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념을 넘어선 단호하고 무거운 질문

강지나 씀,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돌베개, 2023
허태준 flfldksk12@naver.com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저자
‘가난’이라는 시공간
고시원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부산에서 서울로 직장을 옮기며 급히 지낼 곳을 알아봐야 했는데, 마음에 드는 방을 도통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너무 먼 곳으로 가자니 출퇴근에 얼마나 품이 들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낯선 곳에서는 작은 선택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고 불안했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고시원이었다. 당장 지낼 수 있고, 주변이 정리되었을 때 빠르게 나갈 수 있으니 최적이었다. 주변 고시원을 돌아다니며 입주일과 가격, 위치와 생활 환경이 나쁘지 않은 곳을 찾았다. 계약한 방에 짐을 풀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그 한편의 안정감 덕분에 나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며 회사에 출근할 수 있었다.
때때로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나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휴게실과 샤워장 등 공용 시설도 깨끗하다고, 방음은 안 되지만 다들 조용히 잘 지낸다고. 온수도 잘 나오고, 익숙해지면 지낼 만하다고. 물론 그건 만족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체념에 가까웠다.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자세히 말해 봐야 귀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A는 달랐다. 그는 고시원이 ‘나쁘지 않다’라는 나의 이야기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오래 안 살아서 그래요.”
A에 대해서는 아는 게 많지 않았다. 대학교를 다니는 친구의 선배였고, 물리학으로 학과를 졸업했지만 철학으로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들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데면데면한 우리 사이와 달리 그 대답은 분명 날이 서 있었다. A는 고시원이 ‘나쁜’ 공간이라고 했다. 벽지에 곰팡이가 피어도 그냥 위에 한 겹을 더 덮어 놓은 곳들이 많다고. 눈에 보이지 않아도 오래 지내다 보면 서서히 호흡기나 피부가 나빠지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창문이 없는 곳이라면 특히나 심하다며 여유가 있다면 최대한 빨리 다른 곳을 알아보라는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A가 기약 없는 고시원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도, 학비를 내지 못해 대학원 공부를 포기하고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도 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았다. A가 그토록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었던 건 그에게 ‘고시원’이 단순한 이미지나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진 현실이자 자신을 둘러싼 시공간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A의 충고는 단편적인 걱정의 말과 달리 연속적이고 구체적일 수 있었다.
강지나의 저서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읽는 동안 A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오래 안 살아서 그래요.” 어떤 문제는 그 본질을 이해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비슷한 환경을 경험한다고 해도 그 기간에 따라 개인이 느끼는 심각성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고시원을 잠시 머무는 곳으로 여기며 그곳에서 이어질 삶에 대해 상상해 보지 못했던 나와 달리, 책의 저자는 타인의 목소리를 붙잡고 끈질기게 ‘가난’이 만들어 내는 연속적이고 구체적인 시공간을 조명한다.
무엇보다 나를 반성하게 만든 건, 저자가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교사로 일하며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그는 언론 보도나 정제된 자료만 보고 가난이라는 문제를 ‘나쁘지 않다’라며 단순하게 축약하지 않는다. 대신 박사 논문을 준비하며 알게 된 8명의 청소년이 어른이 되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을 세심하게 추적하고 기록한다. 가지각색의 생동한 목소리가 합치는 지점에서야 비로소 문제는 본질을 드러낸다.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저마다 다른 상황과 마음가짐을 하고 있지만, 그들 모두에게 가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빈곤은 ‘재화의 부족’이 아닌 ‘역량의 박탈’
가난이란 무엇일까? 가장 단순한 질문이지만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경제적 빈곤을 직접 겪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는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낡은 주공 아파트, 리어카를 끄는 노인 등 각종 미디어에서 질릴 정도로 가난에 대해 묘사한다. 드라마나 영화는 물론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가난은 언제나 주요한 소재로 다뤄진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가난을 다루는 방식은 획일적이며, 그 양상을 단순한 형태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큰 문제는 가난을 ‘일시적 현상’ 또는 ‘개인적 사건’으로 여기게 만든다는 점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노력과 열정으로 성공한 개인은 우리 사회의 흔한 레퍼토리 중 하나다. 여기서 ‘성공’은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진학하거나 안정적인 직업을 얻는 등의 성취를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성공이 정말 가난을 끝낼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가난이 그렇게 간단히 끝날 수 있는 사건일까?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처음부터 이러한 환상을 여지없이 박살 낸다.
나는 소희가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대학에 입학해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매우 기뻤다. 똘똘하고 당찬 소희가 역시 세상에 보란 듯이 그 일을 다 헤쳐 나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생활을 하는 소희를 다시 만났을 때 여전히 10대 때처럼 우울하고 관계 맺기를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의아했다. 힘들면 아직도 과하게 술을 마시고 사귀는 사람들도 예전 친구들의 범위에서 별로 많이 벗어나지 못했다. 그를 오랫동안 보아 왔던 사회복지사도 역시 이 부분을 설명하지 못했다.
- 본문 34쪽
책의 첫 번째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소희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가출과 동거, 비행을 거듭했다. 조부모에서부터 대물림되는 가난은 소희의 가족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와 몸이 약한 오빠는 소희를 잡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교육과 돌봄의 결핍 속에서도 그는 스스로 삶을 추슬렀고, 친구들과 종합사회복지관의 도움으로 대입 시험을 치러 당당히 합격했다.
