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기초학력은 교육을 어디로 데려가나
인권은 학력 너머에 있다
글
정용주
edcom@gmail.com
본지 편집자문위원,
서울 천왕초 교장
학력을 구성하는 요소의 복잡성과 유동성
우리는 요즘 학생들 학력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그런데 학력이 떨어졌다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다. 학습량이 적정화되었다고 하지만 과거에 비해 학생들이 배우는 내용은 더 많아졌고 학생들이 선진도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도 과거에 비해 더 많아졌다. 그리고 더 많은 학생들이 고등학교에서 학업을 끝내지 않고 대학에 진학한다.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학력이 떨어졌다는 것인가? 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학력이 무엇이고, 학력을 어떠한 방법으로 측정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선 학력 개념을 살펴보자. 학력은 다양한 구성 요소를 포괄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동일한 구성 요소에 대한 해석과 강조점도 달라지기 때문에 단일하게 정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일례로 최근의 교육 패러다임에서는 과거와 달리 단순한 지식에 대한 암기 능력만을 학력으로 보지 않고 행위 주체성, 학습 전략의 수립 및 실행, 정서 지능과 같은 요소들을 학력의 중요한 요소로 강조한다. 또한 학력을 구성하는 시간성의 문제도 있다.
학력은 성적이나 졸업과 같은 즉각적이거나 단기적인 결과 또는 사건이 아니라 학령기 전체에 걸쳐서 학생들이 형성하는 학습된 지식과 기술 그리고 이러한 것을 실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 사회에 대한 기여와 같은 장기적인 과정이다. 특히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학문적 지식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관리하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사회 정서적 능력의 함양이다. 이처럼 학력을 구성하는 요소의 복잡성과 유동성은 학력을 정의하기 어렵게 한다.
다음으로 학력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고부담의 표준화된 시험을 통해서는 행위 주체성의 형성, 사회 정서적 능력, 의사소통 역량, 협력적 사고 등과 같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역량의 형성 여부는 포착할 수 없다. 그동안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필 평가 이외에 수행평가와 같은 대안적 평가가 도입되었고 성취 평가제가 실시되고 있지만 매우 제한적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 평가 집착 사회인 한국에서 이러한 대안적 평가는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곤 하여 자리매김하기가 쉽지 않다.
기초학력 보장과 IB 도입 열풍
최근 몇 년간 학력과 관련한 논의를 대표하는 두 개념을 꼽자면 기초학력 보장과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도입이다.
기초학력에 대한 논의는 교육과정 질 관리의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왔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그 필요성이 보다 강조되어 「기초학력 보장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그럼 기초학력이란 무엇인가?
교육부는 기초학력의 기본 개념을 “문장과 수를 해석하고 일상생활을 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중심으로 정립하여 공교육을 통해 실질적으로 보장 가능한 범위로 설정하였으며, “학교 교육과정을 통하여 갖춰야 하는 읽기, 쓰기, 셈하기와 이와 관련된 교과(국어, 수학)의 최소 성취 기준을 충족하는 학력”으로 정의하였다. 즉, 기초학력은 보편적으로 읽기, 쓰기, 셈하기인 3R’s의 ‘기초 학습 능력’을 의미하지만, 실질적으로 해당 학년의 교과 최소 성취 기준의 도달 여부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2021년에 제정된 「기초학력 보장법」에서는 “기초학력이란 「초·중등교육법」 제2조에 따른 학교의 학생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교 교육과정을 통하여 갖추어야 하는 최소한의 성취 기준을 충족하는 학력을 말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눈여겨볼 것은 삶을 영위하고 학습을 지속해 나가는 데 기반이 되는 학습력으로서 문해력, 기초 수리력, 자기 인식 및 관계 능력을 광의의 기초학력으로 정의하고 필수 학습 역량(문해력과 기초 수리력), 학습 지원 역량을 기초학력의 구성 요소로 설정한 것이다.
