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호[제언] 교육감 선거만 청소년도 하게 하자는 주장의 함정 (공현)

201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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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


교육감 선거만 청소년도 하게 하자는 주장의 함정



공현

본지 기자

gonghyun@gmail.com



‘교육감 선거만은 청소년들도……’


2016년 국회의원 선거 직후, 제20대 국회 활동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을 18세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발의했는데, 그 내용은 교육감 선거에서만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을 16세로 하자는 것이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개헌안을 발표하면서 “18세 이상의 국민은 선거권을 가진다”라는 조항을 넣었다. 이에 대해 18세 미만으로 선거권이 확대될 가능성을 막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청와대는 이 조항을 “모든 국민은 선거권을 가진다. (……) 18세 이상의 국민의 선거권은 보장된다”라고 바꾸었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개헌안을 수정한 사유를 설명하면서 “교육감 선거권은 16세로 하자는 제안도 있는 만큼”이라는 언급을 했다.


그보다 좀 더 전인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선거권 연령에 대한 의견 표명을 했다. 그런데 그중 선거에 따라서 연령 기준을 달리할 수도 있다는 제언을 하며, “선거권 연령 기준의 하향과 함께, 선거의 목적이나 성격에 따라 선거권을 부여하는 기준을 달리 정하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교육감 선거의 경우, 다수의 청소년이 교육 정책이나 학교운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당사자임에도 현재는 이러한 사항을 관장하는 교육감 선거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 교육감 선거권 연령 기준의 하향을 검토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교육감 선거를 특별히 언급했다.


이와 같이 교육감 선거만은 청소년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거나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을 더 낮출 수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공식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청소년운동 일각에서도 2014년 ‘1618 선거권 연대’라는 연대체가 “18세 선거권, 16세 교육감 선거권”을 주장한 적도 있다. 최근에도 청소년들이 참정권을 요구하는 운동을 하면서 ‘청소년들이 교육 문제의 당사자인데 그래도 교육감 선거 정도는 해야지’ 같은 말을 많이 듣게 된다.


청소년들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교육 문제인데 청소년들이 왜 그 일을 책임질 선출직을 뽑는 데 참여할 수 없는가? 중요한 민주주의의 원리를 담고 있는 타당한 의문이다. 교육감 선거를 소재로 삼아 청소년이 왜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 참정권이 없고 민주주의에서 소외되어 있는가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유용한 접근 방법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러다 보면 ‘그럼 왜 교육감 선거만?’이라는 질문도 뒤따라온다. 사실 교육감 선거의 경우에만 청소년들이 참여할 당위성이 더 크다는 주장에는 몇 가지 함정이 있다.

 

 

교육 정책은 교육감이 정하나?

 

첫 번째 함정은 교육 정책은 교육감만 정하는 것도 아니고 교육감이 교육 정책에 대한 유일한 정치적·정책적 책임자도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중앙 집권적인 성격이 강한 한국의 정부 구조에서는 교육과정을 비롯하여 교육 정책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결정하는 것은 대통령과 교육부 등 부처 장관과 국회일 것이다. 만약 교육 정책이 청소년들에게 큰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교육감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면, 마찬가지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는 데도 참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대부분의 시민들이 참정권을 행사하는 원리이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자신들의 삶에 관련된 수많은 정책을 종합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투표를 하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지방 자치로 시야를 좁혀서 봐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교육 자치를 일반 자치와 분리해서, 교육청을 일반 지자체와 별도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간과하기 쉽지만, 지역 교육청의 권한에 속하는 여러 정책들도 지역 의회를 거쳐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이 교육 정책에 대해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는 시의원·도의원 등을 뽑는 데도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경상남도의 경우 몇 년 전 홍준표 도지사 때문에 초등학교 무상급식이 중단되었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시장·도지사 등도 간과할 수 없다.


우리는 교육이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나, 교육 자치가 일반 자치와 분리된 현실로 인해 교육이 다른 정치적·사회적 문제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착각을 갖곤 한다. 그러나 교육 제도나 교육과정 등 교육 정책은, 다른 사회 문제가 그렇듯이 대단히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문제이다. 청소년이 교육 정책의 직접적 당사자이므로 교육감 선거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다른 선거에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청소년은 학생이기만 한가?

