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속] ‘인권’은 폐지될 수 없다
학생인권 침해는 은폐되어 있을 뿐이다
- 학생인권조례 미제정 지역인 부산의 사례들
김찬
asunarobusan@gmail.com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부산지부
“학생인권조례를 제정·시행하는 광역 지자체는 18개 시도 중 6곳에 불과하고, 조례가 없는 지역에서 학생인권이 침해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다.”❶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통과된 다음 날, 국민의힘 서울시의회 대변인이 한 말이다. 기사를 통해 발언을 접했을 때, 나의 학창시절은 물론이고 활동하면서 만났던 당사자들의 삶이 모조리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해서라도 대변인의 사과를 받고 싶었다. 그럼에도 나는 대변인의 발언보다, 이를 두고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부산 지역 회원들이 했던 말들을 더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규탄 입장문을 논의하는 회의에서 회원들은 사회에 던지고 싶은 물음들을 하나씩 말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교사로부터 회초리를 맞고 욕설을 들으면서 무서웠던 순간들은? 중·고등학교에서 머리도, 옷도, 쉬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경험은? 부당한 용모 규정을 따르지 않는다고 교사로부터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받다가 자살한 학생의 이야기를 SNS를 통해 보면서 친구들과 나눈 슬픔과 공포는? 태어나면서 사회가 지정한 성별과 나의 성별이 달라 화장실 앞에서 수도 없이 고민해야 했던 아까운 시간들은? 학교 바깥에서도 ‘비정상’으로 혐오의 대상이 되는데, 학교 안에서도 혐오와 차별을 겪어야 했던 우리들의 10대는?
학생인권 침해는 이제 사라졌다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놀랍게도 이 물음을 던졌던 이들은 아주 오래전에 부산에서 학교를 다녔던 졸업생들이 아니다. 얼마 전에 학교를 졸업했거나,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는 활동가들의 이야기다. 요새는 오히려 학생들이 기세등등해졌고, 교사와 학생의 권력관계가 뒤바뀌어 학생들 때문에 수업하기 힘들다는 지금의 세상과 학생으로 살아야 했던 우리들이 있었던 세상은 매우 괴리되어 있는 듯했다.
27개 학교에서 확인된 인권 침해(2021년)
2021년, 부산 지역에서는 등굣길과 학원가에서 접수된 제보와 외부 인권교육 강사의 조사 결과 총 27개 학교에서 75건의 학생인권 침해 사례가 확인되었다. 교사의 폭행, 조리 전공 학생을 교직원 회식 준비에 동원, 지각·결석 및 이성 교제에 대한 벌금 부과, 학업 성적에 따른 차별 대우 등 법적 대응이 필요한 사례들도 다수였다.
이 문제를 다룬 토론회❷에서 재학생들은 자신이 겪은 인권 침해를 영상으로 증언했다. 한 사립 직업계고의 A 씨는 “몸이 아파도 방과 후 수업과 자격증 시험 준비에 강제로 참여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방과 후 학습 강요는 학생인권 보장에 미온적인 교육청조차 금지했던 행위였다. 또 다른 학생은 “지각했다는 이유로 교문에서 휴대전화를 압수당하고, 1시간 동안 시간의 중요성에 관한 강의를 들어야만 돌려받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일과 시간 중 휴대전화를 장기간 압수하는 사례가 여러 학교에서 제보되었다.
이 외에도 체육복 등하교 금지, 머리카락 펌·염색 금지, 여학생 내의 색깔 규제, 여학생 숏컷 금지, 교복 및 외투 착용 규제, 머리 길이·모양 규제 등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규제들이 여럿 나왔다. 생리 인정 결석 사용 시 진료 확인서를 요구하는 사례 등 학교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인권 침해가 자행되고 있었다.
