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해
‘응용행동분석’은
존재하는가
발달장애라 명명된 학생 행동에 대한 두 가지 접근 : ABA vs. CHAT
윤상원
yadayada@hanmail.net
특수 교사,
《누구를 위해 특수교육은 존재하는가》 저자
들어가며
: “이른바 문제 행동에 대한 다양한 솔루션들”
“친구는 무슨 친구, 피해만 주는데…….”
발달장애라 명명된 민재(가명)에 대한 급우들의 인식을 조사한 내용 중 일부다. 민재에 대한 같은 반 친구들의 인식을 조사하게 된 경위는 민재와 친구들 사이의 잦은 갈등 때문이었다. 친구들이 말하는 갈등의 원인은 민재가 친구들을 향해 욕설을 하거나, 옆구리를 찌르고, 때로는 손바닥으로 친구 머리를 치는 등의 폭력적인 행동이었다.
빈번한 갈등으로 인해 민재는 통합 학급에서 수업을 받고자 하는 바람과 달리 하루에 한 시간 정도만 겨우 통합 학급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그 한 시간마저도 학교장과 동료 교사들의 직간접적인 압력으로부터 지켜 내느라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이 제시한 솔루션은 세 가지였다. 먼저, 교장과 동료 교사들은 특수학교로의 전학을 부모에게 종용할 것을 권했다. 다음으로 의사, 상담사 및 사회복지사는 항정신성 약물 복용을 추천했다. 마지막으로 특수교육 전문가들은 소위 말하는 문제 행동을 수정하기 위한 응용행동분석인 ABA(Applied Bahavior Analysis)와 긍정적 행동 지원인 PBS(Positive Behavior Support)를 적극 권했다.
전학과 약물 복용이라는 두 가지 솔루션은 이 글의 논의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먼저, 특수학교로의 전학을 종용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일 뿐만 아니라 시설이 갖는 여러 가지 폐단을 고려할 때 바람직하지 못해 논의에서 제외시켰다. 또한 약물을 권하는 학교 사회의 문제점은 《오늘의 교육》 67호(2022년 3·4월)에서 심도 있게 다루었기에 논외로 한다.
이 글에서는 민재의 폭력적 행위와 이로 인한 갈등을 다수의 특수교육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ABA 및 PBS에서는 어떻게 접근하고 있으며 그 한계점은 무엇인지 논의할 것이다. 나아가 ABA 및 PBS의 이론적 근간이 되는 행동주의의 문제점과 ABA의 부작용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ABA의 한계와 부작용을 넘어서기 위한 대안적 관점으로 문화역사적 활동 이론인 CHAT(Cultural Historical Activity Theory)을 제안하고 CHAT의 시각에서 민재의 행동을 이해해 보고자 한다.
민재의 행동에 대한 ABA의 시각
: “행동의 원인을 간과하는 ABA”
먼저, ABA에서는 민재의 행동을 교실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적응 행동인 ‘문제 행동’이라고 부른다. ABA에서 문제 행동은 일상생활에서 정상 범주를 넘어서는 부적응 행동 또는 타인에 의해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행동을 말한다. 타인으로서 민재의 급우들이 민재의 행위가 학생 또는 친구로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진술한다는 점과 민재 개인이 다수가 적응하는 교실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문제 행동이 된다.
