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광장이 불타오른 뒤 막이 내리고
지수
남태령에서의 밤을 잊지 못하는 주거권 활동가.
‘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 활동.

신진욱·이재정 외 씀, 《광장 이후》, 문학동네, 2025 빈센트 베빈스 씀, 박윤주 옮김, 《광장의 역설》, 진실의힘, 2025
광장에서는 늘 분실물이 생긴다. 때때로 길 잃은 사람, 동행인을 놓친 사람도 생겨난다. 남태령의 한겨울밤을 여전히 잊지 못한 채로 한여름이 됐다. 광장에 함께 있었으나 결국 분실물이 되어 버린 것들을 생각한다. 전부 알진 못하겠다. 다만 내가 감각하고 있는 몇 가지를 책 《광장 이후》를 리뷰하며 읊어 보려 한다. 혼자 설명해 내기 어려운 지점들은 또 다른 책 《광장의 역설》에 소개된 2010년대 해외 대규모 시위 관련 활동가들의 말과 저자의 평을 인용할 것이다. 물론 주된 재료는 광장 ‘동안’의 기억이다. 주된 기억은 남태령이고, ‘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와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 활동에서의 감상을 바탕으로 한다. 광장 이후 정부의 행보에 대한 감상도 빼놓을 수 없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모두 절대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한 것이다.
광장 ‘이후’는 진보적 사회 변화를 담보하지 않는다
윤석열의 비상계엄령 선포는 정치적 입장으로 찬반을 가릴 문제가 아니라 위법적이고 반민주적인 행위였다. 그렇다면, 여성혐오는 어떠한가? 여성 차별은 어떠한가? 성평등은 어떠한가? 페미니즘은 어떠한가? 나는 이에 대해 아주 많은 기득권 정치인들이 편들어 주면 안 되는 것들을 편들고 달래며 권력을 유지해 왔다고 생각한다.
《광장 이후》에는 혐오, 양극화, 세대론을 넘어 광장 이후에 함께 만들어 갈 사회에 대한 기대를 담은 글들이 실렸다. 아쉬운 것은 광장의 주역인 ‘2030 청년 여성’들, 특히 페미니즘 운동이 수년간 외치고 조직해 낸 운동의 결실이 펼쳐졌던 광장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분량으로 청년 남성에 대한 극우화 프레임을 경계하는 내용이 여러 차례 반복된다는 점이다. 설문 조사 참여자의 대다수가 청년 여성이라는 점이 언급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돌이켜 보건대, 우리의 응원봉은 누가 쥐여 준 게 아니라 스스로 쟁취한 것이었다. 젊은 여자들에게 누구도 쉽사리 의사봉을 주지 않기도 했지만, 여하튼 우리는 응원봉을 쥐는 것에서부터 스스로를, 서로를, 세상을 조직해 냈다. 페미니즘은 나를, 나와 같은 여성 동지들을 그렇게 일깨우고 가르쳤다. 청년 남성을 염려하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온다. 또다시 우리는 의사봉은커녕 응원봉마저 ‘느이 집 장손 주라’고 빼앗길 모양인가. 그러나 광장에서 들었던 응원봉은 그런 식으로 쥘 수 있는, 건네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운동은 조직하는 것이다. 광장은 조직된 운동 주체들의 힘으로 열리고 유지되고 확장된다. 달래 주는 건 그들의 운동성, 주체성이 발현되고 깨어날 시기를 더 늦추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광장 이후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가열찬 사회운동이지, 기존 권력 구조를 답습하는 질서가 결코 아니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난 6월 칼럼에 ‘귀한 아들 증후군’이란 말을 썼다.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걸 부인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허세 같아 보이는 희망을 말하나 근거는 빈약하고 실천은 없다. 힘들다고 말하지만 진심이 느껴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❶ 그리고 그런 남성들을 보호하고 달래 주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SNS에서 종종 쓰이는 ‘아드리즘’이란 말과 짚고자 하는 대상이 비슷하다. 여기에 해당하는 가까운 예시가 이재명 대통령이다.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은 청년 여성에 대한 언급을 진작부터 삼갔다. 어느 기자가 광장을 주도한 2030 여성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자 그는 “모든 국민이 함께했다. 국민이라는 거대 공동체 모두의 성과”라고 답했다. 광장이 만들어 낸 대선에서 이재명이 당선됐다. 보통 이쯤하면 ‘공신’에게 ‘치하’를 하는 게 내가 봐 왔던 사극의 국룰이었다. 현실 정치는 그 정도도 하지 않았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은 광장의 주역들을 뒤로 하고 다른 데 관심을 뒀다. 그들은 이준석을 지지했던 20대 남성의 표심이 탐났던 게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여성가족부에 청년 남성 차별 대책을 요구할 발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6월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청년 남성 차별을 연구하고 대책을 만들라고 지시하며, ‘여성가족부에 담당 부서가 있는지’ 등을 물었다고 했다.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확대 개편한다는 맥락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기시감이 든다.