학생들이 선언문까지 발표했지만 요지부동인 학교(2022년)❸
부산시 사하구에 위치한 동아공업고등학교(서원학원)는 사립 직업계 고등학교로, 지역에선 ‘규정이 엄격한 곳’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2022년 초, 한 학생이 단체에 제보해 왔다. 실습 중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욕설을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학교는 오래전부터 ‘기본 생활지도 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매달 학생들을 세워 두발과 복장을 검사해 왔으며, 지각한 학생에게는 폭력과 폭언이 따랐고, 규정을 어기면 부모님께 연락을 하거나 징계를 받게 한다는 협박이 이어졌다.
이에 재학생들은 학내 소모임을 꾸리고 대응에 나섰다. 학생들의 요구안을 담은 선언문을 긴급히 작성해 SNS를 통해 비밀리에 공유했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재학생의 1/4인 105명이 선언에 참여했다. 인권단체에서도 학교 앞에서 발언하는 선전전, 전단지 배포, 등굣길 현수막 설치 등 적극적인 행동을 이어 갔다. 그 결과, 교육청을 압박하여 공청회와 설문 조사를 진행하고 학칙제개정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답변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약속과 달리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두발 규정에 대한 설문 문항은 “두발은 사회적 통념에 비추어 단정하게 유지하며, 건강을 위해 펌과 염색은 할 수 없다”와 같은 편향된 내용으로 구성되었고, 공청회는 사전에 학생들에게 제대로 공지되지 않아 학부모들만 참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설문 조사에서 두발 규제 자체에 반대하는 기타 의견을 54%나 냈고, 이를 통해 학생들의 요구안 중 일부가 반영될 수 있었다. 하지만 7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교육청 등의 제도적 개입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취업 준비와 활동을 병행해야 했던 소모임 소속 학생들은 상당한 소진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학생회장을 죽음으로 내몬 학교(2022년)❹
부산의 한 사립여중에서 학생회장을 했던 A 씨가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A 씨는 ‘교사에게 찍힌 학생’이었고,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해 왔다. 학생부 담당 교사는 사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복도에서 큰소리로 A 씨를 불러 세우고, 교무실에서 옷을 갈아입으라고 지시했다. 해당 교사는 A 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활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며, 화장과 치마 길이 등 용모를 지속적으로 지적했다.
A 씨는 투표로 학생들이 힘을 모아 선출한 학생회장이었다. 학교의 주체인 학생들이 학생의 입장을 대변하고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대표자인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자치권은 학생부 담당 교사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A 씨가 학생회장으로서 의사 진행을 하거나, 학생회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가해 교사는 학생회 임원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폭언과 폭력을 행사했다.
결국 A 씨는 정신과 진료를 받다가 부당함을 알릴 방법이 없어 죽음을 선택했다. A 씨 외에도 해당 교사들로부터 생활지도를 받았던 여러 학생들이 전학을 갔거나, 트라우마를 겪으며 일상생활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A 씨의 유가족은 학교 앞에서 3년째 1인 시위를 이어 가고 있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가해 교사의 부당한 생활지도와 폭력적 행위에 면죄부를 부여했던 것은 바로 ‘교권’, ‘생활지도권’, ‘학교 규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교사의 권력이었다.
나답게 살아가면 폭력을 당하는 학교 현실(2023년)❺
아수나로 회원들 중에는 이성애자나 시스젠더의 범주에서 벗어난 청소년들이 많았다. 이들은 두발·복장 규제 등의 학생인권 문제와 퀴어라는 이유로 맞닥뜨리는 혐오와 배제 문제를 동시에 겪으며 학교생활에 지쳐 있었다. 복합적인 억압의 문제는 ‘1+1=2’처럼 단순하지 않고, 각각의 문제가 서로 맞물리면서 심화되거나 아예 새로운 폭력적 상황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래서 “다른 퀴어 학생들도 우리 같은 문제를 겪을 텐데?”라는 고민에서 ‘부산 지역 학생 성소수자 실태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놀랍게도 일주일 만에 200명이 넘는 부산 지역 퀴어 학생들이 실태 조사에 참여했다. 이는 국가인권위원회가 2014년, 전국에서 실시했던 실태 조사의 참여 인원과 비슷한 정도이다.
