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성평등 성교육 도서 논란
책을 검열하는
미국의 극우운동
미국 학교와 공공 도서관에서의 도서 금지 전쟁
전누리
slhs8888@gmail.com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객원연구위원,
중앙대 사회학과 박사 과정 수료
도서 검열과 금지 추세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뉴하노버 카운티에 위치한 유진 애슐리 고등학교 학부모인 케이티 게이츠는 행동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딸이 수강하는 언어 작문 AP 수업에서 강사가 미국의 인종 차별을 비판하는 《Stamped: Racism, Antiracism, And You》란 책을 읽도록 했는데, 열성적인 공화당원으로 활동 중인 게이츠에게 그 책은 모든 백인이 인종차별주의자이자 미국의 모든 잘못에 책임이 있다고 세뇌하는 ‘반미적인’ 도서였기 때문이었다. 게이츠는 학교에 커리큘럼에서 해당 책을 뺄 것을 요구했다. 2023년 1월 학교 미디어 및 기술 자문 위원회에서는 도서 금지 요구를 거부했다. 게이츠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기댄 곳은 카운티 교육위원회로, 2022년 11월 선거에서 ‘학부모 권리와 학교 내 리버럴 세뇌 중단’을 약속했던 공화당 후보들이 다수 당선된 곳이었다. 금지 여부를 두고 8월 1일 열린 공청회에서는 30명의 발언자 중 20명이 도서 금지를 반대했으며, 아울러 공청회 밖에서는 수백 명이 “자유를 읽게 하자(Let Freedom Read)!”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그럼에도 9월 1일 교육위원회는 4:3으로 해당 도서에 대한 임시적 금지 결정을 내렸다. 책을 도서관에 두는 것을 허용하지만 교사가 수업 시간에 사용하는 것은 막은 것이다. 게이츠가 홀로 시작한 투쟁이 승리한 셈이다. 금지 결정 이후인 9월 19일, 게이츠는 학군 내 모든 고등학교 영어 교사의 2023년 가을 학기 강의 계획서 정보 제공을 청구했다.[ref]“1 parent is responsible for a book ban in North Carolina”, 〈NPR〉, 2023년 9월 8일; “The public weighs in on “Stamped: Racism, Antiracism, and You””, 〈WHQR〉, 2023년 8월 2일; “After the removal of ‘Stamped,’ what’s next for the New Hanover County School Board?”, 〈The Seahawk〉, 2023년 10월 16일.[/ref]
이런 사건은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외려, 근래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교 및 공공 도서관 내 도서에 대한 검열 내지 금지 시도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다. 미국의 극우운동이 일으켰던 문화 전쟁(Culture War)이 도서 검열과 금지로 그 전선을 바꿔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최근 이런 분쟁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전미도서관협회의 지적 자유를 위한 사무소(Office for Intellectual Freedom)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금지 요청 대상이 된 도서 타이틀의 수는 2020년 233건에서 2021년 1,858건, 2022년에는 2,571건으로 증가 추세를 보였는데, 2023년에는 4,240건에 달했다. 2023년의 경우 학교 도서관뿐만 아니라 공공 도서관에도 압력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검열 대상이 된 책 종수가 학교 도서관에서는 전년 대비 11%에 증가한 데 비해 공공 도서관은 92% 증가했다. 검열의 표적이 된 도서 중 47%는 성소수자 내지 비백인 인종의 목소리와 경험담을 다룬 것이었다. 17개 주 100개 이상의 카운티에서 검열 시도가 일어났는데, 한 번에 수십 내지 수백 권의 도서에 대한 검열을 요구하는 단체와 개인이 주범이었다.[ref]ALA, 〈American Library Association reports record number of unique book titles challenged in 2023〉, 2024년 3월 14일.[/ref]
펜 아메리카(PEN America center)는 표현의 자유 보장을 주요 목표 삼아 미국 전역에서 초·중등 및 고등교육에 대한 이념적 통제를 행사하려는 운동을 추적해 왔다. 이 단체가 2023년 9월 발표한 〈School Book Bans: The Mounting Pressure to Censor〉 보고서를 통해 근래 공립 학교 교실과 도서관에서의 도서 검열·금지 시도의 추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21~2022학년에는 2,532건의 도서 금지 사례가 일어났는데, 2022~2023학년에는 33% 증가한 3,362건의 사례가 확인됐다. 특히 교실과 학교 도서관 모두 금지된 사례가 증가했는데, 333건에 불과했던 것이 2022~2023학년에는 무려 1,263건으로 4배에 육박했다. 도서 금지는 여러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으나 전통적으로 공화당 지지 성향이 강한 주나 카운티에 더 집중되고 있다. 2020년 대선 투표 경향과 비교한 결과, 도서 금지가 일어난 33개 주 중 공화당 성향 주는 19개, 민주당 성향 주는 14개였다. 카운티 등 구역(district) 차원으로 보면 금지 사례가 발생한 153개 중 공화당 투표 성향이 103개(67%)였다. 특히 이 103개 구역의 도서 금지 사례가 전체의 88%(2,943건)를 차지했다.[ref]Meehan, K., Friedman, J., Baêta, S.& Magnusson, T.(2023), 〈Banned in the USA: The Mounting Pressure to Censor〉. PEN America.[/ref]
금지당한 책들은 폭력, 비백인 인종과 성소수자, 학생의 건강, 성적 경험을 다룬 도서들이었다. 2021~2022학년과 2022~2023학년에 금지된 5,894건을 살펴보면, 37%가 폭력과 신체적 학대의 주제 및 사례를 포함했으며, 37%가 유색 인종 인물을 포함하거나 인종 차별에 대해 논의하는 내용이었다. 또한 36%는 트렌스젠더를 포함해 성소수자 인물이나 주제를 다뤘으며, 34%는 정신 건강, 괴롭힘 등 건강과 웰빙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 것이었다. 27%는 인물 간의 구체적인 성적 경험이 담긴 책이었으며, 22%는 플롯 또는 등장인물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죽음 등 슬픔의 사례나 주제를 포함하는 것이었다.[ref]Meehan, K. 외(2023), 앞의 글.[/ref]
도서 검열을 비판적으로 논의하는 책이 금지된 사례도 있다. 올해 5월, 플로리다주 인디언 리버 카운티 교육위원회는 앨런 그라츠가 쓴 어린이 대상 도서인 《Ban this Book》에 대해 3:2로 금지 결정을 내렸다. 책의 줄거리는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 반 친구 부모의 부적절하다는 판단으로 대출 금지된 이후 비밀의 금서 도서관을 만들게 된다는 것으로, 도서 금지와 검열, 그것을 결정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지 논하는 내용이다. 책 금지에 찬성한 다수파 위원들은 이 책이 학교에서 퇴출된 작품들을 논의하는 방식에 동의할 수 없으며, 교육위원회의 권위에 대한 반항을 가르친다고 주장했다.[ref]“Book about Book Bans Banned by Florida School Board”, 〈The Guaridian〉, 2024년 6월 11일.[/ref]
검열과 금서의 제도화
미국의 도서 검열·금지 시도가, 학교와 교실 내에서 인종, 성소수자 등 특정 내용의 교육 내지 언급을 금지하려는 법안 제정 시도와 함께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펜 아메리카는 이를 “교육적 함구령(gag order)”으로 지칭하며 크게 두 흐름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됐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인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에 일어난 제도권 내의 인종적 판단(racial reckoning)[ref]인종적 정산, 인종 차별 감수성 등으로 옮길 수 있는 개념으로, 오랜 인종 차별의 역사와 제도적·구조적 인종 차별이 있음을 인식하고 논의하는 감각, 실천 등을 가리킨다.[/ref] 움직임이었다. 두 번째는 1619년 아프리카 흑인 노예가 처음 버지니아에 상륙한 지 400주년이 된 것을 기념하며 미국 역사 속 인종 차별을 문제를 다룬 ‘1619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대중적 호응을 받았고, 학교 내에서도 이를 이용한 교육이 확산되었다.[ref]Friedman, J., LaFrance, S.&Meehan, K.(2023). 〈Educational Intimidation Bills〉, PEN America.[/ref]
2020년 7월 23일, 공화당 톰 코튼 상원의원은 1619 프로젝트가 건국의 토대인 자유와 평등의 원칙을 부정하는 인종 분열적인 역사 서술이라 주장하면서 1619 프로젝트를 가르치는 공립 학교에 연방 정부 기금 지원을 막는 ‘Saving American History Act of 2020’ 법안을 발의했다.[ref]“Sen. Tom Cotton Bill Would Prohibit Federal Funding for Teaching The 1619 Project”, 〈ABC News〉, 2020년 7월 25일.[/ref] [ref]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러한 흐름에 대해 반발했다. 2020년 9월 17일에 트럼프는 조지 플루이드 사망 사건 이후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BLM(Black Lives Matter) 시위를 소위 ‘좌파들이 일으킨 대혼란’으로 폄훼하고, 1619 프로젝트 등이 미국의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다며 역사를 수호하기 위해 애국주의 교육과정을 만드는 소위 ‘1776위원회’를 발족했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사회 구조가 성차별적이거나 인종 차별적이라고 주장하는 교육을 금지하는 조치를 시행하고 22일에는 이를 연방 정부와 계약을 맺은 회사들에까지 확대했다.(윤세병(2023), 〈역사 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문화전쟁’〉, 《평화들PEACES》, 2(1), 126~128쪽)[/ref]
