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호[연재] 청소년, 듣고 싶은 그들의 이야기 | 신선웅

202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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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시좌에서 - 교육복지 현장의 이야기 ③


청소년,
듣고 싶은 그들의
이야기

 

상담실 아닌 곳을 찾는 학생들



발랑(신선웅)

woong_51@hanmail.net

관악교육복지센터 센터장


 

연재 순서

① 들리지 않는 목소리,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 –교실 밖으로 밀려나는 학생들

② 전혀 다른 목소리, 학부모와 청소년 –가정에서 안녕하지 않은 학생들

③ 청소년, 듣고 싶은 그들의 이야기 – 상담실 아닌 곳을 찾는 학생들

④ 이해의 영역이 아닌 연대의 영역 –지금도 교실을 지켜 내는 교사분들께

⑤ 잊고 지내는 당연한 것의 부재 - 지금을 살아가는 부모님들께

⑥ 우리는 어떻게 함께 존재할 것인가 –구조적 변화와 모두의 연대


 

청소년이 보내는 비상 신호

 

올해 들어 듣게 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 마주하게 되는 모습들이 여느 해보다 마음 아프다. 해가 지날수록 청소년들이 겪는 어려움의 양상은 다양하고 심각해지지만, 올해처럼 잦은 빈도로 마음 깊숙하게 힘겨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교사들도, 가정에서 양육자들도 청소년들과 함께 어려움을 고스란히 겪어 내고 있다. 거의 매일 학교나 가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과 관련된 연락을 받는다. 청소년을 의뢰하고자 하거나 지원 방법을 같이 논의하자고 하는데, 그 내용들이 결코 쉽지 않다.

3월 4일,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부터였다. 학교에 가기 힘들어하는 청소년들의 소식으로 전화벨이 울렸다. 새 학년 새 학기를 여는 날에 ‘학업 중단 숙려제’[ref]학업 중단 징후 또는 의사를 밝힌 초·중·고 학생들에게 위클래스나 청소년상담복지센터 등에서 심리 상담을 받으며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도록 일정 기간 숙려하는 제도(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 웹사이트 참조).[/ref]를 신청하기 위해 학교에 갔다는 청소년들도 있었다. 등교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많이 늦거나, 학교에 가서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거나, 급식을 먹지 않고, 조퇴를 신청하고, 심지어는 며칠째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게 체감되었다. 자해와 자살 충동을 겪는 청소년들도 늘고 있다. 반복적으로 자해를 하고, 자살 충동을 호소하고, 실제로 시도하여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을 오가며, 학급 안에서는 자해 행위가 유행처럼 번지는 현상도 발견된다. 대부분 중·고등 연령에서 더 많은 일들이 있지만 믿기 힘들 정도로 초등학교에서도 유사한 일들이 일어난다.

“작년 초등 11명 극단 선택… 5년 전보다 266% 늘었다”(〈중앙일보〉, 2023년 7월 17일)와 같은 기사에서도 다뤄지고 있듯, 정신질환과 자살 등이 저연령화 현상을 보인다. 그 상황을 뉴스가 아닌 현실로 마주한다는 건 피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내용은 다른 이슈들로 이내 기억에서 사라진다. ‘안타깝다’, ‘그런 일이 있구나’ 생각하지만 막연함으로 끝이 나거나 흐지부지된다. 그러나 청소년이 살아가는 가정, 학교, 지역 사회 현장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많은 일들이 안전과 생명에 직결된다. 어려움에는 다양한 양상이 있고 심각성의 차이가 있지만, 청소년이 보내는 작은 신호에 민감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알기 어려울뿐더러 대처의 속도 역시 달라진다. 청소년을 지원하는 일의 시작은 언제나 등교의 어려움이나 자해의 정황, 그가 직접 호소하는 몇 가지 내용들이지만 차츰 드러나는 상황은 상상을 넘어설 때가 많다. 매일 끼니와 교통비를 염려해야 할 정도의 극빈함, 여러 이유로 양육자와 함께 거주할 수 없어 청소년 혼자 살아가는 가구 형태, 투병 중인 가족 구성원을 돌봐야 하는 현실, 범죄와 연관되어서 가·피해자 입장에 놓인 사건, 음주·흡연·미디어·마약·도박 등의 중독 증상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 원인을 알지 못한 채 겪는 심리·정서적 괴로움 등을 청소년들은 마주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현장에서는 어려움이 있는 청소년을 발견하고 대안을 마련하고 실행하기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살피고 챙겨야 하는 것들이 많다. 발견된 최초의 시간부터 어려움의 상황을 파악하고 계획을 세우며 자원을 찾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청소년과 신뢰 관계를 쌓고 그이의 안전을 살피는 역할도 병행되어야 한다. 막연하게 끝을 맺거나 잊어버려서는 안 되며 무엇이라도 방법을 찾아 가야 한다.

