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속/ 학교는 장애를 아는가
장애인 통합은 어떤 교육 어떤 사회냐의 문제
<어른이 되면> 장혜영 감독 인터뷰
때와 곳 2018년 5월 3일, 서울 합정동 카페
인터뷰어 공현·이진주 기자, 최경미 본지 편집위원
정리 공현 기자
사진 최승훈 기자
서른한 살의 언니가 서른 살의 동생과 함께 산다. 동생은 18년간 시설에 갇힌 삶을 살아온 중증 발달장애인이다. 언니와 동생은 같이 살며 살림을 꾸리고 밥을 먹고 카페에 가고 산책을 하고 여행을 한다. 언니, 장혜영 감독은 ‘생각 많은 둘째 언니’라는 닉네임을 달고 동생, 장혜정 씨와의 삶을 유튜브로 보여 주며 세상과 소통하고, 올해에는 98분의 다큐멘터리를 세상에 내놓았다.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유튜브 연재와 다큐멘터리 제작에 드는 비용을 모금하여 5,400여 만 원이 모다. 〈어른이 되면〉은 그런 과정으로 만들어졌다.
사실 나는 대학거부 관련 활동을 하면서 장혜영 감독을 몇 년 전에 만나서 교육과 대학에 대해 함께 인터뷰를 하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또 이렇게 소식을 듣게 되니 반가웠다. 〈어른이 되면〉 텀블벅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을 읽던 중 이런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시설은 보살핌과 지원보다는 통제와 ‘순육(順育)’을 제공합니다. 순육이란 말 그대로 순하게, 고분고분하게 되도록 기른다는 뜻입니다. 시설은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돌보고 지원하기보다는 장애인들을 시설의 규칙에 맞추어 통제합니다. 시설은 장애인들에게 ‘조용히, 얌전히, 가만히 시설의 규칙에 따르기’를 요구합니다.” 장혜영 감독은 자신의 작업을 통해서 이 사회에 장애인의 탈시설, 자립 생활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질문을 던지고 가능성을 찾아 나가려 한다고 이야기했다. 장애인의 삶과 교육에 대한 그의 생각이 더 궁금해졌다.
《오늘의 교육》 42호를 기획할 때부터 장혜영 감독을 인터뷰하자는 제안이 편집위원회에서 있었다. 하지만 연락을 취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 2018년 5월이 되어서야 만날 수가 있었다. 오늘의 교육의 공현과 이진주가 본지 편집위원인 최경미와 함께 장혜영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겪는 이 고통은 부당하다
공현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네요. 찾아보니 최근에 인터뷰를 많이 하셨던데, 오늘 또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셔야 해서 좀 지치실지도 모르겠어요.
장혜영 원래 메시지를 주는 것은 끝없는 반복이라고 생각해요. 제 입장에서는 반복을 많이 한 것 같아도 금시초문인 사람들을 늘 만나니까요. 반복해서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에 지치는 단계는 지난 것 같아요.
공현 먼저 인터뷰 취지를 설명드리면, 교육 문제 안에서도 장애 문제는 변방이잖아요. 《오늘의 교육》에서는 계속 기획을 고민하고 있고, 지난 1· 2월호 특집에서 ‘학교는 장애를 아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어요. ‘장애인에게 학교교육의 일부를 떼어 주는 식으로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지금의 학교를 전면적으로 바꿀 것을 요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담았고요. 그런 관점에서 장애인과 교육에 대한 생각을 많이 듣고 싶어요.
이진주 장애운동에서는 교육에 대해 잘 모르고, 교육 쪽에서는 장애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서 교집합을 많이 늘려 가려고 해요. 오늘 인터뷰에서는 다른 지면에서는 소개하지 못했던 이야기나, 교육과의 접점을 이야기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장혜영 제가 교육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장애 문제를 들여다볼수록 교육에 대해서도 좀 더 명확해지는 게 있더라고요. 장애 문제는 곧 삶의 문제, 삶을 이해하는 관점의 문제라고 바라보고 있어요. 사실 교육도 그렇게 바라볼 수 있잖아요. 삶을 어떻게 규정할 것이고 삶에서 필요한 것, 세대나 공동체 안에서 공유되어야 할 기본적인 것들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 그 공동체가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랑 떼려야 뗄 수 없는 거니까요.
완전한 통합교육을 원칙으로 두지 않으면, 분명한 한계를 처음부터 정해 놓고 차별을 감안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분리 교육을 전제하고 가는 것은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를 유지하겠다는 선언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통합교육이라는 것은 장애인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비장애인도 장애인과 같이 살아가는 것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기 때문에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통합교육을 거부하는 것은 비장애인들이 자기들은 배울 게 없다고 하는 셈이죠. 그래서 저는 통합교육을 지지하는 바예요.
이진주 최근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문제에 대해서 강연➊에서도 이야기하셨던데, 한편으로는 학부모들의 요구이기도 하고 처해 있는 현실의 문제가 있어서 뭐라고 말하기 어렵더라고요.
➊ 장혜영 감독은 2018년 1월 22일 방된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891회 ‘당신에게 장애인 친구 가 없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최경미 인권운동은 대부분 당사자들의 권리를 찾는 데서부터 비롯되지만, 장애인의 경우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이 나서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문제도 그렇게 진행된 셈이지요. 하지만 부모들이 무릎 꿇은 장면이 부각되는 방식으로 마치 부모들의 권리 문제인 것처럼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은 불편한 점이 있었어요. 특수학교 설립이 보편적인 교육권을 확보하기 위한 게 아니라, 자기 자식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기적인 부모의 ‘치맛바람’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재 통합교육을 위한 노력이 현장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특수학급과 특수학교의 문제는 여전히 분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요. 완전 통합교육을 지향해 가야 하는 과정에서 특수학교 설립이 어떤 좌표인지 고민되기도 하고요. 언론에서 그런 프레임을 계속 가져간다면 통합교육에 대한 인식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장혜영 감독)
장혜영 시설 문제하고도 비슷한 점이 있는데, 저는 언론이 차별을 조장하고 있다는 혐의가 짙다고 생각해요. 장애인 복지는 시혜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인식을 강화하는 거라고. 당연히 되어야 하는 게 안 되어 있는 것이니, 오히려 사회가 사죄하면서 빨리 시정해야 할 문제인데, 부모가 무릎 꿇은 디테일을 강조하는 등 뭔가 해 주어야 한다는 식으로 완전히 전복해서 보여 주는 거죠.
당사자 앞에서는, 직접적인 상처를 건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저도 말을 조심하게 되는 건 맞거든요. 그래서 특수학교 설립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할 수 없는 말이 있었어요. 당시 칼럼을 하나 썼는데, 지금은 특수학교를 짓는 것조차 여러 문제에 부딪히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공동 전선을 치는 것은 맞으나, 이것이 우리가 최종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아니라고 하는 정도로 썼어요. 그리고 무릎 꿇지 말자,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은 저쪽이라고도 강조하고요.
