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호[특집] 코로나19와 입시 중 누가 더 힘이 셀까? (조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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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코로나19 사태로 바라본 교육 


코로나19와 입시 중 누가 더 힘이 셀까? 


조영선

imaginer@hanmail.net

본지 편집자문위원.

교사로 ‘행복한 밥벌이’를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학생인권을 만났습니다. 학생인권을 통해 ‘내 안의 꼰대스러움’으로부터 해방되면서 학교를 견디는 힘이 커지고 있어요. 학교에서 좌충우돌하는 것을 귀찮아하지 않는, 괜찮은 교사이기보다는 ‘괜춘한’ 인간이고 싶습니다.



고3 담임을 안 맡았다가, 18세의 첫 선거를 함께 하고 싶다는 부푼 꿈을 가지고 3학년 담임을 지원하였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개학이 계속 연기 되었다. 답답하긴 했지만, 일종의 ‘전시 상황’이고 ‘대피 상황’이라 그렇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그렇게 4월이 되었다. 교육부 장관은, 계속 ‘시그널’을 줬다고 했지만, 갑자기 형태와 내용을 모두 알 수 없는 온라인 개학을 한다고 했다. 온라인 개학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의문이 있었지만, 결국 고3 입시를 위한 시수 확보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프랑스는 바칼로레아를 취소했다지만, 우리나라와 중국은 수능을 취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온라인 개학과 동시에 입시 일정이 12월 3일로 발표되었다. 코로나19가 건조하고 추운 겨울에 다시 창궐할 거라는데……. 수능 날은 비행기도 숨을 죽이는 우리나라가 아니던가? 역시 입시를 위해 교육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문제는 수업의 질이 아니라 출결


온라인 개학을 한다고 할 때,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온라인 수업을 온라인답게 할 것인가, 아니면 오프라인을 온라인에 끼워 맞출 것인가였다. 예를 들어, 교사 집합 연수와 원격 연수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학습자가 학습 시간과 공간을 선택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일정 기간을 주고 그 안에 제시된 연수를 이수하고 평가와 과제를 마치면 그 과정은 ‘이수’한 것으로 인정한다. 그런데 이번에 초기 온라인 수업 지침에는 당일 과제 제출 시에만 출석 인정이라고 했다. “교사가 정한 시간 내에 미참여한 학생의 경우 당일 23:59까지 과제 제출 또는 학습 완료 시 출석 인정.” 물론 이 내용이 공문에 명시적으로 적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교육청에서 말하지 않는 것은 학교가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교육청의 구상 역시 이러했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실제 3월부터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던 몇몇 학교들에서 줌Zoom(화상 회의 서비스)으로 학생들과 조회를 하고 과목 교사들이 오프라인 수업과 같은 시간에 접속하여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학생들이 똑같이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자기 방에 붙들려 있는 상황인 것이다. 아마도 교육부는 이러한 것이 ‘미래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공간은 분리되어 있지만 시간으로는 학생을 통제하는 것. 화면에 접속하지 않으면 결석 처리 하는 것. 며칠 후 교육부의 출결 지침이 내려왔다. 수업 기준 5일, 담임 기준 1주일로 하되, 과제 제출이 일주일을 넘기면 결과 처리 하라는 것이었다.


‘결과’는 오프라인에서는 학생들이 학교에 왔는데 교실에 없거나 수업을 듣지 않은 경우로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주목적은 학교 안에는 있는데 교실에 없을 경우 사고가 일어났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챙기는 데 있다. 온라인 수업인데 결과 처리가 있는 것은, 정해진 시간 안에 학생들이 접속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학생들을 통제하려는 전략이다.


전체 배움의 내용에 접근하고 그것을 소화하고 복습하는 접근성과 속도를 자기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 ‘미래 지향적’인 것이 아니던가? 실제 ‘4차 산업 시대 사회와 교육’ 같은 주제의 연수를 들으면 가장 먼저 언급 되는 것이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접속하고 재택근무와 유연 근무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e마케팅’ 등 새로운 부가 가치가 창출되는 분야를 예로 들면 자신이 근무하는 사이트에 접속하면 근무 중인 것이고, 나가면 근무 중이 아닌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설정한 근무 시간 안에 근무를 하면 되는 노동 방식이다. 온라인 수업을 두고 미래 교육 운운하면서도 현재 가장 전근대적인 출결 시스템을 적용하는 형태의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은 코미디 같았다.



