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학교 가는 길’ 위에서 던지는 질문들
- 김정인 감독, 〈학교 가는 길〉, 2020
글
하금철
hkcsp@hanmail.net
본지 편집위원
“여러분들이 모욕을 주셔도 저희 괜찮습니다. 지나가다가 때리셔도 맞겠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학교는 절대로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2017년 9월 5일, 이 절규 어린 말과 함께 전파를 탄 ‘무릎 꿇은 엄마’들의 사진이 한국 사회를 흔들었다. 서울에 17년 만에 처음 신설되는 특수학교를 반대한다는 주민들의 집단행동에 엄마들은 눈물로 호소했고, 전 국민이 이 님비 NIMBY 현상의 적나라한 민낯을 목격했다. 반대 주민들에게 여론의 비난이 쏟아졌고, 정부와 정치권도 이에 동조했다. 장애 학생 부모와 주민들 간의 갈등은 그 후로도 몇 년 더 지속되다가, 2020년 3월 1일이 되어서야 강서구 가양동에 ‘서진학교’라는 이름의 학교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2021년 어린이날에 맞춰 이 기나긴 싸움의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이 개봉했다. 독립 영화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2만 관객을 돌파할 정도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그간 장애인 님비 관련 보도는 워낙 휘발성이 강해서 자극적인 몇 장면으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져 주고 이내 기억에서 잊히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4년 전 ‘무릎 호소’를 다시 여론의 중심으로 소환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다시금 성찰하게 한 것은 너무나 소중한 시도다.
그러나 이 영화에 쏟아지는 관심만큼 실제 장애 학생의 교육과 지역 사회 통합을 위한 사회적 변화가 이뤄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를 거두기 어렵다. ‘무릎 호소’에 호응한다며 교육 당국은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특수학교 신설 등 수많은 계획을 쏟아 냈지만, 현실화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서진학교 싸움의 여정을 돌아보면서 그저 “엄마들의 땀과 눈물이 만든 빛나는 기적”이라며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으로 영화 감상평을 갈음하기에는 장애 학생 교육이 처한 현실이 그리 녹록지 않다.
서진학교 싸움을 통해 우리 사회가 거쳐 온 길을 다시 돌아보고, ‘학교 가는 길’의 끝에서 우리가 만나야 할 장애 학생 교육의 미래 모습은 어떤 것이어야 할지 본격적으로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한 질문 몇 가지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소셜 레이시즘’에 주어지는 인센티브
장애인 관련 시설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 여론이 이처럼 극단적인 혐오와 공격적인 언사들을 동반하며 나타난 현상은 비교적 최근의 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의 시초는 사실 서진학교 사건에 앞서 2015년에도 있었다. 서울시교육청이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중학교 내에 발달 장애인 직업능력개발센터를 만들려는 계획을 발표하자 인근 주민들이 격렬하게 반대했다. 주민들은 차라리 쓰레기 소각장, 원전 폐기물 매립지라면 찬성하겠지만 장애인센터는 안 된다고 말할 정도로 완강했다. 그들의 주장은 ‘장애인 시설에 대한 님비는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통속적인 비판으로는 이해가 어려울 정도로 지나치게 공격적이었다.
주민들 주장의 핵심에는 사실 발달 장애인에 대한 뒤틀린 ‘공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남녀공학 중학교에 발달 장애인 센터가 웬 말이냐” 같은 구호가 이러한 정서를 잘 보여 준다. 그즈음 발달 장애인의 우발적 행동으로 인한 사망 사건 등이 크게 보도되면서 ‘발달 장애인 = 예비 범죄자’라는 인식이 파다했고, 발달 장애인들이 여학생들에게 해코지라도 하면 누가 책임질 거냐는 목소리가 주민들 사이에서 지배적이었다. 특히 해당 중학교 학생들이 대거 시위에 참여해 이러한 주장을 스스로 대변하기도 했다.❶
주민들의 ‘공포’가 뒤틀린 것이라 말하는 이유는, 발달 장애인의 범죄율이 비장애인에 비해 결코 높지 않다는 등의 근거를 갖춘 반론이 전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발달 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은 장애인 차별·혐오 발언이 등장하면 공식처럼 뒤따르는 ‘장애 인식 개선 교육 필요’ 같은 제언으로 해소될 수 있는 게 전혀 아니었다. 핵폐기물보다 더 하등한 것으로 여겨지는 존재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가져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어느샌가 지역 사회 내에서 장애인은 최소한의 도덕적·정서적 민감성을 갖고 대해야 할 대상이라는 의미도 상실되어 ‘소셜 레이시즘social racism ’의 타겟이 되었다.❷
그로부터 2년 뒤 벌어진 서진학교 사건은 이 소셜 레이시즘 뒤에 어떠한 역사적 경험이 자리잡고 있는지를 드러냈다. 이 역사는 서진학교 공사 부지인 옛 공진 초등학교 이적지를 둘러싼 ‘도시 게토ghetto 형성과 소멸’의 역사이기도 했다. 잠시 〈학교 가는 길〉의 설명에 따라 그 역사를 들여다보자.