서울의 어느 작고 오래된 교회에서 〈어른이 되면〉을 상했을 때 GV(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어떤 중년 남자분이 ‘나는 뇌병변 1급 장애인 딸을 혼자서 돌보고 있는데 어려워서 시설을 알아보고 있다. 이 화를 보고 나니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언을 해 달라’고 하셨어요. 그가 잘하는 건지 잘못하는 건지 제가 말해 줄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잖아요. 왜냐면 그건 어느 고통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라, 잘잘못을 가릴 수는 없으니까. 그때 할 수 있는 이야긴 하나밖에 없더라고요. 원칙. 제가 말하고자 하는 원칙. “적어도 시설에서의 삶은 인간으로서의 삶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겪는 이 고통은 부당하다. 이걸 같이 끝내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 들으면 공허한 말인데 결국은 그 말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통합교육 역시 그런 위치에 서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어려운 문제죠. 그래서 이 역시 원칙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굉장히 힘들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자꾸 작게라도 실천을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단 생각이 있어요. 공적 체계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한계를 느낄수록, 일단 끌어모을 수 있는 자원으로 뭐라도 해 보자, 지금 최선의 실천이 뭔지 확인하면서 가자는 거죠. 그게 제가 기운을 잃지 않는 방법이에요. 힘은 드는데, 마음의 힘이 빠지진 않는 것 같아요. ‘이렇게 하면 되겠네. 그럼 이걸 어떻게 하면 공적 체계로 만들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거죠.
이진주 인터뷰하신 것들을 보면서 탈시설과 통합교육이 같은 맥락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을 접할 수 없는 이유가 다 시설에 있고 교육에서도 분리되어 있기 때문인 거죠. 예전 인터뷰에서 동생 장혜정 씨가 탈시설한 후 복지 서비스를 받고 싶어도 그 지역에 얼마 이상 거주해야 받을 수 있는 등의 조건이 있어서 어려움이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좀 형편이 달라졌나요?
장혜영 거의 달라졌다고 볼 수 없죠. 장애운동에서 탈시설을 몇 년 전부터 계속 이야기해 왔는데 정책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건 정말 얼마 안 됐어요. 탈시설에 대해서 정부나 지자체 내에서 알고 있는 사람이 정말 없어요. 그래서 탈시설에 대한 상상력이 기껏해야 자기 지자체 안으로 국한되죠. 예를 들어 시·도 간 이동을 할 때 누구의 예산을 써서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도 전혀 협의가 안 되어 있고요. 아무 생각 없이 ‘우리 시에서 얼마 이상 살았던 사람’ 같은 조건을 거는 거죠. 도서관을 이용한다든지 그런 복지를 제공할 때는 그런 종류의 조건이나 대기가 없는데, 장애인-탈시설 정책에는 왜 그런 게 있어야 할까요? 관련 기관에서 별 생각이 없기 때문인 거죠. 복지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적어서 한정 없이 대기 상태일 때가 많아요. 그 공적 지원을 받는다 해도 서비스의 질이 담보가 되어 있지 않아요. 학대나 방치를 당하거나 나쁜 경험을 할 가능성이 적지 않고요. 지금 공적 지원을 받는 것은 사실상 활동 보조 이외에는 포기한 상태예요.
공현 〈어른이 되면〉의 제목에 대해서, 그게 장혜정 씨의 말버릇이라고 소개하셨는데요. 장혜정 씨가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게 막을 때마다 사람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 사람들은 아마 장혜정 씨가 어른이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을 거라고……. 교육이라는 게 어른이 되는 걸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세상에선 이야기하는데, 그런 점에서 상징적이란 생각도 들어요. 장애인에게 교육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 사회의 인식이 담겨 있지 않을까요?
장혜영 공감해요. 약한 사람일수록 당장의 실패나 실수를 절대적인 무능으로 치환해 버리고 그 이상의 변화를 애초에 포기하는 거죠. 아마 그 사람들이 혜정이에 대해서 ‘넌 절대 어른이 될 수 없어’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정말 혜정이가 나중엔 언젠가 어른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말했을까? 아니란 거죠. 그저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거겠죠. 어른이 된다거나 성장한다는 관념으로 진지하게 이 사람의 인생을 바라본 적이 없으니까요. ‘아이’한테 대하는 것처럼 그냥 한 거죠. 여기서 ‘아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언제까지나 미숙한 존재를 의미하고요.
다른 화법으로 이야기하려고 한다
최경미 얼마 전에 성미산학교 학생들이랑 발달장애인 국가 책임제 요구 농성 현장에 지지 방문을 갔어요. 앞에서도 말을 했는데, 당사자들의 권리를 확장해서 보편적인 권리나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계속 고민이 돼요. 농성하는 분들도 이 문제를 사회적 문제이거나 국가에서 마땅히 책임져야 할 권리의 문제라고 인식하기 어려운 장벽들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셨어요. 다양한 층위에서의 각기 다른 입장들이 섞이면서 연대할 수 있는 기반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장애인의 권리를 이야기하다 보면 성소수자나 이주민, 여성, 동물 등의 문제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거든요. 결국 차별과 다양성의 문제로 보고 사회가 얼마나 포용성이 있는가의 문제로 봐야 하는 거죠. 사회 수준의 문제로 해석되지 못하고 당사자들의 문제로만 보이게 만드는 화법에서 벗어나 기존과는 다른 화법으로 말 걸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혜영 저도 공감하는 바예요. 제가 선택한 관점은 결국 저마다 당사자라고 이야기하는 수밖엔 없단 거예요. 제가 이런 식의 작업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 비슷한 고민에서 출발한 거거든요. 제가 부모 단체와 적극 연대하는 것도 하나의 길이긴 하지만, 지금 저는 그 길로는 당분간은 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한 가지 입장의 목소리가 커지는 건 좀 사적인 그들만의 문제인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죠. 서로 다른 언어로 여기저기서 이야기한다는 느낌이 들면 좀 변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한목소리를 내다 보면 여러 사람에게 모두 똑같은 삶이 가능할 것 같다는 착각을 주고, 발달장애인 개개인의 개별성은 지워지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형제자매이자 개인으로서 살아가고 싶은 시민으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으면 좋겠는지, 부모 단체들과 크게 가는 방향은 비슷하더라도 다른 화법과 목소리를 구사하고 있는 거죠. 그분들이 문제를 명확히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면 저는 어디로 갈 것인지 하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생각했거든요.
세대 간의 차이도 좀 있죠. 이를테면 작년에 정책 토론회 자리에 저도 패널로 참여했는데, 장애인 부모 단체분이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서, 저를 두고 결혼을 해야 하는데 동생 때문에 못 한다는 식으로 이야길 하시는데, ‘응? 난 결혼 생각이 없는데?’ 하고 당황했어요. (웃음) 정형화당하는 기분이 있었어요. 그 자리에서 초칠 순 없으니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최경미 세대 간 차이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작년에 나온 〈채비〉라는 화가 있었잖아요.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어머니가 뇌종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의 모습을 주제로 한 화 말이에요. 그걸 같이 본 성미산학교 학생들이 죄책감 같은 걸 느꼈다고 하는 거예요. 어머니가 죽기 직전까지 책임지는 그런 모습에서 자신들이 함께 할 일이 없는 것 같은 무력감과 삶을 책임져 줘야 할 것 같은 무거운 느낌을 받았다고 해요. 어쩌면 장애인의 삶을 바라보는 기존 세대들의 전형적인 시선일지도 모르지요. 그 화에서 달라진 게 있다면, ‘자식보다 하루 더 살고 죽어야 한다’는 그런 삶의 공식에서 벗어나 어머니가 먼저 죽었지요. 오히려 그 이후 삶의 과정을 더 현실적으로 보여 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 학생들과 최근에 〈어른이 되면〉을 함께 봤는데, 학생들이 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하는 거예요. 우선은 전반적으로 진지하거나 우울하지 않고 즐겁게 상상하면서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가벼웠다고 해요. ‘아, 이렇게 살아가도 되겠구나. 저 정도면 나도 해 볼 수 있겠다. 시간 내서 같이 산책하고 놀러가기도 하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서 장애인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겠다고 상상하게 되었다는 거죠. 그렇게 대비되는 게 흥미롭더라고요.
