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호[특집] 코로나19가 바꾼 것들 (김중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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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코로나19 사태로 바라본 교육


코로나19가 바꾼 것들

재난 이후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사회


김중미

mansuk99@hanmail.net

작가, 기찻길옆 작은학교


코로나19가 온 지구를 공포에 떨게 하는 와중에도 봄이 오고 꽃이 피었다. 산골짜기의 봄은 도시와 다르다. 산언저리부터 천천히 봄이 스며들어 산꼭대기까지 물들어 간다. 생강나무 꽃이 피고, 매화와 개나리, 진달래가 같이 피고, 벚꽃이 핀다. 복숭아나무와 배나무에도 꽃이 피고 졌다. 이제 나무들은 열심히 햇볕을 받고 물을 빨아올리는 노동으로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해 갈 것이다. 꽃이 피고 지는 사이 노랑할미새가 돌아오고 소쩍새가 울기 시작했다. 이른 봄 기러기 떼가 떠나고 비어 있던 논을 트랙터가 갈아엎고 난 뒤 여기저기에 못자리가 생겼다. 못자리 주변으로 백로와 황로가 날아들었다. 모내기 철이 다가오고 있다. 봄이 깊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꾀꼬리가 돌아왔다. 꾀꼬리가 돌아오면 공부방 아이들은 항상 강화 공부방에 모여 어린이날 행사를 열었다. 그러나 올해는 어린이날에도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한다. 싱그러운 신록 아래서 함빡 웃던 아이들이 그립다.


그래도 코로나19에도 계절은 변하고 생명이 꿈틀거리고 싹이 움튼다. 코로나19로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기지개를 편다. 코로나19도 곧 끝날 거라는 막연한 희망도 싹을 내민다.



“공부방에 가고 싶어요”


올해 초 중국 우한이 신종 바이러스로 봉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사태가 이렇게 커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설 연휴가 지나 코로나19 국내 확진자가 늘어나기 시작할 때만 해도 곧 닥칠 혼란을 예상하지 못했다. 사스, 메르스를 겪기는 했지만 그때는 큰 어려움 없이 공연과 캠핑, 성탄 잔치 같은 공부방 행사를 치렀던 터라 30년 동안 해 온 공연을 못 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2월 18일, 대구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로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일어났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작되면서 2월 23일 이후로 작년 10월부터 준비한 정기 공연 연습을 중단했다. 처음에는 일주일이나 열흘이면 사태가 진정될 줄 알았다. 1988년 공부방을 시작한 뒤로 공부방 문이 닫히는 날은 명절이나 연휴뿐이었다. 공부방은 방학 때 더 필요한 곳이라 방학 때도 사나흘 정도밖에 쉬지 않았다. 그런데 초·중·고 공부방이 한꺼번에 멈추고, 20년 동안 수요일마다 열었던 무료 한방 진료와 청년들의 활동까지 모두 멈췄다.


3월이 되자 학교에 가지 못하고 하루 종일 집에 갇혀 있는 아이들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공부방 아이들은 공부방이 있는 동네의 판잣집이나 빌라, 공부방 건너편 LH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그나마 나은데 하루 종일 마당도 없는 외주물집이나 좁은 빌라에서 지내야 하는 아이들이 걸렸다. 정부의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 때문에 가정 방문도 할 수 없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작된 지 2주가 넘어가자 아이 들이 밥은 잘 챙겨 먹는지, 제대로 씻기는 하는지, 하루 종일 스마트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돼서 견딜 수가 없었다. 공부방 이모·삼촌들은 부모님들을 통해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연락을 했다. 전화를 받은 초등부 아이들은 “공부방에 가고 싶어요”, “인형극 연습 하고 싶어요”, “친구들이랑 놀고 싶어요”라며 울먹였다.