이런 현상이 하루아침에 심각해진 것은 아닌지라, 교육부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서도 그 대안 마련을 위해 ‘학생맞춤통합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지금까지 학교는 어려움이 있는 청소년을 발견하고 면담하고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일련의 과정이 담임 교사 또는 복지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교사의 몫이었다. 그러나 학생맞춤통합지원에서는 교장·교감 이하 전체 교직원이 복합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조기에 발견하고 개입하고 지역 사회에 연계하는 등 전반의 과정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협력하는 구조를 만들고자 하는 방안이다. 이로써 학생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필요와 요구에 맞는 맞춤형 통합 지원을 제공하여 교육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학생 성장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지원 체계이다. 교육복지 또는 학교 사회 사업 등의 지원 방향이 프로그램이나 자원, 서비스 등 사업별로 학생을 지원해 왔다면, 이제는 학생에게 맞춤형 통합 지원을 하자는 방향의 전환이 핵심이다. 또한 예년까지는 경제 취약 상황에 놓인 학생을 우선으로 지원해 왔으나, 올해부터는 경제적 이유만으로 지원 대상을 규정하지 않고 그 범주를 확대했다. 다시 말해, 심리·정서적 어려움이 있고, 또래 관계를 맺지 못하고, 기초학력 등 학습이 원활하지 않은 이유 등으로 학급이나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힘든 청소년 중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살피고자 하는 방향이다. 나아가 이러한 상황의 학생을 담임 교사 또는 해당 업무를 맡는 교사만이 발견하고 지원하는 일을 감당할 것이 아니라, 학교 전체가 함께 학생을 바라보고 지원 방향을 찾아 갈 수 있도록 체계를 구축하고자 한다.[ref]2024년 현재, 학생맞춤통합지원법안은 입법 절차가 진행 중에 있다.[/ref]

정리해 보면, 복합적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이 증가하고 있고, 교육계와 정치권에서도 대안 마련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또한 가정, 학교, 지역 사회에서는 매일 일어나는 청소년의 상황을 목격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노력은 가정과 학교와 지역사회가 모두 함께 하고 있으며, 관점과 방법에 따라 다른 접근이 있기는 하지만 분명 무언가는 시도하고 있다. 저마다의 애씀이 있음을 기억하는 데에서부터 의미를 찾고 지금 이곳을 청소년이 잘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것을 공통의 관점으로 세우며 조금 더 안전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데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같은 곳으로 향하는 결말

 

청소년의 어려움을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계획을 세워 실행하는 과정에 대해 들여다보자. 다음은 초·중·고 학교 현장에서 마주한 세 가지 케이스이다. 이 내용에서 공통적인 부분을 찾아보자.