21세기 기술로 19세기적 통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


어쨌든 교육부 지침에 따라 우리 학교는 블록 수업으로 시간표를 짜서 진행하였다. 그러면서 어떤 형태의 수업이 가능한가 시험해 보기 위해 여러 가지 형태의 과제를 냈다. 콘텐츠를 통한 과제 제시형은 학생들이 비교적 수월하게 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형식의 과제에는 학생들이 버거움을 느꼈다. 클릭을 5번이나 했는데 과제가 미제출로 나왔다는 학생도 있었다. 그래서 결국 그 학생에게는 학교에 오라고 했다. 처음으로 우리 반 학생을 만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구체적으로 물을 수는 없었지만, 스마트폰이 그 학생이 가지고 있는 가장 성능 좋은 온라인 접속 기기임이 분명했다. 학교의 기기를 대여해 줄까 물었지만, 자기만 대여받는 것은 거절한다고 했다. 교육부의 호기로운 차등 지원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디지털 격차를 가시화한다는 깨달음이 든 순간이었다.


그러다 문득 학생들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줌 등의 프로 그램을 써 볼까 하고, 등교 개학 전에 구글 미트 Google meet로 만나자고 학급 단체 채팅 방에 올렸다. 24명 중 10명 정도의 학생들이 신청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구글 미트에 접속했다. 그런데 막상 그 시간이 되니 몇몇 학생은 일이 생겨서 어렵다고 불참했다. 겨우 8명의 학생들을 만났다. 얼굴을 본 것이 정말 반가웠지만, 4명이 집 밖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이 정말 어색해했다.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학생들도 있었지만, “안녕하세요?” 하고 이름을 말하고 나니 침묵이었다. 그나마도 접속한 기기에 따라 소리의 전달 속도가 달라 대화를 이어 나가기 어려웠다. 결국 한 사람씩 따로 이야기하자고 하고 학생들을 단체 방에서 내보냈다. 나중에 물어보니, 방이 화면에 나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그래서 일부러 독서실이나 카페에 갔다는 학생도 있었다. 신청했다가 취소한 학생에게 물어봤더니, 들어가려고 했는데 늦게 일어나서 화장을 못 했다고 했다. 자신을 소개하는 5초 동영상을 이불 속이나 복도에서 찍은 학생들도 있었다. ‘집콕’ 중이라 바깥에서 찍기는 어려웠고, 각자의 가림막을 쓴 것이리라.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하는 이 세대들에게도 온라인으로 사생활이 아니라 ‘공생활’을 하는 것이 처음이구나, 친한 친구와 영상 통화를 하는 것과 수업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3월에 만났다가 휴업을 한 것이 아니라 2020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이였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이끼리 자신의 방 또는 집을 공개하면서 얼굴을 보고 만나는 일은 초유의 사태인 것이다. 오히려 오프라인 만남에서는 자신이 맺는 관계에 따라 오픈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정보들이, 온라인으로 연결되니 무차별적으로 오픈당하는 순간이었다. 온라인 수업을 한다며 학생들에게 화면 캡처나 욕설은 ‘학폭’이라며 협박하는 교육 자료들은 엄청 떠돌아다녔다. 하지만 정작 온라인 수업의 형태를 결정하면서는 자신의 정보를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제공할 수 있는, 개인 정보에 관한 권리는 깡그리 무시된 것이다.


그리고 ‘실시간’은 되는지 모르겠지만 ‘쌍방향’은 불가능했다. 학생들의 말이 띄엄띄엄 들려서 원래 그 학생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오해되기도 해서 학생들이 몇 번 말을 하다 멈추기도 했다. 결국 줌 등의 프로그램으로 가능한 수업은 ‘실시간 단방향’ 수업이었다. 그런데 교육부는 이런 것을 태연하게 쌍방향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것이 미래 교육이라고도 했다. 돌이켜 보면 교육부는 오프라인 교실에서도 어떻게 해야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지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었다.


