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인디스쿨, 교사들의 지위 게임장
- “닫힌 교실 문을 열고” 우리는 무엇을 나누려고 했었나
선수윤
초등 교사
이 글은 ‘초등교사 커뮤니티’인 인디스쿨[ref]인디스쿨은 대한민국 초등 교사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초등교사 커뮤니티’다. 1999년에 처음 사이트를 오픈했고 2000년 12월에 창립했다. 전국 초등 교사의 약 78%에 해당하는 14만 명이 가입한 사이트로 기업 후원이나 광고 없이 교사들의 자발적인 회비 납부로 운영된다. 운영진과 개발자도 다 현직 교사들로 이루어져 있다.[/ref]에 등장하는 차별과 혐오의 글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막상 원고를 쓰려니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인디스쿨은 여타의 SNS와 달리 초등 교사라는 나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었다. 또 관련 자료를 읽다 보니 혐오 글들만 가지고 비판하기엔 24년을 살아온 인디스쿨의 삶이 너무 다채로웠다. 그래서 비판이 아니라 이해하고 싶어졌다. 인디스쿨, 너는 누구냐? 그리고 거기에 글을 쓰는 초등 교사, 당신은 누구십니까?
자료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던 해에 나는 처음으로 인디스쿨에 가입했다. 온갖 자료들이 쌓여 있고 매일매일 새롭게 업데이트되는 인디스쿨은 정말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교사들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자료를 올릴 수 있었을까? 뒤늦게 놀랍고 신기했다.
《오늘도, 인디스쿨》[ref]인디스쿨 20주년 기념 아카이브팀(2021), 《오늘도, 인디스쿨》, 진저티프로젝트.[/ref]에 따르면 인디스쿨은 2000년에 수업 자료와 학급 운영 자료 등을 개인 홈페이지에 올리던 3명의 교사가 만나서 각자의 자료를 한곳에 모으면서 시작되었다. “닫힌 교실 문을 열자”는 게 이들의 모토였다. 인터넷은 교실 문을 열고 서로의 자료를 공유하고 배우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초기 운영진은 “오늘 배워서 내일 쓸 수 있는 연수”를 기획하고, 조금이라도 배울 것이 있는 교사들이 보이면 불러서 나눔의 자리를 열었다.
이들은 오프라인 모임을 중요하게 여겼다. 인디스쿨을 ‘교육 정보를 얻기만 하는 서비스 플랫폼’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커뮤니티’로 성장시키고자 했다. 인디스쿨은 정보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만든, 그야말로 커뮤니티였다.
역대 인디스쿨 운영진들은 이 모든 활동이 힘들지만 재밌었다고 말했다. 이들의 재미는 무엇이었을까?
수업 자료로 ‘플래시 노래방’이 유행한 적이 있어요. 고작 60시간 연수받은 거로, 아마추어지만 열심히 밤새우면서 작업했어요. 그렇게 만든 자료를 인디스쿨에 올리고 (……) 선생님들의 고맙다는 댓글을 보면 밤새 고생한 게 싹 사라지면서 더 만들어 볼까 싶어지더라고요. 스스로 ‘댓글을 먹고 산다’라고 말할 정도로 댓글의 힘을 느꼈어요.
댓글이 있을 때의 힘을 아니까 스스로 목표를 세웠어요. 인디스쿨의 모든 게시판에 댓글이 없는 글이 없게 하겠다고요. 그래서 모든 글에 댓글을 달되, 대화하듯 매번 다르게 달았어요.[ref]인디스쿨 20주년 기념 아카이브팀(2021), 앞의 책, 38쪽.[/ref]
수많은 자료를 만들게 한 힘이 댓글이란 점이 놀라웠다. 칭찬은 피곤한 교사들이 밤새 자료를 만들어 다른 교사들과 공유하게도 만든다. 요즘 말로 ‘선한 영향력’은 참 힘이 세다. 그런데 이때 주목할 점은 인간을 움직이는 것이 ‘선’이 아니라 ‘영향력’이라는 데 있다. “닫힌 교실 문”을 열 수 있었던 힘은 자료를 받기 위한 마음이 아니라 나누기 위한 마음에 있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나의 능력을
윌 스토에 따르면 “우리가 이렇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데는 두 가지 강렬한 정서가 작동한다. 수용의 기쁨과 거부의 고통이다”.[ref]윌 스토, 문희경 옮김(2023), 《지위 게임 – ‘좋아요’와 마녀사냥, 혐오와 폭력 이면의 절대적인 본능에 대하여》, 흐름출판, 13쪽.[/ref] 하지만 단순히 집단에 수용되기만 하면 안 된다. 집단 내에서 윗사람 뒤치다꺼리만 하면서 기쁨을 누릴 순 없다. 집단 내에서 지위를 얻어야 기쁨을 느낀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관계를 맺고 지위를 얻기 위한 게임을 한다.
사람들이 우리를 추종하거나 존경하거나 추앙하거나 칭찬하거나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도록 허락해 주는 상태, 이것이 지위다. 이런 상태는 우리를 기분 좋게 한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다.[ref]윌 스토(2023), 앞의 책, 29쪽. 강조는 원문 참조.[/ref]
인디스쿨에서 활동하는 교사들이 느꼈던 기쁨은 바로 이것이다. 물론 그들에게 ‘선생님들은 지위를 얻고 싶어서 그렇게 열심히 활동한 거예요’라고 말한다면 발끈할 것이다. 우리는 돈을 탐하는 사람만큼이나 지위를 추구하는 사람을 경멸한다. 그런데 그것 역시 지위 게임이다. 돈과 권력에 욕심이 없다는 것을 내보임으로써 인간은 도덕적 지위를 얻는다. 지위 게임은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나고 인간은 누구나 지위 게임을 한다. 인생은 이런 지위 게임의 연속이다. 교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인디스쿨은 교사들이 능력만 있으면 지위를 얻을 수 있는 장이었다. 그것도 아주 잘 설계된 지위 게임의 광장이었다.
