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청소년 참정권 시대, 학교를 말하다
18세 선거권,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미지
yoonk0904@naver.com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준) 활동가.
18세 선거권 통과의 의미
2019년 12월 27일, 선거권 연령이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하향 조정되었다. 이제 만 18세 청소년들도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시작은 다가오는 4월 15일 총선이다. 이번 선거권 연령 하향으로 약 53만 2,000명이 4월 총선에서 새롭게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중 고등학생 유권자는 약 14만 명으로 추산된다.❶
❶ “4월 총선 첫 투표 ‘18살 이상 학생 유권자’ 14만여 명”, 〈한겨레〉, 2020년 1월 8일.
새로운 유권자의 전체 숫자에 비하면 고등학생 유권자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이는 만 18세가 한국식 나이 20세에서 19세에 걸쳐져 있기 때문이다. 선거일이 4월이기 때문에 만 18세 중에는 고등학생보다는 한국식 나이 20세로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더 많다. 거기에 한국식 나이 19세이지만 1~2월 출생자인 이른바 ‘빠른 생일’인 사람들도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한 상황이다(생일이 3월 이전이면 일찍 입학하는 제도가 2008년 무렵 바뀌었기 때문에 다음 선거 즈음부터는 재학 중인 비율이 좀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고등학생 유권자’ 대부분은 고3 학생들 중 생일이 ‘3월에서 4월 총선 선거일 사이’인 사람들에 국한된다. 고3 교실 한 반이 30명 안팎이라고 치면 많아야 5~6명, 적게는 2~3명만이 새롭게 선거권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비록 얼마 되지 않는 수라도 만 18세로의 선거권 연령 하향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선거권을 가지게 된 청소년들의 존재는 학생/10대/청소년은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의 벽에 작지만 치명적인 균열을 낼 것이다. 선거권 연령 하향을 반대한 세력의 주된 주장은 ‘고등학생들이 투표·정치를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급기야는 자유한국당 등은 만 18세가 되기 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도록 학제 개편부터 해야 선거권 연령 하향이 가능하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선거권 연령 하향 문제에 대해 다른 무엇보다도 ‘학교’라는 공간과 ‘학생’이라는 신분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하는 이들의 의도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정치를 배제함으로써 청소년들이 정치에 대해 접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차단하려는 것이다. 그동안 청소년들은 ‘순수’와 ‘보호’라는 미명 아래 정치로부터 배제되어 왔다. 사회는 정치를 ‘더러운 것’, ‘위험한 것’ 취급하며 청소년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입을 틀어막아 왔다. 그렇게 청소년을 정치에서 배제할수록 청소년은 정치에 대해 무지해지고, 정치적으로 취약한 상태가 된다.
때문에 ‘학교는 비정치적인 공간이어야 한다’는 주장이야말로 무엇보다 정치적인 주장이다. 수많은 학생들을 무한 입시 경쟁 교육으로 내몰고, 불확실한 미래를 볼모로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게 만드는,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속에 학생들의 의견 따위는 전혀 듣지 않는 지금의 학교는 이미 지극히 정치적인 공간이다. 만 18세 선거권은, 그리고 청소년 참정권은 학생들이 스스로의 권리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정치적 행동에 나설 용기를 부여함으로써 반反학생인권적인 기존 학교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낼 지렛대이다.