이와 같이 기초학력을 과정 중심으로 접근하면서 학교 교육과정을 통하여 갖추어야 하는 최소한의 성취 기준을 충족하는 학력으로 정의한 것은 의미 있다. 또한 국가와 시·도교육청이 모든 학생의 최저 학력 도달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한 것도 중요한 접근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국가와 시·도교육청은 배움을 권리의 문제로 접근하면서 다양한 기초학력 미달의 원인을 파악하여 학교 내, 학교 밖의 다중 학습 안전망을 구축하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정확한 진단을 통해 기초학력 다중 지원 대상 학생을 선정하고 다중 안정망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정확한 진단의 해법이 객관적 진단, 기준 표준화, 이력 관리, 선정 체계화라는 기존의 방법에 단위 학교 내 선정 과정을 법정 협의회의 구성 및 운영으로 강제했다는 것 외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또한 기초학력의 다중 안전망 강화도 예방적 관점보다 처방적 관점에 초점을 두고 있다. 기초학력에 대한 정책이 주로 미달 학생에 대한 지원 정책에 관심이 집중되면 예방적 교육 정책이 실행되기 쉽지 않다. 특히 대부분의 기초학력 미달이 유아기 양육자와의 관계 속에서 언어 발달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예방적 접근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학력과 관련하여 검토해야 할 것이 IB이다. IB는 기초학력과 구별하여 학교교육을 통해 지속적으로 향상되어야 할 학력을 평가하는 방법으로 최근 강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IB를 경쟁적으로 도입하려는 열풍이 분 배경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강력한 원인은 혁신교육으로 대표되는 아동 중심 교육 개혁 운동이 학력 저하 논쟁에 휘말린 것이다. 이는 과밀한 교육 내용과 주입식 교육의 문제를 해소하고자 시작된 일본의 ‘여유 교육(유도리 교육)’이 결국 학력 저하 논란에 부딪혀 좌초된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다소 실체가 없는 학력 저하 논쟁이 한국의 아동 중심 교육 개혁 운동에서만 나타난 흐름이 아니라는 사실에 다소 위안을 얻어야 할까. 어쨌거나 궁극적으로 한국과 일본 모두 보다 높은 수준의 학력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
좀 더 시간을 뒤로 돌리면 IB는 엘리트주의적이고 유럽 중심적이라는 기존의 오래된 비판을 넘어 공립 학교에서 입지를 확장하려는 전략을 확대해 왔다. IBO(International Baccalaureate Organization)는 IB 프로그램이 공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으며, 이전에는 사립학교의 엘리트 학생들에게만 국한되었던 기회가 확대되었다는 홍보 전략을 구사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IB는 국가 교육과정과 공존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도록 하였다. 이러한 전략은 경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을 채택한 정부 관계자들과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가 교육과정의 탈국가화, 교육 시스템의 비국적화가 확대되었다. 특히 중산층 학부모들은 국제 엘리트들과 경쟁하면서 엘리트 지위를 획득하는 것을 선호하였는데 이러한 흐름이 IB의 도입을 지지하는 토대가 되었다.
IB는 학교에 도입하여 인증을 받거나 상대적으로 높은 인증 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역사적으로 민주 공화국 설립 이후 형성된 공교육 제도에 대한 총체적 변화를 수반한다. 교육 당국에 대한 장학, 교육과정 질 관리, 교사의 전문성 신장이 사설 기관인 IBO의 관리하에 들어가는 것이다.
많은 나라에서 IB를 도입하려는 배경에는 높은 수준의 성취를 요구하는 교육적 지향이 있다. 그런데 높은 성취를 추구하는 교육은 동시에 교육 격차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모든 학생이 같은 자원과 기회를 갖지 않기 때문에, 높은 성취를 요구하는 교육은 종종 더 넓은 사회적 불평등을 반영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일부 학생들은 가정에서 더 많은 학문적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사교육에 접근하기 편리할 수 있다.
이런 자원의 불균형은 학력에 영향을 미치며 이로 인해 교육 격차가 생기게 된다. 또한 높은 수준의 성취를 요구하는 교육 환경은 학생들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주며, 이는 학업 성취도와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성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이나 높은 수준의 성취를 이루기 위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더욱 그렇다.
학력 담론의 반인권성 – 학생 주도 교육이 계속해서 패배해 온 역사
앞에서 나는 학력 논의를 대표하는 두 가지 개념으로 기초학력 보장과 미래 역량 신장을 위한 IB 도입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기초학력 보장과 더 높은 수준으로 학력을 높이려는 흐름 사이에 학력에 대한 균열의 지점이 있다는 점, 그리고 기초학력 보장 정책이 예방적 차원이 아닌 처방적 조치가 대부분이라는 점, 마지막으로 학력 측정이 표준화된 평가와 선별에 집중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었다.
미래 학력 관점에서 학력을 높이는 문제도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학력 신장인지가 분명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자.
“국가 행복 지수가 1위인 덴마크에서 학생들은 학력이 높아서 행복하고 사회 복지를 누리며 높은 임금을 받는가?”