광장 이후에 페미니즘을 함구하는 기득권 정치에 약이 오른다. 정말이지, 광장 ‘이후’는 그 자체로 진보적인 사회 변화를 담보하지 않는구나. 광장 ‘이후’ 라는 시간이 저절로 더 나은 사회, 더 많은 권리, 진보, 페미니즘, 행복을 의미할 것이라 막연히 기대했던 사람들이 혹시 있을까. 대단한 기대까진 아니어도, 그래도 광장에서 터져 나왔던 사회 개혁의 주요 요구들 중 몇 가지는 현실이 될 수 있을 거라 긍정적 사고 회로를 돌려 본 사람들은 있을까. 나는 어느 정도의 희망과 낙관을 품기는 했나 보다. 적어도 ‘누가 오든 윤석열보다야 나을 것’이라는 말에 굳이 말대꾸하지 않을 정도의 분위기 파악은 하고 있었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던 윤석열, 이주민에게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겠다던 윤석열, ‘노란봉투법’과 ‘이태원 참사 특별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등을 거부하던 윤석열이다. 심지어 비상계엄령까지 선포한 윤석열이다. 그의 파면은 당연히 최우선이어야 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를 비롯한 동료들은 박근혜 퇴진 운동을 종종 떠올렸다. ‘지금 당장’의 과제에 떠밀려 영원히 ‘나중에’로 분류되고야 말았던 무언가들을 떠올렸다. ‘윤석열 퇴진’만큼이나 지금 당장 중요하다고 외치고 싶은 것들이 한가득이었다. 이건 몇몇 활동가들만의 욕심이 아니기도 했다. 《광장 이후》에서 소개된 “왜 광장에 나오셨나요?” 설문 조사에 임한 청년들은 “사회대개혁을 통한 사회 문제 해결”을 광장의 요구 중요도 1순위(63.1%) 및 2순위(82.9%)로 꼽았다. 시민 발언에서도 종종 ‘박근혜 퇴진 때와는 달라야 하니까’라는 말들이 들려왔다. 그건 서로에 대한 당부이기도 했을 테다. 이미 경험했던 실망을 또 겪고 싶지 않다는 또렷한 의사 표현이기도 했을 테다. 그러나 광장 이후, 지금은 어떠한가? 그걸 저버린 정치권력이, 광장이 기존 권력을 비워 내 생긴 공백을 메웠다. 페미니즘을 함구하고 청년 여성이 말하는 불평등과 차별을 등한시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일들이 ‘광장 이후’ 새 정부에서도 이어진다.
마법 이후에 남은 건 그루터기뿐이라면
광장에서 ‘마법’ 같은 순간을 함께 느껴 봤기에, 요즘 정치 뉴스를 보다 보면 더욱 큰 이질감이 든다. 절대적인 시간은 광장 ‘이후’로 넘어왔지만, 뉴스는 본질적으로 광장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고, 오히려 광장 ‘동안’의 시간이 다른 우주의 것이었던 것만 같다. 사회운동과 냉전사를 주로 취재해 온 국제 분야 전문 기자 빈센트 베빈스는 2023년 책 《광장의 역설》을 썼다. 그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말을 인용하며 역사는 진보하는 쪽으로 흐른다는 막연한 낙관에 대해 지적한다. 더 올바르고 더 정의롭다고 해서 반드시 승리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혹시 나도 무심코, 막연한 ‘진보’를 시간에 맡겼던 건 아닐까 돌아보게 됐다.
《광장의 역설》에는 2010년대 전 세계적으로 벌어졌던 대규모 시위와 운동 사례 10건에 관한 활동가들의 경험과 저자의 관찰 및 분석이 담겨 있다. 그는 ‘우발적으로 형성된 혁명적인 상황’에서 대규모 시위가 가진 운동적 한계를 짚는다. 대규모 시위가 끝난 이후 부패한 권력을 몰아낸 자리를 어떻게 채울 것인지 미리 준비하지 못한 채 열린 광장은 한순간 ‘마법처럼’ 불타오른 뒤 어쩌면 ‘그루터기’ 정도로만 남는다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브라질, 칠레, 홍콩, 이집트 등 각지의 사람들은 혁명적인 대규모 시위의 순간을 만들어 냈다. ‘전설적’이고 ‘신화’ 같고 ‘숭고한 경험’이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심오하고 아름다웠’던 대규모 시위의 순간을 맛본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 있다’는 느낌을 만끽했다. 그러나 종국에 여러 대규모 시위가 실패하거나 흩어졌다. 혁명적인 순간이 끝난 뒤 심지어 극우주의자들에게 그 권력의 중심을 내주는 경험을 한 어느 활동가는 우울과 죄책감으로 세월을 견뎌야 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보며, 남태령을 떠올렸다.
“배가 고파서 가져온 호떡을 먹었는데, 옆자리 아저씨도 하나 드렸어요. 그랬더니 호두를 주셔서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나중에 아저씨께서 먼저 가시면서 ‘수고하세요’라고 인사하셔서 모르는 사람과 적절한 호의를 베풀며 가까워진 게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광장 이후》, 104쪽)
“최근 뉴스를 보면 사람을 함부로 믿어선 안 된다고 합니다. 그 탓에 불안이 높아지고 신뢰가 낮아졌습니다. 그러나 광장에 나와 연대한 순간, 세상은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사방에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을 위해 음식과 필수품이 쏟아집니다. 혹 건강이 나쁜 사람이 없나 살펴봅니다. 바닥났던 신뢰가 다시금 생겼기 때문일까요, 몇 번이고 집회에 나오고 싶다는 생각입니다.”(《광장 이후》, 104쪽)
“집회에 나오는 것을 즐기거나 뿌듯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렇게나 외로운 사람들이 많았구나, 감정을 표출할 곳이 필요했구나, 혼자 생각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광장이 각자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피력하는 공론장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광장 이후》, 106쪽)
“저는 주로 은둔하며 살아서 사람들과 말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바깥에 나가도 제게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고, 저도 사람들에게 말을 걸지 않았어요. 그러나 집회에, 광장에 나간 뒤부터 사람들과 말하는 것, 먼저 말을 거는 것이 기꺼워졌습니다. 최근에는 옆자리 분이 신문지만 깔고 앉으셨길래 제가 가져온 크고 두꺼운 담요를 함께 깔고 앉자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광장 이후》, 107쪽)
상호부조, 돌봄과 연대, 공동체 사회,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새로운 사회, 평등하고 안전한 문화, 다양한 정체성이 인정되는 곳, 서로의 취약함과 약자성을 드러내는 것이 약점 잡히는 일이 아니라 서로 존중할 수 있는 계기로 다가가는 경험. 광장을 통해 권력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기존의 또 다른 정치권력이 메운 뒤, 모든 게 꿈처럼 기억 속에만 남게 되는 것이 너무도 아쉽다. 아쉬워만 하지 않고 광장 이후에도 꾸준히 행동하는 이들의 움직임이 광장의 경험과 광장의 정신을 진정으로 계승하고 있다.
