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호[테마 에세이] 기간제 교사로 사는 법 | 나라는 겁쟁이에게 주는 과제 | 이평과

202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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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에세이 | 기간제 교사로 사는 법


나라는 겁쟁이에게 주는 과제

 비정규직 교사의 동료 되기 프로젝트

 

이평과

leepyunggwa@gmail.com

QTQ(Queer Teachers with Queers) 회원,

전국기간제교사노동조합 조합원


 

나도 모르게, 그리고 막연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정규직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기대와는 다르게 비정규 노동으로 교직을 시작했다. 사실 이미 온갖 비정규 노동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대학에서 사회운동을 접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노동에 연대했고, 나 자신도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으며, 내 양육자들은 물론 가족들 모두 단 하루도 정규 노동자였던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양육했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비정규 노동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다. 내가 “아르바이트”라고 부르는 한 그것은 언젠가는 벗어날 일시적인 상태였다.

이전까지 내 비정규 노동은 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한 처우 차이를 인지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이루어졌다면 교직은 그렇지 않았다. 일상적으로 불안정성을 체감하지는 않지만 분명 안정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교사 집단의 특성과 기간제 교사가 학교에서 하는 역할을 먼저 알아야 한다. 우선, 교사 집단은 관리자인 교장이나 교감을 제외하면 수평 집단이어서 26년 차 교사와 6년 차 교사가 대체로 비슷한 수준의 권한을 갖고 있다.[ref]이 내용은 중등 보통 교과 교사 집단 내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ref] 예를 들어 그런 경력 차이를 갖는 두 교사가 동 교과와 동 학년을 담당한 교사라면 자기가 담당한 학급에 대해서는 같은 수준의 권한을 갖는다. 나이나 경력 차이가 있어도 동료 간에 “선생님”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기본이고 어느 정도로는 상호 존중이 당연하다. 교사 집단에 들어가 이 사실을 새삼 느끼며 평등한 분위기를 형성하기 좋은 집단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수평적 관계는 정규 교사와 기간제 교사 사이에도 어느 정도는 성립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분명히 권력 관계가 발생한다. 기간제 교사의 채용 과정에서 업무 담당자도 정규 교사고[ref]학교 인사 업무 담당자는 원칙적으로 교감이라야 하나 실제로는 채용 업무를 전담하는 담당자가 정규직 평교사인 경우가 아주 많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교육청과의 단체 협약 내용에 이러한 원칙을 포함하기도 한다.[/ref] 면접관으로 참여하는 사람도 정규 교사고 채용을 결정하는 위원회도 대체로 정규 교사만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기간제 교사를 타자화하는 인식도 분명히 존재한다. 기간제 교사는 정규 교사와 비슷한 자격 및 권한으로 업무를 수행한다. 담임 교사가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담임 학급에 대한 권한이 정규 교사와 다르지 않고, 기간제 교사라도 자기 담당 교과의 평가에 정규 교사와 같은 수준으로 참여한다. 그럼에도 일부 정규 교사는 기간제 교사가 “교사가 되기를 준비하는 사람”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학생들은 올해 그 학교에 처음 왔다고 하는 내가 당연히 내년에도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3월에 처음 만난 학생들이 연말이 다가오면 자연히 묻는 말이 있다.

“선생님, 내년에는 몇 학년 수업하세요?”

