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호[기고] 교사의 ‘전문성 정치’ 그리고 ‘심사 위원’이 된 교사| 문호진

202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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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전문성 정치’ 그리고

‘심사 위원’이 된 교사



문호진

mh29@naver.com

《수능 해킹》 저자,

의사



많은 대학 교원들이 공식 석상에서든, 사석에서든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하곤 합니다. “나는 연구자일 뿐, 교육은 본업이 아니다. 연구하기도 바쁜데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 이런 분위기가 대학 내에 횡행하니 전임 교원들은 학부 강의에 할애하는 시간을 가급적 줄이려고 합니다. 이로 인해 학부 저학년의 전공 기초 및 교양 과목들은 시간 강사나 외부 초빙 강사의 손에 맡겨지기 일쑤입니다. 이들이 제공하는 강의의 질이 전임 교원에 비해 일괄적으로 낮거나 높다고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전임 교원들이 주로 담당하는 학부 고학년·대학원 과정과 학부 저학년 과정의 연계성 측면에서 이는 분명 문제가 됩니다.

그 원인을 교원 개개인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습니다. 연구 중심 대학을 추구하고 우선하다 보니 교육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대학 본부의 문제도 분명 적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원이 교육에 전념한다고 해도 개인적·직업적 보람을 느끼는 것 외에 가시적인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고요. 그럼에도 그 기저에는 강의보다는 연구가 더 ‘전문성’이 있고, 대학 교원 본업은 ‘연구(자)’라는 인식이 보편적이라는 것만큼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고등교육 현장에서 교육 업무 전반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현상은 초등교육 현장에서는 돌봄을 두고서,[ref][장인하, 〈교사는 전문직을 꿈꾸는가〉, 《오늘의 교육》, 81(2024년 5·6월)] 참고.[/ref] 중등교육 현장에서는 ‘피드백과 익힘’을 등한시하는 문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초등 교사들의 “돌봄은 교육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구체적 구호로 집약된 것은 아니지만, “문제 풀이는 교육이 아니다”[ref] “강남 교사들의 고민··· “문제풀이 기계를 만드는 것 같아요””, 〈경향신문〉, 2023년 10월 10일.[/ref]라는 분위기가, 중등교육 현장과 학계에 존재합니다. 이런 분위기를 풀어서 정리하면, ‘수업 혁신을 통해 문제 풀이 대신 발표와 토론, 탐구 과제나 융합 활동 등을 강화해야 한다’, ‘고교 교육과정을 자율화하고 다양한 과목들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이 원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충분한 자원이 투입되고 교사가 역량을 발휘해 학생 개개인의 수준과 특성에 맞게 지도할 수 있다면 말이지요. 그러나 학교의 현실에 관해 취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만난 여러 학생과 교사들의 목소리를 접하면서 이런 제안들이 가져올 변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문성에 관한 교사와 학생의 동상이몽


“교실에서 발표와 토론을 진행한 뒤에 교사에게 구체적인 지도를 받아 본 적이 없다. 네이버 블로그나 나무위키를 출처로 제시하는 학생이 많은데도, 그래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는 교사가 드물다.”(고등학생 A, 경기권 일반고 재학)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특목고에 진학했는데, 그냥 시험 범위가 많은데 활동도 많이 해야 하는 것 말고는 일반 학교랑 다를 게 없었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발전을 돕는 대신, 학생들이 힘들게 수행해 온 과제를 품평하는 심사 위원의 역할만 수행했다.”(N수생 B, 경기도 특목고 졸업) 이처럼 학생들의 불만의 목소리를 적지 않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 상황은 교사들도 인지하고 있고, “교사의 우선적인 역할은 ‘학생 지도’다. 연구와 관리도 교사의 역할에 속하긴 하지만, 이는 학생 지도를 잘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학생 지도보다는 연구, 그것도 관리와 평가를 위한 연구가 현장에서 우선시되는 것 같다. 정작 교사들이 교실에서의 구체적인 학습 지도는 뒷전으로 미뤄 두고 소소한 발표에 대한 심사, 교내 대회의 개최자, 세특을 적어 주는 검사자 등 생산 라인 관리직 같은 역할을 선호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고교 교사 C, 역사과)라는 지적으로 집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학생이 수업 내용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가르침과 배움(學)만큼이나 이를 혼자서 고민해 보고 익히(習)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비판받는 ‘문제 풀이’ 역시, 기본적으로는 익힘의 중요한 과정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 ‘익힘과 피드백’은 ‘돌봄’과 같이 매우 수고스럽고, 잘 수행한다고 해서 ‘전문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과정입니다. 자연스레 교사들은 이러한 역할과 거리를 두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는 사교육 업체의 학습지 교사와 학원의 질문/답변 전담 조교들의 처우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개별 학습 지도와 피드백을 도맡으며 학생들의 학습 과정을 떠받치는 노동자들이지만, ‘교육자’로서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과 최저 임금조차도 받지 못하는 노동 환경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습니다.[ref] “학습지 교사들은 시급 ‘6850원’ 받고 일합니다, 왜냐면”, 〈오마이뉴스〉, 2023년 6월 30일. 사교육 업체들의 출제자와 조교 등의 노동 환경에 대해서는 《수능 해킹》 4부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음.[/ref]