중등부 아이들은 먹고 씻는 일까지야 스스로 할 수 있을 테니 큰걱정은 없지만 겨울 방학 때도 공부방에 오는 시간 외에는 게임으로 소일을 하던 몇몇 아이들이 문제였다. 집에 있기 힘들어 밖으로 돌던 아이들은 좁은 집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집안일을 도맡느라 힘겹지는 않을지 염려스러웠다. 다행히 수화기 너머 아이들의 목소리는 괜찮아 보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초등부 부모들 중 한 분은 코로나19로 일이 없어져 집에 계셨고, 조부모와 사는 아이들도 혼자 있지는 않았다. 하루 종일 혼자 있어야 하는 아이들은 네 명이었다. 부모님들과 상의해서 긴급 돌봄을 시작했다. 보름 만에 공부방에 온 아이들은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떡이 되어 있었고, 햇볕을 쬐지 못해 얼굴은 누렇게 떠 있었다. 할머니가 일 나가며 차려 놓은 밥을 혼자 깨작거렸던 아이, 어려서부터 아빠와 ‘햇반’과 냉동 오리고기만 구워 먹던 아이, 부모가 지적 장애가 있어 푸드뱅크에서 주는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던 아이의 가난한 밥상은 아이들의 하루 하루를 더 외롭게 했다. 우리 공부방은 원래 다른 지역아동센터와 달리 급식을 하지 않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잦아들 때까지 긴급 돌봄에서는 점심을 챙기기로 했다. 아이들은 밥을 먹으면서도 조잘조잘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모들이 한눈을 팔면 어느새 서로 붙거나 이모·삼촌들에게 매달렸다. 이모들의 품을 그리워하는 아이들을 멀리하는 것은 우리도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평소에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 힘들어하던 아이는 공부방에만 오고 싶다고 했지만 나머지 아이들은 학교가 그립다고 했다. 코로나19로 모든 사람들이 이제까지 겪어 보지 않은 낯선 하루하루를 살아 가고 있었지만, 누구보다 어린아이들에게 가장 힘든 시간이 되고 있었다.



고3들의 꿈에도 사회적 거리가 만들어졌다


중등부는 시간 차를 두고 공부방에 와서 책을 빌려 가게 하고 학년별 단체 채팅 방에 읽은 내용을 올리기로 했다. 그렇게라도 아이들의 일상을 점검하기로 하고 나니 입시를 앞둔 고3들이 가장 큰 숙제가 되었다. 올해 초 공부에 그다지 흥미가 없고, 중위권과 중하위권을 맴도는 고3 세아이와 여러 번의 진로 상담을 가졌다. 어렵게 목표를 세우고 이번 학기만 큼은 열심히 해서 성적을 올려 보자고 결의를 다졌는데 코로나19로 모든게 허사가 되었다.


우선 아이들을 공부방으로 불러 하루 한 시간씩이라도 주요 과목 수업을 하고 하루치 공부를 점검하기로 했다. 그러나 한동안 스마트폰과 일체형이 되어 자신들이 세운 계획도 까맣게 잊고 멍해진 아이들을 책상 앞에 앉히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행히 4월 9일, 고3, 중3의 온라인 개학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원격 수업이 진행되자 지역과 학교에 따라 수준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미 수준 높은 원격 수업을 해 온 자율형 사립고는 예외로 치더라도 같은 인천에 있는 공립 학교 간의 차이도 컸다. 신도시에 있거나 대학 진학률이 높은 공립 고등학교와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변두리 공립 고등학교의 수업의 질이 달랐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거의 모든 수업이 교육방송으로 대체되고 있었지만 다른 학교는 담당 교사가 유튜브로 진행하는 수업과 교육방송을 적절히 섞었고 학생들과 교사들의 채팅도 활발했다. 공부방 안에서도 강화에 있는 기숙형 공립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인천 구도심의 공립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원격 수업 이전부터 학교에서 받는 정보의 양이 달랐다. 물론 같은 학교 안에서도 디지털 기기에 능해 코로나19 이전부터 적극적으로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다양한 교육을 시도했던 교사가 있는가 하면, 교육적 차원에서라도 디지털 기기를 수업에 이용하지 않았던 교사들도 있고, 학생들보다 디지털 기기에 미숙한 교사들도 있었다. 그 정도의 차이는 학생들이나 학부모들도 기꺼이 수용했다. 원격 교육이 처음인 것은 교사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과 학교에 따라 원격 수업의 질도 차이가 난다는 것을 받아들이려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공부방 아이들이 다니는 변두리 공립 고등학교에는 사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많지 않아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습만이 아니라 입시 정보까지 학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물론 다른 지역에 비해 학업이나 대학 입시에 관심이 많지 않고 대학 진학률도 높지 않다. 그러다 보니 수업이 부실하거나 학생 지도가 미흡해도 민원을 넣는 학부모가 드물고 항의하는 학생들도 적다. 어차피 수업 시간에 깨어 있는 학생들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원격 수업은 말할 것도 없을 터였다. 무기력한 학생들을 깨워 수업에 참여시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렇게 학교의 입장을 십분 이해한다 해도 방치 되는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된 입시 정보를 얻지 못하고 하릴없이 교육방송에 매달려 있는 사이에, 어떤 학생들은 학원이나 과외 수업을 듣고, 스터디카페에 가서 공부를 하고, 부모의 도움으로 입시 컨설팅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 차이 역시 2021년의 대학 입시에 그대로 반영이 될 것이고, 그 결과는 코로나19로 변화된 사회의 적응력에도 차이를 드러낼 게 분명하다. 우리 아이들도 꿈이 있다. 건축가가 돼서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고 싶고, 경찰이 돼서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싶고, 3년제 공대에 가서 정규직에 취직하고 싶다. 그런데 코로나19는 우리 고3들의 꿈에도 사회적 거리를 만들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 높은 벽인데 당장 대학마다 정시 모집이 늘었다는 발표가 나왔다. 코로나19로 수시 모집 준비를 위한 막판 스퍼트를 놓치긴 했지만 그래도 중·하위권 학생들에게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수시 모집이 줄었다니 앞으로 고3들과 입시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온라인 수업은 누구에게나 평등할까


