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호[기획] 존재를 부정당한 아이들, 미등록 이주배경 아동 | 미등록에서 등록으로, 등록에서 정주로 | 김사강

202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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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존재를 부정당한 아이들, 미등록 이주배경 아동


미등록에서 등록으로, 

등록에서 정주로

미등록 이주 아동·청소년을 위한 체류 자격 부여 정책과 개선 방안



김사강  mihurights@daum.net

이주와 인권연구소 연구위원





2017년 4월, 미등록 이주 노동자 F가 일하던 공장에서 단속되어 강제퇴거명령을 받고 외국인보호소에 갇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등록 이주 노동자가 단속되는 일은 하루에도 수십 건씩 발생하는 일이었지만, F의 경우는 눈길을 끌었다. 1999년 서울에서 태어난 F는 한국에서 줄곧 살다가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주배경 청소년이었던 것이었다. F의 사연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F는 강제퇴거 대신 ‘보호 일시해제’로 외국인보호소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후 공익 변호사들의 도움으로 관할 출입국 관청을 상대로 강제퇴거명령과 보호명령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F는 1년이 넘게 걸린 재판 끝에 승소 판결을 받았다. 당시 판결문은 미등록 이주 아동에 대한 무조건적인 강제퇴거가 가진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다음과 같이 판시하고 있었다. 


“이 사건 원고와 같이 적법하게 대한민국에서 출생하였다가 그 부모가 체류 자격을 상실함으로써 체류 자격을 잃게 된 사람에 대한 인권적·인도적·경제적 관점에서의 전향적 접근이 필요하다.” “원고와 같이 대한민국에서 출생하여 현재까지 사실상 오직 대한민국만을 그 지역적·사회적 터전으로 삼아 살아온 사람을 무작정 다른 나라로 나가라고 내쫓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생존권을 보장하여야 할 문명국가의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 “대한민국은 국내에 사회적 기반을 형성한 원고로 하여금 인간다운 삶을 누리며 국내에 체류할 수 있도록 그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12년의 정규 교육과정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게끔 성장한 원고를 이제 와서 내보내는 것은 그에 투자한 시간과 비용, 노력을 감안할 때 [국가적인] 큰 손실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정부가 원고와 같은 사안에서 국적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체류 자격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만들 필요성이 크다.” 



체류 자격 부여 방안의 발표


국내에 거주하는 미등록 이주 아동·청소년들은 2010년과 2013년에 법무부가 발표한 ‘불법체류 아동 학습권 지원 방안’이라는 지침에 의해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경우 단속 대상에서 제외되며, 만약 단속되더라도 강제퇴거가 유예된다. 그러나 모든 교육과정을 마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F처럼 언제든 단속되어 한국에서 쫓겨날 수 있는 처지에 놓인다. 위 판결 이후 각각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미등록 이주아동 2명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국에서 태어나 외국인등록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성장했을 뿐인데, 고교 졸업 이후 한국에서 체류 자격을 부여받아 계속해서 살 수 있는 길이 없어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는 것이 진정의 요지였다. 진정을 받아들인 국가인권위원회는 2020년 3월, 법무부 장관에게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 아동에 대한 무조건적인 강제퇴거를 중단하고, 아동 최상의 이익을 고려한 심사 기준에 따라 적정한 체류 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권고 수용 입장을 밝힌 법무부는 2021년 4월, ‘국내 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이하 구제대책)을 발표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15년 이상 국내에 체류했고,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이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미등록 아동·청소년들에게 체류 자격을 부여하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아동·청소년의 부모들에게도 1인당 최대 900만 원의 범칙금을 내면 자녀가 미성년자인 동안 자녀를 양육하며 함께 살 수 있도록 임시 체류 자격을 부여하겠다고도 했다. 구제대책은 미등록 이주 아동·청소년의 인권 보장에 한 걸음 다가선 것으로 평가되었으나, 국내 출생, 15년 이상 거주라는 높은 기준과 부모에게 부과되는 과도한 범칙금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또, 2025년 2월 28일까지 한시적 조치로 운영된다는 한계도 문제로 제기되었다. 