민재의 문제 행동에 대해 ABA에서 제시하는 처방은 민재가 싫어하는 벌이나 좋아하는 보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ABA에서는 인간의 모든 행동을 자극에 대한 반응이 반복되고 학습된 결과로 본다. 그래서 폭력을 사용할 때마다 민재가 싫어하는 벌을 줘서 다시는 못 하도록 하거나, 폭력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민재가 좋아하는 상을 줌으로써 비폭력적인 행동의 빈도를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ABA는 행동의 원인을 간과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사람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하나의 결과에 앞선 이유를 알 때 적절한 해결점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ABA는 문제 행동에 선행하는 행동의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분석하지 않은 채 문제 행동 발생 후 후속 조치로서 혐오하는 벌이나 선호하는 보상만을 제공할 뿐이다. 이렇게 행동이 발생한 원인과 관련된 선행 조건들에 대한 조정 없이 사후 상벌만으로 행동의 변화를 유도하려 할 때 실질적인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예를 들어, 음성 언어보다는 몸 언어가 익숙한 발달장애라 명명된 학생이 수업 시간에 계속 일어나서 책상 밑으로 들어가는 문제 행동을 보인다고 가정해 보자. 교사는 학생이 문제 행동을 보일 때마다 복도로 나가서 서 있게 하거나 문제 행동을 보이지 않는 시간에는 학생이 좋아하는 사탕을 주어 보아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학생이 책상 밑에 숨는 행동을 보이는 진짜 이유는 창가 옆에 있는 이 학생의 책상 위로 따가운 햇살이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이 경우 문제 행동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좌석을 창가에서 교실 가운데로 옮기는 것이 실질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민재의 행동에 대한 PBS의 시각
: “직접적으로 관찰되지 않는 것들을 간과하는 PBS”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 상벌만을 제시할 뿐 행동의 원인은 무시했던 ABA에 대한 반성으로 문제 행동을 야기하는 선행 조건들을 분석하고 조정함으로써 행동의 변화를 모색하는 PBS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PBS는 문제 행동 예방을 위해 교실이나 가정 등 일상적인 상황에서 관찰 및 인터뷰를 통해 문제 행동을 강화하는 원인으로서 문제 행동 발생 직전의 조건들과 문제 행동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환경적 요인들을 분석하여 조정한다.
예를 들어, 민재의 욕설을 예방하기 위해 교실에서 민재를 관찰한 후 욕설이 나오기 전에 민재에게 어떤 자극들이 있었는지 분석한다. 그리고 분석 결과 민재의 욕설에 앞서 민재가 지루해서 하품을 하는 모습이 빈번히 관찰되었다면, 민재가 지루함을 느끼는 상황이 선행 조건이 된다. 이러한 문제 행동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재가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좀 더 민재가 좋아하는 활동들로 선행 조건들을 조정하면 된다. 더불어 욕설을 대체하기 위한 바른 말들을 민재에게 가르치고 이를 실천하면 칭찬 스티커를 주는 것이 대체 행동 교수와 긍정적 보상에 해당한다.
하지만 PBS는 문제 행동의 원인은 관찰 가능한 행동 내지는 환경에 있다는 확신 아래 현재 직접적으로 관찰되지 않는 것들을 간과하는 문제가 있다. 인간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개인의 삶의 역사는 물론이고 그가 속한 사회의 문화까지 총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현재 한 사람의 행동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 관찰자의 눈앞에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이 지나온 삶의 경험들을 이해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그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환경의 배후에서 부단히 영향을 미치는 특정 상황과 얽혀 있는 문화와 역사적 배경 또한 이해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내리는 처방이란 빙산의 일각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며, 이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이 곧 무너질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CHAT의 눈으로 바라본 민재의 행동
: “부적응적 적응 행동”
ABA와 PBS의 편협한 시각에 대한 대안으로 문화역사주의 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는 한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정서적 경험을 이해해야 함을 주장했다.[ref][/ref]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할지는 자신의 판단 능력(이성)에 기대어 있다. 그런데 행동을 결정하는 이성은 감정이라는 정서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 이에 비고츠키는 인간의 이성은 감정과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에 한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삶의 과정에서 몸으로 직접 체험한 정서적 경험들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특정 상황에 대해 타인들과의 다양한 경험 속에서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느냐가 이후 그와 유사한 상황에서 자신의 행동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근거는 최근 신경과학에서 뇌 영상 촬영 도구의 발달로 인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 교수는 광산 사고로 뇌의 정서를 담당하는 영역과 이성을 담당하는 영역 사이에 연결이 끊어진 환자의 사례를 통해 정서가 이성적 판단과 행동에 중요한 역할을 함을 보여 준다.[ref][/ref] 이 환자는 사고 이후에도 계산 능력이나 IQ와 같은 지적 능력은 사고 이전과 변화가 없었지만, 사고 이후 간단한 약속을 잡는 사소한 일에서부터 직장 생활에서 동료들과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지 판단하고 선택하며 실행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사고 이후 이혼과 해고를 거듭한 그는 결국 부랑자가 되었다. 이 사례는 인간이 특정 상황에 대해 어떤 행동을 선택할지에 대한 이성적 판단 능력은 그 상황과 유사한 이전 경험에 대한 느낌에 기대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민재의 사례에서도 이는 여실히 드러난다. 아래 진술은 우연히 민재의 친구들이 민재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그 XX 진짜 불쌍했는데…….”