지위 게임 이론에 따르면 인생에는 세 가지 양상의 지위 게임이 있다. 지배, 도덕, 성공 게임이 그것이다.
지배 게임(dominance game)에서는 힘이나 두려움을 무기로 지위를 차지한다. 도덕 게임(virtue game)에서는 남달리 의무감이 강하고 순종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에게 지위가 주어진다. 성공 게임(success game)에서는 단순히 이기는 차원을 넘어서 기술이나 재능이나 지식이 필요한 일에서 구체적 성과를 내는 사람에게 지위가 돌아간다.[ref]윌 스토(2023), 앞의 책, 63쪽.[/ref]
인디스쿨이 생기기 전, 그러니까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에 교사들의 지위 게임은 단순했다. 교사는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흔들릴 수 없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나이와 지식과 교사라는 직위가 교실 안에서 권위를 보장했다. 학부모와의 관계에서도 교사는 우세한 지위를 누렸다. 교사들 사이에선 나이와 경력이 자연스럽게 지위를 보장했다. 직급이 다른 교장은 교내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권력을 누렸다. 월요일 아침 운동장 조회는 학교 내 권력관계를 확인하는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구령대 위의 교장과 운동장에서 사열하고 있는 아이들, 그 사이에 선 교사들. 위계는 분명했다.
학교 내에서 초임 교사의 위치는 어땠을까? 교실에선 왕이었고 교사들 사이에선 막내였다. 그런데 인디스쿨에선 달랐다. 컴퓨터에 익숙한 젊은 교사들은 교육 자료를 만드는 데 능숙했고 교실에서 필요한 콘텐츠가 무엇인지 빠르게 간파했다. 분필 하나만 들고서도 능숙하게 수업을 하는 경력이 많은 교사들과 달리 젊은 교사들에겐 디지털 자료에 대한 거부감이 적었다. 하지만 이들이 만든 자료를 학교 내 선배들과 공유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신규 교사들은 학교에서는 힘든 업무를 도맡아 하고 선배들의 말을 잘 들어야 지위를 얻는다. 지식을 뽐내기보다 잘 배우는 역할에 충실해야 지위가 오른다.
그런데 온라인에서는 조건이 다르다. 시쳇말로 계급장 떼고, 닉네임만 쓰면서 오직 자기가 만든 자료만으로 사람들을 만난다. 인디스쿨에 쌓은 자료들은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었고 좋은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도 기쁨을 주었다. 자료를 받은 교사들은 쉽게 ‘좋아요’를 누른다. 자료 수혜자는 수업 능력이 향상되어 좋고 자료 제공자는 ‘좋아요’를 받으며 뿌듯함을 느낀다. 인디스쿨에서 교사들은 서로의 능력을 키우는 ‘성공 게임’을 했고 서로를 추앙하며 자기 효능감을 채웠다.
도덕 게임의 함정
2023년, 서이초 사건으로 내가 인디스쿨에 들어가는 이유가 바뀌었다. 수업 자료실보다 ‘라운지’에 더 눈이 갔다. 페이스북 피드처럼 인디스쿨 첫 페이지 중앙에 자리한 라운지에는 글, 사진, 링크, 짧은 영상 등이 수시로 올라온다. 평소엔 “다음 주에 수학여행 가요. 뭘 하면 좋을지 추천해 주세요”, “지금 출근했는데 퇴근하고 싶네요” 등등 동료들과 하는 잡담 같은 이야기가 올라온다. 댓글도 참 잘 달린다. 이용자들은 이곳에서 대화를 나누고 공감을 얻고 관계를 맺고 싶어 했다. 인디스쿨은 커뮤니티였다. 라운지는 그런 활동에 최적화된 공간이었다.
서이초 사건이 터졌을 때 교사들은 라운지에 울분을 토해 냈고 각자가 경험했던 ‘갑질’을 적어 나갔다. 많은 이들이 공감의 하트를 클릭하고 댓글로 분노를 이어 갔다. 페이스북처럼 자기가 팔로잉하는 사람들의 글만 보이는 게 아니라 모든 이용자가 쓴 글이 모두 보이기 때문에 어떨 땐 초 단위로 글이 바뀐다. 그래서 자기가 쓴 글이 좀 더 오래 노출되길 원하면 ‘교육 이슈’나 ‘일상’ 게시판에 글을 올린다. 그곳엔 보다 정돈된 긴 글이 올라오는데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메인 페이지 ‘오늘의 인기 글’에 연동되어 보인다. 2023년 여름 내내 이어졌던 초등 교사들의 집회도 인디스쿨에서 이런 과정을 거쳐 시작되었다.
그런데 가끔 상식에서 벗어난 글이 보였다. 괜찮은 글 같은데 돌연 사라지는 글도 생겼다. 어떤 교사는 집회 피켓 문구가 ‘악성민원 강경대응’으로 결정된 것을 보고 교사와 학부모를 갈라치기 하는 것 같아 걱정된다는 글을 썼다가 반대하는 댓글들이 올라오자 글을 내렸다. 게시자는 “많이 혼나고 글을 내렸습니다”라고 썼다. “혼났다”는 표현이 특이했다. 댓글 중에는 글쓴이에게 공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떤 사람은 정말 글쓴이를 나무라고 있었다. 이건 분명 지위 게임이었다. 그런데 자료실에서 이루어지는 성공 게임과는 다른 게임이었다. 이들은 ‘도덕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 도덕 게임에서는 “남달리 의무감이 강하고 순종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에게 지위가 주어진다”. 예를 들어 안전 운전을 하는 것이 도덕으로 자리 잡은 사회에서는 남을 배려하는 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지위를 얻는다. 반면에 폭주족 안에서는 난폭하고 거친 운전을 하는 사람이 지위를 얻는다. 자신과 가장 유사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은 답답할 정도로 안전한 운전을 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목숨을 건 폭주를 감행하게도 만든다. 그래서 도덕 게임을 하는 집단은 위험한 양상으로 흐르기 쉽다.
