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특수에서 보편으로 가는 길 위에서
특수교육 자리를 묻다
양여경 yangyeokyung@gmail.com
서울천왕초 특수 교사


윤상원 외 씀, 《특수에서 보편으로》, 교육공동체 벗, 2025
이수현 씀,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 후마니타스, 2025
변화는 언제나 ‘왜?’로부터 시작된다. 질문 하나가 던져지기까지 무수히 많은 이들의 ‘특수’한 삶이 ‘보편’적으로 반복된다. 그래서 새로 열린 길에는 그 길을 만든 질문과 그 질문을 던진 사람들, 그리고 삶으로 그 질문을 빚어낸 이들의 오랜 통증이 고스란히 담긴다고 믿는다. 책 《특수에서 보편으로》,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는 모두의 보편적 권리인 ‘학교교육’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던지며, 균열을 일으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기록이다.
《특수에서 보편으로》는 학자, 특수 교사, 일반 교사, 학부모, 장애인 당사자 등의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그동안 학교가 은폐하기에 급급했던 통합교육의 모순을 낱낱이 드러낸다. 그리고 학교가 ‘일반’과 ‘특수’라는 이원 구조를 탈피하고 ‘특수’라는 제한된 영역을 넘어 보편적 교육 담론으로 통합교육을 사유할 것을 제안한다.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는 장애 자녀를 둔 부모이자 통합교육 실천 교사인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교육과 성장, 장애와 통합의 본질적 의미를 성찰한 책이다. 일상을 담담히 고백하는 에세이 형식이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날카롭고 무겁다.
나는 특수하면서도 지극히 보편적인 특수 교사이다. 나 또한 통합교육의 길 위에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질문을 던지며 살아왔다. 개인적이고 특수한 경험이지만, 동시에 많은 특수 교사의 공통 서사이기도 한 나의 이야기를 두 책의 내용과 함께 엮어 보려 한다. 나의 이야기가 새로운 상상력과 해방 가능성의 증거로 작동하여 두 책과 더불어 기존의 학교 질서에 균열을 내는 작은 목소리로 보태어지기를 희망한다.❶
개인적이지만 지극히 보편적인 나의 서사 1
- ‘일반’과 ‘특수’ 사이에서 내가 선택한 정체성
스무 살에 처음 만난 특수교육은 내게 정의의 상징이었고, 획일화된 세상의 가치에 맞서는 저항이자 해방의 경험이었다.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공부하며 통합교육의 세계에 매료되었고, 통합교육을 잘하고 싶어 일반 교육(초등교육)을 더 공부했다. 특수교육에서 인간을 배웠다면 초등교육에서는 교과를 배웠다. 특수교육에서 강조되는 개별 학생의 특수한 교육 요구가 일반 학교의 교육과정과 교과 학습이라는 견고한 보편성 안에서 어떻게 다루어질 수 있을지 두 세계를 연결시켜 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통합교육을 잘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내게 특수 교사와 초등 교사, 2개의 교사 자격증이 주어졌다. 공립 학교 교사라는 안정된 일자리를 위해서는 ‘일반’과 ‘특수’ 중 하나의 정체성을 선택해야 했다. 초등교육은, 학교 내 ‘주류’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었지만 그것이 내게 어떤 울림을 주지는 못했다. 특수교육은, ‘비주류’ 정체성이라는 공포로 날 위협했으나(당시 흔했던 반쪽짜리 교실과 특수반 푯말은 정말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수교육 용어와 이론, 학자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나를 설레게 했다. 특수교육이라면 언제든 버선발로 달려 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래, 나는 특수교육 전문성으로 통합교육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야 말겠다! 반쪽짜리 교실, 특수반, 비주류 정체성은 특수교육의 본질이 아니니까. 드라마 속 용감한 주인공처럼 난 세상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과감히, 가난한 내 사랑을 택했다. 그리고 대가는 냉혹했다. 대학에서 배운 특수교육은 학교와 사회를 바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나 현실 속의 특수교육은 한없이 무능하고 초라했다. ‘학문 특수교육’과 ‘제도 특수교육’ 사이에서 특수교육의 명확한 역할과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지금까지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다.
특수교육에 대한 오해, 이대로 좋은가?
- ‘제도 특수교육’의 틀 벗어나기
초등학교 특수학급은 특수교육과 일반 교육이라는 두 분절된 세계 사이에 놓인 모호한 영역이다. 법과 제도는 이곳을 통합교육의 거점이자 특수교육의 현장으로 정의하지만, 이곳은 실제로는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양쪽의 부담과 모순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아이러니의 공간이다.