학생들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눈치 보지 않고 발표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지만, 잘못된 발표가 생활기록부 기재의 근거가 될까 봐 학생들은 조마조마해한다. 그래서 오직 비판받을 가능성이 없는 정답 발표만이 존재한다. 소통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론 점수가 되는 소통만 허용될 뿐 교실은 불통 중인 것이다. 오프라인에서도 이러했으니, 온라인 수업에서 소통이 일어나는지 아닌지에 대해 진정 궁금해할 리가 없다. 그저 학생들을 컴퓨터 앞에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붙들어 놓을 명분만 마련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학교들은 학생들의 시간을 통제하고 화면으로 보이는 용의 복장까지 통제하기도 했다. 실제로 어느 자사고 학부모는 학교에서 줌으로 수업하면서 하도 교복을 입으라고 해서 학생이 상의만 교복을 갖춰 입고는 덥다며 하의는 트렁크를 입어서 난감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대한민국 교육의 기본은 ‘통제’인 것이다.



문제는 기기가 아니라 소통


나의 핵심적 문제의식은, 접속을 위한 기기와 인터넷 접속 환경이 개인에게 맡겨진 상황에서 가장 적은 데이터를 쓰며 단순한 기기로도 접근 가능한 수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학기 초였다. 학생과 교사가 또 학생끼리도 전혀 래포rapport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상황이 드러나는 일은 학생들에게 두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과제를 수행할 시간이 좀 넉넉하게 주어질 수 있는, 교사도 피드백의 시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블록 타임 시간표를 제안했지만, 교감과 교무부장은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오프라인 시간표대로 해야 한다고 했다. 온라인에서의 집중은 극과 극이다. 대면이 아니기에 정말 집중하기 위해서는 수십 배의 에너지가 들고, 그것을 포기하면 그냥 누워서 돌려도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학생들이 자신의 몸에 맞게 학습량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주어져야 하는데, 오프라인 시간표를 고집하는 것이 실시간 쌍방향의 미래 교육이라는 주장에 정말 어이가 없었다.


나는 당당하게 〈EBS〉 강의를 걸었다. 학생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도 3학년 때는 〈EBS〉 연계 교재를 가지고 학교 수업을 하는데, 연계 교재는 내가 쓴 게 아니어서 〈EBS〉 강사들이 더 잘 가르치고, 문제와 풀이를 보여 주는 전자 칠판도 우리 학교보다 〈EBS〉가 더 품질이 좋아서 잘 보일 것이라고 했다. 다만 문제를 풀면서 조금이라도 의문이 나는 점을 비공개 댓글에 남겨 주면 꼬박꼬박 답하겠다고 했다. 나는 ‘정말 질문이 달릴까?’ 고민했는데 비공개 댓글이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질문이 잘 들어왔다. 그런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아 다음 차시 전에 전체 피드백을 하였다. 질문에 대한 피드백을 잘하고 나니 질문 개수가 점점 늘었다. 어떤 학생들은 오프라인 때보다 질문하기가 더 편하다고도 했다. 나도 즉시 답하는 것이 아니라 자료를 찾아보고 답할 수 있어서 편했다.


즉, 아직 래포가 쌓이지 않은 상황에서는 최소한의 질문과 답변, 피드백을 통해 조금씩 래포를 쌓아 가는 과정이 중요했다. 얼굴이 보이는지, 실시간으로 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온라인 수업에서의 반응도 래포가 쌓이는 만큼만 확장될 수 있었다. 서로의 기기나 환경 차이가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한 화려하지 않은 수업 포맷에, 작은 피드백이라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조금씩이나마 래포를 쌓아 가는 길이었다. 예를 들어 구글 협업 문서로 모둠 활동을 해 보고 싶기도 했지만, 학생들이 서로를 모르는 상황이고 학생들마다 기기도 달라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 포기하였다. 학생들끼리의 모둠 토론도 기술적으로는 가능했지만 학생들이 부담스러워했다. 실제 만나 보지 않은 사이에 중간중간 끊기는 말로 토론을 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온라인 수업에서 소통이 일어나려면 오프라인 만남이 병행되어야 했다. 기술은 대면에서의 래포를 뛰어넘지 못했던 것이다.



코로나와 입시의 싸움, 누가 이길까?