2021년 1월부터 주 차원에서 인종, 성별, 섹슈얼리티 등 특정 내용을 교육에서 금지하고 교육 기관에 이념적 통제를 가하는 법안 발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톰 코튼의 법안 내용과 유사하게 1619 프로젝트를 가르치는 학교에 대한 주 정부 지원을 박탈하는 법안이 미시시피주에서 통과됐다. 다른 주에서도 유사한 내용의 법안이 발의, 통과됐다. 2022년 플로리다주에서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3학년까지 성적 지향 또는 성적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금지하는 ‘교육에서의 부모 권리법(Parental Rights in Education)’, 일명 ‘게이 언급 금지법(Don’t say gay)’이 통과된 이후에 다른 주에서도 유사한 법안이 발의되었다. 특히 플로리다의 학군에서는 해당 법안이 성소수자 인물이나 테마를 다룬 수백 권의 책을 금지하는 데 인용되기도 했다.[ref]Young, J, C., Friedman, J., Meehan, K.(2023), 〈America’s Censored Classrooms 2023〉, PEN America.[/ref]
직접적으로 금지하지는 않지만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법안들도 추진되었다. 학교교육을 침해하는 형태의 조사 내지 모니터링을 요구하고, 학교와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누구나 학교교육에서 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 점에 대해 반대할 수 있는 방법을 보장해 주는 식이다. 펜 아메리카는 이를 ‘교육적 협박(educational intimidation)’이라 지칭했다. 구체적으로는, 교육 자료 또는 도서관 도서에 대한 학부모 내지 일반 대중의 접근성을 높인다면서 정보 제공을 요구하거나 이를 공공 웹사이트에 게시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법, 도서관을 검사하고 도서를 제외시킬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이의 제기 절차나 정치적 기구를 구성하는 법, 도서 라벨링을 통한 제한 조건 등을 두고 나아가 학부모에게 자녀의 도서관 활동 모니터링 및 통제 권한을 부여하는 것 등이다. 아울러 교사의 개별 수업 계획 또는 전문성 개발 자료에 대한 공개 및 접근을 허용하는 등의 법들까지 더해 총 12개의 유형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조항을 담은 법안은 학부모 권리나 커리큘럼 투명성을 증진하는 것으로 포장됐다. 특히 글렌 영킨이 2021년 11월 그러한 레토릭을 활용하며 버지니아 주지사로 당선된 이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여겨지면서 공화당에서 공고화되고 있다. 2021년 1월부터 2023년 6월까지 성소수자 언급 금지를 포함해 교육적 협박으로 분류되는 법안이 392개 발의되었는데 그중 39개가 제정되었고, 행정 명령이나 규제 조치로 주 단위 정책에 포함되는 방식으로 9개가 채택되었는데, 최소 19개 주에서 시행 중이라고 한다.[ref]Friedman, J. 외(2023), 앞의 글.[/ref]
한편, 2022년 중간 선거에서 하원의 다수당을 차지한 공화당은 연방 차원의 법안으로 ‘학부모 권리법(Parents Bill of Rights Act)’을 발의했다. 학교가 커리큘럼을 공개하고, 학부모가 자녀의 교사를 만날 수 있게 하며, 학교 내 폭력이 발생할 경우 학부모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이었다. 또한 법안에는 학부모에게 학교 도서관에서 이용할 수 있는 도서 및 독서 자료 목록을 제공하는 것과 학교가 학생 개인정보 보호 정책 및 절차를 제·개정할 때 학부모에게 의견 표명 기회를 제공하는 것 역시 포함됐다. 2023년 3월 24일, 하원에서는 이 법안이 213:208로 통과됐다. 다만 상원은 법안을 반대하는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에 현재까지는 통과 가능성이 매우 낮다.[ref]“House Republicans Pass Parents Bill of Rights”, 〈The Hill〉, 2023년 3월 24일.[/ref]
극우 학부모운동의 상황과 방식
근래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학교 내 도서에 대한 검열·금지 시도 그리고 그 제도화의 배후에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존재한다. 바로 극우 성향의 학부모 단체가 진보적인 시민사회운동 단체들과 유사하게 조직적인 활동을 펼쳐 나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20세기 후반부터 여러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일어난 사회 변화가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주류 제도 정치의 성원이 아니었던, 즉 권력이 없던 이들이 기댔던 집단행동 내지 사회운동이 점차 제도적으로 인정받고, 일반 시민들 역시 이를 하나의 선택 가능한 수단으로 수용하게 되는 일종의 ‘사회운동 사회(social movement society)’가 도래한 것이다. 핵심은 더 이상 사회운동이나 집단행동이 진보적 시민/단체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 즉 보수 내지 극우파 역시 그 효용성을 인식하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ref]Meyer, David S.&Tarrow, S.(1997), The Social Movement Society: Contentious Politics for a New Century, Rowman & Littlefield Publishers. 한국 사회 역시도 우파 시민단체 활동이나 태극기 집회 등의 활동이 확인되고 있다. 특히 집회·시위에서 ‘매우 보수 성향’을 가지고 있는 개인의 참여 경향이 유의미하게 높음이 확인되기도 했다(전누리·신진욱(2024), 〈한국에서 집단적 항의행동의 확산과 ‘분쟁사회’의 격화 : 집회·시위 참여자의 이념적 양극화와 정치적 당파성, 2013~2022〉, 《한국사회학》, 58(1)).[/ref] 미국에서는 2008년 오바마 행정부에 반대하는 티파티(tea party) 운동 사례가, 유럽에서는 극우 진영의 난민 반대 시위 등이 주목된 바 있다. 극우 학부모단체의 활동 역시 이러한 배경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펜 아메리카는 크게 3개의 조직을 꼽고 있다. 플로리다주에서 시작된 ‘자유를 위한 엄마들(Moms for Liberty)’, 텍사스와 조지아주에 거점을 둔 ‘자유를 지키는 시민들(Citizens Defending Freedom)’, 오리건주를 기반으로 한 ‘교육에서의 부모의 권리(Parent’s Rights in Education)’이다. 2022~2023년 도서 금지가 이뤄진 33개 주 중에서 32개 주에서 이 세 단체 중 하나 이상이 활동하고 있다. 나머지 1개 주인 유타주의 경우, ‘유타 학부모 연합(Utah Parents United)’이 유사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ref]Meehan, K. 외(2023), 앞의 글.[/ref]
이들 중 ‘자유를 위한 엄마들’을 간략히 살펴보면, 이 단체는 부모의 권리를 옹호하고 보호할 수 있도록 부모를 단결시키고, 교육하고, 힘을 부여하는 것을 미션으로 두고, “우리는 정부와 공동으로 아이를 키우지 않습니다(We do not co-parent with the government)”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전직 교육위원이었던 티나 데스코비치와 티파니 저스티스가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였던 2021년 1월에 설립한 단체로, 초기에는 학교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화 반대 운동을 펼쳤다. 이후에는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독서 자료에서 인종 차별과 종교 문제 등이 다뤄지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체적으로 42개 주에 250개 지부, 약 11만 명에 육박하는 회원이 있다고 주장한다. 2022년부터 즐거운 전사(Joyful Warriors)라는 전국 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는데, 참가 학부모를 대상으로 극우 연사의 강연이나 활동 전략과 방법에 대한 교육을 진행해 오고 있다. 극단주의 단체를 추적하는 기관은 해당 조직의 몇몇 지부의 리더들과 회원들이 2021년 1월 6일 트럼프의 대선 패배에 불복해 일어난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에 주요한 역할을 했던 극우 백인 파시스트 조직인 ‘프라우드 보이즈(Proud Boys)’와 연계를 맺고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ref]Southern Poverty Law Center(2021), 〈Moms for Liberty〉.[/ref]
도서 검열·금지를 요구하는 단체들의 활동 중 특기할 지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온라인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학교운영위원회에 책의 금지를 요청하는 방법과 팁 등 구체적인 전술을 안내한다. 나아가 금지 대상이 도서별로 소위 ‘불쾌한 내용’을 인용하고 그 페이지를 정리한 리포트를 제공하는데, 이는 금지 요청의 근거 자료로 사용된다. 단체들은 각각의 학군에서 도서 삭제를 요구할 개인을 모집하고 교육을 진행한다. 예컨대 2023년 5월에는 플로리다주 에스캄피아 카운티에서 100권이 넘는 책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인근 산타로사 카운티를 방문해 활동 경험과 팁을 전수했는데, 이후 해당 학군의 학부모들이 그대로 문제를 제기했다.[ref]Meehan, K. 외(2023), 앞의 글.[/ref]
