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호[특집] 01 교육감 선거가 끝났다 - 여러 지역의 후기 모음 (최은숙ㆍ비비새시ㆍ이글ㆍ목성돼지ㆍ진냥)

202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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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교육과 선거와 정치 사이 2


01 교육감 선거가 끝났다

여러 지역의 후기 모음


최은숙
cesv1003@daum.net
전남 해남고 국어 교사.


비비새시
ericrow@hanmail.net
전북의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이글
2gleegle@gmail.com
전업으로 청소년운동을 하는 이글라고 합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활동합니다. 


목성돼지
khk1222k@naver.com
울산에 사는 휴식 중인 청소년인권활동가입니다.
퀴어이고, 청소년의 자기 결정권과 학습 시간 줄이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진냥
jinnyang3@gmail.com
고양이 3마리 집사. 초등 교사.



제4기, 전국 동시 지방 선거와 같이 치러진 것을 기준으로 하면 제3기 교육감 선거가 끝났다. 《오늘의 교육》에서는 여러 지역의 조합원과 필자들을 섭외하여 각 지역에서의 교육감 선거 참여 혹은 관전 후기를 모아 보았다.  필자들에게는 부담 없이 주관적으로 써 달라고 부탁했다. 


후기들을 살펴보면 몇 가지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  첫째, 교사·공무원의 정치적 자유 그리고 청소년의 참정권과 같은 고질적인 제도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데 대한 문제의식이다. 이는 특히 교육감 선거에서 좀 더 직접적인 관련 당사자들의 선거 참여나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결과를 낳고 있다. 교육감 선거는 물론 민주주의와 선거 제도 발전을 위해 꼭 풀어야 할 숙제다.


둘째,  교육감 선거 단일화 과정과 교육운동 등 시민사회단체들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다. 교육감 선거는 정당이 관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동안 많은 지역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경선과 정책 생산, 선거 운동 등의 역할을 맡으면서 일종의 유사 정당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이 가지는 한계도 뚜렷하다. 내부 경선 과정에서는 후보들 간 타협점을 찾기 급급하고, 선거 이후에도 당선된 교육감에게 가치 지향과 정책을 강제하는 연속성 있는 역할을 하기 어렵다. 교육감 선거가 3~4차례 치러지면서 현직 교육감들의 인지도와 세력이 굳어 지면서, 단일화에 실패하거나 단체들이 경선에서 뽑은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 가 ‘민주진보 교육감 후보’ 타이틀을 달고 당선이 되는 등 그 입지가 좁아지고 있기도 하다. 이는 교육감 선거의 제도적 개선을 모색하면서 함께 고려해야 할 현실이다. 


셋째, 정책적 쟁점의 문제이다. 무상 급식과 혁신학교 정책 이후에는 뚜렷한 교육감 선거에서의 정책 쟁점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학생인권 보장을 공격하고 소수자 혐오를 조장하는 주장이 득세하는 국면도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진보’를 표방하거나 과거 표방했던 후보가 이에 편승하고, 진보 교육감 후보 역시 학생인권 보장을 천명하지 못하는 등의 모습도 보였다. 공약들이 대동소이해지면서 ‘진보/보수’라는 틀만으로는 구분할 수 없는 선거가 된 지역도 있다. 교육감 선거에서의 정책적 쟁점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여타 지자체 선거가 그렇듯이, 중앙 집권적인 정치 현실에서 자치 및 분권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야기된 면이 있다. 동시에 앞으로 교육운동 및 진보 교육감들이 어떤 변화의 비전을 제시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 주기도 한다. 


어느 지역에서는 새롭고 믿을 만하고 진보적인 인물이 교육감에 당선되면서 기대를 하게 만들고 있고, 어느 지역에서는 ‘진보 교육감’이 최초로 탄생하나 싶었는데 결국 ‘보수 교육감’이 당선되기도 했으며, 또 어느 지역에서는 현직 교육감이 재선에 성공하지만 우려가 더 큰 경우도 있다. 여러 지역에서 모인 선거 후기들이 교육감 선거와 교육 자치의 미래, 나아가서는 이른바 ‘진보 교 육감’이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를 고민하기에 유의미한 생각거리들을 제공 하길 기대한다. - 편집부



01-1 전남 : 식당에서 남이 골라 준 메뉴로 식사하기

-최은숙


민선 4기 교육감 선거를 되돌아보며 생각해 보니 이건 딱 이렇다. 식당에 여럿이 밥을 먹으러 갔는데 나는 교사 또는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맘대로 고르지 못하고 남이 골라 준 밥을 먹어야 하는 처지에 있는 거다. 식당에서 주문받는 사람에게 내가 “순대국밥 주세요”라고 말하면 안 된다. 옆 사람을 꾹꾹 찔러 “나는 순대국밥이 좋아, 콩나물국밥이 좋아”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순대국밥 시켜 줘, 콩나물국밥 시켜 줘”라고말하면 안 되는 이상한 규칙이 있는 식당에 가서 밥 먹는 기분.


