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호[지상중계] 교사와 청소년이 변화의 주체가 되는 페미니즘 (공현)

지상 중계/ 청소년×페미니즘 포럼


교사와 청소년이 변화의 주체가 되는 페미니즘


때와 곳 2018년 5월 13일, 서울 소셜팩토리
정리 공현 기자



교육공동체 벗,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전교조 여성위원회, 청소년페미니즘모임 4개 단체가 공동으로 주최하여 청소년의 삶과 교육 속에서 페미니즘 실천 사례와 과제를 공유하는 ‘청소년×페미니즘 포럼’이 열렸다. 포럼 발표 내용 중, 이전에《오늘의 교육》등 지면에서 담은 적이 없는 초등 교사, 중등 교사, 그리고 대안학교 교사의 실천 사례 세 편을 편집하여 전한다.




01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것은 교사의 권력을 성찰하는 것


솔리
전교조 여성위원회


저는 초등학교에서 교사를 하고 있고, 솔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교사들과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도 많이 가고 학부모, 보호자분들과 이야기하는 자리에도 종종 갔는데, 이렇게 청소년분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라 긴장이 많이 되네요. 제가 초등 교사로서 학교나 교실을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여기 계신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이거나 탈학교 청소년인 분들에게 얼마나 공감이 될지 걱정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잘못 이야기하는 게 있다면, 언제든 얘기해 주시면 배우는 기회로 삼고 감사히 듣겠습니다.


요즘 제가 페미니즘 실천을 하면서 드는 고민들을 나눠 보려고 합니다.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독재자랑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 중 누가 밤에 잠을 편하게 잘까요? 당연히 민주 국가의 대통령일 것 같아요. 모든 권력자는 권력의 전복을 두려워하니까요. 교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교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학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불행한 교사어요. 제가 천성적으로 카리스마 있게 학생들을 장악하는 그런 교사가 못 되기 때문이에요. 초임 발령을 받은 교사에게 선배 교사들이 많이 하는 조언 중 하나가, “첫 한 달은 웃어 주지도 말라”예요. 굉장히 폭력적이죠. 얼마나 학생을 두려워하면, 1년을 함께할 사람들을 만났는데 웃어 주지도 못하는지. 저는 그 말을 듣자마자 그렇게 못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러면 학생들과 어떻게 만나는 게 좋은 만남일지 고민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그러다가 교실에서 여러 문제들을 만나게 됐어요. 대표적으로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흔히 ‘일진’이라고 하는 남학생이 저를 공격하는 상황들을 만나게 됐어요. 제가 “여러분, 책을 봅시다” 하고 말하면 “싫은데요? 왜요?” 하는 식이죠. 이런 상황, 청소년분들도 보신 적 있을 거예요. 저는 그게 젠더 권력으로 교사와 학생 간의 권력을 뒤집으려는 전형적인 시도다고 생각해요. 선배 교사들은 저한테 협박·위협을 하라거나 내가 학생보다 우위에 있음을 증명하라는 등의 조언을 했어요. 저는 그걸 못 해서괴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가 고민하다가 민주적 학급 운에 대한 책들도 읽어 봤는데, 읽을수록 ‘이게 가능한가? 더 엉망이 되진 않을까?’ 이런 고민만 들었어요. 저도 학생들을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만 본 거죠. 제가 관리하고 통제하지 않으면 엉망이 될 거라고만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러다가 페미니즘을 만나면서 저 자신을 많이 성찰하게 됐어요. 교실이 정말 폭력적이지 않고 평등하고 민주적이려면 그 안에 채울 내용이 중요한데, 그 내용이 바로 페미니즘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것은 교사가 자신의 권력을 성찰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제가 올해 5학년 학생들을 만나는 이야기를 말드릴게요. 저희 반에 없는 것들이 있어요. 초등학교 고학년에서는 그런 대립들이 많거든요. “아, 남자애들이 이래요!” 그러면 남자애들은 또 “여자애들이 먼저 이러잖아요!”라고 말하고. 저는 모든 여자애들이 그러는지, 모든 남자애들이 그러는지 질문을 해 봐요. 학생들도 아니라는 걸 알거든요. 남자는 여자는 이렇다는 구분의 말이 저희 반에 없어요. 그러니까 집에서도 부모님께서 “넌 남자애가 그러면 안 되지!” 하고 말하면, 아이들이 “그렇게 말하면 안 돼요” 하고 이야길 한다고, 저한테 보호자분들이 말해 주시더라고요.