장혜영 기쁜 일이네요. 사실 무겁게 보여 주면 ‘난 저거 못 해’ 이런 마음이 되죠.
(〈어른이 되면〉 스틸 컷)
최경미 특히 교육에 관해서도 너무 진지하고 무거운 점이 많아요. 그래서 오히려 편하게 선뜻 혹은 쉽고 가볍게 할 수 있는 일들을 가로막는 경우가 많지요. 통합교육에 관련해서도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차별을 한다든지, 민감하게 개별의 욕구를 존중한다고 하면서 분리를 한다든지 의도하거나 계획했던 것과는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돼요. 사실 장애인 학생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반응들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는데 일반화되는 경향이 있어요. 누군가는 장애인을 불편해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상관없을지도 모르고 혹은 매력을 느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대부분 장애는 배려해야 하거나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으로 일방적으로 교육받고 있다는 거죠. 그 속에 ‘무거움’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예를 들면 장애인을 배려한답시고 소외하고 배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요. 같이 교육에 참여하면 장애인 학생이 더 이해를 못 하고 소외당할 수도 있지 않냐면서. 장애에 대한 인식이나 통합교육에 대한 인식이 너무 단편적이고 단순하게 접근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장애인 개개인을 보지 않고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거나 그 시스템을 운하기 위해 또 누군가를 소외시키거나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장애냐 아니냐를 넘어 다양한 차이에 대해 어떻게 교육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보편적인 사회 조건을 만드는 일에 더 세심하게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고민이 돼요.
장혜영 저는 착시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 그럼 중증 장애인이 없는 교실에서는 모두 똑같은 학업 성취도를 갖고 있나? 모두 균질한 경험을 하고 소외받지 않나? 절대 아니잖아요. 아이들이 감추고 있을 뿐이죠. 결국은 교실에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할 것인가 그게 명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통합교육이 마주하고 있는 도전은, 단순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섞어 놓는 거라기보다는, 이 교육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무엇이 있는지 하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경쟁을 시키는 것, 경쟁을 통해서밖에 얻을 수 없는 것을 교육이 지향하고 있다면 그 안에 통합교육을 끼워 맞추려고 하면 어긋나는 부분이 많이 있을 수밖에 없겠죠. 통합교육 문제는 교육에서 무엇이 실패하고 있는가의 문제예요.
사실은 일대일로 있을 때도 비슷한 고민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혜정이하고 상호 작용 할 때 어디에 기준을 맞추고 해야 할까? 저는 교사로서 혜정이를 대하고 있진 않지만, 이 사회에서 제가 가진 게 더 많았기 때문에 그걸 어떻게 가르쳐 줄 수 있을까 하는 관점에서 봐요. 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이 공간 안에서 큰 문제없이 존재할 수 있는 형식이 뭔지를 자꾸 경험하게 해 주는 수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면 제가 무엇을 배웠을 때를 반추해 보면, 결국 그랬을 때 같아서.
시설에 있을 적에 가끔 같이 나와서 다니다가 기함했던 경험이 있어요. 고속도로 휴게소에 갔는데 화장실이 다 텅텅 비어 있었는데 혜정이가 굳이 장애인 화장실을 찾아가면서 “나는 장애인이니까” 이러는 거예요. 혜정이가 살아온 삶의 바운더리와 내 삶의 바운더리가 본질적으로 다르단 생각을 했어요. 시설 안에서 보았던 모습과 시설을 나온 뒤의 모습이 정말 다른데, 환경적 요인이 크단 걸 절감하거든요. 혜정이에게 바뀐 중요한 환경적 요인 하나는, 터치받지 않는 충분히 안정적인 자기 공간이 생긴 것. 그 안에서 알아서 안정을 찾는 거죠. 그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노력들이 있으나, 어쨌든 훨씬 좋은 상태에 있으니까 그 노력도 쉬워지는 면이 분명 있어요.
최경미 그동안 인터뷰에서 스웨덴등 북유럽의 사례를 많이 이야기하셨는데요. 장애 정책과 관련해서 우리가 참고하고 모델로 삼을 만한 것들이 뭐가 더 있을까요.
장혜영 가 봤어야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할 텐데, 듣는 풍문이죠. (웃음) 뉴질랜드에 대한 이야기가 〈비마이너〉에 올라오고 있는데 그것도 볼 게 많이 있어요.➋ 활동 보조 제도도 큰 잠재력을 갖고 있는 제도라고 생각하는데요. 덴마크의 활동 보조는 24시간 주어지고 일주일에 7명이 돌아가면서 한다고 알고 있거든요. 그러면 굉장히 훌륭한 제도가 되죠. 일자리 창출이기도 하고, 돌봄이라고 하는 게 과도한 희생을 요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평범한 직업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되고, 가족들도 우리 가족의 부담이고 우리 가족의 죄라고 느끼지 않고 사회의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죠. 그 제도 자체에서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 하는 걸 드러내는 무형의 가치도 있어요.
➋ “[뉴질랜드 기획 취재 ①] 탈시설부터 장애인 중심 서비스 제공 ‘뉴 모델’까지”, 〈비마이너〉, 2018년 5월 2일. “[뉴질랜드 기획 취재 ②] 발달장애인 UN 위원 배 출엔 ‘시민’으로서의 존중 있었다”, 〈비마이너〉, 2018년 5월 4일.
다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분배의 문제, 경쟁의 문제……. 우리 사회는 자기의 단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그런 사회가 아니잖아요. 자기 자신 안에서 ‘장애’라고 느끼는 부분들을 억누르고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죠. 그게 장애인을 대하는 데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고 생각해요.
궁금증이 생기고 대화가 이루어지길
이진주 〈어른이 되면〉 공동체 상은 주로 어디를 많이 다니세요?
장혜영 주로 당사자 단체들이나 자립생활센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같은 단체들이고요. 특히 인천에 탈시설한 분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그분들이 발달장애인에 대해서는 또 잘 몰랐다고 이야기하셨어요. 사회복지사들이나 부모 단체에서 하는 것도 예정되어 있고요. 얼마 전에는 사회복지나 의료 쪽 전공하는 대학생들의 연합 동아리에서 불러 줘서 공동체 상을 했는데 느낌이 남달랐어요. 관련 업계 종사자가 될 사람들이나 이미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현실적인 코멘트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모습에 많이 놀랐어요. 의과대에서 엄청 바쁜데 시간을 쪼개서 1박 2일 꽃동네 체험을 하고 온다는 거예요. 교수님은 꽃동네에서 장애와 삶에 대한 걸 배운다고 생각한 것 같지만……. 학생들이 거기 안 가면 안 되냐고 했더니 오히려 2박 3일로 늘렸대요. 장애를 시혜나 동정이 아니라 사회적 적응의 관점에서 어떻게 대할지 배우는 시간은 전무한 거죠. 장애에 대해서는 한 사람의 전문가가 해 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잖아요. 특히 성장기를 지나서 성인기에 접어들고 나면 더더욱. 의사나 전문가들이 갖고 있는 관점이, 사실은 질병의 연장에서 장애를 이해하려는 착각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이진주 여러 커뮤니티에서 공동체 상을 할 것 같은데, 한 화를 가지고 다양한 입장에서 해석하고 이야기할 것 같아요.
