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호[연재] 성교육에서 다루어야 하는 항문 섹스와 역량 | 나영정(타리)

202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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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에서

다루어야 하는

항문 섹스와 역량

 

플레져와 항문

 

나영정(타리)

taripink@gmail.com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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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바디 플레져랩팀장


 

2011년,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 발의안이 심의되는 과정에서 차별 금지 사유 중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임신·출산 등이 삭제될 위기를 맞아 성소수자들이 서울시의회 로비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그때 농성단은 항문 섹스에 대한 혐오를 이용한 반격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반대 세력이 “엄마~ 나 오늘 학교에서 항문 성교 배웠어요”라는 피켓을 들었을 때 당황스러웠다. 물론 성소수자 학생을 항문 성교 하는 사람으로 재현하는 의도에 대해서, 학생인권조례를 항문 성교 가르치는 조례로 환원시키는 의도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할 때에도 언제나 등장했던 이러한 논리들은 차별 금지나 인권 자체를 동성애와 같이 ‘나쁜 것’으로 치환하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졌다. 대중들에게 즉각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켜, 차별 금지나 인권과 같은 담론과 만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인권’과 ‘차별 금지’와 같은 것은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는데 동성애는 그런 불쌍한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 오히려 그들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가 반복되었다. 소위 ‘항문 성교’ 피켓이 등장했을 때 농성단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이라며 맞섰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항문 섹스를 학교에서 배워야 한다고 정면으로 반박하지 못했다. 여전히 이런 주장은 공론장으로 나오기 어렵다. 하지만 저 피켓을 든 사람들이 해외에서 포괄적 성교육이 도입된 이래 실제로 학교에서 항문 섹스를 가르친다고 했을 때, 포괄적 성교육을 당장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학년에 어떤 내용으로 항문 섹스를 다루었는지, 교사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학생들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 교실의 풍경과 그러한 지식이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현장에서 성소수자 학생들은 좀 더 편안해졌는지 미친 듯이 궁금해졌다. 적어도 나에게는 저 혐오 피켓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후회가 지금까지 포괄적 성교육을 정치적인 의미로 고민하고, 항문 섹스에 시민권을 부여하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하게 만들었다.

 


“엄마, 나 오늘 항문 성교 배웠어요”가 쏘아 올린 공

 

