 이루어진 것 같지 않다. 비유컨대 “안전하게 장을 보고 싶으니 튼튼한 마트를 지어 주고 편리하게 장을 볼 수 있도록 카트를 배치해 달라”라고는 열심히 외쳤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사려고 하는지는 얘기하지 않은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것이 어디를 향해야 할지 교사들의 지향점을 밝혀야 한다. 구체적이면 좋겠지만 목표를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설정할수록 빈틈이 생긴다. 따라서 지나치게 구체적이지도, 그렇다고 너무 모호하지도 않게 비전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이런 식으로 주장할 수 있을 터이다.

“작금에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아동학대 신고 문제는 명확성이 떨어지는 법률 조항에 그 원인이 있어 개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해당 조항이 활용되는 양태 가운데 겉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중요한 또 하나의 추세를 살펴보면 통합교육의 실패로 인해 학교교육에 절망을 느낀 장애 아동과 그 가족과 연결된 문제가 상당하다는 점이다. 또한 서이초 사건에서 드러나듯 저연차 교사가 동료로부터 제때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도 있다. 우리는 학교교육에서 자폐성장애 아동이나 ADHD 아동을 안전하게 교육하고 통합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도움이 필요한 교사들이 제때 동료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연하고 탄력성 있는 조직 문화와 체계를 원한다. 우리가 더 포용적인 교육을 할 수 있고, 더욱 유연한 조직을 갖출 수 있도록 제반 사항을 확인하고 개선하라.”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 바로 하위 층위에서 어떤 문제점을 발견하는가는 교사가 선 위치에 따라 다를 것이다. 교사마다 교육이라는 장에서 꿈꾸는 교육 활동의 모습이 다르듯 현재 대한민국의 학교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문제점도 서로 다를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적으로 위와 같이 외관적으로 드러나는 틀만을 정비해 달라고 주장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더 안전한 학교에서 교사들이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청사진을 그려야 할 때가 머지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틀이 마련된 이후에 자연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틀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함께 이야기되어야만 의미 있는 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때야말로 교사들이 각자의 비전을 마음껏 풀어놓을 때이다. 

아쉬운 것은 그러한 거시적 담론을 제시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반 교사만이 아니라 교육계 리더들조차 뚜렷한 비전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요컨대, 우리의 교육 현실과 연결시켜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는 이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최근 교권 침해 사안과 관련하여 학교의 거버넌스를 어떻게 현대화할 것인지,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교육과정에 녹여 낼 것인지, 혹은 이 문제를 기술과 연결시켜 어떻게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할지 청사진을 내놓는 사람은 없다.

이렇듯 교육의 방향에 관하여 비전을 제시할 수 없다는 얘기는 목표를 향해 나아갈 로드맵 또한 스스로 정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방향이 없으니 방법도 스스로 찾지 못한다. 이제 어느 분야이든 개인 혼자서 바꿀 수 있는 건 거의 없는 세상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공동의 비전과 그에 따른 실행 계획이다. 교육계 내에서 먼저 비전을 생성해야 한다. 그 후에 그에 맞는 수단을 찾는 것이 옳은 순서이다.

나는 지난 몇 달간 지나온 교권 보호 요구 국면에서 지금보다 더욱 ‘포용성 높은 학교’가 그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의 생각이 100% 옳다는 확신은 없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현재 서 있는 위치에서 제안해 볼 수 있는 최선의 가설이다. 학교가 더욱 포용적으로 바뀐다면 현재와 같은 아동학대 신고 문제는 많이 줄어들 것이라는 가설.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우리 스스로 법률 규정 몇 줄에 가둘 필요는 없지 않은가? “상상력은 우리가 희망을 통해 미래에 가질 수 있는 것의 유일한 한계이다”라는 말이 있다. 상상의 빈곤은 한계를 만든다. 이젠 교사들부터 교권의 담론을 넘어 조금 더 자유롭게 교육적 상상력을 발휘하면 어떨까?



❶ 김헌용, “진짜 빌런은 학교다 : 장애인 통합교육의 현실”, 〈슬로우뉴스〉, 2023년 8월 3일.
❷ “‘왕의 DNA’ ADHD 치료법 전수한 연구소장…피자·라면 먹여라 엉터리 주장”, 〈지디넷코리아〉, 2023년 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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