답은 간단하다. 학력과 행복은 큰 관계가 없다. 상식적으로 학력의 높고 낮음에 따라 인권의 보장에 차이가 생긴다면 그것은 능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민주 공화국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인권의 관점에서 보면 학력과 관계없이 인간으로서 존엄이 보장되는 사회가 기초학력 보장과 학력 신장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사회에서만이 좋은 교육이 가능하다. 기초학력이 보장되지 않으면 개인의 삶이 황폐해지고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는 사고는 교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능력주의에 기반한 말이다. 교육에서 해야 할 일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좀 더 학력을 높이는 경험이 아닌 행복을 경험하도록 하는 교육과정 설계이다. 이 점에서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학생 주도 교육(학습자 주도성)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학생 주도 교육은 교사에서 학생으로 교육의 초점을 이동시키는 교육 접근법이다. 그것은 개별화된 교육, 능동적 학습, 발견 학습, 그리고 협동 학습과 같은 방법들을 포함한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열린 교육, 한국의 혁신 교육, 일본의 여유 교육 등 국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공교육 제도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경우 덴마크의 자유학교(friskole), 한국의 대안학교, 이스라엘의 민주학교 등 다양한 형태로 구현되었다. 이러한 교육 방식과 제도가 반대에 직면한 가장 큰 이유는 학력을 저하시킨다는 점 때문이었다.
학생 주도 교육이 자기 증명을 하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된 것은 평가 방식의 문제였다. 전통적인 평가 방식인 시험은 학생들이 개발하는 모든 범위의 기술과 이해를 포착하지 못할 수 있으며 이를 극복할 효과적인 대안을 만드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력에 대한 평가는 표준화된 시험이다. 그래서 새로운 학력을 정의하고 평가 도구를 개발하는 긴 여정 사이에도 기존의 표준화된 도구에 의한 평가를 실시하는 것이 학력 저하 논쟁을 유발한다.
이와 더불어 학생 중심 교육을 시행하려면 교육 관행에 상당한 변화가 필요하다. 많은 교사들은 이러한 방법을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은 적이 없고 그러한 자원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있다. 많은 나라의 교육 개혁이 교사 중심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러한 비판과 도전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육자들과 연구자들은 학생 중심 교육을 계속 옹호하고 있다. 학생 주도 교육은 그것이 더 깊은 이해, 학생들의 동기 부여 증가, 그리고 문제 해결과 비판적 사고와 같은 중요한 기술의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며 미래의 학력은 이러한 것들로 구성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OECD를 포함해 국제적인 교육 트렌드도 이러한 방향에 맞추어 변화하고 있다.
학생 중심의 학습과 전통적인 교사 중심의 접근의 맥락에서 교육적 결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각 방법이 학생들을 21세기의 변화에 얼마나 잘 준비시키는지를 언급한다. 여기에는 학업적 결과(시험 점수)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팀에서 일하고, 평생 학습을 계속하는 능력과 같은 결과가 모두 포함된다.
우리는 미래 역량을 길러 주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가?
매번 교육과정을 개정할 때 개정의 중점과 추구하는 인간상 등을 제시한다. 그러나 교육과정이 그러한 인간을 길러 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내년부터 2022 개정 교육과정이 단계적으로 실행되는데 교육과정이 구현하고자 하는 인간상을 실제 학교 현장에서 실현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취약한 사회 복지 속에서 가족 복지가 기업 복지로 연결되는 사이에 입시와 일치된 교육이 있다. 대학 입시와 명문대 그리고 취업 경쟁이라는 교육열이 자리 잡고 있는 현실에서 미래 학교의 핵심인 학습자 주도성을 발현하도록 하는 역량을 교육과정이 길러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러한 평가 집착 사회에서 학생들은 한편으로는 고부담 평가로 고통받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학교에 다니는 것의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시험 점수에 의해 서열과 진로가 정해지는 반인권적 사회에서 기초학력 보장은 폭력이 될 수 있다. 학력이 종전과 같이 시험 효과로 대체되어 상위권에게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하위권에게는 좌절을 경험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학력 신장과 기초학력 보장 사이에 있는 학력은 학습자 주도성 형성을 방해하고 최대한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을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 주도성은 소비자로서 학생의 선택권을 강화하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학생 주도성에 대한 논의가 많았지만 여전히 선언적 구호에 머물러 있는 이유도 이러한 맥락 속에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을 보면,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을 교육과정 개정 방향으로 설정하였다. 여기서 학습자 주도성을 학습자가 자신의 삶과 학습을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구성하는 능력으로 정의하면, 학교는 학생들이 목적의식을 지니고 자신의 진로 및 적성에 맞추어 주도적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더군다나 불확실성이 높아진 미래 사회에 적극적으로 대비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배움을 실현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현행 입시 제도하에서 학습자 주도성을 기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학생 주도 교육과정은 학생을 주어진 교육과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교사의 지도에 따라 수동적으로 학습하여 높은 성적을 내는 존재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학습과 삶에 있어 주체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에서 이야기했듯 고교 학점제를 포함해 교육과정에서 학생의 주도적인 역할은 선택권을 행사하는 데 머물러 있다. 일상적인 수업 차원에서 학생 앞에 놓인 여러 선택의 상황에서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의사를 결정하는 것에서부터 학교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평가하는 보다 큰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참여와 주도까지 가야 학습자 주체성이 형성될 수 있다.
인권은 학력 너머에 있다!
