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호[특집 - 키워드로 읽는 한국 교육 10년 / 청소년인권] 학교, ‘청소년 시민’ 앞에 서다 (배경내)

202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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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한국 교육 10년 / 청소년인권


 학교, ‘청소년 시민’ 앞에 서다

 

배경내

hregang@hanmail.net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가,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최근 ‘청소년 시민’이라는 말을 일부러 자주 사용하고 있다. 청소년도 당연히 시민인데 왜 굳이 ‘청소년 시민’이라고 부르나 의아해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사회의 일원이라는 의미에서는 청소년도 ‘이미’ 시민이지만, 이 사회의 전망을 함께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주체라는 의미에서 청소년은 ‘아직’ 시민이 아니다. 시민은 주로 남성·비장애인·청장년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리고 시민은 ‘국가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저항의 주체로 표상된다. 시민의 이미지에 청소년의 얼굴은 없다. 청소년은 주로 장차 민주 시민으로 육성되어야 할 예비 시민으로 상정되곤 한다. 더 잦게는 계도가 필요한 문제적 존재로만 언급된다. 청소년과 시민이라는 두 낱말의 조합에서 어떤 생경함이나 이질감이 느껴지는 이유다. 청소년 시민이라는 호명에는 두 낱말의 거리를 직시하면서 그 거리를 좁혀 나가자는 제안이 담겨 있다.


지난 10년은 청소년 시민에게 어떤 시간이었나. 세 가지 열쇳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광장, 학생인권조례, 그리고 참정권. 2010년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처음 제정되면서 ‘인간’으로 인정받게 된 청소년은 2019년 말 18세 선거권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제도적으로는 처음으로 ‘시민’의 지위를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정치적 장소로서의 ‘광장’은 삼각형의 꼭짓점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과 선거권 연령 하향이라는 변화를 끌어올렸다.

 


광장 ­ 청소년의 사회적 위치를 흔들다

 

2010년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와 이명박 퇴진을 외쳤던 2008년 촛불 집회가 있다. 촛불을 가장 먼저 들었던 사람들도, 인터넷을 통해 이명박 탄핵 서명을 발의했던 이도 모두 청소년이었다. 나쁜 고기를 먹게 된 정치적 사연을 캐물었던 광장에서 청소년들은 ‘나쁜 교육’에 대한 저항의 촛불도 함께 들었다. 일제 고사 부활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한 심판의 물결은 때마침 실시된 교육감 직선제에서 이른바 ‘진보 교육감’의 효시 격인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 당선을 낳았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김상곤 교육감의 핵심 공약 가운데 하나였다.


2014년 무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의 충격은 촛불의 광장을 다시 열었다. ‘왜 세월호는 침몰했으며 승객들은 구조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은 그 자체가 국가의 존재 의미와 책임을 묻는 것이었다. 특히 세월호가 침몰하기 직전 선내 방송을 통해 울려 퍼졌다던 ‘가만히 있으라’는 박근혜 정부하에서 시민들이 놓인 위치, 청소년에게 복종을 강요해 온 교육을 상징하는 명령으로 해석되었다. 그래서 더더욱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단지 희생자의 다수가 또래였기 때문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 나도 저렇게 버림받을 수 있다는 자각이 청소년들에게 더 깊은 충격과 애도, 분노를 자아냈던 것 같다.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주요 계기로 세월호를 꼽는 청소년을 지금도 만나기 쉬운 이유다. 보호와 육성의 대상이기만 할 때 제대로 된 보호나 교육조차 받을 수 없다는 정치적 각성이 밑거름이 되었던 것일까. 2015년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운동, 특히 2016년의 박근혜 퇴진 촛불 집회에는 청소년들의 폭발적 참여가 이어졌다.