1990년대 초, 강서구 도시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영구 임대 단지인 4단지와 5단지 주민 입주와 동시에 공진초등학교가 1992년에 개교했다. 그런데 2년 후 큰길 하나를 마주 보고 탑산초등학교가 새로 개교했다. 탑산초에는 주로 분양 아파트 주민들의 자녀가 배치되면서, 공진초는 임대 단지 아이들의 학교라는 이미지가 강해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임대 단지의 초등학생 수가 줄고 인근 주민들이 공진초 진학을 꺼리게 되자, 강서 교육지원청은 2011년 9월 공진초를 대규모 아파트가 있는 마곡으로 이전하겠다는 행정 예고를 한다. 이어 2013년 10월 공진초와 탑산초의 학구 통합이 예고된다. 공진초로 배정받은 학생을 둔 분양 아파트 부모들의 민원 때문이었다. 이로써 공진초에 자동 배정되었던 학생들 중 적지 않은 수가 탑산초로 전학을 가기 시작했고, 자연히 공진초의 학생 수는 더 줄어들었다. 이제 공진초를 마곡으로 완전히 이전할 명분은 또렷해졌다. 강서교육지원청은 기존 공진초 학생들을 탑산초로 보내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에 공진초 부모들이 반발했다. 서로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도 이토록 심한 차별을 받고 있는데, 같은 학교에 다닌다면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놀림을 받을지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부모들의 호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분교가 된 가양동의 공진초는 2015년 2월에 결국 폐교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시교육청이 공진초 이적지를 신설 특수학교 부지로 선정한 것이다.
임대 단지 주민들은 특수학교 반대 시위의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호의적이지도 않았다. 가난한 집 아이들만 따로한 학교에 몰아넣고 노골적인 차별을 해 오다가 결국 그 학교마저 없애 놓고 이제 와서 장애인을 위한 학교로 바꾸겠다니, 그들 입장에선 달가울 리 없었다.
이렇게 임대 단지 주민들은 냉소와 환멸, 배신감을 느끼며 고립되어 있는 사이, 강서구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김성태 국회의원이 공진초 이적지에 한방 병원을 건립하겠다는 공약을 내걸면서 갈등이 본격화되었다. 학교 부지에 한방 병원을 짓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김성태 의원과 주민들은 “서울시교육청이 다른 특수학교 부지를 알아보지도 않고 공진초로 밀어붙인다”며 공격했다.
또한 “강서구에 이미 장애인 시설이 포화 상태인데 왜 또 강서구냐”라는 항변도 등장했다. 즉, ‘차별’은 장애인이 아니라 서울 변두리 지역인 강서구가 당해 온 것이라는 논리였다.
인류학자 정헌목은 초기 아파트의 의미가 매매 대상으로서 구매자가 확보한 전용 공간 위주로 고려되었던 반면, 2000년대 이후 브랜드 아파트 등장으로 단지 내 거리와 시설 등 공유 공간의 관리처럼 “사회적 요소들로 엮인 ‘삶의 가치들’ 역시 중요한 고려 대상”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특히 경제적·사회적 자원과 학력 자본에 있어서 최상위에 있는 지역성 자체가 아파트의 ‘가치 상승’을 담보해 주는 강남과 달리, 주택 가격 결정에 수많은 변수가 작동하는 비강남 아파트들의 경우 가치 상승 요인을 주민들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❸
그런 점에서 볼 때, 강서구 주민들이 지역 내에서 임대 단지를 고립시키고, 유력 정치인과 합세하여 특수학교 대신 한방 병원을 유치하려는 집단적 실천을 벌인 것은 아파트와 그 주변 환경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형적인 ‘비강남 행동주의’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시도 속에서 ‘차별’의 의미는 전도되고, 장애인과 빈곤 계층의 삶을 돌보는 일은 지역 사회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결과적으로 특수학교 대신 한방 병원을 유치하려는 시도는 여론의 비난에 직면하여 좌절되었지만, 그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서진학교는 물론이고 앞으로 어떤 특수학교 신설을 고민하더라도 주민들의 여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인센티브’를 내놓아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시교육청은 2018년 9월 서진학교 설립에 주민들과 합의하면서 인근 학교 통폐합 시 그 부지를 한방 병원 건립에 최우선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애초에 한방 병원 유치 주장의 근거가 공진초 인근 지역이 ‘허준 테마 거리’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었는데, 이 지역에서 또 다른 유휴 학교 부지가 생길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약속은 사실 ‘공수표’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러한 약속은 의무 교육 기관 설립에 대가를 지불하는 것과 같은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여지는 충분하다.
2019년 9월 개교한 서초구 나래학교의 경우에도 주민 반발이 상대적으로 심하지는 않았지만 특수학교 설립 조건으로 일반 건물 층수 제한 완화를 요구했다. 그리고 최근 발표된 대부분의 특수학교 설립 계획들은 하나같이, 마치 패키지처럼 ‘주민 편의 시설 설치’를 제시하고 있다. 주민 갈등 요소를 완화하고 정책 과제를 실현해야 하는 교육 당국 입장에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소셜 레이시즘에 대가가 제공되는 현실은 과연 바람직한가? 교육 당국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지역 주민과 상생하는 특수학교를 만드는 과정인가? 이런 논의 속에서 상상되는 장애 학생 교육의 이미지는 대체 무엇인가?
‘물리적 공간’ 확보 논의에 갇힌 장애 학생 교육
이와 관련하여 최근 서진학교 사건을 주목한 몇 편의 학술 논문들이 눈길을 끈다. 먼저 바람직한 특수학교 신설 모델로서 대구 세명학교에 주목한 김은지의 논문이다.❹ 세명학교는 학생 과밀 해소를 위해 정원을 182명에서 274명으로 늘리겠다는 계획하에, 2017년부터 시설 확장 공사를 추진한다. 그러나 공사는 개인 재산권 침해 등을 제기하는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에 대구광역시는 학교 시설 확장과 함께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산책 공간, 수영장, 체육관, 피트니스 등의 주민 편의 시설을 배치하여 주민 상생 방안을 제시했다.