이 단체들은 보다 체계적인 도서 검열·금지의 제도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공화당과 깊은 연계를 맺으며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상술했던 미 하원의회가 통과시킨 학부모 권리 법안에 대해서도 부모가 자녀의 양육을 지시할 수 있는 기본적 권리가 존재한다며 강력히 지지하기도 했다.[ref]“House GOP Passes Parents Bill of Rights Act”, 〈ABC News〉, 2023년 3월 25일.[/ref] 나아가 도서 금지를 결정할 수 있는 학군의 교육위원회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위원 선거 출마를 독려하고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ref]Pappano, L.(2024), School Moms: Parent Activism, Partisan Politics, and the Battle for Public Education, Beacon Press.[/ref]
한편, 책을 검열, 금지하려는 운동이 그 명칭이나 미션에서도 드러나듯, 학부모 권리(parental right)라는 담론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그 담론 구조를 살펴보면, 아이들이 진보 진영이 주장하는 ‘깨어 있는(woke)’ 담론, 곧 인종 차별 논의나 성 이데올로기 등에 세뇌될 위험에 처해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자녀가 학교에서 경험하는 것에 대해 최대한 많은 요소를 감독할 수 있는 부모의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그 자녀가 인격적 존재로, 더 나은 성장을 위해 경험을 누릴 권리를 빼앗는다는 점에서도 문제적이며, 학부모의 권리라는 명목으로 극단주의자들이 자신의 아이를 넘어 다른 모든 사람의 경험까지 통제하려는 시도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ref]Pappano, L.(2024), 앞의 책. 이와 관련해 저자는 1980~1990년대 미국 기독교 우파(Christian Right) 운동에 주목한다. 그는 당시 운동이 도덕적 분노에 초점을 맞췄던 기존 메시지를 권리, 평등, 기회에 초점을 맞춘 보다 친숙하고 널리 수용되는 자유주의적 언어로 재탄생시켰다고, 즉 설교보다 설득을 하기 위해 미국 정치의 언어로 말하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종교적 목표를 세속적 용어로 번역하면서, 학교에서의 기도를 학생의 권리로, 교과서 내용에 대한 반대를 학부모의 권리로 포장하는 프레임을 만들어 냈으며 현재도 같은 방식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ref]
학교, 교사, 학생 들을 위축시키는 결과
중요한 건 이와 같은 도서에 대한 검열·금지 시도와 제도화가 가져오는 효과다. 지난해 가을, 전국의 학교에서 도서관과 체육관에 서가를 설치해 학생들이 방대한 종류의 책을 쇼핑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Scholastic Book Fair’ 시즌 당시, 책을 출판, 배포하는 Scholastic 회사는 학교에 여러 도서를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즉, 인종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책의 경우 별도로 진열하고 학교가 주문 여부를 결정하게 한 것이다. 이에 대한 학교 사서들의 불만이 틱톡과 레딧을 통해 쏟아졌으며, 교육자 및 작가들 역시 회사의 결정에 대해 비판했다. 이에 Scholastic은 성명을 내고, 특정 종류의 도서를 학교로 반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이 주별로 제정 내지 계류 중에 있으며, 특히 도서전이 학부모의 감독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이로 인해 교사, 사서, 자원봉사자가 해고, 고소, 기소에 취약해지는 딜레마를 가져온다고 주장했다.[ref]“U.S. Book Bans Are Taking a Toll on a Beloved Tradition: Scholastic Book Fairs”, 〈NPR〉, 2023년 10월 17일.[/ref]
실제로 교사나 사서가 해고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2023년 6월, 조지아주에서 학생들이 선택했던 베스트셀러로 성별 고정관념을 다룬 책인 《My Shadow is Purple》을 읽어 줬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교사가 해고당했다. 9월에는 텍사스의 중학교 교사가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그림으로 각색한 그래픽노블을 과제로 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공공 도서관 사서들에 대한 공격도 있다. 콜로라도 에리 지역 공공 도서관의 사서가 반인종주의 워크숍과 성소수자 주제의 책에 대한 ‘Read Woke book’ 클럽을 운영했는데, 도서관 관리자는 2명의 학부모의 항의를 받고 이를 취소시켰으며, 도서관 이사회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행사를 금지하는 정책을 통과시켰다. 해당 사서는 이에 반발했는데, 결국 2년 이상 근무했음에도 해고당하고 말았다.[ref]“Book Bans and the Librarians Who Won’t Be Hushed”, 〈The Magazine of the Harvard Graduate School of Education〉, 2023년 11월 6일; “Texas Teacher Fired for Showing Anne Frank Graphic Novel to Eighth-Graders”, 〈The Guardian〉, 2023년 10월 20일; “A Librarian Was Fired after Refusing to Ban Books. She Fought Back.”, 〈NPR〉, 2024년 1월 2일.[/ref]
이러한 검열·금지 시도 그리고 해고 조치에 교사와 사서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교사들과 사서들이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교육 내용이나 도서를 스스로 검열하는 효과도 초래되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에서 48개 주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5,240개, 고등학교 1,391개의 도서관을 샘플로 분석한 결과는 그 위축 효과를 시사한다. 2022년 10월 샘플에 속한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도서 검열·금지 시도가 있었던 학군의 도서관이 근래 출간된 성소수자 도서의 65권 도서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을 확률을 추정했는데, 직전 해 금지 시도가 있었던 학군의 학교는 최근 출판된 도서를 추가할 가능성이 낮음을 확인했다. 연구는 검열·금지 시도가 일종의 ‘냉각 효과(cooling effect)’를 가져와 사서들이 부모나 정치인들이 불쾌함을 느낄 수 있는 책의 구매를 피하도록 유도하는 증거라고 주장했다.[ref]Mumma, K.(2023), 〈Politics and School Libraries: What Shapes Students’ Access to Controversial Content〉, Brookings.[/ref]
무엇보다 극우단체 및 학부모가 교사와 사서를 공격하고 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은 직업적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고 궁극적으로 교사 수급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가장 징벌적인 교육적 협박과 함구령이 존재하는 플로리다주에는 교사 결원율이 가장 높아 2023년 초 5,300명이었는데, 이는 2021년 1월의 2배가 넘는 것이었다. 텍사스주 역시 77%의 교사가 학교를 떠날 것을 고려하고 있는데, 72%는 낮은 급여뿐만 아니라 학부모, 지역 사회 구성원, 주 입법자들의 존중 부족을 지적했다고 한다.[ref]Friedman, J. 외(2023), 앞의 글.[/ref]
무엇보다 도서 검열·금지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대상은 학생이다. 그러한 시도는 학생의 정보와 아이디어를 받을 권리를 박탈하기에 수정 헌법 제1조가 보장하는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교육과 성장의 차원에서, 검열·금지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집단적 지식을 쌓는 것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 다른 경험에 대해 듣는 것을 통해 본인과 다른 사람들의 문화적 환경에 대해 폭넓게 이해하는 것을 방해한다. 특히 다양한 책에 대한 독서를 통해 문해력을 증진시키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독서를 통해 삶의 궤적과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 놓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받고 있다.[ref]앞의 기사, 〈The Magazine of the Harvard Graduate School of Education〉, 2023년 11월 6일.[/ref]
검열·금지에 대한 저항
물론 극우 학부모단체의 학교 및 공공 도서관 내 도서 검열·금지 시도에 대한 반발과 저항도 있다. 도서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보장받기 위한 진보 진영과 시민들의 운동이다. 예를 들어 학군이나 학교, 공공 도서관의 도서 금지 시도에 맞서 반대 의견을 제기하거나 시위를 통해 항의하는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 아울러 검열 조치에 항의하다 해고된 사서와 연대하는 투쟁 역시 이뤄지고 있다.
