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호[특집] 학생이 소비자가 아닌 주체가 되는 교육 (송민재)

202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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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선택권이라는 함정 - 고교 학점제, 체제를 강화할 것인가 변혁할 것인가


학생이 소비자가 아닌 주체가 되는 교육

- ‘선택권 논리’를 넘어 학생인권 보장과 체제 전환이 필요하다



송민재

mjsong21k@naver.com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주지부


문재인 정부가 고교 학점제를 빠른 속도로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2025년 고교 학점제 전면 시행을 목표로 매년 고교 학점제 연구·선도 학교 비율을 늘려 가고 있다. 고교 학점제를 도입하기 위한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고교 학점제 반대 교사 선언이 발표되기도 했고, 충북 지역에서는 66.2%의 교사가 고교 학점제에 반대하고 있다는 설문 조사 결과도 나오기도 했다. 전교조는 선결 과제 이행 없는 고교 학점제 추진에 우려 입장을 밝혔고, 교총도 교사 부족 등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물론 일부 교육운동단체에서는 고교 학점제가 ‘의미 있는 배움과 성장을 선택할 기회를 줄 수 있는 필요한 개혁 조치’라며 환영하고 있기도 하며, 교육부는 고교 학점제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형성하기 위한 홍보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고교 학점제를 직접적으로 적용받는 건 학생인데, 학생의 권리 차원에서 고교 학점제는 어떤 의미일 수 있을까.



온전한 권리 보장 없이는 선택권도 없다


고교 학점제는 학생에게 선택권을 부여해 자신이 수강할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현재와 같이 모든 학생이 정해진 수업을 듣는 획일적인 방식이 아닌, 개개인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수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언뜻 듣기에는 좋아 보인다. 지금의 교육이 얼마나 학생들에게 억압적이고 획일적인지 생각해 보면 고교 학점제를 환영하는 여론에도 충분히 공감이 간다. 정부의 발표처럼 정말 학교가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배움의 공동체’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고교 학점제가 실제로 적용될 학교 현장과 입시 제도의 모습을 놓고 생각해 보면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고교 학점제의 취지는 학생의 선택권을 강화하여 학생 개개인의 수요에 부응하는 교육을 구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권 강화 논리는 제7차 교육과정(1997년)부터 현재 문재인 정부에 의해 추진 중인 2022 개정 교육과정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교육 정책의 역사에 일관되게 등장해 온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선택권 강화’, ‘다양화’ 등으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적 교육 정책은 그럴듯한 도입 목적과는 다르게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고교 다양화 정책이 있다. 학생의 학교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명목 아래 기숙형 고등학교 150개교,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 100개교, 마이스터 고등학교 50개교를 허가한 ‘고교 다양화 300’ 정책은 결국 고교 서열화 심화라는 문제만을 남겼다. 학생들에게 자유로운 선택권이 보장되었다기보다는 학생들이 학교에 따라 서열화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무조건적인 선택권 확대 정책은 한계를 보이고 있고, 정말 학생에게 필요한 것이 ‘선택권’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사실 정부와 학교가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학교는 두발, 복장, 휴대전화 사용 등 학생의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억압과 통제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학생을 삶의 주체가 아닌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각종 불합리한 규정에 몸과 생각을 끼워 맞출 것을 요구한다. 머리카락 모양과 오늘 내가 입을 옷도 자유롭게 선택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교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억압적인 상황 속에서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긴 한 걸까? 어떻게 보면 기만이다. 기본적인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함으로써 학생 중심 교육을 실현할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학생이 선택권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으려면 학생의 권리를 보장하고, 학생의 의사와 결정을 존중하는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학교에 그런 문화가 존재하는가? 일상에서 어른들은 학생들을 ‘미성숙한 존재’,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며 학생들의 선택을 쉽게 신뢰하지 않는다. 일상의 사소한 일에서부터 학생 자치, 학교 운영에 이르기까지 어른들은 학생의 의사를 존중하는 데 인색하다.


또한 학생의 유일한 자치 기구인 학생회는 학생 자치 기구로서의 성격을 사실상 잃어버린 지 오래다. 지금의 학생회는 학생의 뜻에 따라 민주적으로 운영되며 학생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는 기구가 아니라, 축제를 비롯한 각종 학교 행사를 준비하고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기구에 불과하다. 학생회가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거나 학교 운영에 문제를 제기해도 학교는 무시하기 일쑤다. 꼬투리를 잡아서 학생회 간부를 징계하거나, 처음부터 학생회가 그런 요구를 하지 못하도록 지도 교사가 제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생은 학교운영위원회 참여에서도 배제된다. 〈초·중등교육법〉상 학교운영위원회는 교원 대표, 학부모 대표, 지역 사회 인사로 구성된다. 학교 구성원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학생은 정작 학교 운영의 중요한 사항에 대한 심의하고 결정할 권한을 가지지 못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학생인권조례 등에 따라 학생 대표가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석하여 발언할 수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결정권을 보장받지는 못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작년 2020년 5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등교 개학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학생 의견 수렴이 이루어졌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교사와 학부모 의견에 학생들 의견이 일정 부분 반영되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우리 사회가 학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 장면이었다. 이렇게 학생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문화가 만연한 상황에서 학생이 제대로 된 선택권을 누릴 수 있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다.