 

두 번째와 세 번째 함정은 “청소년=학생”이 아니라는 점과 연관된다. 청소년 중 다수는 학생이다. 하지만 청소년이 학생으로서만 사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은 부동산 정책이나 주거 정책, 사회 간접 자본 건설에 영향을 받는 지역의 거주민이기도 하고, 경제 정책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이자 소비자이기도 하며, 교통 정책의 당사자인 대중교통 이용자이거나 운전자이기도 하다. 농업 정책, 환경 정책, 외교 정책 등 어떤 문제이든 대부분은 청소년들의 삶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관련이 있다. 단적인 예로, 세월호 참사는 선박 안전이나 해난 구조 시스템의 문제가 청소년 여행자들의 안전과 생명의 문제로 직결된 사건이지 않았던가.


따라서 청소년이 교육 문제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교육 관련 선거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라면, 청소년은 다른 문제의 당사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다른 선거나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학생이 아닌 다양한 청소년들의 삶의 면모를 쉽사리 떠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현실적으로 청소년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 외에는 공적인 영역에서 참여하고 활동할 기회가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일 터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우리는 청소년들을 오로지 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만 여기고,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회적 존재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이 교육 문제의 당사자라는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다면, 청소년이 주민이자 시민이자 국민이며 다른 사회적 문제에서도 당사자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쳐야 할 것이다.

 

  

학생 아닌 청소년들

 

세 번째 함정은, 청소년들이 모두 학생이 아니며 교육감의 행보와는 큰 관련이 없는 청소년들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교육감의 업무 범위는 유치원 및 초·중·고등학교에 관한 사무이다. 그런데 청소년 중에는 유치원 및 초·중·고등학교에 다니지 않는 경우가 분명 적지 않게 있다. 교육통계에 따르면 2016년 초등학교의 학업 중단자는 14,998명, 중학교의 학업 중단자는 8,924명, 고등학교의 학업 중단자는 23,741명이다. 이는 2016년에 학교를 그만둔 사람들만 집계된 것으로, 누적된 초·중·고 학생 아닌 청소년은 대략 30만~40만 명쯤으로 추정되고 있다.


과거 민주당 등에서 ‘학교 재학 중인 고등학생은 제외하고 18세 선거권’이라는 발상을 내놓았던 적이 있으나, 학교 재학 여부로 선거권 보장을 가른다는 것은 법리적으로나 직관적으로나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니 교육감 선거권을 학교에 재학 중인 청소년만 가질 리도 없을 것이다. 교육감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을 지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나 정책을 일부 시행할 수는 있으나 그 범위가 한정적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학생 아닌 청소년의 입장에서는, 교육감 선거권만 보장될 경우에 자신과는 큰 관련이 없는 정책을 좌우하는 교육감 선거에만 참여할 수 있고 다른 선거에는 참여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학생 아닌 청소년들이 헌법 소원이라도 제기할 법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예외 지대?

 

이러한 난점들은 ‘교육감 선거만은 청소년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근본적으로 난센스임을 보여 준다. 결국 청소년의 참정권을 온전하게 보장해선 안 된다는 전제 위에서 나온 미봉책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청소년을 민주주의의 예외 지대에 놓고 있는 안이기에 체계적이지 못하고 무리한 점이 생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정치는 영역별로 쪼개어져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론 각각의 정책 수립 과정에서는 당사자들과 의견을 협의하기도 하고 이해관계를 가진 대표 단체, 압력 단체와 교섭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표를 선출하고 국회를 구성하는 과정, 정당들과 시민들이 소통하고 정책을 만들고 공약하고 실현하는 과정은 더 총체적이고 공적으로 이루어진다. 시민으로서의 삶 자체가 총체적인 것이고 또 여러 정치적 결정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총체적인 것이므로 당연한 일이다. 정치 참여나 시민권 행사란, 단지 자기와 직접 관련된 한정된 영역에서의 참여 이상이다.


그런 면에서 교육감 선거에 한해서만 참정권을 보장하자는 것은, 청소년 참정권을 확대·보장하려는 취지와는 모순되는 부분마저 있다. 청소년 참정권을 반대하는 주장 중 주요한 내용이 청소년이 ‘학교에서 교육받는 학생’이기 때문에 정치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청소년 참정권을 비롯한 청소년 인권 보장 요구는, 청소년을 ‘학생’과 ‘학교’라는 틀 안에만 가둬 두려는 사회를 바꾸려는 것이기도 하다. 청소년 참정권 보장 요구는, 청소년이 이 사회의 시민으로 인정받고 살아가기 위한 시민권을 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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