“맞아! 옛날엔 때려도 꼼짝도 못 했는데…….”
그랬다. 민재는 중학교 때까지 학교에서 조용한 아이로,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에게 집단적으로 학교폭력을 당했다. 친구 관계에서의 과거의 부정적 감정은 친구들이 조금만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폭력으로 반응하게 만든 것이다. 민재에게 친구들과의 경험은 자신을 향한 온갖 욕설과 폭력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 정서적 경험들이 조그마한 갈등을 유발하는 거리만 생겨도 민감하게 즉각적으로 반응하게끔 뇌의 정서적 영역이 환경에 적응하여 성장한 것이다. 하지만 PBS의 차원에서 행동을 관찰하고 분석하면 이러한 정서적 경험의 역사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과거의 일이기 때문에 현재 폭력적인 행동의 실제 원인을 찾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문제 행동 예방을 위해 대체 행동을 가르친다 해도 머리로는 이해하더라도 가슴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실천으로 이행되기 어렵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필요한 좋은 전략이나 말도 이미 친구들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뇌리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면 말과 실천은 따로 놀 수밖에 없다. 그래서 표면에서 드러나는 수준에서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관찰되는 수준에서 대체 행동을 제시해도 그것이 행위의 변화로 잘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비고츠키는 한 사람의 행동은 한 사회의 역사적 산물인 문화에 대한 적응 행동이라고 주장하며 ABA 및 PBS에서 말하는 부적응 행동으로서 문제 행동을 정의하는 것을 비판한다. 비고츠키는 인간은 ‘문화 역사적 공기’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고 본다.[ref][/ref] 이런 인간이 어떠한 문화적 공기 속에서 살아가느냐가 그 사람의 뇌의 주름과 그 주름을 타고 표출되는 행동에서 적응의 방향성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한 집단 또는 사회의 문화는 한 사람을 대하는 타인들의 정서적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치며 이는 한 사람의 적응에 있어 기저를 형성하는 정서적 경험을 구성한다. 이런 측면에서 부적응적으로 보이는 한 사람의 행동은 실상 그를 향한 사회의 정서적 태도를 반영한다. CHAT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사람에게도 부적응적 행동은 성립할 수 없으므로 ABA 또는 PBS에서 말하는 부적응 행동으로서 문제 행동이라는 정의는 한 사람의 행동을 사회의 문화나 역사와는 무관한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오류를 낳는다.
철학자 우치다 타츠루는 부적응적 적응과 관련하여 ‘은둔형 외톨이’ 예를 통해 잘 설명한다.[ref][/ref] 우치다 타츠루는 일본 사회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들(집 안에만 칩거한 채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는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 보통 6개월 이상 사회적 접촉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일본 사회에 부적응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과잉하게 적응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개인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하거나 왕따를 시키는 일본의 학교나 사회 환경에서 왕따를 당하며 상처를 받느니 단절을 통해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둔 것이다. 이는 부적응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과잉하게 자신을 보전하기 위해 적응하는 ‘부적응적 적응 행동’으로 볼 수 있다.