기초학력 보장과 미래 역량 신장이 연속적인 하나의 학력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성취 기준이 지나치게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어 기초학력이 부진한 현상이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체제에서는 학생들이 높은 성취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계속해서 공부에 집중해야 하므로, 지속적인 실패와 좌절감을 경험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학습자들이 학습에 흥미를 잃게 하며, 기초학력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팬데믹에 대한 진단과 평가도 이러한 요인을 반영하여 좀 더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전례가 없는 팬데믹으로 국가에서 계획한 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웠고 교육 경험의 격차가 학력 저하로 이어졌다는 지적은 일면 타당하지만 팬데믹이란 예측 불가능한 변수로 인해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예방적 차원의 정책이 얼마나 실행되었는지 성찰해야 한다. 이미 학교가 닫힌 시점부터 저소득층 학생들의 학력 저하는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다중적 지원 체계는 한참이 지나서야 작동했다. 등교하지 않으니 진단할 수 없다는 논리로 기초학력 보장 정책의 실행은 지연되었다. 사실상 방치를 해 놓고 학력 저하를 이야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초학력의 개념이다. 사실상 중학교 3학년까지 과정은 기초학력을 형성하는 기간이다. 다시 말해 초·중등 전 과정은 학업 능력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능력을 형성하는 기간이다. 민주 국가에서 공통의 질 좋은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이유는 학업 능력이 뛰어난 학습자를 많이 길러 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교육의 본질적 기능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계획된 목표와 일련의 체제를 통해 도움을 주는 것에 있다.
여기서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와 정치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역량 개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센은 그의 책 《자유로서의 발전》에서 개인의 기회와 능력을 중심으로 발달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한다. 센에 따르면, 개인의 ‘능력’은 그들이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 자신이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유를 의미한다. 이 개념을 통해 바라보면 학생이 학력을 어느 시점에서 갖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생에게 다양한 자유를 제공하고, 그들이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 원하는 삶을 살아갈 능력을 향상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누스바움 역시 《역량의 창조》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개인이 삶을 의미 있고 풍요롭게 하는 능력과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사회가 제공해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역량 접근법을 제안한다. 역량 접근법에서는 학력 성취 자체가 아니라 학생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다.
센과 누스바움의 접근을 통해 볼 때, 교육의 목표는 개인이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고,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어야 하며, 이는 학문적 지식뿐만 아니라 사회적, 감성적, 도덕적 역량 등을 개발하는 것을 포함해야 한다. 여기서 역량은 무엇인가를 할 기회, 당사자가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자유, 그렇게 된 상태(힘)를 통합적으로 아우르는 개념으로 단순히 기회가 주어지느냐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 결과까지 고려한다는 점에서 인권을 통해 실현하려는 인간 존엄의 내용을 잘 보여 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OECD의 ‘학습 나침반 2030’도 디자인되었다. 학습자 주체성, 핵심 기초(문해력, 기초 수리력, 디지털 리터러시, 건강, 사회 정서적 역량, 금융 리터러시 등), 변혁적 역량, 웰빙(개인적 사회적 웰빙) 등은 《자유로서의 발전》과 《역량의 창조》에서 말하는 개념을 대부분 공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학습자 주도성을 중심으로 역량을 형성해 나가는 교육과정의 비전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학교는 학생들이 지식뿐만 아니라 감각, 정서, 상상력을 발달하도록 하며, 인간을 포함한 비인간 존재에 공감하는 능력을 발달하도록 하며, 서로를 사랑하고 돌보는 가운데 서로 간에 연결되는 지능을 발달시키도록 해야 한다.
특히 기후 위기 시대에 동물, 식물, 자연 세계와의 공존과 함께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가치로 존엄한 존재로 대우받을 수 있기, 인종,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 신분, 종교, 민족에 근거한 차별에 반대하는 역량을 발달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 행복하게 놀고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기 삶을 다스리는 정치적 결정들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그런데 기초학력이 기본권이라며 학습 소외에 대응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정책 입안자들은 막상 교과로 분절된 지식의 습득과 교과목별 학력을 진단하는 평가에 함몰되어 삶을 위한 역량의 형성을 방해하는 구조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에서 디자인된 정책이 인권을 침해하는 학력 신장 정책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그럼 어떻게 기초학력을 보장하고 미래 역량을 키우면서 격차가 발생하지 않는 다양한 교육을 구현할 수 있을까? 이것이 가능할까?
