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호[리뷰] 교사의 내면을 이해해 주는 문화가 생겨나길 (김태현)

2020-01-01
조회수 2074

리뷰


교사의 내면을 이해해 주는 문화가 생겨나길 




이혁규 씀, 《수업 비평가의 시선》, 교육공동체 벗, 2018


김태현

경기 안양 백영고 교사
esfkth@naver.com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 중이며, 좋은교사 수업코칭연구소 부소장이기도 하다.
쓴 책으로는 <교사, 수업에서 나를 만나다>, <교사, 삶에서 나를 만나다>가 있다.



현실의 무게를 말하지 않는 이야기는 참 공허하다. 간혹 현장의 고충을 잘 모르고 “수업을 이렇게 해야 한다” 당위적으로 외치는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참 답답하다. 역량 중심 수업, 과정 중심 평가, 배움 중심 수업, 프로젝트 수업, 하브루타 등 참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들이지만 교사의 아픔을 이해하지 않고, 이런 것들이 한국의 교육을 해결해 주는 구원책인 것처럼 열변을 토하고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느냐?”며 교사들을 은근히 압박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 한마디 하고 싶다. 그렇게 좋은 것이면 “당신이 직접 한번 시험을 보이라!”라고 말이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중학교 학생들과 입시 경쟁에 찌들어 학교에서 그저 엎드려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말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교사들은 수업을 안 하시는 분들이 수업에 대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야기할 때 불편함을 참 많이 느낀다.


수업의 변화는 지식적인 측면에서 설명할 수 없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 분명 좋은 수업의 요건에 나오는 대로, 수업 내용을 삶의 맥락에서 재구성하고, 학생들과 눈을 맞추고, 이름을 부르지만 수업은 여전히 시끄럽다. 학생들에게 다가서려고 노력하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마음의 문을 닫고, 교사의 이런 시도들을 버거워한다. ‘왜 안 될까?’ 교사들의 질문은 늘 계속된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애써 보지만 왜 생각하는 대로 학생들은 움직여 주지 않고, 수업은 나날이 힘들어질까?


그래서 많은 교사들은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교사가 되었는데, 수업을 하면서 그런 마음이 점점 사라져 간다. 관료주의와 입시 경쟁의 학교 문화 속에서 교사들은 지쳐 가고 결국에는 무기력이 학습되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냉소주의에 빠진다. 그래서 우리는 수업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교사의 교육적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고, 애쓰고 있는 교사의 마음을 격려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교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수업의 외형을 바꾸는 기술과 방법이 아니라, 교사의 한 수업 한 수업을 따듯하게 바라봐 주는 위로의 시선이다. 이런 점에서 이혁규 교수의 새 책 《수업 비평가의 시선》은 교사들에게 큰 위로를 준다. 연구자들 중에서 교사들의 수업을 어떤 틀로 가두지 않고, 교사의 수업 행위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바라봐 주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교사들은 힘을 얻는다.


교사들은 하루에도 많은 수업을 한다. 그런데 이상하리 만큼 그 수업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나름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배움을 주려고 디자인을 한 수업인데도, 하루가 지나면 그 수업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속에서 어떤 상황이 있었고,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혁규 교수는 비평가의 시선으로 교사의 작은 행위까지도 소중하게 봐 준다. 교사의 교육적 선택이 학생들의 배움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수업 내용에서 교사의 신념과 철학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세심하게 바라봐 준다. 이런 그의 시선은 교사를 인상파 화가처럼 묘사한다. 기계적으로 교육과정을 이해하는 교육 기관의 부속물이 아니라, 수업 내용으로 학생들을 의미 있게 성장시키려는 교육 예술가로 교사들을 의미 있는 존재로 바라봐 준다. 그래서 그의 책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분명 남의 수업을 보는데도, 내 수업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이혁규 교수가 묘사하는 수업 장면을 보면서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고 고민하게 한다.


다양한 수업의 의미를 찾는 비평


이 책에는 요즘 소위 ‘핫하다’고 하는 교육 콘텐츠들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담겨 있다. 이것은 현장의 교사들에게 굉장히 의미 있어 보인다. 배움의 공동체, 하브루타, 프로젝트 수업, 학원 강사 설민석의 강의까지 이미 교사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 교육 콘텐츠에 대해 이혁규 교수는 본인 특유의 시선으로 각 콘텐츠들을 비판적으로 비평하고 있다. 사실 교사의 수업은 한 가지 빛깔로 확정 지을 수 없다. 지난 시절 우리가 경험해 왔던 수많은 교육운동들은 나름 의미가 있었던 반면, 자꾸만 교사들의 다양한 빛깔의 수업을 하나로 획일화시키는 단점도 있었다. 배움의 공동체식 수업이 아무리 의미가 있어도 모든 상황에서 통할 수 있는 진리는 아니다. 하브루타가 학생들의 사고력을 신장시키는 수업 모형일지라도 모든 교사가 이것을 사용할 수는 없다. 교사의 수업은 같은 내용을 다룰지라도 교실의 분위기, 학생들의 정서적인 느낌, 교사의 수업 디자인 등 여러 복합적인 요소들이 반되기 때문에 교사들마다 다른 빛깔의 수업이 나온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 가지 색깔로 수업을 통일시키려는 우를 범한다. 디베이트 수업, 질문이 있는 수업, 비주얼 씽킹, 거꾸로교실 등 아직도 교육부, 교육청에서는 수업을 하나로 통일하려는 전체주의적 위험성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강의식으로 수업을 하게 되면, 소위 ‘못하는 수업’, ‘준비가 덜 된 수업’이라고 지적받는 분위기다.


그런데 이혁규 교수의 수업 비평은 이런 획일화된 수업에 경고를 준다. 모든 수업이 의미가 있고, 그 수업은 다 그것대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강의식 수업에서도 교사가 어떻게 설명을 하고, 어떤 예로 학생들과 교감하느냐에 따라서 그 수업도 의미 있는 수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배움의 공동체, 하브루타, 프로젝트 수업도 각기 가지고 있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 그의 이런 수업 비평이 소중하다. 교사가 더 깊이 있는 시선으로 자신의 수업을 들여다보게 하고, 자신만의 수업, 나만의 수업을 찾게 해 주는 길잡이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끝으로 《수업 비평가의 시선》에는 묘한 긴장감이 맴돈다. 비평가의 시선과 수업 실천가인 교사의 시선이 충돌할 때이다. 이혁규 교수가 아무리 탁월한 수업 비평가일지라도, 수업을 직접 한 교사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다. 책에서는 비평가의 과 수업자의 을 동시에 배치하면서, 수업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한다. 이혁규 교수의 비평에 대해 동의하는 교사도 있지만, 그의 비평에 동의하지 않는 교사들도 제법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비평과 실천이 공존하면서 서로 충돌하고 이해하려는 모습과 노력이야말로 앞으로 우리 교육 현장이 나아가야 할 하나의 방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디 이 책을 많은 연구자와 교사들이 읽어서 수업을 ‘수업’으로 이해하는 문화가 생겨나길 기대한다. 그리고 수업의 외형과 장식이 아닌 본질을 말하고, 수업을 하는 교사의 내면을 깊이 이해하는 문화가 생겨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0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