아직 그대로인 악법들
이번 선거권 연령 하향으로 청소년들은 기존에 누리지 못하던 참정권들을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만 18세 선거권 연령 하향은 분명 작지 않은 성과지만 아직 남아 있는 과제들이 많다. 이번에 개정된 〈공직선거법〉과는 별개로 정치 참여와 관련한 여러 법들이 별도의 연령 제한 기준을 두고 있다. 주민 투표와 국민 투표의 경우 연령 제한은 여전히 만 19세에 머물러 있으며, 지자체의 조례 주민 발의 등에 관한 연령 제한 또한 마찬가지이다.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 선거에서 피선거권 연령 제한 기준도 만 25세이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선거운동과 정당 가입 연령 제한이다. 현행 정치 관련 법들은 만 18세 미만의 선거운동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권이 없는 사람의 정당 가입을 그 자체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상 만 18세 미만의 선거권이 없는 사람은 선거운동(법적으로 ‘선거운동’은 당선되거나 당선되지 않게 하기 위해 하는 행위를 포괄적으로 가리키며, 따라서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비판하거나 누구를 찍으라고 말하는 행위 등이 모두 선거운동이다) 자체가 불법이다. 가령 같은 고3 교실 학생들이 다가오는 총선에서 누구를 지지하는지 대화를 나눌 때, 만 18세 학생의 지지 및 반대 발언은 합법인 반면, 만 17세 학생의 어느 정당을 찍으라는 발언은 엄밀히 말해 불법이다. 같은 학교, 같은 학년, 같은 교실에서도 생일이 지났는지 여부에 따라 학생들의 평범한 대화가 합법과 불법으로 구분되어 규정되는 것이다.
또한 고등학교 학생회나 동아리 등에서 후보자들을 초청하여 정책 요구를 한다거나 토론회를 연다거나 하는 것도 불법이다. 선거권이 있는 만 18세 청소년들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구성원의 과반이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단체의 경우엔 선거운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투표일 당일 만 18세가 되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만 18세 생일이 지나기 전까지는 일체의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이처럼 유권자들의 선거운동을 연령을 기준으로 제한하여 불법으로 규정하는 선거법은 전 세계적으로 극히 드문 경우이다.
〈정당법〉 또한 마찬가지이다. 별도의 법률상 정당 가입에 관한 연령 기준이 없는 다른 대부분의 국가들과는 다르게, 한국의 〈정당법〉은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는 사람만이 정당에 가입할 수 있게 제한하고 있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만 18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정당에 가입할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기본 단위가 바로 정당이다. 헌법을 통해 규정되고 그 자유를 보장받는 정당은, 뜻을 함께하는 국민들의 참여를 통해 개개인의 정치적 신념을 정책의 형태로 구체화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현실적인 권력을 가질 수 있다. 몇 년에 한 번 돌아오는 선거에 비해 정당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국민들이 보다 일상적으로, 긴밀하게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선거운동 금지와 마찬가지로 청소년들의 정당 활동 자체를 법으로 가로막고 있다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인 참정권을,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중대한 문제이다.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온전히 보장받아야 할 참정권이 고작 나이를 이유로 이중 삼중으로 제한받고 있다. 특정 나이를 기준으로 하여 청소년들의 선거운동과 정당 활동 자체를 금지하겠다는 것은 결국 청소년들을 온전한 국민으로, 동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학교라는 이유로 금지해선 안 돼
선거권 연령을 낮추는 데 반대한 세력의 주된 우려(를 가장한 정치 혐오 조장)는 ‘학교가 정치판이 된다’는 것이다. 만 18세 선거권 연령 하향이 통과되고 나자 이들은 어김없이 ‘학교 안팎이 선거운동으로 난장판이 될 것이다’ 운운하며 자극적인 말들을 쏟아 내고 있다. 이러한 세간의 편견이나 차별로 인해 새롭게 유권자가 된 이들의 참정권이 침해받거나 위축되지 않도록,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고 행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는 교육부와 선관위는 오히려 반대 세력의 주장에 동조하여 선거법 보완을 거론하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학생이라는 이유로, 학교라는 공간으로 인해 정치에서 배제되는 것은 참정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또한 애초에 일각의 우려와 같이 후보자들이 학교에 난입해 선거운동을 벌인다거나 하는 상황은 현실적으로 벌어질 수가 없다. 이미 후보자가 교무실 등을 돌아다니며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대법원 판례가 나온 바 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교실도 동일하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또한 기본적으로 학교 자체가 학교 관리자의 허가 없이는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되는 공간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학교 운동장 등 공개된 장소에서 연설하는 행위 등은 선거법 위반은 아니지만, 학교 관리자의 의사에 반하여 하는 것까지 〈공직선거법〉에서 보장하는 것은 아님’이라고 밝혔다.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해도 아무 시설이나 건물 등에 허가 없이 무단 침입을 해도 되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이미 현행법상으로도 불가능한 가상의 사례를 두고 호들갑을 떠며 ‘학교 정치판’을 말하는 것은 저급한 선동을 위한 가짜 뉴스에 지나지 않는다.