배운 것을 이후 교육과정이나 본인의 진로로 확장시키는 탐구 활동이 잘 수행되기 위해서는 중·고교 교과 내용을 충실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지만, 그에 대한 지도 역시 구시대적 교육으로 취급되기 일쑤입니다. 때문에 글쓰기에 대해 학생들에게 구체적 지도를 하는 것보다는 학생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간신히) 제출한 과제/발표를 심사하고 평가하는 일이, 교과서 예제 문제를 풀어 주는 것보다는 (교사도, 학생도 실제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학술 논문을 찾아보고 발표하도록 하는 일이, 고등학교 1학년 수학 수업에서 이차함수와 이차방정식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보다 ‘인공 지능 수학’ 수업을 하며 인공 지능과 관련된 수학사 주제를 선정하여 진로와 연계한 활동을 진행하는 일이 보다 전문성이 있다고 여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학생이 아는 것을 이후 교육과정이나 본인의 진로로 확장시키는 탐구 활동과 연결해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중고교의 공통 교과목을 충실히 배우고 익힘의 과정을 통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방법 중 하나인 문제 풀이보다 논문 발표가, 하위 과정의 내용보다는 보다 깊이가 있고 세분화된 상위 과정의 내용을 지도하는 것이 ‘전문성이 있다’고 취급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기초적 교과목에 대한 지도 역시 구시대적 교육으로 취급되기 일쑤입니다.

과거와 달리 교과 수업에 더해 발표와 토론, 비교과 활동까지 수행해야 하니 교육과정의 분량은 줄어야 하지만 교과목은 날이 갈수록 더 세분화되고 있습니다. 자기 분과에 속한 과목의 수를 최대한 늘리고자 하는 분과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탓입니다. 이런 변화는 ‘학습 부담 완화’와 ‘학생의 선택권 보장’이라는 명분하에 도입되었다고 하지만, 실제 학생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요.

“관련 없는 교과 선생님이 논술 과목을 맡게 됐어요. 첫 수업에서 그 선생님의 첫마디가, ‘자신도 이 과목을 처음 맡아 본다’였어요. 당연히 우리는 그 시간에 자습만 했죠.”(고등학생 D, 강원도 일반고 재학) “동아리나 탐구 활동이 잘 돼 있는 경우도 선생님들 개개인이 노력한 결과일 뿐이고, 인수인계가 안 돼요. 원래 담당했던 선생님이 떠나면 학교에서 시켜서 끌려 온 선생님이랑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죠. 학교의 어떤 동아리는 기간제 선생님이 지도 교사였는데, 그 사실을 몰랐던 학생들이 졸업하기도 전에 선생님의 계약이 끝나 동아리가 붕 떠 버렸어요. 학교가 트렌드에 맞춘다고 급하게 AI 동아리를 만들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초임 선생님이 지도 교사가 되니 학생은 동아리 시간에 할 일이 없게 되는 경우도 있었어요. 이건 일부고, 비슷한 일이 수도 없이 많아요.”(고등학생 E, 서울 일반고 재학) 이 학생들의 증언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실제 결과는 붕괴에 가깝습니다.

물론 중등교육 역시 앞서 설명한 고등교육과 같은 구조적 문제를 공유하고 있을 것입니다. 교사의 업무가 보다 세분화되고 학부모들의 각종 요구가 부가되는 상황에서 교사는 구체적인 교육 및 수업 준비를 위한 자원을 할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교사들 역시 업무 분장에 따라 떠맡게 된 각종 수업 외 업무들을 수행하는 일만으로도 벅차다고들 합니다. 수업과 수업 준비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문제가 자꾸 어려워지고, 학생들의 요구 사항이 세분화되니 거기 대응하기가 어렵다. 많은 교사들이 관리직이나 상담, 진로 교사 등으로 빠지며 교과 수업과는 거리를 두려고 한다. 그러지 못하는 교사들은 그만두기도 한다.”(시민사회 활동가 D, 전직 수학 교사) 이러한 토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과도하게 높아진 문항 수준과 그에 보다 잘 대응하는 사교육과 비교당하는 교사들의 고충도 언급해야만 할 것입니다. 교과 수업에 충실하려 해도 ‘학원에서 배운 것과 다르다’ 같은 학생들의 클레임에 직면하는 등 교사가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환경의 문제가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학교 현장의 변화가 이러한 악조건들을 악화시키면 더 악화시켰지, 개선시킬 수는 없다는 점만큼은 분명합니다. 무엇보다도 교육과정과 활동의 내용이 세분화되는 흐름과, 구체적 지도를 하는 대신 심사 위원 역할 등 ‘전문성이 있다고 간주되는’ 행위를 선호하는 풍조는 공교육 불신과 사교육 고도화의 원인이 되어 교사가 전문성을 더더욱 인정받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측면에서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없습니다.