보다 조직적 차원으로 여러 단체들이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연대체도 활동 중이다. 2022년 4월 전미도서관협회의 제안으로 ‘금지에 저항하는 연합(United Against Bans)’이 꾸려졌는데 전미교사연맹, 작가 길드, 출판사 등 200개가 넘는 조직과 수만 명의 개인이 참여하고 있다. 이곳은 극우 학부모단체가 학교 내 도서 금지를 위해 특정 도서별로 발췌 리포트를 제공하는 것에 맞서, 그 금지 대상 도서의 요약, 전문 저널 리뷰, 수상, 추천사 등이 포함된 도서 요약 리소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도서 검열·금지 시도에 맞설 수 있도록 도서관 및 교육위원회 참석 가이드가 포함된 대응 안내서(tool-kit)를 공유하고 있다. 2023년부터는 전국 도서관에서 ‘독서권의 날(Right to Read Day)’을 지정하고 공동 행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금지될 위험이 있는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하거나, 편집자나 선출직 공무원에 편지를 쓰고, 도서관 및 교육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평화적 시위를 하는 것을 제안했다.
법적·제도적 대응 역시 이어지고 있다. 2022년에는 텍사스주 라노 카운티 도서관 이용자 7명이 카운티 공무원과 도서관 이사회를 대상으로 도서 제한 조치가 수정 헌법 제1조가 보장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소송을 제기했는데, 연방 판사가 가처분 판결을 내려 도서 금지를 임시 철회시켰다. 2023년 6월에는 아칸소주의 사서 및 서점 연합이 새로 제정된 ‘미성년자에게 해로운 품목을 제공하는 시도를 범죄로 규정’한 주 법이 위헌이라 주장하며 연방 소송을 제기했다. 7월, 연방 판사는 위헌일 가능성이 높다며 효력을 중지하라는 가처분 판결을 내렸다.[ref]앞의 기사, 〈The Magazine of the Harvard Graduate School of Education〉, 2023년 11월 6일.[/ref]
무엇보다 도서 검열·금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학생들의 저항이 터져 나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2년 가을, 뉴욕주 오차트 파크의 학생들은 교육위원회의 책 금지 결정에 반발해 ‘교육을 지키는 학생들(Students Protecting Education)’이라는 조직을 결성했다. 같은 시기 캐롤라이나주 보퍼트 카운티에서 주민 2명이 특정 도서를 학교에서 제외시키지 않을 경우 음란물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하여 결국 97권의 책이 제거되는 일이 벌어졌다. ‘다양성을 인식하는 청소년 문해력 모임(Diversity Awareness Youth Literacy Organization)’에 속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이에 대한 투쟁을 펼쳤다. 2023년 5월, 펜실베니아주 헴필드 학군에서 중학생들이 도서관 정책 변경에 대해 시위를 했으며, 같은 달 네브래스카주 플래츠머스 학생들도 책을 금지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며 항의 활동을 펼쳤다. 2022년 봄에는 펜실베니아주 센트럴 요크 학군의 ‘반인종주의 팬더 연맹(Panther Anti-Racist Union)’ 학생 활동가들이 도서 금지 및 재검토 정책에 맞서 매일 등교 전 시위를 전개하고 교육위원회에 의견을 내, 금지됐던 2권의 책이 도서관 서가에 돌아오게 됐고, 새로운 도서관 정책이 채택되기도 했다. 학생들은 직접적인 투쟁 외에도 도서 검열·금지 시도에 대해 학교 에세이 과제, 졸업식 연설을 통해 그 부당함을 지적하기도 한다.[ref]Meehan, K. 외(2023), 앞의 글. 검열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조직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 역시 운영되고 있다. 1974년에 형성된 ‘전국 검열 반대 연합(National Coliation Against Censorship)’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검열 반대 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해 8개월의 리더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수정 헌법 제1조와 표현의 자유, 미디어 전략과 운동 전술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고 도서 금지에 대한 항의 투쟁 사례를 소개한다.[/ref]
이러한 항의 활동의 영향 탓인지 미국 사회 전반에서 도서 검열·금지에 반대하는 여론이 큰 상황이다. 지난해 언론사 〈NPR〉과 조사 기관 Ipsos가 초·중등교육 학부모 452명을 포함해 1,3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도서 검열·금지 조치에 반대하는 것이 다수이다. 개별 교육청이 특정 도서를 금지하고 해당 학군의 교실 및 도서관에서 도서를 없애는 것에 대해 65%가 반대했으며(학부모 59%), 주 의원들이 특정 도서를 금지하고 교실과 학교 도서관에서 없애는 것에 대해서는 69%(학부모 66%)가 반대했다. 검열·금지 시도를 이끌고 있는 공화당의 지지자들 중에서도 교육위원회의 금지 및 제거 시도에 대해서는 반대가 46%로 찬성 의견(41%)을 넘겼다. 특히 주 의원이 이런 법을 제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공화당 지지자 51%가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ref]“Poll: Americans Say Teachers Are Underpaid, about Half of Republicans Oppose Book Bans”, 〈NPR〉, 2023년 6월 2일.[/ref]
향후 전망과 시사점
학교와 공공 도서관 내 도서를 둘러싼 전쟁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현재로서는 단언할 수 없다. 제도 정치에 초점을 두고 살펴본다면, 공화당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남부의 주들, 소위 ‘레드 스테이트’를 필두로 도서 검열·금지 경향이 더욱더 강화될 수 있다. 나아가 올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돼 정권 교체가 이뤄진다면 연방 정부의 기조 역시 달라질 수 있다. 극우 학부모단체들이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인물들을 교육위원회에 당선시켜 도서 금지 결정을 확대하는 한편, 새로운 전술을 창안하며 도서 검열·금지 운동을 보다 설득력 있게 조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들이 전략적인 판단 아래 도서 검열·금서 운동에서 발을 빼더라도, 사회운동 사회로의 진입과 이념적으로 양극화된 사회를 고려해 볼 때 교육 분야에서 정치적 갈등은 다른 이슈를 통해서라도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해 본다.