청소년 참정권에 부정적인 정당이나 단체 등은 심지어 학교 주변에서의 후보자들의 선거운동,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선거운동 또한 일체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또한 청소년들의 참정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반反민주주의적 주장이다. 다른 모든 유권자들과 마찬가지로 청소년들 또한 자신을 대변할 후보자들과 만나고 그들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교문 앞이나 통학로 및 학교 인근에서의 선거운동은 허용되어야 마땅하며 현재도 금지 조항이 따로 있지 않다. 선거운동의 소음으로 인해 면학 분위기에 방해가 될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또한 일반적인 주택가 등에서의 소음 규제 수준으로 족하지, 학교라서 문제라고 할 이유는 없다.
법을 개정해서 학교라는 특정 공간 안팎의 선거운동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청소년들을 정치에서 배제하겠다는 뻔한 의도를 갖고 있다. 결국 이들이 바라는 것은 청소년들이 정치와 선거에 대한 정보로부터 일체 배제당한 채 정치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잃고 투표장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정치는 청소년들에게 해롭지 않다. 오히려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박탈하고 관련된 정보로부터 배제하는 것이야말로 청소년들에게 가장 해롭고 위험하다.
학교 안에서 정치적 권리 신장하는 계기로
선거권은 단지 투표일에 투표용지 1장 주어지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자신의 당연한 권리에 대해 알고, 정치적 문제에 대해 함께 얘기하고 토론하고, 자신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 직접 정치적 행동에 나서는 것. 이러한 과정 모두가 정치이자, 선거의 일부이다. 마땅히 학교는 보다 정치적인 공간, 청소년들이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알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학교들은 과거 일제 강점기와 군사 독재 시대에 만들어진, 학생들의 정치적 권리와 행동을 규제하고 처벌하는 시대착오적인 학교생활규정, 선도 규정 등을 버젓이 존속시키고 있다. 정당 및 시민사회단체 가입을 금지하는 학칙, 학내 모임이나 동아리 조직을 금지하는 학칙, 여러 학생들이 함께 ‘불순/불온 행위’를 하는 것을 처벌하는 학칙, 정치 관여를 처벌하는 학칙 등이다. 이처럼 존재 자체가 불법이거나 심지어 위헌적인, 학생의 정치적 행동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학칙들이 대부분의 학교들에 여전히 남아 있다.
‘순수하게’ 사회와 정치로부터 고립된 학교라는 공간은 민주화라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변화하지 못하고 과거의 악폐습만을 고이 간직한 채 썩어 가고 있다. 학교는 바뀌어야 한다. 정치적 주체로서의 청소년이 두려워 감시와 통제, 처벌에만 급급하던 구시대의 낡은 학칙에 안녕을 고할 때가 되었다. 전국 모든 학교들의 학칙을 전수 조사하여 학생들의 정치적 권리를 침해하는 모든 학칙들을 폐지해야 한다. 만 18세 선거권 시대, 학생들에겐 더 많은 정치적 토론, 더 많은 정치적 행동들이 보장되어야 한다.
구시대적 학칙들을 폐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보다 적극적으로 학생들의 정치적 권리를 학교 안에서 보장할 필요가 있다. 기만적인 ‘학교의 주인은 학생’ 운운은 그만두고 학교 운영 과정 전반에 학생이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들도 교사나 학부모와 동등한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은 기본적인 조치일 것이다. 또한 학생회의 지위와 권한 등을 법제화하고 학생 자치를 보장하여 학교의 마음대로 학생회의 활동을 통제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모든 학생들이 학교의 일체의 간섭이나 통제 없이 학교 내외에서 자율적으로 동아리 및 단체를 만들고 활동할 수 있어야 하며, 표현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 등도 보장받아야 한다.