과목 선택권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의 참여권·자치권 그리고 학생의 의사를 존중하는 태도다. 권리 신장 없이 오로지 선택권만 부여하는 것에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학부모나 교사에 의해 특정 과목 선택을 강요받거나, 학교의 편의에 따라 특정 과목을 선택하도록 유도되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입시 위주 교육에서 선택권이 가져올 문제


한국의 고등학생은 전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을 공부에 할애한다. 학교에서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그리고 집에 와서 새벽까지 또 공부한다. 에너지 드링크나 커피를 마셔 가며 밤을 새우는 일도 적지 않다. 학생들이 이렇게 긴 시간 공부하는 이유는 대학 입시 때문이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입시는 학교교육이 안내하는 거의 유일한 길이고, 여기에서 이탈하는 사람은 낙오자로 취급된다. 즉, 우리 교육은 입시를 위한 교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입시 위주의 교육을 그대로 둔 채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장점은 없이 부작용만 생길 뿐이다. 실제로 고교 학점제를 시범 운영 중인 학교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과목이 세분화되어 수강 학생 수가 줄어들다 보니 1등급이 2명밖에 안 나오는 현상이 벌어진다. 그에 따라 내신 경쟁이 고교 학점제 도입 이전보다 더 치열해지기도 한다. 심화 과목의 성적을 잘 받기 위해서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내신 경쟁과 사교육 등의 현상은 고교 학점제가 시행되기 이전부터도 존재하던 것들이다. 그런데 고교 학점제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악화시킬 위험성이 크다는 게 문제이다. 대학 입시라는 목표와 자유로운 선택권 보장은 양립 불가능하다. 입시 경쟁 체제하에서 선택할 수 있는/선택해야 하는 과목은 정해져 있으며, 학생들은 입시에서의 유불리를 따져 과목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둘이 양립 가능하다면, 그것은 학생 간 격차를 심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동일한 과목이 기초/심화반으로 나뉘어 개설됨으로써 사실상 우열반이 생기고, 이는 학생의 ‘선택’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현재의 입시 경쟁 체제를 그대로 둔 채 선택권만 부여하는 것은 교육 격차와 불평등을 심화하고 학생의 학습 부담을 가중시키게 된다.



선택권을 넘어 교육의 주체로


나 역시 대학교를 다니면서 학점제를 통해 운영되는 대학교육을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교에서도 학생은 수업과 서비스의 수요자/소비자에만 머무를 뿐, 교육의 주체가 되지는 못한다. 오히려 시장의 논리에 따라 ‘인기 없는’ 기초·순수 학문 학과가 통폐합되는 등 대학교육의 공공성이 훼손되고 학생의 교육권이 침해되는 사례만 늘고 있다. 선택권이 곧바로 학생의 교육권 신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말만 번지르르한 선택권 논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말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이 선택권일까? 선택권은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는 권리다. 일종의 소비자적 권리인 셈이다. 그렇기에 학생에게 선택권을 강조하며 말하는 순간, 학생은 소비자의 지위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현재의 억압적이고 일방적인 교육 현실을 생각하면 소비자의 지위를 얻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진보인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의 지위를 얻는 것과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고 학생의 주체성을 강화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방향이다.


흔히 ‘학생은 학교의 주인’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학생은 학교의 주인이므로 ‘주인 의식’을 발휘해 학교 기물을 아끼고 열심히 청소해야 한다고 설교하는 교장 선생님부터, 민주시민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감까지. 그러나 정말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이야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기 위해서는 주인으로서의 권리,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어떤 교육을 받고,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할지 결정할 수 있는 권리 말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학생이 교육의 주체로 인정받는다는 뜻이다. 학생이 교육의 주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학생인권 신장 및 학생의 의사와 결정을 존중하는 문화 형성이 필수적이다. 학생을 지도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 교육과 학교를 함께 만들어 가는 주체로 인정하고, 실질적인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학생의 결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하는 문화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입시 경쟁 체제의 전환이다. 한국의 입시 경쟁은 경쟁에서 이겨서 더 많은 사회적 자원을 획득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교육이란 본래 그런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대학 평준화를 통해 입시 경쟁을 해소함으로써 교육의 보편성과 공공성이 담보될 수 있는 교육 체제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학생들의 교육에 대한 권리를 정말로 넓혀 줄 학생인권 보장 정책과 경쟁 체제의 해소에는 의지가 없으면서 ‘학생의 선택권’을 앞세워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의 모습에 학생의 선택권이라는 말이 핑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학생에게 정말 필요한 것들은 ‘선택권’이라는 좁은 틀에 가둘 수 없는 권리, 존중, 참여, 보편성, 공공성과 같은 것들이다. 이제는 선택권 논리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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