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호[특집] 의대 입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무엇이 문제인가 (문호진)

202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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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입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무엇이 문제인가



문호진 mh29@naver.com

의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중앙집행위원



예나 지금이나 의과대학 입시는 매우 경쟁적이며 이로 인해 미디어와 대중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왔다. 다만 미디어에서 다루는 의과대학 입시는 현장에서 살펴본 실상과 거리가 있으며, 특히 영상 매체의 경우 대중의 흥미를 끌 요소를 부각시켜 파편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큰 틀에서 지금의 ‘의대 열풍’은 IMF 외환 위기 이후 전문직이 부각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래도 한동안 의과대학은 수능 고득점자 중 다수가 진학했을 뿐 본인의 희망에 따라 치과대학, 한의과대학, 유명 자연과학대학이나 공과대학 등으로 진학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는 여건이 되는 경우 대다수 학생이 의과대학 진학을 선택하는 등 최근 수년간의 ‘의대 열풍’은 대다수의 고득점자를 빨아들이는 ‘의대 블랙홀’로 질적으로 변화하였다.

이로 인해 ‘의대 입시가 문제’라는 인식은 대중들 사이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으나, 실제로 어떤 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며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널리 조명된 바가 없다. 이 글에서는 현재 의대 입시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의과대학 진학을 목표하지 않는 학생, 학부모, 그리고 교육 종사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중심으로 논하려 한다.


‘선행 학습’을 요구하는 의대 입시


2013년, 교육부는 대입 전형 간소화 및 대입 제도 발전 방안을 발표하였다. 정시에서는 수능 위주, 수시에서는 학교생활기록부 위주로 평가하고, 문제 풀이식 구술 면접이나 적성 고사 등은 자율적으로 지양하도록 대학에 요구하며 이를 재정 지원과 연계하였다. 이후 정시에서는 대부분의 대학에서 별도의 대학별 고사 없이 합격자를 사정하는 전형 방식이 정착되었다. 그러나 ‘인성’을 평가함으로써 의사가 되어서는 안 되는 학생을 걸러 내겠다는 당위를 명분 삼아, 의과대학을 시작으로 이런 정책 방향을 뒤집으려는 흐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의대 블랙홀’을 타고 여타 모집 단위로 확산되고 있다.

현재 의과대학 입시에서 운영되는 ‘다면인적성면접(MMI)’이 대표적이다. MMI는 일반적으로 3~10개의 면접실마다 학생이 입실하여 2분 내외의 지시문 숙지 시간을 가진 뒤 10분간 면접관의 질문에 답하고 다음 면접실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수행되고 있다. 의과대학 측에서는 MMI 문항에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으며, 단기간에 (사교육의) 면접 기술을 익혀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고, 꾸준히 책을 읽고 사고 연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ref]〈이제 공부만 잘해서는 의사 못 된다〉, 《신동아》, 2020년 5월호.[/ref] 현장에서 면접을 준비하면서 느끼는 학생들의 의견은 꽤나 다르다.


“대학 합격하고 나서 의과대학 커리큘럼이나 문화 등을 접하니 면접에서 교수들이 듣고 싶은 답은 애초에 정해져 있고, 이 내용을 의대 6년간 가르치는 것 아닌가. 대학에 입학한 후에 가르치고 깨닫게 해야 할 내용을 사교육으로 미리 컨닝한 기분이었고, 저 같은 지방 일반고 학생은 MMI를 독학하거나 학교에서 대비할 수밖에 없는데, (재수 이전 고등학교 시절에는) 뚫을 가능성이 없는 시험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에게는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을 물어봐야지, 지나치게 불공평한 것 아닌가.”

- 의대 합격생 A


사실 MMI의 형식이나 내용은 의사 국가 시험의 실기 시험에서 시행하는 임상 표현(CPX) 시험과 유사하고, 이 방식을 고등학생 수준에 맞게 조금 다듬은 것에 불과하다. 또한 도덕적 딜레마 상황을 다룰 때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에게 환자가 받을 충격을 고려해 발화의 순서나 어조를 세심하게 조절해야 하지만, 의학적 검사의 결과나 소견을 숨기거나 왜곡해서 전달해서는 안 된다”와 같이 도덕률로부터 파생된 지침과 제한 사항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도덕률에 크게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답변의 방향은 피면접자가 어느 정도 정할 수 있으나, “이런 당위문, 답변의 형식 자체가 정답이다”(의대 합격생 B)라는 경험자의 말에서 드러나듯 답변의 방식 자체가 이미 ‘답’인 상황에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절반만 진실이다.