고맙게도 나를 좋아해 주는 학생들은 내게 그 학교에 언제까지 있을지 물어보기도 한다. 처음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는 나는 “글쎄” 하고 답했다. 이 대답에 내가 담았던 의도는 없었다. 단순히 당황스러워서 제일 쉽게 할 수 있는 대답을 했을 뿐이었다. 이후에 전국기간제교사노동조합(약칭 ‘기간제노조’)에서 만난 한 선생님께서 내게 그런 질문을 받은 적 있느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어떻게 대답했는지 고스란히 알려드렸다. 그 선생님에 따르면 내 대답은 무난한 대답이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 학생들의 보호자도 비정규 노동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높고, 학생 본인들도 비정규 노동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이용해 내가 비정규 노동자임을 숨기려는 듯이 말하거나 행동하는 듯이 느껴졌다. 그게 스스로 비정규 노동자라는 사실을 창피해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고 솔직히 창피해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알고 보니 자신이 기간제 교사임을 자연스럽게 말하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다. 나도 굳이 부자연스럽게 느낄 필요가 없었다. 나는 자부심을 갖고 다른 선생님들처럼 성심성의껏 학생들을 대하려 노력했고 내가 만약 어설프다면 그것은 비정규 노동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같은 자격과 권한으로 업무를 수행하지만 정말로 같은 처우나 대우를 받고 있지는 않다. 실제로 기간제노조의 각종 모임에 참석하다 보면 보직을 포함한 기피 업무가 주로 기간제 교사에게 간다든지, 노동조합 가입 사실을 밝히고 다른 기간제 교원들에게 가입을 권유한 뒤에 오랫동안 계약을 갱신해 온 학교에서 재계약 불가 통지를 받는 등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렇게 내가 비정규직으로서 어떤 차별을 겪을 수 있는지 혹은 경험했는지 알아 나갈 수 있었다.

나도 고난도의 기피 업무를 내 의사와 상관없이 담당했어야만 했다. 원칙을 이야기하자면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기피 업무나 기피 학년 내지는 학급을 맡는 것은 부당하며 업무 분장 이전에 기간제 교사에게도 업무 분장 희망원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사전에 업무 분장 희망원이라는 것을 쓴 적이 없다. 업무 분장에 반영되든 않든 내 의견을 표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는 말이다.

 


제 학생은 비정규 노동자입니다

 

“선생님은 아르바이트 뭐 뭐 해 봤어요?”

신도시 일반 고등학교에서 수업하다 들었던 질문이다. 이 학생들은 대체로 자신들이 대학에 진학할 것이고 대학생이 되면 그때 아르바이트라는 이름의 비정규 노동을 할 거라고 당연스레 생각하고 있었다. 몇몇 학생들은 이미 해 본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한번은 수업 시간을 할애해 청소년 아르바이트 수칙을 다뤘다. 청소년이든 아니든 나이와 상관없이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보장해야 하는 내용과 청소년이기 때문에 더 보장해야 하는 내용을 모두 다루는 수칙이었다. 특히 임금의 책정이 중요했다. 청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최저 임금보다 낮은 급여를 지급하면 안 된다는 점과 단기 근로 계약을 체결하면서 경력을 이유로 최저 임금보다 낮은 급여를 지급하면 안 된다는 점이 학생들에게 필요한 지식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어떤 학생들은 그런 차별이 흔히 벌어진다고 말했다. 자신과 가족도 그런 처우를 받았고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말에 반박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사장이 「근로기준법」을 피해 가기 위해 어떤 꼼수를 썼는지 경험을 나누었다. 도움을 받아 볼 수 있는 곳으로 학생들에게 아르바이트노동조합(약칭 ‘알바노조’)을 추가로 소개했다. 노동조합이란 것이 왜 노동자에게 중요한지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조금 더 친숙하게 느끼기를 바랐다. 그렇게 노동권을 학생들이 더 즐거워할 방법으로 수업에서 다룰 수 있었다.

그러다 정상성 가득한 신도시와 일반 고등학교를 떠나 구도심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더욱 다양성을 갖춘 학생들과 수업하게 됐다. 이 학생들은 또래 집단에서 비정규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공유했고 노동하는 것을 전혀 이상하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자신의 노동 현장, 급여 등에 대해 쉽게 이야기했고 친구들에게 어느 일자리에 함께 지원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이 학생들 역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로 일하거나 5인 이상 사업장에서 4대 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는 등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거나 사용자가 임금을 의도적으로 줄이는 일들을 겪고 있었다.

학교 행사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수업에 참석하지 않은 날 임장 지도를 위해 한 교실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어느 학생이 임금 계산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 학생이 노동하는 점포의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직접 자기 월 임금을 계산하기를 요구했었다. 학생이 알려준 상황을 기초로 그 학생의 노동 임금을 칠판에 판서하며 계산했다. 같은 점포에서 근무하는 다른 학생이 함께 듣기 시작하고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며 수업 수준으로 규모가 커졌다.