자신이 받았던 도움을 하나의 모범으로 여기며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소희의 모습은 훌륭한 성공 서사로 보인다. 가난으로 힘들고 괴로웠지만 자신의 길을 찾아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뤘고, 이제 행복할 일만 남은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닫지 않는다. 소희는 대학을 다니고 복지관 실습을 나가며 분명 새로운 삶의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수시로 엄습하는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 내지 못한다. 등록금은 기초 생활 수급 가정이므로 국가 지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집에서 경제적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 교통비, 식비, 교재비 등을 국가장학금에 있는 생활비 대출을 통해 해결했기에 갚아야 할 빚이 쌓여 가고 있다. 무엇보다 옛날부터 알아 왔던 한두 명 외에는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한다.
저자는 이러한 소희의 상태를 “역량을 발휘하기 버거운 것”이라 설명한다.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힘을 역량이라고 한다면, 소희는 학력 결손이나 경제적 궁핍보다는 이 역량을 발휘해야 할 장면을 훨씬 더 어려워”(본문 37쪽)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을 인용하며 ‘역량의 박탈’이야말로 가난의 본질임을 재확인한다.
경제학자로서 평생 불평등과 빈곤 문제를 연구해 온 아마티아 센은 《자유로서의 발전》에서 빈곤은 단순히 재화의 부족이 아니라 자유로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려는 역량의 박탈이라고 설명했다. 빈곤 상태로 인해 건강한 관계 형성과 욕구 발현의 기회가 수없이 좌절되고 박탈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문제 행동을 보인다. 빈곤 대물림은 이런 박탈의 경험이 대를 이어 축적되고 불평등한 사회 구조로 고착되는 과정이다.
- 본문 38쪽
아마티아 센의 이야기에 따른다면 가난을 벗어난다는 것은 대학에 가거나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는, 흔히 개천에서 용 나는 ‘성공’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박탈된 역량을 인식하고 되찾는 과정이다. 여기서 역량은 “개인이 가치 있게 여기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실절적인 자유”(본문 146쪽)로 규정되어야 한다. 그것을 되찾는 과정에는 개인의 변화만이 아닌 가족, 교우 관계, 사회적 인식 ― 가난에 대한 낙인 ― 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가난은 금방 벗어날 수 있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며, 자신의 노력에 의해 좌우되는 개인적 사건은 더더욱 아니다.
사회적 자본과 공부방 계급론
그렇다면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겨난다. 소희는 역량이 약한 상태에서 어떻게 대학 입학의 관문을 뚫었을까? 저자는 소희의 검정고시 시험을 도와준 친구와 대학 입학을 물심양면 도와준 사회복지사 및 복지관의 존재에 주목한다. 자신을 믿고 도움을 손길을 내밀어 준 사람들, 즉 ‘관계망’이 있었다고 말이다. 타인의 인정과 이를 통한 사회적 욕구의 실현은 인간의 발전에 필수적 요인이다. 책의 곳곳에서도 이러한 관계망 덕분에 위기 상황을 넘긴 인터뷰이들의 사연이 등장한다. 때로는 가족, 때로는 친구나 애인, 학교 선생님, 때로는 복지관이나 지역아동센터가 그러한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희망보다는 씁쓸한 현실을 상기시킨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포함한 유무형의 자본은 결국 부모 세대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따라 불평등하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부모의 영향력 아래에서 다양한 경험과 기회를 제공받는 한편, 빈곤층 청년들은 오히려 취업 후 부모의 빚까지 갚아야 하는 이중고를 겪으며 더 나은 삶으로의 이행에 차질을 빚는다. 책에 등장하는 수정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저는 꿈도 있었고 하고 싶은 게 사실 많았는데, 지금까지 많이 좌절이 됐어요. 대학교 때도 공부를 더 하고 싶었는데 어쨌든 못 했고, 이제 돈을 벌기 시작했으니까 하고 싶었던 걸 해야지, 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힘들었던 게, 저는 집에다 갖다주는 돈이 너무 많다 보니 거의 모을 수가 없었다는 거예요. (……) 미래가 너무 안 보이는 거예요.”
- 본문 145쪽
수정은 개인적인 꿈을 위해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자격증 공부에 집중하고 싶었다. 하지만 집안의 경제적 빈곤에 의해 곧바로 유치원 교사 일을 시작했고, 조금씩 열정이 퇴색해 갔다. 적은 월급에서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남은 돈이 거의 없었다. 노동 강도가 높고 늦게 퇴근을 하는 근무 환경도 영향을 줬다. 수정은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구상하고 저축할 여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직장은 안정적이긴 했지만 내부에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결국 수정은 자신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또 가족 간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몰래 집을 나와 독립해야 했다.
수정은 교육 체계에서 성공하고 취업을 한 후에도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를 둘러싼 환경이 활용할 자원이 아니라 노력을 방해하는 족쇄로 느껴진다. 수정이 겪는 문제를 보다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연구가 있다. KBS 다큐멘터리 〈시사기획 창: 이십 대 생존 비망록〉에서 연구팀은 대한민국 청년의 삶을 결정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따져 보기 위해 대규모 사회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대상인 청년들에게 청소년기 공부 환경에 대한 질문 6개를 던졌다.