결국 이런 방식의 면담은 훈련된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어렵지 않으나 비슷한 상황을 겪어 보지 못하고 딜레마를 다루는 원칙에 대해서 잘 모르는 고등학생이 수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훈련된 사람의 지도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학원 강사에게도 쉽지 않다. 그러니 “의과대학 졸업자가 강사로 들어오고, 모의 면접은 의과대학 재학 중인 학생이 채점한다”(의대 합격생 B)라는 증언처럼, 의사 국가 시험이나 전문의 시험에서 유사한 면접을 겪고 운영해 본 ‘진짜’ 의사와 ‘진짜’ 의대생이 이런 면접을 대비시켜 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는 결국 대학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을 개별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거나 조명되지 않았을 뿐, 결국 대학 입학 후 이루어져야 하는 학습을 고교생 수준에서 미리 수행하는 다른 형태의 ‘선행 학습’이나 다름없다. 이런 ‘선행 학습’은 의과대학에 진학한 후 해당 내용을 다시 공부해야 한다는 점에서, 예컨대 초·중등 때 미적분 선행 학습을 할 때의 폐해 역시 똑같이 공유하고 있다.

발달과 배움에는 순서와 때가 있는 법인데, 이를 무시하고 이루어지는 선행 학습의 폐해는 단지 비효율에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훈련은 의료 영역에 종사하는 전문가적 자질을 함양하기 위한 것으로, 학생들이 의사 이전에 ‘좋은 시민’이 되는 훈련은 건너뛰고 ‘의료 전문가’가 되기 위한 훈련부터 받는다는 점에서도 문제적이다. 보건 정책에 대한 결정권은 기본적으로 시민들에게 있으며 전문가의 역할은 시민들이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선의의 조언을 제공하는 것에서 그쳐야 한다는 것이 현대 민주 사회의 기본 원칙이다. 그럼에도 의료 정책은 현장을 아는 의료인이 결정해야 하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구성을 의사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오는 것은 ‘전문가 우선주의’의 폐해이다. 현재와 같은 교육과 선발 방식은 이런 ‘전문가 우선주의’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한술 더 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은 2023학년도 입시부터 인성 면접에 더해 수학/과학 제시문을 바탕으로 한 문제 풀이식 면접을 도입하여 사실상 본고사를 부활시켰다. 시험 범위 역시 유례없이 넓은 수준으로, 일반 선택 과목(수학I, II, 미적분, 확률과통계, 과학I 과목 전체) 전체를 요구하는 것을 넘어 진로 선택 과목(기하, 실용수학, 경제수학, 수학과제탐구, 과학II 과목 전체) 전체에 대한 학습을 요구하고 있고, 실제 면접 고사 내용도 과학탐구II 과목 수준에서 출제되었다. 이는 교육과정의 취지를 전면적으로 거스르는 것이며, 학생이 학교에서 도저히 배울 수 없는 내용으로 실질적 측면이 아닌 형식적 측면에서까지 사실상 학원 수강을 강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고등학교 내에서의 의대 입시 대비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학생들의 선택은 무엇이 될까. “고3 때 면접 대비 수업을 들었을 때는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재수 때 강의를 추가로 들으니 이제야 이해가 되는 느낌이었다”(의대 합격생 B)라는 증언에서 나타나듯, 넓은 범위의 교과 내용을 미리 학습하거나 대학이 요구하는 수준을 맞추기 위해선 재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의료와 교육의 공공성 때문에라도 입시를 규율해야