한편, 우리는 희망을 보았고 가능성을 보았다는 말로 만족하고 싶지 않다. 그루터기로 남고 싶지 않다. 우리가 남태령에서 만들었던 돌봄 사회, 공동체 사회, 평등 사회를 광장 바깥에도 가져가고 싶다. 우리가 남태령에서 함께 감각했던 평등과 존중, 연대와 돌봄의 관계 맺기를 정치권력에게도 요구하고 싶고, 우리의 일상에도 더 적극적으로 퍼뜨리고 싶다. 그것을 만들어 내기 위한 과정을 설계하고, 행동하고,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고, 끝내 서로를 조직하고 더 단단한 지지를 만들고 싶다. 우연적으로 주어지는, 우발적으로 생겨나는 현장을 추억하는 데 멈추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 지금 함께 고민되어야 할까. 다행히 이는 우리만의 과제가 아니다. 2010년대 온갖 나라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나에게 남태령이 있듯, 다른 나라, 다른 시간 속의 누군가에게도 그런 장면이 벌어졌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어딘가 공명하는, 그래서 서로 들여다보는 것이 유의미할 수 있는 어떤 경험들을 갖고 있다.
내게는 숲이 된 남태령
나는 왜 남태령에 갔던가. 후회를 털어 내고 부채감을 덜기 위해서였다. 12월 3일, 나는 비상계엄령을 두고 온갖 가짜 뉴스가 난무하는 틈에서 당시 속해 있던 단체의 회원들을 불러 모아 안전한 온라인 소통 채널을 운영하면서 사회주택 룸메이트들과 밤을 지새웠다. 그게 내 몫이라고 생각했지만, 두고두고 부채감이 생겼다. 비상계엄령이란, 민주주의는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던 내게 너무 추상적이고 낯선 위험이었던 것이다. X는 이런 위기 상황에서 가장 빠르고 분명한 정보들을 날라 주는 ‘동지’들이 존재하는 온라인 광장이었다. X를 매일 들락거리던 어느 날 남태령 소식을 접했다. 오늘에야말로 12월 3일에 국회 앞을 지켰던 동지들에게 빚을 갚을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남태령으로 향했다. 택시도 진입할 수 없고 승용차도 통과시켜 주지 않는 검문과 차벽을 넘어 고개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내가 만나고야 말, 우리가 반드시 다시 만들어 낼 세계를 맛보고 왔다. 그 맛을 좀 설명해 보겠다.
첫째, 신뢰에 기반한 돌봄과 연대의 공동체. 남태령 고개를 넘어서고자 하는 농민들과 연대하러 온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신뢰’가 만드는 평등과 존중의 감각이 너무나도 좋았다. 네가 가져온 쿠키와 피자를 의심하지 않고, 내가 건네는 단팥죽과 생강차를 기꺼이 받는다. 저체온증에 걸리지 않게, 어딘가 아파 보이는 사람이 있는지 둘러보는 사람들이 있다. 무언가 못 챙겨 먹고 있는 사람에게는 따뜻한 커피를 건넨다. 손에 들린 핫팩을 옆 사람과 나눠 갖고, 여전히 추워 보이는 이에게 누군가 보내 준 난방 버스를 소개해 준다. 화장실 앞에는 생리대가 무료 나눔 메모지 아래에 산처럼 쌓여 있다. 생리통 약과 군것질거리도 함께다.
둘째, 숨지 않아도 된다는 감각. 말 건네는 이가 있고, 그 이야기를 그 자체로 받아 주는 이가 있다. 내가 농민, 여성 청년, 성소수자, 이주민, 전세 사기 피해자, 가정폭력 피해자, 그 무엇이더라도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게 당연한 곳이 바로 여기다. 나의 삶이 처해 있는 곤경이 있다면 함께 염려하고, 내가 겪는 불평등과 차별이 있다면 함께 분노하고, 연대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연대와 지지를 표현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지탱하고 체온으로 데워 주는 곳이 바로 남태령이었다.
셋째, 꿈을 꿔도 되는 곳. 김애란 작가의 단편 〈좋은 이웃〉에서 주인공은 남편에게 시간을 돌린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남편은 집값이 한창 오른 어떤 집을 제때 살 수 있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진정한 자유와 존엄이 확보된 삶을 위해선 노오력해서 어느 정도 경제적 부를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기 통치를 꾀하는 삶을 내재화하고 만 사람들에게 씁쓸하게 와닿는 장면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돈이 아닌 다른 것에 대한 꿈과 소원이란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철없는 소리처럼 취급되는 요즘이던가. 세입자로 살다 보면 임대인의 횡포에 서러워지기도 하고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러니 얼른 투기를 잘해서 불로소득을 벌고 싶어지는 마음. 건물주가 꿈이고 소원이 되는 마음. 그러나 혹시나, 만약에, 그것이 아니라 다른 걸 꿈꿀 수 있다면, 그런 말들을 주고받는 게 그냥 헛소리가 아니라 삶을 빛나게 할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꿈처럼 서로에게 가닿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남태령에서 그런 마음을 감히 품을 수 있어 행복했다. 성소수자가 농민의 권리를 지지하고, 전세 사기 피해자가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고, 청년 노동자가 이주민 혐오에 맞서자고 외치는 순간들이 이어지는 남태령에서 나는 서로의 꿈이 함께해서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나는 비상행동 시민참여팀에서 활동하던 중이었던 터라, 남태령 대첩이 끝난 직후 ‘남태령 뒤풀이’ 프로그램을 기획 및 집행하며 그 밤과 새벽을 함께 지새웠던 수십 명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60여 명의 참여자들과 함께 그날의 기억을 서로 곱씹어 보기도 하고, 주고받고픈 말을 나누기도 했다. 그날 참여자들이 함께 나누었던 인상 중 하나는, 남태령에서 밤을 지새운 우리의 성별과 연령대가 뚜렷했다는 점이다. 춥고, 응원봉을 들고 있고,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한가득이고, 음악과 노래가 나오는 곳이라니, 여기가 집회 장소인지 KBS 신관 앞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뒤풀이에 온 사람들 대다수도 청년 여성이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그날의 평등 사회의 경험은, 사회대개혁 요구로서 ‘차별금지법 제정’은, 너무도 당연한 ‘사회적 합의’가 충만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두고두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남태령이 페미니즘의 현장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페미니즘을 빼놓고 광장을 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페미니즘 이야기 하나 없이 새 정부가 광장의 기억을 덮어 낼 수 있단 말인가.
