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호[에세이] 쇼트커트 여교사의 학교 이야기 | 고주희

202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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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커트 여교사의
학교 이야기

 

고주희

Kojuhee135@naver.com

제주 하원초 교사


 

잠을 더 자려고 머리를 잘랐을 뿐인데……

 

교직 생활 2년 차가 되던 해, 기존 학교의 답답함이 마음에 들지 않아 혁신학교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새롭게 가게 된 학교는 집에서 차로 1시간 거리. 육지 다른 지역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제주에서의 차 1시간 거리는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인 한라산을 넘어서 가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이 더 작용해서인지는 몰라도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라고 느껴질 만큼 먼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혁신학교에 가서 내가 원하는 수업을 만들고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열정 하나로 전보 신청을 했고 서귀포 관내이지만 가장 끝자락인 성산으로 발령받았다.

호기롭게 신청했지만 막상 성산은 내가 살던 서귀포 시내와는 정말 먼 곳이긴 해서 2월 교육과정 수립 주간 약 1주일 동안 차를 운전하거나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내가 잘못 선택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심지어 한겨울, 폭설이 내리기라도 하면 버스도 중간에 갈아타야 해서 편도만 2시간이 걸린다. 왕복 4시간의 거리. 그때부터였을까. 아침에 어떻게 하면 잠을 더 잘 수 있을까 고민을 시작했던 때가…….

3월, 나는 1학년 담임 교사를 맡게 되었고, 금요일 입학식을 하면서 1년 동안 함께 지내게 될 학생들과 부모님들을 한자리에서 만나고 인사를 나눴다. 금요일 퇴근을 하고 내가 가장 먼저 간 곳은 집이 아닌 미용실. 머리를 잘라야겠다는 생각 하나밖에 없었다.

2월 교육과정 수립 주간 때부터 3월 입학식 날까지, 출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잠자고 일어나는 것이었다. 일어나서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머리를 말리는 일이다. 당시 내 머리카락은 날개뼈 아래까지 오고 있었고, 말리는 데 15분이 걸렸다. (15분이나 걸리다니!) 1시간이나 차를 운전해서 학교로 가야 하니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자기 위해서는 머리를 잘라서 말리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렇게 입학식 날 저녁 퇴근길, 나는 긴 머리를 자르고 쇼트커트를 했다.

그다음 주 출근길, 우리 반 학생들과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학부모님, 그리고 학교 선생님들까지 왜 그렇게 놀랐는지 나는 정작 잘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짧아진 내 머리카락으로 인해 수면 시간이 10분 정도 늘어난 것에 만족하며 지금까지 쇼트커트를 유지하고 있다. 아! 머리카락을 한 뭉텅이 자르고 나니 목에 부담도 덜 가고, 머리도 가볍고, 머리 말리는 시간도 이렇게나 짧아지다니! 제주의 습한 여름에 머리를 풀고 다니는 여성들과 그 옆을 지나가는 짧은 머리의 남성들을 보면서 머리카락만으로도 이 얼마나 큰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인지 새삼스레 다시 한번 느끼며 지금까지도 긴 머리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머리카락은 나에게 주어진 26년 만의 해방이었다.


 

반례 - 우리 반 담임 선생님

 

2018년부터 지금까지 벌써 6년 동안 쇼트커트로 생활 중이다. 그 사이에 많은 아이들을 만났고 아이들은 어쩌면 내가 첫 쇼트커트 여교사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냥 쇼트커트인 여교사로 살아갔으면 몰랐겠지만 어쩌다 보니 그 당시 내가 읽던 책들은 모두 인권과 평등, 감수성에 대한 책들이라 수업에 나의 가치관이 녹아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나, 아이들에게 고정관념과 편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나를 예시로 들 수 있다는 점에서 쇼트커트 여교사의 장점은 빛을 발한다. 교사가 고정관념에 반하는 가장 대표적인 반례의 모습이라서 그런지 아이들은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맞아! 선생님도 그러는데~”라고 생각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특징으로 성별을 판단할 수 있을까?’ 하는 수업이었다. 이때 활용하는 건 애플의 광고(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모르겠는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손에 든 아이패드로 사진도 찍고 그림도 그리면서 과제를 해결하는 내용)와 그림책 《뜨개질하는 소년》이다. 애플 광고를 먼저 보면서 영상에 나오는 아이가 남자아이인 것 같은지, 여자아이인 것 같은지 이야기를 나눈다. 만약 남자아이라고 생각했다면 어떠한 특징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는지, 여자아이인 것 같다면 어떤 특징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이후 그림책 《뜨개질하는 소년》을 보면서 소년은 왜 혼란에 빠졌을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림책 속 소년은 뜨개질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나중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남성답지 않은 것이라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혼란에 빠지지만 주변 어른들의 응원으로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계속 이어 하게 된다.) 영상과 그림책을 본 이후 다시 영상으로 돌아가서 왜 그러한 특징으로 영상 속 아이를 남자로 생각했는지 또는 여자로 생각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2차시 정도의 수업을 한 후에 교실로 돌아와 선생님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나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기도 한다. 쇼트커트를 하고 주변에서 처음 들었던 이야기, 내가 왜 쇼트커트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선생님 혹은 그림책 속 뜨개질하는 소년과 같은 경험이 없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들이 자신의 특징을 가지고 여성답지 않다고 또는 남성답지 않다고 말하는 걸 들어 본 적은 없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경험을 끌고 나온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아이들이 어디서 가장 많이 ‘여성답지 못하다’, ‘남성답지 못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지 알게 된다. 매년 이 수업을 하는데 항상 아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듣는 장소로 꼽는 것은 가족들과 함께 있는 공간이다. 어른들의 괜한 걱정이 아이들의 가능성에 한계선을 그어 버리는 건 아닌지 매번 생각한다. 마지막에는 꼭 아이들과 함께 다음에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어떤 말로 나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을까 생각을 나누며 수업을 마무리한다. 수업 시간에는 아이들이 또박또박 자신의 말로 ‘저는 ~을 좋아해요. ~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랍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현실에서도 그런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을 하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연습을 해 보는 기회 자체가 귀하다고 생각해서 매년 수업을 하고 있다.