1. 나는 생계 걱정 없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2. 우리 집에는 내가 공부하는 방이 따로 있었다.
3. 나는 필요한 경우 독서실이나 학원을 다닐 수 있었다.
4. 나는 정기적으로 부모님한테서 용돈을 받았다.
5. 부모님은 나의 대학 진학을 원하셨다.
6. 부모님은 나의 학업을 지원해 주셨다.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과는 무관한, 오로지 객관적인 환경을 확인하는 질문들이었다. 공부 환경이 좋았던 순으로 상층과 중간층, 하층 그룹으로 나뉘었다. 각 그룹은 학력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였다. 해당 그룹 내에 고졸 학력의 비율은 상층 13%, 중간층 22%, 하층 48%로 하층 그룹이 눈에 띄게 높았던 반면, 서울 소재 대학 진학률은 상층 27%, 중간층 14%, 하층 9%로 하층 그룹이 가장 낮았다.
직업 만족도와 미래 전망을 묻는 질문에서도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내 직업은 경력이 쌓여도 소득이 오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질문에는 상층 29%, 중간층 47%, 하층 67%로 하층 그룹으로 갈수록 부정적 응답이 높았다. 하지만 “미래가 기대된다”(상층 73%, 중간층 57%, 하층 42%), “미래는 내 노력에 따라 바꿀 수 있다”(상층 61%, 중간층 54%, 하층 37%) 등의 긍정적 전망은 상층 그룹으로 갈수록 높았다.
자신의 미래뿐만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묻는 질문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가족이 위안이 된다”(상층 91%, 중간층 73%, 하층 48%), “친구가 위안이 된다”(상층 86%, 중간층 73%, 하층 47%)라는 질문에도 역시 상층 그룹일수록 긍정적인 대답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연구팀은 청소년기의 공부방 환경이 하나의 계급으로 형성되었다고 결론 내린다. ‘공부방 계급론’은 수정을 포함한 빈곤층 청년들이 서 있는 불평등한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가난할수록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은 줄어들고, 더 많은 문제를 직면하며, 결국 이러한 구조는 고착화되어 세대를 걸쳐 대물림된다. 그들은 노력하는 것조차 더 힘들다.
이런 구조하에서 빈곤층 청년들은 출발선부터 불평등한 구조 아래 놓인다. 빨리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생계에 보탬이 되거나 독립을 해야 하기 때문에 취업 준비를 하며 부모에게 의지하는 생활은 꿈꾸기 어렵다. 수정은 더 안정적이고 좋은 일자리를 위해 1년간 집에 돈을 가져올 수 없다고 했다가 가족들에게 모진 소리를 들어야 했다. (……) 더욱이 출발선이 다르면 이후 노동 시장에서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뿐 개선되진 않는다.
- 본문 158~159쪽
아이들은 저마다의 꿈을 꾼다
청소년기의 공부방 환경은 곧 학습에 대한 부모의 관심이기도 하다. 이러한 차이는 청소년기의 ‘자아정체감’ 형성에도 큰 영향을 준다. 저자는 에릭슨과 마샤에 의해 정립된 자아정체감 개념을 설명하며이것이 청소년기에 획득해야 할 중요한 과업임을 강조한다. 자아정체감은 나 자신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에 대한 일종의 현실감이라고 할 수 있다. 어른이라고 모두 자아정체감을 확립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청소년기에 제대로 이 과업을 달성하지 못하면 그는 미성숙한 채로 남아 어른이 된 이후에도 수많은 문제와 어려움에 부닥치게 된다.
“원래는 제가 중2 때, 공부를 아예 놓고 있다가 다시 시작해서 인문계 쪽으로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엄마 아빠가 결사반대를 했어요. 기술이나 배우라고. 인문 쪽으로 나가면 공부를 특출나게 잘해야 좋은 대학에 가고 안정적인 직업을 얻잖아요. 기술 쪽은 그렇지 않아도 먹고살기가 쉽다고. (……)고등학교 계열 선택에 대해서는 담임 선생님도 별로 말씀이 없었어요.”
- 본문 110쪽
책에 등장하는 연우도 이러한 자아정체감 형성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나 진로 선택에 있어 도움을 구할 만한 주변인이 없었다. 그는 특성화고 진학 후에도 별달리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했고, 전공을 선택할 때도 친구의 의견을 따랐다. “사실 고등학교 계열 선택은 학생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하다”(본문 111쪽)라는 저자의 말에는 깊은 걱정이 담겨 있다. 특성화고 진학은 단순히 대학 대신 취업을 우선하는 것을 넘어 학교의 분위기, 어울리는 친구, 자신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그리고 이후 만나게 될 노동 환경과 사회적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연우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하며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발견했다. 좋아하는 분야를 발견하자 다시금 공부에 열의가 생겼고, 필요한 자격증도 학창 시절에 미리 따 두었다. 그리고 운 좋게 현장실습생으로 일할 수 있는 회사에 입사해 실용적이고 구체적으로 미래를 계획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이 ‘운 좋게’ 적성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연우와 유사하게 특성화고에 다니며 도제 학교 제도를 경험했던 우빈은 제도권 직업교육에 대한 전망을 접은 상태였다. 돈도 벌 수 있고 빠르게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믿음으로 지원했지만 제대로 된 교육 프로그램은 하나도 마련되어 있지 않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 위층 사무직 과장님이 오늘은 뭐 배웠냐고 물어보면 솔직히 배우는 것도 없고 알려 주는 것도 없으니까 어제랑 똑같다고 얘기했더니 그분이 그래요. “너네가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직접 가서 사람들한테 알려 달라 해라.” 그래서 제가 한마디 했어요. “알려 달라고 해도 바쁘시다고 다들 피해 버리는데 어떻게 하나요?” 그러니까 알아서 배우래요. (……) 사실 사무직은 현장이 어떤지 모르잖아요.”