광장 이후, 중독과 행복감 바깥에서
《광장의 역설》 속 이야기에는 남태령을 생각하면 내 머릿속에 펼쳐지는 것과 엇비슷한 낱말들이 이어진다. 특히 이집트의 어느 여성 활동가 게하드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2011년 1월 당시 민주주의와 자유, 호스니 무바라크 독재 정권 붕괴를 요구하는 시위에 함께했다. 18일간 대규모 시위가 계속된 타흐리르 광장에서 그는 연대와 돌봄을 주고받는 공동체를 경험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아주 대단한 우주에 속한 것 같았다. “함께 빵을 나누며”, “함께 웃고, 미소 짓고, 고통받고, 희생하고, 함께 일하며”, “새로운 작은 사회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함께 “대기의 기묘한 변화”를 감각했고, 그들은 결국 하나의 결실을 이뤄 냈다. 이 대규모 시위의 결과로 정권이 무너졌다. 외신들은 18일간 이어졌던 이때의 시위를 ‘아랍의 봄’이라고 칭하며 관심을 쏟아 냈다. 시간이 흘렀다. 새 정권이 들어섰다. 그들은 타흐리르 광장에 경찰 부대를 불렀다. 친정부 시위든 반정부 시위든 다 싫어하는 것이 현 정권의 취향이었다. 2017년, 대규모 시위가 있었던 때로부터 6년 만에 그곳을 방문한 기자는 시위를 기념하는 축제도 행사도 열리지 않는, 더 이상 시민이 보이지 않는 광장을 목격했다.
베빈스는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중독과 행복감 사이”를 오가고 있다고 보았다. 대규모 시위와 같은 “초자연적인 경험”에 어떤 사람들은 평생 그날을 되새기며 살아가겠다고 말하고, 동시에 참여자 중 일부는 시위가 실패한 후 찾아온 끔찍한 우울이 마치 숙취와 같음을 토로했다. 마치 중독 같은 것이었다. 동시에, 다른 해석도 가능했다. “그들이 시위에서 느낀 것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진정한 감정”이며, “삶이 진정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놀랍고도 찰나적인 통찰”을 주는 경험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둘 중 무엇이 더 진실인지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고, 중요한 건 대규모 시위는 바로 그 사이에서 개개인들을 길 잃기 쉽게 만들기도 한다는 점이라는 생각을 했다.
대규모 시위가 주는 중독감에 빠지지 않고, 어떤 변화를 진정 만들어 내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소셜 네트워크 기반의 미조직된 운동의 한계를 이해해야 한다. 베빈스는 앞으로도 대규모 시위가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면서, 현 시대에 대규모 시위가 작동되고 해체되는 원리 중 하나로 소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펼쳐지는 수평주의 운동 내지는 지도자 없는 운동의 한계를 주목한다. 그는 “올바른 행동을 ‘자발적’으로 취한다는 마법 같은 생각을 멈추는 것”(본문 395쪽)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개인화될수록, 어차피 이미 준비된 기존 정치권력이 기존 구조를 강화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둘째, 활동가들이 처한 개인적·운동적 한계를 이해해야 한다. 베빈스는 활동가들마저도 “자유 시장, 사유 재산 제도, 신자유주의적 합리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됐고, 진정한 혁명을 수행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상상할 수 없게”(본문 401~402쪽) 된 상황에서 사고하게 되곤 한다고 보았다. 정리하면, 소셜 네트워크 기반의 대규모 시위는 준비되지 않은 운동 조직이 통제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광장은 신자유주의적인 질서에 얽매이기 쉽고, 결과적으로 기존 권력 구조를 강화하게 된다는 것일까.
셋째, 조직하기, 권력 잡기를 놓지 않는 것. 베빈스는 우리의 이런 곤경을 기회 삼아 극우 세력이 득세하는 사례들을 여럿 알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조직은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도구의 사용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진정 집을 지을 수 없다. 책임지기를 거부한다면, 권력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이다”(본문 420쪽)라고 말하며 결국 극우 세력이나 악용당하는 것이 무서워서 뭔가 하기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조직하는 것, 운동 조직을 구축하는 것이 결국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차피 또 다가올 대규모 시위 이후에 또다시 흩어지고, 남은 자들은 “숙취”와 같은 우울에 빠질 뿐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광장 ‘이전’의 시간
폭염이 이어진다. 작년 여름과 올해 여름 사이에 대단한 광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여상히 흘러가는 뉴스들을 흘겨본다. 올여름에도 충남 당진에 사는 아무개의 집은 물에 잠긴다. 올여름에도 오세훈 서울시장은 쪽방촌에서 인증샷을 찍었다. 폭우에 잠기고 폭염에 달아오르는 거처는 대체로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남태령에서 보냈던 동짓날 밤에 느꼈던 추위가 한겨울 밤의 꿈만 같다. 정말 꿈일지도 모르겠다. 분명 우리는 작년 여름과 이번 여름 사이에 거대한 광장을 장장 4개월 동안 지나왔는데 말이다. 변화는 없다. 그저 작년에도 그랬듯 올해에도 2022년 반지하 폭우 참사를 추모하고 2023년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추모한다. 문득 살이 아리다. 광장을 오가며 골골대던 몸과 정신은 아직 다 낫지 않았다. 행복했고 고양되었던 크기만큼의 상실과 외로움이 다 가시지 않았다. 그러든지 말든지, 활동가 하나가 앓든지 말든지 시간은 흐른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겠다. 남태령에서 맛본 세계를 다시 만나고야 말겠다. 광장 이후, 우리는 또다시 그 다음 광장의 ‘이전’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다음 광장 ‘동안’에는 스스로를, 서로를, 세상을 더 많이 조직하고 움직일 수 있다면 좋겠다. 그 밤의 남태령, 사는 동안 또다시 만나고야 말겠다.