답은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인권은 언제나 학력 너머에 있다는 것, 어떤 정교한 평가 도구를 사용해도 입시를 치러 학생을 선별하는 문화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미래 역량을 준비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것은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예정된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이 또다시 화려한 수사로 그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학습자 주도성을 구현하기 위한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을 시작해야 한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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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남(2021), 〈기초학력으로서 문해력(literacy) 강화를 위한 국가 수준 교육과정과 평가의 방향 탐색〉, 《초등국어과교육》, 29, 75~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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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기초학력은 교육을 어디로 데려가나
인권은 학력 너머에 있다
글
정용주
edcom@gmail.com
본지 편집자문위원,
서울 천왕초 교장
학력을 구성하는 요소의 복잡성과 유동성
우리는 요즘 학생들 학력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그런데 학력이 떨어졌다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다. 학습량이 적정화되었다고 하지만 과거에 비해 학생들이 배우는 내용은 더 많아졌고 학생들이 선진도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도 과거에 비해 더 많아졌다. 그리고 더 많은 학생들이 고등학교에서 학업을 끝내지 않고 대학에 진학한다.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학력이 떨어졌다는 것인가? 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학력이 무엇이고, 학력을 어떠한 방법으로 측정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선 학력 개념을 살펴보자. 학력은 다양한 구성 요소를 포괄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동일한 구성 요소에 대한 해석과 강조점도 달라지기 때문에 단일하게 정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일례로 최근의 교육 패러다임에서는 과거와 달리 단순한 지식에 대한 암기 능력만을 학력으로 보지 않고 행위 주체성, 학습 전략의 수립 및 실행, 정서 지능과 같은 요소들을 학력의 중요한 요소로 강조한다. 또한 학력을 구성하는 시간성의 문제도 있다.
학력은 성적이나 졸업과 같은 즉각적이거나 단기적인 결과 또는 사건이 아니라 학령기 전체에 걸쳐서 학생들이 형성하는 학습된 지식과 기술 그리고 이러한 것을 실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 사회에 대한 기여와 같은 장기적인 과정이다. 특히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학문적 지식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관리하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사회 정서적 능력의 함양이다. 이처럼 학력을 구성하는 요소의 복잡성과 유동성은 학력을 정의하기 어렵게 한다.
다음으로 학력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고부담의 표준화된 시험을 통해서는 행위 주체성의 형성, 사회 정서적 능력, 의사소통 역량, 협력적 사고 등과 같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역량의 형성 여부는 포착할 수 없다. 그동안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필 평가 이외에 수행평가와 같은 대안적 평가가 도입되었고 성취 평가제가 실시되고 있지만 매우 제한적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 평가 집착 사회인 한국에서 이러한 대안적 평가는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곤 하여 자리매김하기가 쉽지 않다.
기초학력 보장과 IB 도입 열풍
최근 몇 년간 학력과 관련한 논의를 대표하는 두 개념을 꼽자면 기초학력 보장과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도입이다.
기초학력에 대한 논의는 교육과정 질 관리의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왔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그 필요성이 보다 강조되어 「기초학력 보장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그럼 기초학력이란 무엇인가?
교육부는 기초학력의 기본 개념을 “문장과 수를 해석하고 일상생활을 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중심으로 정립하여 공교육을 통해 실질적으로 보장 가능한 범위로 설정하였으며, “학교 교육과정을 통하여 갖춰야 하는 읽기, 쓰기, 셈하기와 이와 관련된 교과(국어, 수학)의 최소 성취 기준을 충족하는 학력”으로 정의하였다. 즉, 기초학력은 보편적으로 읽기, 쓰기, 셈하기인 3R’s의 ‘기초 학습 능력’을 의미하지만, 실질적으로 해당 학년의 교과 최소 성취 기준의 도달 여부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2021년에 제정된 「기초학력 보장법」에서는 “기초학력이란 「초·중등교육법」 제2조에 따른 학교의 학생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교 교육과정을 통하여 갖추어야 하는 최소한의 성취 기준을 충족하는 학력을 말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눈여겨볼 것은 삶을 영위하고 학습을 지속해 나가는 데 기반이 되는 학습력으로서 문해력, 기초 수리력, 자기 인식 및 관계 능력을 광의의 기초학력으로 정의하고 필수 학습 역량(문해력과 기초 수리력), 학습 지원 역량을 기초학력의 구성 요소로 설정한 것이다.