〈무엇이든, 누구에게든 성교육이되〉 연재의 첫 번째 주제로 항문 섹스를 다루는 것은 안성맞춤이다. “성감대는 사람마다 다양하다”, “모두가 성기 중심적인 섹스를 하거나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성과학적 지식이 상식이 된 것도 같은데 항문에는 여전히 많은 오명과 혐오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항문 섹스에 대해서 모르면서 반대한다. 항문 섹스를 배우지 않고, 상상해 보지 않고, 욕망해 보지 않고 반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항문 섹스에 대한 반대는 구체적인 행위가 아니라 항문 섹스를 한다고 여겨지는 사람에 대한 반대가 되었다. 이렇게 항문 섹스는 특정한 이들(‘남성과 섹스하는 남성’)[ref]‘남성과 섹스하는 남성’(MSM, Men who have sex with Men)은 성 건강을 다루는 보건학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이다. 이 용어를 사용할 때 항문 섹스를 하는 이들을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으로 환원하지 않을 수 있다. 이성애자로 정체화한 남성도 성적 쾌락을 위해서 남성 혹은 여성과 항문 섹스를 할 수 있다. 보건학적인 관심은 항문과 음경이 결합하는 섹스가 가진 성매개 감염 등의 위험도에 주목하는 것이기 때문에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여기에서 말하는 ‘남성’은 음경을 가진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ref]이 특별한 동기(비생식적, 비정상적 쾌락)로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성교육에서는 다루는 것이 불필요하거나 과학적이고 중립적인 태도로 다루는 것이 부적절하다고도 여겨진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항문 섹스를 하는 사람들은 ‘남성과 섹스하는 남성’으로 한정되지 않고, 비생식적 동기의 섹스가 모두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받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항문 섹스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오명과 혐오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 항문은 젠더, 정체성, 장애, 나이, 인종을 불문하고 누구나 가지고 살아가는 신체 기관이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모두’에게 열려 있는 가능성이며, 항문에 대한 낙인이 걷힐 때 플레져에 대한 지평은 크게 확장될 것이다. 이 보편성과 이로움을 부정하고 항문 섹스를 특정한 대상과 특별한 목적으로 한정하고 규제해 온 권력을 드러내는 것이 플레져와 항문을 논의하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항문 섹스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서 어디에서 이루어져 왔을까. 섹스 자체에 대한 논의가 공론장에서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항문 섹스 또한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만 크게 두 가지 흐름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하나는 시스젠더 남성의 성적 쾌락을 위해서 그의 파트너인 여성이 항문 섹스에 응하는 것이 이벤트성으로 권장되는 것이다. 성교육의 현장에서 들었던 항문 섹스에 대한 이야기는 주로 이성애자 여성이 남성 파트너가 요구하거나 제안하는 불쾌하고 불편한 경험담으로 회자되고, 자신에게 어떤 의미나 감각으로 다가올지 자세히 알아보거나 탐색할 기회 없이 거부하거나 참아 내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다른 하나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남성과 섹스하는 남성’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섹스의 방식으로 인식된다. 여기에서 주로 규제되는 대상은 (남성) 동성애자이다. 국가는 비생식적 목적의 섹스라고 하더라도 부부간에, 남편의 성적 쾌락을 적절하게 해소할 수 있는 섹스는 가족 계획 시절에도 권장되었다. 그것이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유지하는 데 활력이 되기 때문에, 여성보다 왕성한 성욕을 가졌다고 간주된 남성의 기준에 부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시도와 도전은 여성의 책임 내지 역량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같은 항문 섹스라도 (남성) 동성애는 정상적인 가정을 위협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사실 반동성애 운동 진영에서 자주 주장하는 “한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강력한 항문 섹스, 처음부터 하지 맙시다”와 같은 주장은 사회를 병들게 하는 ‘마약’과 같은 것으로 비유하는 멘탈리티다. 오히려 항문 섹스를 즐겨 하는 사람들조차 의문을 가지게 하는 이러한 주장은 오히려 항문 섹스를 신비화하고, 공포스럽게 만든다. 이 신비화된 공포 전략이 영향력을 가지게 되면서 항문 섹스에 대한 지식이 차단되고, 한 번도 자신이 중심이 되어 항문 섹스를 생각해 볼 기회가 없어진다. 그 상황에서 항문 섹스를 제안받는 것 자체가 모욕으로 느껴진다. 항문 섹스에 대한 제안이나 요구가 모욕이나 폭력으로 느껴진다면 그 느낌은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그 느낌의 출처가 섹스를 제안하고 진행하는 전반적인 상황에서 동의와 협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조건에 기인할 가능성이 큰데 그 탓을 ‘항문’에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점검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항문 섹스를 하게 될 수도 있는데 섹스하기 전, 하는 도중, 하고 난 이후에 무엇을 준비하고 파트너와 무엇을 소통하고,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이제는 항문 섹스에 씌워진 신화를 벗겨 내고, 다른 섹스 방법이 그런 것처럼 때로는 지루하고 어쩌다가 폭발적이며 어쩌면 다른 섹스보다 좀 더 귀찮고 번거롭고 까다롭다는 사실을 직시할 때가 왔다. 내 몸에 항문이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지하고, 항문이 배변하는 역할로 한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가능하면 모든 사람에게 긍정적인 의미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성교육의 역할이다. 성적 쾌락이 특권이 아닌 것이 되도록 노력하고, 차별과 낙인에 가까운 이들에게 힘과 즐거움이 될 수 있도록 애쓰는 것이 성교육이 되어야 한다. 성적 쾌락을 정상 가족 안으로, 남성 중심적으로 규제하고 통제하려는 권력에 맞서는 것이 성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모든 사람이 가지고 살아가는 항문은 성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다.



항문 섹스에 대해 모른 채 반대하기를 넘어서

 

이번 연재는 셰어가 진행하는 행사 ‘무엇이든 물어보셰어’와 연결되어 있다. 올해 5월부터 10월까지 성매개 감염, 항문 섹스, 월경, 트랜지션, 자궁 건강, 피임과 임신 중지를 주제로 매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가지는데 각 주제에 관해서 고민과 질문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와 아무런 두려움이나 낙인 없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배워 가는 시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지난 6월에는 항문 섹스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때 나눈 이야기들 중 일부를 지면으로 연결하고, 현장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을 포함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또 다른 대화를 촉발하고자 한다.[ref]셰어는 즐겁고 안전한 항문 섹스를 하기 위해서 성교육에서 구체적인 경험과 방법이 공유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 지면에서 어떤 내용과 범위를 다룰 것인지를 두고 《오늘의 교육》 편집부와 이견이 있어 원칙적인 내용을 다루기로 하였다.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글에서 참조할 수 있다. “즐겁고 안전한 항문 섹스를 하는 방법” bit.ly/항문섹스하는방법[/ref]