김은지는 이를 ‘복합형 특수학교’라 부르면서, 완공 후 주변 지역 아파트 실거래가 등을 분석해 본 결과 특수학교 인접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비인접 지역보다 더 높게 나온다는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특수학교로 인해 아파트 가격이 떨어진다는 속설을 반박할수 있게 되었다고 이 결론을 반기기에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왜냐면 이 연구의 논리대로라면 아파트 가격 하락을 방어한 것은 특수학교 자체가 아니라 패키지로 딸려 온 수영장, 체육관, 피트니스 등이기 때문이다. 이 논문의 어디에서도 장애 학생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이 높아졌다는 것은 확인할 수 없다. 여기서는 오직 특수학교라는 장애 학생을 ‘수용’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앙상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갈등 조정 방안이 논의되고 있을 뿐이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취임 초부터 제시한 ‘소규모 특수학교’ 설립이라는 방안 역시 마찬가지다. 조 교육감은 특수학교가 하나도 없는 자치구에 특수학교를 1개 이상 세우고자 하는데, 지역별로 부지 규모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100여 명 규모의 작은 특수학교도 적극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2018년에는 〈장애 유형 및 지역 여건을 반영한 특수학교 설립·운영 방안 연구〉 용역을 발주하기도 했다. 이 연구의 목적은 장애 학생의 원거리 통학 문제 해결, 인구 밀집이라는 서울의 특수성을 반영한 특수학교 모델 연구, 중증 중복 장애 학생의 통합 지원을 위한 학교-병원 통합 특수학교 모델 연구 등이다.
여기서의 문제의식 또한 장애 학생을 ‘수용’할 물리적 공간의 확보와 일반 특수학교에서도 감당하기 힘든 중증 장애 학생의 분리 공간 확보일 뿐이다. 님비 현상 대두 이후 나온 대책이라 ‘하드웨어’에 집중하는 태도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장애 학생 교육의 내용과 질을 확장하기 위한 고민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무릎 호소’라는 강력한 이미지에 가려져 잘 인식되지 못했던 중요한 사실 하나를 상기해야만 한다. 많은 가족들은 장애인 자녀가 일반 학교 또는 일반 학교 통합 학급을 다니며 더 많은 교육적 경험을 쌓고 사회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지만, 현실적인 장벽에 떠밀려 특수학교를 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자녀를 장애 학생 지원 여건이 열악한 일반 학교에 초등학교 3학년 1학기까지 보내다 결국 특수학교로 전학을 보낸 부모의 토로다.
“(특수학교에 보내니) 일단 마음은 훨씬 편하죠. 선생님과 학부모, 다른 친구들까지 모두 장애에 대한 이해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학업은 사실상 포기했어요. 정민학교에는 발달 장애인 학생들이 많아서, 수업이 그 친구들에 맞춰서 진행돼요. 재현이는 이제 수업 시간이 따분해진 거죠. 이미 한글도 다 알고 하는데, 수업 시간에는 곰 세 마리 부르고 있으니까요. ‘개별화 교육’ 상담할 때 수준에 맞는 교육을 요청드렸지만, ‘기본 교육과정’ 학교라서 어렵다는 거예요. ‘통합 교육과정’ 제공하는 특수학교 가려면 주소를 옮겨야 하고요. 결국, 학교에서 학업은 포기하고 집에서 따로 공부하고 있어요. 한 달에 8만 원 정도 하는 유료 사이트로요.”❺
이처럼 특수학교는 통합 교육 환경의 부재로 인해 일반 학교에서 밀려난 장애 학생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가는 곳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러는 과정에서 부모들이 갖는 교육적 기대와 욕구도 위축되어, 특수학교가 그저 낮 시간에 아이를 맡아 주는 기계적인 돌봄 기능만이라도 잘해 주길 바라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장애 학생의 부모들이 무릎까지 꿇어 가며 특수학교 신설을 요구하는 것을 마치 그들의 순수한 교육 수요를 표출한 것인 양 오해해서는 안 된다. 냉정히 말해서 ‘무릎 호소’는 자녀 돌봄 압박에 대한 현실적 두려움과 절박함을 표출한 것이지, 교육적 욕구의 표출은 아니었다. 〈학교 가는 길〉의 말미에 김남연 서울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이 말하는 것처럼, 장애 학생 교육은 궁극적으로 일반 학교 안에서 비장애 학생과의 통합을 통해 이뤄져야만 하며, 특수학교 설치 요구는 당장의 교육 및 돌봄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그런데 기존 특수교육계 일각에서는 부모들의 이런 절박한 호소를 ‘제 논에 물 대기 식’으로 가져다 쓰며 “학부모들은 통합 교육보다는 특수학교와 같은 분리 교육 체제를 더 원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진주교대 정용석 교수는 2018년 발표된 한 논문❻에서 말하기를, 1994년 전면 개정된 〈특수교육진흥법〉 및 2007년제정된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이래로 통합 교육을 지향하게 되면서 특수학교가 법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좋지 않은 기관으로 인식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서진학교 사건을 통해 “현실적으로 특수학교는 통합 교육 논쟁에서 개념화되는 나쁜 교육 공간이 아니라 특수 아동에게 혜택을 주는 긴요하고 좋은 교육 공간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강제적 분리로 인한 차별 문제가 발생하는 공간은 오히려 일반 학교 특수 학급이었다고 주장한다.