조사 결과를 보면 퀴어 학생들이 얼마나 학교에서 억눌려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실태 조사 참여가 빠르게 늘었던 것도 이해됐다. 응답자의 대부분은 학교에서 혐오 발언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33%가 교사로부터, 71%가 또래 학생으로부터 퀴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당사자에게 위협이 되는 발언을 들었다. “성소수자는 이해 못 한다”, “동성애는 도덕적으로 변태다”, “걔 게이라면서? 죽여 버리자” 등 혐오 발언의 구체적인 내용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A4 용지 여러 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았다. 그 밖에도 학교에서 퀴어라는 이유로 겪은 불합리한 일(39%)도 많았다. 성폭력, 신체적 폭력, 금품 갈취 등 범죄 행위가 버젓이 이뤄지고 있었지만 학교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특히 대부분의 사례는 당사자가 퀴어임을 알고 의도적으로 행해진 일들이었다.
기자 회견을 통해 이러한 결과를 발표하며 교육청에 전달했지만, 교육청은 간담회조차 거부했으며 어떠한 정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퀴어 학생들이 학교에서 살아가는 매순간은 생존을 향한 도전이 되고 있다.
학생인권 침해는 제대로 조사되지 않는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부산지부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매년 학생들이 겪고 있는 인권 침해 실태를 조사해 왔다. 당연하게도 부족한 재정 탓에 많은 학생들과 만날 수는 없었지만, 방문했던 대부분의 지역·학교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학교에서 겪은 인권 침해에 대해 털어놓곤 했다.
우리는 이런 조사 결과나 사례들에 대해 토론회를 열고, 교육청과 학교 앞에서 기자 회견과 집회를 하고, 재학생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는 등 필사적으로 알려 왔다. 실제로 거의 매년 이런 학생인권 침해 사례들이 지역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런데도 ‘학생인권 침해는 없다’고 주장한다니. 다들 언론 기사 검색과 같은 가장 기초적인 사실 관계 파악도 하지 않은 채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학생인권 침해 사례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듣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지, 인권 침해 사실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부산 지역에서 우리가 직접 접하고 대응해 온 사례들은 학생인권 침해가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최근 들어 학생인권에 반대하면서, 교권 침해 통계와 학생인권 침해 관련 통계를 비교하여 근거로 내세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애초에 이러한 비교는 부적절하다. 교권 침해에 관한 조사는 각종 교원단체들이 큰 예산을 들이고, 상담실을 운영하거나 설문 조사를 통해 수집하고 있을뿐더러, 교육청과 교육부가 공식적으로 집계하고 있지 않은가? 이에 반해 학생인권 침해 사례는 꾸준히 수집하는 국가 기관이나 단체조차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국가인권위원회나 청소년인권단체들, 진보적 교육단체들이 가끔씩, 아주 적은 예산을 들여 조사한 것이 전부였다.