장혜영 맞아요. 화를 보고 난 뒤 GV가 길어지곤 하는데, 그래서 기쁘다는 생각을 해요. 화를 보고 궁금증이 생기고 고민에 휩싸이면 베스트라 생각하고, 나와야 할 대화가 나오면 좋겠어요. 심지어 “혜정 씨 언니 정도 되니까 그게 되죠” 같은 말도 들어요. 그러면 저는 ‘이 사람들이 많이 지쳐 있구나’ 그렇게 생각해요. 이 화 안에서 굳이 보여 주지 않는 것은, 이 일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 저 한 사람의 자원을 전부 투자해서 미래가 없는 것처럼 살면서 만든 바늘 끝의 균형이라는 거거든요. 제가 아프거나 큰돈이 들어가는 일이 생기면 사라지는 한여름 밤의 꿈이거든요. 그렇게 되지 않고 한 사람이 무너져도 그 뒤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지원이 뒷받침되면 누구에게나 가능하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 대화를 시작하자고 이 화를 만든 거예요. 현실을 너무 많이 겪은 분들은 이미 마음속에 좌절을 품고 있죠. 그래서 더욱 탈시설은 원가정 복귀가 아니라고 말하려고 화를 만든 게 아닐까 싶어요.
이진주 민감할 수도 있는 질문인데, 지금 여러 매체에 등장하는 것에 대해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장혜영 우리 가족은 사실은 다 차별주의자죠. (웃음) 부모님 같은 경우는 삶에서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린 사람이 그 결정을 스스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가지는 마음의 기제가 있잖아요. 그 안에서 제 행동도 이해하고 있어요. 자기들이 못나서 자기들의 짐을 제가 대신 짊어지고 있다고, 미안하다는 감정이 크시죠. 언제가 한번 가족들이 혜정이한테 사과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는데, 아직은 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자기 마음의 상처를 돌봐야 진짜 사과를 할 수 있으니까. 어쨌든 가족의 책임으로 돌리고 싶지 않단 생각이 있어서 오히려 저는 가족 이야길 잘 안 하고 작품에서도 배제하고 있죠.
이진주 화를 누가 봤으면 좋겠다는 희망 같은 게 있으신지?
장혜영 아무래도 젊은 세대가 봤으면 좋겠어요. 이 화를 만들면서 레퍼런스로 작품들을 찾아봤는데, 장애인 화도 많이 없지만 발달장애인 다큐멘터리는 거의 없고 아시아 지역의 성인 여성 발달장애인 다큐멘터리는 정말 없더라고요. 그래도 딱 한 편 있었어요. 〈치즈루〉라는 일본 화인데, 오빠가 여동생을 찍은 작품이에요. 그 작품의 감독을 일본에 갔을 때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길 나눴어요. 그때 우리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건, 사람들이 우리한테 무수히 비장애인으로서 어떻게 장애인을 대하고 잘 지낼 수 있는지 가이드를 해 달라고 하는데,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있는 것이 당연했을 뿐 함께 지내는 방법을 특별히 언어로 배운 적은 없거든요. 그렇게 조금이라도 어리고 젊을 때 자연스럽게 같이 있는 경험을 하는 것이 결국은 사회가 바뀌는 가장 명확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공현 이야길 들으니, 교사들도 그렇고 청소년들이 함께하는 상회도 하고 싶네요.
장혜영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부분들이 분명 있을 거예요. 청소년들과 상회를 하면 질문도 엄청 직설적으로 나와요. 〈세바시〉 보고 나서 “언니 이야기 들으니 진짜 좋은데, 우리 반의 걔는 짜증 나요. 어떻게 해요?” 그런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우리는 그 짜증 난다는 느낌을 부정해야 한다는 압박을 늘 받았으니까. 그렇게 진짜 고민이 부딪쳐 올 때는 변화의 가능성이 있는 거죠. “짜증 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잘 지내야 하는 가능성을 모색해야 할 때가 인생에는 훨씬 많을걸요? 그런 느낌을 사실은 그 아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한테도 많이 받지 않나요?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서, 걔를 축출하는 방법 외에 다른 것들이 많을 테니 그걸 해 봐요” 하고 이야기해 보면, 완전히 수긍하진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들었던 대답과는 다르기 때문에 고민을 해 보게 돼요.
이진주 말을 들으면 자연스레 운동적인 문제의식, 제도 개선 등을 떠올리게 돼요.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본인의 운동 안의 역할이 있나요? 이후 계획도 궁금하고요.
장혜영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를 어떤 누군가라고 생각하면서 살잖아요. 저도 그런 자기 상이 계속 변화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지금은 저를 둘러싼 이 환경으로부터 도피할 구멍이, 사실은 없다고 생각해요. 피하려고 해도 제 뒤통수에 항상 붙어 있죠. 보지 않을 뿐이지. 진짜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이걸 바꾸는 수밖에 없다는 데까지 고민이 이르어요. 이런 내용도 다큐멘터리 안에 짧게 들어가 있고요. 진짜 자유롭게 살고 싶기 때문에 이걸 바꾸지 않고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안 그러면 늙어 죽을 때까지 혜정이 걱정하면서 살 거 같아요.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아요. 걱정이야 하겠지만, 적어도 제가 국가의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면서 죽고 싶진 않거든요. “얘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 그런 이야기 좀 안 하고 싶어요. 전 혜정이보다 먼저 죽고 싶어요. (웃음) 누구나 다 죽잖아요. 다만 비참하게 죽느냐 아니면 존엄하게 죽느냐의 문제가 있는데, 그렇게 걱정하며 살다가 죽으면 너무 비참해질 것 같으니까.
당분간은 계속 바쁠 것 같아요. 책을 쓰는 작업도 하나 하고 있고요. 그리고 혜정이가 ‘말을 하면 정말로 할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세운 계획이 있어요. 혜정이가 히딩크를 좋아해서 네덜란드를 좋아하게 됐기 때문에 올해는 네덜란드를 가는 게 목표예요. 네덜란드에 가면 또 어떤 모습일까? 그것도 또 작은 작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 내기 좋은 타이밍이 왔다고 보는데, 부모 단체들은 그들의 방식이 있고, 형제자매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또 다른 방식이 있다고 생각해요. 나아가는 방향은 결국 같을 것이나 다른 목소리로 제도적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목표는 이 판에서 11년 후 은퇴하는 거예요. 최소한 10년은 해야 될 것 같은데 10년 하면 좀 모자란 거 같아서 11년. 제가 평생 이렇게 치열하게 불특정 다수와 섞이고 만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상태로 살 순 없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그 이후에는 시간을 당겨쓰지는 않는 방식으로 살고 싶어요. 이렇게 정해 놓고 생각하면 무엇보다 마음이 좀 편해요.