❶ 하지현, “귀한 아들 증후군”, 〈경향신문〉, 2025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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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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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광장이 불타오른 뒤 막이 내리고
지수
남태령에서의 밤을 잊지 못하는 주거권 활동가.
‘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 활동.
신진욱·이재정 외 씀, 《광장 이후》, 문학동네, 2025 빈센트 베빈스 씀, 박윤주 옮김, 《광장의 역설》, 진실의힘, 2025
광장에서는 늘 분실물이 생긴다. 때때로 길 잃은 사람, 동행인을 놓친 사람도 생겨난다. 남태령의 한겨울밤을 여전히 잊지 못한 채로 한여름이 됐다. 광장에 함께 있었으나 결국 분실물이 되어 버린 것들을 생각한다. 전부 알진 못하겠다. 다만 내가 감각하고 있는 몇 가지를 책 《광장 이후》를 리뷰하며 읊어 보려 한다. 혼자 설명해 내기 어려운 지점들은 또 다른 책 《광장의 역설》에 소개된 2010년대 해외 대규모 시위 관련 활동가들의 말과 저자의 평을 인용할 것이다. 물론 주된 재료는 광장 ‘동안’의 기억이다. 주된 기억은 남태령이고, ‘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와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 활동에서의 감상을 바탕으로 한다. 광장 이후 정부의 행보에 대한 감상도 빼놓을 수 없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모두 절대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한 것이다.
광장 ‘이후’는 진보적 사회 변화를 담보하지 않는다
윤석열의 비상계엄령 선포는 정치적 입장으로 찬반을 가릴 문제가 아니라 위법적이고 반민주적인 행위였다. 그렇다면, 여성혐오는 어떠한가? 여성 차별은 어떠한가? 성평등은 어떠한가? 페미니즘은 어떠한가? 나는 이에 대해 아주 많은 기득권 정치인들이 편들어 주면 안 되는 것들을 편들고 달래며 권력을 유지해 왔다고 생각한다.
《광장 이후》에는 혐오, 양극화, 세대론을 넘어 광장 이후에 함께 만들어 갈 사회에 대한 기대를 담은 글들이 실렸다. 아쉬운 것은 광장의 주역인 ‘2030 청년 여성’들, 특히 페미니즘 운동이 수년간 외치고 조직해 낸 운동의 결실이 펼쳐졌던 광장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분량으로 청년 남성에 대한 극우화 프레임을 경계하는 내용이 여러 차례 반복된다는 점이다. 설문 조사 참여자의 대다수가 청년 여성이라는 점이 언급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돌이켜 보건대, 우리의 응원봉은 누가 쥐여 준 게 아니라 스스로 쟁취한 것이었다. 젊은 여자들에게 누구도 쉽사리 의사봉을 주지 않기도 했지만, 여하튼 우리는 응원봉을 쥐는 것에서부터 스스로를, 서로를, 세상을 조직해 냈다. 페미니즘은 나를, 나와 같은 여성 동지들을 그렇게 일깨우고 가르쳤다. 청년 남성을 염려하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온다. 또다시 우리는 의사봉은커녕 응원봉마저 ‘느이 집 장손 주라’고 빼앗길 모양인가. 그러나 광장에서 들었던 응원봉은 그런 식으로 쥘 수 있는, 건네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운동은 조직하는 것이다. 광장은 조직된 운동 주체들의 힘으로 열리고 유지되고 확장된다. 달래 주는 건 그들의 운동성, 주체성이 발현되고 깨어날 시기를 더 늦추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광장 이후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가열찬 사회운동이지, 기존 권력 구조를 답습하는 질서가 결코 아니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난 6월 칼럼에 ‘귀한 아들 증후군’이란 말을 썼다.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걸 부인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허세 같아 보이는 희망을 말하나 근거는 빈약하고 실천은 없다. 힘들다고 말하지만 진심이 느껴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❶ 그리고 그런 남성들을 보호하고 달래 주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SNS에서 종종 쓰이는 ‘아드리즘’이란 말과 짚고자 하는 대상이 비슷하다. 여기에 해당하는 가까운 예시가 이재명 대통령이다.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은 청년 여성에 대한 언급을 진작부터 삼갔다. 어느 기자가 광장을 주도한 2030 여성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자 그는 “모든 국민이 함께했다. 국민이라는 거대 공동체 모두의 성과”라고 답했다. 광장이 만들어 낸 대선에서 이재명이 당선됐다. 보통 이쯤하면 ‘공신’에게 ‘치하’를 하는 게 내가 봐 왔던 사극의 국룰이었다. 현실 정치는 그 정도도 하지 않았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은 광장의 주역들을 뒤로 하고 다른 데 관심을 뒀다. 그들은 이준석을 지지했던 20대 남성의 표심이 탐났던 게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여성가족부에 청년 남성 차별 대책을 요구할 발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6월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청년 남성 차별을 연구하고 대책을 만들라고 지시하며, ‘여성가족부에 담당 부서가 있는지’ 등을 물었다고 했다.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확대 개편한다는 맥락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기시감이 든다.