서이초 사건을 경유하면서 인디스쿨에서 도덕 게임이 강화되었다. 교권 보호가 ‘도덕’인 양 떠오르면서 악성 민원인은 싸워야 할 적이 되었다. 도덕 게임을 시작한 이들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손쉽게 무시하고 조롱했다. 학생인권, 학부모의 권리와 같은 교육운동이 힘겹게 구축한 개념들은 경시되었다. 교권 보호의 ‘전사’가 된 이들은 인디스쿨과 다양한 교사 노조에 후원도 한다. 자신의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 집단을 보호하며 도덕적 지위를 얻는 것이다. 이들은 분노를 전파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분노는 SNS를 타고 가장 빠르고 멀리 퍼져 나가는 정서다. 분노의 힘은 강하다.
대나무 숲과 응급실 그리고 절망감
지위는 상대적인 것이다. 내 지위가 내려가지 않았어도 타인의 지위가 올라가면 상실감을 느낀다. 학생인권이 신장되었을 때, 학교 운영에서 학부모의 권한이 늘어났을 때, 교육 공무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었을 때, 영양사, 상담사, 사서, 학교 간호사가 교사가 되었을 때 교사들은 상실감을 느꼈다. 교육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초등학교에 돌봄 공간으로서 역할이 부가되었을 때도 교사들은 지위가 하락했다고 여겼다. 갑작스러운 지위 하락은 위험하다. “우리의 뇌에 지위는 산소나 물만큼 중요한 자원이다. 그래서 지위를 잃으면 무너진다.”[ref]윌 스토(2023), 앞의 책, 38쪽.[/ref] 그래서인가, 인디스쿨 라운지에는 격정적인 글이 올라온다. 가르쳐도 달라지지 않는 학생, 행정실 직원의 냉랭함, 늘어나는 업무, 학부모의 갑질과 사소한 민원 등. 교사들은 자신이 겪은 힘겨운 일을 토로한다. 그중엔 혐오에 가까운 글들도 있다. 정말 이곳은 초등 교사들이 마음을 푸는 “대나무 숲”이다.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사람을 향한 비난은 손쉽게 공감을 얻고 글쓴이의 지위는 상승된다. 분노를 키우고 그룹 내의 유대를 강화하는 이런 도덕 게임은 분명 위험하다. 동화 속 이야기와 달리 교사들이 대나무 숲에 외치고 있는 말들은 자신을 억누르는 임금님이 아니라 학생, 학부모, 교직원에 대한 비난이기 때문이다. 교육 공무직이나 비교과 교사(사서, 영양, 보건, 상담 교사)를 향한 비난, 문제 학생 혐오, 학부모를 향한 조롱 등은 가끔 선을 넘는다. 왜 교사들은 학교 내에서 교사들보다 약자로 보이는 이들을 비난하는 도덕 게임을 펼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자신이 느낀 상실감과 모욕감을 공유하는 것일까?
한번은 학교에서 심한 모욕감을 느낀 교사가 자살하고 싶다는 장문의 글을 남긴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위로의 댓글을 썼다 지웠다. 그러는 사이 다른 교사들이 댓글을 썼다. 그가 증오하는 사람들을 같이 증오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저 위로와 걱정을 해 준 글도 있었다. 정말 순식간에 많은 댓글이 쏟아졌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면 “초등 교사의 응급실”[ref]《오늘도, 인디스쿨》에 등장하는 표현. 공개 수업이나 학교폭력 행정 처리 등과 같이 곤란한 문제들에 관계된 해답을 빠르게 얻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사용되었다.[/ref]이 가동되고 있었다. 수치심을 느낀 경험을 공유하고 고통받은 사람에게 공감과 위로를 보내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인디스쿨 라운지와 같은 게시판에서 작동하는 초등 교사들의 마음 “응급실”에는 걱정스러운 측면이 있다.
수치심 표현과 그에 대한 공감 표현은 집단을 건강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집단을 위태롭게 만들기도 한다.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자신의 역사를 알리고, 성폭력 피해자가 미투 운동을 하고, 가정폭력 피해자가 자기의 과거를 이야기할 때, 그 사실을 알린 피해자는 자아를 회복하고 사회는 숨어 있는 위험 요소들을 공론화하여 건강해질 수 있다. 교사들이 학부모들이 행한 갑질을 폭로하던 2023년 시위도 이와 비슷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기가 느낀 수치심을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은 자신을 지키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작용이 일어나기도 한다. 캐시 오닐의 《셰임 머신》에는 비자발적 독신자(Involuntary celibates)를 뜻하는 인셀(Incel)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ref]캐시 오닐, 김선영 옮김(2023), 《셰임 머신 – 수치심이 탄생시킨 혐오 시대, 그 이면의 거대 산업 생태계》, 흐름출판, 191~211쪽.[/ref] “인셀은 여성에게 거절당하고 불만을 호소하기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집결한 남성들을 가리킨다.”[ref]캐시 오닐(2023), 앞의 책, 192쪽.[/ref] 이들은 허위 정보와 속설, 유사 과학들을 유포하고, 인기 있는 남성들과 자신들을 사랑해 주지 않는 여성들을 비난하는 글을 쓰며 친밀해진다. 수치심이 이들의 유대를 강화시킨다. 인셀 사이에서는 겪은 경험이 치욕적일수록 칭송받는다. 그 때문에 여성에게 거절당할 때 느낀 수치심은 쉽게 과장된다. 집단 내 도덕 게임이 작동하는 것이다. 모욕당한 남자들은 인셀 사이에서 동료애와 권력감을 느낀다. 이들은 절망감을 공유하며 서로 연결된다.