1970년대 초등·중학교 무시험 제도 시행에 따라 학습 부진아 문제 해결을 위해 일반 학교 특수 학급이 만들어졌는데, 그 이후로 특수학급이 없는 학교에서 학습 부진아를 강제로 전학시키는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반면 특수학교는 애초에 ‘장애 학생(만)을 위한’ 교육 공간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그런 차별이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많은 국민들이 ‘무릎 호소’를 지켜보며 마음이 움직인 것과는 별개로, 실제 특수교육계 내부의 논의가 얼마나 퇴행적인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증거이다. 현재의 특수학교 체제가 장애 학생이 앞으로 누리게 될 교육 환경의 최대치여야 하는가? 그렇다면 특수학교 체제가 상상하는 장애 학생의 진로와 성인기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2015년 시설 비리 및 인권 침해 사건 이후 공익 이사진이 파견되어 운영되고 있는 사회복지법인 인강재단의 이승헌 이사장은 재단 산하 특수학교인 인강학교 운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인강재단 보호 작업장에도 인강학교 출신이 많다. 졸업했을 때 가장 빠르고 쉽게 접하는 정보여서 그런 것 같다. ‘어차피 시설 들어간다’는 생각에 자립을 위한 여러 가지 시도가 어렸을 때부터 이뤄지지 않고, 결국엔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니 특수학교에서 교육이라는 것이 훈육과 통제 중심으로 돌아간다. (……) ‘시설 들어갈 때까지 잘 봐 주면 되지’, 이렇게 생각하는 흐름이 이미 오랫동안 고착되어 있다고 본다.” ❼
솔직히 말해 오늘날 한국의 장애 학생 교육은 어떤 교육적 가치와 목표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 ‘어차피 시설 들어간다’와 같은 숙명론이 지배할 뿐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을 깨지 않은 채 특수 학교를 아무리 많이 만든다고 해도 결국 ‘성인이 되면 시설로 보내질 예비 격리 대상자’를 훈련시키는 과정이 만들어지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포기의 제도화’를 넘어
“아들이 고3 졸업하는 날,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아들을 9년간 시설에 맡겼다가 지난해 퇴소해 지원 주택 제도를 통해 자립의 길을 걷게 하고 있는 한 중증 발달 장애인의 어머니가 한 말이다.❽
학교는 성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곳이다. 그런데 그 준비 과정이 다 끝났을 때 오히려 어머니는 자기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준비 과정에서 아무런 준비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학교는 오직 부모의 불안과 부담을 미래의 어떤 시점(졸업) 이후로 유예시켜 주는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포기의 제도화’라고도 부를 수 있을 이런 현상으로 인해 나타난 공백을 대신 채워 준 것은 ‘시설’이었다. 그렇게 특수교육과 시설은 한 세트처럼 운영되어 왔다.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에 담긴 장애 학생의 부모들의 싸움은 그들에게 더 포기할 것이 남아 있지 않음을, 혐오와 차별에도 불구하고 학교만큼은 지키겠다는 결연한 선언이었다. 그런데 부모들의 피땀을 담아 지킨 학교가 결국엔 장애 학생의 성인기 이후의 삶에 대해 ‘포기’를 학습하도록 하는 역할만 할 뿐이라면 너무나 허망하지 않은가. 부디 이 싸움의 의미가 자극적인 사진 몇 장으로만 남지 않기를, 장애 부모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처럼 ‘포기의 제도화’를 넘어 특수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공론장에서 진지하게 논의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❶ 동대문구 제기동 발달 장애인 직업능력개발센터 설치 과정에서의 논란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논의는 [하금철, 〈발달장애인 공포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오늘의 교육》, 30호(2016년 1·2월)] 참조.
❷ ‘소셜 레이시즘’이라는 표현은 영국의 보육 현장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일본 출생의 작가 브래디 미카코에게서 가져왔다. 그녀는 영국 중산층 부모들이 ‘정치적 올바름(PC)’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는 외국인 차별에는 민감한 반면, 자국민 하층 계급 가정에 대한 차별은 ‘정치적 올바름’과 무관한 것으로 보고 가난한 집 아이들과 같은 시설에 아이를 맡기기를 거부하는 현상을 꼬집으며 이를 ‘소셜 레이시즘’이라 불렀다.(브래디 미카코, 노수경 옮김(2019), 《아이들의 계급투쟁》, 사계절)
❸ 정헌목(2016), 〈가치 있는 아파트 만들기 - 수도권 브랜드 단지에서의 공동체 형성의 조건과 실천〉, 《비교문화연구》, 22(1).
❹ 김은지(2020), 〈특수교육시설의 입지가 아파트 가격에 미치는 영향 분석 : 주민편의시설 복합형 특수 학교를 중심으로〉, 대구대학교 도시학과 석사 학위 논문.
❺ “통합학급 증설은 왜 정답이 되지 못했나”, 〈비마이너〉, 2017년 10월 25일.
❻ 정용석(2018), 〈한국 특수교육에서의 특수학교 정체성에 대한 고찰〉, 《발달장애연구》, 22(4).
❼ “시설 중심의 장애인 정책이 낳은 ‘교육 포기’가 특수학교 폭력 사태를 만들었다”, 〈비마이너〉, 2018 년 10월 22일.
❽ “아들이 고3 졸업하는 날,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닷페이스〉, 2021년 7월 7일.
