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호[리뷰] 미래의 교장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책 | 박진환

202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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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미래의 교장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책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 기획, 

《교장의 일 – 학교 혁신을 위한 교장직무가이드라인》, 

교육공동체 벗, 2024



박진환

k950108@hanmail.net

충남 아산 거산초 교사




얼마 전, 명예퇴직 뒤 농사를 짓고 산다는 선배 교사의 연락을 받았다. 그는 교직을 그만둔 뒤로도 현장 교사들과 꾸준히 만남을 이어 갔던 모양이다. 때마침 공모 교장 자리가 났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었던지, 결국에는 내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학교 안팎의 절친 동료 교사들은 반색했지만, 단번에 거절했다는 내 말에 꽤나 실망한 모습이었다.

40대 중반까지도 옮기는 학교마다 승진 권유를 잊지 않았던 관리자들은 어느새 사라졌건만, 50대 중반에는 오히려 동료 교사와 모임 동료들이 내게 공모 교장으로 가면 좋겠다고 적극 권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게 교장을 권유하는 주체는 분명 달라졌는데, 교장의 길로 가라는 말은 이전과 다르지 않은 어딘가 낯설지 않은 풍경. 일전에 〈승진의 굴레에 갇힌 우리 시대 교사의 자화상〉❶이라는 글까지 쓰며, 교장의 길은 내게는 너무 먼 ‘옵션’이라 했던 나한테 주위 사람들은 왜 자꾸 교장을 권유하는 것일까?



가볍게 볼 수 없는 두 가지 지점


지난 10여 년은 진보 교육감이 온나라에 들어서면서 ‘혁신교육’의 폭풍이 휘몰아친 시절이었다. 현장에서 묵묵히 아이들 곁을 지키던 교사들, 전문직과 승진은 저만치 미뤄 두고 실천을 앞세우던 교사들이 어느 순간 조금씩 혹은 대거 교육청 관료와 공모 교장으로 자리를 옮겨 가기 시작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중간의 위치에 서서 동료 교사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며 운동성을 보였던 이들이 미처 중간 리더를 만들어 내지도 못한 상태에서 자리를 옮기면서 학교 혁신의 동력도 급격히 떨어졌다. 처음에는 이런 움직임의 필요성을 인정하던 이들도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를 마땅치 않게 보던 이들은 교육청과 교장 자리에 있는 사람은 바뀌었는데 하는 일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알게 모르게 비난하기도 했다.

몇 해 전, 교육청 직속 기관에 파견을 나갔을 적에 일찍부터 현장을 떠나 장학사가 된 어떤 이를 만났다. 그는 같이 운동을 하던 후배 교사가 전문직 시험을 치려 하자, 현장을 지키라고 했는데 저런다며, 농인지 진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흘리기도 했다. 그렇게 진보 교육감 시절은 현장 활동가들에게 새로운 기회와 욕망, 혹은 탈출의 시공간이었다.

그렇게 달라진 상황 속에서 혁신 초기에는 이전보다 친절한 장학사, 소통하려는 교장이 늘어나기도 했다. 아울러 이전보다 현장을 고려한 크고 작은 정책이 실현되었고, 혁신학교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도 기존 관료들, 점수로 교장이 된 이들의 의식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혁신은 퇴색하고 현장은 다시 껍데기만 남아 있다. ‘무늬만 혁신학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이렇듯 혁신교육의 실패가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는 차에 교육공동체 벗에서 《교장의 일》이라는 책을 펴냈다. 안 그래도 이 책의 출간 예정 소식을 몇 달 전부터 들었던 터여서 궁금은 했다. 받아 본 책 표지에는 “학교 혁신을 위한 교장직무가이드라인”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문득 이 책이 정말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만큼의 기준이 담기려면 피땀 어린 실천을 한 많은 이들의 깊고도 오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펼쳐 든 책의 들머리에는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인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의 글이 있었다. 거기에는 책의 발간 의도와 그동안의 부침, 기대가 곳곳에 담겨 있었다. 차례에 담긴 갈래와 제목 끝에 쓰인 필자들의 면면을 보니 선입견과 편견은 저만치 던져 두고 내용을 먼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만 봐도 알 만한 분들과 개인적으로도 너무 잘 아는 분들이 필자로 참여했다. 직간접적으로 그분들이 교장의 자리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애를 쓰며 살았는지는 알고 있었기에 이 책을 가볍게 볼 수만은 없었다. 그럼에도 두 가지는 꼭 확인하고 싶었다. 하나는 너무도 당연한 실천 과정과 결과를 담은 사례집의 성격은 아니길 바란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제시한 가이드라인이 혁신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검은 상자 속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