나가며
: “어찌할지 모를 먹먹함을 견디는 힘을 가진 전문가”
지금까지 민재의 갈등 행동을 ABA 및 PBS의 관점에서는 각각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더불어 각 관점에서의 제한점들도 알아보았다. 대표적인 제한점으로 관찰되는 특정 행동에 대해 눈에 보이는 표면적 이유만을 쫓는 것은 마치 빙산의 일각을 붙잡고 빙산에 대해 모두 알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CHAT은 한 개인의 행동이 가진 원인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솔루션을 제시하기 위해 지금 눈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특정 행동을 관통하며 유유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한 개인에 대한 사회의 문화적 태도와 그로 인해 체험하게 되는 정서적 경험들에 대한 충분한 분석과 사유가 전제되어야 함을 제안한다.
또한, CHAT은 ABA 또는 PBS의 관점에서 특정 상황에 대한 개인의 부적응의 결과로서 문제 행동을 정의하는 관점을 부정한다. CHAT은 모든 인간은 다른 여타의 생명체와 같이 적응하는 존재이며, 그 적응의 과정에서 타인의 나를 향한 부정적인 정서와 행동이 나의 부적응적으로 보이는 형식의 적응 행동을 야기한 것으로 바라본다. 이는 한 사회 또는 집단이 특정 누군가(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등)에게 부정적인 태도와 정서를 가지고 관계한다면 그 특정 누군가는 부정적 정서 경험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남들이 보기에 부적응적으로 보이는 적응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한 사회가 누군가에게 어떤 정서적 환경을 제시하고 있는가에 대한 반성을 유발한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전문가는 쉽사리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음에서 오는 먹먹함을 견뎌 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이임을 나를 포함하여 수많은 특수교육 전문가들이 잊지 않기를 바란다.
❶
레프 비고츠키, 배희철·김용호 옮김(2011), 《생각과 말》, 살림터.
❷
안토니오 다마지오, 김린 옮김(2017), 《데카르트의 오류 - 감정, 이성 그리고 인간의 뇌》, 눈출판그룹.
❸
제임스 V. 워치, 박동섭 옮김(2014), 《보이스 오브 마인드》, 학이시습.
❹
우치다 타츠루(2013), 〈학교교육의 끝〉.(blog.tatsuru.com/2013/04/07_1045.html)
누구를 위해
‘응용행동분석’은
존재하는가
발달장애라 명명된 학생 행동에 대한 두 가지 접근 : ABA vs. CHAT
윤상원
yadayada@hanmail.net
특수 교사,
《누구를 위해 특수교육은 존재하는가》 저자
들어가며
: “이른바 문제 행동에 대한 다양한 솔루션들”
“친구는 무슨 친구, 피해만 주는데…….”
발달장애라 명명된 민재(가명)에 대한 급우들의 인식을 조사한 내용 중 일부다. 민재에 대한 같은 반 친구들의 인식을 조사하게 된 경위는 민재와 친구들 사이의 잦은 갈등 때문이었다. 친구들이 말하는 갈등의 원인은 민재가 친구들을 향해 욕설을 하거나, 옆구리를 찌르고, 때로는 손바닥으로 친구 머리를 치는 등의 폭력적인 행동이었다.
빈번한 갈등으로 인해 민재는 통합 학급에서 수업을 받고자 하는 바람과 달리 하루에 한 시간 정도만 겨우 통합 학급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그 한 시간마저도 학교장과 동료 교사들의 직간접적인 압력으로부터 지켜 내느라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이 제시한 솔루션은 세 가지였다. 먼저, 교장과 동료 교사들은 특수학교로의 전학을 부모에게 종용할 것을 권했다. 다음으로 의사, 상담사 및 사회복지사는 항정신성 약물 복용을 추천했다. 마지막으로 특수교육 전문가들은 소위 말하는 문제 행동을 수정하기 위한 응용행동분석인 ABA(Applied Bahavior Analysis)와 긍정적 행동 지원인 PBS(Positive Behavior Support)를 적극 권했다.
전학과 약물 복용이라는 두 가지 솔루션은 이 글의 논의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먼저, 특수학교로의 전학을 종용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일 뿐만 아니라 시설이 갖는 여러 가지 폐단을 고려할 때 바람직하지 못해 논의에서 제외시켰다. 또한 약물을 권하는 학교 사회의 문제점은 《오늘의 교육》 67호(2022년 3·4월)에서 심도 있게 다루었기에 논외로 한다.