리뷰
‘학교 가는 길’ 위에서 던지는 질문들
- 김정인 감독, 〈학교 가는 길〉, 2020
글
하금철
hkcsp@hanmail.net
본지 편집위원
“여러분들이 모욕을 주셔도 저희 괜찮습니다. 지나가다가 때리셔도 맞겠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학교는 절대로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2017년 9월 5일, 이 절규 어린 말과 함께 전파를 탄 ‘무릎 꿇은 엄마’들의 사진이 한국 사회를 흔들었다. 서울에 17년 만에 처음 신설되는 특수학교를 반대한다는 주민들의 집단행동에 엄마들은 눈물로 호소했고, 전 국민이 이 님비 NIMBY 현상의 적나라한 민낯을 목격했다. 반대 주민들에게 여론의 비난이 쏟아졌고, 정부와 정치권도 이에 동조했다. 장애 학생 부모와 주민들 간의 갈등은 그 후로도 몇 년 더 지속되다가, 2020년 3월 1일이 되어서야 강서구 가양동에 ‘서진학교’라는 이름의 학교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2021년 어린이날에 맞춰 이 기나긴 싸움의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이 개봉했다. 독립 영화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2만 관객을 돌파할 정도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그간 장애인 님비 관련 보도는 워낙 휘발성이 강해서 자극적인 몇 장면으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져 주고 이내 기억에서 잊히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4년 전 ‘무릎 호소’를 다시 여론의 중심으로 소환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다시금 성찰하게 한 것은 너무나 소중한 시도다.
그러나 이 영화에 쏟아지는 관심만큼 실제 장애 학생의 교육과 지역 사회 통합을 위한 사회적 변화가 이뤄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를 거두기 어렵다. ‘무릎 호소’에 호응한다며 교육 당국은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특수학교 신설 등 수많은 계획을 쏟아 냈지만, 현실화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서진학교 싸움의 여정을 돌아보면서 그저 “엄마들의 땀과 눈물이 만든 빛나는 기적”이라며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으로 영화 감상평을 갈음하기에는 장애 학생 교육이 처한 현실이 그리 녹록지 않다.
서진학교 싸움을 통해 우리 사회가 거쳐 온 길을 다시 돌아보고, ‘학교 가는 길’의 끝에서 우리가 만나야 할 장애 학생 교육의 미래 모습은 어떤 것이어야 할지 본격적으로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한 질문 몇 가지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소셜 레이시즘’에 주어지는 인센티브
장애인 관련 시설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 여론이 이처럼 극단적인 혐오와 공격적인 언사들을 동반하며 나타난 현상은 비교적 최근의 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의 시초는 사실 서진학교 사건에 앞서 2015년에도 있었다. 서울시교육청이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중학교 내에 발달 장애인 직업능력개발센터를 만들려는 계획을 발표하자 인근 주민들이 격렬하게 반대했다. 주민들은 차라리 쓰레기 소각장, 원전 폐기물 매립지라면 찬성하겠지만 장애인센터는 안 된다고 말할 정도로 완강했다. 그들의 주장은 ‘장애인 시설에 대한 님비는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통속적인 비판으로는 이해가 어려울 정도로 지나치게 공격적이었다.
주민들 주장의 핵심에는 사실 발달 장애인에 대한 뒤틀린 ‘공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남녀공학 중학교에 발달 장애인 센터가 웬 말이냐” 같은 구호가 이러한 정서를 잘 보여 준다. 그즈음 발달 장애인의 우발적 행동으로 인한 사망 사건 등이 크게 보도되면서 ‘발달 장애인 = 예비 범죄자’라는 인식이 파다했고, 발달 장애인들이 여학생들에게 해코지라도 하면 누가 책임질 거냐는 목소리가 주민들 사이에서 지배적이었다. 특히 해당 중학교 학생들이 대거 시위에 참여해 이러한 주장을 스스로 대변하기도 했다.❶
주민들의 ‘공포’가 뒤틀린 것이라 말하는 이유는, 발달 장애인의 범죄율이 비장애인에 비해 결코 높지 않다는 등의 근거를 갖춘 반론이 전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발달 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은 장애인 차별·혐오 발언이 등장하면 공식처럼 뒤따르는 ‘장애 인식 개선 교육 필요’ 같은 제언으로 해소될 수 있는 게 전혀 아니었다. 핵폐기물보다 더 하등한 것으로 여겨지는 존재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가져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어느샌가 지역 사회 내에서 장애인은 최소한의 도덕적·정서적 민감성을 갖고 대해야 할 대상이라는 의미도 상실되어 ‘소셜 레이시즘social racism ’의 타겟이 되었다.❷
그로부터 2년 뒤 벌어진 서진학교 사건은 이 소셜 레이시즘 뒤에 어떠한 역사적 경험이 자리잡고 있는지를 드러냈다. 이 역사는 서진학교 공사 부지인 옛 공진 초등학교 이적지를 둘러싼 ‘도시 게토ghetto 형성과 소멸’의 역사이기도 했다. 잠시 〈학교 가는 길〉의 설명에 따라 그 역사를 들여다보자.