- 김헌용, 〈경계의 공간에서 일어난 세 가지 비극〉, 《특수에서 보편으로》, 216쪽
많은 사람이 특수교육을 하나의 공간으로 감각한다. 때문에 보편적인 교육 환경인 일반 학교의 일반 학급에서 이루어지는 ‘일반 교육’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특수교육을 인식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특수학급의 위상은 ‘특수교육과 일반 교육 사이 경계의 공간’으로 설정된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특수학급은, 김헌용의 지적대로 두 세계가 만나는 경계이자, 완전한 분리와 완전한 통합 사이의 어정쩡한 중간 지대이며 법의 취지와 달리 분리와 배제가 일상화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통찰력 있는 분석이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제도 특수교육’의 껍데기일 뿐 특수교육의 본질이 아니다. 보편적 교육 담론으로 통합교육을 사유하는 일은, 무엇보다 특수교육과 일반 교육의 관계를 ‘제도 특수교육’의 틀 밖에서 새롭게 정립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특수교육은 지원의 하나이지 어떤 장소가 아니다. (……) 장애 학생을 포함한 모든 학생은 학급 환경에서 배우는 것이 최선이며 또래 일반 학생과 나란히 교육받을 때 도움이 된다는 것이 입증되어 왔다. 특수교육과 관련 서비스는 학생을 해당 서비스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는 대신 일반 교육 맥락에서 개별 학생에게 직접 쉽게 제공할 수 있는 이동 가능한 서비스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❷
- 류경원, 〈래디컬한 특수교육이 모두를 위한 통합교육의 성공을 이끈다〉, 《특수에서 보편으로》, 255쪽
내가 사랑한 ‘학문 특수교육’은 특수교육이 공간, 장소의 개념이 아님을 강조한다. 특수교육은 장소와 관계없는 ‘하나의 교육적 지원’이자 ‘이동 가능한 서비스’임을 명확히 할 때 오늘날 ‘학문 특수교육’의 거대한 전제가 통합교육이 되는 이치를 이해할 수 있다. 통합교육은 학생이 ‘그동안 제공받던 특수교육을 배제하고 일반 교육 세계로 합류되는 개념(mainstreaming)’이 아니라 ‘특수교육이라는 교육적 지원이 제공되는 한 장소로서 일반 교육 환경이 논의되는 개념(inclusion)’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에 특수 교사는 분리된 장소에서 개별 교수(개별화 교수와 구분되는)를 제공하는 ‘주변적’ 존재가 아니라, 통합교육 환경에서 다양한 배경과 특성을 지닌 학생들의 독특한 교육 요구를 충족시키는 전문가로서 ‘보편적’ 존재가 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공유하는 ‘제도 특수교육’의 모습은 다분히 역사적, 사회문화적 맥락에 기반하여 구성된 하나의 단편일 뿐 특수교육의 본질이 아니다. ‘제도 특수교육’의 왜곡된 틀을 벗어나야 한다. 일반 교육으로부터 분리된 장소가 아닌, 하나의 지원이자 서비스로 특수교육의 상을 명확히 할 때 일반 학급 안에서 개별 학생의 독특한 교육 요구가 충족되는 질적 통합, 교육과정적 통합의 구체적 실제를 상상할 수 있게 된다. 그래야만 특수교육과 일반 교육의 관계가 어떻게 재정립되어야 하는지, 특수교육의 특수성과 일반 교육의 보편성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에 답할 수 있다. 견고한 보편성의 토대 위에 특수함의 미학이 올려지는❸, 상당히 촘촘하고도 예술적인 연속체 개념으로 통합교육이 그려질 때 비로소 우리는 지속 가능한 통합교육을 꿈꿀 수 있다.
개인적이지만 지극히 보편적인 나의 서사 2
- 학교 현장에서 마주한 ‘제도 특수교육’의 비참함
“야~ 양. 여. 경! 니네 애들 수련회 가느라 우리 학교 선생님들 출장 못 가면 네가 책임질 거야?”
신규 교사 시절, 비명에 가까운 교장의 헤비메탈급 샤우팅이 내 귀를 찔렀다. 일상 전반에서 강도 높은 지원이 필요했던 두 장애 학생의 수련회 참여를 간신히 교장에게 ‘허락’받고 지원 인력 2명의 2박 3일 인건비 품의를 올린 후 걸려 온 전화였다(당시는 교육청에서 지원 인력 인건비가 교부되지 않아 학교 예산인 교사 출장비에서 지출해야 했다). 교장이 특별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교사 출장비’라는 제한된 학교 자원이 철없는 신규 교사로 인해 ‘낭비’될 뻔한 급박한 상황에서, 부끄럽게도 ‘특수’ 집단을 향한 평소의 후진 생각이 무심코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뿐. ‘특수’라서 그저 모든 게 다 죄송해야 했던 시절, 나의 학생들은 그 학교의 학생이 될 수 없었고, 그래서 나 역시 그 학교의 교사가 될 수 없었다. 이런 일들은 교직 생활의 이자처럼 차곡차곡 쌓여 갔다. 덕분에 나는 ‘일반’ 정체성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불구의 재산’❹을 축적할 수 있었다(나의 학생과 학부모가 내게도 기꺼이 지분을 나누어 준다면!).
다행히 특수 교사들이 고군분투하며 통합교육을 설득해야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교육부 공식 문서에 등장하는 ‘모든 학생을 위한 통합교육’, ‘통합학급 중심의 통합교육’이라는 문구가 낯설지 않다. 통합교육을 우선적인 학교 운영 과제로 생각하는 학교 관리자가 늘었고, 통합교육을 잘하기 위해 특수교육을 더 공부하고 고민하는 일반 교사들도 많이 보인다. 오- 이제서야 내 사랑 특수교육의 진가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교육 현장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대부분의 ‘특수’ 학생들이 하루 중 일정 시간 특수학급으로 분리되어 국어, 수학 교과를 배운다. 배려받지 못하는 통합학급 수업에서 개별화된 학습 목표는 ‘싫어도 참고 견디기’이다. 많은 일반 교사는 “내가 뭔가 해 주어야 하는데 뭘 어떻게 해 줘야 할지 모르겠어요”를 고민하지만 특수 교사와 협력할 여유나 기회는 턱없이 부족하다. 수업 방해 행동이 심한 학생에게 (교사가 아닌) 지원 인력을 붙여 주는 것, 수업 참여가 힘들 때는 통합학급을 나와 특수학급에서 잠시 쉬게 해 주거나 다른 공부를 하게 해 주는 것이 통합교육을 잘 지원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장애 학생이 분리되고 배제되는 환경에서는 특수 교사 역시 온전한 교사로 인식되지 못한다. 학교의 업무 체계와 소통 방식, 교육청의 정책은 여전히 특수 교사에게 ‘너는 교사가 아니잖아!’라는 암묵적 메시지를 전한다. 내가 한때 사랑했던 특수교육은 현장에서 왜 이토록 비참한 얼굴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 비참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제도 특수교육’은 어떻게 비참해졌는가?