중학교 2, 3학년과 고등학교 1, 2학년, 초등학교 학생들까지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함께 공부방을 운영하는 학교 선생님들은 온라인 교육에 대비해 수업을 준비하면서 밤낮으로 학부모들의 문자를 받았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학습 꾸러미를 만드느라 주말에도 밤늦게까지 일을 했다. 그렇게 온라인 개학이 시작되자 공부방에도 전화가 빗발쳤다. 스마트폰이 있어도 전화를 받고 거는 용도로밖에 쓰지 않았던 할아버지·할머니 들은 초등학교 저학년인 손자·손녀의 온라인 등교를 도울 방도가 없었다. 지적 장애가 있는 부모들이 있는가 하면, 한 번도 인터넷에 접속해 보지 못한 부모도 있었다. 교육부에서는 디지털 기기가 없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에서 노트북, 태블릿PC를 빌려 줄 것이므로 원격 수업에서의 불평등이 크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난생처음 태블릿PC를 만져 본 아이들과 태블릿PC 로 놀아 본 아이들의 속도가 같을 수 없다. 강화 중등부 아이들은 노트북, 혹은 데스크 탑으로 강의를 들으며 실시간으로 스마트폰으로 소통을 해야 원격 수업을 따라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중학생 중에는 스마트폰이 없는 아이들도 있다. 초등부 아이들의 상황은 더 좋지 않다. 디지털 기기가 있다 해도 부모가 집에 있으면서 아이들을 돌보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 간의 차이 또한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공부방은 아이들의 원격 수업에 맞춰 긴급 돌봄을 확대하고 아이들이 원격 수업을 따라갈 수 있게 도왔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의 등교가 계속 미뤄지면서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이나 정서 장애, 행동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방치되는 것이다. 장애 아동은 특히 교사와의 대면 교육과 또래와의 관계가 필요한데 학교는커녕 공부방에도 오지 못하고 집 안에 고립되어 있으니 막막하기 짝이 없다.



학교는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공간이다


이 글을 쓰던 중 5월 둘째 주부터 등교 개학을 할 예정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방역 전문가들은 개학이 성급하다고 말한다. 우리도 걱정이 크다. 초·중등 교사들끼리 모여 개학 뒤의 학교 상황을 이야기하다 보면 걸리는 게 한둘이 아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고립을 이렇게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경제적 여력이 있고 사교육 기관이나 다른 통로로 사회화 학습을 할 수 있는 가정은 개학이 절실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학교는 불가피한 존재다. 학교는 지식을 전달하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학교에는 외로운 아이들을 알아봐 주고 부족함을 메워 주는 교사가 있고, 사회생활의 규칙을 배우고 소통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또래들이 있다. 제도 교육이 갖는 한계와 문제점들이 많지만 그래도 학교가 유일한 버팀목인 아이들이 더 많다.


코로나19는 학교가 초·중·고 학생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의미를 지닌 곳인지를 드러내 주었다. 또 학교라는 공동체가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의 협업으로 움직이는 곳인지, 서로의 존재가 얼마나 필요한지도 드러냈다. 학교에서의 한 끼는 제대로 된 밥상을 가져 본 적 없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하다. 그 아이들의 한 끼를 위해 영양사와 조리사가 필요하고, 여러 식품 업체와 농촌의 생산공동체와의 긴밀한 연결이 있어야만 한다. 장애 학생들이 비장애 학생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하기 위해서도 특수 교사와 장애 학생의 활동 보조 교사가 필요하다. 가난한 학생들을 살피고 지원할 수 있는 학교 복지사도 필요하고, 보건실과 도서관, 상담실에도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돌봄 교실처럼 정치적인 이유로 급조된 정책들이 적지 않고 그에 따른 문제들이 있겠지만 그중 어느 것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은 없다. 경제적, 문화적 자원이 넉넉한 이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 평등하게 교육을 받아야 하고, 그러려면 학교공동체 안의 모든 구성원이 협력하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코로나19는 학교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중요한 사회적 공간이라는 것을 드러내 주었고, 제도 교육이 불평등과 불공정을 해소해야 할 이유를 드러냈다.