- 본문 202쪽
실제로 우빈과 같은 사례를 찾아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도제학교, 현장실습 등의 제도는 현장에서 실무에 필요한 교육을 배우라는 취지로 시행되고 있지만, 그 ‘교육적 목적’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가를 두고 꾸준히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ref] 강문식(2020), 《직업계고 현장실습 현황과 개선방안》, 전북노동정책연구원. [/ref]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사후 관리에 힘을 쏟을 여력이 부족하며, 정부 기관은 매번 책임 소재를 떠넘기기 바쁘다. 제도권 교육을 믿고 이른 나이에 노동 현장으로 내몰린 아이들은 그렇게 방치되고 외면받는다.
더 큰 문제는 이와 같은 ‘안 좋은 일자리’에서의 반복적 노동 경험이 ‘좋은 일자리’로의 이행 가능성을 제약한다는 점이다.[ref] 남재욱·김영민·한기명(2018), 〈고졸 청년 노동자의 노동시장 불안정 연구〉. [/ref] 전문 직업인이 되기 위한 직업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온 이들은 학력과 나이 등으로 인한 무시와 차별,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직업교육, 무엇보다 이를 통해 안 좋은 일자리를 반복해서 경험하면서 점차 장기적 전망 대신 당장 현금을 쥘 수 있는 일자리에 관심을 가진다. 우빈도 직업교육을 통한 취업 노력보다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식당 일에 더 관심이 많았다.
성장기에 겪었던 안전하지 못한 환경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은 확실한 무엇인가를 쥐고 있는 것이다. 우빈은 돈에 집중했다. 식당 일이 힘들어도 버티는 건, 자신의 능력을 알아봐 주고, 뚜렷한 커리어가 없어도 바로 뛰어들어 돈을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우빈의 장래희망도 식당을 열어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다. 돈은 무엇보다 현재의 삶을 버티게 하는 수단이었다.
- 본문 212~213쪽
책 속에서 보이는 우빈은 자신이 처한 빈곤 상황을 이해하고, 누구보다 발 빠르게 그곳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청년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좋은 일자리에 대한 전망을 꿈꾸기 어렵고, 자신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범위로만 진로의 기회가 제한된다.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꿈을 가져라”라거나 “더 큰 세상을 보라”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있을까. 확실한 건 취업도 진학도 믿을 만한 출구가 되지 못하는 막막하고 어두운 길목에서도, 아이들은 저마다의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이다.
앎의 시간을 지나, 반성과 변화의 시간으로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속 8명의 청소년들이 어른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함께 거슬러 보며, 독자로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자주 고민했다. “때로는 애처롭고 가엾다가 어떨 때는 존경스럽고 대견하다는 느낌이 무수히 교차했다”(본문 8쪽)라는 저자의 고백처럼, 그들의 삶이 가슴 아픈 동시에 놀랍게 여겨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난이라는 시공간을 건너며 그들이 결국 저마다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 그렇다면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어떤 연대를 도모할 수 있을까.
저자는 8명의 청(소)년들의 생애사를 마무리하며 그 힌트를 남긴다. 교육 제도, 진로 탐색, 청년 자립 등에 대해서 관련 제도와 사회적 지형을 고찰하고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첫 번째로 교육 자본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저자는 빈곤층 아이들이 교육비를 지원받는다고 해도 교육 자본을 성공적으로 형성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의 교육 제도는 이미 기본적 교육비와 기회 제공만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빈곤층 청소년의 경우 취약한 가족 자원 때문에 학교에 의존해야 하는데, 학교는 이미 가족 배경 없이는 성공하기 힘든 ‘사다리를 걷어차는 제도’가 되어 버렸다.
또한 교육 체계에서 성공했다고 해도 빈곤 대물림을 탈출하기는 어렵다. 소희와 수정의 사례처럼 교육 자본을 형성하더라도 취약한 가족 구조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훼손된 사회적 자아를 복구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맺어 온 사회적 연결망을 새롭고 건강한 관계로 대체하지 못한다면 빈곤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그렇기에 저자는 교육 자본론에 따라 교육비를 지원한다는 것은 단편적인 방책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음을 지적하며, 빈곤 대물림은 사회 전반의 불평등과 구조를 개혁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두 번째는 진로 탐색을 통한 자아정체감 형성을 돕는 것이다. 저자는 연우와 우빈 등의 사례를 통해 빈곤 청소년이 경제적 어려움과 진로 선택의 고민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과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아는 것이 이후 행동에 훨씬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렇기에 취약한 가정을 대신해 우리 사회가 이러한 체계를 잘 갖추고 있어야 한다.