한때 기능주의 교육사회학 이론과 재생산 이론에 바탕을 둔 비판적 교육사회학 이론 모두 받은 신랄한 지적 중 하나는 그들 모두 교실과 학교를 하나의 ‘검은 상자(black box)’로 취급했다는 사실이었다. 즉, 교육이 이루어지는 교육적 과정을 무시하고 교육의 결과와 사회적 밀착 관계만을 강조해 교실과 학교에서 이뤄지는 사회적 관계와 상호작용, 교육과정의 역할을 애써 무시했다는 비판이었다. 오늘날 학교와 교실은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과 상당수 관료들에게 여전히 ‘검은 상자’로만 치부되고 있다. 최근 교육부의 디지털교과서 도입도 현장의 소리를 무시한 일방적인 정책이라는 점과 그 정책을 받아들일 교사와 학생의 처지를 심각히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학교와 교실은 그저 ‘검은 상자’일 뿐이다.

교육청의 말단 기관으로 치부되는 ‘검은 상자’의 학교. 상부 기관의 지시를 받아 정책 효과와 결과를 보고해야 하는 처지의 교장. 그러나 교장은 학교 안의 구성원들이 어떤 고통과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를 통해 검은 상자 속 삶들을 지켜 내고 보호하는 역할을 가장 우선해야 한다. 혁신교육의 가장 큰 목표는 ‘공교육의 정상화’였고 ‘민주적인 학교 문화 조성’이었다. 이를 위해서 교장에게는 ‘민주적인 리더십’이 필요했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곽노현은 ‘교장이 되고 싶으면 무엇보다도 소통·상담 및 문제 해결 역량을 충분히 쌓으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고 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학교장의 직무 원칙 및 실천 과제’ 곳곳에서도 이런 점을 강조하고 확인시키고 있다.

이런 시선으로 책을 들여다보니, 학교 속 구성원들의 구체적인 삶에 천착하는 글을 쓴 몇몇 필자들이 보였다. 적게는 몇백 명에서 많게는 몇천 명이 살아가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생과 교사, 보호자 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알고 살아가려는 교장들이 오늘날 학교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름을 알고자 하는 일은 그들의 삶을 알고자 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학생, 교사, 보호자 들이 품는 희망은 무엇이며, 그들의 한숨과 눈물은 무엇에 기인하는지 교장은 알아야 한다. 업무로 짓눌리는 교사, 상처로 고개 숙인 학생과 직면하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많은 교장이 단지 권위만 앞세우던 시절에 늘 우리가 진정으로 바란 교장의 모습이었다. 이런 면에서 《교장의 일》에 자신의 이야기를 쓴 교장 중 둘에게 눈이 갔다.


교장은 민주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들이 잘 작동되는지를 점검해야 하고 꼭 공식적인 회의뿐만 아니라 다양한 규모의 만남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교사들이 익숙한 공간이나 단위에서 한 이야기들을 주의 깊게 들을 때, ‘학교가 내가 말한 것을 이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고 주인의식을 갖게 된다.