1990년대 초, 강서구 도시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영구 임대 단지인 4단지와 5단지 주민 입주와 동시에 공진초등학교가 1992년에 개교했다. 그런데 2년 후 큰길 하나를 마주 보고 탑산초등학교가 새로 개교했다. 탑산초에는 주로 분양 아파트 주민들의 자녀가 배치되면서, 공진초는 임대 단지 아이들의 학교라는 이미지가 강해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임대 단지의 초등학생 수가 줄고 인근 주민들이 공진초 진학을 꺼리게 되자, 강서 교육지원청은 2011년 9월 공진초를 대규모 아파트가 있는 마곡으로 이전하겠다는 행정 예고를 한다. 이어 2013년 10월 공진초와 탑산초의 학구 통합이 예고된다. 공진초로 배정받은 학생을 둔 분양 아파트 부모들의 민원 때문이었다. 이로써 공진초에 자동 배정되었던 학생들 중 적지 않은 수가 탑산초로 전학을 가기 시작했고, 자연히 공진초의 학생 수는 더 줄어들었다. 이제 공진초를 마곡으로 완전히 이전할 명분은 또렷해졌다. 강서교육지원청은 기존 공진초 학생들을 탑산초로 보내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에 공진초 부모들이 반발했다. 서로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도 이토록 심한 차별을 받고 있는데, 같은 학교에 다닌다면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놀림을 받을지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부모들의 호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분교가 된 가양동의 공진초는 2015년 2월에 결국 폐교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시교육청이 공진초 이적지를 신설 특수학교 부지로 선정한 것이다.
임대 단지 주민들은 특수학교 반대 시위의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호의적이지도 않았다. 가난한 집 아이들만 따로한 학교에 몰아넣고 노골적인 차별을 해 오다가 결국 그 학교마저 없애 놓고 이제 와서 장애인을 위한 학교로 바꾸겠다니, 그들 입장에선 달가울 리 없었다.
이렇게 임대 단지 주민들은 냉소와 환멸, 배신감을 느끼며 고립되어 있는 사이, 강서구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김성태 국회의원이 공진초 이적지에 한방 병원을 건립하겠다는 공약을 내걸면서 갈등이 본격화되었다. 학교 부지에 한방 병원을 짓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김성태 의원과 주민들은 “서울시교육청이 다른 특수학교 부지를 알아보지도 않고 공진초로 밀어붙인다”며 공격했다.
또한 “강서구에 이미 장애인 시설이 포화 상태인데 왜 또 강서구냐”라는 항변도 등장했다. 즉, ‘차별’은 장애인이 아니라 서울 변두리 지역인 강서구가 당해 온 것이라는 논리였다.
인류학자 정헌목은 초기 아파트의 의미가 매매 대상으로서 구매자가 확보한 전용 공간 위주로 고려되었던 반면, 2000년대 이후 브랜드 아파트 등장으로 단지 내 거리와 시설 등 공유 공간의 관리처럼 “사회적 요소들로 엮인 ‘삶의 가치들’ 역시 중요한 고려 대상”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특히 경제적·사회적 자원과 학력 자본에 있어서 최상위에 있는 지역성 자체가 아파트의 ‘가치 상승’을 담보해 주는 강남과 달리, 주택 가격 결정에 수많은 변수가 작동하는 비강남 아파트들의 경우 가치 상승 요인을 주민들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❸
그런 점에서 볼 때, 강서구 주민들이 지역 내에서 임대 단지를 고립시키고, 유력 정치인과 합세하여 특수학교 대신 한방 병원을 유치하려는 집단적 실천을 벌인 것은 아파트와 그 주변 환경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형적인 ‘비강남 행동주의’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시도 속에서 ‘차별’의 의미는 전도되고, 장애인과 빈곤 계층의 삶을 돌보는 일은 지역 사회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결과적으로 특수학교 대신 한방 병원을 유치하려는 시도는 여론의 비난에 직면하여 좌절되었지만, 그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서진학교는 물론이고 앞으로 어떤 특수학교 신설을 고민하더라도 주민들의 여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인센티브’를 내놓아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시교육청은 2018년 9월 서진학교 설립에 주민들과 합의하면서 인근 학교 통폐합 시 그 부지를 한방 병원 건립에 최우선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애초에 한방 병원 유치 주장의 근거가 공진초 인근 지역이 ‘허준 테마 거리’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었는데, 이 지역에서 또 다른 유휴 학교 부지가 생길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약속은 사실 ‘공수표’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러한 약속은 의무 교육 기관 설립에 대가를 지불하는 것과 같은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여지는 충분하다.
2019년 9월 개교한 서초구 나래학교의 경우에도 주민 반발이 상대적으로 심하지는 않았지만 특수학교 설립 조건으로 일반 건물 층수 제한 완화를 요구했다. 그리고 최근 발표된 대부분의 특수학교 설립 계획들은 하나같이, 마치 패키지처럼 ‘주민 편의 시설 설치’를 제시하고 있다. 주민 갈등 요소를 완화하고 정책 과제를 실현해야 하는 교육 당국 입장에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소셜 레이시즘에 대가가 제공되는 현실은 과연 바람직한가? 교육 당국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지역 주민과 상생하는 특수학교를 만드는 과정인가? 이런 논의 속에서 상상되는 장애 학생 교육의 이미지는 대체 무엇인가?
‘물리적 공간’ 확보 논의에 갇힌 장애 학생 교육
이와 관련하여 최근 서진학교 사건을 주목한 몇 편의 학술 논문들이 눈길을 끈다. 먼저 바람직한 특수학교 신설 모델로서 대구 세명학교에 주목한 김은지의 논문이다.❹ 세명학교는 학생 과밀 해소를 위해 정원을 182명에서 274명으로 늘리겠다는 계획하에, 2017년부터 시설 확장 공사를 추진한다. 그러나 공사는 개인 재산권 침해 등을 제기하는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에 대구광역시는 학교 시설 확장과 함께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산책 공간, 수영장, 체육관, 피트니스 등의 주민 편의 시설을 배치하여 주민 상생 방안을 제시했다.