 

“여기 여자 화장실인데요……”

 

“여기 여자 화장실인데……”라는 말은 학년 초 매번 화장실을 갈 때 저학년 아이들의 입에서 듣는 소리다. 제주도 작은 학교들만 골라 가서 그런지 한 층에 전체 학년의 교실이 다 있고, 그 가운데 화장실이 있다. 중간놀이 시간에 화장실을 들르게 되면 다른 학년 친구들도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되는데 갓 입학한 초등학생 1학년 여자아이들은 나를 힐끔 보며 나름 용기를 낸 목소리로 “여기 여자 화장실인데요……”라고 말한다. 그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선생님 여자예요”라는 말뿐인데, 매년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게 참 신기했다.

유치원, 어린이집을 졸업한 일곱 살의 아이들은 머리가 짧으면 남자인 줄 안다.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사회의 고정관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간다. 아이들이 보는 유튜브 채널들, 애니메이션 영상, 그림책 속 삽화에서 묘사되는 여성들은 모두 머리가 길었기 때문이다. 화장실을 같이 사용하는 다른 학년 담임 교사로서 나의 역할은 ‘머리카락이 그 사람의 성별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걸 보여 주는 것뿐이다. 가끔 나에게 저학년 아이가 “여기 여자 화장실인데요……”라고 말하는 걸 우리 반 여학생이 들을 때가 있다. 그러면 내가 말하기도 전에 “우리 선생님 여자야! 머리 짧다고 남자 아니야!”라고 대변해 준다.

3학년에서 픽토그램과 관련된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픽토그램은 어떤 대상이나 장소에 대한 정보를 문자가 아닌 그림으로 전달하는 그림 기호다. 아이들은 픽토그램 속 성별 고정관념을 찾아낼 때 가장 먼저 화장실 그림을 꼬집는다. 왜 치마를 입은 건 여자 화장실이 되는 것이고, 바지를 입은 건 남자 화장실이 되는 건지 묻는다. 옛날에는 치마를 남자가 입었다고 하는데 그럼 치마 입은 그림이 전에는 남자 화장실을 의미한 것이었는지 묻는, 역사에 관심 많은 친구들도 있다. 당시 학습 목표는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내가 만든 픽토그램을 통해 전달하자’는 것이었는데, 어느덧 아이들은 제 스스로 학습 목표를 ‘이미 있는 픽토그램을 보다 차별 없이 다시 만들어 보자’로 바꾸어 하고 있었다.

화장실 픽토그램을 바꾸는 일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 그림이 아니라 문자로 ‘여자’, ‘남자’ 화장실로 쓰면 안 되냐고 물으면 외국인 관광객은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반문으로 통과되지 않았고, 그러면 화장실을 영어로 쓰면 되지 않느냐고 누군가 되물으면 영어를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들이나 영어를 모르는 할머니들, 할아버지들은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반박이 나와서 통과되지 않았다. 둘 다 바지 입은 그림인데 머리 길이로 구분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으면 선생님 좀 보라면서, 선생님은 그러면 짧은 머리가 그려진 화장실로 들어가야 하는 거냐면서 자기들끼리 열띤 토론을 나눈다. 나조차도 화장실 픽토그램을 도대체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몰라 고민을 했는데 아이들은 나름 결론을 내렸다. 그날 화장실의 픽토그램은 변기의 모양으로 정해졌다. 일어서서 소변을 보는 소변기가 그려진 모양은 남자 화장실을, 앉아서 소변을 보는 대변기가 그려진 모양은 여자 화장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남자 중에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게 편한 사람들도 있는데……’라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어서 마냥 깔끔한 결론은 아니었지만.

화장실 그림 하나로 아이들은 엄청난 생각을 한다. ‘여기 여자 화장실인데요……’라는 소리를 매년 듣는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이랑 화장실 그림 하나를 가지고도 2시간짜리 미술 시간을 채운다.

 

쇼트커트 여교사로 살다 보니 머리 말리는 시간이 짧아져 잠을 더 잘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점이지만, 무엇보다 나를 수업 재료로 써서 아이들과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제일 편하다. 그냥 머리카락만 짧았을 뿐인데 그것 하나로 많은 반례를 들면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무더운 여름, 어느덧 머리가 길어졌다. (뒷머리카락이 목을 덮을락 말락 하는 길이다.) 바리캉을 다시 내 머리에 댈 시간이 다가온다. 이번 여름에도 시원하게 머리를 밀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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