- 박지희, 〈학교라는 정원을 가꾸는 교장〉, 본문 230~231쪽


큰 학교에서 꽤 많은 교사가 하나의 점처럼 살아가곤 한다. 오히려 스스로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 교사도 꽤 많다. 상명하복의 기계적이고 비민주적인 학교 문화 안에서 무비판적인 수용이 주는 불안한 평화라도 좋다는 교사. 초등처럼 담임이 모든 과목을 책임지는 구조에서 빚어지는 섬 같은 교실이 주는 익명성에 기대어 편안함에 만족하는 교사. 문제가 있어도 학교 구성원 사이의 갈등을 회피하고 겉으로라도 편히 보내고 싶은 교사. 물론 단지 개인적인 성향과 기질에만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학교 구성원의 고민과 갈등을 애써 무시하고 지나가는 관리자와 폐쇄적인 학교 문화, 공동체성이 사라진 업무 중심의 학교 문화가 만들어 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학교가 본질적으로 이런 문화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하나의 점이나 섬이 아닌 구체적인 삶을 나눌 학교 구성원들을 만나는 일은 각자도생하는 시대에 교장이 해야 할 가장 큰 일이다. 교직원과 학생에게 이상적인 교장은 그저 기계적으로 소통하고 열심히 일만 잘하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직원회의 때 교사들보다 말을 더 많이 하고 주도하여 빨리 회의를 끝내는 게 좋은 교장이 아니다. 입을 다문 교사와 학생들이 말을 할 수 있게 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시간이 걸리더라도 소통과 설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교장이 오늘날의 학교에는 정말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교사들은 배울 수 있고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관이 명관이라며 ‘그때 그 교장 좋았다’고 칭찬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그 교장에게 배워 학생과 동료, 보호자를 대하는 시선이 달라지고 교사들의 삶도 달라지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 이 시대 교장이자 리더가 해야 할 일이다. 이런 지점에서 박지희의 〈학교라는 정원을 가꾸는 교장〉과 〈학생을 둘러싼 관계를 맺고 푸는 전지적 참견자로서의 교장〉이라는 글은 교사로서 크게 와닿는 글이었다. 모르는데도 아는 척 에둘러 경험으로 퉁치고 넘어가는 화법을 가진 닳고 닳은 교장이 아니라, 모르는 것은 애써 찾아 학습하여 구체적인 사람을 만날 준비를 하는 교장 박지희 같은 따뜻한 감성이 학교의 리더에게는 너무도 필요하다. 그와 같은 교장의 학교에는 익명으로 숨어드는 교사, 학생은 더 이상 없을 테니 말이다.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춰 선다’라는 말이 늘 뼈아팠다. 학생들은 제각각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 학교에 오는 것조차 버거운 처지의 학생도 부지기수다. 학교라면 이들을 조건 없이 손 벌려 환대해야 하지 않을까. 가르침은 그 이후의 문제일 것이다. 삶을 다루는 학교는 기본적으로 다정하고 따뜻해야 한다.

- 이상대, 〈환대의 마음으로 학생을 만나다〉, 본문 264쪽


혁신학교가 확산되면서 마치 유행처럼 번져 간 풍경 중 하나가 교장이 직접 교문 앞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응당 했어야 하는 일이고 당연한 풍경이지만, 오랫동안 우리네 학교에서 이런 모습을 보기는 정말 어려웠다.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라지만, 학생을 환대하는 일은 오롯이 생활지도 교사의 몫이거나 교통 당번을 맡은 담임 교사의 몫이었다. 이렇다 보니 교장이라는 위치에서 학생들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했을뿐더러 오늘을 사는 학생들을 이해하기란 더욱 어려웠을 터다. 이상대는 학생들의 등교를 환대하면서 컵밥을 먹으며 등교하는 학생, 슬리퍼로 하루 종일 사는 학생, 단골 지각생의 사연을 듣고 내일부터 일찍 나오라는 말을 하기 어려울 때의 심정을 언급한다. 그래서 교장 이상대의 대답은 “교장샘이 뭘 도와줄까?”였다. 그는 속도에 치여 숙고의 여유와 성찰, 기다림을 잃어 가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오롯이 ‘사람’을 존중하는 교육의 기본을 사수하는 것이 교장의 마음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 책의 1부에는 ‘교장직무가이드라인’이 먼저 나온다. 가이드라인은 교장이 할 일이 얼마나 많고 중요한지, 어떻게 해야 그저 학교만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바꿔 낼 수 있는지, 그리고 왜 학교에 교장이 있어야 하는지를 밝혀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지점을 언급하기에 앞서 교장은 학교에 사는 구체적인 사람들, 교직원과 학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삶을 적극 끌어올 준비를 먼저 해야 한다고 본다. 행정적이고 법적인 것은 이런 준비가 돼 있고 난 뒤에 동반되어야 할 일이다. 최근 사회과학에서는 한 사람의 삶의 이력을 어릴 적부터 추적하고, 그로부터 사회적 맥락을 읽어 내 한 인간과 그가 살아온 사회와 역사를 함께 보려는 연구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학교에도 이름을 가진 수많은 구성원들이 있다. 개별 삶에 주목하는 시대, ‘교장의 일’도 새롭게 규정될 필요가 있다.