청소년을 교육의 대상으로 보는 편견
만 18세 선거권 연령 하향이 통과되고 나서 쏟아져 나온 목소리들 중 한 부류는 ‘학생들에게 정치교육, 선거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는 이러한 우려 속에는 학생·청소년들의 판단력에 대한 의심과 그렇기에 ‘교육’해야 한다는 편견이 은은하게 깔려 있다. 아마 이런 말은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하는 말이 나이 어린 존재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들 것이다. 이들은 실제로도 ‘교육적인’ 관점에서 좋은 의도로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새롭게 선거권을 갖게 되는 만 19세 이상의 유권자들에게 선거교육을 따로 한 적이 있는가? 기존에 선거권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 하나 학교에서 그러한 ‘특별한’ 교육에 참여해 본 적이 있는가? 선거권 연령이 고작 한 살 낮춰졌다고, 그리고 그중 일부 고등학생이 포함되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의 뭔가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만 18세 유권자들의 능력을 의심하고,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차별적인 태도이다. 언제까지 학생/청소년들을 부족한 존재, 미숙한 존재, 뭘 잘 몰라서 교육해야만 하는 존재로 취급할 것인가.
청소년들 또한 현재를 살아가는, 다른 비청소년들과 동등한 이 나라의 국민이고 시민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후보자를 선택하든 ‘틀린’ 선택은 있을 수 없다. 개개인의 다양한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모든 후보자를 어떤 이유에서든 선택할 수 있고, 그 결정을 존중받는 것,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가치가 아니던가. 총선을 전후하여 분명 만 18세 유권자들의 정치적 성향과 선택을 놓고 모두가 왈가왈부할 것이다. ‘어린 청소년들도 충분히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역시 어린애들은 뭘 잘 모른다’ 이러한 상반되어 보이는 두 평가 모두 결국 청소년의 능력을 멋대로 평가하고 재단하는, 청소년 차별적 인식의 동전의 양면일 뿐이다.
물론 선거교육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선거에 대한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들이나 실질적인 투표 방법에 대한 교육은 당연히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만 18세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전 국민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선거교육은 만 18세 선거권이 통과되어서 필요해진 것이 아니다. 원래부터 있으면 좋았고 필요했던 것이다. 선거권 연령이 하향되자 뒤늦게 이야기되는 것이 오히려 문제인 것이다. 정치교육?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두고 교육과정 어디에 편성할 것인지, 어떤 형태로 누가 가르칠 것인지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의 삶이, 청소년의 삶이 곧 정치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만 18세 선거권 연령 하향을 계기로 보다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당연한 정치적 권리를 알고 행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나의 현재, 내가 생활하는 공간에서 자유로이 정치적인 토론을 하고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고 마땅한 청소년의 권리로 보장되기를 바란다. 모든 청소년들의 참정권이 완전히 보장되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가, 학교가, 가정이 보다 더 정치적인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청소년에게 정치를 허하라.
기획/ 청소년 참정권 시대, 학교를 말하다
18세 선거권,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미지
yoonk0904@naver.com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준) 활동가.
18세 선거권 통과의 의미
2019년 12월 27일, 선거권 연령이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하향 조정되었다. 이제 만 18세 청소년들도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시작은 다가오는 4월 15일 총선이다. 이번 선거권 연령 하향으로 약 53만 2,000명이 4월 총선에서 새롭게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중 고등학생 유권자는 약 14만 명으로 추산된다.❶
❶ “4월 총선 첫 투표 ‘18살 이상 학생 유권자’ 14만여 명”, 〈한겨레〉, 2020년 1월 8일.