이 글에서는 민재의 폭력적 행위와 이로 인한 갈등을 다수의 특수교육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ABA 및 PBS에서는 어떻게 접근하고 있으며 그 한계점은 무엇인지 논의할 것이다. 나아가 ABA 및 PBS의 이론적 근간이 되는 행동주의의 문제점과 ABA의 부작용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ABA의 한계와 부작용을 넘어서기 위한 대안적 관점으로 문화역사적 활동 이론인 CHAT(Cultural Historical Activity Theory)을 제안하고 CHAT의 시각에서 민재의 행동을 이해해 보고자 한다.
민재의 행동에 대한 ABA의 시각
: “행동의 원인을 간과하는 ABA”
먼저, ABA에서는 민재의 행동을 교실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적응 행동인 ‘문제 행동’이라고 부른다. ABA에서 문제 행동은 일상생활에서 정상 범주를 넘어서는 부적응 행동 또는 타인에 의해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행동을 말한다. 타인으로서 민재의 급우들이 민재의 행위가 학생 또는 친구로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진술한다는 점과 민재 개인이 다수가 적응하는 교실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문제 행동이 된다.
민재의 문제 행동에 대해 ABA에서 제시하는 처방은 민재가 싫어하는 벌이나 좋아하는 보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ABA에서는 인간의 모든 행동을 자극에 대한 반응이 반복되고 학습된 결과로 본다. 그래서 폭력을 사용할 때마다 민재가 싫어하는 벌을 줘서 다시는 못 하도록 하거나, 폭력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민재가 좋아하는 상을 줌으로써 비폭력적인 행동의 빈도를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ABA는 행동의 원인을 간과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사람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하나의 결과에 앞선 이유를 알 때 적절한 해결점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ABA는 문제 행동에 선행하는 행동의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분석하지 않은 채 문제 행동 발생 후 후속 조치로서 혐오하는 벌이나 선호하는 보상만을 제공할 뿐이다. 이렇게 행동이 발생한 원인과 관련된 선행 조건들에 대한 조정 없이 사후 상벌만으로 행동의 변화를 유도하려 할 때 실질적인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예를 들어, 음성 언어보다는 몸 언어가 익숙한 발달장애라 명명된 학생이 수업 시간에 계속 일어나서 책상 밑으로 들어가는 문제 행동을 보인다고 가정해 보자. 교사는 학생이 문제 행동을 보일 때마다 복도로 나가서 서 있게 하거나 문제 행동을 보이지 않는 시간에는 학생이 좋아하는 사탕을 주어 보아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학생이 책상 밑에 숨는 행동을 보이는 진짜 이유는 창가 옆에 있는 이 학생의 책상 위로 따가운 햇살이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이 경우 문제 행동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좌석을 창가에서 교실 가운데로 옮기는 것이 실질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민재의 행동에 대한 PBS의 시각
: “직접적으로 관찰되지 않는 것들을 간과하는 PBS”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 상벌만을 제시할 뿐 행동의 원인은 무시했던 ABA에 대한 반성으로 문제 행동을 야기하는 선행 조건들을 분석하고 조정함으로써 행동의 변화를 모색하는 PBS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PBS는 문제 행동 예방을 위해 교실이나 가정 등 일상적인 상황에서 관찰 및 인터뷰를 통해 문제 행동을 강화하는 원인으로서 문제 행동 발생 직전의 조건들과 문제 행동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환경적 요인들을 분석하여 조정한다.
예를 들어, 민재의 욕설을 예방하기 위해 교실에서 민재를 관찰한 후 욕설이 나오기 전에 민재에게 어떤 자극들이 있었는지 분석한다. 그리고 분석 결과 민재의 욕설에 앞서 민재가 지루해서 하품을 하는 모습이 빈번히 관찰되었다면, 민재가 지루함을 느끼는 상황이 선행 조건이 된다. 이러한 문제 행동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재가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좀 더 민재가 좋아하는 활동들로 선행 조건들을 조정하면 된다. 더불어 욕설을 대체하기 위한 바른 말들을 민재에게 가르치고 이를 실천하면 칭찬 스티커를 주는 것이 대체 행동 교수와 긍정적 보상에 해당한다.