결국 구제대책 시행 9개월 만인 2022년 1월, 법무부는 구제대책의 신청 요건을 완화한 ‘국내 장기체류 아동 교육권 보장을 위한 체류 자격 부여 방안’을 내놓았다. 국내에서 출생했거나 영유아기에 입국한 경우 6년, 영유아기가 지나 입국한 경우 7년 이상 국내에 거주했고, 초·중·고교에 재학 중이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들에게 체류 자격 신청의 기회를 줄 것이며, 부모에게 부과하는 범칙금도 가정 형편을 고려해 추가로 감면하거나 면제해 주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구제대책 시행 9개월 동안 겨우 46명의 미등록 이주아동·청소년이 체류 자격을 받았는데, 개선안 발표 이후 2025년 1월까지 그 숫자는 1,251명으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개선안 역시 2025년 3월 31일까지로 시행 기한을 둔 한시적 조치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주 아동의 인권 보장을 위해 활동해 온 시민단체들은 미등록 상태로 국내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이주 아동·청소년·청년이 최소 1만 명이 넘는다는 것과 앞으로도 미등록 상태로 정규교육과정을 마친 이주 아동·청소년들이 계속해서 나올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에게 체류 자격을 부여하는 정책은 한시적 조치가 아닌 상시적 제도가 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체류 자격을 받은 이주 아동·청소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연계될 수 있는 체류 자격이 마땅치 않아, 대학에 진학해 유학 체류 자격을 받아야만 국내에서 계속 체류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개선을 요구했다. 이에 법무부는 2025년 3월 20일, 미등록 이주 아동·청소년에게 체류 자격을 부여하는 조치를 3년 연장하겠다는 것과 함께 국내에서 성장한 이주배경 청소년들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취업 체류 자격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의 ‘국내 성장 기반 외국인 청소년에 대한 취업·정주 방안’(이하 취업·정주 방안)을 발표했다. 



정주를 가로막는 무수한 장애물들


취업·정주 방안으로 이제 한국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미등록 이주 아동·청소년들이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일까. 이들이 정주에 이르기까지 거쳐야 할 과정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를 살펴보자. 이들이 대학에 다니기 위해서는 유학 체류 자격으로 변경해야 하는데, 이때 2000만 원의 ‘잔고 증명’이 필요하다. 또, 성인이 되면 부모가 출국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체류 자격을 받는 터라 대학교 1, 2학년 때쯤 부모가 출국하게 되는데, 그러면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외국인이라 국가장학금이나 학자금 대출 신청 자격은 되지 않고, 시간제 취업은 주 20시간만 허용되며, 휴학을 하면 체류 자격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유학생 체류관리 지침 때문에 학교를 잠시 쉬면서 돈을 모으는 것도 불가능하다. 실제로 부모가 출국한 뒤 극심한 생활고를 겪으며 끼니를 거르거나 노숙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넘어야 할 산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유학 체류 자격에서 취업 또는 창업 체류 자격, 거주 체류 자격, 영주 체류 자격으로 변경해야 국내에서 영구적으로 정착하거나 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체류 자격들은 전공, 나이, 소득 등의 요건을 충족시켜야 신청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대학을 졸업하고 신청하게 되는 전문 인력 취업 체류 자격은 주로 이공계 위주의 총 67개 업종에만 취업을 허용한다. 전문 인력 취업 체류 자격으로 3년 이상 체류하면 신청할 수 있도록 한 점수제 우수 인력 거주 체류 자격은 나이가 많을수록 낮은 점수를 받게 되며, 연소득이 전년도 1인당 국민총소득의 80%가 넘어야 신청이 가능하다. 귀화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영주 체류 자격을 신청할 수 있는 소득 요건은 무려 전년도 1인당 국민총소득의 2배로, 2025년 기준 9990만 원이 넘는다. 이는 국내 정주를 꿈꾸는 수많은 이주배경 청소년·청년들에게 좌절을 안겨 주고 있다.


취업·정주 방안에 따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체류 자격으로 변경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다른 취업 체류 자격과는 달리 업종에 제한은 없지만 신청할 수 있는 대상이 신청일 기준 18세 이상 24세 이하, 18세가 되기 전 7년 이상 국내 체류, 국내에서 초·중·고 졸업(초·중·고 과정 중 어느 하나의 과정을 졸업하지 못한 경우 사회 통합 프로그램 5단계 과정 이수)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취업을 전제로 부여하는 체류 자격이기 때문에 고교 졸업 후 진로 탐색, 창업, 프리랜서 활동 등을 하며 체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주배경 청소년들의 진로를 제한하고 있기도 하다. 법무부는 국내에서 성장한 청소년들이 새롭게 신설된 취업 체류 자격으로 인구 감소 지역에 4년 이상 거주하면 ‘지역 특화 우수 인재(지역특화형 비자)’로 거주 체류 자격을 변경할 수 있고, 해당 거주 체류 자격으로 같은 지역에서 5년 이상 거주하면 완화된 조건으로 영주 체류 자격을 신청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정주의 가능성을 높이고자 한다면 연고를 떠나 인구감소 지역에 가서 살아야 한다는, 또 다른 조건을 이주배경 청소년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4월 말, 한국 정부는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로부터 인종차별철폐협약 이행 상황에 대한 심의를 받았다. 정부는 미등록 이주 아동·청소년에게 체류 자격을 부여하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는 것을 정부의 인종 차별 철폐 노력 중 하나로 보고했지만, 위원회의 의견은 달랐다. 심의가 끝난 뒤 위원회가 발표한 최종 견해에는 ‘미등록 체류 이주민의 자녀인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로를 제공해 거주 자격 또는 귀화 자격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라’는 권고가 포함되었다. 사실상 위원회는 체류 자격을 신청하는 부모들에게 부과하는 과도한 범칙금, 그리고 거주·영주 체류 자격을 거쳐 귀화에 이르기까지 요구하는 높은 소득 기준을 미등록 이주 아동·청소년의 정주와 정착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인식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장애물을 두는 행위를 인종 차별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나고 자란 곳에서 살아갈 권리를 보장해야