나무초등학교[ref]전달과 이해의 편의를 위해 학교와 청소년에 대해 임의로 정한 닉네임을 사용한다.[/ref]에서 등교를 거부하는 청소년 솔바람에 대해 사례 회의를 요청했다. 솔바람은 자주 결석하거나 지각했고, 학교에 오더라도 교실로 들어가기를 꺼렸다.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차선책으로 학교에서는 교내 상담실이나 교무실을 방문하고 귀가할 수 있도록 했으며, 청소년은 이마저도 힘들어서 자주 결석했다. 학교 안에서 솔바람과 대화가 가능한 이는 별로 없었다. 우리가 솔바람을 만났을 때, 혼자 감당하고 있는 외로움이 가장 크게 느껴졌다. 영·유아기부터 지금까지 양육자의 부재, 불안정한 애착 관계, 마음 나눌 존재가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솔바람은 위축되고 어떤 부분에 대한 의욕을 잃었다. 불안이 심화되고 있었고 타인이 자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할 거라는 생각이 지배했다. 그래서 교실에 들어가기 어려워했으며 학교에 나가야 할 의미를 찾지 못했다. 양육자와의 관계와 생활을 안정시키면서 충분히 사랑받고 내면이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학교가 안전한 공간이라는 것을 경험하고 작은 것에 대한 성취와 즐거움을 찾아야 했다. 학교와 솔바람에 대한 지원 계획을 논의할 때, 학교는 우리에게 요청했다. 솔바람이 심리 상담을 받거나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 또는 대안학교를 알아봐 달라는 내용이었다.

태풍중학교에서 등교 불안정, 여러 건의 학교폭력 사건 가해, 성 정체성의 혼란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 비바람에 대해 사례 지원을 요청했다. 담임 교사, 각 분야의 부장 교사, 상담 교사 등이 비바람과의 대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어려웠다. 어쩌다가 비바람과 대화가 잘 되어 학교에서 더 이상 문제 행동을 일으키지 않는 쪽으로 이야기가 되더라도 교문을 나서는 순간 전혀 통제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가 비바람을 만났을 때, 그는 대화에 흥미를 느끼고 자신이 연루된 사건들에 대해 걱정을 한가득 가지고 있는 속마음을 내비쳤다. 출생에 대한 사연이 있어 주 양육자가 바뀌어 왔고, 가정폭력 피해 경험이 있으며, 정서적 지지 체계가 부재한 상황에서 비바람은 혼란스럽고 삶의 중심을 잡기 힘든 것으로 보였다. 가족 안에서 관계를 재점검하고 안정을 찾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했으나 실마리를 찾기 힘들었다. 가족 구성원의 역할이 혼란스럽고, 가족 사이에 오가는 언행이 폭력적이며, 일상을 살아 내느라 주 양육자가 분주하여 여유가 없는 가운데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였다. 학교와 다시 비바람에 대한 지원 계획을 논의할 때, 학교는 우리에게 요청했다. 비바람이 심리 상담이나 약물 치료를 받거나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병원을 연계하거나 맞춤형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대안학교를 알아봐 달라는 내용이었다.

한강고등학교에서 학교 부적응, 가정 내 정서적 방임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 강바람에 대해 사례 지원을 요청했다. 학교에서 바라본 강바람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 진로 방향을 변경하면서 현재 소속된 학교로 전학을 왔고,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며,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과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가족 관계에 불안정한 요소가 있어 이를 살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학교는 우리가 강바람을 만나기 전, 강바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우리에게 요청했다. 강바람이 심리 상담이나 약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연계하거나 가족과 분리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봐 달라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강바람을 만났을 때, 진로에 대한 막연함이 있어 재설정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가족 구성원과 생활하는 데에 불안과 공포가 있지만 지금 당장의 분리 조치를 원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자립을 잘 준비하고 싶어 했으며, 심리·정서적 어려움이 있지만 정신과 약을 복용하면서 도움을 받고 있고, 심리 상담은 받아 본 적이 없으나 필요하다면 받겠다고 했다. 그러나 두세 차례 면담을 실시했을 때, 눈에 띄게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스스로 진로 방향을 설정해 나갔으며, 학습에 대한 욕구를 보여 멘토링을 통해 학습의 기초를 다지기로 했다. 계획했던 심리 상담은 보류했으며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추후에 필요할 경우 진행하기로 했다.