하지만 PBS는 문제 행동의 원인은 관찰 가능한 행동 내지는 환경에 있다는 확신 아래 현재 직접적으로 관찰되지 않는 것들을 간과하는 문제가 있다. 인간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개인의 삶의 역사는 물론이고 그가 속한 사회의 문화까지 총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현재 한 사람의 행동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 관찰자의 눈앞에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이 지나온 삶의 경험들을 이해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그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환경의 배후에서 부단히 영향을 미치는 특정 상황과 얽혀 있는 문화와 역사적 배경 또한 이해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내리는 처방이란 빙산의 일각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며, 이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이 곧 무너질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CHAT의 눈으로 바라본 민재의 행동
: “부적응적 적응 행동”
ABA와 PBS의 편협한 시각에 대한 대안으로 문화역사주의 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는 한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정서적 경험을 이해해야 함을 주장했다.[ref][/ref]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할지는 자신의 판단 능력(이성)에 기대어 있다. 그런데 행동을 결정하는 이성은 감정이라는 정서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 이에 비고츠키는 인간의 이성은 감정과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에 한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삶의 과정에서 몸으로 직접 체험한 정서적 경험들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특정 상황에 대해 타인들과의 다양한 경험 속에서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느냐가 이후 그와 유사한 상황에서 자신의 행동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근거는 최근 신경과학에서 뇌 영상 촬영 도구의 발달로 인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 교수는 광산 사고로 뇌의 정서를 담당하는 영역과 이성을 담당하는 영역 사이에 연결이 끊어진 환자의 사례를 통해 정서가 이성적 판단과 행동에 중요한 역할을 함을 보여 준다.[ref][/ref] 이 환자는 사고 이후에도 계산 능력이나 IQ와 같은 지적 능력은 사고 이전과 변화가 없었지만, 사고 이후 간단한 약속을 잡는 사소한 일에서부터 직장 생활에서 동료들과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지 판단하고 선택하며 실행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사고 이후 이혼과 해고를 거듭한 그는 결국 부랑자가 되었다. 이 사례는 인간이 특정 상황에 대해 어떤 행동을 선택할지에 대한 이성적 판단 능력은 그 상황과 유사한 이전 경험에 대한 느낌에 기대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민재의 사례에서도 이는 여실히 드러난다. 아래 진술은 우연히 민재의 친구들이 민재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그 XX 진짜 불쌍했는데…….”
“맞아! 옛날엔 때려도 꼼짝도 못 했는데…….”
그랬다. 민재는 중학교 때까지 학교에서 조용한 아이로,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에게 집단적으로 학교폭력을 당했다. 친구 관계에서의 과거의 부정적 감정은 친구들이 조금만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폭력으로 반응하게 만든 것이다. 민재에게 친구들과의 경험은 자신을 향한 온갖 욕설과 폭력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 정서적 경험들이 조그마한 갈등을 유발하는 거리만 생겨도 민감하게 즉각적으로 반응하게끔 뇌의 정서적 영역이 환경에 적응하여 성장한 것이다. 하지만 PBS의 차원에서 행동을 관찰하고 분석하면 이러한 정서적 경험의 역사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과거의 일이기 때문에 현재 폭력적인 행동의 실제 원인을 찾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문제 행동 예방을 위해 대체 행동을 가르친다 해도 머리로는 이해하더라도 가슴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실천으로 이행되기 어렵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필요한 좋은 전략이나 말도 이미 친구들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뇌리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면 말과 실천은 따로 놀 수밖에 없다. 그래서 표면에서 드러나는 수준에서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관찰되는 수준에서 대체 행동을 제시해도 그것이 행위의 변화로 잘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비고츠키는 한 사람의 행동은 한 사회의 역사적 산물인 문화에 대한 적응 행동이라고 주장하며 ABA 및 PBS에서 말하는 부적응 행동으로서 문제 행동을 정의하는 것을 비판한다. 비고츠키는 인간은 ‘문화 역사적 공기’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고 본다.[ref][/ref] 이런 인간이 어떠한 문화적 공기 속에서 살아가느냐가 그 사람의 뇌의 주름과 그 주름을 타고 표출되는 행동에서 적응의 방향성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한 집단 또는 사회의 문화는 한 사람을 대하는 타인들의 정서적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치며 이는 한 사람의 적응에 있어 기저를 형성하는 정서적 경험을 구성한다. 이런 측면에서 부적응적으로 보이는 한 사람의 행동은 실상 그를 향한 사회의 정서적 태도를 반영한다. CHAT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사람에게도 부적응적 행동은 성립할 수 없으므로 ABA 또는 PBS에서 말하는 부적응 행동으로서 문제 행동이라는 정의는 한 사람의 행동을 사회의 문화나 역사와는 무관한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오류를 낳는다.