7~8년 전 일도 생각난다. 처음 민주노동당이 출범했을 때 민주노동당에 한 달에 1만 원 후원금을 냈다는 이유로, 전라남도 해남에 살면서 광주에 있는 검찰에 불려 가고 광주에 있는 법원으로 재판을 받으러 다니고 벌금형이 선고 유예되는 걸로 마무리되었던 일. 그렇게 검찰과 법원에만 2~3년간 다녔다.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교육’을 책임지는 사람에 대해 선거 운동을 할 권리가 없는 처지라, 선거 기간에 다른 시민사회단체나 암튼 다른 사람의 활동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던 내내 우리는 왜 ‘정치적 금치산자’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생각했다. 비단 교사만이 아니다. 학생들은 자기들의 삶을 결정지을 위치에 있는 사람을 다른 사람들이 뽑는 걸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초등학생·중학생은 물론이고 고등학생 중에서도 투표권을 가진 사람이 전혀 없다고 봐도 되는 상황이다. 교사도 학생도 내가 먹을 밥을 내가 고르지 못하는 규칙이 있는 식당에 들어간 처지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선거 시작 전, 예비 후보 경선에 열심히 참여하고 주위 지인들이나 학생들에게 예비 후보 경선에 참여할 수 있도록 ‘민주진보교육감추진위원회’의 가입 원서를 열심히 받고 예비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교육감 선거에 따른 향을 가장 많이 받을 교사와 학생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여서 선거를 지켜보는 동안 내가 교육감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후보가 될까 봐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전남 지역도, 대다수의 지역과 비슷하게 진보 교육감 후보가 당선되었다. 뭐, 전남 지역 교육감 당선자는 전교조 위원장 출신으로는 처음이라고 한다. 대학 총장 출신 후보를 었다가 뒤통수 맞은 경험을 갖고 있는 우리 지역에서는 당선된 후의 교육감의 행보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교육 정책에 대한 교사와 학생, 일반인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진보 교육감이 대거 당선되며, 긍정적인 효과가 보이고 있기는 하다. 특히 진보 교육감이 아닌, 강은희 대구시 교육감이 노조 전임을 요구한 교사에 대한 징계위를 열려고 하다가 전교조 법외 노조 문제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후로 징계를 미뤄 뒀다고 한다. 그동안 SNS를 통해 대구지부 교사들의 고초를 알고 있던 나로서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14명의 진보 교육감이자 10명의 전교조 출신의 교육감이 당선된 의미에 대한 이야기는 꼭 《오늘의 교육》 지면이 아니더라도 이미 많이 거론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서 전교조 법외 노조 문제 등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뻔한 이야기지만 다음 교육 자치 선거에서는 교사·공무원에 대한 여러 가지 법적 금지 사항들 그리고 청소년의 선거 참여를 위한 선거 연령 하향 등의 문제들이 다 해결되어서 교육의 중심인 사람들이 자기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면서 선거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교육감 후보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하고 투표하러 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01-2 전북 : 지극히 주관적인 교육감 선거 감상