한국에서도 미국의 도서 검열·금지 시도를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다. 한 국가에서 특정 사회운동의 요구나 전술, 활동 방식은 다른 국가로 전파, 확산되어 갈 수 있다. 한국의 극우단체들 역시 미국의 극우 학부모단체의 활동을 차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 과정을 적확하게 조사, 연구할 필요가 있겠지만, 과거 학교나 도서관에 대해 주로 ‘좌편향’을 지적하던 보수·극우단체들이 최근에는 성교육 도서나 특정 동화 등에 대해 ‘음란 도서’라 주장하며 퇴출을 요구하는 시도를 하는 모습을 볼 때, 미국의 활동 사례들에 영감을 받아 그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미국의 사례를 파악하는 것은 향후 한국의 보수·극우단체들이 어떤 전술과 행동, 주장을 펼쳐 나갈지 대비하는 데 참고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도서 검열·금지에 미국의 진보 진영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참고해 한국적 현실에 맞게 그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은 양국의 운동 주체들이 상황과 정보를 공유하고 구체적인 활동의 전략과 아이디어를 함께 논의하는 긴밀한 국제 연대가 필요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기획 | 성평등 성교육 도서 논란
책을 검열하는
미국의 극우운동
미국 학교와 공공 도서관에서의 도서 금지 전쟁
전누리
slhs8888@gmail.com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객원연구위원,
중앙대 사회학과 박사 과정 수료
도서 검열과 금지 추세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뉴하노버 카운티에 위치한 유진 애슐리 고등학교 학부모인 케이티 게이츠는 행동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딸이 수강하는 언어 작문 AP 수업에서 강사가 미국의 인종 차별을 비판하는 《Stamped: Racism, Antiracism, And You》란 책을 읽도록 했는데, 열성적인 공화당원으로 활동 중인 게이츠에게 그 책은 모든 백인이 인종차별주의자이자 미국의 모든 잘못에 책임이 있다고 세뇌하는 ‘반미적인’ 도서였기 때문이었다. 게이츠는 학교에 커리큘럼에서 해당 책을 뺄 것을 요구했다. 2023년 1월 학교 미디어 및 기술 자문 위원회에서는 도서 금지 요구를 거부했다. 게이츠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기댄 곳은 카운티 교육위원회로, 2022년 11월 선거에서 ‘학부모 권리와 학교 내 리버럴 세뇌 중단’을 약속했던 공화당 후보들이 다수 당선된 곳이었다. 금지 여부를 두고 8월 1일 열린 공청회에서는 30명의 발언자 중 20명이 도서 금지를 반대했으며, 아울러 공청회 밖에서는 수백 명이 “자유를 읽게 하자(Let Freedom Read)!”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그럼에도 9월 1일 교육위원회는 4:3으로 해당 도서에 대한 임시적 금지 결정을 내렸다. 책을 도서관에 두는 것을 허용하지만 교사가 수업 시간에 사용하는 것은 막은 것이다. 게이츠가 홀로 시작한 투쟁이 승리한 셈이다. 금지 결정 이후인 9월 19일, 게이츠는 학군 내 모든 고등학교 영어 교사의 2023년 가을 학기 강의 계획서 정보 제공을 청구했다.[ref]“1 parent is responsible for a book ban in North Carolina”, 〈NPR〉, 2023년 9월 8일; “The public weighs in on “Stamped: Racism, Antiracism, and You””, 〈WHQR〉, 2023년 8월 2일; “After the removal of ‘Stamped,’ what’s next for the New Hanover County School Board?”, 〈The Seahawk〉, 2023년 10월 16일.[/ref]
이런 사건은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외려, 근래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교 및 공공 도서관 내 도서에 대한 검열 내지 금지 시도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다. 미국의 극우운동이 일으켰던 문화 전쟁(Culture War)이 도서 검열과 금지로 그 전선을 바꿔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최근 이런 분쟁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전미도서관협회의 지적 자유를 위한 사무소(Office for Intellectual Freedom)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금지 요청 대상이 된 도서 타이틀의 수는 2020년 233건에서 2021년 1,858건, 2022년에는 2,571건으로 증가 추세를 보였는데, 2023년에는 4,240건에 달했다. 2023년의 경우 학교 도서관뿐만 아니라 공공 도서관에도 압력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검열 대상이 된 책 종수가 학교 도서관에서는 전년 대비 11%에 증가한 데 비해 공공 도서관은 92% 증가했다. 검열의 표적이 된 도서 중 47%는 성소수자 내지 비백인 인종의 목소리와 경험담을 다룬 것이었다. 17개 주 100개 이상의 카운티에서 검열 시도가 일어났는데, 한 번에 수십 내지 수백 권의 도서에 대한 검열을 요구하는 단체와 개인이 주범이었다.[ref]ALA, 〈American Library Association reports record number of unique book titles challenged in 2023〉, 2024년 3월 14일.[/ref]
펜 아메리카(PEN America center)는 표현의 자유 보장을 주요 목표 삼아 미국 전역에서 초·중등 및 고등교육에 대한 이념적 통제를 행사하려는 운동을 추적해 왔다. 이 단체가 2023년 9월 발표한 〈School Book Bans: The Mounting Pressure to Censor〉 보고서를 통해 근래 공립 학교 교실과 도서관에서의 도서 검열·금지 시도의 추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21~2022학년에는 2,532건의 도서 금지 사례가 일어났는데, 2022~2023학년에는 33% 증가한 3,362건의 사례가 확인됐다. 특히 교실과 학교 도서관 모두 금지된 사례가 증가했는데, 333건에 불과했던 것이 2022~2023학년에는 무려 1,263건으로 4배에 육박했다. 도서 금지는 여러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으나 전통적으로 공화당 지지 성향이 강한 주나 카운티에 더 집중되고 있다. 2020년 대선 투표 경향과 비교한 결과, 도서 금지가 일어난 33개 주 중 공화당 성향 주는 19개, 민주당 성향 주는 14개였다. 카운티 등 구역(district) 차원으로 보면 금지 사례가 발생한 153개 중 공화당 투표 성향이 103개(67%)였다. 특히 이 103개 구역의 도서 금지 사례가 전체의 88%(2,943건)를 차지했다.[ref]Meehan, K., Friedman, J., Baêta, S.& Magnusson, T.(2023), 〈Banned in the USA: The Mounting Pressure to Censor〉. PEN America.[/ref]
금지당한 책들은 폭력, 비백인 인종과 성소수자, 학생의 건강, 성적 경험을 다룬 도서들이었다. 2021~2022학년과 2022~2023학년에 금지된 5,894건을 살펴보면, 37%가 폭력과 신체적 학대의 주제 및 사례를 포함했으며, 37%가 유색 인종 인물을 포함하거나 인종 차별에 대해 논의하는 내용이었다. 또한 36%는 트렌스젠더를 포함해 성소수자 인물이나 주제를 다뤘으며, 34%는 정신 건강, 괴롭힘 등 건강과 웰빙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 것이었다. 27%는 인물 간의 구체적인 성적 경험이 담긴 책이었으며, 22%는 플롯 또는 등장인물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죽음 등 슬픔의 사례나 주제를 포함하는 것이었다.[ref]Meehan, K. 외(2023), 앞의 글.[/ref]
도서 검열을 비판적으로 논의하는 책이 금지된 사례도 있다. 올해 5월, 플로리다주 인디언 리버 카운티 교육위원회는 앨런 그라츠가 쓴 어린이 대상 도서인 《Ban this Book》에 대해 3:2로 금지 결정을 내렸다. 책의 줄거리는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 반 친구 부모의 부적절하다는 판단으로 대출 금지된 이후 비밀의 금서 도서관을 만들게 된다는 것으로, 도서 금지와 검열, 그것을 결정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지 논하는 내용이다. 책 금지에 찬성한 다수파 위원들은 이 책이 학교에서 퇴출된 작품들을 논의하는 방식에 동의할 수 없으며, 교육위원회의 권위에 대한 반항을 가르친다고 주장했다.[ref]“Book about Book Bans Banned by Florida School Board”, 〈The Guaridian〉, 2024년 6월 11일.[/ref]
검열과 금서의 제도화
미국의 도서 검열·금지 시도가, 학교와 교실 내에서 인종, 성소수자 등 특정 내용의 교육 내지 언급을 금지하려는 법안 제정 시도와 함께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펜 아메리카는 이를 “교육적 함구령(gag order)”으로 지칭하며 크게 두 흐름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됐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인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에 일어난 제도권 내의 인종적 판단(racial reckoning)[ref]인종적 정산, 인종 차별 감수성 등으로 옮길 수 있는 개념으로, 오랜 인종 차별의 역사와 제도적·구조적 인종 차별이 있음을 인식하고 논의하는 감각, 실천 등을 가리킨다.[/ref] 움직임이었다. 두 번째는 1619년 아프리카 흑인 노예가 처음 버지니아에 상륙한 지 400주년이 된 것을 기념하며 미국 역사 속 인종 차별을 문제를 다룬 ‘1619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대중적 호응을 받았고, 학교 내에서도 이를 이용한 교육이 확산되었다.[ref]Friedman, J., LaFrance, S.&Meehan, K.(2023). 〈Educational Intimidation Bills〉, PEN America.[/ref]