광장 이후에 페미니즘을 함구하는 기득권 정치에 약이 오른다. 정말이지, 광장 ‘이후’는 그 자체로 진보적인 사회 변화를 담보하지 않는구나. 광장 ‘이후’ 라는 시간이 저절로 더 나은 사회, 더 많은 권리, 진보, 페미니즘, 행복을 의미할 것이라 막연히 기대했던 사람들이 혹시 있을까. 대단한 기대까진 아니어도, 그래도 광장에서 터져 나왔던 사회 개혁의 주요 요구들 중 몇 가지는 현실이 될 수 있을 거라 긍정적 사고 회로를 돌려 본 사람들은 있을까. 나는 어느 정도의 희망과 낙관을 품기는 했나 보다. 적어도 ‘누가 오든 윤석열보다야 나을 것’이라는 말에 굳이 말대꾸하지 않을 정도의 분위기 파악은 하고 있었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던 윤석열, 이주민에게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겠다던 윤석열, ‘노란봉투법’과 ‘이태원 참사 특별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등을 거부하던 윤석열이다. 심지어 비상계엄령까지 선포한 윤석열이다. 그의 파면은 당연히 최우선이어야 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를 비롯한 동료들은 박근혜 퇴진 운동을 종종 떠올렸다. ‘지금 당장’의 과제에 떠밀려 영원히 ‘나중에’로 분류되고야 말았던 무언가들을 떠올렸다. ‘윤석열 퇴진’만큼이나 지금 당장 중요하다고 외치고 싶은 것들이 한가득이었다. 이건 몇몇 활동가들만의 욕심이 아니기도 했다. 《광장 이후》에서 소개된 “왜 광장에 나오셨나요?” 설문 조사에 임한 청년들은 “사회대개혁을 통한 사회 문제 해결”을 광장의 요구 중요도 1순위(63.1%) 및 2순위(82.9%)로 꼽았다. 시민 발언에서도 종종 ‘박근혜 퇴진 때와는 달라야 하니까’라는 말들이 들려왔다. 그건 서로에 대한 당부이기도 했을 테다. 이미 경험했던 실망을 또 겪고 싶지 않다는 또렷한 의사 표현이기도 했을 테다. 그러나 광장 이후, 지금은 어떠한가? 그걸 저버린 정치권력이, 광장이 기존 권력을 비워 내 생긴 공백을 메웠다. 페미니즘을 함구하고 청년 여성이 말하는 불평등과 차별을 등한시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일들이 ‘광장 이후’ 새 정부에서도 이어진다.
마법 이후에 남은 건 그루터기뿐이라면
광장에서 ‘마법’ 같은 순간을 함께 느껴 봤기에, 요즘 정치 뉴스를 보다 보면 더욱 큰 이질감이 든다. 절대적인 시간은 광장 ‘이후’로 넘어왔지만, 뉴스는 본질적으로 광장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고, 오히려 광장 ‘동안’의 시간이 다른 우주의 것이었던 것만 같다. 사회운동과 냉전사를 주로 취재해 온 국제 분야 전문 기자 빈센트 베빈스는 2023년 책 《광장의 역설》을 썼다. 그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말을 인용하며 역사는 진보하는 쪽으로 흐른다는 막연한 낙관에 대해 지적한다. 더 올바르고 더 정의롭다고 해서 반드시 승리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혹시 나도 무심코, 막연한 ‘진보’를 시간에 맡겼던 건 아닐까 돌아보게 됐다.
《광장의 역설》에는 2010년대 전 세계적으로 벌어졌던 대규모 시위와 운동 사례 10건에 관한 활동가들의 경험과 저자의 관찰 및 분석이 담겨 있다. 그는 ‘우발적으로 형성된 혁명적인 상황’에서 대규모 시위가 가진 운동적 한계를 짚는다. 대규모 시위가 끝난 이후 부패한 권력을 몰아낸 자리를 어떻게 채울 것인지 미리 준비하지 못한 채 열린 광장은 한순간 ‘마법처럼’ 불타오른 뒤 어쩌면 ‘그루터기’ 정도로만 남는다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브라질, 칠레, 홍콩, 이집트 등 각지의 사람들은 혁명적인 대규모 시위의 순간을 만들어 냈다. ‘전설적’이고 ‘신화’ 같고 ‘숭고한 경험’이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심오하고 아름다웠’던 대규모 시위의 순간을 맛본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 있다’는 느낌을 만끽했다. 그러나 종국에 여러 대규모 시위가 실패하거나 흩어졌다. 혁명적인 순간이 끝난 뒤 심지어 극우주의자들에게 그 권력의 중심을 내주는 경험을 한 어느 활동가는 우울과 죄책감으로 세월을 견뎌야 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보며, 남태령을 떠올렸다.
“배가 고파서 가져온 호떡을 먹었는데, 옆자리 아저씨도 하나 드렸어요. 그랬더니 호두를 주셔서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나중에 아저씨께서 먼저 가시면서 ‘수고하세요’라고 인사하셔서 모르는 사람과 적절한 호의를 베풀며 가까워진 게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광장 이후》, 104쪽)
“최근 뉴스를 보면 사람을 함부로 믿어선 안 된다고 합니다. 그 탓에 불안이 높아지고 신뢰가 낮아졌습니다. 그러나 광장에 나와 연대한 순간, 세상은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사방에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을 위해 음식과 필수품이 쏟아집니다. 혹 건강이 나쁜 사람이 없나 살펴봅니다. 바닥났던 신뢰가 다시금 생겼기 때문일까요, 몇 번이고 집회에 나오고 싶다는 생각입니다.”(《광장 이후》, 104쪽)
“집회에 나오는 것을 즐기거나 뿌듯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렇게나 외로운 사람들이 많았구나, 감정을 표출할 곳이 필요했구나, 혼자 생각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광장이 각자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피력하는 공론장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광장 이후》, 106쪽)
“저는 주로 은둔하며 살아서 사람들과 말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바깥에 나가도 제게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고, 저도 사람들에게 말을 걸지 않았어요. 그러나 집회에, 광장에 나간 뒤부터 사람들과 말하는 것, 먼저 말을 거는 것이 기꺼워졌습니다. 최근에는 옆자리 분이 신문지만 깔고 앉으셨길래 제가 가져온 크고 두꺼운 담요를 함께 깔고 앉자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광장 이후》, 107쪽)
상호부조, 돌봄과 연대, 공동체 사회,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새로운 사회, 평등하고 안전한 문화, 다양한 정체성이 인정되는 곳, 서로의 취약함과 약자성을 드러내는 것이 약점 잡히는 일이 아니라 서로 존중할 수 있는 계기로 다가가는 경험. 광장을 통해 권력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기존의 또 다른 정치권력이 메운 뒤, 모든 게 꿈처럼 기억 속에만 남게 되는 것이 너무도 아쉽다. 아쉬워만 하지 않고 광장 이후에도 꾸준히 행동하는 이들의 움직임이 광장의 경험과 광장의 정신을 진정으로 계승하고 있다.