 


그들이 우리에게 말해 준 것들

 

위의 케이스들에서 공통점은 무엇일까?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세 가지 경우를 소개했지만, 올해 상반기가 지난 현시점에는 유사한 내용으로 학교와 소통한 일은 훨씬 많다. 학교가 우리에게 청소년을 의뢰할 때 심리 상담, 약물 치료, 정신과 진료, 입원 치료, 대안학교 등을 요청하는 경우는 몇 건이라고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자주 등장한다.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렇다면 정신과 병원, 심리 상담실, 대안학교 세 가지 공간 정도로 좁혀 볼 때 그곳이 청소년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청소년 솔바람과 비바람은 가정 내에서 양육자가 몇 번씩 바뀌고, 관계들이 불안정한 상황이 이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알아 가고 정리해 나갈 때, 가정에서 주는 안정감은 주요한 역할을 한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이는 정서적 교감과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인식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 솔바람과 비바람은 성장 과정에서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고 느끼지 못했고 매일 대화하고 감정을 나눌 만한 상대가 없었다. 어쩌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맡겨지고 길러지면서 자신이 여럿에게 귀찮은 존재로 여겨졌을 것 같다. 솔바람은 그 외로움을 안고 자기 안에 있는 동굴로 숨어 들어갔고, 비바람은 자신을 상대해 주는 존재를 찾아 집 밖으로 나가 자극적인 일상을 즐기는 것으로 허전한 마음을 채워 가고 있었다. 그즈음에 학교에서 문제 행동이 발견되면서 우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청소년 강바람은 집안에서 늦둥이로 태어나 양육자는 느슨하고 자율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그이의 성장을 지켜봤다. 그러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제들은 강압적으로 통제하고자 했으며 양육자의 태도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 그 사이에서 강바람은 양육자와 반대되는 형제들의 고압적인 언행에 공포를 느꼈고, 진로를 고민하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방황의 시간을 겪었다. 물론 이는 누구나 청소년기에 마주하게 되는 과정이지만 양육자와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주는 메시지가 달랐기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자해와 흡연을 경험하고 방황의 시간을 거쳐 우리를 만났다. 스스로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었으며, 자립하고 싶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솔바람과 비바람을 돕는 입장에서 갖춰야 할 것은 ‘기다림’이었다. 그들이 가정이라는 뿌리에서 찾고자 하는 안정감과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내면 깊숙이 찾아들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뻗어 낼 때까지 마음이 다져지고 위로받고 조금씩 성장해 내야 했다. 결국 필요한 건 안정적인 상황에서 갖는 ‘시간’이었다. 갓 태어난 아기가 가족 안에서 사랑받고 교감하며 크고 작은 일상을 함께해 나가면서 자라는 시간만큼 그이들에게도 그럴 만한 대상과 공간과 기회가 필요했다. 현재의 가정 안에서 실현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궁극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그뿐이었다. 어떤 병리적 어려움이 있어 치료받아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내면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과 양분이 주어져야 했다. 충분하게 인정과 지지를 받으며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이 생길 때, 솔바람은 타인 앞에 자기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될 것이고 비바람은 외부의 자극적인 요소 없이도 차분하게 자기 내면을 채워 갈 수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었다.