미등록 이주 아동·청소년들은 본인의 선택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한국에서 미등록으로 살게 된 이들이다. 하지만 체류 자격과 등록번호가 없다는 이유로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어서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를 개통하거나 은행 계좌도 개설하지 못한다. 학교에 다닐 수 있지만 안전공제보험과 자원봉사 포털에도 가입할 수 없고, 각종 경시대회에도 참가하지 못한다. 그야말로 ‘있지만 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이로 인해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대학에 진학하거나 멀쩡한 직업을 갖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그러한 이들에게 법무부의 체류 자격 부여 조치는 어두운 터널 끝 한 줄기 빛이었다. “구제 대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처음으로 희망이 보였다”는 한 미등록 이주배경 청년의 말은 미등록 이주 아동·청소년들이 그동안 얼마나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을 견디어 왔을지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막상 체류 자격을 받아 외국인등록을 마친 이주 청소년, 청년들을 만나면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한 청년은 본인의 상황을 “가까스로 벼랑 끝을 잡고 매달려 있는데, 누군가 자꾸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 내고 있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체류 자격이 생기고 대학에 합격해서 뛸 듯이 기뻤는데, 2학년이 되니 부모가 쫓겨나고, 장학금으로 학비는 충당하고 있지만 생활비는 언제나 빠듯하고, 곧 졸업인데 취업을 못하면 체류가 불안해지고, 구직에 성공해 취업 체류 자격을 받는다고 한들 인구 감소 지역에 가지 않는 한 거주와 영주 체류 자격을 받는 것은 너무나도 요원하기 때문이다. 본인이 교육받고 성장한, 유일한 삶의 터전이자 사회적 유대관계가 있는 한국에서 계속해서 살아가고 싶다는 평범한 꿈을 이루는 것이 너무도 힘겹기에 나온 토로일 것이다. 


법무부는 ‘국내에서 장기간 거주하며 공교육을 이수한 이주 아동은 언어·문화적으로 국민에 준하는 정체성이 형성되어 있고, 따라서 본국에 돌아가더라도 적응이 어려우며, 무엇보다 장기간 한국을 터전으로 삼아 성장한 아동에게 투입된 한국 사회의 공적 자원과 노력, 그리고 아동의 인권 등을 고려할 때, 이들을 포용해 한국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이익이 될 것이기 때문에 구제 대책을 시행하게 되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러한 취지라면 미등록으로 성장한 이주배경 청소년·청년들에게 유학 체류 자격이나 취업 체류 자격을 부여하는 현재의 체류 자격 부여 방안은 적절하지 않다. 이들은 학업을 목적으로 한국에 온 유학생도, 취업을 목적으로 한국으로 이주한 노동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습득하고, 한국을 ‘우리나라’로 배우고, 또래 한국인 친구들과 똑같은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런 이들을 성인이 되어 본인의 의지로 한국으로의 이주를 선택한 이주민과 동일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한국 정부는 인구 위기의 해법이라며 매년 이주 노동자와 유학생 유치 규모를 늘리고 이들의 국내 정착을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또한 이러한 신규 이주민들의 사회 통합을 위해서 많은 예산을 책정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국내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이주 아동들, 이미 사회 통합이 다 되어있고 정착의 의지가 높은 그들에게는 안정적인 체류 자격 부여를 통한 정착의 기회를 보장하지 않는 것은 역설적이다. 이에 국내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이주 아동들이 고교를 졸업하거나 성년이 되었을 때, 이들에게 학업과 취업을 포함해 활동 범위에 제한이 없고 이후 완화된 조건으로 영주 체류 자격으로 넘어갈 수 있는 징검다리 체류 자격을 신설할 것을 제안한다. 징검다리 체류 자격은 국내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이주 아동들, 한국 사회에 깊은 유대를 갖고 있으며 함께 살아갈 준비를 마친 이주 아동들에게 안정적·영구적으로 국내에 정착할 기회를 보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들의 교육에 투자한 한국 사회에도 보상의 기회가 될 것이다. 




❶  보호의 일시해제 제도는 ‘지방출입국·외국인관서의 장이 직권으로 또는 보호시설에 보호되어 있는 외국인(이하 “보호외국인”이라고 함)의 청구에 따라 보호외국인의 정상(情狀), 해제 요청 사유, 자산, 그 밖의 사항을 고려하여 2천만 원 이하의 보증금을 예치시키고 주거의 제한이나 그 밖에 필요한 조건을 붙여 보호를 일시해제할 수 있는 제도’이다.

❷  청주지방법원 2018. 5. 17. 선고 2017구합2276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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