공부방을 졸업한 청년들의 삶은……


코로나19의 고통은 공부방을 졸업한 청년들에게도 전해졌다. 공부방을 졸업하고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일하던 보육 교사와 유치원 교사들은 월급이 반 토막이 났다. 보습 학원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던 청년의 월급도 30%가 줄었다. 공부방 상근 활동을 위해 학원과 과외 아르바 이트를 병행하던 삼촌도 실업자가 된 지 두 달이 넘었다. 카페나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들은 해고를 당하거나 일하는 시간이 줄었다.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청년 내일 배움 카드로 기술을 배우려던 스무 살 청년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그 청년은 아르바이트도 구하지 못해 코로나19로 직장을 잃은 부모와 한 집에서 숨 막히는 날들을 보내다가 공부방으로 와 끝내 눈물을 쏟았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공부방 졸업생들 중에는 보육 시설에서 자란 친구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기숙사가 새로운 거처가 되어야 하는데, 코로나19로 개강이 미뤄지면서 기숙사에도 들어갈 수없게 되었다. 보육 시설은 만 18세 이상은 무조건 자립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청년들은 선배나 친구들의 원룸으로 나가 더부 살이를 시작해야 했다.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이어진 휴일. 두 달간의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에 지친 시민들이 제주로 부산으로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는 그날, 8년 전 공부방을 졸업한 한 청년의 부고를 들었다. 장례 식장에 가서야 작년 12월 직장을 잃은 뒤 홀로 고립되어 지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강화를 벗어나서 사는 동안 삶이 호락 호락한 적이 한 번도 없었을 테지만 코로나19는 그의 절망을 더 깊게 했을 것이다. 장례식장에 앉아 얼마 전 신문에서 읽었던 로버트 라이시의 말을 떠올렸다. 그는 앞으로 노동자들이 원격 근무가 가능한 노동자, 필수적 노동자(의사, 간호사, 배달자, 운전기사 등 필수적이지만 위험 부담에 노출된 노동자),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 잊힌 노동자로 나뉠 거라고 말했다. 우리 아이들이 어디에 속할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사회


그래도 애써 희망을 떠올려 본다. IMF 외환 위기는 우리 사회에 신자유주의의 그늘을 깊이 드리웠다. 중산층을 무너뜨렸고, 노동자들의 반을 비정규직화했다. 가난은 고착화되었고 빈부의 차는 더 커져 각자도생의 사회를 부추겼다. 그러나 IMF라는 사회적 재난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만들고, 고용보험과 건강보험 통합 같은 복지 체계도 만들었다. 물론 기초 생활보장제도는 아직 완전하지 않다. 부양의무제, 장애등급제 등 곳곳에 놓인 걸림돌이 아직 치워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IMF는 우리 사회에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이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의료가 민영화 혹은 상업화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충분히 경험하고 상상했다. 이 사회적 재난을 통해 공공 의료 체계의 확충이나 전 국민 고용보험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게 된 근본 원인인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높아졌다. 코로나19가 끝나도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한다. 소수에게만 허용되 었던 풍요와 자유, 안전을 이 지구 안에 사는 모든 사람이 조금씩 나눌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코로나19 이후는 허락되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서 위험 부담에 노출된 노동자가 되고 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될, 어쩌면 잊힌 노동자가 될지 모르는 우리가, 우리 청년들이, 청소년들이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


내가 사는 곳은 강화 양도면이다. 우리는 논 28마지기, 포도밭 3마지기를 하는 소농이다. 농사를 짓다 보면 사계절의 변화에 예민해지고, 흙속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부터 주변의 새들과 너구리, 고라니, 길고양이와 유기견과 함께하는 삶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구’라는 말보다 ‘공동의 집’이라는 말을 써서 ‘지구가 인간만의 공간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땅이고 인간과 자연이 모두 연결된 존재’임을 자각하라고 말했다. 교황이 “환경과 사회의 훼손은 특히 이 세상의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소외된 이들의 문제는 가장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고 말했던 것처럼 인간이 파괴한 환경과 자연이 우리를 공격해 올때 가장 먼저 쓰러지고 고통받는 것은 가장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 시기를 깊이 성찰하고 함께 대안을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온 것이다. 아프리카의 호사족 언어에 ‘우분투’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우분투는 자신이 가진 것을 공유하는 것, 즉 내가 한 인간으로서 지닌 특성이 당신의 인간적인 특성과 불가피하게 결합된 상태라는 의미라고 한다. 최근 몇 년사이 공유 경제, 공유 서비스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지만 그 공유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을 더 옭아맸다. 이제 진짜 공유의 삶이 필요한 때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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