또한 저자는 교사로서 학교의 역할도 함께 강조한다. 빈곤 가정 청소년들이 가장 쉽고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기관이 학교이기 때문이다. 현재 선별 경쟁을 위해 작동하는 학교 체계가 방향을 돌려 청소년 복지의 관점에서 진로 탐색 기관으로서 호용을 높여 간다면 분명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청년 자립 정책에 대한 관심이다. 빈곤 가정에서 성장한 청소년이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청년 빈곤층이 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청년 빈곤 문제가 복합적인 구조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청년 빈곤은 한 세대 내에서 보면 불평등이자 경쟁 과잉의 문제지만, 국가적으로 보면 산업 구조의 재편이며, 세계적으로 보면 저성장의 문제인 것이다. 문제의 규모가 거대하고 복잡하기에 섣불리 의견을 내놓기도 어려운 주제다.
임금 불평등이나 주변부 노동 시장의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면, ‘대규모 임대 주택’이나 ‘청년수당’ 등 사회 정책이 기본적인 인프라 역할을 도맡아 수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무엇보다 빈곤 청년을 위한 사회 정책이 ‘가난을 증명하고 신고해야 하는’ 선별적 방식이 아니라 청년 세대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제도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함을 강조한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우리에게 외면했던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동시에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가난하지 않았던 어른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박탈된 아이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가난의 시공간을 함께 걸어가는 시민이 되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또 다른 벽이 되는가.
책을 통해 앎의 시간을 통과했다면, 이제는 반성과 변화의 시간을 마주해야 할 때다. 정책적 변화도 결국 가장 기본적인 관심과 인식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힘들 때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았듯이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했”(본문 8쪽)다는 인터뷰이들의 용기에 이제 우리 사회가 응답해야 한다.
체념을 넘어선 단호하고 무거운 질문
강지나 씀,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돌베개, 2023
허태준 flfldksk12@naver.com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저자
‘가난’이라는 시공간
고시원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부산에서 서울로 직장을 옮기며 급히 지낼 곳을 알아봐야 했는데, 마음에 드는 방을 도통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너무 먼 곳으로 가자니 출퇴근에 얼마나 품이 들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낯선 곳에서는 작은 선택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고 불안했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고시원이었다. 당장 지낼 수 있고, 주변이 정리되었을 때 빠르게 나갈 수 있으니 최적이었다. 주변 고시원을 돌아다니며 입주일과 가격, 위치와 생활 환경이 나쁘지 않은 곳을 찾았다. 계약한 방에 짐을 풀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그 한편의 안정감 덕분에 나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며 회사에 출근할 수 있었다.
때때로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나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휴게실과 샤워장 등 공용 시설도 깨끗하다고, 방음은 안 되지만 다들 조용히 잘 지낸다고. 온수도 잘 나오고, 익숙해지면 지낼 만하다고. 물론 그건 만족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체념에 가까웠다.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자세히 말해 봐야 귀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A는 달랐다. 그는 고시원이 ‘나쁘지 않다’라는 나의 이야기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오래 안 살아서 그래요.”
A에 대해서는 아는 게 많지 않았다. 대학교를 다니는 친구의 선배였고, 물리학으로 학과를 졸업했지만 철학으로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들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데면데면한 우리 사이와 달리 그 대답은 분명 날이 서 있었다. A는 고시원이 ‘나쁜’ 공간이라고 했다. 벽지에 곰팡이가 피어도 그냥 위에 한 겹을 더 덮어 놓은 곳들이 많다고. 눈에 보이지 않아도 오래 지내다 보면 서서히 호흡기나 피부가 나빠지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창문이 없는 곳이라면 특히나 심하다며 여유가 있다면 최대한 빨리 다른 곳을 알아보라는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A가 기약 없는 고시원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도, 학비를 내지 못해 대학원 공부를 포기하고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도 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았다. A가 그토록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었던 건 그에게 ‘고시원’이 단순한 이미지나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진 현실이자 자신을 둘러싼 시공간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A의 충고는 단편적인 걱정의 말과 달리 연속적이고 구체적일 수 있었다.
강지나의 저서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읽는 동안 A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오래 안 살아서 그래요.” 어떤 문제는 그 본질을 이해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비슷한 환경을 경험한다고 해도 그 기간에 따라 개인이 느끼는 심각성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고시원을 잠시 머무는 곳으로 여기며 그곳에서 이어질 삶에 대해 상상해 보지 못했던 나와 달리, 책의 저자는 타인의 목소리를 붙잡고 끈질기게 ‘가난’이 만들어 내는 연속적이고 구체적인 시공간을 조명한다.