그렇게 수업을 하다 보니, 코로나는 잦아드는 듯 보였고 5월 대면 개학을 눈앞에 두었다. 온라인 수업이 완전 ‘헬’은 아니었지만, 학생도 나도 지쳐 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기에 나는 누구보다도 대면 개학을 열심히 준비했다. 우선 교육부에서 말한 대로 교육 전문가이자 방역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NEIS와 연결된 코로나19 자가 체크 시스템 참여를 열심히 독려했다. 사실 자가 체크 시스템만큼 황당한 것이 없다. “열이 있나요? 없나요? 증상이 있나요? 없나요?” 스스로 체크하여 교육청에 보고하도록 하는 것이다. 마치 병에 걸렸는지를 스스로 판단하여 보고하게 하는 것과 똑같다. 감염 판단이 목적이 아니라 보고가 목적인 것이다. 그렇더라도 내가 이 질병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 때문에 주말까지 문자 메시지를 보내 가며 정말 열심히 했다. 실제로 학생들도 잘 따라 줘서 보건 교사로부터 학교 방역 전문가라는 말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반 학생 1명이 의심 증상에 2가지 이상 표시를 했다. 이 사실을 매뉴얼대로 보건 교사에게 보고했다. 보건 교사는 매뉴얼과 보도 자료를 참고하더니 학생을 선별 진료소가 있는 병원에 보내 ‘의사의 소견’을 받아 오도록 하라고 했다. 얼굴도 못 본 학생인데, 허접한 자가 진단을 바탕으로 병원에 보내야 한다는 것이 부담되었지만, 나는 학교 방역의 최전선에 있다는 마음으로, 괜찮다는 학생을 설득하여 병원에 가도록 했다. 그런데 그 학생에게서 전화가 와서, 선별 진료소 간호사를 바꿔 주었다. 간호사는 “이 학생의 증상 완화 치료를 원하는지 코로나19 검사를 원하는지”를 나에게 물었다. 그걸 병원에서 판단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팬데믹 선포 이후에는 코로나19 검사 외에 다른 판단이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 학교는 그 학생을 격리 조치 할 것인지 판단해야 하니 코로나 19 검사를 해 달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지금 다른 공문을 받지 못해서 현단계 학교에서 보내는 코로나19 검사 비용은 모두 개인 부담이라는 것이 었다. 2014년 세월호에서 사람들을 구조하리라 철석같이 믿은 헬기가 배를 떠나갈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교육부에서 말하는 학교 방역망은 전혀 가동되고 있지 않은 것이었다. 다행히 그 학생의 증상은 원래 있던 비염 증상으로 밝혀졌고 곧 완화되었다. 하지만 등교 개학 후 어떤 학생이 기침이라도 했을 때 코로나19인지 아닌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괴감에 빠졌다.


그러던 와중에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유행이 다시 대한민국을 덮치고 있다. 지금 교육부는 5월 20일에 등교 개학을 시행할 것이고, 더 이상의 등교 연기는 없다는 입장을 연일 언론에 내보내고 있다. 아마도 대학들과 입시 협의를 할 때 마지노선이 5월 20일이었던 것 같다.


지금 등교 개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 학교에 1명이라도 확진자가 나오는 것은 만에 하나의 확률이고, 일어나도 견딜 만한 시행착오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재 코로나19는 무자각 상태로도 조용히 지역 사회 전파 중이다. 특히 학생들이 많이 가는 피시방과 노래방에서의 N차 감염도 진행 중이다. 이들 업소에 대해서는 문을 닫게 하면서 그런 곳에 다녀왔을지도 모를 학생들 다수를 모이게 하는 것은 방역의 측면에서도 맞지 않다.


또, 한때는 줄어들던 확진자 숫자는 다시 하루 30명대로 증가하여 온라인 개학을 하던 시점과 맞먹는다. 사실 이 정도에서 개학을 할 수 있었다면 온라인 개학을 한다며 그 난리를 칠 필요도 없었다. 당시만 해도 수도권은 심각하지 않았기에 등교 개학을 띄엄띄엄 하면서 수업 일수를 줄이고 온라인 수업을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등의 수단을 시험해 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등교는 절대 안 될 것처럼 말하며 온라인 수업에 적응하지 못하는 교사들을 무능력자 취급하더니만, 이제 온라인 수업에 적응을 하니 등교 개학을 하지 않으면 무책임한 교사라고 등을 떠밀고 있는 형국이다.