후속/ 학교는 장애를 아는가
장애인 통합은 어떤 교육 어떤 사회냐의 문제
<어른이 되면> 장혜영 감독 인터뷰
때와 곳 2018년 5월 3일, 서울 합정동 카페
인터뷰어 공현·이진주 기자, 최경미 본지 편집위원
정리 공현 기자
사진 최승훈 기자
서른한 살의 언니가 서른 살의 동생과 함께 산다. 동생은 18년간 시설에 갇힌 삶을 살아온 중증 발달장애인이다. 언니와 동생은 같이 살며 살림을 꾸리고 밥을 먹고 카페에 가고 산책을 하고 여행을 한다. 언니, 장혜영 감독은 ‘생각 많은 둘째 언니’라는 닉네임을 달고 동생, 장혜정 씨와의 삶을 유튜브로 보여 주며 세상과 소통하고, 올해에는 98분의 다큐멘터리를 세상에 내놓았다.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유튜브 연재와 다큐멘터리 제작에 드는 비용을 모금하여 5,400여 만 원이 모다. 〈어른이 되면〉은 그런 과정으로 만들어졌다.
사실 나는 대학거부 관련 활동을 하면서 장혜영 감독을 몇 년 전에 만나서 교육과 대학에 대해 함께 인터뷰를 하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또 이렇게 소식을 듣게 되니 반가웠다. 〈어른이 되면〉 텀블벅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을 읽던 중 이런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시설은 보살핌과 지원보다는 통제와 ‘순육(順育)’을 제공합니다. 순육이란 말 그대로 순하게, 고분고분하게 되도록 기른다는 뜻입니다. 시설은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돌보고 지원하기보다는 장애인들을 시설의 규칙에 맞추어 통제합니다. 시설은 장애인들에게 ‘조용히, 얌전히, 가만히 시설의 규칙에 따르기’를 요구합니다.” 장혜영 감독은 자신의 작업을 통해서 이 사회에 장애인의 탈시설, 자립 생활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질문을 던지고 가능성을 찾아 나가려 한다고 이야기했다. 장애인의 삶과 교육에 대한 그의 생각이 더 궁금해졌다.
《오늘의 교육》 42호를 기획할 때부터 장혜영 감독을 인터뷰하자는 제안이 편집위원회에서 있었다. 하지만 연락을 취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 2018년 5월이 되어서야 만날 수가 있었다. 오늘의 교육의 공현과 이진주가 본지 편집위원인 최경미와 함께 장혜영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겪는 이 고통은 부당하다
공현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네요. 찾아보니 최근에 인터뷰를 많이 하셨던데, 오늘 또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셔야 해서 좀 지치실지도 모르겠어요.
장혜영 원래 메시지를 주는 것은 끝없는 반복이라고 생각해요. 제 입장에서는 반복을 많이 한 것 같아도 금시초문인 사람들을 늘 만나니까요. 반복해서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에 지치는 단계는 지난 것 같아요.
공현 먼저 인터뷰 취지를 설명드리면, 교육 문제 안에서도 장애 문제는 변방이잖아요. 《오늘의 교육》에서는 계속 기획을 고민하고 있고, 지난 1· 2월호 특집에서 ‘학교는 장애를 아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어요. ‘장애인에게 학교교육의 일부를 떼어 주는 식으로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지금의 학교를 전면적으로 바꿀 것을 요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담았고요. 그런 관점에서 장애인과 교육에 대한 생각을 많이 듣고 싶어요.
이진주 장애운동에서는 교육에 대해 잘 모르고, 교육 쪽에서는 장애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서 교집합을 많이 늘려 가려고 해요. 오늘 인터뷰에서는 다른 지면에서는 소개하지 못했던 이야기나, 교육과의 접점을 이야기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장혜영 제가 교육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장애 문제를 들여다볼수록 교육에 대해서도 좀 더 명확해지는 게 있더라고요. 장애 문제는 곧 삶의 문제, 삶을 이해하는 관점의 문제라고 바라보고 있어요. 사실 교육도 그렇게 바라볼 수 있잖아요. 삶을 어떻게 규정할 것이고 삶에서 필요한 것, 세대나 공동체 안에서 공유되어야 할 기본적인 것들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 그 공동체가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랑 떼려야 뗄 수 없는 거니까요.
완전한 통합교육을 원칙으로 두지 않으면, 분명한 한계를 처음부터 정해 놓고 차별을 감안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분리 교육을 전제하고 가는 것은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를 유지하겠다는 선언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통합교육이라는 것은 장애인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비장애인도 장애인과 같이 살아가는 것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기 때문에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통합교육을 거부하는 것은 비장애인들이 자기들은 배울 게 없다고 하는 셈이죠. 그래서 저는 통합교육을 지지하는 바예요.
이진주 최근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문제에 대해서 강연➊에서도 이야기하셨던데, 한편으로는 학부모들의 요구이기도 하고 처해 있는 현실의 문제가 있어서 뭐라고 말하기 어렵더라고요.
➊ 장혜영 감독은 2018년 1월 22일 방된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891회 ‘당신에게 장애인 친구 가 없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최경미 인권운동은 대부분 당사자들의 권리를 찾는 데서부터 비롯되지만, 장애인의 경우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이 나서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문제도 그렇게 진행된 셈이지요. 하지만 부모들이 무릎 꿇은 장면이 부각되는 방식으로 마치 부모들의 권리 문제인 것처럼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은 불편한 점이 있었어요. 특수학교 설립이 보편적인 교육권을 확보하기 위한 게 아니라, 자기 자식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기적인 부모의 ‘치맛바람’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재 통합교육을 위한 노력이 현장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특수학급과 특수학교의 문제는 여전히 분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요. 완전 통합교육을 지향해 가야 하는 과정에서 특수학교 설립이 어떤 좌표인지 고민되기도 하고요. 언론에서 그런 프레임을 계속 가져간다면 통합교육에 대한 인식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장혜영 감독)
장혜영 시설 문제하고도 비슷한 점이 있는데, 저는 언론이 차별을 조장하고 있다는 혐의가 짙다고 생각해요. 장애인 복지는 시혜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인식을 강화하는 거라고. 당연히 되어야 하는 게 안 되어 있는 것이니, 오히려 사회가 사죄하면서 빨리 시정해야 할 문제인데, 부모가 무릎 꿇은 디테일을 강조하는 등 뭔가 해 주어야 한다는 식으로 완전히 전복해서 보여 주는 거죠.
당사자 앞에서는, 직접적인 상처를 건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저도 말을 조심하게 되는 건 맞거든요. 그래서 특수학교 설립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할 수 없는 말이 있었어요. 당시 칼럼을 하나 썼는데, 지금은 특수학교를 짓는 것조차 여러 문제에 부딪히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공동 전선을 치는 것은 맞으나, 이것이 우리가 최종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아니라고 하는 정도로 썼어요. 그리고 무릎 꿇지 말자,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은 저쪽이라고도 강조하고요.