강바람은 교육복지를 하면서 만나 온 청소년 중에서도 내재된 힘이 단단하다고 느껴진 청소년이었다. 지금까지의 경험들을 스스로 정리해 내면서 자신이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모습을 구체화하고 있었다. 본인을 힘들게 하는 가족 구성원을 탓하거나 벌주고 싶어 하지 않았고, 강제적으로 현재 생활 형태를 바꾸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성인이 되기까지 몇 년 남지 않은 시간을 자기 성장을 위해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자립하여 자기 삶을 잘 살아 내고 싶어 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우리와 대화하면서 스스로 자기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구체화해 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강바람 역시 어떤 병리적 어려움이 있어 치료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립해 낼 수 있을 때까지 옆에서 살피고 지지하며 그 성장을 같이 지켜볼 존재가 있어야 했다. 때때로 찾아오는 위기의 상황에서 안전한지, 버텨 낼 만한지 여부를 살피는 정도가 필요했다.

솔바람, 비바람, 강바람 세 사람에 대해 여기까지 정리해 낼 수 있었던 근거는 두세 번 정도의 만남에서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였다. 청소년에게, 청소년의 입장에 대해 묻는 질문을 하고, 청소년의 말을 듣고, 청소년과 함께 무엇이 필요한지 찾아가는 과정이 있었다. 특별한 심리 상담 기법을 갖거나 또는 여러 차례에 걸쳐 심도 깊은 심리 상담을 실시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심리 상담사가 아닌 사회복지사이다. 청소년과 서로 신뢰해도 되는 관계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즐겁고 유쾌하게 그리고 마음과 마음이 닿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 사이에 청소년들이 자신의 상황과 스스로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말해 준 것이 주요한 지원 방향의 근거가 되었다. 사실 대부분의 청소년이 그렇다. 그들은 누구보다 자기 상황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며 좋고 싫은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도움을 받으면 좋을지, 이후에 어떤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등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다. 우리는 사회복지 전문가로서 정제되고 정확한 질문을 던지고, 청소년의 말을 해석해 낼 수 있는 관점을 가지고 성실하게 대화에 집중하고 귀 기울인다. 그리고 청소년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목표를 수립하고 자원을 찾으며 그들의 삶을 함께 지켜보는 역할을 한다. 이것을 사회복지 영역에서는 사례 관리라고 부른다.

 


대안에 대한 대안의 필요

 

청소년에게 어려움이 있다고 하여 학교에 방문하면 청소년이 어떤 존재인가 생각하게 된다. 그들이 겪고 있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정신과 병원, 심리 상담실, 대안학교 등을 떠올린다면 청소년은 어떤 존재일까? 청소년은 과연 치료의 대상일까. 혹은 다른 곳으로 분리되어야 하는 존재일까. 혹은 해결되어야만 하는 문제에 불과할까. 이 지점에서 때때로 한국 교육의 현실을 탓하거나 분노하게 되지만, 생각해 보면 그럴 일만은 아니다. 단지 현재 공교육에서 청소년이 겪는 어려움에 접근하거나 복잡한 상황을 풀어낼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대안이 없을 뿐이다. 마땅하게 대안이라고 할 것이 없고, 정신과적인 약물 치료 또는 심리 상담 또는 몇 안 되는 대안학교 등이 전부일 뿐이다.

청소년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가장 쉽게 언급되는 방안이 ‘심리 상담’이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청소년이 겪는 수많은 어려움의 상황에 대해 심리 상담을 시도한다. 실제로 위(Wee)프로젝트라고 하여 학교에는 위클래스, 교육지원청에는 위센터, 교육청에는 위스쿨, 그 외에 가정형 위센터, 병원형 위센터 등이 설치·운영되고 있다. 위클래스는 학교 상담실을 통해 상담·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위센터는 지역 내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여 심리 치료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위스쿨은 상담을 비롯한 인성·직업교육 및 사회 적응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대안교육기관 겸 중·장기 위탁 기관이고, 가정형 위센터는 보호·상담·교육을 통해 학생의 적응 환경을 개선하여 가정 및 학교 복귀를 지원하는 중·장기 위탁 기관이다. 병원형 위센터는 심리적·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위기 학생들에게 상담·교육·치료와 의료 자문뿐만 아니라 필요한 경우 전문의의 병원 치료까지 지원하는 위탁형 대안교육 기관이다. 2023년 기준으로 위클래스는 8,863개, 위센터는 203개소, 위스쿨은 17개교를 운영 중이다. 또한 가정의 문제로 인해 학업을 유지하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가정형 위센터는 19개소, 고위기 학생의 보다 심층적인 지원을 위한 병원형 위센터는 14개소를 운영 중이다.[ref]위 프로젝트 홈페이지(wee.go.kr) 참조[/ref] 또한 정부는 사각지대 청소년이 고위기 상황으로 유입되지 않도록 청소년상담복지센터와 가족 센터를 통해 고위기 청소년 가족 상담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ref]“사각지대 놓인 고위기 청소년에 맞춤형 지원한다”, 여성가족부,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2년 11월 24일.[/ref]