개인의 역량을 넘어서는 지속가능성


2018년에서 2019년까지 나는 우리 지역 교육청의 교육정책연구소에 파견을 나가 연구 보고서를 썼더랬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혁신학교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연구 보고서였다. 이미 앞서 혁신학교 정책을 폈던 타 지역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우리 지역에 맞게 연구 방법을 구안하여 포럼까지 열어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는 당시 우리 지역 혁신학교의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하며, 부족하나마 대안을 제시했다.

당시 연구를 위해 각급 각 지역의 혁신학교를 찾아가 관리자와 교사를 만나 많은 인터뷰와 설문을 했지만, 결국 학교는 개인의 역량에 크게 기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개별 학교에 열정을 가진 구성원들이 얼마나 많은지, 혹은 중간 리더와 교장의 역량과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학교의 모습이 달라졌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정책적 효과는 극히 미미했고 학교 현장은 오롯이 혁신교육 수행이라는 책무를 떠안은 구성원들의 열정으로 버텨 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도하던 교사들은 지치고 소진되어 가는 상태였고, 그들은 혁신학교의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의문을 표했다. 5년이 지난 지금, 그 의문은 현실이 되었고 교육감 임기의 끝이 보임과 더불어 혁신학교는 이제 일몰 정책이 되었다. 

《교장의 일》에 나오는 주요 실천 사례는 모두 공모 교장의 사례였다. 글로 본 그들의 실천은 흠을 잡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 교육과정을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 가는 교장들의 사례, 업무 최적화와 효율화를 위해 힘을 쏟았던 사례 중 일부는 이미 많은 학교가 실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교장뿐만 아니라 교사에게도 유익한 정보이기도 했다. 학생, 교사를 넘어 보호자들과 관계를 새롭게 맺어 가며 그들을 교육의 주체로 만들어 보려는 노력도 매우 돋보였다. 이 밖에도 마을과 학교를 잇는 실천과 교육지원청과의 협력 관계 등 정책과 교육을 조율하려 애쓴 교장들의 실천은 박수 받아 마땅한 사례였다. 하지만 사례를 읽을수록 나는 이 또한 다분히 개인의 역량에 기댄 실천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가깝고 먼 거리에서 들리는 공모 교장의 실천이 늘 칭찬만 받는 건 아니다. 승진 교장만큼이나 공모 교장 또한 역할 규정이 없어 순전히 개인의 역량과 경험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혁신교육의 지속가능성에 끊임없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고, 이 책이 가진 한계이자 이 책이 만들어진 까닭이 아닐까 싶었다.