절망감은 기이하게도 위안이 될 수 있다. 내가 하찮은 존재라고 확신하면, 내 타고난 유전자 때문에 어떤 여자도 날 사랑하거나 받아 주지 않는다고 확신하면, 자기 계발과 운동, 피부 관리, 다이어트를 포기하게 된다. 해 봤자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누가 뭐래도 성공은 나의 선택과 무관한데 말이다.[ref]캐시 오닐(2023), 앞의 책, 199쪽.[/ref]
이와 비슷한 움직임이 인디스쿨에도 보인다. 심심치 않게 라운지에 분노와 부정적인 감정이 쏟아지고 절망감이 공유된다. 교사들은 내가 뭘 해도 바꿀 수 없는 문제들이 주변에 산재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기 쉽다. 여기서 좋은 교사란 ‘착한 교사’가 아니라 ‘능력 있는 교사’를 말한다. 재미있는 수업을 하고, 학생의 문제 행동에 적절한 대응을 하고, 학부모와 소통을 잘하고, 학교 업무를 정확히 처리하는 교사. 교사들은 이 모든 것을 다 잘하고 싶지만 어떤 것도 스스로 잘한다고 자인할 수 없다. 학교에서의 일상은 삐걱거리며 돌아간다. 일이 밀리면 수업 준비가 미흡해지고 수업 준비를 잘했어도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오기도 한다. 학생들을 사랑하지만 매일 한결같이 모두가 좋긴 어렵다.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교사들은 자신의 이런 모습이 버겁다.
교대를 거쳐 교사가 된 사람들은 대부분 학교 다닐 때 모범생이었다. 그들은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한국 문화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이 존재했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는 스승의 날을 거창하게 챙겼다. 이런 스승의 권위는 스승으로서 감당해야 할 희생을 요구했다. 희미해졌지만 아직도 그런 관념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교사들의 마음속에도 있다. 아닌 척하는 교사들도 마음 깊은 곳에선 ‘진짜 스승’이 되고 싶어 한다. 학급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이 미워질 때면 스스로를 자책한다. 그렇게 괜찮았던 자기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수치심이 인다. 그래서 인디스쿨 라운지 같은 곳에 글을 써서 위악을 부린다. 절망과 혐오의 글을 쓰고 가벼운 위로를 받는다. 대나무 숲과 응급실이 마음의 급한 불을 꺼 주기 때문이다.
교사 되기
인디스쿨이 “닫힌 교실 문을 열고” 나누려고 했던 것은 패배감이 아니라 성취감이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자신이 가진 능력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교사들을 성장시키고 성공 게임에서 교사들의 지위를 높였다. 여전히 인디스쿨의 주요한 축은 수업 자료나 업무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공유하는 자료실이다. 그러나 인디스쿨에 가장 많은 글이 올라오는 곳은 라운지다. 인디스쿨 내에서 도덕 게임이 가장 많이 작동하는 곳도 라운지다.
도덕 게임에서는 손쉽게 지위를 얻을 수 있다. 남들을 판단하고, 깎아내리기만 해도 마음속에서 나의 지위는 올라간다. 그러나 인생의 게임에는 규칙과 함정이 있다. 문제는 라운지에서 도덕 게임을 통해 얻은 지위와 현실의 괴리가 커지면서 발생한다. 라운지에서 분노를 표출하고 ‘좋아요’와 댓글을 받으면 도덕적 지위가 상승했다고 느끼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학급 운영이 어렵고 동료 교사들의 지지를 받지 못할 때 이들은 어떻게 될까?
인간의 뇌는 자신을 속인다. 도덕 게임에서 성공한 사람의 뇌는 자기가 믿는 것이 도덕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남들이 못 하는 말을 용감하게 내뱉는 영웅이라 믿는다. 우리 뇌는 이런 영웅적 꿈을 만드는 데 최적화되었고, 이런 꿈에 도취된 이들은 공격적이고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기 쉽다. 인디스쿨에서 교권 보호의 전사가 된 것 같은 사람들의 글에는 이런 양상이 보인다. 그렇다면 이렇게 위험한 꿈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할 때 그것이 용기인지 도덕 게임에 빠진 것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지위 게임에서는 몇 가지 규칙을 제시한다. 그중 교사들에게도 참고가 될 만한 지침은 이러하다. 첫째, 따뜻함과 진심과 능력을 보이는 것이다. “따뜻함을 보이는 것은 상대를 지배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진심을 보이는 것은 남을 속이지 않고 공정하게 게임을 치른다는 뜻이며, 능력을 보인다는 것은 지위를 위한 경쟁에서만이 아니라 게임을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능력을 사용하겠다는 뜻이다.”[ref]윌 스토(2023), 앞의 책, 396쪽.[/ref]
두 번째는 도덕 영역 줄이기이다. 남들을 판단하는 시간을 줄이고 비난을 통해 얻는 값싸고 오염된 지위를 의식적으로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행동에 관심을 두고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을 의미 없이 비난하는 행동을 멈춘다는 뜻이다. 온라인에 글을 쓰기 전에 내가 쓰려는 글이 기분 풀이가 아닌지 점검해 보자.
세 번째는 다양한 게임을 하되 집중할 게임을 정하는 것이다. 살면서 한 가지 지위 게임만 하는 사람은 없다. 가정과 직장, 종교 단체, 동호회, 인디스쿨과 같은 온라인 공간까지 사람들은 다양한 공간에서 지위 게임을 벌인다. 이 중 한 가지 게임에 너무 몰입하다 보면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스스로 파멸할 수도 있다. “심리학자들은 여러 개의 ‘복합적인’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하고 더 안정된 정서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ref]윌 스토(2023), 앞의 책, 400쪽.[/ref]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다양한 게임에 참여해 보자.