제가 보이지 않는 곳에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희 반은 다른 반에 비해서 폭력이 현저히 적어요. 점심 시간에 급식을 줄 서서 기다릴 때, 다른 반 교사들이 저한테 가끔 물어봐요. 그 반 친구들은 왜 이렇게 얌전하냐고. 제가 보면 얌전하지 않거든요? 즐겁게 놀고 있어요. 춤을 추기도 하고 게임을 하기도 하고 큰 소리로 즐겁게 이야길 나누고 있어요. 그런데 흔히 하는 찌르고 치고 고 당기고 하는 장난들이 없거든요. 그걸 보고 다른 교사들이 얌전하다고 표현을 하는 거예요. 학생들끼리 잡아당기거나 그럴 때 가서 물어봐요. “잡아당기기 전에, 친구한테 잡아당겨도 되는지 허락을 구했나요?” 그러면 학생들이 황당해하죠. 그래도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상대방의 몸을 존중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학생들이 “저희는 그냥 서로 좋아서 하는 건데요?” 하면서 폭력적인 행동을 정당화 하는 경우도 있죠. 그럴 때는 “선생님 생각에는 너무 폭력적인 걸로 보이는데……”라고 이야기만 해도 다시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 반은 소위 ‘잘나가는’, 성적이든 외모든 뭐가 됐든 학급에서 권력을 가진 학생들 한두 명이 목소리를 크게 내서 학급 분위기를 주도하는 게 없어요. 발언권이 적은 학생이 발언을 하면 네가 뭔데 감히 발언을 하느냐 하는 얼굴과 말투로 돌아보고 핀잔을 주는 모습이 없습니다. 제가 잘해서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저는 초등성평등연구회에 속해 있어서 많은 수업을 연구해서 하고 있고, 학급에서도 늘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하지만 제가 잘해서 학생들이 바뀌었다고 보지 않아요. 변화의 주체는 학생들이라고 생각을 해요. 저는 단지 저의 권력을 성찰하고 교실 안의 권력을 같이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한 것밖에 없는데, 그런 변화를 이끌어 낸 주체는 저희 반 학생들이거든요.


요즘 저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애써 학생들과 제가 함께 만들어 놓은 것들이 학교 전체 규모에서는 가로막히고 깨지는 거예요. 예를 들면 학급 어린이 회의에서 민주적인 과정을 거쳐서 우리 반만이 아니라 전교에서 논의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와서 전교 어린이 회의에 가서 안건을 제의하자고 했어요. 그 회의를 한 후로 세 번의 전교 어린이 회의가 있었는데 한 번도 우리 반 학생이 발언권을 얻지 못했어요. 회의에서 정해진 의제만 논의하는 데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건의는 다음에 하라고 해서요. 그런데 그 정해진 의제라는 건 “인사를 잘하자”, “부모님께 효도하자” 같은 것들이에요. 또, 저희 학교는 아직 남학생은 1번부터 시작하고 여학생은 51번부터 시작하는 출석 번호를 써요. 저희 반은 제가 가나다 순으로 만든 번호를 따로 알려 주고, 입력할 때는 제가 다시 바꿔서 입력하는 작업을 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줄을 설 때도 오는 순서대로 자유롭게 서요. 그런데 체육 시간에는 교과 전담 선생님이 남자 두 줄 여자 두 줄 서게 하고 남학생만 시범을 보이게 하는 거죠.


저는 이런 일에 대해 학생들한테 저도 맞서 싸울 테니 여러분도 스스로 싸우자고 이야기해요. 여기 오신 청소년분들도, 그래도 ‘어린이’에 속하는 초등학생들보다 변화를 이끌어 낼 기회나 주도적 역할을 할 기회가 좀 더 많지 않을까 기대도 합니다. 저는 연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지지해 주고 조언해 주고 제가 모르는 것을 알려 주고 고민을 나누는 동료 교사들, 제가 잘못할 때 알려 주는 저희 반 학생들이 없었다면 지금 하는 것도 못 했을 것 같아요. 여러분도 연대 속에서 함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주체가 되기를 응원합니다.


(청소년×페미니즘 포럼 1부 진행 중이다.)