무엇보다 나를 반성하게 만든 건, 저자가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교사로 일하며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그는 언론 보도나 정제된 자료만 보고 가난이라는 문제를 ‘나쁘지 않다’라며 단순하게 축약하지 않는다. 대신 박사 논문을 준비하며 알게 된 8명의 청소년이 어른이 되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을 세심하게 추적하고 기록한다. 가지각색의 생동한 목소리가 합치는 지점에서야 비로소 문제는 본질을 드러낸다.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저마다 다른 상황과 마음가짐을 하고 있지만, 그들 모두에게 가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빈곤은 ‘재화의 부족’이 아닌 ‘역량의 박탈’
가난이란 무엇일까? 가장 단순한 질문이지만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경제적 빈곤을 직접 겪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는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낡은 주공 아파트, 리어카를 끄는 노인 등 각종 미디어에서 질릴 정도로 가난에 대해 묘사한다. 드라마나 영화는 물론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가난은 언제나 주요한 소재로 다뤄진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가난을 다루는 방식은 획일적이며, 그 양상을 단순한 형태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큰 문제는 가난을 ‘일시적 현상’ 또는 ‘개인적 사건’으로 여기게 만든다는 점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노력과 열정으로 성공한 개인은 우리 사회의 흔한 레퍼토리 중 하나다. 여기서 ‘성공’은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진학하거나 안정적인 직업을 얻는 등의 성취를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성공이 정말 가난을 끝낼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가난이 그렇게 간단히 끝날 수 있는 사건일까?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처음부터 이러한 환상을 여지없이 박살 낸다.
책의 첫 번째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소희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가출과 동거, 비행을 거듭했다. 조부모에서부터 대물림되는 가난은 소희의 가족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와 몸이 약한 오빠는 소희를 잡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교육과 돌봄의 결핍 속에서도 그는 스스로 삶을 추슬렀고, 친구들과 종합사회복지관의 도움으로 대입 시험을 치러 당당히 합격했다.
자신이 받았던 도움을 하나의 모범으로 여기며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소희의 모습은 훌륭한 성공 서사로 보인다. 가난으로 힘들고 괴로웠지만 자신의 길을 찾아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뤘고, 이제 행복할 일만 남은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닫지 않는다. 소희는 대학을 다니고 복지관 실습을 나가며 분명 새로운 삶의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수시로 엄습하는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 내지 못한다. 등록금은 기초 생활 수급 가정이므로 국가 지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집에서 경제적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 교통비, 식비, 교재비 등을 국가장학금에 있는 생활비 대출을 통해 해결했기에 갚아야 할 빚이 쌓여 가고 있다. 무엇보다 옛날부터 알아 왔던 한두 명 외에는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한다.
저자는 이러한 소희의 상태를 “역량을 발휘하기 버거운 것”이라 설명한다.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힘을 역량이라고 한다면, 소희는 학력 결손이나 경제적 궁핍보다는 이 역량을 발휘해야 할 장면을 훨씬 더 어려워”(본문 37쪽)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을 인용하며 ‘역량의 박탈’이야말로 가난의 본질임을 재확인한다.
아마티아 센의 이야기에 따른다면 가난을 벗어난다는 것은 대학에 가거나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는, 흔히 개천에서 용 나는 ‘성공’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박탈된 역량을 인식하고 되찾는 과정이다. 여기서 역량은 “개인이 가치 있게 여기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실절적인 자유”(본문 146쪽)로 규정되어야 한다. 그것을 되찾는 과정에는 개인의 변화만이 아닌 가족, 교우 관계, 사회적 인식 ― 가난에 대한 낙인 ― 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가난은 금방 벗어날 수 있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며, 자신의 노력에 의해 좌우되는 개인적 사건은 더더욱 아니다.
사회적 자본과 공부방 계급론
그렇다면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겨난다. 소희는 역량이 약한 상태에서 어떻게 대학 입학의 관문을 뚫었을까? 저자는 소희의 검정고시 시험을 도와준 친구와 대학 입학을 물심양면 도와준 사회복지사 및 복지관의 존재에 주목한다. 자신을 믿고 도움을 손길을 내밀어 준 사람들, 즉 ‘관계망’이 있었다고 말이다. 타인의 인정과 이를 통한 사회적 욕구의 실현은 인간의 발전에 필수적 요인이다. 책의 곳곳에서도 이러한 관계망 덕분에 위기 상황을 넘긴 인터뷰이들의 사연이 등장한다. 때로는 가족, 때로는 친구나 애인, 학교 선생님, 때로는 복지관이나 지역아동센터가 그러한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희망보다는 씁쓸한 현실을 상기시킨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포함한 유무형의 자본은 결국 부모 세대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따라 불평등하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부모의 영향력 아래에서 다양한 경험과 기회를 제공받는 한편, 빈곤층 청년들은 오히려 취업 후 부모의 빚까지 갚아야 하는 이중고를 겪으며 더 나은 삶으로의 이행에 차질을 빚는다. 책에 등장하는 수정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수정은 개인적인 꿈을 위해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자격증 공부에 집중하고 싶었다. 하지만 집안의 경제적 빈곤에 의해 곧바로 유치원 교사 일을 시작했고, 조금씩 열정이 퇴색해 갔다. 적은 월급에서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남은 돈이 거의 없었다. 노동 강도가 높고 늦게 퇴근을 하는 근무 환경도 영향을 줬다. 수정은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구상하고 저축할 여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직장은 안정적이긴 했지만 내부에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결국 수정은 자신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또 가족 간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몰래 집을 나와 독립해야 했다.