항문 섹스가 섹스 중의 하나이며, 다른 섹스에 비해서 특별한 편견과 낙인이 있으며, 항문 섹스를 둘러싼 정보나 경험이 제대로 유통되지 않고 있다는 진단은 항문 섹스를 성교육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한 질문과 연결된다. ‘학교에서 항문 섹스를 배우면 안 된다는 명제가 왜 당연한 것처럼 여겨질까? 왜 청소년에게 임신·출산과 관련 없는 성적 즐거움 또는 그것을 추구하는 행위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전제에 아무도 반박하지 않거나 못했을까?’, ‘항문 섹스를 비롯해서 성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를 교육에서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성적 즐거움에 대해 떠올리고 표현하는 일이 수치심으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을까’,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룰 수 없다면 무엇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해서 답하기 위해서는 성교육이라는 시공간에 놓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성교육이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누구와 함께 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이 질문과 대답은 매번 제기되어야 하고, 매번 달라질 수 있다. 질문과 답을 찾아가기 위해서 항문 섹스에 필요한 준비와 방법, 항문 섹스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소개한다. 이는 항문 섹스에 대한 신화를 벗겨 내기 위해서, 항문 섹스를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 고민하기 위해서, 성적 즐거움을 성교육에서 누락시키지 않기 위해서, 모든 것을 한 번에 할 수 없다면 누구와 어디에서부터 시작할지 선택하기 위해서이다. 무엇보다 항문 섹스에 대해서 모른 채로 항문 섹스를 반대하지 않기 위해서다.

모든 섹스는 성기 간의 결합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셰어는 성교육을 할 때 섹스의 종류를 항문-음경 섹스, 질-음경 섹스, 구강 섹스, 손가락 섹스, 섹스 토이를 이용한 섹스로 분류해서 설명한다. 이 종류들은 한 번의 섹스에 다 일어날 수도 있고 일부 혹은 한 가지만을 하기로 선택할 수 있다. 당연히 모든 섹스는 온전하고 완전한 섹스다. 생식을 목적으로 한 섹스가 아닌 경우 다른 유형의 섹스 간에는 즐거움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한 아무런 차이도 없다. 남는 것은 어떻게 즐거운 섹스를 각자 정의하고, 실행하고, 위험을 예방하고, 손해를 최소화할 것인지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섹스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동의와 안녕을 구하는 것이다.

항문 섹스를 위해서 특별히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항문에 대한 지식이다. 항문은 얇은 점막과 수많은 주름으로 이루어져 있다. 민감하고 쉽게 손상될 수 있지만 탄력성도 엄청나다(가끔 내가 낳는 빅 똥을 떠올려 보세요). 하지만 장 내부는 감각이 무디다. 한편 장 내부를 자극함으로써 전립샘이 자극되면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이 점을 기억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항문에 대해서 낯선 감정과 수치심, 혐오감 등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지만 이 감정이 마땅한지, 자연스러운지 한번 생각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내 몸에 대해서 스스로 위계를 두고 평가하는 것은 아닌지, 항문을 왜 더럽다고 느끼는지, 섹스를 하면서 항문을 보거나 보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는데 본격적으로 보거나 만지거나 키스하는 것은 왜 특별히 싫은지. 항문에 대한 접근성을 나도 모르게 통념과 낙인으로 인해서 차단당해 왔던 것은 아닌지, 타자화하고 밀쳐 내기보다 더 가깝게 끌어당겨서 애정 어린 시선으로 자세히, 정확하게 보게 될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 알아보는 것도 좋다.

성매개 감염은 성교육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콘텐츠이지만, 현재 교육에서 다루어지는 방식은 탈맥락적이고 분절적인 경우가 많다. 어떤 상황에서 감염의 가능성이 높아지는지,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인지 여러 개인지, 감염된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연속적으로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동성애 = 항문 섹스 = 에이즈”라는 프로파간다가 과학적 지식인 것처럼 버젓이 유통되는데, 이러한 교육은 HIV 예방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 주지 않은 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고, 항문을 두려워하게 만들 뿐이다.

성매개 감염에 대한 지식을 배우면서 우리는 섹스의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 신체 기관의 특성이 다양하다는 것, 섹스에 어떤 신체 기관을 사용할 것인지는 정체성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성매개 감염은 몸이 타인이나 외부 환경과 접촉하면서 발생하는 복합적인 작용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성교육은 누구도 자신의 몸을 소외시키지 않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즐거움과 안전에 대해 이해하고 결정하는 역량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항문 섹스는 포괄적 성교육의 바로미터

 

2019년 틴보그지에 Gigi Engle가 쓴 “항문 섹스: 안전, 방법, 팁 등”[ref]www.teenvogue.com/story/anal-sex-what-you-need-to-know[/ref]의 제목이 글이 실려서 큰 화제와 논란이 되었다. 이 글에서 저자는 인터넷에 떠도는 항문 섹스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는 포르노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성 경험자를 위한 조언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성소수자 청소년을 위한 글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여러분이 누군지, 누구와 섹스하고 있는지, 누구와 섹스하고 싶은지와 상관없이 엉덩이와 관련된 알아야 하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를 느꼈고 칼럼을 통해 사람들이 항문 섹스를 왜 하는지, 전립샘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항문 섹스는 어떻게 다른지, 파트너와 소통하는 방법, 성매개 감염을 예방하는 방법, 분비물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서 쉽고 간단하게 정보를 제공하였다.