이와 같이 기초학력을 과정 중심으로 접근하면서 학교 교육과정을 통하여 갖추어야 하는 최소한의 성취 기준을 충족하는 학력으로 정의한 것은 의미 있다. 또한 국가와 시·도교육청이 모든 학생의 최저 학력 도달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한 것도 중요한 접근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국가와 시·도교육청은 배움을 권리의 문제로 접근하면서 다양한 기초학력 미달의 원인을 파악하여 학교 내, 학교 밖의 다중 학습 안전망을 구축하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정확한 진단을 통해 기초학력 다중 지원 대상 학생을 선정하고 다중 안정망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정확한 진단의 해법이 객관적 진단, 기준 표준화, 이력 관리, 선정 체계화라는 기존의 방법에 단위 학교 내 선정 과정을 법정 협의회의 구성 및 운영으로 강제했다는 것 외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또한 기초학력의 다중 안전망 강화도 예방적 관점보다 처방적 관점에 초점을 두고 있다. 기초학력에 대한 정책이 주로 미달 학생에 대한 지원 정책에 관심이 집중되면 예방적 교육 정책이 실행되기 쉽지 않다. 특히 대부분의 기초학력 미달이 유아기 양육자와의 관계 속에서 언어 발달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예방적 접근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학력과 관련하여 검토해야 할 것이 IB이다. IB는 기초학력과 구별하여 학교교육을 통해 지속적으로 향상되어야 할 학력을 평가하는 방법으로 최근 강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IB를 경쟁적으로 도입하려는 열풍이 분 배경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강력한 원인은 혁신교육으로 대표되는 아동 중심 교육 개혁 운동이 학력 저하 논쟁에 휘말린 것이다. 이는 과밀한 교육 내용과 주입식 교육의 문제를 해소하고자 시작된 일본의 ‘여유 교육(유도리 교육)’이 결국 학력 저하 논란에 부딪혀 좌초된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다소 실체가 없는 학력 저하 논쟁이 한국의 아동 중심 교육 개혁 운동에서만 나타난 흐름이 아니라는 사실에 다소 위안을 얻어야 할까. 어쨌거나 궁극적으로 한국과 일본 모두 보다 높은 수준의 학력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
좀 더 시간을 뒤로 돌리면 IB는 엘리트주의적이고 유럽 중심적이라는 기존의 오래된 비판을 넘어 공립 학교에서 입지를 확장하려는 전략을 확대해 왔다. IBO(International Baccalaureate Organization)는 IB 프로그램이 공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으며, 이전에는 사립학교의 엘리트 학생들에게만 국한되었던 기회가 확대되었다는 홍보 전략을 구사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IB는 국가 교육과정과 공존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도록 하였다. 이러한 전략은 경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을 채택한 정부 관계자들과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가 교육과정의 탈국가화, 교육 시스템의 비국적화가 확대되었다. 특히 중산층 학부모들은 국제 엘리트들과 경쟁하면서 엘리트 지위를 획득하는 것을 선호하였는데 이러한 흐름이 IB의 도입을 지지하는 토대가 되었다.
IB는 학교에 도입하여 인증을 받거나 상대적으로 높은 인증 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역사적으로 민주 공화국 설립 이후 형성된 공교육 제도에 대한 총체적 변화를 수반한다. 교육 당국에 대한 장학, 교육과정 질 관리, 교사의 전문성 신장이 사설 기관인 IBO의 관리하에 들어가는 것이다.
많은 나라에서 IB를 도입하려는 배경에는 높은 수준의 성취를 요구하는 교육적 지향이 있다. 그런데 높은 성취를 추구하는 교육은 동시에 교육 격차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모든 학생이 같은 자원과 기회를 갖지 않기 때문에, 높은 성취를 요구하는 교육은 종종 더 넓은 사회적 불평등을 반영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일부 학생들은 가정에서 더 많은 학문적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사교육에 접근하기 편리할 수 있다.
이런 자원의 불균형은 학력에 영향을 미치며 이로 인해 교육 격차가 생기게 된다. 또한 높은 수준의 성취를 요구하는 교육 환경은 학생들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주며, 이는 학업 성취도와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성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이나 높은 수준의 성취를 이루기 위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더욱 그렇다.
학력 담론의 반인권성 – 학생 주도 교육이 계속해서 패배해 온 역사
앞에서 나는 학력 논의를 대표하는 두 가지 개념으로 기초학력 보장과 미래 역량 신장을 위한 IB 도입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기초학력 보장과 더 높은 수준으로 학력을 높이려는 흐름 사이에 학력에 대한 균열의 지점이 있다는 점, 그리고 기초학력 보장 정책이 예방적 차원이 아닌 처방적 조치가 대부분이라는 점, 마지막으로 학력 측정이 표준화된 평가와 선별에 집중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었다.
미래 학력 관점에서 학력을 높이는 문제도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학력 신장인지가 분명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자.
“국가 행복 지수가 1위인 덴마크에서 학생들은 학력이 높아서 행복하고 사회 복지를 누리며 높은 임금을 받는가?”