실제로 부산에서는 교육청이 2015년에 딱 한 번 학생인권 실태 조사를 한 이후 그 어떠한 조사도 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국가인권위원회 부산사무소와 함께 인권 침해적인 학칙을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실제로 개정했는지 검수조차 하지 않는 등의 졸속적인 진행으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규정 모니터링만으로는 실제로 규정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학생인권조례나 학생인권법이 있었다면
지금까지의 사례들을 돌아보다 보니, 2022년을 떠올리게 된다. 그해 부산에서는 교사의 지속적인 인권 침해로 인해 중학교를 다니던 A 씨가 자살했으며, 학생들이 학생인권 침해 개선을 요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지만 교육청에서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사건들이 일어나기 조금 전, 2022년 초 겨울 방학 중에 부산시의회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발의된 바가 있었다. 2021년 11월, 국회에서는 학생인권법안(「초·중등교육법」 개정안)도 발의되었다. 부산시 학생인권조례는 의원들이 혐오 세력과 교원단체들의 반대에 눈치를 보며 몸을 사렸기에 논의 자체가 보류되어 자동 폐기됐고, 학생인권법 역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만약 이때 학생인권법과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었다면, 학생들은 2022년을 다르게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A 씨가 다니던 학교는 우리 단체가 인권 침해를 비판하는 현수막을 학교 앞에 여러 번 게시했던 곳이다. 그때 2건의 제보가 들어왔는데, 우리는 민원을 넣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학생인권법 또는 학생인권조례가 있었다면? 제도가 있다고 해서 곧바로 바뀌는 것은 없었을 테지만, 그런 제도라도 있었다면 학교 현장에서 인권 침해를 겪으며 살아가는 학생들과 손잡고 함께 해 볼 수 있는 행동들이 더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학생인권 침해는 은폐되고 있을 뿐, 세상에 존재한다. 국가와 사회가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 당연하다고 여겨지고 있어 당사자들로부터 발화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학생인권을 폐지하겠다고 말하기 전에, 제발 학생들에게 설문 조사를 통해 ‘학교에서 부당한 일을 겪고 있나요?’라고 물어보는 당연한 일을 한 번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❶
김종길(2024), 〈서울 학교 정상화, 국민의힘이 합니다〉,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대변인 논평, 2024년 4월 27일.
❷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부산지부 등이 주관한 부산 지역 학생인권 침해 실태와 개선 방안 토론회(2021년 12월 9일).
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두발 단속은 구시대적 발상” vs “생활지도 차원의 권고””, 〈부산일보〉, 2022년 4월 17일.
❹
“극단 선택·전학·정신과 치료… 줄 잇는 ‘교사 폭력’ 호소”, 〈부산일보〉, 2022년 10월 17일.
❺
부산 학생 성소수자 70% 혐오 피해… “안전한 학교 됐으면””, 〈부산KBS〉, 2024년 1월 9일.
[후속] ‘인권’은 폐지될 수 없다
학생인권 침해는 은폐되어 있을 뿐이다
- 학생인권조례 미제정 지역인 부산의 사례들
김찬
asunarobusan@gmail.com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부산지부
“학생인권조례를 제정·시행하는 광역 지자체는 18개 시도 중 6곳에 불과하고, 조례가 없는 지역에서 학생인권이 침해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다.”❶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통과된 다음 날, 국민의힘 서울시의회 대변인이 한 말이다. 기사를 통해 발언을 접했을 때, 나의 학창시절은 물론이고 활동하면서 만났던 당사자들의 삶이 모조리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해서라도 대변인의 사과를 받고 싶었다. 그럼에도 나는 대변인의 발언보다, 이를 두고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부산 지역 회원들이 했던 말들을 더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규탄 입장문을 논의하는 회의에서 회원들은 사회에 던지고 싶은 물음들을 하나씩 말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교사로부터 회초리를 맞고 욕설을 들으면서 무서웠던 순간들은? 중·고등학교에서 머리도, 옷도, 쉬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경험은? 부당한 용모 규정을 따르지 않는다고 교사로부터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받다가 자살한 학생의 이야기를 SNS를 통해 보면서 친구들과 나눈 슬픔과 공포는? 태어나면서 사회가 지정한 성별과 나의 성별이 달라 화장실 앞에서 수도 없이 고민해야 했던 아까운 시간들은? 학교 바깥에서도 ‘비정상’으로 혐오의 대상이 되는데, 학교 안에서도 혐오와 차별을 겪어야 했던 우리들의 10대는?
학생인권 침해는 이제 사라졌다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놀랍게도 이 물음을 던졌던 이들은 아주 오래전에 부산에서 학교를 다녔던 졸업생들이 아니다. 얼마 전에 학교를 졸업했거나,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는 활동가들의 이야기다. 요새는 오히려 학생들이 기세등등해졌고, 교사와 학생의 권력관계가 뒤바뀌어 학생들 때문에 수업하기 힘들다는 지금의 세상과 학생으로 살아야 했던 우리들이 있었던 세상은 매우 괴리되어 있는 듯했다.
