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호[기고] 학생은 통제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하다 | 이우혁

2024-10-07
조회수 82

기고


학생은 통제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하다

- 생활지도 고시가 아니라, 아동 지원과 교육 개혁이 답이다



이우혁 

himawarib@naver.com

강원 동해 묵호초 교사, 

연대하는 교사잡것들




2023년 서이초 교사 순직 이후, 교사들의 분노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교육부는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생활지도 고시)를 발표했다. 생활지도 고시 발표 이후 교원단체 및 노조 등의 집회 규모는 눈에 띄게 줄었다. 교육부 입장에서는 예산 한 푼 들이지 않고 분노를 잠재운 신의 한 수였다. 그러나 생활지도 고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학생인권을 억압하고 부작용을 낳기에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그 내용을 뜯어 보면 여러 가지 문제가 많지만, 이 글에서는 생활지도 고시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학생 분리’와 ‘휴대전화 규제’에 관해서만 이야기해 보겠다.  



문제를 방치하는 데 그치는 분리


수업 중 교육 활동을 방해하는 학생, 소위 ‘문제아’는 생활지도 고시에 따라 교실에서 분리시킬 수 있게 되었다. 강영미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대전지부장은 “학생의 문제 행동을 지도하고 도움을 주어 함께 수업을 듣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을 분리하고 징계하는 것이 목적인 것” 같다며 우려를 표했다.❶ 생활지도 고시에서 규정하는 생활지도의 끝은 ‘생활지도’가 아니라 ‘상벌’이다. 학생들은 상벌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하다. 학생을 분리하는 것은 자연스레 범죄학에서 다루는 ‘낙인 이론’이 떠오른다. 이런 방식으로는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돕지 않아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은 어렵고, 자칫하면 더 큰 부작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올해 여름, 강제 전학 등으로 여러 학교를 전전하던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교감의 뺨을 때린 일이 언론에 보도됐다. 캐나다 아동 지원 전문가들은 아동은 절대적 약자이기에 아동이 여러 매체에서 조리돌림 당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캐나다에서는 이런 아동을 교사 개인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행동 지원사, 심리 전문가 등과 한 팀이 되어 대응한다.❷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는 보호자가 아동에게 필요한 심리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 방임에 해당되어 심한 경우 양육권을 일시적 혹은 영구적으로 빼앗길 수 있다. 치료 등 적절한 노력이 강제되는 것이다. 대신 심리 치료가 필요한 아동 및 보호자에 대한 인적·금전적 지원을 한다.❸ 물론 이러한 북미 국가들에도 제도의 허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들 나라에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모든 아동의 행복과 안전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교사는 물론이고 보호자도 아동 보호와 교육의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라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생활지도 고시 덕에 ‘문제아’를 교실로부터 분리할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생활지도 고시의 분리 조치만으로는, 여전히 아동에게 적절한 상담이나 치료를 제공하지 않는 방임·학대를 하는 보호자는 아이를 자기 감독하에 두고 모든 책임을 학교에 맡겨도 된다. 교육부는 위탁 시설 및 보육 시설의 확충, 아동의 치료 및 안정을 위한 전문 인력 양성, 아동 및 보호자의 치료 비용에 대한 예산을 단 한 푼도 늘리지 않아도 마치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위장할 수 있게 되었다.

다수의 학습권을 위해 학생을 학대가 이루어지는 집으로 보내는 것이 정말 교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일까.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낙인찍음으로써 그 학생의 행복과 안전, 미래쯤은 포기하는 것이 합법이 되어 버린 지금을 우리는 그대로 두어야 할까.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은 휴대전화가 아니다


생활지도 고시를 보면 많은 부분이 휴대전화 사용과 규제에 관한 내용이다. 심지어 목적, 정의, 교육 3주체의 책무와 함께 제1장 총칙에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 항목이 들어가 있다. 교육부는 교권 침해의 가장 주요한 원인을 학생들이 수업을 듣지 않는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학생은 학생답게, 수업이 재미없더라도 들어야지. 힘들더라도 참지 않으면 교권 침해야”라는 생각. 

그런데 교육부가 휴대전화 사용 등을 교권 침해라고 규정했다면, 규정 명시와 함께 학생들이 ‘학생답지 않게’ 수업을 듣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분석하고 원인을 해결하는 노력도 해야 한다. 국민에게 어떤 의무가 있다면, 그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왜 수업을 듣지 않고 휴대전화를 사용할까? 주변 교사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중·고등학생보다는 초등학생이 수업에 집중을 잘하는 듯하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학생들은 수업을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 듣는 것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업 내용이 점점 이해가 안 되니까.