02 페미니즘교육 실천을 동료 교사들과 먼저 이야기하자


주윤아

전교조 여성위원회


중등 교사 주윤아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페미니즘교육을 하는데에 플러스, 마이너스 양면이 모두 있는 혁신학교예요. 물론 혁신학교인 것이 페미니즘교육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됐던 것은 사실이고요. 여러분, 학교에서 성평등을 가장 가로막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네, 바로 교사들입니다. 학교는 2월에 교사들이 새 학기 워크숍을 하거든요. 올해는 제가 자청해서 겨우 20분 강의 시간을 받아서 ‘성평등에 대한 교사들의 실천’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했어요. 교사들의 철학을 단기간에 바꾸긴 불가능하니까, 먼저 구체적 실천 방법이라도 알려 주자고 생각했어요. 학교에서 교사들이 어떤 성평등 실천을 해야 하는지를 10여 가지 전달했어요. 주로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자는 식이죠. 이때는 교사들의 구성이 바뀌는 시기라 학교 분위기 파악하고 주변 눈치 보느라 웬만해서는 문제 제기나 반론을 잘 못 하거든요. (웃음) 대부분은 몰입하여 듣더라고요. 제가 이야기한 내용을 난생처음 듣는다는 교사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젠더’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분도 딱 한 분 있었어요. 그렇게 연수를 한 뒤에, 많진 않지만 몇 가지 변화들이 눈에 띄긴 해요. 예컨대 교사들이 교무실에서 이야기를 할 때 외모를 평가하거나 외모에 대한 대화를 하는 게 많이 줄었고 성차별 발언도 덜 하려고 노력하죠. 무의식적으로 이야기를 하다가도 ‘앗, 하면 안 되지?’ 하며 제게 동의를 구하는 눈 맞춤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저는 페미니즘 수업이나 실천을 하고 싶다면 반드시 동료 교사들과 이야기를 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학교는 학기 초에 그렇게 연수를 한 이후 페미니즘 수업에 대한 반감이 덜해져 자연스럽게 3월을 페미니즘 수업으로 열 수 있었어요. 연수 말미에 “3월에 수업 힘드시죠? 3월 8일이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이 주제로 해 보시죠”라고 제안했죠. 그렇게 우리 역사과는 3.8세계여성의날을 주제로 첫 수업을 시작했어요. 학교에서 학생들은 욕설이 일상인데, 국어과에는 3월 한 달 동안 혐오 표현, 비속어 등의 언어를 순화하는 주제로 수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도 했는데, 마침 국어과에서도 그 문제를 고민하고 계획하고 있었기에 언어 순화에 대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어요.


저는 세계여성의날 수업을 어떻게 했냐면요. 먼저 세계여성의날의 역사적 유래에 대해 공유하고, “너희가 만약 월급을 받았는데 여성이 남성에 비해 64%만 받았을 때 어떻게 할 거야?” 하고 물어봤어요. 학생들은 사장님한테 가서 따지겠다고 했어요. 그럼 사장님이 뭐라고 대답할 것 같으냐고 하니 “여자니까”로 시작되는 다양한 답변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어요. 그렇게 아이들의 입에서 성별 임금 격차와 성별 고정 관념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그 다음에는 이런 성별 고정 관념 때문에 경제적으로 평등해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현실을 통계로 보여 줬어요. 다음 단계로 교과서 안에서 성차별 요소나 성별 고정 관념, 즉 ‘남자답게’, ‘여자답게’ 같은 내용이 담긴 걸 찾아보자고 했고, 학생들이 전문가 이상으로 잘 찾아냈어요. 이런 환경 속에서 성별 고정 관념이 강화되고 있는 거라고 했지요. 물론 미디어 등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요.


국어과 수업의 경우에는, 저도 모르는 욕설이 많더라고요. 성기의 크기에 관련된 비속어나 욕설도 많고, 성기가 작은 남성에게 하는 욕도 있 던데, 저는 처음 알았어요. 남학생들도 역시 맨박스에 갇혀서 그런 욕설을 하거나 듣는 거 같아요. 욕설을 하거나 당한 경험을 이야기해 보자고 하면서, 욕설의 대부분이 여성이나 장애인이나 성소수자 같은 사회적 약자를 향하고 있음을 학생들이 스스로 찾아냈어요. 학습으로 그치면 안 돼서 생활 지도로 연결을 했죠. 욕을 한 번이라도 하면 학교에서는 이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하고, 개선이 되지 않거나 심각한 경우에는 부모님에게 알려 협조를 구하기로 했어요. 이 지도 방식에 대해 찬반 의견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로선 다른 방법을 못 찾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교사들이 느끼기에는 적어도 학교 안에서만큼은 욕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➊ 맨박스(Man Box)는 남성에게 요구되는  ‘남자다움’에 관한 고정 관념과 틀을 말한다.