27개 학교에서 확인된 인권 침해(2021년)
2021년, 부산 지역에서는 등굣길과 학원가에서 접수된 제보와 외부 인권교육 강사의 조사 결과 총 27개 학교에서 75건의 학생인권 침해 사례가 확인되었다. 교사의 폭행, 조리 전공 학생을 교직원 회식 준비에 동원, 지각·결석 및 이성 교제에 대한 벌금 부과, 학업 성적에 따른 차별 대우 등 법적 대응이 필요한 사례들도 다수였다.
이 문제를 다룬 토론회❷에서 재학생들은 자신이 겪은 인권 침해를 영상으로 증언했다. 한 사립 직업계고의 A 씨는 “몸이 아파도 방과 후 수업과 자격증 시험 준비에 강제로 참여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방과 후 학습 강요는 학생인권 보장에 미온적인 교육청조차 금지했던 행위였다. 또 다른 학생은 “지각했다는 이유로 교문에서 휴대전화를 압수당하고, 1시간 동안 시간의 중요성에 관한 강의를 들어야만 돌려받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일과 시간 중 휴대전화를 장기간 압수하는 사례가 여러 학교에서 제보되었다.
이 외에도 체육복 등하교 금지, 머리카락 펌·염색 금지, 여학생 내의 색깔 규제, 여학생 숏컷 금지, 교복 및 외투 착용 규제, 머리 길이·모양 규제 등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규제들이 여럿 나왔다. 생리 인정 결석 사용 시 진료 확인서를 요구하는 사례 등 학교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인권 침해가 자행되고 있었다.
학생들이 선언문까지 발표했지만 요지부동인 학교(2022년)❸
부산시 사하구에 위치한 동아공업고등학교(서원학원)는 사립 직업계 고등학교로, 지역에선 ‘규정이 엄격한 곳’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2022년 초, 한 학생이 단체에 제보해 왔다. 실습 중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욕설을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학교는 오래전부터 ‘기본 생활지도 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매달 학생들을 세워 두발과 복장을 검사해 왔으며, 지각한 학생에게는 폭력과 폭언이 따랐고, 규정을 어기면 부모님께 연락을 하거나 징계를 받게 한다는 협박이 이어졌다.
이에 재학생들은 학내 소모임을 꾸리고 대응에 나섰다. 학생들의 요구안을 담은 선언문을 긴급히 작성해 SNS를 통해 비밀리에 공유했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재학생의 1/4인 105명이 선언에 참여했다. 인권단체에서도 학교 앞에서 발언하는 선전전, 전단지 배포, 등굣길 현수막 설치 등 적극적인 행동을 이어 갔다. 그 결과, 교육청을 압박하여 공청회와 설문 조사를 진행하고 학칙제개정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답변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약속과 달리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두발 규정에 대한 설문 문항은 “두발은 사회적 통념에 비추어 단정하게 유지하며, 건강을 위해 펌과 염색은 할 수 없다”와 같은 편향된 내용으로 구성되었고, 공청회는 사전에 학생들에게 제대로 공지되지 않아 학부모들만 참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설문 조사에서 두발 규제 자체에 반대하는 기타 의견을 54%나 냈고, 이를 통해 학생들의 요구안 중 일부가 반영될 수 있었다. 하지만 7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교육청 등의 제도적 개입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취업 준비와 활동을 병행해야 했던 소모임 소속 학생들은 상당한 소진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학생회장을 죽음으로 내몬 학교(2022년)❹
부산의 한 사립여중에서 학생회장을 했던 A 씨가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A 씨는 ‘교사에게 찍힌 학생’이었고,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해 왔다. 학생부 담당 교사는 사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복도에서 큰소리로 A 씨를 불러 세우고, 교무실에서 옷을 갈아입으라고 지시했다. 해당 교사는 A 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활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며, 화장과 치마 길이 등 용모를 지속적으로 지적했다.