2020년 7월 23일, 공화당 톰 코튼 상원의원은 1619 프로젝트가 건국의 토대인 자유와 평등의 원칙을 부정하는 인종 분열적인 역사 서술이라 주장하면서 1619 프로젝트를 가르치는 공립 학교에 연방 정부 기금 지원을 막는 ‘Saving American History Act of 2020’ 법안을 발의했다.[ref]“Sen. Tom Cotton Bill Would Prohibit Federal Funding for Teaching The 1619 Project”, 〈ABC News〉, 2020년 7월 25일.[/ref] [ref]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러한 흐름에 대해 반발했다. 2020년 9월 17일에 트럼프는 조지 플루이드 사망 사건 이후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BLM(Black Lives Matter) 시위를 소위 ‘좌파들이 일으킨 대혼란’으로 폄훼하고, 1619 프로젝트 등이 미국의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다며 역사를 수호하기 위해 애국주의 교육과정을 만드는 소위 ‘1776위원회’를 발족했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사회 구조가 성차별적이거나 인종 차별적이라고 주장하는 교육을 금지하는 조치를 시행하고 22일에는 이를 연방 정부와 계약을 맺은 회사들에까지 확대했다.(윤세병(2023), 〈역사 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문화전쟁’〉, 《평화들PEACES》, 2(1), 126~128쪽)[/ref]
2021년 1월부터 주 차원에서 인종, 성별, 섹슈얼리티 등 특정 내용을 교육에서 금지하고 교육 기관에 이념적 통제를 가하는 법안 발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톰 코튼의 법안 내용과 유사하게 1619 프로젝트를 가르치는 학교에 대한 주 정부 지원을 박탈하는 법안이 미시시피주에서 통과됐다. 다른 주에서도 유사한 내용의 법안이 발의, 통과됐다. 2022년 플로리다주에서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3학년까지 성적 지향 또는 성적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금지하는 ‘교육에서의 부모 권리법(Parental Rights in Education)’, 일명 ‘게이 언급 금지법(Don’t say gay)’이 통과된 이후에 다른 주에서도 유사한 법안이 발의되었다. 특히 플로리다의 학군에서는 해당 법안이 성소수자 인물이나 테마를 다룬 수백 권의 책을 금지하는 데 인용되기도 했다.[ref]Young, J, C., Friedman, J., Meehan, K.(2023), 〈America’s Censored Classrooms 2023〉, PEN America.[/ref]
직접적으로 금지하지는 않지만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법안들도 추진되었다. 학교교육을 침해하는 형태의 조사 내지 모니터링을 요구하고, 학교와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누구나 학교교육에서 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 점에 대해 반대할 수 있는 방법을 보장해 주는 식이다. 펜 아메리카는 이를 ‘교육적 협박(educational intimidation)’이라 지칭했다. 구체적으로는, 교육 자료 또는 도서관 도서에 대한 학부모 내지 일반 대중의 접근성을 높인다면서 정보 제공을 요구하거나 이를 공공 웹사이트에 게시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법, 도서관을 검사하고 도서를 제외시킬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이의 제기 절차나 정치적 기구를 구성하는 법, 도서 라벨링을 통한 제한 조건 등을 두고 나아가 학부모에게 자녀의 도서관 활동 모니터링 및 통제 권한을 부여하는 것 등이다. 아울러 교사의 개별 수업 계획 또는 전문성 개발 자료에 대한 공개 및 접근을 허용하는 등의 법들까지 더해 총 12개의 유형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조항을 담은 법안은 학부모 권리나 커리큘럼 투명성을 증진하는 것으로 포장됐다. 특히 글렌 영킨이 2021년 11월 그러한 레토릭을 활용하며 버지니아 주지사로 당선된 이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여겨지면서 공화당에서 공고화되고 있다. 2021년 1월부터 2023년 6월까지 성소수자 언급 금지를 포함해 교육적 협박으로 분류되는 법안이 392개 발의되었는데 그중 39개가 제정되었고, 행정 명령이나 규제 조치로 주 단위 정책에 포함되는 방식으로 9개가 채택되었는데, 최소 19개 주에서 시행 중이라고 한다.[ref]Friedman, J. 외(2023), 앞의 글.[/ref]
한편, 2022년 중간 선거에서 하원의 다수당을 차지한 공화당은 연방 차원의 법안으로 ‘학부모 권리법(Parents Bill of Rights Act)’을 발의했다. 학교가 커리큘럼을 공개하고, 학부모가 자녀의 교사를 만날 수 있게 하며, 학교 내 폭력이 발생할 경우 학부모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이었다. 또한 법안에는 학부모에게 학교 도서관에서 이용할 수 있는 도서 및 독서 자료 목록을 제공하는 것과 학교가 학생 개인정보 보호 정책 및 절차를 제·개정할 때 학부모에게 의견 표명 기회를 제공하는 것 역시 포함됐다. 2023년 3월 24일, 하원에서는 이 법안이 213:208로 통과됐다. 다만 상원은 법안을 반대하는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에 현재까지는 통과 가능성이 매우 낮다.[ref]“House Republicans Pass Parents Bill of Rights”, 〈The Hill〉, 2023년 3월 24일.[/ref]
극우 학부모운동의 상황과 방식
근래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학교 내 도서에 대한 검열·금지 시도 그리고 그 제도화의 배후에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존재한다. 바로 극우 성향의 학부모 단체가 진보적인 시민사회운동 단체들과 유사하게 조직적인 활동을 펼쳐 나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20세기 후반부터 여러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일어난 사회 변화가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주류 제도 정치의 성원이 아니었던, 즉 권력이 없던 이들이 기댔던 집단행동 내지 사회운동이 점차 제도적으로 인정받고, 일반 시민들 역시 이를 하나의 선택 가능한 수단으로 수용하게 되는 일종의 ‘사회운동 사회(social movement society)’가 도래한 것이다. 핵심은 더 이상 사회운동이나 집단행동이 진보적 시민/단체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 즉 보수 내지 극우파 역시 그 효용성을 인식하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ref]Meyer, David S.&Tarrow, S.(1997), The Social Movement Society: Contentious Politics for a New Century, Rowman & Littlefield Publishers. 한국 사회 역시도 우파 시민단체 활동이나 태극기 집회 등의 활동이 확인되고 있다. 특히 집회·시위에서 ‘매우 보수 성향’을 가지고 있는 개인의 참여 경향이 유의미하게 높음이 확인되기도 했다(전누리·신진욱(2024), 〈한국에서 집단적 항의행동의 확산과 ‘분쟁사회’의 격화 : 집회·시위 참여자의 이념적 양극화와 정치적 당파성, 2013~2022〉, 《한국사회학》, 58(1)).[/ref] 미국에서는 2008년 오바마 행정부에 반대하는 티파티(tea party) 운동 사례가, 유럽에서는 극우 진영의 난민 반대 시위 등이 주목된 바 있다. 극우 학부모단체의 활동 역시 이러한 배경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펜 아메리카는 크게 3개의 조직을 꼽고 있다. 플로리다주에서 시작된 ‘자유를 위한 엄마들(Moms for Liberty)’, 텍사스와 조지아주에 거점을 둔 ‘자유를 지키는 시민들(Citizens Defending Freedom)’, 오리건주를 기반으로 한 ‘교육에서의 부모의 권리(Parent’s Rights in Education)’이다. 2022~2023년 도서 금지가 이뤄진 33개 주 중에서 32개 주에서 이 세 단체 중 하나 이상이 활동하고 있다. 나머지 1개 주인 유타주의 경우, ‘유타 학부모 연합(Utah Parents United)’이 유사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ref]Meehan, K. 외(2023), 앞의 글.[/ref]
이들 중 ‘자유를 위한 엄마들’을 간략히 살펴보면, 이 단체는 부모의 권리를 옹호하고 보호할 수 있도록 부모를 단결시키고, 교육하고, 힘을 부여하는 것을 미션으로 두고, “우리는 정부와 공동으로 아이를 키우지 않습니다(We do not co-parent with the government)”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전직 교육위원이었던 티나 데스코비치와 티파니 저스티스가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였던 2021년 1월에 설립한 단체로, 초기에는 학교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화 반대 운동을 펼쳤다. 이후에는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독서 자료에서 인종 차별과 종교 문제 등이 다뤄지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체적으로 42개 주에 250개 지부, 약 11만 명에 육박하는 회원이 있다고 주장한다. 2022년부터 즐거운 전사(Joyful Warriors)라는 전국 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는데, 참가 학부모를 대상으로 극우 연사의 강연이나 활동 전략과 방법에 대한 교육을 진행해 오고 있다. 극단주의 단체를 추적하는 기관은 해당 조직의 몇몇 지부의 리더들과 회원들이 2021년 1월 6일 트럼프의 대선 패배에 불복해 일어난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에 주요한 역할을 했던 극우 백인 파시스트 조직인 ‘프라우드 보이즈(Proud Boys)’와 연계를 맺고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ref]Southern Poverty Law Center(2021), 〈Moms for Liberty〉.[/ref]