수정은 교육 체계에서 성공하고 취업을 한 후에도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를 둘러싼 환경이 활용할 자원이 아니라 노력을 방해하는 족쇄로 느껴진다. 수정이 겪는 문제를 보다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연구가 있다. KBS 다큐멘터리 〈시사기획 창: 이십 대 생존 비망록〉에서 연구팀은 대한민국 청년의 삶을 결정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따져 보기 위해 대규모 사회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대상인 청년들에게 청소년기 공부 환경에 대한 질문 6개를 던졌다.
1. 나는 생계 걱정 없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2. 우리 집에는 내가 공부하는 방이 따로 있었다.
3. 나는 필요한 경우 독서실이나 학원을 다닐 수 있었다.
4. 나는 정기적으로 부모님한테서 용돈을 받았다.
5. 부모님은 나의 대학 진학을 원하셨다.
6. 부모님은 나의 학업을 지원해 주셨다.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과는 무관한, 오로지 객관적인 환경을 확인하는 질문들이었다. 공부 환경이 좋았던 순으로 상층과 중간층, 하층 그룹으로 나뉘었다. 각 그룹은 학력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였다. 해당 그룹 내에 고졸 학력의 비율은 상층 13%, 중간층 22%, 하층 48%로 하층 그룹이 눈에 띄게 높았던 반면, 서울 소재 대학 진학률은 상층 27%, 중간층 14%, 하층 9%로 하층 그룹이 가장 낮았다.
직업 만족도와 미래 전망을 묻는 질문에서도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내 직업은 경력이 쌓여도 소득이 오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질문에는 상층 29%, 중간층 47%, 하층 67%로 하층 그룹으로 갈수록 부정적 응답이 높았다. 하지만 “미래가 기대된다”(상층 73%, 중간층 57%, 하층 42%), “미래는 내 노력에 따라 바꿀 수 있다”(상층 61%, 중간층 54%, 하층 37%) 등의 긍정적 전망은 상층 그룹으로 갈수록 높았다.
자신의 미래뿐만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묻는 질문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가족이 위안이 된다”(상층 91%, 중간층 73%, 하층 48%), “친구가 위안이 된다”(상층 86%, 중간층 73%, 하층 47%)라는 질문에도 역시 상층 그룹일수록 긍정적인 대답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연구팀은 청소년기의 공부방 환경이 하나의 계급으로 형성되었다고 결론 내린다. ‘공부방 계급론’은 수정을 포함한 빈곤층 청년들이 서 있는 불평등한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가난할수록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은 줄어들고, 더 많은 문제를 직면하며, 결국 이러한 구조는 고착화되어 세대를 걸쳐 대물림된다. 그들은 노력하는 것조차 더 힘들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꿈을 꾼다
청소년기의 공부방 환경은 곧 학습에 대한 부모의 관심이기도 하다. 이러한 차이는 청소년기의 ‘자아정체감’ 형성에도 큰 영향을 준다. 저자는 에릭슨과 마샤에 의해 정립된 자아정체감 개념을 설명하며이것이 청소년기에 획득해야 할 중요한 과업임을 강조한다. 자아정체감은 나 자신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에 대한 일종의 현실감이라고 할 수 있다. 어른이라고 모두 자아정체감을 확립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청소년기에 제대로 이 과업을 달성하지 못하면 그는 미성숙한 채로 남아 어른이 된 이후에도 수많은 문제와 어려움에 부닥치게 된다.
책에 등장하는 연우도 이러한 자아정체감 형성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나 진로 선택에 있어 도움을 구할 만한 주변인이 없었다. 그는 특성화고 진학 후에도 별달리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했고, 전공을 선택할 때도 친구의 의견을 따랐다. “사실 고등학교 계열 선택은 학생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하다”(본문 111쪽)라는 저자의 말에는 깊은 걱정이 담겨 있다. 특성화고 진학은 단순히 대학 대신 취업을 우선하는 것을 넘어 학교의 분위기, 어울리는 친구, 자신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그리고 이후 만나게 될 노동 환경과 사회적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연우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하며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발견했다. 좋아하는 분야를 발견하자 다시금 공부에 열의가 생겼고, 필요한 자격증도 학창 시절에 미리 따 두었다. 그리고 운 좋게 현장실습생으로 일할 수 있는 회사에 입사해 실용적이고 구체적으로 미래를 계획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이 ‘운 좋게’ 적성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연우와 유사하게 특성화고에 다니며 도제 학교 제도를 경험했던 우빈은 제도권 직업교육에 대한 전망을 접은 상태였다. 돈도 벌 수 있고 빠르게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믿음으로 지원했지만 제대로 된 교육 프로그램은 하나도 마련되어 있지 않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우빈과 같은 사례를 찾아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도제학교, 현장실습 등의 제도는 현장에서 실무에 필요한 교육을 배우라는 취지로 시행되고 있지만, 그 ‘교육적 목적’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가를 두고 꾸준히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ref] 강문식(2020), 《직업계고 현장실습 현황과 개선방안》, 전북노동정책연구원. [/ref]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사후 관리에 힘을 쏟을 여력이 부족하며, 정부 기관은 매번 책임 소재를 떠넘기기 바쁘다. 제도권 교육을 믿고 이른 나이에 노동 현장으로 내몰린 아이들은 그렇게 방치되고 외면받는다.
