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호[기고] ‘스쿨 미투’가 필요하다 (양말)

기고
‘스쿨 미투’가 필요하다

- 교사에 의한 성폭력은 어떻게 일어나고 지속될 수 있었는가


양말

but9368@naver.com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는 양말입니다. 경기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2016년, 친구가 다니는 서울의 S중학교에서 교사에게 성희롱 발언을 수차례 들었다는 학생들의 제보 내용이 SNS를 통해 알려졌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공론화를 도왔다. 하지만 그때 그 학교에 다니는 어느 학생에게 들었던 말을 잊을 수 없다.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 선생님들은 그런 의미가 아니셨던 것 같고, 한두 번 있는 것도 아니고 유난 떠는 것 같고…….”



정말 그게 유난 떠는 것일까? 학교 안에서 내가 겪어 온 많은 차별과 혐오 발언의 경험을 떠올리면 답답한 일이다.



2018년이 되어 각계에서 성폭력 경험을 폭로하는 ‘미투’ 운동에 불이 붙었다. ‘스쿨 미투’라는 이름으로 SNS에서 과거 또는 현재 학교에서 겪었던 성폭력에 대한 폭로도 진행되고 있다. 학교에서의, 특히 교사에 의한 성폭력이 이토록 사라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내가 2016년에 들었던 바로 그런 ‘너무 민감하다’, ‘유난 떤다’는 반응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경험해 온 학교는 성폭력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기는 너무나 어려운 곳이고 반대로 교사에 의한 성폭력이 계속해서 일어나기는 쉬운 곳이다.


 

동등하지 않은 관계

 

2017년 말, 다니던 중학교에서 교사들의 인권 침해적 발언과 행동에 대해 문제 제기하고 사과를 받기 위해 뜻을 함께할 친구들을 모았다. 교사들이 평소에 성희롱을 하거나 성차별적 언행, 학생 인권을 무시하는 언행을 한 것에 대해 졸업하기 전에 문제 제기를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수의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인권 침해 사례들에 대해 공론화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유난 떤다’고 말했다.


어렵게 함께할 친구들을 구했고 대자보를 쓰게 되었다. 교사들 역시 “고작 저거 가지고 유난 떠는 거야?” 하는 투로 반응했다. 학교로부터는 “교사들에게서 사과는 받아 내 줄 수 없다”는 대답을 받았고, 한동안 교무실에 불려 다녔다. 교감 선생님과의 면담 중에 나는 교사가 왜 학생들에게 폭언을 행사하고도 별다른 사과를 하지 않았는지, 학생들은 왜 사제지간의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을 꺼리는지 깨닫게 되었다.

 

양말 “선생님, 선생님과 학생은 동등한 관계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 노력 중 하나는 학생에게 폭언을 그만두는 것이에요.”


교감 “너 지금 선생님과 학생이 동등한 관계라고 생각하니? ○○아, 교사와 학생은 동등한 관계가 아니야.”


교사들은 애초에 학생들을 동등하게 보지 않았다. 그래서 학생을 ‘폭언을 해도 되는 대상’으로 보았고, 폭언에 대해 학생들이 문제 제기를 해도 큰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학생들도 무의식중에 그것을 알고 있었다. 친구들은 대자보를 쓰는 것을 싫어하거나 반대한 것이 아니라, 그 뒷감당을 무서워했다.