김은지는 이를 ‘복합형 특수학교’라 부르면서, 완공 후 주변 지역 아파트 실거래가 등을 분석해 본 결과 특수학교 인접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비인접 지역보다 더 높게 나온다는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특수학교로 인해 아파트 가격이 떨어진다는 속설을 반박할수 있게 되었다고 이 결론을 반기기에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왜냐면 이 연구의 논리대로라면 아파트 가격 하락을 방어한 것은 특수학교 자체가 아니라 패키지로 딸려 온 수영장, 체육관, 피트니스 등이기 때문이다. 이 논문의 어디에서도 장애 학생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이 높아졌다는 것은 확인할 수 없다. 여기서는 오직 특수학교라는 장애 학생을 ‘수용’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앙상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갈등 조정 방안이 논의되고 있을 뿐이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취임 초부터 제시한 ‘소규모 특수학교’ 설립이라는 방안 역시 마찬가지다. 조 교육감은 특수학교가 하나도 없는 자치구에 특수학교를 1개 이상 세우고자 하는데, 지역별로 부지 규모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100여 명 규모의 작은 특수학교도 적극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2018년에는 〈장애 유형 및 지역 여건을 반영한 특수학교 설립·운영 방안 연구〉 용역을 발주하기도 했다. 이 연구의 목적은 장애 학생의 원거리 통학 문제 해결, 인구 밀집이라는 서울의 특수성을 반영한 특수학교 모델 연구, 중증 중복 장애 학생의 통합 지원을 위한 학교-병원 통합 특수학교 모델 연구 등이다.
여기서의 문제의식 또한 장애 학생을 ‘수용’할 물리적 공간의 확보와 일반 특수학교에서도 감당하기 힘든 중증 장애 학생의 분리 공간 확보일 뿐이다. 님비 현상 대두 이후 나온 대책이라 ‘하드웨어’에 집중하는 태도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장애 학생 교육의 내용과 질을 확장하기 위한 고민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무릎 호소’라는 강력한 이미지에 가려져 잘 인식되지 못했던 중요한 사실 하나를 상기해야만 한다. 많은 가족들은 장애인 자녀가 일반 학교 또는 일반 학교 통합 학급을 다니며 더 많은 교육적 경험을 쌓고 사회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지만, 현실적인 장벽에 떠밀려 특수학교를 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자녀를 장애 학생 지원 여건이 열악한 일반 학교에 초등학교 3학년 1학기까지 보내다 결국 특수학교로 전학을 보낸 부모의 토로다.
“(특수학교에 보내니) 일단 마음은 훨씬 편하죠. 선생님과 학부모, 다른 친구들까지 모두 장애에 대한 이해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학업은 사실상 포기했어요. 정민학교에는 발달 장애인 학생들이 많아서, 수업이 그 친구들에 맞춰서 진행돼요. 재현이는 이제 수업 시간이 따분해진 거죠. 이미 한글도 다 알고 하는데, 수업 시간에는 곰 세 마리 부르고 있으니까요. ‘개별화 교육’ 상담할 때 수준에 맞는 교육을 요청드렸지만, ‘기본 교육과정’ 학교라서 어렵다는 거예요. ‘통합 교육과정’ 제공하는 특수학교 가려면 주소를 옮겨야 하고요. 결국, 학교에서 학업은 포기하고 집에서 따로 공부하고 있어요. 한 달에 8만 원 정도 하는 유료 사이트로요.”❺
이처럼 특수학교는 통합 교육 환경의 부재로 인해 일반 학교에서 밀려난 장애 학생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가는 곳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러는 과정에서 부모들이 갖는 교육적 기대와 욕구도 위축되어, 특수학교가 그저 낮 시간에 아이를 맡아 주는 기계적인 돌봄 기능만이라도 잘해 주길 바라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장애 학생의 부모들이 무릎까지 꿇어 가며 특수학교 신설을 요구하는 것을 마치 그들의 순수한 교육 수요를 표출한 것인 양 오해해서는 안 된다. 냉정히 말해서 ‘무릎 호소’는 자녀 돌봄 압박에 대한 현실적 두려움과 절박함을 표출한 것이지, 교육적 욕구의 표출은 아니었다. 〈학교 가는 길〉의 말미에 김남연 서울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이 말하는 것처럼, 장애 학생 교육은 궁극적으로 일반 학교 안에서 비장애 학생과의 통합을 통해 이뤄져야만 하며, 특수학교 설치 요구는 당장의 교육 및 돌봄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그런데 기존 특수교육계 일각에서는 부모들의 이런 절박한 호소를 ‘제 논에 물 대기 식’으로 가져다 쓰며 “학부모들은 통합 교육보다는 특수학교와 같은 분리 교육 체제를 더 원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진주교대 정용석 교수는 2018년 발표된 한 논문❻에서 말하기를, 1994년 전면 개정된 〈특수교육진흥법〉 및 2007년제정된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이래로 통합 교육을 지향하게 되면서 특수학교가 법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좋지 않은 기관으로 인식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서진학교 사건을 통해 “현실적으로 특수학교는 통합 교육 논쟁에서 개념화되는 나쁜 교육 공간이 아니라 특수 아동에게 혜택을 주는 긴요하고 좋은 교육 공간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강제적 분리로 인한 차별 문제가 발생하는 공간은 오히려 일반 학교 특수 학급이었다고 주장한다.