- 통합교육의 ‘기울어진’ 이원화 체계
통합교육에 대한 생각과 인식에서 많은 진전이 있었음에도 통합교육 현장에서 똑같은 문제와 고민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으로 지적되는 것이 바로 ‘특수’와 ‘일반’으로 이원화된 통합교육 시스템이다.
왜 선생님은 우리 아이의 학습 준비물만 빠뜨렸을까? 정말 단순한 실수였을까?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우리 통합교육의 현실이라고 본다. 특수교육 대상자는 으레 특수반에서 학습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특수반 소속이며, 특수교사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다.
- 이수현,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 120~121쪽
각종 문제 행동이 나타나기 전에 아이가 천천히 학교에 적응할 수 있도록 착석 시간을 조금씩 늘리면 어땠을까? 아이의 수준을 파악하고 교수적 수정을 통해 조금이라도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우면 어땠을까? (……) 특수교육 대상 학생이 원만한 학교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좀 더 세심하고 촘촘한 지원이 필요하다. 단순히 특수반과 통합반을 오가며 수업을 받게 하기 위해 특수교육 대상자로 지정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로 인한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지원을 받아 학교생활을 잘하고자 특수교육 대상이 되는 것이다.
- 이수현,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 124쪽
이원화된 통합교육 체계의 최대 피해자는 누가 뭐래도 학생이다. 통합교육을 기대하고 일반 학교로 진학한 장애 학생은 ‘일반’과 ‘특수’로 분리된 두 장소를 왔다 갔다 할 뿐, 정작 통합학급 적응에 필요한 의미 있는 지원은 제공받지 못한 채 방치된다. 적합한 지원 없이 학생에게 의미 있는 배움이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학급 내 반쪽짜리 시간표는 오히려 학생의 ‘특수’ 정체성을 강화하여 낙인과 배제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작동한다. 결국 지원의 대상이 되어야 할 학생을 차별과 혐오의 대상으로 둔갑시킨다.
두 번째 피해자는 특수 교사이다. 일반 교육이라는 거대한 왕국의 ‘주인’과 특수교육이라는 ‘세입자’ 사이의 권력관계 속에서, 대등한 협력이란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웠는지 모른다. 대등한 관계도, 협력의 여건도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장애 학생의 학교생활은 전적으로 특수 교사의 책임 영역이 되어 버린다. 특수 교사는 ‘문제’로 정의된 학생의 모든 학교생활을 떠맡으며 교육·보육·복지·상담·행정을 총망라하는 ‘종합서비스센터’로 기능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교사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이러한 역할과 정체성 문제는 곧 특수 교사의 ‘교육’ 전문성에 대한 낮은 기대와 특수교육 자체에 대한 저가치화로 이어진다.
이와 같이 통합교육의 이원화 체계는 학생과 교사 모두를 희생시키며 ‘특수’ 집단 전체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강화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그 결과 ‘일반’과 ‘특수’ 사이에는 우열, 주종, 중심과 주변, 비장애와 장애라는 서열화된 인식이 굳어져 버렸다. 이제 문제는 단순히 이원화 체계 자체가 아니라, 그 체계가 만들어 낸 두 세계 사이의 서열화된 권력관계로 귀결된다.
이원 구조의 탈피는 어떠한 방식으로 가능한가? :
‘특수에서 보편으로’의 함의
(일반과 특수라는) 이분법적 상식 속에서 이 둘 사이의 독립성 내지는 정체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후자는 전자로부터 낯선 것으로 타자화되어 소외되기 마련이다. 통합교육을 위해 특수반이 존재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특수반 또는 특수교육의 존재 자체가 통합을 저해하는 제도적 장치로 작동하는 작금의 현실이 이를 잘 보여 준다.
- 윤상원, 〈모든 개인의 특수성은 보편적이다〉, 《특수에서 보편으로》, 75쪽
통합교육의 이원화 시스템이 일반 교육과 특수교육을 서열화하는 기제로 작동되는 동안, 특수교육은 ‘존재 자체가 통합교육의 걸림돌’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게 되었다. 이는 오늘날의 통합교육 체제 안에서 특수교육이 얼마나 저평가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특수’ 정체성을 가진 나로서는 상당히 억울하다. 내가 사랑한 특수교육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든 ‘제도 특수교육’의 무능함에 가슴이 아려 온다. 통합교육이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서 특수교육을 이렇게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 원흉이 이원화된 시스템이라면 해법은 분명 이원 구조의 탈피에 있다. 그렇다면 이원 구조의 탈피는 어떠한 방식으로 가능한가?