서울의 어느 작고 오래된 교회에서 〈어른이 되면〉을 상했을 때 GV(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어떤 중년 남자분이 ‘나는 뇌병변 1급 장애인 딸을 혼자서 돌보고 있는데 어려워서 시설을 알아보고 있다. 이 화를 보고 나니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언을 해 달라’고 하셨어요. 그가 잘하는 건지 잘못하는 건지 제가 말해 줄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잖아요. 왜냐면 그건 어느 고통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라, 잘잘못을 가릴 수는 없으니까. 그때 할 수 있는 이야긴 하나밖에 없더라고요. 원칙. 제가 말하고자 하는 원칙. “적어도 시설에서의 삶은 인간으로서의 삶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겪는 이 고통은 부당하다. 이걸 같이 끝내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 들으면 공허한 말인데 결국은 그 말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통합교육 역시 그런 위치에 서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어려운 문제죠. 그래서 이 역시 원칙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굉장히 힘들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자꾸 작게라도 실천을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단 생각이 있어요. 공적 체계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한계를 느낄수록, 일단 끌어모을 수 있는 자원으로 뭐라도 해 보자, 지금 최선의 실천이 뭔지 확인하면서 가자는 거죠. 그게 제가 기운을 잃지 않는 방법이에요. 힘은 드는데, 마음의 힘이 빠지진 않는 것 같아요. ‘이렇게 하면 되겠네. 그럼 이걸 어떻게 하면 공적 체계로 만들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거죠.
이진주 인터뷰하신 것들을 보면서 탈시설과 통합교육이 같은 맥락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을 접할 수 없는 이유가 다 시설에 있고 교육에서도 분리되어 있기 때문인 거죠. 예전 인터뷰에서 동생 장혜정 씨가 탈시설한 후 복지 서비스를 받고 싶어도 그 지역에 얼마 이상 거주해야 받을 수 있는 등의 조건이 있어서 어려움이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좀 형편이 달라졌나요?
장혜영 거의 달라졌다고 볼 수 없죠. 장애운동에서 탈시설을 몇 년 전부터 계속 이야기해 왔는데 정책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건 정말 얼마 안 됐어요. 탈시설에 대해서 정부나 지자체 내에서 알고 있는 사람이 정말 없어요. 그래서 탈시설에 대한 상상력이 기껏해야 자기 지자체 안으로 국한되죠. 예를 들어 시·도 간 이동을 할 때 누구의 예산을 써서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도 전혀 협의가 안 되어 있고요. 아무 생각 없이 ‘우리 시에서 얼마 이상 살았던 사람’ 같은 조건을 거는 거죠. 도서관을 이용한다든지 그런 복지를 제공할 때는 그런 종류의 조건이나 대기가 없는데, 장애인-탈시설 정책에는 왜 그런 게 있어야 할까요? 관련 기관에서 별 생각이 없기 때문인 거죠. 복지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적어서 한정 없이 대기 상태일 때가 많아요. 그 공적 지원을 받는다 해도 서비스의 질이 담보가 되어 있지 않아요. 학대나 방치를 당하거나 나쁜 경험을 할 가능성이 적지 않고요. 지금 공적 지원을 받는 것은 사실상 활동 보조 이외에는 포기한 상태예요.
공현 〈어른이 되면〉의 제목에 대해서, 그게 장혜정 씨의 말버릇이라고 소개하셨는데요. 장혜정 씨가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게 막을 때마다 사람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 사람들은 아마 장혜정 씨가 어른이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을 거라고……. 교육이라는 게 어른이 되는 걸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세상에선 이야기하는데, 그런 점에서 상징적이란 생각도 들어요. 장애인에게 교육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 사회의 인식이 담겨 있지 않을까요?
장혜영 공감해요. 약한 사람일수록 당장의 실패나 실수를 절대적인 무능으로 치환해 버리고 그 이상의 변화를 애초에 포기하는 거죠. 아마 그 사람들이 혜정이에 대해서 ‘넌 절대 어른이 될 수 없어’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정말 혜정이가 나중엔 언젠가 어른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말했을까? 아니란 거죠. 그저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거겠죠. 어른이 된다거나 성장한다는 관념으로 진지하게 이 사람의 인생을 바라본 적이 없으니까요. ‘아이’한테 대하는 것처럼 그냥 한 거죠. 여기서 ‘아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언제까지나 미숙한 존재를 의미하고요.
다른 화법으로 이야기하려고 한다
최경미 얼마 전에 성미산학교 학생들이랑 발달장애인 국가 책임제 요구 농성 현장에 지지 방문을 갔어요. 앞에서도 말을 했는데, 당사자들의 권리를 확장해서 보편적인 권리나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계속 고민이 돼요. 농성하는 분들도 이 문제를 사회적 문제이거나 국가에서 마땅히 책임져야 할 권리의 문제라고 인식하기 어려운 장벽들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셨어요. 다양한 층위에서의 각기 다른 입장들이 섞이면서 연대할 수 있는 기반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장애인의 권리를 이야기하다 보면 성소수자나 이주민, 여성, 동물 등의 문제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거든요. 결국 차별과 다양성의 문제로 보고 사회가 얼마나 포용성이 있는가의 문제로 봐야 하는 거죠. 사회 수준의 문제로 해석되지 못하고 당사자들의 문제로만 보이게 만드는 화법에서 벗어나 기존과는 다른 화법으로 말 걸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혜영 저도 공감하는 바예요. 제가 선택한 관점은 결국 저마다 당사자라고 이야기하는 수밖엔 없단 거예요. 제가 이런 식의 작업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 비슷한 고민에서 출발한 거거든요. 제가 부모 단체와 적극 연대하는 것도 하나의 길이긴 하지만, 지금 저는 그 길로는 당분간은 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한 가지 입장의 목소리가 커지는 건 좀 사적인 그들만의 문제인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죠. 서로 다른 언어로 여기저기서 이야기한다는 느낌이 들면 좀 변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한목소리를 내다 보면 여러 사람에게 모두 똑같은 삶이 가능할 것 같다는 착각을 주고, 발달장애인 개개인의 개별성은 지워지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형제자매이자 개인으로서 살아가고 싶은 시민으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으면 좋겠는지, 부모 단체들과 크게 가는 방향은 비슷하더라도 다른 화법과 목소리를 구사하고 있는 거죠. 그분들이 문제를 명확히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면 저는 어디로 갈 것인지 하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생각했거든요.
세대 간의 차이도 좀 있죠. 이를테면 작년에 정책 토론회 자리에 저도 패널로 참여했는데, 장애인 부모 단체분이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서, 저를 두고 결혼을 해야 하는데 동생 때문에 못 한다는 식으로 이야길 하시는데, ‘응? 난 결혼 생각이 없는데?’ 하고 당황했어요. (웃음) 정형화당하는 기분이 있었어요. 그 자리에서 초칠 순 없으니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최경미 세대 간 차이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작년에 나온 〈채비〉라는 화가 있었잖아요.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어머니가 뇌종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의 모습을 주제로 한 화 말이에요. 그걸 같이 본 성미산학교 학생들이 죄책감 같은 걸 느꼈다고 하는 거예요. 어머니가 죽기 직전까지 책임지는 그런 모습에서 자신들이 함께 할 일이 없는 것 같은 무력감과 삶을 책임져 줘야 할 것 같은 무거운 느낌을 받았다고 해요. 어쩌면 장애인의 삶을 바라보는 기존 세대들의 전형적인 시선일지도 모르지요. 그 화에서 달라진 게 있다면, ‘자식보다 하루 더 살고 죽어야 한다’는 그런 삶의 공식에서 벗어나 어머니가 먼저 죽었지요. 오히려 그 이후 삶의 과정을 더 현실적으로 보여 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 학생들과 최근에 〈어른이 되면〉을 함께 봤는데, 학생들이 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하는 거예요. 우선은 전반적으로 진지하거나 우울하지 않고 즐겁게 상상하면서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가벼웠다고 해요. ‘아, 이렇게 살아가도 되겠구나. 저 정도면 나도 해 볼 수 있겠다. 시간 내서 같이 산책하고 놀러가기도 하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서 장애인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겠다고 상상하게 되었다는 거죠. 그렇게 대비되는 게 흥미롭더라고요.