-비비새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이루어 낸 촛불 이후의 첫 지방 선거. 기대는 많았다. 하지만 전북 교육감 선거에 주목할 만한 새로운 인물은 ‘서.거.석’. 눈물 난다. 내가 대학 다닐 때 법대 학장을 했던 사람.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에 전북대 총장을 ‘잘’했던 사람. 나는 그 정도로 그를 기억했다. 그의 공약은 안전, 기초 학력, 학생 복지, 교권을 큰 축으로 설계됐다. 기초 학력, 교권을 이야기하는 분들은 대체로 나에게는 ‘제국주의 자본주의 남성 가부장’으로 기억되고 있기에 다시 눈물이……. 교권 문제는 특히 부안 모 중학교 교사의 죽음이 김승환 전북 교육감이 그동안 학생인권을 지나치게 강조했기 때문에 초래됐다고 보는 사람들로 인해 뜨거운 이슈가 되어 있었고, 서거석은 그들과 함께하며 반 김승환 기류를 일으키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물론 서거석의 뒤를 추격하던 ‘전교조 교사 출신의 진보적인 기초 학력 중시 후보’ 이미 역시 이 이슈를 강력하게 고 있었다. 내 주변에서 흔히 ‘진보’적이라 불리던 많은 교사들도 교권을 이번 선거의 중요 이슈로 생각했던 것 같다. 전교조도 스승의 날 즈음에 교권 관련 설문 조사를 한 데다, 대구 초등 교사 학생 방치 사건(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초등생 용변 사건’이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부르지 않으면 좋겠다)이 더해지며 불에 기름을 끼얹은 듯 교권 이슈는 활활 타올랐다. 동성애에 대한 입장 표명을 각 후보에게 요청한 ‘동성애동성혼개헌반대국민연합’이 ‘피처링(featuring)’하며, 학생인권조례의 대척점으로서의 ‘교권 이슈’가 선거의 핵심이 됐다. 안철수도 문재인도 대선 때 그랬듯, 중도의 표심이 중요하고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아야 선거에서 승리하는 법이라고 다들 생각하는 것처럼 보다. 서거석을 비롯하여 이미, 천호, 이재경 후보가, 동성애동성혼개헌반대국민연합의 평가에 의하면 ‘50% 이하의 동성애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신중한 자세로 이슈에 접근했다. 아마도 동성애 혐오 세력 쪽에서는 못내 아쉬웠을 것이다. 전북에서 동성애에 ‘100% 반대’하는 교육감 후보가 없었던 것이.


반면 ‘3선 피로감’이라는 말과 함께 거론되는 ‘혁신과 진보’의 교육감 김승환은 여론 조사에서 꾸준히 1위를 차지하면서 순탄하게 출발했다. 하지만 이 교권 이슈를 무시할 수는 없었는지, 슬그머니 ‘인권 중심을 통한 학교 자치 실현’이라는 공약 속에 ‘교권 지원을 위한 법률 상담 및 소송 비용 지원(연 10억 원)’을 넣어 놓았다. 학생인권조례를 무시하는 학교나 교사로 인해 인권을 침해당한 학생들이 얼마며, 그들이 제기했던 또는 제기해야만 했던 소송은 또 얼마인데, 내가 과문한 탓인지 교육청에서 학생들의 소송 비용을 지원해 줬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교사는 직업으로서 돈이라도 벌지. 학생 재판 비용은 학부모가 대니까 괜찮다는 것인지. 이런 공약들을 보니 인권은 장식이거나 ‘진보의 알리바이’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어쩌면 서거석의 추격이 매서웠기에 김승환 교육감이 좀 더 ‘진보 쪽’에 구애를 했었는지도 모른다. 전교조 법외 노조화 취소라는 과감한 카드도 꺼내 들었으니까. 김승환 후보에게 다행이었는지 몰라도 전교조도 이번 선거에서 학생인권을 강하게 고 가진 못했다. 교권 관련 이슈에 워낙 강하게 조합원들이 반응했기 때문이었을까? 


반대로 학생인권조례를 그다지 지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후보들이 김승환 후보와 더불어 선거권 연령 하향 이슈에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이는 일도 있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에서 학생인권법, 어린이·청소년인권법 그리고 선거권 연령 하향 조정을 주장하며 교육감 후보들에게 질의서를 보냈을 때, 김승환 외에도 이미, 서거석 후보 등이 의견의 일치를 보다. 그중에도 압권은 이미 후보다. 그는 자신이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선정한 후보라며 보도 자료를 내기도 했다. 단지 질의서에 동의를 표시했던 20여 명의 전국의 교육감 후보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소개됐을 뿐인데 “선정됐다”는 보도 자료를 뿌리고 이를 사실 확인 없이 지방 신문 몇 곳에서 기사화했던 재미난 사건이었다.


청소년 참정권이 보장되지 않는 한, 학생인권을 여전히 장식으로나 이용하려 하는 ‘재미난 일’은 어쩌면 계속될 것 같다. 하지만 학생인권은 학생이 인간으로서 존엄함을 지키기 위한 실질적 수단이다. 청소년의 인권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실질적 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학생인권에 참정권은 필수다.