이 학생은 재학 중, 학기 중에도 비정규 노동을 수행하고 있었다. 같은 학급에 또 같은 학년에 비슷한 생활을 하는 학생이 아주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휴식 시간을 할애해서 노동을 하면서도 자신들이 ‘열심히 살지 않고 있다’는 인식을 함께 갖고 있었다. “인문계 애들은 수업 훨씬 열심히 듣고 훨씬 열심히 살죠?” 하고 물을 정도였다. 노동을 학업과 병행하려면 학습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학업 성취도를 높이기 어렵다. 또 휴식을 충분히 취하지 못하고 더욱이 학업 성취 수준이 낮은 상태에서 어려운 교과 내용을 듣다 보면 당연히 수업 시간에 자기도 모르게 잠들게 된다. 학업 성취나 학습 참여도로 다양한 면을 평가하는 사회 안에서 이 학생들은 ‘학생의 본분을 다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게 되고 그 평가를 내면화하기도 한다.

자신이 바람직하지 않은 학생이라는 평가를 내면화한 학생들이 학업 성취도가 높은 학생들과 자신을 비교할 때면 나는 그들에게 ‘너는 다른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정작 그 순간에는 “네가 뭐 어때서? 너도 엄청 열심히 살아. 아르바이트도 하고, 학교도 제때 오고”와 같은 말을 할 뿐이었다. 정말 전하고 싶은 말은 학업 성취도와 삶의 바람직성은 큰 관계가 없고, 일을 하면서도 출석을 제대로 하여 학교에 적을 유지하고 있는 것 자체로 좋은 학생이라는 말이었던 것도 같다.

생각해 보면 노동자가 학업을 함께 수행하는데 이 사회가 그런 학생들을 나쁘게 평가할 필요가 없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하필이면 주간에 고등학교 수업에 출석하니 그런 평가를 많이 받았지, 만약 주간에 노동하고 야간에 학습했다면 분명 완전히 다른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학생들에게 학업을 노동과 병행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주고 학업 성취로 인해 자기 평가가 낮아지지는 않게 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노동을 가르치고 싶은 교사입니다

 

노동에 대한 내 신념을 기준으로 보면 참 아쉬웠던 수업이 있다. 교과협의회에서 결정하여 학기 말 몇 시수에 걸쳐 진행했던 그 프로젝트는 학생들이 관심사에 따라 팀을 이루어 가상 기업을 설립, 하나의 상품을 기획하고 투자를 유치하며 투자를 위한 판단 기준을 직접 수립하는 내용이었다. 프로젝트를 어떻게 진행할지 소개할 때 한 학생이 했던 질문이 깊이 기억에 남았다.

“선생님, 근데 우리 어차피 투자자보다 직원이 될 거잖아요. 이 수업이 가진 의미가 뭐예요?”

그 수업을 원하지 않았던 이유가 딱 그거였다. 당장 노동을 하고 있거나 보호자도 노동자일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에게 노동보다 투자를 가르친다는 사실이 모순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직도 나는 내게 계속 질문한다. ‘그 수업을 더 나은 방향으로 유도할 수는 없었을까?’

시간과 여유가 충분히 주어진다면 근로계약서 작성에서부터 임금 계산, 산업 재해까지 한꺼번에 아우르는 프로젝트도 해 보고 싶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면 나도 노동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충분히 학습해 오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노동 의제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다양한 단체 활동에 참여하고 배워 나가며 학생들을 포함한 타인들과 관련 이야기를 나눌 때 준비되어 있고자 노력한다.

 

 

학교 안 그림자 노동과의 만남

 

교사가 되고 나서 학교가 참 많은 이들의 노동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학교 안에서 보니 다양한 사람들의 노동으로 구성되는 학교는 교사 중심으로 권력 구조가 형성돼 있다. 또 많은 경우 학교에서 일하는 이들의 임용에 교사가 영향을 끼칠 때도 많다.

학교를 관찰하거나 평가하는 관점도 교사 중심적인 관점일 때가 많다. 이러한 구조적인 상황을 교사들은 자신이 학생이던 시절부터 학습하고 체화한다. 나는 이런 것도 일종의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권력관계가 형성돼 있다.