중학교 2학년 때, 과학 교사는 원소 기호 순서를 쉽게 외우는 방법을 알려 주겠다고 했다. 그가 잠시 뜸을 들이다 우리에게 알려준 건 “수헬리베 비키니 오픈업 나만 알지 펩시코카 크카”라는 문장이었다. 원소 기호들의 발음을 이어 붙인 문장이었다. 일단은 그렇게 가르쳐 주는 대로 외웠다. 다른 방식으로 원소 기호를 외우는 요령이 있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 당시에는 단순히 기분이 나빴지, 성희롱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다른 반 친구가 와서 저건 성희롱이라고 이야기하며 화를 냈다. 그때는 별 생각 없이 가만히 듣고 있었다. 만약 성희롱이라고 명확히 인식했어도 그 교사에게 함부로 대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 교사는 무섭기로 소문난 사람이었고, 나는 몇 번 다른 일로 그 교사에게 걸렸다가 혼쭐난 적이 있었으니까.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는 매우 수직적이다. 우리는 교사에게 잘 보여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며, 교사는 크게는 우리의 미래 대학과 진로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교사에게 잘못 보이면 수행 평가를 안 좋게 받는 등 불이익을 받을까 봐 신경 써야만 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를 학습해 왔다. 초등학교 때 나는 소위 ‘모범생’이었다. 담임 교사는 가끔 수행 평가에서 실수를 해도 다음에는 그러지 말라며 ‘매우 잘함’을 주고 넘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옆 반에서 같은 실수를 한 다른 친구는 ‘매우 잘함’을 받지 못했다. 아마 그 친구는 평소 한두 번씩 무단 결석도 했고, 교사에게 착하게 구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인 것 같다. 그때부터 나는 어린 나이에 선생님께 잘 보여야겠다는, 순종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이렇게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뚜렷하기에, 교사에 의한 성폭력은 더욱 일어나기 쉽다. 학생 입장에서는 교사에게 문제를 제기하거나 거부하는 데 망설임을 느끼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그럴 리가”


학생이 교사에게 성폭력을 당하기 쉬운 또 다른 이유는 ‘선생님이 그럴 리 없다’는 학교 안의 그리고 세상의 믿음이다. 교사는 가르침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교과만 가르치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생활 습관부터 용의 복장까지 모두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교사다. 그렇기에 학생에게 교사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교사를 잘 믿는다. 중2 과학 교사에게 원소 기호 암기법으로 성희롱을 당했던 때, 내가 기분이 나빴으면서도 성희롱이라고 선뜻 생각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도 선생님을 많이 신뢰했기 때문 아닐까 싶다. ‘스쿨 미투’는 사실 최근의 일만이 아니다. 학교 안의 성폭력을 알리고 문제를 제기하려는 노력은 계속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이런 움직임이 크게 번지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학생들이 교사에 의한 성폭력은 설마 그럴 리 없다고 스스로 축소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중대한 학교 안 성폭력 사건들만 부각시키는 걸 보며, 학생들은 저렇게 심각한 사안이 아니면 고발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자신들이 겪은 건 큰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공론화를 포기하게 되기도 한다.


학생들만이 아니라 이 사회의 시선도 그렇다. 학생들이 성폭력을 고발하면 ‘네가 잘못 안 거 아냐?’, ‘선생님은 그럴 의도가 없으셨을 거야’ 같은 말들이 돌아온다. 비청소년-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주로 남성 교사의 입장에 더 공감한다. 그리고 교사라는 직업과 위치에 대한 믿음과 청소년에 대한 불신이 더해지는 것이다.


처음에 이야기한 서울 S중학교 사건 당시, 이에 공감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왔는데도 세상은 이를 자꾸 ‘일부’의 잘못으로 몰아갔다. 언론사 기자들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서 쉽게 벌어질 수 있는 성폭력의 맥락을 짚지 못하고 일부 ‘일탈 교사’라고만 사건을 보도했다. 여러 사례들이 알려졌지만, 학교 안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해결하기 위한 대책은 나오지 못했다. 결국 그 뒤에도 몇몇 학교에서만 학생들이 교사들의 탄압을 받으며 익명으로 몰래몰래 온라인상에서 사례들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어렵게 공론화를 했지만, 너희가 너무 예민한 거라며 반감을 사기도 했다. 청소년들이 선생님들의 진정한 뜻을 모르고 오해한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신체를 일상적으로 단속하고 간섭하는 용의 복장 규제도 문제다. 귀걸이부터 치마 길이, 머리카락, 화장까지 잡는 용의 복장 규정이 많은 학교들에 있고, 교사들은 생활지도라는 명목으로 성폭력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 치마 길이를 잡는다고 치마를 허벅지에 붙이고 길이를 재는 건 흔한 일이다. 화장을 잡으며, 학생의 화장이 야하다는 등의 성적으로 들리는 말을 하기도 한다. 교복 치마 길이 문제를 운운하며 다리를 긴 자로 툭툭 치거나, 속옷이 비친다며 트집을 잡는 식이다. 우리 중학교는 화장을 잡는다며 학교에서 검은색 천을 구매하기도 했다. 검은 천을 얼굴에 문질러 화장을 했는지 검사하겠다는 것이다. 선도부나 생활 지도를 하는 교사는 우리들의 몸을 항상 아래위로 훑어본다.