더 큰 문제는 이와 같은 ‘안 좋은 일자리’에서의 반복적 노동 경험이 ‘좋은 일자리’로의 이행 가능성을 제약한다는 점이다.[ref] 남재욱·김영민·한기명(2018), 〈고졸 청년 노동자의 노동시장 불안정 연구〉. [/ref] 전문 직업인이 되기 위한 직업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온 이들은 학력과 나이 등으로 인한 무시와 차별,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직업교육, 무엇보다 이를 통해 안 좋은 일자리를 반복해서 경험하면서 점차 장기적 전망 대신 당장 현금을 쥘 수 있는 일자리에 관심을 가진다. 우빈도 직업교육을 통한 취업 노력보다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식당 일에 더 관심이 많았다.
책 속에서 보이는 우빈은 자신이 처한 빈곤 상황을 이해하고, 누구보다 발 빠르게 그곳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청년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좋은 일자리에 대한 전망을 꿈꾸기 어렵고, 자신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범위로만 진로의 기회가 제한된다.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꿈을 가져라”라거나 “더 큰 세상을 보라”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있을까. 확실한 건 취업도 진학도 믿을 만한 출구가 되지 못하는 막막하고 어두운 길목에서도, 아이들은 저마다의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이다.
앎의 시간을 지나, 반성과 변화의 시간으로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속 8명의 청소년들이 어른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함께 거슬러 보며, 독자로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자주 고민했다. “때로는 애처롭고 가엾다가 어떨 때는 존경스럽고 대견하다는 느낌이 무수히 교차했다”(본문 8쪽)라는 저자의 고백처럼, 그들의 삶이 가슴 아픈 동시에 놀랍게 여겨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난이라는 시공간을 건너며 그들이 결국 저마다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 그렇다면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어떤 연대를 도모할 수 있을까.
저자는 8명의 청(소)년들의 생애사를 마무리하며 그 힌트를 남긴다. 교육 제도, 진로 탐색, 청년 자립 등에 대해서 관련 제도와 사회적 지형을 고찰하고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첫 번째로 교육 자본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저자는 빈곤층 아이들이 교육비를 지원받는다고 해도 교육 자본을 성공적으로 형성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의 교육 제도는 이미 기본적 교육비와 기회 제공만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빈곤층 청소년의 경우 취약한 가족 자원 때문에 학교에 의존해야 하는데, 학교는 이미 가족 배경 없이는 성공하기 힘든 ‘사다리를 걷어차는 제도’가 되어 버렸다.
또한 교육 체계에서 성공했다고 해도 빈곤 대물림을 탈출하기는 어렵다. 소희와 수정의 사례처럼 교육 자본을 형성하더라도 취약한 가족 구조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훼손된 사회적 자아를 복구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맺어 온 사회적 연결망을 새롭고 건강한 관계로 대체하지 못한다면 빈곤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그렇기에 저자는 교육 자본론에 따라 교육비를 지원한다는 것은 단편적인 방책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음을 지적하며, 빈곤 대물림은 사회 전반의 불평등과 구조를 개혁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두 번째는 진로 탐색을 통한 자아정체감 형성을 돕는 것이다. 저자는 연우와 우빈 등의 사례를 통해 빈곤 청소년이 경제적 어려움과 진로 선택의 고민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과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아는 것이 이후 행동에 훨씬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렇기에 취약한 가정을 대신해 우리 사회가 이러한 체계를 잘 갖추고 있어야 한다.
또한 저자는 교사로서 학교의 역할도 함께 강조한다. 빈곤 가정 청소년들이 가장 쉽고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기관이 학교이기 때문이다. 현재 선별 경쟁을 위해 작동하는 학교 체계가 방향을 돌려 청소년 복지의 관점에서 진로 탐색 기관으로서 호용을 높여 간다면 분명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청년 자립 정책에 대한 관심이다. 빈곤 가정에서 성장한 청소년이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청년 빈곤층이 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청년 빈곤 문제가 복합적인 구조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청년 빈곤은 한 세대 내에서 보면 불평등이자 경쟁 과잉의 문제지만, 국가적으로 보면 산업 구조의 재편이며, 세계적으로 보면 저성장의 문제인 것이다. 문제의 규모가 거대하고 복잡하기에 섣불리 의견을 내놓기도 어려운 주제다.
임금 불평등이나 주변부 노동 시장의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면, ‘대규모 임대 주택’이나 ‘청년수당’ 등 사회 정책이 기본적인 인프라 역할을 도맡아 수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무엇보다 빈곤 청년을 위한 사회 정책이 ‘가난을 증명하고 신고해야 하는’ 선별적 방식이 아니라 청년 세대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제도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함을 강조한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우리에게 외면했던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동시에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가난하지 않았던 어른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박탈된 아이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가난의 시공간을 함께 걸어가는 시민이 되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또 다른 벽이 되는가.
책을 통해 앎의 시간을 통과했다면, 이제는 반성과 변화의 시간을 마주해야 할 때다. 정책적 변화도 결국 가장 기본적인 관심과 인식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힘들 때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았듯이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했”(본문 8쪽)다는 인터뷰이들의 용기에 이제 우리 사회가 응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