장혜영 기쁜 일이네요. 사실 무겁게 보여 주면 ‘난 저거 못 해’ 이런 마음이 되죠.
(〈어른이 되면〉 스틸 컷)
최경미 특히 교육에 관해서도 너무 진지하고 무거운 점이 많아요. 그래서 오히려 편하게 선뜻 혹은 쉽고 가볍게 할 수 있는 일들을 가로막는 경우가 많지요. 통합교육에 관련해서도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차별을 한다든지, 민감하게 개별의 욕구를 존중한다고 하면서 분리를 한다든지 의도하거나 계획했던 것과는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돼요. 사실 장애인 학생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반응들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는데 일반화되는 경향이 있어요. 누군가는 장애인을 불편해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상관없을지도 모르고 혹은 매력을 느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대부분 장애는 배려해야 하거나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으로 일방적으로 교육받고 있다는 거죠. 그 속에 ‘무거움’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예를 들면 장애인을 배려한답시고 소외하고 배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요. 같이 교육에 참여하면 장애인 학생이 더 이해를 못 하고 소외당할 수도 있지 않냐면서. 장애에 대한 인식이나 통합교육에 대한 인식이 너무 단편적이고 단순하게 접근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장애인 개개인을 보지 않고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거나 그 시스템을 운하기 위해 또 누군가를 소외시키거나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장애냐 아니냐를 넘어 다양한 차이에 대해 어떻게 교육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보편적인 사회 조건을 만드는 일에 더 세심하게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고민이 돼요.
장혜영 저는 착시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 그럼 중증 장애인이 없는 교실에서는 모두 똑같은 학업 성취도를 갖고 있나? 모두 균질한 경험을 하고 소외받지 않나? 절대 아니잖아요. 아이들이 감추고 있을 뿐이죠. 결국은 교실에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할 것인가 그게 명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통합교육이 마주하고 있는 도전은, 단순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섞어 놓는 거라기보다는, 이 교육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무엇이 있는지 하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경쟁을 시키는 것, 경쟁을 통해서밖에 얻을 수 없는 것을 교육이 지향하고 있다면 그 안에 통합교육을 끼워 맞추려고 하면 어긋나는 부분이 많이 있을 수밖에 없겠죠. 통합교육 문제는 교육에서 무엇이 실패하고 있는가의 문제예요.
사실은 일대일로 있을 때도 비슷한 고민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혜정이하고 상호 작용 할 때 어디에 기준을 맞추고 해야 할까? 저는 교사로서 혜정이를 대하고 있진 않지만, 이 사회에서 제가 가진 게 더 많았기 때문에 그걸 어떻게 가르쳐 줄 수 있을까 하는 관점에서 봐요. 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이 공간 안에서 큰 문제없이 존재할 수 있는 형식이 뭔지를 자꾸 경험하게 해 주는 수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면 제가 무엇을 배웠을 때를 반추해 보면, 결국 그랬을 때 같아서.
시설에 있을 적에 가끔 같이 나와서 다니다가 기함했던 경험이 있어요. 고속도로 휴게소에 갔는데 화장실이 다 텅텅 비어 있었는데 혜정이가 굳이 장애인 화장실을 찾아가면서 “나는 장애인이니까” 이러는 거예요. 혜정이가 살아온 삶의 바운더리와 내 삶의 바운더리가 본질적으로 다르단 생각을 했어요. 시설 안에서 보았던 모습과 시설을 나온 뒤의 모습이 정말 다른데, 환경적 요인이 크단 걸 절감하거든요. 혜정이에게 바뀐 중요한 환경적 요인 하나는, 터치받지 않는 충분히 안정적인 자기 공간이 생긴 것. 그 안에서 알아서 안정을 찾는 거죠. 그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노력들이 있으나, 어쨌든 훨씬 좋은 상태에 있으니까 그 노력도 쉬워지는 면이 분명 있어요.
최경미 그동안 인터뷰에서 스웨덴등 북유럽의 사례를 많이 이야기하셨는데요. 장애 정책과 관련해서 우리가 참고하고 모델로 삼을 만한 것들이 뭐가 더 있을까요.
장혜영 가 봤어야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할 텐데, 듣는 풍문이죠. (웃음) 뉴질랜드에 대한 이야기가 〈비마이너〉에 올라오고 있는데 그것도 볼 게 많이 있어요.➋ 활동 보조 제도도 큰 잠재력을 갖고 있는 제도라고 생각하는데요. 덴마크의 활동 보조는 24시간 주어지고 일주일에 7명이 돌아가면서 한다고 알고 있거든요. 그러면 굉장히 훌륭한 제도가 되죠. 일자리 창출이기도 하고, 돌봄이라고 하는 게 과도한 희생을 요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평범한 직업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되고, 가족들도 우리 가족의 부담이고 우리 가족의 죄라고 느끼지 않고 사회의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죠. 그 제도 자체에서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 하는 걸 드러내는 무형의 가치도 있어요.
➋ “[뉴질랜드 기획 취재 ①] 탈시설부터 장애인 중심 서비스 제공 ‘뉴 모델’까지”, 〈비마이너〉, 2018년 5월 2일. “[뉴질랜드 기획 취재 ②] 발달장애인 UN 위원 배 출엔 ‘시민’으로서의 존중 있었다”, 〈비마이너〉, 2018년 5월 4일.
다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분배의 문제, 경쟁의 문제……. 우리 사회는 자기의 단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그런 사회가 아니잖아요. 자기 자신 안에서 ‘장애’라고 느끼는 부분들을 억누르고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죠. 그게 장애인을 대하는 데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고 생각해요.
궁금증이 생기고 대화가 이루어지길
이진주 〈어른이 되면〉 공동체 상은 주로 어디를 많이 다니세요?
장혜영 주로 당사자 단체들이나 자립생활센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같은 단체들이고요. 특히 인천에 탈시설한 분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그분들이 발달장애인에 대해서는 또 잘 몰랐다고 이야기하셨어요. 사회복지사들이나 부모 단체에서 하는 것도 예정되어 있고요. 얼마 전에는 사회복지나 의료 쪽 전공하는 대학생들의 연합 동아리에서 불러 줘서 공동체 상을 했는데 느낌이 남달랐어요. 관련 업계 종사자가 될 사람들이나 이미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현실적인 코멘트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모습에 많이 놀랐어요. 의과대에서 엄청 바쁜데 시간을 쪼개서 1박 2일 꽃동네 체험을 하고 온다는 거예요. 교수님은 꽃동네에서 장애와 삶에 대한 걸 배운다고 생각한 것 같지만……. 학생들이 거기 안 가면 안 되냐고 했더니 오히려 2박 3일로 늘렸대요. 장애를 시혜나 동정이 아니라 사회적 적응의 관점에서 어떻게 대할지 배우는 시간은 전무한 거죠. 장애에 대해서는 한 사람의 전문가가 해 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잖아요. 특히 성장기를 지나서 성인기에 접어들고 나면 더더욱. 의사나 전문가들이 갖고 있는 관점이, 사실은 질병의 연장에서 장애를 이해하려는 착각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이진주 여러 커뮤니티에서 공동체 상을 할 것 같은데, 한 화를 가지고 다양한 입장에서 해석하고 이야기할 것 같아요.