새로운 유권자의 전체 숫자에 비하면 고등학생 유권자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이는 만 18세가 한국식 나이 20세에서 19세에 걸쳐져 있기 때문이다. 선거일이 4월이기 때문에 만 18세 중에는 고등학생보다는 한국식 나이 20세로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더 많다. 거기에 한국식 나이 19세이지만 1~2월 출생자인 이른바 ‘빠른 생일’인 사람들도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한 상황이다(생일이 3월 이전이면 일찍 입학하는 제도가 2008년 무렵 바뀌었기 때문에 다음 선거 즈음부터는 재학 중인 비율이 좀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고등학생 유권자’ 대부분은 고3 학생들 중 생일이 ‘3월에서 4월 총선 선거일 사이’인 사람들에 국한된다. 고3 교실 한 반이 30명 안팎이라고 치면 많아야 5~6명, 적게는 2~3명만이 새롭게 선거권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비록 얼마 되지 않는 수라도 만 18세로의 선거권 연령 하향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선거권을 가지게 된 청소년들의 존재는 학생/10대/청소년은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의 벽에 작지만 치명적인 균열을 낼 것이다. 선거권 연령 하향을 반대한 세력의 주된 주장은 ‘고등학생들이 투표·정치를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급기야는 자유한국당 등은 만 18세가 되기 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도록 학제 개편부터 해야 선거권 연령 하향이 가능하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선거권 연령 하향 문제에 대해 다른 무엇보다도 ‘학교’라는 공간과 ‘학생’이라는 신분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하는 이들의 의도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정치를 배제함으로써 청소년들이 정치에 대해 접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차단하려는 것이다. 그동안 청소년들은 ‘순수’와 ‘보호’라는 미명 아래 정치로부터 배제되어 왔다. 사회는 정치를 ‘더러운 것’, ‘위험한 것’ 취급하며 청소년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입을 틀어막아 왔다. 그렇게 청소년을 정치에서 배제할수록 청소년은 정치에 대해 무지해지고, 정치적으로 취약한 상태가 된다.
때문에 ‘학교는 비정치적인 공간이어야 한다’는 주장이야말로 무엇보다 정치적인 주장이다. 수많은 학생들을 무한 입시 경쟁 교육으로 내몰고, 불확실한 미래를 볼모로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게 만드는,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속에 학생들의 의견 따위는 전혀 듣지 않는 지금의 학교는 이미 지극히 정치적인 공간이다. 만 18세 선거권은, 그리고 청소년 참정권은 학생들이 스스로의 권리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정치적 행동에 나설 용기를 부여함으로써 반反학생인권적인 기존 학교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낼 지렛대이다.
아직 그대로인 악법들
이번 선거권 연령 하향으로 청소년들은 기존에 누리지 못하던 참정권들을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만 18세 선거권 연령 하향은 분명 작지 않은 성과지만 아직 남아 있는 과제들이 많다. 이번에 개정된 〈공직선거법〉과는 별개로 정치 참여와 관련한 여러 법들이 별도의 연령 제한 기준을 두고 있다. 주민 투표와 국민 투표의 경우 연령 제한은 여전히 만 19세에 머물러 있으며, 지자체의 조례 주민 발의 등에 관한 연령 제한 또한 마찬가지이다.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 선거에서 피선거권 연령 제한 기준도 만 25세이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선거운동과 정당 가입 연령 제한이다. 현행 정치 관련 법들은 만 18세 미만의 선거운동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권이 없는 사람의 정당 가입을 그 자체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상 만 18세 미만의 선거권이 없는 사람은 선거운동(법적으로 ‘선거운동’은 당선되거나 당선되지 않게 하기 위해 하는 행위를 포괄적으로 가리키며, 따라서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비판하거나 누구를 찍으라고 말하는 행위 등이 모두 선거운동이다) 자체가 불법이다. 가령 같은 고3 교실 학생들이 다가오는 총선에서 누구를 지지하는지 대화를 나눌 때, 만 18세 학생의 지지 및 반대 발언은 합법인 반면, 만 17세 학생의 어느 정당을 찍으라는 발언은 엄밀히 말해 불법이다. 같은 학교, 같은 학년, 같은 교실에서도 생일이 지났는지 여부에 따라 학생들의 평범한 대화가 합법과 불법으로 구분되어 규정되는 것이다.