한국 교육과정은 소위 모범생이라 불리는 소수의 학생들에게 맞춰져 있다. 항상 이전에 배운 개념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다고 전제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지난 학년, 지난 학기에 배웠던 내용을 잊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국가 교육과정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서 단 1년만 방황해도 다시 시작하기가 매우 힘들다. 초-중-고로 이어지는 교육과정의 기본적인 양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다. 가르칠 내용이 많으니 나선형 교육과정은 꿈같은 이야기다. 2015년 TIMSS(수학·과학 성취도 추이 변화 연구) 보고서에서는, 한 주제가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는 기간이 한국은 참가국들의 중앙값보다 1년이 짧았으며, 미국은 1.7년이 길었다고 한다. 미국이 한국에 비해 한 주제를 2.7년이나 더 가르친다는 뜻이다.❹ 그나마 초등학교에서는 성취 수준이 낮은 학생에 맞춰서 수업하는 것이 가능하다. 잘하는 학생에게는 추가적인 과제를 주거나 보조 교사의 역할을 주어도 어느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초등 교육과정도 양이 많은 것은 마찬가지지만, 입시 경쟁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중등에서는 과도하게 많은 양을 배워야 하는 교육과정과 입시 경쟁이 맞물리면서 문제가 커진다. 수업을 듣지 않는 학생들의 수준에 맞추어서 학습 동기를 자극하는 수업을 하는 대신, 공부 잘하는 몇몇 학생들만을 위해 진도를 나갈 수밖에 없다. 교사의 가치관과 철학을 이야기하고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수업은 질 좋은 수업이며 학습 동기에도 좋은 자극이 되지만, 교사는 그런 수업을 할 수가 없다. 언어 지문 10개의 문제를 해설해 주는 교사와 훌륭한 지문 1개를 함께 읽고 학생들과 토론하는 교사, 어느 수업이 학생들에게 흥미롭고 질 좋은 수업일까?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거 시험에 나와요?”라는 질문이 나온다.

공교육의 역할은 학생의 ‘민주 시민으로서의 바른 성장’이다. 따라서 공교육과 사교육의 비교는 그 자체로 성립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입시 제도로 인해 공교육 교사는 입시 전문 강사와 비교되며 교육권을 침해당한다. “공교육이 죽은 이유는 공교육만으로 서울대를 가기 힘들기 때문이 아니라, 공교육의 목표가 서울대 많이 보내는 거에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❺ 이미 공교육이 대부분의 학생들을 버려 놓고, 버림받은 학생들에게 전혀 이해되지 않는 수업을 들으라고 강요한다.

과도한 양의 교육과정은 대학교가 학생을 선발할 때도 문제다. 해당 과에 대한 흥미와 적성은 가장 후순위에 고려된다. 일단은 성실함을 검증해야 하는데 그 성실함을 검증하는 방법이 찍어도 정답률이 20%나 되는 수능 성적뿐이다. 공통 교육과정을 줄이고, 학생들이 원하는 진로와 흥미에 따라 전문성을 계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교육과정의 양이 줄고 입시 준비에 대한 부담이 줄면, 교사의 교육과정 편성권이 대폭 확대되고, 개별화 수업이 가능해져 학생들의 수업 동기를 향상시킬 수 있다.

대학에도 남들을 짓밟고 올라가는 시험을 잘 본 학생보다는, 철학과 열정이 있고 학문을 함께 연구하고 싶은 인재들을 선발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공정함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는 공정성에 매몰되어 모두가 고통스러워지는 방법을 선택했다. 모든 학생이 수능 성적이 아니라 자기 꿈을 위해서 학교를 다니면 좋겠다. 학교가 꿈을 탐색하고 탐색한 꿈을 향해 달리는 곳이 된다면 학생들은, 그리고 그 학생들과 함께하는 교사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교사의 교육권과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은 휴대전화가 아니라 입시 제도이다. 결국 우리의 권리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고 함께 축소되는 것이다. 



“「교원의 학생생활지도 고시」에 대한 학부모 의견”, 〈학부모신문〉, 383,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2023년 12월 5일.

〈한 아이가 6번 전학 간 것은 국가 책임〉, 《주간경향》, 1583, 2024년 6월 24일.

유연수(2016), 〈학대 아동 보호를 위한 미국의 사회 감시망〉,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안순옥, “가족과 안전 우선, 미국의 아동 복지 시스템”, 복지로 블로그, 2013년 9월 11일.

“한국은 한 학년에 몰아서 끝내는 ‘선형’ 외국은 여러 학년 걸쳐 배우는 ‘나선형’”, 〈한겨레〉, 2015년 5월 28일.

〈공교육의 문제〉, 네이버카페 ‘수만휘’ 게시물, 2010년 11월 19일.

0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