A 씨는 투표로 학생들이 힘을 모아 선출한 학생회장이었다. 학교의 주체인 학생들이 학생의 입장을 대변하고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대표자인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자치권은 학생부 담당 교사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A 씨가 학생회장으로서 의사 진행을 하거나, 학생회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가해 교사는 학생회 임원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폭언과 폭력을 행사했다.
결국 A 씨는 정신과 진료를 받다가 부당함을 알릴 방법이 없어 죽음을 선택했다. A 씨 외에도 해당 교사들로부터 생활지도를 받았던 여러 학생들이 전학을 갔거나, 트라우마를 겪으며 일상생활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A 씨의 유가족은 학교 앞에서 3년째 1인 시위를 이어 가고 있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가해 교사의 부당한 생활지도와 폭력적 행위에 면죄부를 부여했던 것은 바로 ‘교권’, ‘생활지도권’, ‘학교 규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교사의 권력이었다.
나답게 살아가면 폭력을 당하는 학교 현실(2023년)❺
아수나로 회원들 중에는 이성애자나 시스젠더의 범주에서 벗어난 청소년들이 많았다. 이들은 두발·복장 규제 등의 학생인권 문제와 퀴어라는 이유로 맞닥뜨리는 혐오와 배제 문제를 동시에 겪으며 학교생활에 지쳐 있었다. 복합적인 억압의 문제는 ‘1+1=2’처럼 단순하지 않고, 각각의 문제가 서로 맞물리면서 심화되거나 아예 새로운 폭력적 상황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래서 “다른 퀴어 학생들도 우리 같은 문제를 겪을 텐데?”라는 고민에서 ‘부산 지역 학생 성소수자 실태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놀랍게도 일주일 만에 200명이 넘는 부산 지역 퀴어 학생들이 실태 조사에 참여했다. 이는 국가인권위원회가 2014년, 전국에서 실시했던 실태 조사의 참여 인원과 비슷한 정도이다.
조사 결과를 보면 퀴어 학생들이 얼마나 학교에서 억눌려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실태 조사 참여가 빠르게 늘었던 것도 이해됐다. 응답자의 대부분은 학교에서 혐오 발언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33%가 교사로부터, 71%가 또래 학생으로부터 퀴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당사자에게 위협이 되는 발언을 들었다. “성소수자는 이해 못 한다”, “동성애는 도덕적으로 변태다”, “걔 게이라면서? 죽여 버리자” 등 혐오 발언의 구체적인 내용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A4 용지 여러 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았다. 그 밖에도 학교에서 퀴어라는 이유로 겪은 불합리한 일(39%)도 많았다. 성폭력, 신체적 폭력, 금품 갈취 등 범죄 행위가 버젓이 이뤄지고 있었지만 학교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특히 대부분의 사례는 당사자가 퀴어임을 알고 의도적으로 행해진 일들이었다.
기자 회견을 통해 이러한 결과를 발표하며 교육청에 전달했지만, 교육청은 간담회조차 거부했으며 어떠한 정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퀴어 학생들이 학교에서 살아가는 매순간은 생존을 향한 도전이 되고 있다.
학생인권 침해는 제대로 조사되지 않는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부산지부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매년 학생들이 겪고 있는 인권 침해 실태를 조사해 왔다. 당연하게도 부족한 재정 탓에 많은 학생들과 만날 수는 없었지만, 방문했던 대부분의 지역·학교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학교에서 겪은 인권 침해에 대해 털어놓곤 했다.