이처럼 우리나라는 심리 상담을 중심으로 한 치료적 접근으로 청소년의 어려움을 바라보며, 이를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그리고 실제로 복합적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은 심리 상담에 대해 이미 많은 경험치가 쌓여 있다. 복합적 어려움이 어느 날 갑작스레 찾아오는 경우는 드물다. 태어난 환경과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어려움들이 중첩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들은 대다수 이미 초등 시절부터 심리 상담을 경험했다. 안타까운 현실은 그런 이들이 10대 중반이 지났을 때부터는 심리 상담에 대해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스무 살이 넘은 후기 청소년의 경우에는 심리 상담에 대한 거부가 더 심하다. 심리 상담 영역의 효과성에 대해 부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통계적 수치로 비교·분석하지는 않겠다. 다만 현재 청소년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심리 상담이 적절한지에 대해 질문하고 현장에서 경험되는 상황을 이야기할 뿐이다.

우리가 만나는 청소년 중에 심리 상담의 영역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케이스들이 있다. 하지만 이를 거부하는 경우 그 이유를 묻는데 청소년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이전에 경험한 심리 상담이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상담사의 태도가 불편감을 주었다, 심리 상담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다는 내용들이다. 이런 경우 이미 부정적인 경험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더 어려운 과제로 남는다. 심리 상담은 본인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진행이 불가하다.[ref]우리 사회에서는 미성년이 상담을 받는 경우 양육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동의를 거부하는 양육자들도 적지 않으며, 이런 경우에는 청소년의 상황이 시급하더라도 접근할 방법이 없다.[/ref] 심리 상담은 본인이 상담사 앞에 나아가서 앉는 과정부터가 상담의 시작이라고 한다. 청소년에게 심리 상담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상담에 대해 필요를 느끼고 스스로 나아가서 상담사 앞에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데, 거부적인 상황에서는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진다.

더구나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청소년상담복지센터 등의 상담 서비스의 경우, 심리 상담에 대해 동의를 했더라도 정해진 상담 시간과 장소에 등장하지 않는 일이 3번 이상 있으면 상담 계획은 종결된다. 심리 상담에 대한 동기와 자발성이 효과를 얻기 위한 주요한 요건이며 상담이 필요한 이들이 많기 때문에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는 상황이지만, 우리가 만나게 되는 청소년들은 사실 그럴 만한 에너지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약속을 했더라도 방문을 열지 않고, 만나기로 한 시간에 휴대전화를 끄고 숨어 버리고, 자신이 왜 힘든 시간을 겪는지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어려움의 시간만 보내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이유로 심리 상담이 필요한 경우라도 연계하였을 때 실패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만나는 청소년 중에 심리 상담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케이스는 상대적으로 적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은 관계적·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을 만나더라도 과연 심리 상담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렇다 할 대안이 마땅하지 않은 상황에서 학교나 가정이 심리 상담으로의 연결을 요청하기 때문에 상담을 필두로 생각하게 될 뿐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왜 우리는 심리 상담을 떠올리는가? 왜 심리 상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청소년 지원의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10여 년간 수없이 되뇐 질문이지만, 내놓을 수 있는 답은 대안에 대한 대안이 부족하다는 말뿐이다.