그러면서도 자신이 참여한 게임들 간의 위계를 만들어야 한다. 당신이 가장 성공하고 싶은 정체성은 무엇인가? 간절히 원하는 명성을 얻고 싶은 게임은 무엇인가? 그것이 만약 능력 있는 좋은 교사가 되는 것이라면 정성을 다해 더 끈기 있게 집중해야 한다. 그 게임에 속한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중요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수업 연구를 하고 학급 경영 노하우를 쌓고 깊이 있게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그 과정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최후의 승리가 아니라 단순하고 소박한 과정이다. 끝없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며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누구도 지위 게임에서 승리하지 못한다. 승리해서도 안 된다. 인생의 의미는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하는 것이다.[ref]윌 스토(2023), 앞의 책, 406쪽. 강조는 원문 참조.[/ref]
기고
인디스쿨, 교사들의 지위 게임장
- “닫힌 교실 문을 열고” 우리는 무엇을 나누려고 했었나
선수윤
초등 교사
이 글은 ‘초등교사 커뮤니티’인 인디스쿨[ref]인디스쿨은 대한민국 초등 교사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초등교사 커뮤니티’다. 1999년에 처음 사이트를 오픈했고 2000년 12월에 창립했다. 전국 초등 교사의 약 78%에 해당하는 14만 명이 가입한 사이트로 기업 후원이나 광고 없이 교사들의 자발적인 회비 납부로 운영된다. 운영진과 개발자도 다 현직 교사들로 이루어져 있다.[/ref]에 등장하는 차별과 혐오의 글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막상 원고를 쓰려니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인디스쿨은 여타의 SNS와 달리 초등 교사라는 나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었다. 또 관련 자료를 읽다 보니 혐오 글들만 가지고 비판하기엔 24년을 살아온 인디스쿨의 삶이 너무 다채로웠다. 그래서 비판이 아니라 이해하고 싶어졌다. 인디스쿨, 너는 누구냐? 그리고 거기에 글을 쓰는 초등 교사, 당신은 누구십니까?
자료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던 해에 나는 처음으로 인디스쿨에 가입했다. 온갖 자료들이 쌓여 있고 매일매일 새롭게 업데이트되는 인디스쿨은 정말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교사들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자료를 올릴 수 있었을까? 뒤늦게 놀랍고 신기했다.
《오늘도, 인디스쿨》[ref]인디스쿨 20주년 기념 아카이브팀(2021), 《오늘도, 인디스쿨》, 진저티프로젝트.[/ref]에 따르면 인디스쿨은 2000년에 수업 자료와 학급 운영 자료 등을 개인 홈페이지에 올리던 3명의 교사가 만나서 각자의 자료를 한곳에 모으면서 시작되었다. “닫힌 교실 문을 열자”는 게 이들의 모토였다. 인터넷은 교실 문을 열고 서로의 자료를 공유하고 배우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초기 운영진은 “오늘 배워서 내일 쓸 수 있는 연수”를 기획하고, 조금이라도 배울 것이 있는 교사들이 보이면 불러서 나눔의 자리를 열었다.
이들은 오프라인 모임을 중요하게 여겼다. 인디스쿨을 ‘교육 정보를 얻기만 하는 서비스 플랫폼’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커뮤니티’로 성장시키고자 했다. 인디스쿨은 정보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만든, 그야말로 커뮤니티였다.
역대 인디스쿨 운영진들은 이 모든 활동이 힘들지만 재밌었다고 말했다. 이들의 재미는 무엇이었을까?
수업 자료로 ‘플래시 노래방’이 유행한 적이 있어요. 고작 60시간 연수받은 거로, 아마추어지만 열심히 밤새우면서 작업했어요. 그렇게 만든 자료를 인디스쿨에 올리고 (……) 선생님들의 고맙다는 댓글을 보면 밤새 고생한 게 싹 사라지면서 더 만들어 볼까 싶어지더라고요. 스스로 ‘댓글을 먹고 산다’라고 말할 정도로 댓글의 힘을 느꼈어요.
댓글이 있을 때의 힘을 아니까 스스로 목표를 세웠어요. 인디스쿨의 모든 게시판에 댓글이 없는 글이 없게 하겠다고요. 그래서 모든 글에 댓글을 달되, 대화하듯 매번 다르게 달았어요.[ref]인디스쿨 20주년 기념 아카이브팀(2021), 앞의 책, 38쪽.[/ref]
수많은 자료를 만들게 한 힘이 댓글이란 점이 놀라웠다. 칭찬은 피곤한 교사들이 밤새 자료를 만들어 다른 교사들과 공유하게도 만든다. 요즘 말로 ‘선한 영향력’은 참 힘이 세다. 그런데 이때 주목할 점은 인간을 움직이는 것이 ‘선’이 아니라 ‘영향력’이라는 데 있다. “닫힌 교실 문”을 열 수 있었던 힘은 자료를 받기 위한 마음이 아니라 나누기 위한 마음에 있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나의 능력을
윌 스토에 따르면 “우리가 이렇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데는 두 가지 강렬한 정서가 작동한다. 수용의 기쁨과 거부의 고통이다”.[ref]윌 스토, 문희경 옮김(2023), 《지위 게임 – ‘좋아요’와 마녀사냥, 혐오와 폭력 이면의 절대적인 본능에 대하여》, 흐름출판, 13쪽.[/ref] 하지만 단순히 집단에 수용되기만 하면 안 된다. 집단 내에서 윗사람 뒤치다꺼리만 하면서 기쁨을 누릴 순 없다. 집단 내에서 지위를 얻어야 기쁨을 느낀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관계를 맺고 지위를 얻기 위한 게임을 한다.
사람들이 우리를 추종하거나 존경하거나 추앙하거나 칭찬하거나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도록 허락해 주는 상태, 이것이 지위다. 이런 상태는 우리를 기분 좋게 한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다.[ref]윌 스토(2023), 앞의 책, 29쪽. 강조는 원문 참조.[/ref]
인디스쿨에서 활동하는 교사들이 느꼈던 기쁨은 바로 이것이다. 물론 그들에게 ‘선생님들은 지위를 얻고 싶어서 그렇게 열심히 활동한 거예요’라고 말한다면 발끈할 것이다. 우리는 돈을 탐하는 사람만큼이나 지위를 추구하는 사람을 경멸한다. 그런데 그것 역시 지위 게임이다. 돈과 권력에 욕심이 없다는 것을 내보임으로써 인간은 도덕적 지위를 얻는다. 지위 게임은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나고 인간은 누구나 지위 게임을 한다. 인생은 이런 지위 게임의 연속이다. 교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인디스쿨은 교사들이 능력만 있으면 지위를 얻을 수 있는 장이었다. 그것도 아주 잘 설계된 지위 게임의 광장이었다.