두 책이 공통으로 제시하는 핵심 해법은 바로 ‘특수에서 보편으로’이다. 다만 저자들이 제시한 ‘특수’와 ‘보편’의 개념은 구체적 의미와 강조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에 두 책에서 제안된 ‘특수에서 보편으로’의 함의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분리된 환경이 아닌 보편적이고 통합된 환경에 실재하기 : 학생을 분리된 환경으로부터 보편적이고 통합된 환경에 ‘존재’하게 함으로써 모두가 함께 사는 방식을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
(2) 장애 학생을 넘어 모든 학생을 위한 통합교육 지향하기 : 장애 학생만을 위한 통합교육을 벗어나 다양한 배경과 요구를 가지는 모든 학생을 위한 통합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특수교육의 진입 장벽을 허무는 방식을 제안한다.
(3) 개인의 특수성과 인간 보편성을 연결하기 : 개별 학생의 손상을 결핍이 아닌 개별적 특수성으로 바라보고, 이를 인간의 보편성과 연결하여 사유하고 실천한다.
(4) 교육의 보편성과 특수성의 만남 : 학교교육의 혁신 및 재구조화를 통해 질적 수월성이 보장되는 학교교육의 보편성 안에서 장애 학생의 특수성을 포용하는 방식으로 두 세계를 연결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통합교육 담론 속 ‘특수’와 ‘보편’이 단일한 의미가 아니라 다양한 층위를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제시한 네 가지 함의는 어느 하나를 우위에 둘 수 없는 상호 보완적 요소로서 학교 현장의 통합교육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모두 핵심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나아가 네 가지 관점을 아우르는 상위 개념으로 ‘통합교육에 대한 논의가 특수교육의 범주를 넘어 보편적인 교육 담론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함의를 도출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가 여전히 ‘제도 특수교육’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특수에서 보편으로’라는 의제를 실천하려 한다면 이러한 노력은 역설적으로 ‘특수’와 ‘일반’의 기울어진 이원 구조를 강화하고 재생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제도 특수교육’이 남긴 비참한 유산은 학교 현장에 일반 교육과 특수교육을 둘러싼 왜곡된 인식을 깊이 각인시켜 왔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우열, 주종, 다수와 소수, 중심과 주변, 비장애와 장애, 통합과 분리라는 서열화된 인식과 단절적 사고가 청산되지 않는 한, ‘특수에서 보편으로’라는 이상적 구호는 오히려 특수교육 전문성을 희석시키는 또 다른 모순적 통합교육으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
두 세계의 협력적 만남을 위한
특수교육의 자리 찾기
공교육의 그림자로 가려지기 쉬운 특수교육이 오히려 품위 있는 인간교육으로서의 그 존엄을 표상하는 등대로 존재하기 위해 특수교육은 여전히 특수해야 할 이유가 있다. 그러기 위해 특수교육은 변두리의 장식용이 아니라 공교육 일반의 개혁을 주도하는 나침반(핵심)으로 그 위상을 정립해야 한다. 장애 아동 교육이 시혜적 온정 수준에 머물 때, 특수교육은 변방의 외딴섬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특수교육(학)인들은 당대 교육을 책임지는 비판적 지성인이면서 교육 개혁을 주도하는 진보적 휴머니스트이어야 한다.
- 김병하, 〈특수교육의 정체성〉, 《특수에서 보편으로》, 100쪽
‘제도 특수교육’의 한계를 벗어나 일반 교육과 특수교육의 관계를 세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오늘날 통합교육의 ‘기울어진’ 이원화 체계가 어떻게 특수교육을 저가치화하고 ‘일반’과 ‘특수’를 왜곡된 시선으로 갈라놓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이제는 통합교육이 교육의 보편성과 특수성이라는 상호 보완적 틀 안에서 협력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학교 차원의 새로운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통합교육은 구호나 의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속 가능한 통합교육을 위해서는 일반 교육이 지닌 견고한 보편성과 특수교육이 지닌 특수한 전문성이 협력적으로 만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두 세계는 너무나 오랫동안 기울어진 관계에 놓여 있었기에, 저절로 만나질 수 없다. 통합교육에서 오랫동안 경시되어 온 특수교육의 역할과 정체성에 대한 부단한 성찰과 탐색, 그리고 특수교육 전문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존중을 통해서만 비로소 두 세계의 협력적 만남이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특수에서 보편으로’ 가는 길 위에서, 특수교육이 확고한 정체성과 위상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이다.
❶ ‘나’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는 개인의 특수한 경험을 단순한 자전적 서사로 한정하지 않고, 사회문화적·정치적 담론 속에서 보편적 의미로 전환시킨다. 이렇게 변화된 개인의 서사는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부정적이며 낙인적인 시선이 아니라, 새로운 상상력과 해방 가능성의 증거로서 작동한다.(윤상원, 〈모든 개인의 특수성은 보편적이다〉, 《특수에서 보편으로》, 43~44쪽)
❷ [Julie Causton·Chelsea Tracy-Bronson, 이효정 옮김(2018), 《통합교육 - 일반교사와 특수교사를 위한 안내서》, 학지사, 84쪽]에서 재인용.
❸ 데이비드 미첼, 박승희 외 옮김(2018), 《특수교육요구 학습자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교육과학사.