그렇다면 정작 해야 하는 질문은 다른 쪽에 있는 것 같다. 지금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청소년의 어려움이 다양한 양상으로 심각해지고 있는 시점에서 실마리를 풀기 위한 고민이 더해진다. 더구나 내가 활동하는 지역에는 중·고등학생 연령의 청소년에 대해 전문으로 사례 관리 하는 기관이 아주 소수이다. 그 말은 청소년과 지속적·정기적으로 만나고 대화하고 함께 목표를 설정하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실행 과정을 지켜보며 지지하고 격려하는 자원이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심리 상담에서 청소년들이 한계를 느끼는 이유는 여기에도 있을 것 같다. 자신의 힘듦을 상담사 앞에 가서 이야기하고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도를 해 보고자 다짐하더라도 상담실을 나오는 순간부터 다시 혼자 살아 내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전보다 조금 더 나은 삶, 다른 생활 방식, 긍정적인 사고를 향한 변화를 시도해 보지만 주변 환경이 달라지지 않고 지지 체계가 없이 홀로 그것을 해내려고 할 때 너무나 쉽게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금 청소년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다 보면 ‘청소년과 대화하고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종착지에 도달한다. 청소년에게 말을 건네고, 질문하고,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없다. 어려운 환경에서 양육자는 경제 활동 등의 이유로 시간적·정서적 여유가 없다. 교사는 학습과 관련된 교육을 담당하는 역할 외에 그 영역을 확장할 여력이 없다. 지역 기관에 아동·청소년 지원 기관들이 있기도 하지만 프로그램이나 사업 위주로 운영된다. 결국 청소년을 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삶의 과정을 함께하며 지켜보고 지지할 사람이 없다. 청소년의 이야기를 듣고 어려움의 원인을 찾으며 나아갈 방향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심리 상담 영역에서 실현할 수 있다면, 그 후에 청소년이 크고 작은 시도를 통해 실패와 성취를 경험할 때 그 과정을 함께 바라보며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역할이 필요하다. 평생을 그렇게 할 수 없더라도 어느 정도 내면에 힘이 생기고 스스로 살아 낼 동기와 여력이 생길 때까지는 지지 체계가 필요하다. 실상 이 지지 체계는 가정이나 사회관계 안에서 만들어져야 하지만, 그것이 부재한 상황이라면 의도적으로 경험하게 하고 스스로 함께 살아갈 사람들을 찾고 서로 그러한 존재가 되어 줄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야 할 일이다.

사람의 곁이 필요하다. 곁을 내어주고 살피며 응원하고 도울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청소년은 무언가를 시도하고 크고 작은 실패와 성공을 해 볼 수 있는 여지가 필요하다. 그것이 허용되는 공간과 시간과 사람이 필요하다. 이쯤에서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청소년은 과연 누구와 이 모든 것을 함께할 수 있을까. 청소년 개인의 몫으로 남기는 것이 정당할까. 인간이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전제할 때, 청소년이 겪는 어려움을 개인의 몫으로 남길 수 없다. 그래서 우리 기관은 청소년과 만나고 대화하며, 우리와 함께 청소년을 마주할 이들이 누구인지 찾고 설득하며 그 끈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그 끈이 바로 학교 교사이며 지역 기관의 종사자들이고 청소년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다. 그들과 안전한 구조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관계를 경험하고 연습하면서 청소년이 가정에서 혹은 사회관계 안에서 당면한 어려움을 함께 이겨 내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결에서 우리는 청소년의 양육자를 살피고 설득하며,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정서적 체온을 나눌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자 실낱같은 가능성을 향해 애쓰는 활동을 이어 간다.

지금까지의 연재에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가정에서 학교에서 마을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는 어디에 있는지 함께 생각해 왔다. 이후로는 우리는 청소년과 함께 살아가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가정과 학교와 마을과 사회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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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