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호[기획] 코로나19가 남긴 교육의 과제 | 정말 코로나19 때문일까? | 장세린

202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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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코로나19가 남긴 교육의 과제


정말 코로나19 때문일까?

- 교육 현장의 사례와 경험을 중심으로



장세린

proud012@naver.com

전북 김제교육지원청 학력지원센터




시계를 보지 못하는 학생들


때는 2019년 3월의 어느 날, 3월 1일 자로 발령받은 따끈따끈한 신규교사 장세린은 수업 중 한 5학년 학생과 기 싸움을 시작한다. 발단은 시도 때도 없이 시간을 물어보며 자리를 이탈해 앞으로 나오는 그 학생 때문이다.

“너 이 녀석, 공부하기 싫어서 그러지? 수업 시간에 앉아 있어야 된다는 것 정도는 1, 2학년 때 배워서 알고 있는 거 아니냐? 어떻게 기본이 안 되어 있어.”

“…….”(땅만 본다.)

“정 시간이 궁금하면, 교실 벽에 빤히 시계 붙어 있는데 네가 고개 돌려서 보면 될 거 아니야. 적당히 하면 나도 그러려니 하고 조용히 넘어갈 텐데 왜 자꾸 선생님 자리로 나오냐고. 아무리 수업이 지루해도 그렇지, 그건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야.”

“시계…….”(말을 우물거린다.)

“뭐?”

“시계…… 볼 줄 몰라요.”(고개를 푹 떨군다.)

“…….”(아날로그 벽시계와 그 학생을 번갈아 쳐다본다. 학생이 자꾸 걸어 나와 훔쳐보았던 곳을 다시 본다. 교사용 컴퓨터 하단 작업 표시줄의 전자시계를 발견한다. 그제야 학생의 입장을 이해한다.)

발령받은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겪었던 이 일은 내 교직 생활의 방향을 결정하는 큰 흐름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신규 교사인 나를 배려해 3~6학년 과학과 미술을 담당하는 교과 전담 교사로 배정해 다양한 아이들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 펼쳐진 신세계란! 6학년 학생이 소수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수수깡을 5.5cm로 자르는 과업을 수행하지 못했다. 5학년은 시계를 볼 줄 몰랐다(시계 보기는 2학년 교육과정에 등장한다). 4학년은 받침이 있는 글자를 읽지 못했고, 3학년은 실내화를 신고 자리에 앉아 수업 듣는 일 자체를 힘겨워했다. 당시 그나마 우리 학교에서 가르치기 쉬운 학년이 시계를  볼 줄 모르는 5학년이었기 때문에, 이듬해 동료 교사들의 양보와 배려로 나는 6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시계만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생님, 그 있잖아요. 자로 아까 우리가 한 게 뭐였죠?”

“아까? 페트병 잘랐잖아.”

“아니, 그거 말고. 자로 길이를 이렇게 하는 거 있잖아요. 그걸 뭐라고 하더라요?”

“너, 설마 길이를 잰다는 말이 생각 안 나는 거니?”

‘요즘 아이들의 문해력’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짝꿍처럼 따라붙는 것이 한자 교육이다. 아이들이 한자 어휘를 알지 못해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것인데, 정작 내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한자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길이를 ‘재다’, ‘더불어’와 같은 일상적인 한글 어휘도 알지 못했다. 나는 이러한 심각성을 깨닫고 기초학력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시국을 지나며 학생들의 문해력과 기초학력 문제는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중위권이 붕괴되고 학력 격차가 심화되었으며 기초학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었다. 그러나 내가 교직 생활을 시작한 2019년은, 코로나19 시기가 아니었다.



코로나가 ‘보여 주고’ 간 것들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 – 입 모양의 중요성

코로나가 초등교육 현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학생들의 부정확한 발음과 읽기 부진을 꼽는다. 현재 학력지원센터 파견 교사로 근무 중인 나의 주요 업무는 바로 ‘협력 수업’이다. 학력 부진이 지나치게 심각해 담임 선생님의 지도로는 한계가 있을 때, 곧바로 찾아가 학생 맞춤형 일대일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저학년은 주로 한글 습득에 어려움이 있는 친구들이 신청하게 되는데, 사실 내가 주로 가르치는 영역은 ‘가나다라’가 아니다.

“○○아, 오늘은 ‘ㄹ’ 소리를 연습할 거야. 선생님 따라 소리 한번 내 볼까? 르!”

“으!”

“선생님 혀 한번 봐 봐. 혀를 앞니 뒤에 이렇게 붙였다 떼면서(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보여 준다), 르!”

“느!”

이처럼 언어를 습득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마스크를 끼고 생활한 탓에, 한글을 발음할 때 기본적인 혀의 위치나 입 모양 자체를 모르고 얼굴 근육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학생들이 꽤 많다. 심각한 경우 입을 크게 벌리는 것조차 힘들어하거나, 입꼬리를 올렸다 내리는 것이 어색해 ‘으’와 ‘이’ 발음이 제대로 구별되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수업 시간의 일정 부분을 구강 운동이나 입천장 등에 사탕을 발라 주고 알맞은 혀의 위치를 학생이 이해하게끔 만드는 일에 투자한다. 

고학년의 경우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그럼에도 코로나19로 인해 소리 내어 읽는 활동을 충분히 진행하지 못한 탓인지 발음이 부정확하거나 유독 읽기 활동 자체를 싫어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친구들이랑 신나게 떠들 때는 우렁차다가도 소리 내어 읽기 활동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모기 소리만 해진다면 한 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부정확한 발음으로 인해 읽기 자신감이 하락하여 얼버무리듯 읽느라 목소리가 작아지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발음이 부정확하면 한글 음운 변동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받아쓰기에 어려움을 느끼며 이는 쓰기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발음이 조금 틀려서 그렇지 우리 애는 잘 읽는데요”라고 말하는 학부모들의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아 줘야 할 필요가 있다. 