Athena Gayle는 〈여성을 위한 항문 성교육 재구성〉[ref]eshaw.com/reframing-anal-sex-educationfor-women/[/ref]이라는 논문에서 “2019년에 게시되어 논란을 불러일으킨 Gigi Engle의 “항문 섹스 : 안전, 방법, 팁 등”이라는 제목의 글은 학술 연구와 대중 미디어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 주는 기념비적인 사례입니다. Engle의 작업은 민감한 주제에 대한 관련 정보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주류 미디어의 경계를 넘어 논의를 확장하는 데 기여했습니다”라고 평했다. 이 코멘트를 통해서 영어권에서도 10대에게, 여성에게 항문 섹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학술 연구나 대중 미디어 콘텐츠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Athena Gayle는 항문 섹스에 대한 지배적인 이야기가 대부분 음경 삽입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 여성의 경험과 성적 취향, 비이성애적 관계를 간과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미디어에서 여성의 항문 섹스 경험을 부정적이고 공포스러웠던 것으로 재현할수록 항문 섹스에 대한 신비화를 부추겨 남성에 의한 강압적인 항문 섹스가 추동될 수 있고, 항문 섹스 자체에 대한 낙인을 강화할 위험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저자는 항문 섹스를 성교육에서 다룰 때 음경 삽입 중심의 편견을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성을 강조하고, 성교육이 개인의 신체와 성적 경험에 대해 정보에 근거한 결정을 내리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역량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성소수자에게, 청소년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역량을 부여할 것인가가 결국은 관건이 된다.

항문 섹스에 대한 질문과 고민은 결국 보편적인 성교육, 성적 권리에 대한 질문과 고민으로 연결된다. 몇 살 때, 어떤 정보를, 얼마만큼 접하는 것이 아동·청소년의 건강과 권리에 부합하는지 일괄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사람이 처한 상황과 필요에 따라 필요한 정보의 양과 종류는 달라질 수 있다. 무언가를 해석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권한을 당사자에게 부여하고자 할 때 필요한 것은 충분하고 정확한 정보, 그리고 무엇이든 상의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이다. 문제는 성 건강과 성적 즐거움에 관한 정보를 인권과 분리하고, 그러한 정보를 제공할 책임이 있는 이들이 자의적이고 비합리적인 기준에 근거해서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아동·청소년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인권이 유예당하는 한국 사회의 상황과도 당연히 맞물린다. 누구든 무언가를 처음 접했을 때, 충분한 정보가 없을 때, 충분히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미숙한 결정을 할 수 있다.

또한 누구든 자신이 한 해석과 결정과 실행에 대해서 다시 평가하고, 수정하거나 후회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결정이 타인에 의해서 이루어졌거나 의도적으로 정보가 차단된 상황을 강요당했을 때 해악이 훨씬 크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복잡하고 어렵다. 무엇보다 문제를 겪는 당사자가 문제 해결 과정에서 소외되면 해결은 더욱 지난하고, 문제 해결의 과정 자체가 또 다른 고통을 야기하며, 회복하고 그다음으로 나아가기도 어렵다. 취약한 조건에 놓인 사람일수록 구조적인 차별이나 폭력을 경험하면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는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누군가 항문 섹스를 했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차별과 낙인이다. 당사자가 청소년이나 여성,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짊어져야 하는 부담과 불이익이 예방과 치료를 가로막아서 성 건강을 침해하고, 학교나 직장, 가족 안에서 겪을 비난과 차별로 인해서 경험을 말하는 것조차 어려우며 이 모든 상황이 파트너와의 협상을 어렵게 해서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성교육의 주체는 이 상황에서 어떤 관점과 태도를 갖추고, 어떤 정보를 제공하고 어떤 변화를 함께 만들어 나갈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숨겨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이 어려워진 삶의 조건에서 살아간다. 오히려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가 가려지고, 정작 필요한 누군가에게는 가닿지 않고, 당사자가 원하고 필요한 정보를 같은 방향에서 해석하고 함께 결정할 사람이 부재한 상황에서 살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구나 무엇이든 질문하고 답을 구할 수 있는 관계와 시공간, 자신에게 필요한 결정에 대해서 그 사람 편에서 함께 고민하고 도와줄 사람,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거나 수정하고 싶을 때 낙인이나 차별 없이 그 과정을 진행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는 사회이다. 마지막으로 항문은 아무런 죄가 없다. 항문을 좋아하기, 항문 섹스를 다정한 시선으로 알아보기는 확실히 모두에게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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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