답은 간단하다. 학력과 행복은 큰 관계가 없다. 상식적으로 학력의 높고 낮음에 따라 인권의 보장에 차이가 생긴다면 그것은 능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민주 공화국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인권의 관점에서 보면 학력과 관계없이 인간으로서 존엄이 보장되는 사회가 기초학력 보장과 학력 신장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사회에서만이 좋은 교육이 가능하다. 기초학력이 보장되지 않으면 개인의 삶이 황폐해지고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는 사고는 교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능력주의에 기반한 말이다. 교육에서 해야 할 일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좀 더 학력을 높이는 경험이 아닌 행복을 경험하도록 하는 교육과정 설계이다. 이 점에서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학생 주도 교육(학습자 주도성)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학생 주도 교육은 교사에서 학생으로 교육의 초점을 이동시키는 교육 접근법이다. 그것은 개별화된 교육, 능동적 학습, 발견 학습, 그리고 협동 학습과 같은 방법들을 포함한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열린 교육, 한국의 혁신 교육, 일본의 여유 교육 등 국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공교육 제도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경우 덴마크의 자유학교(friskole), 한국의 대안학교, 이스라엘의 민주학교 등 다양한 형태로 구현되었다. 이러한 교육 방식과 제도가 반대에 직면한 가장 큰 이유는 학력을 저하시킨다는 점 때문이었다.
학생 주도 교육이 자기 증명을 하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된 것은 평가 방식의 문제였다. 전통적인 평가 방식인 시험은 학생들이 개발하는 모든 범위의 기술과 이해를 포착하지 못할 수 있으며 이를 극복할 효과적인 대안을 만드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력에 대한 평가는 표준화된 시험이다. 그래서 새로운 학력을 정의하고 평가 도구를 개발하는 긴 여정 사이에도 기존의 표준화된 도구에 의한 평가를 실시하는 것이 학력 저하 논쟁을 유발한다.
이와 더불어 학생 중심 교육을 시행하려면 교육 관행에 상당한 변화가 필요하다. 많은 교사들은 이러한 방법을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은 적이 없고 그러한 자원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있다. 많은 나라의 교육 개혁이 교사 중심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러한 비판과 도전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육자들과 연구자들은 학생 중심 교육을 계속 옹호하고 있다. 학생 주도 교육은 그것이 더 깊은 이해, 학생들의 동기 부여 증가, 그리고 문제 해결과 비판적 사고와 같은 중요한 기술의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며 미래의 학력은 이러한 것들로 구성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OECD를 포함해 국제적인 교육 트렌드도 이러한 방향에 맞추어 변화하고 있다.
학생 중심의 학습과 전통적인 교사 중심의 접근의 맥락에서 교육적 결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각 방법이 학생들을 21세기의 변화에 얼마나 잘 준비시키는지를 언급한다. 여기에는 학업적 결과(시험 점수)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팀에서 일하고, 평생 학습을 계속하는 능력과 같은 결과가 모두 포함된다.
우리는 미래 역량을 길러 주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가?
매번 교육과정을 개정할 때 개정의 중점과 추구하는 인간상 등을 제시한다. 그러나 교육과정이 그러한 인간을 길러 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내년부터 2022 개정 교육과정이 단계적으로 실행되는데 교육과정이 구현하고자 하는 인간상을 실제 학교 현장에서 실현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취약한 사회 복지 속에서 가족 복지가 기업 복지로 연결되는 사이에 입시와 일치된 교육이 있다. 대학 입시와 명문대 그리고 취업 경쟁이라는 교육열이 자리 잡고 있는 현실에서 미래 학교의 핵심인 학습자 주도성을 발현하도록 하는 역량을 교육과정이 길러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러한 평가 집착 사회에서 학생들은 한편으로는 고부담 평가로 고통받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학교에 다니는 것의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시험 점수에 의해 서열과 진로가 정해지는 반인권적 사회에서 기초학력 보장은 폭력이 될 수 있다. 학력이 종전과 같이 시험 효과로 대체되어 상위권에게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하위권에게는 좌절을 경험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학력 신장과 기초학력 보장 사이에 있는 학력은 학습자 주도성 형성을 방해하고 최대한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을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 주도성은 소비자로서 학생의 선택권을 강화하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학생 주도성에 대한 논의가 많았지만 여전히 선언적 구호에 머물러 있는 이유도 이러한 맥락 속에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을 보면,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을 교육과정 개정 방향으로 설정하였다. 여기서 학습자 주도성을 학습자가 자신의 삶과 학습을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구성하는 능력으로 정의하면, 학교는 학생들이 목적의식을 지니고 자신의 진로 및 적성에 맞추어 주도적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더군다나 불확실성이 높아진 미래 사회에 적극적으로 대비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배움을 실현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현행 입시 제도하에서 학습자 주도성을 기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학생 주도 교육과정은 학생을 주어진 교육과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교사의 지도에 따라 수동적으로 학습하여 높은 성적을 내는 존재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학습과 삶에 있어 주체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에서 이야기했듯 고교 학점제를 포함해 교육과정에서 학생의 주도적인 역할은 선택권을 행사하는 데 머물러 있다. 일상적인 수업 차원에서 학생 앞에 놓인 여러 선택의 상황에서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의사를 결정하는 것에서부터 학교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평가하는 보다 큰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참여와 주도까지 가야 학습자 주체성이 형성될 수 있다.