❹ 불구의 재산(crip wealth) : 정체성에 관한 역설적 논의를 위해 전략적으로 활용되는 용어인 불구(crip)가 자신의 한계나 결함에 집중하기보다 비장애인이 가지지 못한 경험과 인식 등 자신이 가진 것에 더 집중함으로써 그것을 불구의 삶에 필요한 일종의 재산으로 인식한다는 의미.(이명훈, 〈‘불구’의 관점으로 교육을 재상상하기〉, 《특수에서 보편으로》, 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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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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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원 외 씀, 《특수에서 보편으로》, 교육공동체 벗, 2025
이수현 씀,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 후마니타스, 2025
변화는 언제나 ‘왜?’로부터 시작된다. 질문 하나가 던져지기까지 무수히 많은 이들의 ‘특수’한 삶이 ‘보편’적으로 반복된다. 그래서 새로 열린 길에는 그 길을 만든 질문과 그 질문을 던진 사람들, 그리고 삶으로 그 질문을 빚어낸 이들의 오랜 통증이 고스란히 담긴다고 믿는다. 책 《특수에서 보편으로》,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는 모두의 보편적 권리인 ‘학교교육’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던지며, 균열을 일으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기록이다.
《특수에서 보편으로》는 학자, 특수 교사, 일반 교사, 학부모, 장애인 당사자 등의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그동안 학교가 은폐하기에 급급했던 통합교육의 모순을 낱낱이 드러낸다. 그리고 학교가 ‘일반’과 ‘특수’라는 이원 구조를 탈피하고 ‘특수’라는 제한된 영역을 넘어 보편적 교육 담론으로 통합교육을 사유할 것을 제안한다.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는 장애 자녀를 둔 부모이자 통합교육 실천 교사인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교육과 성장, 장애와 통합의 본질적 의미를 성찰한 책이다. 일상을 담담히 고백하는 에세이 형식이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날카롭고 무겁다.
나는 특수하면서도 지극히 보편적인 특수 교사이다. 나 또한 통합교육의 길 위에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질문을 던지며 살아왔다. 개인적이고 특수한 경험이지만, 동시에 많은 특수 교사의 공통 서사이기도 한 나의 이야기를 두 책의 내용과 함께 엮어 보려 한다. 나의 이야기가 새로운 상상력과 해방 가능성의 증거로 작동하여 두 책과 더불어 기존의 학교 질서에 균열을 내는 작은 목소리로 보태어지기를 희망한다.❶
개인적이지만 지극히 보편적인 나의 서사 1
- ‘일반’과 ‘특수’ 사이에서 내가 선택한 정체성
스무 살에 처음 만난 특수교육은 내게 정의의 상징이었고, 획일화된 세상의 가치에 맞서는 저항이자 해방의 경험이었다.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공부하며 통합교육의 세계에 매료되었고, 통합교육을 잘하고 싶어 일반 교육(초등교육)을 더 공부했다. 특수교육에서 인간을 배웠다면 초등교육에서는 교과를 배웠다. 특수교육에서 강조되는 개별 학생의 특수한 교육 요구가 일반 학교의 교육과정과 교과 학습이라는 견고한 보편성 안에서 어떻게 다루어질 수 있을지 두 세계를 연결시켜 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통합교육을 잘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내게 특수 교사와 초등 교사, 2개의 교사 자격증이 주어졌다. 공립 학교 교사라는 안정된 일자리를 위해서는 ‘일반’과 ‘특수’ 중 하나의 정체성을 선택해야 했다. 초등교육은, 학교 내 ‘주류’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었지만 그것이 내게 어떤 울림을 주지는 못했다. 특수교육은, ‘비주류’ 정체성이라는 공포로 날 위협했으나(당시 흔했던 반쪽짜리 교실과 특수반 푯말은 정말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수교육 용어와 이론, 학자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나를 설레게 했다. 특수교육이라면 언제든 버선발로 달려 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래, 나는 특수교육 전문성으로 통합교육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야 말겠다! 반쪽짜리 교실, 특수반, 비주류 정체성은 특수교육의 본질이 아니니까. 드라마 속 용감한 주인공처럼 난 세상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과감히, 가난한 내 사랑을 택했다. 그리고 대가는 냉혹했다. 대학에서 배운 특수교육은 학교와 사회를 바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나 현실 속의 특수교육은 한없이 무능하고 초라했다. ‘학문 특수교육’과 ‘제도 특수교육’ 사이에서 특수교육의 명확한 역할과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지금까지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다.
특수교육에 대한 오해, 이대로 좋은가?
- ‘제도 특수교육’의 틀 벗어나기
초등학교 특수학급은 특수교육과 일반 교육이라는 두 분절된 세계 사이에 놓인 모호한 영역이다. 법과 제도는 이곳을 통합교육의 거점이자 특수교육의 현장으로 정의하지만, 이곳은 실제로는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양쪽의 부담과 모순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아이러니의 공간이다.