이 책을 읽기에 앞서 나는 걱정이 되는 점, 혹은 이렇게 내용이 담기지는 말았으면 하는 점이 있었다. 지나치게 당위적이고, 빈틈도 없고, 성찰의 지점보다는 과정과 결과가 강조되는, 구체성마저 떨어지는 그런 내용은 아닐까 걱정됐다. 마치 교육청에서 나오는 자료집 같지는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실제로 책을 읽어 보니 이런 걱정이 아주 괜한 것은 아니었다. 상당수의 글이 당위적인 실천과 결과라는 느낌이 들고, 실천 행위는 있으나 구체성이 떨어져, 부제가 ‘교장직무가이드라인’이긴 하지만 이 책의 사례만으로는 교장이 자기 직무의 가이드라인으로 확실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아울러 실천 사례 모두가 공모 교장의 것들에 국한돼 있어 교장의 일을 받아들이는 시선이 한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 책의 또 다른 한계였다. 물론 편집 구성상 각급 교장에게 맡길 수 있는 영역을 나누었을 터이고, 원고 분량에도 제한이 있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출간 뒤 이어질 이야기 자리 등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좀 더 풀어낼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이 책의 기획자들이 교장직무가이드라인을 만든 데에는 혁신의 지속가능성을 바라는 마음이 담겼을 것이다. 개인의 역량이 아닌 시스템과 제도로 교장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지속가능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본다. 긴 기간에 걸쳐 개인 연구와 연구학교 참여 점수, 연수와 근평까지 챙겨야 겨우 교장으로 들어설 여지를 얻을 수 있는 현 시스템에서는 이 책에서 바라는 교장을 바라기는 어렵다. 교장이 되어 뒤늦게 가이드라인을 받아든다고 해서 무언가 달라질 수 있을 만큼 현실은 녹록지 않다. ‘성공’이라 일컬어지는 교장의 자리와 승진에 ‘실패’한 경력 교사의 자리는 오래되고 낡은 그림이자 동시에 현실이다. 이 같은 현실을 놔 두고서는 학교 혁신의 지속가능성은 요원할 뿐이다.

그나마 현장에서 치열하게 학생들과 보호자들과 만나며 교육을 생각하고, 동료 교사들과 수업을 고민하고 실천하며 실질적인 연구 역량을 쌓아 온 일부 공모 교장들에게서 우리는 조금이나마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치적인 혹은 다른 이유로 공모 교장에 교사들이 나설 수 있는 기회와 자리는 점차 줄고 있다. 그럼에도 앞서 공모 교장으로 나섰던 이들의 좀 더 많은 성찰적 실천 연구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교장이라는 일이 단지 개인적인 경험과 욕망의 또 다른 분출이 아니었다면, 그것을 증명할 이후의 작업들이 반드시 이어져야만 한다. 혁신의 지속가능성이 공모 교장의 개별적 실천과 알려지지 않은 경험에만 의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바라건대, 이 책 《교장의 일》이 이를 위한 첫 마중물이길 기대하여 본다. 나는 “교장의 일”이라는 제목을 달고 또 다른 2편이 나오길 바란다. 그 책에는 서울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분투하며 또 다른 직무가이드라인을 만들었던 교장들의 이야기가 담겼으면 한다. 작은 학교에서부터 큰 학교를 아우르는 실천은 또 다른 직무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교장은 10년 전 같은 직업 만족도 1위의 매력적인 자리는 아니다. 그러나 내가 첫 발령을 받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오늘을 살아가는 교사들이 일정한 욕망을 담고 바라보는 자리인 것은 분명하다. 그 자리에는 내가 알고 있던 이들이 오늘도 뜻을 품고 교장이 해야 할 많은 일로 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수많은 이야기가 쌓이고 쌓여 또 30년이 지난 어느 순간에는 우리가 기대하는 교장의 역할을 수행할 제도와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꿈꾸어 본다. 그래서 이 책은 아마도 당장 지금이 아니라, 먼 훗날 교장을 하게 될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공모 교장들은 이렇게 분투하며 왜곡된 교장의 역할을 바로잡고자 애를 썼고, 이런 교장직무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지속가능성을 찾아보기도 했고, 훗날 교장의 바람직한 역할을 제도화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다고 말이다. 아마도 이 책은 그렇게 읽혀야 마땅하지 싶다. 



교육공동체 벗에서 나온 책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박진환·윤지형·이계삼 외, 2013)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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