인권은 학력 너머에 있다!
기초학력 보장과 미래 역량 신장이 연속적인 하나의 학력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성취 기준이 지나치게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어 기초학력이 부진한 현상이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체제에서는 학생들이 높은 성취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계속해서 공부에 집중해야 하므로, 지속적인 실패와 좌절감을 경험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학습자들이 학습에 흥미를 잃게 하며, 기초학력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팬데믹에 대한 진단과 평가도 이러한 요인을 반영하여 좀 더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전례가 없는 팬데믹으로 국가에서 계획한 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웠고 교육 경험의 격차가 학력 저하로 이어졌다는 지적은 일면 타당하지만 팬데믹이란 예측 불가능한 변수로 인해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예방적 차원의 정책이 얼마나 실행되었는지 성찰해야 한다. 이미 학교가 닫힌 시점부터 저소득층 학생들의 학력 저하는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다중적 지원 체계는 한참이 지나서야 작동했다. 등교하지 않으니 진단할 수 없다는 논리로 기초학력 보장 정책의 실행은 지연되었다. 사실상 방치를 해 놓고 학력 저하를 이야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초학력의 개념이다. 사실상 중학교 3학년까지 과정은 기초학력을 형성하는 기간이다. 다시 말해 초·중등 전 과정은 학업 능력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능력을 형성하는 기간이다. 민주 국가에서 공통의 질 좋은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이유는 학업 능력이 뛰어난 학습자를 많이 길러 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교육의 본질적 기능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계획된 목표와 일련의 체제를 통해 도움을 주는 것에 있다.
여기서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와 정치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역량 개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센은 그의 책 《자유로서의 발전》에서 개인의 기회와 능력을 중심으로 발달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한다. 센에 따르면, 개인의 ‘능력’은 그들이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 자신이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유를 의미한다. 이 개념을 통해 바라보면 학생이 학력을 어느 시점에서 갖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생에게 다양한 자유를 제공하고, 그들이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 원하는 삶을 살아갈 능력을 향상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누스바움 역시 《역량의 창조》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개인이 삶을 의미 있고 풍요롭게 하는 능력과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사회가 제공해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역량 접근법을 제안한다. 역량 접근법에서는 학력 성취 자체가 아니라 학생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다.
센과 누스바움의 접근을 통해 볼 때, 교육의 목표는 개인이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고,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어야 하며, 이는 학문적 지식뿐만 아니라 사회적, 감성적, 도덕적 역량 등을 개발하는 것을 포함해야 한다. 여기서 역량은 무엇인가를 할 기회, 당사자가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자유, 그렇게 된 상태(힘)를 통합적으로 아우르는 개념으로 단순히 기회가 주어지느냐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 결과까지 고려한다는 점에서 인권을 통해 실현하려는 인간 존엄의 내용을 잘 보여 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OECD의 ‘학습 나침반 2030’도 디자인되었다. 학습자 주체성, 핵심 기초(문해력, 기초 수리력, 디지털 리터러시, 건강, 사회 정서적 역량, 금융 리터러시 등), 변혁적 역량, 웰빙(개인적 사회적 웰빙) 등은 《자유로서의 발전》과 《역량의 창조》에서 말하는 개념을 대부분 공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학습자 주도성을 중심으로 역량을 형성해 나가는 교육과정의 비전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학교는 학생들이 지식뿐만 아니라 감각, 정서, 상상력을 발달하도록 하며, 인간을 포함한 비인간 존재에 공감하는 능력을 발달하도록 하며, 서로를 사랑하고 돌보는 가운데 서로 간에 연결되는 지능을 발달시키도록 해야 한다.
특히 기후 위기 시대에 동물, 식물, 자연 세계와의 공존과 함께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가치로 존엄한 존재로 대우받을 수 있기, 인종,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 신분, 종교, 민족에 근거한 차별에 반대하는 역량을 발달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 행복하게 놀고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기 삶을 다스리는 정치적 결정들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그런데 기초학력이 기본권이라며 학습 소외에 대응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정책 입안자들은 막상 교과로 분절된 지식의 습득과 교과목별 학력을 진단하는 평가에 함몰되어 삶을 위한 역량의 형성을 방해하는 구조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에서 디자인된 정책이 인권을 침해하는 학력 신장 정책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그럼 어떻게 기초학력을 보장하고 미래 역량을 키우면서 격차가 발생하지 않는 다양한 교육을 구현할 수 있을까? 이것이 가능할까?
답은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인권은 언제나 학력 너머에 있다는 것, 어떤 정교한 평가 도구를 사용해도 입시를 치러 학생을 선별하는 문화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미래 역량을 준비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것은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예정된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이 또다시 화려한 수사로 그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학습자 주도성을 구현하기 위한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