또한 고등학교 학생회나 동아리 등에서 후보자들을 초청하여 정책 요구를 한다거나 토론회를 연다거나 하는 것도 불법이다. 선거권이 있는 만 18세 청소년들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구성원의 과반이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단체의 경우엔 선거운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투표일 당일 만 18세가 되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만 18세 생일이 지나기 전까지는 일체의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이처럼 유권자들의 선거운동을 연령을 기준으로 제한하여 불법으로 규정하는 선거법은 전 세계적으로 극히 드문 경우이다.
〈정당법〉 또한 마찬가지이다. 별도의 법률상 정당 가입에 관한 연령 기준이 없는 다른 대부분의 국가들과는 다르게, 한국의 〈정당법〉은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는 사람만이 정당에 가입할 수 있게 제한하고 있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만 18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정당에 가입할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기본 단위가 바로 정당이다. 헌법을 통해 규정되고 그 자유를 보장받는 정당은, 뜻을 함께하는 국민들의 참여를 통해 개개인의 정치적 신념을 정책의 형태로 구체화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현실적인 권력을 가질 수 있다. 몇 년에 한 번 돌아오는 선거에 비해 정당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국민들이 보다 일상적으로, 긴밀하게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선거운동 금지와 마찬가지로 청소년들의 정당 활동 자체를 법으로 가로막고 있다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인 참정권을,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중대한 문제이다.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온전히 보장받아야 할 참정권이 고작 나이를 이유로 이중 삼중으로 제한받고 있다. 특정 나이를 기준으로 하여 청소년들의 선거운동과 정당 활동 자체를 금지하겠다는 것은 결국 청소년들을 온전한 국민으로, 동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학교라는 이유로 금지해선 안 돼
선거권 연령을 낮추는 데 반대한 세력의 주된 우려(를 가장한 정치 혐오 조장)는 ‘학교가 정치판이 된다’는 것이다. 만 18세 선거권 연령 하향이 통과되고 나자 이들은 어김없이 ‘학교 안팎이 선거운동으로 난장판이 될 것이다’ 운운하며 자극적인 말들을 쏟아 내고 있다. 이러한 세간의 편견이나 차별로 인해 새롭게 유권자가 된 이들의 참정권이 침해받거나 위축되지 않도록,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고 행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는 교육부와 선관위는 오히려 반대 세력의 주장에 동조하여 선거법 보완을 거론하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학생이라는 이유로, 학교라는 공간으로 인해 정치에서 배제되는 것은 참정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또한 애초에 일각의 우려와 같이 후보자들이 학교에 난입해 선거운동을 벌인다거나 하는 상황은 현실적으로 벌어질 수가 없다. 이미 후보자가 교무실 등을 돌아다니며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대법원 판례가 나온 바 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교실도 동일하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또한 기본적으로 학교 자체가 학교 관리자의 허가 없이는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되는 공간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학교 운동장 등 공개된 장소에서 연설하는 행위 등은 선거법 위반은 아니지만, 학교 관리자의 의사에 반하여 하는 것까지 〈공직선거법〉에서 보장하는 것은 아님’이라고 밝혔다.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해도 아무 시설이나 건물 등에 허가 없이 무단 침입을 해도 되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이미 현행법상으로도 불가능한 가상의 사례를 두고 호들갑을 떠며 ‘학교 정치판’을 말하는 것은 저급한 선동을 위한 가짜 뉴스에 지나지 않는다.
청소년 참정권에 부정적인 정당이나 단체 등은 심지어 학교 주변에서의 후보자들의 선거운동,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선거운동 또한 일체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또한 청소년들의 참정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반反민주주의적 주장이다. 다른 모든 유권자들과 마찬가지로 청소년들 또한 자신을 대변할 후보자들과 만나고 그들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교문 앞이나 통학로 및 학교 인근에서의 선거운동은 허용되어야 마땅하며 현재도 금지 조항이 따로 있지 않다. 선거운동의 소음으로 인해 면학 분위기에 방해가 될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또한 일반적인 주택가 등에서의 소음 규제 수준으로 족하지, 학교라서 문제라고 할 이유는 없다.