지위 게임 이론에 따르면 인생에는 세 가지 양상의 지위 게임이 있다. 지배, 도덕, 성공 게임이 그것이다.
지배 게임(dominance game)에서는 힘이나 두려움을 무기로 지위를 차지한다. 도덕 게임(virtue game)에서는 남달리 의무감이 강하고 순종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에게 지위가 주어진다. 성공 게임(success game)에서는 단순히 이기는 차원을 넘어서 기술이나 재능이나 지식이 필요한 일에서 구체적 성과를 내는 사람에게 지위가 돌아간다.[ref]윌 스토(2023), 앞의 책, 63쪽.[/ref]
인디스쿨이 생기기 전, 그러니까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에 교사들의 지위 게임은 단순했다. 교사는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흔들릴 수 없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나이와 지식과 교사라는 직위가 교실 안에서 권위를 보장했다. 학부모와의 관계에서도 교사는 우세한 지위를 누렸다. 교사들 사이에선 나이와 경력이 자연스럽게 지위를 보장했다. 직급이 다른 교장은 교내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권력을 누렸다. 월요일 아침 운동장 조회는 학교 내 권력관계를 확인하는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구령대 위의 교장과 운동장에서 사열하고 있는 아이들, 그 사이에 선 교사들. 위계는 분명했다.
학교 내에서 초임 교사의 위치는 어땠을까? 교실에선 왕이었고 교사들 사이에선 막내였다. 그런데 인디스쿨에선 달랐다. 컴퓨터에 익숙한 젊은 교사들은 교육 자료를 만드는 데 능숙했고 교실에서 필요한 콘텐츠가 무엇인지 빠르게 간파했다. 분필 하나만 들고서도 능숙하게 수업을 하는 경력이 많은 교사들과 달리 젊은 교사들에겐 디지털 자료에 대한 거부감이 적었다. 하지만 이들이 만든 자료를 학교 내 선배들과 공유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신규 교사들은 학교에서는 힘든 업무를 도맡아 하고 선배들의 말을 잘 들어야 지위를 얻는다. 지식을 뽐내기보다 잘 배우는 역할에 충실해야 지위가 오른다.
그런데 온라인에서는 조건이 다르다. 시쳇말로 계급장 떼고, 닉네임만 쓰면서 오직 자기가 만든 자료만으로 사람들을 만난다. 인디스쿨에 쌓은 자료들은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었고 좋은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도 기쁨을 주었다. 자료를 받은 교사들은 쉽게 ‘좋아요’를 누른다. 자료 수혜자는 수업 능력이 향상되어 좋고 자료 제공자는 ‘좋아요’를 받으며 뿌듯함을 느낀다. 인디스쿨에서 교사들은 서로의 능력을 키우는 ‘성공 게임’을 했고 서로를 추앙하며 자기 효능감을 채웠다.
도덕 게임의 함정
2023년, 서이초 사건으로 내가 인디스쿨에 들어가는 이유가 바뀌었다. 수업 자료실보다 ‘라운지’에 더 눈이 갔다. 페이스북 피드처럼 인디스쿨 첫 페이지 중앙에 자리한 라운지에는 글, 사진, 링크, 짧은 영상 등이 수시로 올라온다. 평소엔 “다음 주에 수학여행 가요. 뭘 하면 좋을지 추천해 주세요”, “지금 출근했는데 퇴근하고 싶네요” 등등 동료들과 하는 잡담 같은 이야기가 올라온다. 댓글도 참 잘 달린다. 이용자들은 이곳에서 대화를 나누고 공감을 얻고 관계를 맺고 싶어 했다. 인디스쿨은 커뮤니티였다. 라운지는 그런 활동에 최적화된 공간이었다.
서이초 사건이 터졌을 때 교사들은 라운지에 울분을 토해 냈고 각자가 경험했던 ‘갑질’을 적어 나갔다. 많은 이들이 공감의 하트를 클릭하고 댓글로 분노를 이어 갔다. 페이스북처럼 자기가 팔로잉하는 사람들의 글만 보이는 게 아니라 모든 이용자가 쓴 글이 모두 보이기 때문에 어떨 땐 초 단위로 글이 바뀐다. 그래서 자기가 쓴 글이 좀 더 오래 노출되길 원하면 ‘교육 이슈’나 ‘일상’ 게시판에 글을 올린다. 그곳엔 보다 정돈된 긴 글이 올라오는데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메인 페이지 ‘오늘의 인기 글’에 연동되어 보인다. 2023년 여름 내내 이어졌던 초등 교사들의 집회도 인디스쿨에서 이런 과정을 거쳐 시작되었다.
그런데 가끔 상식에서 벗어난 글이 보였다. 괜찮은 글 같은데 돌연 사라지는 글도 생겼다. 어떤 교사는 집회 피켓 문구가 ‘악성민원 강경대응’으로 결정된 것을 보고 교사와 학부모를 갈라치기 하는 것 같아 걱정된다는 글을 썼다가 반대하는 댓글들이 올라오자 글을 내렸다. 게시자는 “많이 혼나고 글을 내렸습니다”라고 썼다. “혼났다”는 표현이 특이했다. 댓글 중에는 글쓴이에게 공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떤 사람은 정말 글쓴이를 나무라고 있었다. 이건 분명 지위 게임이었다. 그런데 자료실에서 이루어지는 성공 게임과는 다른 게임이었다. 이들은 ‘도덕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 도덕 게임에서는 “남달리 의무감이 강하고 순종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에게 지위가 주어진다”. 예를 들어 안전 운전을 하는 것이 도덕으로 자리 잡은 사회에서는 남을 배려하는 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지위를 얻는다. 반면에 폭주족 안에서는 난폭하고 거친 운전을 하는 사람이 지위를 얻는다. 자신과 가장 유사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은 답답할 정도로 안전한 운전을 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목숨을 건 폭주를 감행하게도 만든다. 그래서 도덕 게임을 하는 집단은 위험한 양상으로 흐르기 쉽다.