이렇게 용의 복장 규제는 교사가 학생의 몸에 손쉽게 손을 댈 수 있게 한다. 또한 학교의 용의 복장 규제는 성별에 따른 규범을 요구하고 성적 어필을 규제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지도 과정에서 성차별적 발언도 자주 나오고, 학생의 외모에 대한 성적인 평가나 간섭도 가해진다. 학생들이 이에 불쾌감을 느껴도, 성희롱이나 성추행이 아니라 교사의 생활 지도 과정의 갈등 정도로 여겨진다. 용의 복장을 규제하는 이런 학교 규칙들은 학생들이 쉽게 바꿀 수도 없다. 게다가 학교의 용의 복장 규제는 학교의 질서를 유지하고 ‘학생은 학생답게’ 한다는 교육적 목적이 있는 것처럼 정당화되기 때문에 학생들이 그것이 성폭력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크게 느끼지도 못한다. 학생들의 신체와 성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학교 현실 자체가 학생들을 성폭력에 취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일부 교사들의 문제일까?

 

만약, 이런 많은 어려움을 넘어 내가 교육청에 성희롱 등 성폭력을 가한 교사들을 신고하더라도, 뒤처리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 또 문제다.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은 학생인권옹호관 같은 구제 기구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고, 만약 있다고 해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교육청도 성폭력에 대해 충분히 민감한 기준을 갖고 있지 못하고 교사의 편일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가령, 경남의 한 여고에서 학생들을 불법 촬영한 남교사가 있음이 밝혀졌지만, 그 교사는 겨우 정직 3개월의 처분밖에 받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성추행·성매매 등 성범죄를 저지른 교사들이 40% 넘게 학교에 남아 있게 하는 결과를 불렀다.


➊ “성범죄교사 3년 간 276명, 10명 중 4명은 여전히 교단에… 파면 후 복귀도 가능”, 〈중앙일보〉, 2017년 11월 6일.


이런 교사들이 학교에 계속 남아 있으면 불안에 떠는 것은 결국 피해 학생이다. 학교는 좁기에 누가 신고를 했는지 쉽게 알아낼 수 있다. 그리고 교사에게는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학생을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이 많다. 나 역시도, 한 교사에게 “이렇게 계속 폭력적인 발언을 하면 교육청에 신고하겠다”라고 이야기했지만, 그 교사는 되레 “수행 평가 점수를 깎겠다. 누가 신고했는지 다 알 수 있다”라며 협박했다. 피해를 받았다고 이야기하거나 신고한 학생들의 이름이 학교로 전달되는 일이 적지 않다.


가해자인 교사뿐만 아니라, 학교 자체가 이런 신고나 공론화에 우호적이지 않은 환경이다. 신고하거나 알린 학생들의 이름이 알려지면 학교의 명예를 깎아내렸다는 이유로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사이버 불링(cyber-bullying)과 따돌림을 받는 경우가 많다. 내가 중학교에서 교사들의 언행에 문제를 제기하는 대자보를 쓴 이후 며칠간 나는 다른 학생들과 졸업생들의 사이버 불링에 시달렸다. 결국 나는 내 SNS 계정을 닫아야 했다. 그동안 성폭력 문제를 신고하거나 알린 많은 학교에서도 고발한 학생들이 밝혀져 학생 간 폭력을 겪었고, 학교는 이를 방치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앞으로 또 3년간 고등학교를 다녀야 하는 나를 위해, 계속해서 학교에 입학하여 성폭력을 당한 후 상처받고 졸업할 사람들을 위해, 스쿨 내 미투 운동이 확산되어야 한다. 교사와 학생 간의 성폭력이 일부 ‘일탈 교사’들의 문제가 아님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길 바란다. 스쿨 미투 운동이 몇몇 사건들을 해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학교의 구조와 문화, 학생과 교사 사이의 관계 자체의 문제로 인식되길 바란다. 빠른 시일 내에 학생 인권이 향상되어 교사와 학생 간의 수직적 위계 관계가 사라지고, 교내 성폭력을 해결할 제대로 된 해결 방안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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