예를 들면 어느 학교에서 나보다 연세가 한참 많으신 어느 주무관 선생님은 내게 매번 아주 깍듯하게 인사해 주셨다. 내가 알던 나이에 의해 형성되는 권력관계와 많이 달라 위화감을 크게 느꼈다. 이제 햇병아리일 뿐인 내가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학부생 시절 교직 과정 강의를 통해 이런 권력 구조에 대해 제대로 배운 기억이 없어 의문이 들었다.

교육행정직 주무관, 사회복무요원 등 여러 노동자들이 때로 교사와 대립하는데, 가장 자주 접하는 갈등은 교사와 교육 공무직 선생님들 간의 갈등이다. 교사들은 자신과 실무사 선생님들의 관계에 대해 실무사들이 교사를 지원하기 위해 학교에서 근무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학교의 거의 모든 일들에 대해 교사에게 결정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급식을 먹으면서 조리 실무사 선생님들과 대립했던 이야기, 시설 주무관 선생님 성격이 자기랑 안 맞는다는 이야기, 행정실 계장님이 지나치게 깐깐하다는 이야기 등을 듣고 나면 마음이 좋지 않다.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개인적 갈등도 있지만 가끔은 이런 이야기가 선을 넘기도 한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다른 노동자를 깔보며 “제깟 것”이라 일컫는다든지 하는 경우가 있다. 함께 노동하는 사람들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노동권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런 갈등을 마주할 때면 왜 노동자끼리 미워해야 하는지 하는 의문이 먼저 들다 보니 아직은 동료 교사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 의견을 소신껏 말하면 내가 교직 경험이 짧고 아는 게 적어 잘 모른다는 평가를 듣기도 하고, 그들을 제대로 설득해 낼 자신이 없기도 하다. 또 소위 빨갱이로 낙인찍힐 것이 두렵기도 하다. 편하지 않은 동료 교사만이 아니라 친밀한 동료 교사와도 그런 관점을 공유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교사나 학교가 교사가 아닌 이들을 차별하며 대하는 것보다 평등하게 대하는 것이 분명히 이 사회에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방법을 찾아나가야만 한다.

 


권위와 존중 사이에서

 

차별을 강화하지 않기 위해 하고 싶었던 것 중 다른 하나가 학생을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서 대하는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청소년을 어떻게 대할지와 연관된 바람이었다. 또 달리 표현하면 나이주의를 탈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교사이기 이전, 학부생이던 시절에는 나이 차이가 얼마가 나든 나와 동등한 지위를 가지는 사람으로 대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모든 청소년에게 경어를 사용했다.

직접 교육 실습을 하러 간 어느 해 봄, 내 바람이 처참하게 무너졌다. 실습교에 가서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할 때만 해도 여지껏 해 왔듯이 반드시 모든 학생에게 경어를 사용하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러나 막상 실습이 시작되자 나는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존댓말을 써도 될까?’

교생으로서 첫인사를 하던 때에는 고민할 것 없이 경어를 써서 인사했었다. 문제는 학생들을 일대일로 대할 때였다. 그 학교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동기 교생들도 학생들을 일대일로 만날 때 경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경어를 쓰지 않는 것이었다.

스스로 한 결심을 저버린 채 4주의 실습 기간을 보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아주 중요하게 여기던 것을 포기함으로써 스스로 만들어 온 나를 잃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습을 마친 후에는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잠시였다. 졸업하고 기간제 교사가 된 첫날에도 비슷한 고민을 했고 같은 선택을 했다.

내가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던 태도를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인 나는 학교 생활이 행복했다. 어느 날 모임 자리에서 한 친구는 당시 온갖 매체에 자주 오르내리던 이슈를 이야기하며 교직이 괜찮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학생이던 시절에는 학교가 너무 싫었는데 교사가 되고 나니 학교가 너무나도 행복한 곳’이라고 했다.

“하긴, 우리 교수님도 행복해 보이더라.”