짚고 넘어갈 것은, 그 많은 욕 중에서 여성을 향한 욕, 특히 엄마를 향한 욕이 굉장히 많다는 거예요. “느금마”, “니에미” 말고도, 교사들이 욕설 지도를 하니까 그걸 피해서 학생들이 그냥 상대방 엄마, 누나, 여동생 이름을 부르는 걸 욕으로 써요. 보다 업그레이드 된 게 상대방 엄마의 직업을 욕 대신 쓰는 거예요. 가령 엄마가 마트에서 캐셔를 하신다면 “캐셔”를 욕으로 쓰는 식이죠. 그게 그냥 단순히 이름이나 직업을 말한 거라고 변명하곤 하는데 사실 비하나 욕을 하려는 의도를 담은 거거든요. 어쨌든 혐오의 싹을 자르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욕을 하면 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 이야기를 조금 드리자면, 저는 신규 교사일 때는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 평등 이런 주제에 줄곧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도 나에게 동의하도록 일방적으로 이끌고 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학생들이 이기주의적이거나 개인주의적 성향을 보이면 유독 그걸 못 참고, 체벌만 안 했지 학생들에게 아주 폭력적 훈육을 했던 경험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체육 대회 때 단합하지 않고 그늘에서 따로 노는 학생들을 밤늦게까지 교실에 잡아 놓고 일장연설을 했죠. 체험 학습을 갈 때는 그 학생들만 교복을 입고 가게 하는 등…….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고 그저 용서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나 자신이 학생들을 대상화하고 비민주적으로 대하면서 어떻게 민주주의를 주제로 수업을 하고 운동을 했던가 처절하게 반성하고 있어요. 좀 시간이 지난 후에는 학생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어떻게 하면 인권을 존중할 것인가 공부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학생인권 보장이 단순히 용의 복장 규제를 없애는 것에 그치지 않아야 될 것 같아요. 학생들을 학교 운의 주체로 인정하고 세우는 것까지 나아가야 하는데 그 부분이 적극적으로 주장되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민주주의, 학생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다가 지금 페미니즘에 발을 딛고 있는 이유는, 페미니즘이라는 렌즈가 민주주의의 모든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는 ‘다초점 멀티 렌즈’라고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페미니즘이야말로 도래할 민주주의를 기다리지 않고 지금 당장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직접 실천할 수 있는 도구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이런 저의 다짐을 가장 빨리 일상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이 제 딸들과 이야기하고 실천해 보는 것이더라고요. 딸과 페미니즘 책도 같이 읽고, 최근에 면 생리대, 생리 팬티, 탐폰이나 생리컵 등 다양한 생리 용품들을 사용해 보라고 권유하고 있어요. 예상했던 것보다 딸이 공포감 없이 잘 사용하는 걸 보면서, 청소년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두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잘 받아들이는구나 싶었어요. 생리를 다룬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를 같이 본 경험이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또 지금 학교에서 학생 페미니즘 동아리도 지도하고 있고요. 평소 좋아하는 말로 마무리를 하고 싶어요. “나에게 묻지 않고 나를 위한 것이라 말하지 말라”를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03 청소년들의 요구로 시작된 아빠 페미니즘 공부 모임