- 김헌용, 〈경계의 공간에서 일어난 세 가지 비극〉, 《특수에서 보편으로》, 216쪽
많은 사람이 특수교육을 하나의 공간으로 감각한다. 때문에 보편적인 교육 환경인 일반 학교의 일반 학급에서 이루어지는 ‘일반 교육’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특수교육을 인식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특수학급의 위상은 ‘특수교육과 일반 교육 사이 경계의 공간’으로 설정된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특수학급은, 김헌용의 지적대로 두 세계가 만나는 경계이자, 완전한 분리와 완전한 통합 사이의 어정쩡한 중간 지대이며 법의 취지와 달리 분리와 배제가 일상화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통찰력 있는 분석이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제도 특수교육’의 껍데기일 뿐 특수교육의 본질이 아니다. 보편적 교육 담론으로 통합교육을 사유하는 일은, 무엇보다 특수교육과 일반 교육의 관계를 ‘제도 특수교육’의 틀 밖에서 새롭게 정립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특수교육은 지원의 하나이지 어떤 장소가 아니다. (……) 장애 학생을 포함한 모든 학생은 학급 환경에서 배우는 것이 최선이며 또래 일반 학생과 나란히 교육받을 때 도움이 된다는 것이 입증되어 왔다. 특수교육과 관련 서비스는 학생을 해당 서비스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는 대신 일반 교육 맥락에서 개별 학생에게 직접 쉽게 제공할 수 있는 이동 가능한 서비스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❷
- 류경원, 〈래디컬한 특수교육이 모두를 위한 통합교육의 성공을 이끈다〉, 《특수에서 보편으로》, 255쪽
내가 사랑한 ‘학문 특수교육’은 특수교육이 공간, 장소의 개념이 아님을 강조한다. 특수교육은 장소와 관계없는 ‘하나의 교육적 지원’이자 ‘이동 가능한 서비스’임을 명확히 할 때 오늘날 ‘학문 특수교육’의 거대한 전제가 통합교육이 되는 이치를 이해할 수 있다. 통합교육은 학생이 ‘그동안 제공받던 특수교육을 배제하고 일반 교육 세계로 합류되는 개념(mainstreaming)’이 아니라 ‘특수교육이라는 교육적 지원이 제공되는 한 장소로서 일반 교육 환경이 논의되는 개념(inclusion)’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에 특수 교사는 분리된 장소에서 개별 교수(개별화 교수와 구분되는)를 제공하는 ‘주변적’ 존재가 아니라, 통합교육 환경에서 다양한 배경과 특성을 지닌 학생들의 독특한 교육 요구를 충족시키는 전문가로서 ‘보편적’ 존재가 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공유하는 ‘제도 특수교육’의 모습은 다분히 역사적, 사회문화적 맥락에 기반하여 구성된 하나의 단편일 뿐 특수교육의 본질이 아니다. ‘제도 특수교육’의 왜곡된 틀을 벗어나야 한다. 일반 교육으로부터 분리된 장소가 아닌, 하나의 지원이자 서비스로 특수교육의 상을 명확히 할 때 일반 학급 안에서 개별 학생의 독특한 교육 요구가 충족되는 질적 통합, 교육과정적 통합의 구체적 실제를 상상할 수 있게 된다. 그래야만 특수교육과 일반 교육의 관계가 어떻게 재정립되어야 하는지, 특수교육의 특수성과 일반 교육의 보편성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에 답할 수 있다. 견고한 보편성의 토대 위에 특수함의 미학이 올려지는❸, 상당히 촘촘하고도 예술적인 연속체 개념으로 통합교육이 그려질 때 비로소 우리는 지속 가능한 통합교육을 꿈꿀 수 있다.
개인적이지만 지극히 보편적인 나의 서사 2
- 학교 현장에서 마주한 ‘제도 특수교육’의 비참함
“야~ 양. 여. 경! 니네 애들 수련회 가느라 우리 학교 선생님들 출장 못 가면 네가 책임질 거야?”
신규 교사 시절, 비명에 가까운 교장의 헤비메탈급 샤우팅이 내 귀를 찔렀다. 일상 전반에서 강도 높은 지원이 필요했던 두 장애 학생의 수련회 참여를 간신히 교장에게 ‘허락’받고 지원 인력 2명의 2박 3일 인건비 품의를 올린 후 걸려 온 전화였다(당시는 교육청에서 지원 인력 인건비가 교부되지 않아 학교 예산인 교사 출장비에서 지출해야 했다). 교장이 특별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교사 출장비’라는 제한된 학교 자원이 철없는 신규 교사로 인해 ‘낭비’될 뻔한 급박한 상황에서, 부끄럽게도 ‘특수’ 집단을 향한 평소의 후진 생각이 무심코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뿐. ‘특수’라서 그저 모든 게 다 죄송해야 했던 시절, 나의 학생들은 그 학교의 학생이 될 수 없었고, 그래서 나 역시 그 학교의 교사가 될 수 없었다. 이런 일들은 교직 생활의 이자처럼 차곡차곡 쌓여 갔다. 덕분에 나는 ‘일반’ 정체성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불구의 재산’❹을 축적할 수 있었다(나의 학생과 학부모가 내게도 기꺼이 지분을 나누어 준다면!).
다행히 특수 교사들이 고군분투하며 통합교육을 설득해야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교육부 공식 문서에 등장하는 ‘모든 학생을 위한 통합교육’, ‘통합학급 중심의 통합교육’이라는 문구가 낯설지 않다. 통합교육을 우선적인 학교 운영 과제로 생각하는 학교 관리자가 늘었고, 통합교육을 잘하기 위해 특수교육을 더 공부하고 고민하는 일반 교사들도 많이 보인다. 오- 이제서야 내 사랑 특수교육의 진가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교육 현장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대부분의 ‘특수’ 학생들이 하루 중 일정 시간 특수학급으로 분리되어 국어, 수학 교과를 배운다. 배려받지 못하는 통합학급 수업에서 개별화된 학습 목표는 ‘싫어도 참고 견디기’이다. 많은 일반 교사는 “내가 뭔가 해 주어야 하는데 뭘 어떻게 해 줘야 할지 모르겠어요”를 고민하지만 특수 교사와 협력할 여유나 기회는 턱없이 부족하다. 수업 방해 행동이 심한 학생에게 (교사가 아닌) 지원 인력을 붙여 주는 것, 수업 참여가 힘들 때는 통합학급을 나와 특수학급에서 잠시 쉬게 해 주거나 다른 공부를 하게 해 주는 것이 통합교육을 잘 지원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장애 학생이 분리되고 배제되는 환경에서는 특수 교사 역시 온전한 교사로 인식되지 못한다. 학교의 업무 체계와 소통 방식, 교육청의 정책은 여전히 특수 교사에게 ‘너는 교사가 아니잖아!’라는 암묵적 메시지를 전한다. 내가 한때 사랑했던 특수교육은 현장에서 왜 이토록 비참한 얼굴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 비참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제도 특수교육’은 어떻게 비참해졌는가?