철학자 우치다 타츠루는 부적응적 적응과 관련하여 ‘은둔형 외톨이’ 예를 통해 잘 설명한다.[ref][/ref] 우치다 타츠루는 일본 사회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들(집 안에만 칩거한 채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는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 보통 6개월 이상 사회적 접촉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일본 사회에 부적응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과잉하게 적응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개인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하거나 왕따를 시키는 일본의 학교나 사회 환경에서 왕따를 당하며 상처를 받느니 단절을 통해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둔 것이다. 이는 부적응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과잉하게 자신을 보전하기 위해 적응하는 ‘부적응적 적응 행동’으로 볼 수 있다.
나가며
: “어찌할지 모를 먹먹함을 견디는 힘을 가진 전문가”
지금까지 민재의 갈등 행동을 ABA 및 PBS의 관점에서는 각각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더불어 각 관점에서의 제한점들도 알아보았다. 대표적인 제한점으로 관찰되는 특정 행동에 대해 눈에 보이는 표면적 이유만을 쫓는 것은 마치 빙산의 일각을 붙잡고 빙산에 대해 모두 알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CHAT은 한 개인의 행동이 가진 원인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솔루션을 제시하기 위해 지금 눈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특정 행동을 관통하며 유유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한 개인에 대한 사회의 문화적 태도와 그로 인해 체험하게 되는 정서적 경험들에 대한 충분한 분석과 사유가 전제되어야 함을 제안한다.
또한, CHAT은 ABA 또는 PBS의 관점에서 특정 상황에 대한 개인의 부적응의 결과로서 문제 행동을 정의하는 관점을 부정한다. CHAT은 모든 인간은 다른 여타의 생명체와 같이 적응하는 존재이며, 그 적응의 과정에서 타인의 나를 향한 부정적인 정서와 행동이 나의 부적응적으로 보이는 형식의 적응 행동을 야기한 것으로 바라본다. 이는 한 사회 또는 집단이 특정 누군가(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등)에게 부정적인 태도와 정서를 가지고 관계한다면 그 특정 누군가는 부정적 정서 경험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남들이 보기에 부적응적으로 보이는 적응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한 사회가 누군가에게 어떤 정서적 환경을 제시하고 있는가에 대한 반성을 유발한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전문가는 쉽사리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음에서 오는 먹먹함을 견뎌 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이임을 나를 포함하여 수많은 특수교육 전문가들이 잊지 않기를 바란다.
❶
레프 비고츠키, 배희철·김용호 옮김(2011), 《생각과 말》, 살림터.
❷
안토니오 다마지오, 김린 옮김(2017), 《데카르트의 오류 - 감정, 이성 그리고 인간의 뇌》, 눈출판그룹.
❸
제임스 V. 워치, 박동섭 옮김(2014), 《보이스 오브 마인드》, 학이시습.
❹
우치다 타츠루(2013), 〈학교교육의 끝〉.(blog.tatsuru.com/2013/04/07_104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