1970년대 초등·중학교 무시험 제도 시행에 따라 학습 부진아 문제 해결을 위해 일반 학교 특수 학급이 만들어졌는데, 그 이후로 특수학급이 없는 학교에서 학습 부진아를 강제로 전학시키는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반면 특수학교는 애초에 ‘장애 학생(만)을 위한’ 교육 공간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그런 차별이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많은 국민들이 ‘무릎 호소’를 지켜보며 마음이 움직인 것과는 별개로, 실제 특수교육계 내부의 논의가 얼마나 퇴행적인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증거이다. 현재의 특수학교 체제가 장애 학생이 앞으로 누리게 될 교육 환경의 최대치여야 하는가? 그렇다면 특수학교 체제가 상상하는 장애 학생의 진로와 성인기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2015년 시설 비리 및 인권 침해 사건 이후 공익 이사진이 파견되어 운영되고 있는 사회복지법인 인강재단의 이승헌 이사장은 재단 산하 특수학교인 인강학교 운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인강재단 보호 작업장에도 인강학교 출신이 많다. 졸업했을 때 가장 빠르고 쉽게 접하는 정보여서 그런 것 같다. ‘어차피 시설 들어간다’는 생각에 자립을 위한 여러 가지 시도가 어렸을 때부터 이뤄지지 않고, 결국엔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니 특수학교에서 교육이라는 것이 훈육과 통제 중심으로 돌아간다. (……) ‘시설 들어갈 때까지 잘 봐 주면 되지’, 이렇게 생각하는 흐름이 이미 오랫동안 고착되어 있다고 본다.” ❼
솔직히 말해 오늘날 한국의 장애 학생 교육은 어떤 교육적 가치와 목표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 ‘어차피 시설 들어간다’와 같은 숙명론이 지배할 뿐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을 깨지 않은 채 특수 학교를 아무리 많이 만든다고 해도 결국 ‘성인이 되면 시설로 보내질 예비 격리 대상자’를 훈련시키는 과정이 만들어지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포기의 제도화’를 넘어
“아들이 고3 졸업하는 날,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아들을 9년간 시설에 맡겼다가 지난해 퇴소해 지원 주택 제도를 통해 자립의 길을 걷게 하고 있는 한 중증 발달 장애인의 어머니가 한 말이다.❽
학교는 성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곳이다. 그런데 그 준비 과정이 다 끝났을 때 오히려 어머니는 자기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준비 과정에서 아무런 준비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학교는 오직 부모의 불안과 부담을 미래의 어떤 시점(졸업) 이후로 유예시켜 주는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포기의 제도화’라고도 부를 수 있을 이런 현상으로 인해 나타난 공백을 대신 채워 준 것은 ‘시설’이었다. 그렇게 특수교육과 시설은 한 세트처럼 운영되어 왔다.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에 담긴 장애 학생의 부모들의 싸움은 그들에게 더 포기할 것이 남아 있지 않음을, 혐오와 차별에도 불구하고 학교만큼은 지키겠다는 결연한 선언이었다. 그런데 부모들의 피땀을 담아 지킨 학교가 결국엔 장애 학생의 성인기 이후의 삶에 대해 ‘포기’를 학습하도록 하는 역할만 할 뿐이라면 너무나 허망하지 않은가. 부디 이 싸움의 의미가 자극적인 사진 몇 장으로만 남지 않기를, 장애 부모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처럼 ‘포기의 제도화’를 넘어 특수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공론장에서 진지하게 논의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❶ 동대문구 제기동 발달 장애인 직업능력개발센터 설치 과정에서의 논란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논의는 [하금철, 〈발달장애인 공포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오늘의 교육》, 30호(2016년 1·2월)] 참조.
❷ ‘소셜 레이시즘’이라는 표현은 영국의 보육 현장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일본 출생의 작가 브래디 미카코에게서 가져왔다. 그녀는 영국 중산층 부모들이 ‘정치적 올바름(PC)’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는 외국인 차별에는 민감한 반면, 자국민 하층 계급 가정에 대한 차별은 ‘정치적 올바름’과 무관한 것으로 보고 가난한 집 아이들과 같은 시설에 아이를 맡기기를 거부하는 현상을 꼬집으며 이를 ‘소셜 레이시즘’이라 불렀다.(브래디 미카코, 노수경 옮김(2019), 《아이들의 계급투쟁》, 사계절)
❸ 정헌목(2016), 〈가치 있는 아파트 만들기 - 수도권 브랜드 단지에서의 공동체 형성의 조건과 실천〉, 《비교문화연구》, 22(1).
❹ 김은지(2020), 〈특수교육시설의 입지가 아파트 가격에 미치는 영향 분석 : 주민편의시설 복합형 특수 학교를 중심으로〉, 대구대학교 도시학과 석사 학위 논문.
❺ “통합학급 증설은 왜 정답이 되지 못했나”, 〈비마이너〉, 2017년 10월 25일.
❻ 정용석(2018), 〈한국 특수교육에서의 특수학교 정체성에 대한 고찰〉, 《발달장애연구》, 22(4).
❼ “시설 중심의 장애인 정책이 낳은 ‘교육 포기’가 특수학교 폭력 사태를 만들었다”, 〈비마이너〉, 2018 년 10월 22일.
❽ “아들이 고3 졸업하는 날,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닷페이스〉, 2021년 7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