법을 개정해서 학교라는 특정 공간 안팎의 선거운동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청소년들을 정치에서 배제하겠다는 뻔한 의도를 갖고 있다. 결국 이들이 바라는 것은 청소년들이 정치와 선거에 대한 정보로부터 일체 배제당한 채 정치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잃고 투표장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정치는 청소년들에게 해롭지 않다. 오히려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박탈하고 관련된 정보로부터 배제하는 것이야말로 청소년들에게 가장 해롭고 위험하다.
구시대적 학칙들을 폐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보다 적극적으로 학생들의 정치적 권리를 학교 안에서 보장할 필요가 있다. 기만적인 ‘학교의 주인은 학생’ 운운은 그만두고 학교 운영 과정 전반에 학생이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들도 교사나 학부모와 동등한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은 기본적인 조치일 것이다. 또한 학생회의 지위와 권한 등을 법제화하고 학생 자치를 보장하여 학교의 마음대로 학생회의 활동을 통제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모든 학생들이 학교의 일체의 간섭이나 통제 없이 학교 내외에서 자율적으로 동아리 및 단체를 만들고 활동할 수 있어야 하며, 표현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 등도 보장받아야 한다.
청소년을 교육의 대상으로 보는 편견
만 18세 선거권 연령 하향이 통과되고 나서 쏟아져 나온 목소리들 중 한 부류는 ‘학생들에게 정치교육, 선거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는 이러한 우려 속에는 학생·청소년들의 판단력에 대한 의심과 그렇기에 ‘교육’해야 한다는 편견이 은은하게 깔려 있다. 아마 이런 말은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하는 말이 나이 어린 존재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들 것이다. 이들은 실제로도 ‘교육적인’ 관점에서 좋은 의도로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새롭게 선거권을 갖게 되는 만 19세 이상의 유권자들에게 선거교육을 따로 한 적이 있는가? 기존에 선거권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 하나 학교에서 그러한 ‘특별한’ 교육에 참여해 본 적이 있는가? 선거권 연령이 고작 한 살 낮춰졌다고, 그리고 그중 일부 고등학생이 포함되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의 뭔가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만 18세 유권자들의 능력을 의심하고,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차별적인 태도이다. 언제까지 학생/청소년들을 부족한 존재, 미숙한 존재, 뭘 잘 몰라서 교육해야만 하는 존재로 취급할 것인가.
청소년들 또한 현재를 살아가는, 다른 비청소년들과 동등한 이 나라의 국민이고 시민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후보자를 선택하든 ‘틀린’ 선택은 있을 수 없다. 개개인의 다양한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모든 후보자를 어떤 이유에서든 선택할 수 있고, 그 결정을 존중받는 것,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가치가 아니던가. 총선을 전후하여 분명 만 18세 유권자들의 정치적 성향과 선택을 놓고 모두가 왈가왈부할 것이다. ‘어린 청소년들도 충분히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역시 어린애들은 뭘 잘 모른다’ 이러한 상반되어 보이는 두 평가 모두 결국 청소년의 능력을 멋대로 평가하고 재단하는, 청소년 차별적 인식의 동전의 양면일 뿐이다.
물론 선거교육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선거에 대한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들이나 실질적인 투표 방법에 대한 교육은 당연히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만 18세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전 국민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선거교육은 만 18세 선거권이 통과되어서 필요해진 것이 아니다. 원래부터 있으면 좋았고 필요했던 것이다. 선거권 연령이 하향되자 뒤늦게 이야기되는 것이 오히려 문제인 것이다. 정치교육?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두고 교육과정 어디에 편성할 것인지, 어떤 형태로 누가 가르칠 것인지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의 삶이, 청소년의 삶이 곧 정치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만 18세 선거권 연령 하향을 계기로 보다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당연한 정치적 권리를 알고 행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나의 현재, 내가 생활하는 공간에서 자유로이 정치적인 토론을 하고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고 마땅한 청소년의 권리로 보장되기를 바란다. 모든 청소년들의 참정권이 완전히 보장되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가, 학교가, 가정이 보다 더 정치적인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청소년에게 정치를 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