01-3 경남 : 우리에게는 얼마큼의 힘이 있나

-이글


나는 이번에 경남 ‘진보 교육감 후보’ 단일화 과정을 지켜보며 여전히 운동이 ‘단일화’를 이끌어 낼 힘이 전혀 없다는 걸 느꼈다.2014년 지방 선거 때 창출해 낸 1기 진보 교육감(이 타이틀에 동의하기 힘들지만)은 ‘좋은교육감만들기범도민운동본부’가 낳은 결과물이었지만, 이 단체에 참여한 사람들은 당선 이후의 감시와 견제의 역할을 충분히 해 내지 못했다. 결국 교육청은 지역 교육운동이 창출한 ‘공동 정부’다기보다는 진보적 교육운동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교육감 ‘개인’의 교육청으로 작동했다. 만일 교육청이 진보 진의 ‘공동 정부’로 여겨졌다면, 2018년 선거를 앞두고 ‘현직’이라는 이유가 단일화에서 이렇게 막강한 향력을 휘두를 수 있을 리도 없다.


올해 단일화 과정에서도 ‘현직 교육감’의 힘은 막강했고, 단일화 주체인 ‘경남촛불교육감범도민추진위원회(촛불추진위)’는 끌려 다니기 급급했다. 촛불추진위는 진보 후보 선출 과정을 장악하고 진보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구가 아닌, 후보 사이의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하는 기구의 역할을 했고, 선거를 3주 정도 앞두고서야 겨우 단일화를 이뤘다. 그 과정에서의 찐득찐득한 싸움과 에피소드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비슷한 일을 겪었을 게다. 경남에서도 1기 진보 교육감 시기에 교육운동의 견제 역할이 부족했다는 성찰은 있었지만, 박종훈 교육감이 재선에 성공한 지금 그러한 성찰이 지난 4년과는 다른 실천적인 노력으로 이어지는 모습은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단일화 과정에서 박종훈 교육감과의 단일화에 합의한 다른 후보(또는 그 후보 진)가 당선 이후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 것도 답답한 대목이다.


난 진보적 교육운동을 하는 이들이 선거를 잘 치러 내서 교육이 바뀔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거 시즌에만 모다가 흩어지는 교육운동 연대체, 당선 이후에 교육청을 압박하고 견제할 주체의 부재, 교육감 자리가 교육을 바꾸는 운동의 수단으로서 작용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후보 개인의 최종적 목적이 되는 상황은 별개로 화가 나는 것이다.


청소년운동의 정치 세력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고, 지역 교육운동이 충분히 힘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진보 교육감’ 자리가 노동 없는 진보, 학생인권 없는 진보, 자유주의적인 “진보”로 이어지는 것은 예측 가능한 결과이다. 우리에게 교육감을 견인하고 통제하고 우리 손아귀에서 놀게 할 힘이 없는 상태인데, 더 나은 후보로 단일화하는 것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가 든다. 지난한 싸움과 세력화가 없다면 기고만장한 ‘현직’과 ‘교육청’은 바꿔 낼 수 없을 게다.


01-4 울산 : 첫 여성 교육감이자 첫 진보 교육감

-목성돼지


울산광역시 교육감 선거에는 무려 7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단일화는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았고 진보 2명, 중도 2명, 보수 3명의 후보가 끝까지 완주했다. 이처럼 많은 후보들에다가 한국 선거 제도의 한계, 정당 공천제가 없는 교육감 선거의 한계 등이 모두 더해져 울산 교육감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깜깜이 선거’라고 할 만했다. 나 또한 꽤나 열심히 뉴스를 지켜보았지만 이렇다 할 정책적 쟁점은 형성되지 않았다. 애초에 과거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와 보수를 첨예하게 갈라놓았던 무상 급식 같은 이슈도 2016년 촛불 시위 이후 비교적 진보적이 된 여론 앞에서는 논쟁거리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후보들의 면면은 꽤나 화려했기에 후보들의 ‘상징성’과 ‘과거 경력’이라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꽤나 합리적인 판단 기준이 부각되었다고 생각한다.


후보가 7명이나 되었지만 초반부터 인지도가 높았던 것은 김석기, 노옥희, 정찬모 후보다. 김석기 후보는 제1대, 제4대 교육감을 지낸 적이 있었지만 한 번은 비리로, 한 번은 사전 선거 운동으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아 임기를 못 채우고 낙마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보수 후보이다. 심지어 두 번째 임기 때는 취임 다음 날 바로 구속되며 울산 시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보수 후보들 간의 단일화 논의도 있었지만 단일화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김석기 후보도 기존의 보수적인 조직을 중심으로 선거 운동을 시작했다.