노리
성미산학교


성미산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노리라고 합니다. 저희 학교는 1학년부터 12학년까지 있는 생태교육과정을 기반으로 한 비인가 대안학교예요. 마을이 굉장히 중요하고요. 소위 386세대, 크게 봤을 때 진보적인 위치에 있는 성인들이 도시에서도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 보자 해서 만든 거예요. 저희 학교는 부모들이 만든 학교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저희가 아빠들과 같이 페미니즘 공부 모임을 하고 있는데요. 학부모들만 있는 게 아니고 마을의 성인 남성들도 같이하고 있어요. 아빠 페미니즘 공부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그 앞의 과정에 대해 좀 많은 설명이 필요해요. 그래서 어떻게 이 공부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 역사와 맥락을 주로 말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어제 성교육을 주로 하는 분들이 모인 컨퍼런스에 가서 강의를 들었어요. 아마도 성교육 강사로 여러 학교에 출강하시는 듯한 어느 선생님께서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한 학교에 갔는데, 학생 본인은 아마 성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것 같고 커밍아웃을 한 건 아니지만, 누가 봐도 커밍아웃을 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을 하는데 그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을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요. 아웃팅이나 괴롭힘을 당할까 봐 걱정되는 마음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저는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사실 몇 시간 출강하는 교사가 그 학생을 교육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거죠. 그 학생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든 그걸 낙인찍고 위협하고 놀리는 이런 문화를 없애는 게 중요한 거죠. 모든 걸 성교육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그걸 풀어 갈 수 있는 건 일상을 같이 보내는 교사들과 친구들이어야 할 텐데, 잘 안 되다 보니까 그 몇 시간 성교육하는 분이 책임감을 많이 느끼신 것 같았어요.


저희 학교를 돌아보면, 정기적으로 성교육을 하고, 페미니즘과 남성성이란 이름으로 교과가 따로 있고, 성인지 관점이나 젠더 관점을 기반으로 한 시민사회교육도 따로 있어요. 그 외에 비공식적 교육과정이나 잠재적 교육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있죠. 처음부터 이렇게 된 건 아니에요. 학교에서 저의 공식적 포지션은 통합 지원 교사예요. 보통 특수 교사라고 불리는 역할이죠. 장애 이해 교육 같은 걸 일반적으로 특수 교사가 담당하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장애를 따로 강조하지 않고 초등에서는 ‘서로 함께’라는 이름으로, 중등에서는 시민사회교육 등의 이름으로, 전반적 인권교육이나 다양성과 소수자에 대한 교육,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잘 살지 이런 교육을 하면서 장애인이나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제가 스무 살 넘어서 혼자 책 찾아보면서 배우고 충격을 받고 했던 내용을 성미산학교에서는 초·중등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거죠. 그런데 오히려 공교육을 경험해 보지 않은 학생들은 그게 그냥 도덕 교과서 내용 같은 느낌을 받는 거예요. 학교에서 교사가 집단을 대상으로 교육했을 때 나타나는 효과 같은 거죠. 아쉽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실제로 또래들의 문화가 어떤지 등은 알기가 어려웠고 수업 시간의 내용이 일상에서도 잘 구현되고 있다는 느낌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처음에는 동아리를 해 보자고 했어요.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관심이 있고 이런 문화를 주도할 수 있을 것 같은 친구들과 같이해 보자고 한 거죠. “야한 이야기 하는 동아리나 해 볼까?” 하면서 시작했어요. 그게 정말 야한 이야기가 아니란 건 저나 같이한 친구들이나 알고 있었고, 너무 무거운 이야기 말고 가볍게 이야길 해 보자는 의미죠. 그렇게 동아리를 시작한 게 2014년쯤이었어요. 가장 먼저 한 작업은 그 공간이 안전한 집단임을 확인하는 거어요. 이 안에서는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있고 밖으로 나가지 않을 거란 믿음을 만들었죠. 가볍게 수다로 시작해서, 같이 공부를 하기도 했고요. 월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남학생들한테 너도 한번 해 봐야 한다고 생리대를 채워 보기도 했어요. 교사로서 목적이 있었다면, 이런 이야길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른들 중에 한 명이라도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었어요. 단톡방에서 일어난 일을 그 자리에 가져와서 “제가 고민이 있는데, 이런 일이 있었어요”라고 얘기해 줘서 공론화한 경우도 있었고요.


그때 사실 제가 포커싱한 건 여학생 그룹이었어요. 여학생들이 다른 사람의 평가나 시선에 예민하죠. 그리고 관계 지향적이라고 여겨지죠. 교사들도 “쟤는 오빠들 앞에선 표정이 달라” 같은 이야기를 해요. 그게 사실일 수는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길러지는 과정이 있는 거고, 여학생들이 남성 집단의 평가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거잖아요. 그들을 비난하는 식으로 접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어요. 서로를 지지해 주는 관계가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같이 여성화제 관람도 가고 수다들도 많이 떨고 이런 작업을 한 거죠.