한편, 우리는 희망을 보았고 가능성을 보았다는 말로 만족하고 싶지 않다. 그루터기로 남고 싶지 않다. 우리가 남태령에서 만들었던 돌봄 사회, 공동체 사회, 평등 사회를 광장 바깥에도 가져가고 싶다. 우리가 남태령에서 함께 감각했던 평등과 존중, 연대와 돌봄의 관계 맺기를 정치권력에게도 요구하고 싶고, 우리의 일상에도 더 적극적으로 퍼뜨리고 싶다. 그것을 만들어 내기 위한 과정을 설계하고, 행동하고,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고, 끝내 서로를 조직하고 더 단단한 지지를 만들고 싶다. 우연적으로 주어지는, 우발적으로 생겨나는 현장을 추억하는 데 멈추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 지금 함께 고민되어야 할까. 다행히 이는 우리만의 과제가 아니다. 2010년대 온갖 나라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나에게 남태령이 있듯, 다른 나라, 다른 시간 속의 누군가에게도 그런 장면이 벌어졌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어딘가 공명하는, 그래서 서로 들여다보는 것이 유의미할 수 있는 어떤 경험들을 갖고 있다.
내게는 숲이 된 남태령
나는 왜 남태령에 갔던가. 후회를 털어 내고 부채감을 덜기 위해서였다. 12월 3일, 나는 비상계엄령을 두고 온갖 가짜 뉴스가 난무하는 틈에서 당시 속해 있던 단체의 회원들을 불러 모아 안전한 온라인 소통 채널을 운영하면서 사회주택 룸메이트들과 밤을 지새웠다. 그게 내 몫이라고 생각했지만, 두고두고 부채감이 생겼다. 비상계엄령이란, 민주주의는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던 내게 너무 추상적이고 낯선 위험이었던 것이다. X는 이런 위기 상황에서 가장 빠르고 분명한 정보들을 날라 주는 ‘동지’들이 존재하는 온라인 광장이었다. X를 매일 들락거리던 어느 날 남태령 소식을 접했다. 오늘에야말로 12월 3일에 국회 앞을 지켰던 동지들에게 빚을 갚을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남태령으로 향했다. 택시도 진입할 수 없고 승용차도 통과시켜 주지 않는 검문과 차벽을 넘어 고개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내가 만나고야 말, 우리가 반드시 다시 만들어 낼 세계를 맛보고 왔다. 그 맛을 좀 설명해 보겠다.
첫째, 신뢰에 기반한 돌봄과 연대의 공동체. 남태령 고개를 넘어서고자 하는 농민들과 연대하러 온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신뢰’가 만드는 평등과 존중의 감각이 너무나도 좋았다. 네가 가져온 쿠키와 피자를 의심하지 않고, 내가 건네는 단팥죽과 생강차를 기꺼이 받는다. 저체온증에 걸리지 않게, 어딘가 아파 보이는 사람이 있는지 둘러보는 사람들이 있다. 무언가 못 챙겨 먹고 있는 사람에게는 따뜻한 커피를 건넨다. 손에 들린 핫팩을 옆 사람과 나눠 갖고, 여전히 추워 보이는 이에게 누군가 보내 준 난방 버스를 소개해 준다. 화장실 앞에는 생리대가 무료 나눔 메모지 아래에 산처럼 쌓여 있다. 생리통 약과 군것질거리도 함께다.
둘째, 숨지 않아도 된다는 감각. 말 건네는 이가 있고, 그 이야기를 그 자체로 받아 주는 이가 있다. 내가 농민, 여성 청년, 성소수자, 이주민, 전세 사기 피해자, 가정폭력 피해자, 그 무엇이더라도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게 당연한 곳이 바로 여기다. 나의 삶이 처해 있는 곤경이 있다면 함께 염려하고, 내가 겪는 불평등과 차별이 있다면 함께 분노하고, 연대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연대와 지지를 표현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지탱하고 체온으로 데워 주는 곳이 바로 남태령이었다.
셋째, 꿈을 꿔도 되는 곳. 김애란 작가의 단편 〈좋은 이웃〉에서 주인공은 남편에게 시간을 돌린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남편은 집값이 한창 오른 어떤 집을 제때 살 수 있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진정한 자유와 존엄이 확보된 삶을 위해선 노오력해서 어느 정도 경제적 부를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기 통치를 꾀하는 삶을 내재화하고 만 사람들에게 씁쓸하게 와닿는 장면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돈이 아닌 다른 것에 대한 꿈과 소원이란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철없는 소리처럼 취급되는 요즘이던가. 세입자로 살다 보면 임대인의 횡포에 서러워지기도 하고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러니 얼른 투기를 잘해서 불로소득을 벌고 싶어지는 마음. 건물주가 꿈이고 소원이 되는 마음. 그러나 혹시나, 만약에, 그것이 아니라 다른 걸 꿈꿀 수 있다면, 그런 말들을 주고받는 게 그냥 헛소리가 아니라 삶을 빛나게 할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꿈처럼 서로에게 가닿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남태령에서 그런 마음을 감히 품을 수 있어 행복했다. 성소수자가 농민의 권리를 지지하고, 전세 사기 피해자가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고, 청년 노동자가 이주민 혐오에 맞서자고 외치는 순간들이 이어지는 남태령에서 나는 서로의 꿈이 함께해서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나는 비상행동 시민참여팀에서 활동하던 중이었던 터라, 남태령 대첩이 끝난 직후 ‘남태령 뒤풀이’ 프로그램을 기획 및 집행하며 그 밤과 새벽을 함께 지새웠던 수십 명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60여 명의 참여자들과 함께 그날의 기억을 서로 곱씹어 보기도 하고, 주고받고픈 말을 나누기도 했다. 그날 참여자들이 함께 나누었던 인상 중 하나는, 남태령에서 밤을 지새운 우리의 성별과 연령대가 뚜렷했다는 점이다. 춥고, 응원봉을 들고 있고,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한가득이고, 음악과 노래가 나오는 곳이라니, 여기가 집회 장소인지 KBS 신관 앞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뒤풀이에 온 사람들 대다수도 청년 여성이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그날의 평등 사회의 경험은, 사회대개혁 요구로서 ‘차별금지법 제정’은, 너무도 당연한 ‘사회적 합의’가 충만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두고두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남태령이 페미니즘의 현장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페미니즘을 빼놓고 광장을 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페미니즘 이야기 하나 없이 새 정부가 광장의 기억을 덮어 낼 수 있단 말인가.