도서 검열·금지를 요구하는 단체들의 활동 중 특기할 지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온라인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학교운영위원회에 책의 금지를 요청하는 방법과 팁 등 구체적인 전술을 안내한다. 나아가 금지 대상이 도서별로 소위 ‘불쾌한 내용’을 인용하고 그 페이지를 정리한 리포트를 제공하는데, 이는 금지 요청의 근거 자료로 사용된다. 단체들은 각각의 학군에서 도서 삭제를 요구할 개인을 모집하고 교육을 진행한다. 예컨대 2023년 5월에는 플로리다주 에스캄피아 카운티에서 100권이 넘는 책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인근 산타로사 카운티를 방문해 활동 경험과 팁을 전수했는데, 이후 해당 학군의 학부모들이 그대로 문제를 제기했다.[ref]Meehan, K. 외(2023), 앞의 글.[/ref]
이 단체들은 보다 체계적인 도서 검열·금지의 제도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공화당과 깊은 연계를 맺으며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상술했던 미 하원의회가 통과시킨 학부모 권리 법안에 대해서도 부모가 자녀의 양육을 지시할 수 있는 기본적 권리가 존재한다며 강력히 지지하기도 했다.[ref]“House GOP Passes Parents Bill of Rights Act”, 〈ABC News〉, 2023년 3월 25일.[/ref] 나아가 도서 금지를 결정할 수 있는 학군의 교육위원회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위원 선거 출마를 독려하고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ref]Pappano, L.(2024), School Moms: Parent Activism, Partisan Politics, and the Battle for Public Education, Beacon Press.[/ref]
한편, 책을 검열, 금지하려는 운동이 그 명칭이나 미션에서도 드러나듯, 학부모 권리(parental right)라는 담론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그 담론 구조를 살펴보면, 아이들이 진보 진영이 주장하는 ‘깨어 있는(woke)’ 담론, 곧 인종 차별 논의나 성 이데올로기 등에 세뇌될 위험에 처해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자녀가 학교에서 경험하는 것에 대해 최대한 많은 요소를 감독할 수 있는 부모의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그 자녀가 인격적 존재로, 더 나은 성장을 위해 경험을 누릴 권리를 빼앗는다는 점에서도 문제적이며, 학부모의 권리라는 명목으로 극단주의자들이 자신의 아이를 넘어 다른 모든 사람의 경험까지 통제하려는 시도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ref]Pappano, L.(2024), 앞의 책. 이와 관련해 저자는 1980~1990년대 미국 기독교 우파(Christian Right) 운동에 주목한다. 그는 당시 운동이 도덕적 분노에 초점을 맞췄던 기존 메시지를 권리, 평등, 기회에 초점을 맞춘 보다 친숙하고 널리 수용되는 자유주의적 언어로 재탄생시켰다고, 즉 설교보다 설득을 하기 위해 미국 정치의 언어로 말하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종교적 목표를 세속적 용어로 번역하면서, 학교에서의 기도를 학생의 권리로, 교과서 내용에 대한 반대를 학부모의 권리로 포장하는 프레임을 만들어 냈으며 현재도 같은 방식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ref]
학교, 교사, 학생 들을 위축시키는 결과
중요한 건 이와 같은 도서에 대한 검열·금지 시도와 제도화가 가져오는 효과다. 지난해 가을, 전국의 학교에서 도서관과 체육관에 서가를 설치해 학생들이 방대한 종류의 책을 쇼핑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Scholastic Book Fair’ 시즌 당시, 책을 출판, 배포하는 Scholastic 회사는 학교에 여러 도서를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즉, 인종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책의 경우 별도로 진열하고 학교가 주문 여부를 결정하게 한 것이다. 이에 대한 학교 사서들의 불만이 틱톡과 레딧을 통해 쏟아졌으며, 교육자 및 작가들 역시 회사의 결정에 대해 비판했다. 이에 Scholastic은 성명을 내고, 특정 종류의 도서를 학교로 반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이 주별로 제정 내지 계류 중에 있으며, 특히 도서전이 학부모의 감독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이로 인해 교사, 사서, 자원봉사자가 해고, 고소, 기소에 취약해지는 딜레마를 가져온다고 주장했다.[ref]“U.S. Book Bans Are Taking a Toll on a Beloved Tradition: Scholastic Book Fairs”, 〈NPR〉, 2023년 10월 17일.[/ref]
실제로 교사나 사서가 해고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2023년 6월, 조지아주에서 학생들이 선택했던 베스트셀러로 성별 고정관념을 다룬 책인 《My Shadow is Purple》을 읽어 줬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교사가 해고당했다. 9월에는 텍사스의 중학교 교사가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그림으로 각색한 그래픽노블을 과제로 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공공 도서관 사서들에 대한 공격도 있다. 콜로라도 에리 지역 공공 도서관의 사서가 반인종주의 워크숍과 성소수자 주제의 책에 대한 ‘Read Woke book’ 클럽을 운영했는데, 도서관 관리자는 2명의 학부모의 항의를 받고 이를 취소시켰으며, 도서관 이사회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행사를 금지하는 정책을 통과시켰다. 해당 사서는 이에 반발했는데, 결국 2년 이상 근무했음에도 해고당하고 말았다.[ref]“Book Bans and the Librarians Who Won’t Be Hushed”, 〈The Magazine of the Harvard Graduate School of Education〉, 2023년 11월 6일; “Texas Teacher Fired for Showing Anne Frank Graphic Novel to Eighth-Graders”, 〈The Guardian〉, 2023년 10월 20일; “A Librarian Was Fired after Refusing to Ban Books. She Fought Back.”, 〈NPR〉, 2024년 1월 2일.[/ref]
이러한 검열·금지 시도 그리고 해고 조치에 교사와 사서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교사들과 사서들이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교육 내용이나 도서를 스스로 검열하는 효과도 초래되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에서 48개 주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5,240개, 고등학교 1,391개의 도서관을 샘플로 분석한 결과는 그 위축 효과를 시사한다. 2022년 10월 샘플에 속한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도서 검열·금지 시도가 있었던 학군의 도서관이 근래 출간된 성소수자 도서의 65권 도서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을 확률을 추정했는데, 직전 해 금지 시도가 있었던 학군의 학교는 최근 출판된 도서를 추가할 가능성이 낮음을 확인했다. 연구는 검열·금지 시도가 일종의 ‘냉각 효과(cooling effect)’를 가져와 사서들이 부모나 정치인들이 불쾌함을 느낄 수 있는 책의 구매를 피하도록 유도하는 증거라고 주장했다.[ref]Mumma, K.(2023), 〈Politics and School Libraries: What Shapes Students’ Access to Controversial Content〉, Brookings.[/ref]
무엇보다 극우단체 및 학부모가 교사와 사서를 공격하고 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은 직업적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고 궁극적으로 교사 수급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가장 징벌적인 교육적 협박과 함구령이 존재하는 플로리다주에는 교사 결원율이 가장 높아 2023년 초 5,300명이었는데, 이는 2021년 1월의 2배가 넘는 것이었다. 텍사스주 역시 77%의 교사가 학교를 떠날 것을 고려하고 있는데, 72%는 낮은 급여뿐만 아니라 학부모, 지역 사회 구성원, 주 입법자들의 존중 부족을 지적했다고 한다.[ref]Friedman, J. 외(2023), 앞의 글.[/ref]
무엇보다 도서 검열·금지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대상은 학생이다. 그러한 시도는 학생의 정보와 아이디어를 받을 권리를 박탈하기에 수정 헌법 제1조가 보장하는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교육과 성장의 차원에서, 검열·금지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집단적 지식을 쌓는 것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 다른 경험에 대해 듣는 것을 통해 본인과 다른 사람들의 문화적 환경에 대해 폭넓게 이해하는 것을 방해한다. 특히 다양한 책에 대한 독서를 통해 문해력을 증진시키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독서를 통해 삶의 궤적과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 놓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받고 있다.[ref]앞의 기사, 〈The Magazine of the Harvard Graduate School of Education〉, 2023년 11월 6일.[/ref]
검열·금지에 대한 저항
물론 극우 학부모단체의 학교 및 공공 도서관 내 도서 검열·금지 시도에 대한 반발과 저항도 있다. 도서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보장받기 위한 진보 진영과 시민들의 운동이다. 예를 들어 학군이나 학교, 공공 도서관의 도서 금지 시도에 맞서 반대 의견을 제기하거나 시위를 통해 항의하는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 아울러 검열 조치에 항의하다 해고된 사서와 연대하는 투쟁 역시 이뤄지고 있다.