노옥희 후보와 정찬모 후보는 둘 다 전교조 해직 교사 출신으로 울산에서 전교조를 이끌었던 ‘진보’ 후보로 묶이긴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의 행보는 꽤나 많이 달랐다.

노옥희 후보는 타 지역 사람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울산의 진보운동 내에서는 엄청난 상징성을 가진 정치인이다. 전교조뿐만 아니라 1980년대부터 울산의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에서 핵심적인 인물이었고, 민주노동당 및 진보신당 울산시당에서 중요 직책을 맡았다. 최근까지도 여러 시민운동에 적극적으로 연대해 온 정치인이다. 사실 울산에서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 중 노옥희 후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파를 떠나서 울산의 사회운동가들에게 노옥희 하면 “그분 언제 교육감은 하셔야 하는데”라는 말이 자동으로 따라 나오는 인물이기도 했다.


정찬모 후보는 전교조 해직 교사 출신으로 울산에서 교육의원을 지내며 진보적인 시민사회운동을 해 왔고 2014년 울산시 교육감 선거에 진보 단일 후보로 나선 바 있다. 2016년 총선에서는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직접 입해 더불어민주당의 울산 울주군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며 많은 인지도를 쌓기도 했다. 하지만 노옥희 후보에 비하면 진보 정치 안에서의 입지나 인지도가 적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찬모 후보는 진보적인 유권자 층에서는 노옥희 후보에게 앞설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노옥희 후보와의 단일화도 거부하고 기존 이미지보다 훨씬 보수적인 색채를 내세우며 중도 표 확산을 노렸다. 노옥희 후보는 울산의 30여 개 시민단체로부터 진보 교육감 후보로 단독 추대를 받으며, 울산의 노동조합을 비롯한 시민사회운동계의 지지를 기반으로 했다.


김석기, 노옥희, 정찬모 세 후보의 치열한 접전이 될 것이라고들 예상했지만 선거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마자 노옥희 후보가 여론 조사에서 1위를 굳혔고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는 벌어졌다. 후반에는 2위와 10%p 이상 차이가 벌어졌다. 막판에 김석기 후보와 정찬모 후보는 “동성애를 막아 내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돌리며 보수적인 기독교 표를 모아 보려고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선거에서는 노옥희 후보 35.6%, 김석기 후보가 18%를 득표했고 정찬모 후보는 중도적인 입장을 보던 울산대학교 교수 출신 구광렬 후보, 보수적인 입장이었던 박흥수 후보에게도 린 11.0%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이처럼 노옥희 후보가 압도적인 표를 받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2016년 촛불 시위와 그로 인한 탄핵 이후 울산은 과거에 비해 중도 진보-리버럴 중심으로 정치의 무게추가 옮겨 왔다. 단적으로 2014년에 구성된 울산시의회는 새누리당 21석, 새정연 1석의 구성이었지만 2018년 구성된 울산시의회는 자유한국당 5석, 더불어민주당 17석이었다. 자연스럽게 선거는 진보 후보에게 유리했다. 둘째, 청렴이 강조된 선거다. 앞서 이야기했듯 두 번이나 중도에 ‘잘린’ 김석기 후보를 포함해서 울산시 교육감을 지냈던 5명 중에 재판 없이 임기를 다 채운 교육감은 제3대 교육감밖에 없었다. 제2대 교육감은 병으로 사망한 것이니 어쩔 수 없었던 것이지만 제5대 교육감은 임기 내내 재판을 하다 당선 무효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가며 임기를 겨우 채웠고 제6대, 제7대 교육감은 근 1년째 구속 상태이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청렴한 교육감에 대한 열망이 강했고 김석기 후보도 나름 청렴함을 어필했지만 두 번이나 중도 낙마했다는 경력은 당연히 큰 마이너스로 작용했다. 셋째, 노옥희 후보에 대한 울산 내 사회운동 세력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었다. 울산은 전통적으로 노동운동이 강했다. 하지만 다른 선거들에서는 정당 간 갈등이나 진보 정당들에 대한 불신 때문에 울산 내 운동 세력의 지지는 뜨뜻미지근했다. 그에 비해 교육감 선거는 지지해야 할 후보가 명확했고 가능성도 높아 보다. 울산 내의 여러 운동 조직이 정말 오랜만에 노옥희 후보 지지로 뭉쳤고 이는 압도적인 득표 차이로 나타났다.