파편화된 교육과정의 문제점


앞서 고등교육에 대한 설명처럼, 중고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 파편화되어 있는 문제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전 학년과 이후 학년에서 배우는 내용이, 그리고 중학교 수업과 고등학교 수업, 대학 학부 수업이 서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입니다. 고등학교에서 진로를 염두에 두고 세부적으로 나눠 놓은 과목들을 선택한 후 그 진로에 맞춰 탐구 과정을 수행해 봐야 모두 헛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연 계열의 어느 학과에 진학하든 신입생은 공통적으로 미적분학과 선형대수, 일반 물리/화학/생물학을 가장 먼저 배우게 되어 있습니다. 기초도 배우지 않고 진로교육을 수행하니 정작 대학에서 처음 배우게 되는 기초 과목들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것이 교육의 현실입니다. 마치 신병 훈련소 조교가 퇴소 후 자대의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처럼, 자원이 한정된 중고교 현장에서 현업의 상황을 모르고 겉핥듯 이루어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때문에 실제 활동의 내용은 현업에서 이루어지는 일과는 동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고, “진로교육 시간은 밀린 다른 과목 공부를 보충하거나, 쉬는 시간으로 여겨진다”(고등학생 B, 서울 일반고 재학)는 말처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반면 현업에 종사하는 부모를 두었거나 친척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학생들은 ‘실질적’ 활동을 수행할 수 있어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는 “지금의 교육 환경이 학생들을 문제 풀이 기계로 만들고 있다”는 식의 인상 비평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냅니다만, “비판받고 있는 ‘문제 풀이’가 대부분의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록 목적의 껍데기뿐인 탐구 활동에 비해 정말 더 문제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공교육 현장에 한정해서 말하면, 배운 것을 확인하고 능숙하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익힘마저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상급 학교와 하급 학교, 아래 학년과 위 학년,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에서 배우는 내용의 연계성이 무너져 있는 상황에서(기초도 없이 발표나 토론, 탐구 활동을 진행하느라) 배운 것을 제때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익힘을 수행하기 어려운 게 오늘날 학교 현장의 모습입니다. 이로 인해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공부’하는 선행 학습을 하거나, 입시가 코앞에 닥치니 학원 수업을 들으며 제대로 배우지 못한 중학교나 고등학교 1, 2학년 과정을 ‘벼락치기’ 하는 실정입니다. 때문에 (원인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학생들은 학교에서는 할 수 없는 ‘익힘’을 위해 사교육으로 내몰리는 형편이고, 지금과 같은 ‘혁신’의 흐름이 계속된다면 이러한 흐름은 더욱 가속화될 것입니다.



학생 편익이 곧 전문직 정체성


앞서 살펴본 것처럼 공교육 불신과 사교육 고도화에 대한 대안으로 학생의 실질적 부담 완화와 공공성 강화 대신, ‘수업 혁신을 통한 창의·융합 활동 강화’나 ‘다양한 진로 선택 과목 도입’ 등을 제시하는 분위기가 일각에 존재합니다. 이러한 일부 교사 및 학계의 ‘전문직 정체성 강화’ 전략과 그러한 의도가 각종 교육 정책 논의에서 숨겨진 의제로 작용하는 상황이 한국 교육이 처해 있는 곤경을 초래하는 데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의사가 환자의 유익을 중심에 두고 자신의 주장을 할 때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교사 역시 학생의 편익, 학생의 성장과 발달을 중심에 놓고 자신의 전문성을 주장해야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점에서 지금 교사 집단의 ‘전문성 정치’와 그로 인해 벌어지는 현장에서의 각종 변화가 지지받지도, 긍정적 결과로 이어지지도 못한 데는 그 과정에서 ‘실질적인 학생의 편익’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났던 한 학생의 말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려 합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선생님들은 보통 자신이 제시한 평가 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기기 바빴을 뿐, 무수한 발표와 토론을 하고 시험을 치르는 동안 그 누구에게도 답안과 발표 내용에서 무엇을 더 보완하고 발전시키면 좋을지에 대한 구체적 조언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연속성 없이 점수를 더 받기 위한 일회성 공부, 발표 준비만을 계속하다 보니 의미 있는 활동을 찾아 수행하려 노력해도 성취감을 얻기 어려웠습니다. 선생님을 가르치는 사람보다는 평가자로 인식하니, 교과목을 어려워하던 친구들은 학교 대신 사교육의 도움을 받으려고 합니다. 성장의 기회가 없는 허울뿐인 선택형 교육과정이나, 학생이 배제된 채로 교사의 이상적인 교육론에 따라 설계된 수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대학생 G, 전국 단위 자사고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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