서이초 사건을 경유하면서 인디스쿨에서 도덕 게임이 강화되었다. 교권 보호가 ‘도덕’인 양 떠오르면서 악성 민원인은 싸워야 할 적이 되었다. 도덕 게임을 시작한 이들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손쉽게 무시하고 조롱했다. 학생인권, 학부모의 권리와 같은 교육운동이 힘겹게 구축한 개념들은 경시되었다. 교권 보호의 ‘전사’가 된 이들은 인디스쿨과 다양한 교사 노조에 후원도 한다. 자신의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 집단을 보호하며 도덕적 지위를 얻는 것이다. 이들은 분노를 전파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분노는 SNS를 타고 가장 빠르고 멀리 퍼져 나가는 정서다. 분노의 힘은 강하다.
대나무 숲과 응급실 그리고 절망감
지위는 상대적인 것이다. 내 지위가 내려가지 않았어도 타인의 지위가 올라가면 상실감을 느낀다. 학생인권이 신장되었을 때, 학교 운영에서 학부모의 권한이 늘어났을 때, 교육 공무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었을 때, 영양사, 상담사, 사서, 학교 간호사가 교사가 되었을 때 교사들은 상실감을 느꼈다. 교육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초등학교에 돌봄 공간으로서 역할이 부가되었을 때도 교사들은 지위가 하락했다고 여겼다. 갑작스러운 지위 하락은 위험하다. “우리의 뇌에 지위는 산소나 물만큼 중요한 자원이다. 그래서 지위를 잃으면 무너진다.”[ref]윌 스토(2023), 앞의 책, 38쪽.[/ref] 그래서인가, 인디스쿨 라운지에는 격정적인 글이 올라온다. 가르쳐도 달라지지 않는 학생, 행정실 직원의 냉랭함, 늘어나는 업무, 학부모의 갑질과 사소한 민원 등. 교사들은 자신이 겪은 힘겨운 일을 토로한다. 그중엔 혐오에 가까운 글들도 있다. 정말 이곳은 초등 교사들이 마음을 푸는 “대나무 숲”이다.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사람을 향한 비난은 손쉽게 공감을 얻고 글쓴이의 지위는 상승된다. 분노를 키우고 그룹 내의 유대를 강화하는 이런 도덕 게임은 분명 위험하다. 동화 속 이야기와 달리 교사들이 대나무 숲에 외치고 있는 말들은 자신을 억누르는 임금님이 아니라 학생, 학부모, 교직원에 대한 비난이기 때문이다. 교육 공무직이나 비교과 교사(사서, 영양, 보건, 상담 교사)를 향한 비난, 문제 학생 혐오, 학부모를 향한 조롱 등은 가끔 선을 넘는다. 왜 교사들은 학교 내에서 교사들보다 약자로 보이는 이들을 비난하는 도덕 게임을 펼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자신이 느낀 상실감과 모욕감을 공유하는 것일까?
한번은 학교에서 심한 모욕감을 느낀 교사가 자살하고 싶다는 장문의 글을 남긴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위로의 댓글을 썼다 지웠다. 그러는 사이 다른 교사들이 댓글을 썼다. 그가 증오하는 사람들을 같이 증오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저 위로와 걱정을 해 준 글도 있었다. 정말 순식간에 많은 댓글이 쏟아졌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면 “초등 교사의 응급실”[ref]《오늘도, 인디스쿨》에 등장하는 표현. 공개 수업이나 학교폭력 행정 처리 등과 같이 곤란한 문제들에 관계된 해답을 빠르게 얻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사용되었다.[/ref]이 가동되고 있었다. 수치심을 느낀 경험을 공유하고 고통받은 사람에게 공감과 위로를 보내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인디스쿨 라운지와 같은 게시판에서 작동하는 초등 교사들의 마음 “응급실”에는 걱정스러운 측면이 있다.
수치심 표현과 그에 대한 공감 표현은 집단을 건강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집단을 위태롭게 만들기도 한다.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자신의 역사를 알리고, 성폭력 피해자가 미투 운동을 하고, 가정폭력 피해자가 자기의 과거를 이야기할 때, 그 사실을 알린 피해자는 자아를 회복하고 사회는 숨어 있는 위험 요소들을 공론화하여 건강해질 수 있다. 교사들이 학부모들이 행한 갑질을 폭로하던 2023년 시위도 이와 비슷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기가 느낀 수치심을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은 자신을 지키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작용이 일어나기도 한다. 캐시 오닐의 《셰임 머신》에는 비자발적 독신자(Involuntary celibates)를 뜻하는 인셀(Incel)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ref]캐시 오닐, 김선영 옮김(2023), 《셰임 머신 – 수치심이 탄생시킨 혐오 시대, 그 이면의 거대 산업 생태계》, 흐름출판, 191~211쪽.[/ref] “인셀은 여성에게 거절당하고 불만을 호소하기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집결한 남성들을 가리킨다.”[ref]캐시 오닐(2023), 앞의 책, 192쪽.[/ref] 이들은 허위 정보와 속설, 유사 과학들을 유포하고, 인기 있는 남성들과 자신들을 사랑해 주지 않는 여성들을 비난하는 글을 쓰며 친밀해진다. 수치심이 이들의 유대를 강화시킨다. 인셀 사이에서는 겪은 경험이 치욕적일수록 칭송받는다. 그 때문에 여성에게 거절당할 때 느낀 수치심은 쉽게 과장된다. 집단 내 도덕 게임이 작동하는 것이다. 모욕당한 남자들은 인셀 사이에서 동료애와 권력감을 느낀다. 이들은 절망감을 공유하며 서로 연결된다.