의대 쏠림이 모든 성적 우수자를 빨아들이는 ‘의대 블랙홀’로 진화한 상황에서, 의대 입시는 타 전공 입장에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유홍림 서울대 총장이 인터뷰에서 “면접이 중요해진다. 면접은 학업 성취도가 아니라 학생을 종합적으로 본다. 다중 미니 면접(MMI) 등을 활용해 학생의 역량과 재능, 잠재력, 인성까지 보는 것이다”라고 밝히며 의과대학의 MMI 면접을 대학의 타 모집 단위까지 확대하겠다고 천명[ref]“유홍림 서울대 총장 “다양성 위해 지방 학생 대폭 뽑겠다””, 〈조선일보〉, 2023년 7월 29일.[/ref] 한 사례처럼, 의과대학은 본고사 부활과 대입 전형 파편화, 정보 비대칭성 확대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지면의 한계상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으나 40개 의과대학의 입학 전형은 개별 의과대학의 사명 및 교육철학과는 큰 관계없이, 탐구 영역 반영 방식(백분위, 변환 표준 점수, 표준 점수, 학교마다 상이한 최고점 기준 등)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우수’하다고 평가되는 표면상 고득점자를 선발할 목적으로 파편화되어 있다. 이런 파편화를 통해 몇몇 의대가 배치 점수상 위치에서 이득을 보는 것을 목도하면서, 성균관대와 서강대를 비롯한 여러 사립대들은 타 학교와 차별화를 위해 수능 반영 방식을 파편화하는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심지어 앞서 살펴본 것처럼 연세대 의대는 진로 선택 과목을 포함한 사실상 자연 계열 선택 과목 전 범위, 전 과목을 시험 범위 삼아 대학별 전형을 사실상 본고사화한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 비대칭성을 사교육 업체는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앞서 살펴보았던 MMI 등의 평가 방식 역시 의대마다 평가 방식이 상이하고 기준 및 기출 문항이 공개되어 있지 않아 학생들이 시행착오를 겪고 있으며, 개별 학교나 학원의 복원에 의존하여 전형 과정을 준비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의과대학의 운영은 의료 관련 서비스의 질적 보장과 의료 인력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의 의학교육 평가 인증을 통해 세세하게 규율되고 있다. 의평원은 각 의과대학에 1차 진료가 가능한 수준의 의사를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임상 실습 지침 등을 제공(의학교육 평가 인증 기본 기준 K2.5.1)하도록 하며, 일정한 기간 이상의 임상 실습 교육 기간을 운영(기본 기준 K2.5.3)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한 교육과정 및 교원 확보 측면에서도 의평원은 각 의과대학이 기초의학, 의료인문학, 임상의학 간 적절한 조화를 이루도록 하고(기본 기준 K2.6.1), 각 분과별로 적절한 수의 전임 교원을 확보(기본 기준 K5.1.1~5.1.4)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의평원의 입학 전형에 대한 평가 인증 기준은 객관적인 원칙에 기초한 학생 선발을 요구하고(기본 기준 K.4.1.1) 되도록 학생 선발 과정에서 인성 평가를 위한 면접 등을 실시할 것을 권고(우수 기준 H4.1.1)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현재 의대 입시를 대비하는 과정에서 입시 당사자가 겪는 시행착오, 의과대학 및 의사 직역이 요구받는 공익성을 고려했을 때 의대 입시 운영은 표준화될 필요가 있으며, 고교생 수준에 맞는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규율될 필요가 있다. 전형 기준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과대학은 어떤 인재를 선발하고자 하며 입학 전형의 과정에서 어떤 평가 기준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는지 투명하게 공개하고, 선발 기준 및 방식을 사회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보건복지부 혹은 의과대학들의 협의 기관을 통해 현재 극도로 파편화되어 있는 입시 전형을 규율하고 면접 등의 평가 요소를 공통화할 필요가 있다.

의대 입시는 현재 고교에서 대비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며, 이러한 현상이 타 모집 단위로 파급되는 상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현재의 선행 학습, ‘무한 N수’ 경향은 사실상 대학이 조장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 당국과 시민 사회는 대학이 누리는 과도한 자율성을 통제하고 고교생 수준에 맞게 평가의 형식과 내용을 제한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고 내신이나 수능 등 공교육 틀 내의 시험의 범위나 수준을 아무리 통제하려고 노력해 봐야 현재의 악순환이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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