보다 조직적 차원으로 여러 단체들이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연대체도 활동 중이다. 2022년 4월 전미도서관협회의 제안으로 ‘금지에 저항하는 연합(United Against Bans)’이 꾸려졌는데 전미교사연맹, 작가 길드, 출판사 등 200개가 넘는 조직과 수만 명의 개인이 참여하고 있다. 이곳은 극우 학부모단체가 학교 내 도서 금지를 위해 특정 도서별로 발췌 리포트를 제공하는 것에 맞서, 그 금지 대상 도서의 요약, 전문 저널 리뷰, 수상, 추천사 등이 포함된 도서 요약 리소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도서 검열·금지 시도에 맞설 수 있도록 도서관 및 교육위원회 참석 가이드가 포함된 대응 안내서(tool-kit)를 공유하고 있다. 2023년부터는 전국 도서관에서 ‘독서권의 날(Right to Read Day)’을 지정하고 공동 행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금지될 위험이 있는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하거나, 편집자나 선출직 공무원에 편지를 쓰고, 도서관 및 교육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평화적 시위를 하는 것을 제안했다.
법적·제도적 대응 역시 이어지고 있다. 2022년에는 텍사스주 라노 카운티 도서관 이용자 7명이 카운티 공무원과 도서관 이사회를 대상으로 도서 제한 조치가 수정 헌법 제1조가 보장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소송을 제기했는데, 연방 판사가 가처분 판결을 내려 도서 금지를 임시 철회시켰다. 2023년 6월에는 아칸소주의 사서 및 서점 연합이 새로 제정된 ‘미성년자에게 해로운 품목을 제공하는 시도를 범죄로 규정’한 주 법이 위헌이라 주장하며 연방 소송을 제기했다. 7월, 연방 판사는 위헌일 가능성이 높다며 효력을 중지하라는 가처분 판결을 내렸다.[ref]앞의 기사, 〈The Magazine of the Harvard Graduate School of Education〉, 2023년 11월 6일.[/ref]
무엇보다 도서 검열·금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학생들의 저항이 터져 나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2년 가을, 뉴욕주 오차트 파크의 학생들은 교육위원회의 책 금지 결정에 반발해 ‘교육을 지키는 학생들(Students Protecting Education)’이라는 조직을 결성했다. 같은 시기 캐롤라이나주 보퍼트 카운티에서 주민 2명이 특정 도서를 학교에서 제외시키지 않을 경우 음란물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하여 결국 97권의 책이 제거되는 일이 벌어졌다. ‘다양성을 인식하는 청소년 문해력 모임(Diversity Awareness Youth Literacy Organization)’에 속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이에 대한 투쟁을 펼쳤다. 2023년 5월, 펜실베니아주 헴필드 학군에서 중학생들이 도서관 정책 변경에 대해 시위를 했으며, 같은 달 네브래스카주 플래츠머스 학생들도 책을 금지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며 항의 활동을 펼쳤다. 2022년 봄에는 펜실베니아주 센트럴 요크 학군의 ‘반인종주의 팬더 연맹(Panther Anti-Racist Union)’ 학생 활동가들이 도서 금지 및 재검토 정책에 맞서 매일 등교 전 시위를 전개하고 교육위원회에 의견을 내, 금지됐던 2권의 책이 도서관 서가에 돌아오게 됐고, 새로운 도서관 정책이 채택되기도 했다. 학생들은 직접적인 투쟁 외에도 도서 검열·금지 시도에 대해 학교 에세이 과제, 졸업식 연설을 통해 그 부당함을 지적하기도 한다.[ref]Meehan, K. 외(2023), 앞의 글. 검열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조직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 역시 운영되고 있다. 1974년에 형성된 ‘전국 검열 반대 연합(National Coliation Against Censorship)’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검열 반대 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해 8개월의 리더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수정 헌법 제1조와 표현의 자유, 미디어 전략과 운동 전술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고 도서 금지에 대한 항의 투쟁 사례를 소개한다.[/ref]
이러한 항의 활동의 영향 탓인지 미국 사회 전반에서 도서 검열·금지에 반대하는 여론이 큰 상황이다. 지난해 언론사 〈NPR〉과 조사 기관 Ipsos가 초·중등교육 학부모 452명을 포함해 1,3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도서 검열·금지 조치에 반대하는 것이 다수이다. 개별 교육청이 특정 도서를 금지하고 해당 학군의 교실 및 도서관에서 도서를 없애는 것에 대해 65%가 반대했으며(학부모 59%), 주 의원들이 특정 도서를 금지하고 교실과 학교 도서관에서 없애는 것에 대해서는 69%(학부모 66%)가 반대했다. 검열·금지 시도를 이끌고 있는 공화당의 지지자들 중에서도 교육위원회의 금지 및 제거 시도에 대해서는 반대가 46%로 찬성 의견(41%)을 넘겼다. 특히 주 의원이 이런 법을 제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공화당 지지자 51%가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ref]“Poll: Americans Say Teachers Are Underpaid, about Half of Republicans Oppose Book Bans”, 〈NPR〉, 2023년 6월 2일.[/ref]
향후 전망과 시사점
학교와 공공 도서관 내 도서를 둘러싼 전쟁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현재로서는 단언할 수 없다. 제도 정치에 초점을 두고 살펴본다면, 공화당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남부의 주들, 소위 ‘레드 스테이트’를 필두로 도서 검열·금지 경향이 더욱더 강화될 수 있다. 나아가 올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돼 정권 교체가 이뤄진다면 연방 정부의 기조 역시 달라질 수 있다. 극우 학부모단체들이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인물들을 교육위원회에 당선시켜 도서 금지 결정을 확대하는 한편, 새로운 전술을 창안하며 도서 검열·금지 운동을 보다 설득력 있게 조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들이 전략적인 판단 아래 도서 검열·금서 운동에서 발을 빼더라도, 사회운동 사회로의 진입과 이념적으로 양극화된 사회를 고려해 볼 때 교육 분야에서 정치적 갈등은 다른 이슈를 통해서라도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해 본다.
한국에서도 미국의 도서 검열·금지 시도를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다. 한 국가에서 특정 사회운동의 요구나 전술, 활동 방식은 다른 국가로 전파, 확산되어 갈 수 있다. 한국의 극우단체들 역시 미국의 극우 학부모단체의 활동을 차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 과정을 적확하게 조사, 연구할 필요가 있겠지만, 과거 학교나 도서관에 대해 주로 ‘좌편향’을 지적하던 보수·극우단체들이 최근에는 성교육 도서나 특정 동화 등에 대해 ‘음란 도서’라 주장하며 퇴출을 요구하는 시도를 하는 모습을 볼 때, 미국의 활동 사례들에 영감을 받아 그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미국의 사례를 파악하는 것은 향후 한국의 보수·극우단체들이 어떤 전술과 행동, 주장을 펼쳐 나갈지 대비하는 데 참고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도서 검열·금지에 미국의 진보 진영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참고해 한국적 현실에 맞게 그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은 양국의 운동 주체들이 상황과 정보를 공유하고 구체적인 활동의 전략과 아이디어를 함께 논의하는 긴밀한 국제 연대가 필요한 상황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