알파 세대의 디지털 활용 능력 - 타자 못 치는 아이들

MZ 세대의 다음 세대로 지칭되는 ‘알파 세대(Generation Alpha)’는 대체로 2010년 이후 출생자를 의미하며, 상당수가 코로나19로 인한 교육 공백을 경험하였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스마트폰과 디지털 세계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MZ 세대가 PC를 사용하며 ‘디지털 네이티브화’된 세대라면, 알파 세대는 모바일을 사용하며 태어난 순간부터 ‘디지털화’된 세대라고들 한다. 입학하자마자 원격 수업을 경험하고 앞으로는 디지털교과서로 수업을 받게 될 테니, 디지털 네이티브도 아닌 디지털 그 자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시기 시골 소규모 학교에 다니는 알파 세대들의 원격 수업은 결코 원활하지 않았다.

“언제 또 학교를 못 오게 될지 모르니 원격 수업 연습을 해 보겠어요. 일단 검색창에 EBS 온라인 클래스를 치고 들어가면…….”

“선생님! 검색창이 뭐예요?”

기기 보급이나 인프라 조성, 일말의 안내도 없이 통보식으로 진행된 온라인 개학 모두 교사들을 힘들게 했지만, 학생들의 디지털 기기 사용 역량도 매한가지였다. 알파벳을 몰라 주소나 아이디를 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컴퓨터를 켤 줄 모르는 학생도 있었다. 학교 방과후교실에서 컴퓨터 수업을 하니 타자라도 좀 치겠거니 싶었지만 두어 명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독수리 타법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방과후교실 컴퓨터 시간에는 대체 무엇을 하느냐고 물어보니, PPT 만드는 법을 배우고 타자 연습을 하는데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냥 한 손가락으로 치는 게 편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알파 세대의 디지털 기반은 스마트폰이기에, 부모가 특별히 신경 써 주지 않으면 PC를 다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도농 격차와 소득 격차는 이제 독수리 타자의 영역까지 좌우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든 원격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시골 작은 학교의 젊은 정보 담당 교사였다. 당시 원격 수업 기간에는 거의 매일 코피가 났다.

현재 초등학생들은 MZ 세대처럼 ‘몰컴(몰래 컴퓨터 게임)’을 하며 컴퓨터 사용에 대한 기본 지식을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한 세대가 아니다. 우리 세대는 엄마에게 들키지 않고 마음껏 게임을 하기 위해 쿠키 삭제나 검색 기록 삭제와 같은 고급 기술(?)을 연마하였지만, 지금은 원격 수업을 운영하기 위해서 로그인하는 방법부터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이 당면한 현실이다. 초등학교만 이런 상황인가 싶어 중·고등학교 교사들에게 물어보면, 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메일 보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고 한다. 


학교는 무엇을 가르쳐 왔는가 - 젓가락질 못 하는 아이들

“선생님, 밥을 못 먹겠어요.”

코로나19로 인해 설치된 급식실 투명 칸막이 너머로 학생 하나가 헛구역질을 했다. 평소에도 편식이 심하고 밥을 먹지 않아 주의를 많이 준 학생이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핑계를 대고 밥을 안 먹으려고 저러나 싶었다. 이번에는 좀 더 단호하게 타이르리라 다짐한 나는 학생 자리 맞은편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너무 더러운데……. 저 속이 너무 안 좋아요. (밥 안 먹고) 가면 안 될까요?”

학생 수가 적은 우리 학교는 학년 구분 없이 전교생이 급식실에 모여 밥을 먹었다. 그런데 그 학생의 맞은편에 앉은 1학년 신입생이 밥을 손으로 퍼 먹고 있었다. 숟가락은 그나마 사용할 줄 아는 모양새였지만 젓가락은 아예 쓰지 못했고, 밥과 국, 반찬 범벅이 된 손을 식탁에 문지르고 마스크를 주물거렸다. 온갖 양념과 침, 콧물 따위가 진득하게 늘어지는 것을 본 우리 반 학생은 조용히 입을 틀어막았다.

코로나19를 겪은 교사로서 내가 고민했던 것은 학업이나 성적 같은 게 아니었다. 손으로 밥을 먹는 것, 줄을 서지 않으려 하거나 차례를 지켜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것, 친구와의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선생님을 심판처럼 활용하려 한다는 것 등이었다. 현장 교사들 사이에서 ‘올해 받은 학생들은 유독 어린 것 같다’는 고충 토로가 터져 나왔다. 코로나19가 사그라들 무렵까지도, 3·4학년은 1·2학년 같고 1·2학년은 유치원생 같더라는 경험담이 줄을 이었다.

학교가 가르치는 것은 공부 그 이상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던 시기였다. 혹자는 유치원이나 가정에서 충분히 젓가락질을 배울 기회가 있었을 텐데 어떻게 손으로 밥을 먹는 아이가 입학할 수 있느냐고 되묻기도 한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가정에서 배워야 할 것을 익히지 못한 채 입학하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유치원-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 몸으로 부딪치며 겪는 사회화 경험과 교사들의 세심한 케어로 그간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다.


학교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해 왔고 또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야말로, 코로나19가 남기고 간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이전부터 우리 사회에 숨어 있던 교육 격차들이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의 교육 현장에 대한 의미 있는 논의가 계속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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