지난 10년간 이어진 촛불의 광장은 두 가지 의미에서 청소년에게 부여된 사회적 위치를 뒤흔드는 정치적 장소였다.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서 함께 촛불을 든 ‘동료 시민’으로서 청소년을 경험했다. 자연스레 선거권 연령 하향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늘었다. 청소년의 입장에서 보면 광장은 일상과의 괴리를 절감케 만드는 장소이기도 했다. 보호주의와 폭력의 위험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광장에서는 시민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일상에서는 경쟁 교육과 폭력, 통제가 고스란히 이어졌다. ‘가만히 있으라’의 교육은 계속되었고, 첫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 변화 뒤에 찾아온 2017년 대선에서도 청소년은 투표장 바깥으로 내몰린 신세였다. 이 괴리를 메울 도전들이 이어졌다. 2014년 전북을 끝으로 주춤했던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이 경남, 충남 등지에서 다시 불붙었고, 선거권 연령 하향을 주요 목표로 하는 청소년 참정권 운동도 폭발적으로 전개되었다. 2018년 4월 서울 용화여고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된 ‘스쿨 미투’ 운동은 2000년대 학내 두발 자유 시위처럼 학교를 ‘광장’으로 만듦과 동시에 교육과 인권, 교육과 페미니즘, 교육과 정치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는 외침이기도 했다.

 


학생인권조례 ­ 인권, 교문을 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하에서 학생인권 기준 구체화와 권리 보장 기구 설치를 주요 내용으로 ‘학생인권법’ 제정을 요구했던 청소년인권운동은 2007년 말, 〈초·중등교육법〉에 추상적 조항(제18조의 4 “학교의 설립자·경영자와 학교의 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 하나가 신설되는 데 그치는 아쉬운 결말을 마주해야 했다. 이어서 들어선 이명박 정권은 학생인권에 적대적이었고 그래서 찾아낸 돌파구가 바로 학생인권조례였다. 교육감 직선제가 실시되고 초·중등교육 정책이 교육청으로 점차 이관되면서 조례를 통해 법률의 공백을 메우자는 기획이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경기도와 광주, 서울, 전북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잇달아 제정됐다. 특히 서울에서는 시민이 직접 만든 조례안으로 주민 발의 서명을 받고 제정에 성공하는 결실을 맺었다. 비슷한 시기, 충북과 경남에서도 주민 발의를 성공시켰지만 보수적인 교육청과 도의회에 가로막혀 제정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유권자 1%의 주민등록번호와 자필 서명까지 모두 종이에 받아 제출해야 하고, 정작 당사자인 청소년은 유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참여조차 할 수 없는 조건에서 학생인권이라는 주변부의 의제로 주민 발의에 성공한다는 것은 당시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한동안 주춤했던 학생인권조례 제정 흐름은 2020년 충남과 제주에서 이어져 현재 6개 지역에 조례가 제정된 상태다.


학생인권조례 운동을 계기로 학생인권에 대한 사회적 이해도 높아졌고, ‘학생이 인권은 무슨 인권이냐’는 이야기를 이제는 대놓고 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교육감 선거에서는 학생인권 공약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이 될 만큼 정치적 비중도 강화됐다. 학생인권조례는 제정된 지역에서는 미흡하나마 학생인권 상황을 개선시키는 효과를, 조례가 없는 지역에서는 학생인권 정책의 시늉이라도 하게끔 견인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반면 보수 교육 집단과 혐오 세력의 조직적 반대 운동과 조례 무효 소송이 이어지고 교육청의 책임 행정이 뒤따르지 않으면서 학생인권은 현장에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채 어려운 고비를 계속 넘고 있다. 시민사회와 교육청이 추진하던 경남 학생인권조례가 도의회 상정이 불발된 예나,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지 9년이 지난 지금도 교육청의 학생인권종합계획에 대한 보수 집단의 항의가 이어지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논란이 계속되면서 교육계는 물론 정치권의 학생인권에 대한 피로감도 높아져 학생인권을 전면에 내세운 정책이나 법률을 꺼리는 모양새다. 교사운동 역시 현장 조합원 정서를 핑계로 학생인권에 소극적인 자세에 머물러 있다. 학생인권은 돌이킬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되었지만, 여전히 높은 사회적 장벽을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인권은 교문을 넘고 있지만, 정작 학교 안에 들어서서는 생기를 잃어버린다. 체벌이나 ‘귀 밑 3cm’ 규정이 사라졌다고 해서 학생인권이 실현되었다고 믿는다면 착각이다. 스쿨 미투 운동은 학교의 여전한 폭력을 비추는 거울이다. 교육 당국이 2020년 코로나19로 등교 수업을 재개할지 말지를 결정할 때도 학생의 의사를 묻는 절차는 당연하다는 듯이 생략되었다.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 위원의 자리는 없고, 감염 위험에도 체육복 등교를 금지하고 휴대전화를 뺏는 학교도 많다. 교사의 혐오 발언이나 정치 편향적 발언에 청소년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토론할 수도 없는 게 교실 현장인데, 학생인권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사람들이 민주시민교육 확대를 부르짖는 모순을 만나기도 한다. 청소년은 학교에서 여전히 존엄한 인간으로, 동등한 시민으로, 교육의 주체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학생인권의 반대편에 ‘교권’을 놓는 관성적 사고방식도 여전하다. 학생인권은 폭력, 차별, 특권, 배제의 교육을 인권의 교육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학생인권의 반대편에 교권이 놓여 있다면, 그 교권이란 실상 때릴 권리, 차별할 권리, 기득권을 유지할 권리, 학생을 배제한 채 학교를 운영할 권리의 다른 이름이지 않을까.