절망감은 기이하게도 위안이 될 수 있다. 내가 하찮은 존재라고 확신하면, 내 타고난 유전자 때문에 어떤 여자도 날 사랑하거나 받아 주지 않는다고 확신하면, 자기 계발과 운동, 피부 관리, 다이어트를 포기하게 된다. 해 봤자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누가 뭐래도 성공은 나의 선택과 무관한데 말이다.[ref]캐시 오닐(2023), 앞의 책, 199쪽.[/ref]
이와 비슷한 움직임이 인디스쿨에도 보인다. 심심치 않게 라운지에 분노와 부정적인 감정이 쏟아지고 절망감이 공유된다. 교사들은 내가 뭘 해도 바꿀 수 없는 문제들이 주변에 산재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기 쉽다. 여기서 좋은 교사란 ‘착한 교사’가 아니라 ‘능력 있는 교사’를 말한다. 재미있는 수업을 하고, 학생의 문제 행동에 적절한 대응을 하고, 학부모와 소통을 잘하고, 학교 업무를 정확히 처리하는 교사. 교사들은 이 모든 것을 다 잘하고 싶지만 어떤 것도 스스로 잘한다고 자인할 수 없다. 학교에서의 일상은 삐걱거리며 돌아간다. 일이 밀리면 수업 준비가 미흡해지고 수업 준비를 잘했어도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오기도 한다. 학생들을 사랑하지만 매일 한결같이 모두가 좋긴 어렵다.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교사들은 자신의 이런 모습이 버겁다.
교대를 거쳐 교사가 된 사람들은 대부분 학교 다닐 때 모범생이었다. 그들은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한국 문화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이 존재했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는 스승의 날을 거창하게 챙겼다. 이런 스승의 권위는 스승으로서 감당해야 할 희생을 요구했다. 희미해졌지만 아직도 그런 관념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교사들의 마음속에도 있다. 아닌 척하는 교사들도 마음 깊은 곳에선 ‘진짜 스승’이 되고 싶어 한다. 학급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이 미워질 때면 스스로를 자책한다. 그렇게 괜찮았던 자기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수치심이 인다. 그래서 인디스쿨 라운지 같은 곳에 글을 써서 위악을 부린다. 절망과 혐오의 글을 쓰고 가벼운 위로를 받는다. 대나무 숲과 응급실이 마음의 급한 불을 꺼 주기 때문이다.
교사 되기
인디스쿨이 “닫힌 교실 문을 열고” 나누려고 했던 것은 패배감이 아니라 성취감이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자신이 가진 능력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교사들을 성장시키고 성공 게임에서 교사들의 지위를 높였다. 여전히 인디스쿨의 주요한 축은 수업 자료나 업무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공유하는 자료실이다. 그러나 인디스쿨에 가장 많은 글이 올라오는 곳은 라운지다. 인디스쿨 내에서 도덕 게임이 가장 많이 작동하는 곳도 라운지다.
도덕 게임에서는 손쉽게 지위를 얻을 수 있다. 남들을 판단하고, 깎아내리기만 해도 마음속에서 나의 지위는 올라간다. 그러나 인생의 게임에는 규칙과 함정이 있다. 문제는 라운지에서 도덕 게임을 통해 얻은 지위와 현실의 괴리가 커지면서 발생한다. 라운지에서 분노를 표출하고 ‘좋아요’와 댓글을 받으면 도덕적 지위가 상승했다고 느끼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학급 운영이 어렵고 동료 교사들의 지지를 받지 못할 때 이들은 어떻게 될까?
인간의 뇌는 자신을 속인다. 도덕 게임에서 성공한 사람의 뇌는 자기가 믿는 것이 도덕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남들이 못 하는 말을 용감하게 내뱉는 영웅이라 믿는다. 우리 뇌는 이런 영웅적 꿈을 만드는 데 최적화되었고, 이런 꿈에 도취된 이들은 공격적이고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기 쉽다. 인디스쿨에서 교권 보호의 전사가 된 것 같은 사람들의 글에는 이런 양상이 보인다. 그렇다면 이렇게 위험한 꿈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할 때 그것이 용기인지 도덕 게임에 빠진 것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지위 게임에서는 몇 가지 규칙을 제시한다. 그중 교사들에게도 참고가 될 만한 지침은 이러하다. 첫째, 따뜻함과 진심과 능력을 보이는 것이다. “따뜻함을 보이는 것은 상대를 지배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진심을 보이는 것은 남을 속이지 않고 공정하게 게임을 치른다는 뜻이며, 능력을 보인다는 것은 지위를 위한 경쟁에서만이 아니라 게임을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능력을 사용하겠다는 뜻이다.”[ref]윌 스토(2023), 앞의 책, 396쪽.[/ref]
두 번째는 도덕 영역 줄이기이다. 남들을 판단하는 시간을 줄이고 비난을 통해 얻는 값싸고 오염된 지위를 의식적으로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행동에 관심을 두고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을 의미 없이 비난하는 행동을 멈춘다는 뜻이다. 온라인에 글을 쓰기 전에 내가 쓰려는 글이 기분 풀이가 아닌지 점검해 보자.
세 번째는 다양한 게임을 하되 집중할 게임을 정하는 것이다. 살면서 한 가지 지위 게임만 하는 사람은 없다. 가정과 직장, 종교 단체, 동호회, 인디스쿨과 같은 온라인 공간까지 사람들은 다양한 공간에서 지위 게임을 벌인다. 이 중 한 가지 게임에 너무 몰입하다 보면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스스로 파멸할 수도 있다. “심리학자들은 여러 개의 ‘복합적인’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하고 더 안정된 정서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ref]윌 스토(2023), 앞의 책, 400쪽.[/ref]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다양한 게임에 참여해 보자.
그러면서도 자신이 참여한 게임들 간의 위계를 만들어야 한다. 당신이 가장 성공하고 싶은 정체성은 무엇인가? 간절히 원하는 명성을 얻고 싶은 게임은 무엇인가? 그것이 만약 능력 있는 좋은 교사가 되는 것이라면 정성을 다해 더 끈기 있게 집중해야 한다. 그 게임에 속한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중요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수업 연구를 하고 학급 경영 노하우를 쌓고 깊이 있게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그 과정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최후의 승리가 아니라 단순하고 소박한 과정이다. 끝없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며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누구도 지위 게임에서 승리하지 못한다. 승리해서도 안 된다. 인생의 의미는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하는 것이다.[ref]윌 스토(2023), 앞의 책, 406쪽. 강조는 원문 참조.[/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