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호[오늘의 어린이·청소년책] 소란한 비밀 외 | 안정선, 김소희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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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어린이·청소년책



소란한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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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은 글│창비│2026│15,000원


청소년 소설은 재미있다. 나처럼 수십 권을 읽어대면 그 얘기가 그 얘기 같을 법한데 절대 그렇지 않다. 어느 소설에나 성장의 서사가 있고 고난의 가정사가 있지만, 때로는 판타지로, 때로는 음습하게, 그러면서도 빛나는 메시지를 담는다.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청소년들에게도 선택받아야 하므로 무지하게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소란한 비밀》은 거짓말에 대한 소설이다. 청소년기에 거짓말은 흔한 경험이다. 어쩌면 거짓말의 터널은 성장의 무수한 터널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겪는 흔한 경험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관계를 해칠 수도 있고, 심지어 몸에 배어 영영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게 만들기도 하는 중요한 경험이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할 때도 많고, 거짓 ‘말’이라기보다 마음과 다르게 표현해야 하는 상황도 있게 마련이다. 이 소설은 5명의 청소년(소녀)들이 ‘거짓말 무덤’이라는 익명의 사이트에서 자신의 거짓을 털어놓다가 그것들이 세상에 다 까발려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청소년이라고 늘 희망적이고 교훈적인 것만 읽으란 말이냐고 반문한다면, 그런 것들이 읽고 싶다면 그보다 넓은 문학의 세계로 나아가라고, 얼마든지 음습하고 끔찍하고 헤어날 수 없는 현실 반영들이 있으니 거기까지 독서력을 확장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 사실은 결론은 다 나름 훈훈할지라도 청소년 소설에도 아동학대, 임신과 출산, 버림받음, 배신과 살인, 이간질과 악플, 지독한 가난, 가출 등 비린내 나는 현실이 난무한다. 《소란한 비밀》에도 입양, 부모의 이혼과 재혼, 특히 외국에서 온 새엄마, 치열한 경쟁, 그리고 왕따와 같은 문제들이 뾰족하다. 추리소설처럼 거짓말한 아이들을 추적하고, 그걸 폭로한 아이를 찾아내는 과정은 흥미진진하다. 이러다가 모두 파국으로 가(진 않겠지만)면 어쩌나 싶은 위기의 단계도 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 누구도 악인으로 흑화되지 않는다. 결말이 훈훈한 것은 독자와 타협을 했기 때문도, 청소년 소설다운 ‘올바름’을 의식한 때문도 아니다. 실제로 거짓말을 하되 내면으로는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고 이겨 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현실 속에 훨씬 많기 때문이다.

거짓말 무덤에 묻고 싶었던 각자의 거짓들은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까? 거짓이 드러나는 순간은 본인에게는 지옥문이 열리는 시간처럼 느껴지겠지만, 그렇게 말고는 그 거짓의 시간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따로 없어 보인다. 작가도 말한다. 솔직하게 말하고, 화내고, 울음을 터뜨리라고. 그런 소통이 아니면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었던 네 마음의 지옥에서 결코 헤어날 수 없다고. 물론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거짓을 털어놓을 수 있는 너 자신의 용기이겠지만, 네 곁에는 꼭, 왜 그랬냐고 화내 주고, 그러나 다 들어 주겠노라, 이제는 솔직한 네 마음을 들려 달라고 곁을 지켜 주는 친구나 가족이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하나, 빛나, 유진, 아율, 그리고 다온, 이렇게 다섯 아이들은 거짓말 무덤을 열고 세상으로 나온다.


- 안정선(서울 경희중 교사,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






그래,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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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화선 글│김진화 그림│길벗어린이│2026│13,000원


살다 보면 누구나 도망치고 싶은 순간을 만난다. 주인공 ‘그래’의 가족이 정든 터전을 떠나 낯선 바닷가 마을로 밀려나듯 이사를 와야 하는 상황처럼.

《그래, 파도!》는 이름은 ‘그래’이지만 무엇 하나 긍정하기 힘든 상황에 놓인 소년 ‘그래’의 시선을 따라간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옷을 만들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던 엄마는 사업이 망한 아빠를 따라 바닷가 마을로 내려왔다가 우울증에 걸려 서울로 떠나고, 바닷가 마을에 남은 아빠는 밤낮없이 식당 일에만 매달리며 침묵한다. 그 사이에서 그래는 외로움을 견뎌야 한다. 그런 그래 곁에는 은빛 파도처럼 서핑을 하는 수아와 바닷가 이곳저곳을 누비며 함께 뛰어다니는 쌍둥이 형제 멍게(명진), 성게(성진)가 있다. 그래는 이들과 함께 서핑을 배우며 혼자라는 외로움을 이겨 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결핍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래가 서핑을 배우며 파도에 몸을 싣는 과정은 통제할 수 없는 삶의 시련을 어떻게 대면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파도는 피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온몸으로 맞서고 올라타야 할 대상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래의 성장은 시작된다. 작가는 바다의 윤슬처럼 반짝이는 문장으로 흔들리는 것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잡으려는 노력임을,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파도를 넘어야 할 때가 있음을 나직이 전한다. 그래는 파도와 싸우지 않고 흐름을 읽고 기다렸다가 함께 나아가는 서핑처럼 삶에서 겪는 일을 견뎌 내며 더 단단해질 수 있음을 깨닫는다. “자신만의 파도를 넘는 순간, 비로소 진짜 자신을 알게 된다!”라는 수아 아빠의 말처럼.

우리는 매일 각자의 파도를 넘고 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삶의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우리 모두에게 그래의 서핑은 깊은 공감을 준다.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밀려오는 삶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때로 고꾸라지지만, 다시 보드 위에 올라설 힘이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흔들려도 괜찮아. 우리 모두에겐 자기만의 파도가 있으니까”라고.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마음속에 시원한 바닷바람이 한 줄기 지나간 듯한 기분이 든다. 올봄, 삶이라는 바다 위에서 잠시 지친 우리에게 이 책이 다정한 ‘그래’라는 대답이 되어 주길 바란다. 


- 김소희(서울신길초 교사,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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