 

참정권 – 청소년 시민의 시대가 시작되다

 

2008년 서울과 2009년 경기도에서 치러진 첫 교육감 직접 선거는 교육감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을 수밖에 없는 청소년이 정작 선거에는 참여할 수 없는 부정의를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 발의 과정에서도 청소년은 정작 조례 제정 청구권이 없어 서명에 참여할 수 없어 참정권의 중요성을 절감케 했다. 박근혜 퇴진 촛불 집회와 이어진 대선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청소년의 고통이 중요한 정치적 의제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정치에서 ‘표가 되지 않는 집단’이고 ‘청소년의 정치’가 부재하기 때문이라는 각성이 청소년 참정권 운동에 불을 지폈다. ‘선거권 없음’은 청소년이 동등한 시민이 아니라는 하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청소년이 선거운동과 투표, 정당 활동에 참여할 수 있고 스스로를 대표하기 위해 입후보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참정권 운동의 결과, 2019년 12월 27일 선거권 연령을 기존 19세에서 18세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청소년은 정치하면 안 된다는 오랜 사회적 금기에 파열이 가해졌다.


2020년 18세 선거권 시대가 열렸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청소년 시민이 참여한 첫 번째 선거의 의미는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후속 변화도 더디다. 교육 당국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치교육이나 주권자교육을 추진하기는커녕 선거법 위반에 관한 안내에 머물렀고 학교 안 모의 선거마저 금지하면서 청소년의 정치를 위축시키는 데 급급했다. 21대 총선에서 18세 유권자는 55만여 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고등학교 재학자는 16만 명쯤이다. 18세 선거권으로는 대다수 청소년의 삶을 변화시키는 정치 구조를 만들기 어렵다. 학교에서 정치는 여전히 금기어다.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 정책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도 선거법과 교사-학생 권력의 불평등에 발목이 잡혀 있다.


다행히 전환의 물꼬를 틔울 작은 변화들이 감지되고 있다. 무엇보다 청소년의 정치 참여가 확산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1대 총선에서 18세 투표율은 67.4%로 전체 평균 투표율 66.2%보다 높았다. 18세 여성의 투표율이 71.8%로 18세 남성 투표율 63.3%보다 훨씬 높은 젠더 격차도 관찰됐다. 청소년 시민의 삶을 둘러싼 정치 사회적 환경 가운데 무엇이 이들의 정치적 말하기를 증폭시켰는지는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이들이 정치를 통해 어떤 변화를 열망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선거권이 없는 청소년들도 같은 10대가 투표하게 된 변화를 마주하면서 정치적 관심이 커졌음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향후 정치의 흐름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제도적 인정과 무관하게 지금 청소년 시민이 학교 앞에 서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학교는 청소년 시민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가. 청소년의 정치적 말하기를 해석할 힘이 있는가. 학교는 광장이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향후 교육의 방향을 결정짓는 질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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