시민사회교육 주제를 해마다 정하는데, 혐오나 페미니즘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주제로 떠오르면서 혐오를 주제로 잡고 1년 동안 공부를 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9학년 친구들이었는데, 여성혐오만 공부한 건 아니고, 어떤 현상을 놓고 단순히 혐오다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기보다는 사회적 경제적 배경을 자세히 살펴보고 문제들이 어떤 순간에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 공부를 했어요. 무엇보다, 우리가 많은 사건과 정보를 접하며 사는데 문제를 흘려보내지 않고 “어, 이건 혐오인데?” 하고 알아차릴 수 있는 눈이 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와중에 강남역 살인 사건이 일어난 거죠. 그 다음부터는 더 적극적으로 공부를 진행한 것 같아요. 그땐 워낙 많은 사건 사고들이 터지고 정리되지도 않아서 교사인 저 역시 가르치기보다는 같이 공부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요.


그때 제가 관심을 가졌던 건 남학생 그룹이었어요. 페미니즘과 남성성을 주제로 따로 6차시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고요. 남학생들도 페미니즘이 자신의 해방에도 관련이 있단 걸 서서히 깨닫게 되었고, 또래들의 문화가 바뀌는 것도 눈에 보어요. 예전에 “게이냐?”, “애자야” 하고 놀리던 것들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분위기가 형성이 됐어요. 저는 페미니즘 수업을 들어가면 부흥회 한다고 스스로 이야기하곤 해요. 부흥회 하듯이 ‘우린 굉장히 중요한 걸 배우고 있어’ 하는 분위기를 같이 만들려고 노력했고 사회적으로도 중요하게 이야기됐기 때문에 실제로 그런 분위기가 안 될 수가 없었어요.


그러면서 “이 수업을 엄마 아빠한테 좀 해 주세요” 하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거죠. 특히 남학생 그룹은, 여기에서 수업을 할 때는 괜찮지만, 동성 친구들이나 형, 아빠 등과의 관계에서 잘 풀리지가 않는다는 거예요. 한 친구가 저한테 와서 그럴 때 어떻게 설득해야 하느냐고 물어봤는데, 저는 “나는 그냥 안 놀아”라고 대답을 했어요. 왜냐면 저는 정말 그런 남성들과의 관계가 중요하지 않아서 그냥 가깝게 지내지 않으면 되니까요. 그런데 남학생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굉장히 중요한 그룹이고 설득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특히 군대를 갔다 온 성인 남성들과는 도저히 소통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아빠들뿐 아니라 성인 남성들과 같이 페미니즘 공부를 해 보자고 제안해서 올해부터 매주 진행하고 있어요.


아빠 페미니즘 공부 모임 첫 모임 때 파격적으로 시험을 봤어요. 저희는 대안학교라 원래 시험이 없는데, 일종의 퍼포먼스 같은 거죠. 아빠 페미니즘 공부 모임에서 실제로 진행되는 내용보다도, 자기보다 어리고 자기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비논리적이고 철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한테 배울 수 있다는 걸 아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고 있어요. 그래서 청소년들을 굳이 ‘선생님’이라고 지칭하고요. 일부러 책을 보거나 이론적인 공부를 하는 방식은 안 하려고 하고 있어요.


아빠들이 이런 공부를 한다고 하니까 유례없이 관심을 많이 쏟아 주더라고요. 언론사에서 인터뷰도 하자고 하고, 심지어 책을 내자는 제안도 있었어요. 그런데 2014년 무렵부터 학교에서 해 온 이런 여러 과정이 있었는데 아무도 주목해 주지 않았다가, 아빠들이 공부한다고 하니까 주목을 하는 이 사태가 좀 쓸하기도 해요. 청소년들이 먼저 페미니즘을 접하고 그런 걸 본인의 삶에서 바꿔 내기 시작하면서 역으로 제안할 수 있었다는 게 이 공부 모임의 제일 중요한 의미인 것 같아요. “아빠, 페미니즘 같이 공부해요” 이렇게 접근한 게 아니고, “아빠, 공부 좀 하세요!” 이런 맥락으로 시작했던 거죠. 성인 남성들이 어떻게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는지 굉장히 재미있는 점들이 있는데, 아직은 공부를 시작하는 단계이라 1년의 과정을 잘 마치고 난 후 다른 기회가 있다면 전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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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