- 통합교육의 ‘기울어진’ 이원화 체계
통합교육에 대한 생각과 인식에서 많은 진전이 있었음에도 통합교육 현장에서 똑같은 문제와 고민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으로 지적되는 것이 바로 ‘특수’와 ‘일반’으로 이원화된 통합교육 시스템이다.
왜 선생님은 우리 아이의 학습 준비물만 빠뜨렸을까? 정말 단순한 실수였을까?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우리 통합교육의 현실이라고 본다. 특수교육 대상자는 으레 특수반에서 학습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특수반 소속이며, 특수교사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다.
- 이수현,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 120~121쪽
각종 문제 행동이 나타나기 전에 아이가 천천히 학교에 적응할 수 있도록 착석 시간을 조금씩 늘리면 어땠을까? 아이의 수준을 파악하고 교수적 수정을 통해 조금이라도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우면 어땠을까? (……) 특수교육 대상 학생이 원만한 학교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좀 더 세심하고 촘촘한 지원이 필요하다. 단순히 특수반과 통합반을 오가며 수업을 받게 하기 위해 특수교육 대상자로 지정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로 인한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지원을 받아 학교생활을 잘하고자 특수교육 대상이 되는 것이다.
- 이수현,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 124쪽
이원화된 통합교육 체계의 최대 피해자는 누가 뭐래도 학생이다. 통합교육을 기대하고 일반 학교로 진학한 장애 학생은 ‘일반’과 ‘특수’로 분리된 두 장소를 왔다 갔다 할 뿐, 정작 통합학급 적응에 필요한 의미 있는 지원은 제공받지 못한 채 방치된다. 적합한 지원 없이 학생에게 의미 있는 배움이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학급 내 반쪽짜리 시간표는 오히려 학생의 ‘특수’ 정체성을 강화하여 낙인과 배제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작동한다. 결국 지원의 대상이 되어야 할 학생을 차별과 혐오의 대상으로 둔갑시킨다.
두 번째 피해자는 특수 교사이다. 일반 교육이라는 거대한 왕국의 ‘주인’과 특수교육이라는 ‘세입자’ 사이의 권력관계 속에서, 대등한 협력이란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웠는지 모른다. 대등한 관계도, 협력의 여건도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장애 학생의 학교생활은 전적으로 특수 교사의 책임 영역이 되어 버린다. 특수 교사는 ‘문제’로 정의된 학생의 모든 학교생활을 떠맡으며 교육·보육·복지·상담·행정을 총망라하는 ‘종합서비스센터’로 기능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교사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이러한 역할과 정체성 문제는 곧 특수 교사의 ‘교육’ 전문성에 대한 낮은 기대와 특수교육 자체에 대한 저가치화로 이어진다.
이와 같이 통합교육의 이원화 체계는 학생과 교사 모두를 희생시키며 ‘특수’ 집단 전체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강화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그 결과 ‘일반’과 ‘특수’ 사이에는 우열, 주종, 중심과 주변, 비장애와 장애라는 서열화된 인식이 굳어져 버렸다. 이제 문제는 단순히 이원화 체계 자체가 아니라, 그 체계가 만들어 낸 두 세계 사이의 서열화된 권력관계로 귀결된다.
이원 구조의 탈피는 어떠한 방식으로 가능한가? :
‘특수에서 보편으로’의 함의
(일반과 특수라는) 이분법적 상식 속에서 이 둘 사이의 독립성 내지는 정체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후자는 전자로부터 낯선 것으로 타자화되어 소외되기 마련이다. 통합교육을 위해 특수반이 존재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특수반 또는 특수교육의 존재 자체가 통합을 저해하는 제도적 장치로 작동하는 작금의 현실이 이를 잘 보여 준다.
- 윤상원, 〈모든 개인의 특수성은 보편적이다〉, 《특수에서 보편으로》, 75쪽
통합교육의 이원화 시스템이 일반 교육과 특수교육을 서열화하는 기제로 작동되는 동안, 특수교육은 ‘존재 자체가 통합교육의 걸림돌’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게 되었다. 이는 오늘날의 통합교육 체제 안에서 특수교육이 얼마나 저평가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특수’ 정체성을 가진 나로서는 상당히 억울하다. 내가 사랑한 특수교육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든 ‘제도 특수교육’의 무능함에 가슴이 아려 온다. 통합교육이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서 특수교육을 이렇게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 원흉이 이원화된 시스템이라면 해법은 분명 이원 구조의 탈피에 있다. 그렇다면 이원 구조의 탈피는 어떠한 방식으로 가능한가?