노옥희 교육감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선언을 했던 교사들에 대한 징계를 취소하는 것으로 첫 일정을 시작했다. 최근 강제 야간 자율 학습 폐지를 위한 로드맵을 만들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선거 운동이 시작되기도 전이었지만 ‘촛불청소년인권법’에 대해서도 지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그동안 진보 교육감들이 부딪혔던 문제에 노옥희 교육감도 부딪히게 될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교육감 혼자의 힘으로는 못 하는 것이 너무 많다. 제대로 된 진보 교육을 위해서는 ‘촛불청소년인권법’(청소년 참정권 보장, 학생인권법안, 어린이·청소년인권법),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 등 입법 및 행정 과정에서 문제가 풀려야 한다. 울산에서 첫 여성 교육감, 첫 진보 교육감이 탄생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사회운동이 해 나가야 할 역할이 크다.



01-5 대구 : 정책 선거가 못 된 이유는

-진냥


대구광역시 교육감 선거는 처음부터 어수선하긴 했다. 보수 성향의 후보든 진보 성향의 후보든 후보로 언급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진보 성향의 교육감 후보로 평해지는 사람들 중에 아무도 출마하겠다고 확실하게 밝히지 않았다. 눈치만 보다 시간이 흘다. 시민사회단체가 나서서 후보 단일화 과정을 주관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출마 선언을 한 후보들은 시민사회단체가 제안한 경선을 거부했다. 단체들은 모양새가 이상해졌고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출마한 후보들은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옹고집마냥 자신이 ‘진짜 진보 후보’라고 말이다. 이번에야말로 대구에서도 진보 교육감이 당선될 거라는 기대에 매몰된 것이 이번 대구 교육감 선거가 정책 선거가 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본격적인 선거 기간이 되어 공보물을 받았다. 교육감 후보 3명의 홍보물을 읽은 순간 바로 확신했다. 이번에도 대구에서는 ‘보수 교육감’이 당선되겠다고. 너무 차이가 났다. 실현 가능한 정도로 공약이 제시되어 있는 건 강은희 후보(현 당선자)뿐이었다. 공약의 내용과 방향성에 동의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이 사람이 교육감 후보로서 현재 대구의 교육 현안에 대해 알고 있고 준비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공보물만이 아니었다. 거리에 걸려 있는 후보별 현수막도 달랐다. 강은희 후보의 현수막은 구마다, 동마다 내용이 달랐다. 어디에는 안전한 등하교 도로를, 어디에서는 보육 정책을, 또 다른 곳에서 신설 학교 개교를 공약하고 있었다. 동네마다, 지역마다 각각의 교육 현안에 대해 맞춤형으로 짚고 있는 선거 현수막을 보고 입이 딱 벌어졌다. 이건 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선 이후 강은희 교육감의 행보도 그렇다. 취임 바로 다음 날 전 시민을 대상으로 정책 제안을 받는 사이트를 오픈했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우동기 전 교육감과 달리 전교조 대구지부와 면담도 하고 전임자 징계도 보류했다. 대구가 한 번도 진보 교육감을 경험하지 못한 것, 이번에도 대구는 진보 교육감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은 지금도 비통하다. 하지만 나는 강은희 교육감이 훌륭한 교육감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특히 택시를 타서 “여자가 교육감 당선됐는데 괜찮겠어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나 사람들이 ‘여자 교육감’ 운운할 때면 어금니를 꽉 물고 강은희 교육감을 응원한다. 여성 대통령이라는 타이틀로 소비되고 파면 후에도 여자라서 국정 농단 사태를 만든 거라며 비하당했던 박근혜와는 다르길 바란다. 또한, 같은 이유에서 지금이라도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내며 했던 위안부 합의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길 바란다. 


보수든 진보든 당선된 이상 좋은 교육감이 되는 것은 모두를 위한 일이자 강은희 교육감 본인의 의무다. 그리고 제아무리 좋은 교육감이라도 비판의 지점과 한계는 존재할 것이다. 당선된 교육감은 최선을 다하고 임기 동안 대구 지역에서 더 많은 의제가 발굴되고 인권적이고 민주적인 쟁점과 대안들이 들끓어 오르기를 소원한다. 그렇다면 정책으로 맞붙는 대구 교육감 선거를 4년 뒤에는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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