광장 이후, 중독과 행복감 바깥에서
《광장의 역설》 속 이야기에는 남태령을 생각하면 내 머릿속에 펼쳐지는 것과 엇비슷한 낱말들이 이어진다. 특히 이집트의 어느 여성 활동가 게하드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2011년 1월 당시 민주주의와 자유, 호스니 무바라크 독재 정권 붕괴를 요구하는 시위에 함께했다. 18일간 대규모 시위가 계속된 타흐리르 광장에서 그는 연대와 돌봄을 주고받는 공동체를 경험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아주 대단한 우주에 속한 것 같았다. “함께 빵을 나누며”, “함께 웃고, 미소 짓고, 고통받고, 희생하고, 함께 일하며”, “새로운 작은 사회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함께 “대기의 기묘한 변화”를 감각했고, 그들은 결국 하나의 결실을 이뤄 냈다. 이 대규모 시위의 결과로 정권이 무너졌다. 외신들은 18일간 이어졌던 이때의 시위를 ‘아랍의 봄’이라고 칭하며 관심을 쏟아 냈다. 시간이 흘렀다. 새 정권이 들어섰다. 그들은 타흐리르 광장에 경찰 부대를 불렀다. 친정부 시위든 반정부 시위든 다 싫어하는 것이 현 정권의 취향이었다. 2017년, 대규모 시위가 있었던 때로부터 6년 만에 그곳을 방문한 기자는 시위를 기념하는 축제도 행사도 열리지 않는, 더 이상 시민이 보이지 않는 광장을 목격했다.
베빈스는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중독과 행복감 사이”를 오가고 있다고 보았다. 대규모 시위와 같은 “초자연적인 경험”에 어떤 사람들은 평생 그날을 되새기며 살아가겠다고 말하고, 동시에 참여자 중 일부는 시위가 실패한 후 찾아온 끔찍한 우울이 마치 숙취와 같음을 토로했다. 마치 중독 같은 것이었다. 동시에, 다른 해석도 가능했다. “그들이 시위에서 느낀 것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진정한 감정”이며, “삶이 진정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놀랍고도 찰나적인 통찰”을 주는 경험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둘 중 무엇이 더 진실인지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고, 중요한 건 대규모 시위는 바로 그 사이에서 개개인들을 길 잃기 쉽게 만들기도 한다는 점이라는 생각을 했다.
대규모 시위가 주는 중독감에 빠지지 않고, 어떤 변화를 진정 만들어 내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소셜 네트워크 기반의 미조직된 운동의 한계를 이해해야 한다. 베빈스는 앞으로도 대규모 시위가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면서, 현 시대에 대규모 시위가 작동되고 해체되는 원리 중 하나로 소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펼쳐지는 수평주의 운동 내지는 지도자 없는 운동의 한계를 주목한다. 그는 “올바른 행동을 ‘자발적’으로 취한다는 마법 같은 생각을 멈추는 것”(본문 395쪽)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개인화될수록, 어차피 이미 준비된 기존 정치권력이 기존 구조를 강화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둘째, 활동가들이 처한 개인적·운동적 한계를 이해해야 한다. 베빈스는 활동가들마저도 “자유 시장, 사유 재산 제도, 신자유주의적 합리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됐고, 진정한 혁명을 수행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상상할 수 없게”(본문 401~402쪽) 된 상황에서 사고하게 되곤 한다고 보았다. 정리하면, 소셜 네트워크 기반의 대규모 시위는 준비되지 않은 운동 조직이 통제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광장은 신자유주의적인 질서에 얽매이기 쉽고, 결과적으로 기존 권력 구조를 강화하게 된다는 것일까.
셋째, 조직하기, 권력 잡기를 놓지 않는 것. 베빈스는 우리의 이런 곤경을 기회 삼아 극우 세력이 득세하는 사례들을 여럿 알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조직은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도구의 사용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진정 집을 지을 수 없다. 책임지기를 거부한다면, 권력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이다”(본문 420쪽)라고 말하며 결국 극우 세력이나 악용당하는 것이 무서워서 뭔가 하기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조직하는 것, 운동 조직을 구축하는 것이 결국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차피 또 다가올 대규모 시위 이후에 또다시 흩어지고, 남은 자들은 “숙취”와 같은 우울에 빠질 뿐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광장 ‘이전’의 시간
폭염이 이어진다. 작년 여름과 올해 여름 사이에 대단한 광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여상히 흘러가는 뉴스들을 흘겨본다. 올여름에도 충남 당진에 사는 아무개의 집은 물에 잠긴다. 올여름에도 오세훈 서울시장은 쪽방촌에서 인증샷을 찍었다. 폭우에 잠기고 폭염에 달아오르는 거처는 대체로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남태령에서 보냈던 동짓날 밤에 느꼈던 추위가 한겨울 밤의 꿈만 같다. 정말 꿈일지도 모르겠다. 분명 우리는 작년 여름과 이번 여름 사이에 거대한 광장을 장장 4개월 동안 지나왔는데 말이다. 변화는 없다. 그저 작년에도 그랬듯 올해에도 2022년 반지하 폭우 참사를 추모하고 2023년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추모한다. 문득 살이 아리다. 광장을 오가며 골골대던 몸과 정신은 아직 다 낫지 않았다. 행복했고 고양되었던 크기만큼의 상실과 외로움이 다 가시지 않았다. 그러든지 말든지, 활동가 하나가 앓든지 말든지 시간은 흐른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겠다. 남태령에서 맛본 세계를 다시 만나고야 말겠다. 광장 이후, 우리는 또다시 그 다음 광장의 ‘이전’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다음 광장 ‘동안’에는 스스로를, 서로를, 세상을 더 많이 조직하고 움직일 수 있다면 좋겠다. 그 밤의 남태령, 사는 동안 또다시 만나고야 말겠다.
❶ 하지현, “귀한 아들 증후군”, 〈경향신문〉, 2025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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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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