한 학생이 확진되면 학교를 폐쇄한다는 매뉴얼도 말이 쉽지, 학생 들의 심리적 상처나 혹시 제기될 수 있는 책임 추궁은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이 사회의 분위기로 볼 때 확진자가 된 교사와 학생은 자신의 책임이 어느 정도든 간에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친 죄인이 되기 십상이다. 전반적으로 패배감에 젖어 있는 고3 학생들의 경우 자신들의 불운의 원인을 찾으려 할 것이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학생이나 교사가 표적이 될 것이다. 이런 문제가 꼭 일어나지 않더라도 물을 마시다 사레 들려 기침이라도 했을 때 주위에서 꽂히는 시선들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전염병의 전파 속도가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의심 증상을 보이는 학생에 대해 관대할 수 있지만, 이렇게 지역 사회 전파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무조건 이해하라고 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올해 만나는 학생들은 서로에 대해 알기도 전에 치료제가 없는 바이러스의 숙주로 서로를 의심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코로나19에 대한 감도가 다 다른 학생들이 한데 모여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 학생들 사이의 갈등을 낳고 이것이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어차피 학교 와서 웃고 떠들고 뛰고 함께 먹고, 이런 것들을 할 수 없다면 학교에 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결국 이 모든 모순의 핵심에는 입시가 있다. 모든 학생을 동일한 조건에서 시험을 보게 하여 상대적인 등수를 내서 대학을 가게 해야 하기 때문에 그 동일한 조건을 만들어 내기 위해 모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개학을 하자마자 급식도 하면서 하루 종일 시험을 치게 하는 모의고사를 볼 것이다. 빨리 모의고사를 봐야 상대적인 위치를 알고 정시로 갈지 수시로 갈지 입시 전략을 짤 수 있다는 여론에 등 떠밀린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이런 상황에서 위험을 느끼고 입시가 의미가 없다는 학생들이 시험 선택권을 주장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니 교육부에서 허가한 체험 학습을 쓰겠다고 하면 어찌할 것인가? 그리고 한 학교라도 시험을 못 치게 되면 그 학교 학생들을 빼고 성적을 내면 그 성적은 입시 자료로서 의미가 있는 것인가?


이것은 단순히 모의고사에 대한 걱정만은 아니다. 교육부가 수능을 미뤄 놓은 12월 3일은 바이러스의 전파력이 강해진다는 겨울의 한복판이요, 전문가들이 계속 경고해 왔던 3차, 4차 유행이 예상되는 시기이다.


어찌 보면 수능 시험 자체가 지금의 형태로는 치러지기 힘들 수도 있다. 토플이나 토익처럼 문제 은행에서 출제되고 여러 장소에서 여러 번 응시할수 있도록 인프라를 바꾸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일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선 그야말로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대학에서 공부할 학문의 기초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별하는 자격 고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교육이 온라인 교육으로 대체되는 것은 오히려 큰 문제가 아니다. 오프라인 만남이 없는 온라인 교육은 한계가 명확하기에 그에 걸맞은 밀도나 농도를 논의하고 대안을 찾으면 된다. 오히려 코로나19가 허락하지 않는 것은 10대를 저당 잡혀 한날 한시에 거의 모든 학생들이 모여서 치르는 시험이 인생을 결정하는 이 시스템이다. 코로나19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면, 바로 입시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 체계와도 결별해야 할 것이다.



개학이 두려운 스승의 날


이 글을 쓰는 오늘은 5월 15일, 언론은 학생이 없는 교실에서 맞는 스승의 날이라는 둥, 대통령은 원격 교육 인프라를 만들겠다는 둥 스승을 위한다는 온갖 공치사가 맴돈다. 다른 한편으로 등교 연기는 없다는 뉴스와 지역 사회 N차 감염 속보가 웹 페이지를 가득 채운다. 배는 기우는데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나올 때 선생님들의 심정이 이랬을까? 화상으로 하는 조회가 아니어서 내 불안감이 학생들에게 전달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는데, ‘랜선 담임’도 담임이라고 학생들은 스승의 날 축하한다는 카톡과 문자를 보낸다. 5월 20일에 개학이 된다면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학생들을 다독여 나오게 할 것인가? 솔직히 나도 자신 없으니 체험 학습을 쓰라고 할 것인가? 정말 개학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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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