우리는 이런 조사 결과나 사례들에 대해 토론회를 열고, 교육청과 학교 앞에서 기자 회견과 집회를 하고, 재학생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는 등 필사적으로 알려 왔다. 실제로 거의 매년 이런 학생인권 침해 사례들이 지역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런데도 ‘학생인권 침해는 없다’고 주장한다니. 다들 언론 기사 검색과 같은 가장 기초적인 사실 관계 파악도 하지 않은 채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학생인권 침해 사례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듣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지, 인권 침해 사실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부산 지역에서 우리가 직접 접하고 대응해 온 사례들은 학생인권 침해가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최근 들어 학생인권에 반대하면서, 교권 침해 통계와 학생인권 침해 관련 통계를 비교하여 근거로 내세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애초에 이러한 비교는 부적절하다. 교권 침해에 관한 조사는 각종 교원단체들이 큰 예산을 들이고, 상담실을 운영하거나 설문 조사를 통해 수집하고 있을뿐더러, 교육청과 교육부가 공식적으로 집계하고 있지 않은가? 이에 반해 학생인권 침해 사례는 꾸준히 수집하는 국가 기관이나 단체조차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국가인권위원회나 청소년인권단체들, 진보적 교육단체들이 가끔씩, 아주 적은 예산을 들여 조사한 것이 전부였다.
실제로 부산에서는 교육청이 2015년에 딱 한 번 학생인권 실태 조사를 한 이후 그 어떠한 조사도 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국가인권위원회 부산사무소와 함께 인권 침해적인 학칙을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실제로 개정했는지 검수조차 하지 않는 등의 졸속적인 진행으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규정 모니터링만으로는 실제로 규정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학생인권조례나 학생인권법이 있었다면
지금까지의 사례들을 돌아보다 보니, 2022년을 떠올리게 된다. 그해 부산에서는 교사의 지속적인 인권 침해로 인해 중학교를 다니던 A 씨가 자살했으며, 학생들이 학생인권 침해 개선을 요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지만 교육청에서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사건들이 일어나기 조금 전, 2022년 초 겨울 방학 중에 부산시의회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발의된 바가 있었다. 2021년 11월, 국회에서는 학생인권법안(「초·중등교육법」 개정안)도 발의되었다. 부산시 학생인권조례는 의원들이 혐오 세력과 교원단체들의 반대에 눈치를 보며 몸을 사렸기에 논의 자체가 보류되어 자동 폐기됐고, 학생인권법 역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만약 이때 학생인권법과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었다면, 학생들은 2022년을 다르게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A 씨가 다니던 학교는 우리 단체가 인권 침해를 비판하는 현수막을 학교 앞에 여러 번 게시했던 곳이다. 그때 2건의 제보가 들어왔는데, 우리는 민원을 넣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학생인권법 또는 학생인권조례가 있었다면? 제도가 있다고 해서 곧바로 바뀌는 것은 없었을 테지만, 그런 제도라도 있었다면 학교 현장에서 인권 침해를 겪으며 살아가는 학생들과 손잡고 함께 해 볼 수 있는 행동들이 더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학생인권 침해는 은폐되고 있을 뿐, 세상에 존재한다. 국가와 사회가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 당연하다고 여겨지고 있어 당사자들로부터 발화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학생인권을 폐지하겠다고 말하기 전에, 제발 학생들에게 설문 조사를 통해 ‘학교에서 부당한 일을 겪고 있나요?’라고 물어보는 당연한 일을 한 번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❶
김종길(2024), 〈서울 학교 정상화, 국민의힘이 합니다〉,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대변인 논평, 2024년 4월 27일.
❷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부산지부 등이 주관한 부산 지역 학생인권 침해 실태와 개선 방안 토론회(2021년 12월 9일).
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두발 단속은 구시대적 발상” vs “생활지도 차원의 권고””, 〈부산일보〉, 2022년 4월 17일.
❹
“극단 선택·전학·정신과 치료… 줄 잇는 ‘교사 폭력’ 호소”, 〈부산일보〉, 2022년 10월 17일.
❺
부산 학생 성소수자 70% 혐오 피해… “안전한 학교 됐으면””, 〈부산KBS〉, 2024년 1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