두 책이 공통으로 제시하는 핵심 해법은 바로 ‘특수에서 보편으로’이다. 다만 저자들이 제시한 ‘특수’와 ‘보편’의 개념은 구체적 의미와 강조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에 두 책에서 제안된 ‘특수에서 보편으로’의 함의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분리된 환경이 아닌 보편적이고 통합된 환경에 실재하기 : 학생을 분리된 환경으로부터 보편적이고 통합된 환경에 ‘존재’하게 함으로써 모두가 함께 사는 방식을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
(2) 장애 학생을 넘어 모든 학생을 위한 통합교육 지향하기 : 장애 학생만을 위한 통합교육을 벗어나 다양한 배경과 요구를 가지는 모든 학생을 위한 통합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특수교육의 진입 장벽을 허무는 방식을 제안한다.
(3) 개인의 특수성과 인간 보편성을 연결하기 : 개별 학생의 손상을 결핍이 아닌 개별적 특수성으로 바라보고, 이를 인간의 보편성과 연결하여 사유하고 실천한다.
(4) 교육의 보편성과 특수성의 만남 : 학교교육의 혁신 및 재구조화를 통해 질적 수월성이 보장되는 학교교육의 보편성 안에서 장애 학생의 특수성을 포용하는 방식으로 두 세계를 연결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통합교육 담론 속 ‘특수’와 ‘보편’이 단일한 의미가 아니라 다양한 층위를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제시한 네 가지 함의는 어느 하나를 우위에 둘 수 없는 상호 보완적 요소로서 학교 현장의 통합교육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모두 핵심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나아가 네 가지 관점을 아우르는 상위 개념으로 ‘통합교육에 대한 논의가 특수교육의 범주를 넘어 보편적인 교육 담론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함의를 도출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가 여전히 ‘제도 특수교육’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특수에서 보편으로’라는 의제를 실천하려 한다면 이러한 노력은 역설적으로 ‘특수’와 ‘일반’의 기울어진 이원 구조를 강화하고 재생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제도 특수교육’이 남긴 비참한 유산은 학교 현장에 일반 교육과 특수교육을 둘러싼 왜곡된 인식을 깊이 각인시켜 왔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우열, 주종, 다수와 소수, 중심과 주변, 비장애와 장애, 통합과 분리라는 서열화된 인식과 단절적 사고가 청산되지 않는 한, ‘특수에서 보편으로’라는 이상적 구호는 오히려 특수교육 전문성을 희석시키는 또 다른 모순적 통합교육으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
두 세계의 협력적 만남을 위한
특수교육의 자리 찾기
공교육의 그림자로 가려지기 쉬운 특수교육이 오히려 품위 있는 인간교육으로서의 그 존엄을 표상하는 등대로 존재하기 위해 특수교육은 여전히 특수해야 할 이유가 있다. 그러기 위해 특수교육은 변두리의 장식용이 아니라 공교육 일반의 개혁을 주도하는 나침반(핵심)으로 그 위상을 정립해야 한다. 장애 아동 교육이 시혜적 온정 수준에 머물 때, 특수교육은 변방의 외딴섬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특수교육(학)인들은 당대 교육을 책임지는 비판적 지성인이면서 교육 개혁을 주도하는 진보적 휴머니스트이어야 한다.
- 김병하, 〈특수교육의 정체성〉, 《특수에서 보편으로》, 100쪽
‘제도 특수교육’의 한계를 벗어나 일반 교육과 특수교육의 관계를 세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오늘날 통합교육의 ‘기울어진’ 이원화 체계가 어떻게 특수교육을 저가치화하고 ‘일반’과 ‘특수’를 왜곡된 시선으로 갈라놓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이제는 통합교육이 교육의 보편성과 특수성이라는 상호 보완적 틀 안에서 협력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학교 차원의 새로운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통합교육은 구호나 의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속 가능한 통합교육을 위해서는 일반 교육이 지닌 견고한 보편성과 특수교육이 지닌 특수한 전문성이 협력적으로 만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두 세계는 너무나 오랫동안 기울어진 관계에 놓여 있었기에, 저절로 만나질 수 없다. 통합교육에서 오랫동안 경시되어 온 특수교육의 역할과 정체성에 대한 부단한 성찰과 탐색, 그리고 특수교육 전문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존중을 통해서만 비로소 두 세계의 협력적 만남이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특수에서 보편으로’ 가는 길 위에서, 특수교육이 확고한 정체성과 위상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이다.
❶ ‘나’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는 개인의 특수한 경험을 단순한 자전적 서사로 한정하지 않고, 사회문화적·정치적 담론 속에서 보편적 의미로 전환시킨다. 이렇게 변화된 개인의 서사는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부정적이며 낙인적인 시선이 아니라, 새로운 상상력과 해방 가능성의 증거로서 작동한다.(윤상원, 〈모든 개인의 특수성은 보편적이다〉, 《특수에서 보편으로》, 43~44쪽)
❷ [Julie Causton·Chelsea Tracy-Bronson, 이효정 옮김(2018), 《통합교육 - 일반교사와 특수교사를 위한 안내서》, 학지사, 84쪽]에서 재인용.
❸ 데이비드 미첼, 박승희 외 옮김(2018), 《특수교육요구 학습자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교육과학사.
❹ 불구의 재산(crip wealth) : 정체성에 관한 역설적 논의를 위해 전략적으로 활용되는 용어인 불구(crip)가 자신의 한계나 결함에 집중하기보다 비장애인이 가지지 못한 경험과 인식 등 자신이 가진 것에 더 집중함으로써 그것을 불구의 삶에 필요한 일종의 재산으로 인식한다는 의미.(이명훈, 〈‘불구’의 관점으로 교육을 재상상하기〉, 《특수에서 보편으로》, 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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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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