장혜영 맞아요. 화를 보고 난 뒤 GV가 길어지곤 하는데, 그래서 기쁘다는 생각을 해요. 화를 보고 궁금증이 생기고 고민에 휩싸이면 베스트라 생각하고, 나와야 할 대화가 나오면 좋겠어요. 심지어 “혜정 씨 언니 정도 되니까 그게 되죠” 같은 말도 들어요. 그러면 저는 ‘이 사람들이 많이 지쳐 있구나’ 그렇게 생각해요. 이 화 안에서 굳이 보여 주지 않는 것은, 이 일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 저 한 사람의 자원을 전부 투자해서 미래가 없는 것처럼 살면서 만든 바늘 끝의 균형이라는 거거든요. 제가 아프거나 큰돈이 들어가는 일이 생기면 사라지는 한여름 밤의 꿈이거든요. 그렇게 되지 않고 한 사람이 무너져도 그 뒤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지원이 뒷받침되면 누구에게나 가능하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 대화를 시작하자고 이 화를 만든 거예요. 현실을 너무 많이 겪은 분들은 이미 마음속에 좌절을 품고 있죠. 그래서 더욱 탈시설은 원가정 복귀가 아니라고 말하려고 화를 만든 게 아닐까 싶어요.
이진주 민감할 수도 있는 질문인데, 지금 여러 매체에 등장하는 것에 대해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장혜영 우리 가족은 사실은 다 차별주의자죠. (웃음) 부모님 같은 경우는 삶에서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린 사람이 그 결정을 스스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가지는 마음의 기제가 있잖아요. 그 안에서 제 행동도 이해하고 있어요. 자기들이 못나서 자기들의 짐을 제가 대신 짊어지고 있다고, 미안하다는 감정이 크시죠. 언제가 한번 가족들이 혜정이한테 사과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는데, 아직은 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자기 마음의 상처를 돌봐야 진짜 사과를 할 수 있으니까. 어쨌든 가족의 책임으로 돌리고 싶지 않단 생각이 있어서 오히려 저는 가족 이야길 잘 안 하고 작품에서도 배제하고 있죠.
이진주 화를 누가 봤으면 좋겠다는 희망 같은 게 있으신지?
장혜영 아무래도 젊은 세대가 봤으면 좋겠어요. 이 화를 만들면서 레퍼런스로 작품들을 찾아봤는데, 장애인 화도 많이 없지만 발달장애인 다큐멘터리는 거의 없고 아시아 지역의 성인 여성 발달장애인 다큐멘터리는 정말 없더라고요. 그래도 딱 한 편 있었어요. 〈치즈루〉라는 일본 화인데, 오빠가 여동생을 찍은 작품이에요. 그 작품의 감독을 일본에 갔을 때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길 나눴어요. 그때 우리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건, 사람들이 우리한테 무수히 비장애인으로서 어떻게 장애인을 대하고 잘 지낼 수 있는지 가이드를 해 달라고 하는데,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있는 것이 당연했을 뿐 함께 지내는 방법을 특별히 언어로 배운 적은 없거든요. 그렇게 조금이라도 어리고 젊을 때 자연스럽게 같이 있는 경험을 하는 것이 결국은 사회가 바뀌는 가장 명확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공현 이야길 들으니, 교사들도 그렇고 청소년들이 함께하는 상회도 하고 싶네요.
장혜영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부분들이 분명 있을 거예요. 청소년들과 상회를 하면 질문도 엄청 직설적으로 나와요. 〈세바시〉 보고 나서 “언니 이야기 들으니 진짜 좋은데, 우리 반의 걔는 짜증 나요. 어떻게 해요?” 그런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우리는 그 짜증 난다는 느낌을 부정해야 한다는 압박을 늘 받았으니까. 그렇게 진짜 고민이 부딪쳐 올 때는 변화의 가능성이 있는 거죠. “짜증 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잘 지내야 하는 가능성을 모색해야 할 때가 인생에는 훨씬 많을걸요? 그런 느낌을 사실은 그 아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한테도 많이 받지 않나요?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서, 걔를 축출하는 방법 외에 다른 것들이 많을 테니 그걸 해 봐요” 하고 이야기해 보면, 완전히 수긍하진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들었던 대답과는 다르기 때문에 고민을 해 보게 돼요.
이진주 말을 들으면 자연스레 운동적인 문제의식, 제도 개선 등을 떠올리게 돼요.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본인의 운동 안의 역할이 있나요? 이후 계획도 궁금하고요.
장혜영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를 어떤 누군가라고 생각하면서 살잖아요. 저도 그런 자기 상이 계속 변화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지금은 저를 둘러싼 이 환경으로부터 도피할 구멍이, 사실은 없다고 생각해요. 피하려고 해도 제 뒤통수에 항상 붙어 있죠. 보지 않을 뿐이지. 진짜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이걸 바꾸는 수밖에 없다는 데까지 고민이 이르어요. 이런 내용도 다큐멘터리 안에 짧게 들어가 있고요. 진짜 자유롭게 살고 싶기 때문에 이걸 바꾸지 않고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안 그러면 늙어 죽을 때까지 혜정이 걱정하면서 살 거 같아요.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아요. 걱정이야 하겠지만, 적어도 제가 국가의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면서 죽고 싶진 않거든요. “얘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 그런 이야기 좀 안 하고 싶어요. 전 혜정이보다 먼저 죽고 싶어요. (웃음) 누구나 다 죽잖아요. 다만 비참하게 죽느냐 아니면 존엄하게 죽느냐의 문제가 있는데, 그렇게 걱정하며 살다가 죽으면 너무 비참해질 것 같으니까.
당분간은 계속 바쁠 것 같아요. 책을 쓰는 작업도 하나 하고 있고요. 그리고 혜정이가 ‘말을 하면 정말로 할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세운 계획이 있어요. 혜정이가 히딩크를 좋아해서 네덜란드를 좋아하게 됐기 때문에 올해는 네덜란드를 가는 게 목표예요. 네덜란드에 가면 또 어떤 모습일까? 그것도 또 작은 작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 내기 좋은 타이밍이 왔다고 보는데, 부모 단체들은 그들의 방식이 있고, 형제자매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또 다른 방식이 있다고 생각해요. 나아가는 방향은 결국 같을 것이나 다른 목소리로 제도적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목표는 이 판에서 11년 후 은퇴하는 거예요. 최소한 10년은 해야 될 것 같은데 10년 하면 좀 모자란 거 같아서 11년. 제가 평생 이렇게 치열하게 불특정 다수와 섞이고 만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상태로 살 순 없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그 이후에는 시간을 당겨쓰지는 않는 방식으로 살고 싶어요. 이렇게 정해 놓고 생각하면 무엇보다 마음이 좀 편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