당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그 친구의 대답을 듣고 오래지 않아 깨달았다. 내가 학교에서 행복해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학생이 아니라 “선생님”이기 때문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권력관계에서 비롯된 편안함을 누리고 있었고, 그 때문인지 학교 안에서 학생들을 대할 때 나와 동등한 존재로 여기겠다는 결심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누군가에게 쉬이 평어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그러니까 그런 언어 표현에 제재가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을 높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면 내가 그들을 평등한 존재로서 존중할지 아닐지는 결국 내게 달린 일이며 나와 그들 사이에 이미 권력관계가 형성돼 있음을 의미한다.

“학생이 교사하고 평등? 그런 건 있을 수 없어.”

경력이 길고 업무 능력도 뛰어나며 매사 솔선수범하여 다른 교사들에게 훌륭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 어느 선생님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당황했다. 우리 사회에서 평등이라는 대전제를 쉬이 무시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 그때 이렇게 말하지 못한 것이 지금 와서 아쉽기만 하다.

‘평등은 하죠. 적절한 위계가 있어야 하는 건 맞지만요.’

나는 그 선생님이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이 학생과 교사의 관계에서 적절한 위계와 적절한 규칙이 작용해야 한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교사가 학생과 형성한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교사가 학생을 어떠한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고, 학생은 그것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때 학생이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고 판단했다면 학생들을 이끌기를 포기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교사는 학생과 갈등할 수밖에 없다. 이때 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적절한 위계와 적절한 규칙이다.

예를 들면 교내에서 학생들 간에 차별적인 언어 폭력 사안이 발생했다고 하자. 이때 교사는 자신이 가진 권위와 규칙을 활용해 그 사안에 반드시 개입해야 한다. 그리고 이때 학생들이 원하는 것과 교육적 목표는 다를 가능성이 높아 교사는 무조건 학생들과 갈등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마찰을 무마하는 데 사용되는 것도 위계다.

나는 처음에는 내가 갖는 권위로 인해 발생하는 학생들과의 갈등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학생들을 인정하는 것이 학생을 나와 평등한 존재로 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일단 학생들의 주장을 먼저 수용하는 태도적 형식만을 취하려고 했지, 학생들과 나 모두 인정할 수 있을 적절한 규칙이라는 내용에는 신경 쓰지 못했다. 내가 평어를 사용하느냐, 경어를 사용하느냐만 두고 고민한 것도 결국에는 보여지는 태도적 형식에만 집중한 결과였다. 물론 형식도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없지만 형식에만 치중한다면 교사로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한다고 하기 어렵다.


 

나에게 남은 과제들

 

학생을 어떻게 대할지, 다른 교사를 어떻게 대할지, 또 다른 학교 구성원들을 어떻게 대할지 고민하는 것은 내가 교사로 살고 있는 한은 지속해야 한다. 교사로서 나는 학교 안에서 나와 학생들이 경험하는 권력관계 속 부당함을 고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교직이 아닌 일을 할 때도 그곳에서 부당한 권위에 저항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만 나와,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생활 지도의 차원이기도 하다. 학생이던 시절 내게 인상 깊었던 일들은 수업 시간이나 강의 시간에 이루어진 일들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시간을 벗어나서 이루어진 일들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지 이야기할 때마다 어떤 분들을 떠올리는데, 수업하는 모습이 아니라 평소 살아가는 태도를 주로 떠올리게 된다.

예를 들어 언제나 웃는 표정으로 인사해 주시고 늘 긍정적인 태도로 수업하시던 선생님이 계시다. 지금 내가 가르치는 교과와 같은 교과를 담당하셨는데 수업 방식은 사실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그분의 그런 태도를 다른 선생님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 그리고 내게 어떻게 보였는지만 기억할 뿐이다. 대학 시절 학교에서 마주치는 모든 청소 노동자에게 인사를 하던 한 선배의 모습도 기억에 깊이 남아 있다.

나는 더 나은, 더 평등한 세상을 행복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 꿈이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이 어떤 장소에서 노동을 하게 되든, 다른 노동자를 평등하게 대하고 다른 노동자에게 연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야지 내 막연한 꿈인, 더 나은 사회가 더 쉬이 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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