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호[기획] 리박스쿨과 극우 성교육이 훼손한 가치들 | 성차별적 성교육에 민원을 넣자, 소장을 받았다 | 백소윤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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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리박스쿨과 극우 성교육이 훼손한 가치들


성차별적 성교육에 민원을 넣자, 소장을 받았다



백소윤  soyoon200@kpil.org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A는 초등학생인 자신의 아이와 저녁을 준비하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하루는 아이가 수업에서 “남자끼리 (성관계를) 하면 에이즈에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 깜짝 놀랐다. ‘에이즈’라는 병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막연한 두려움만 강조하면 ‘공포’만 학습할 수 있는데, 아이는 이 문제를 저렇게 한 줄로 요약했다. 동성애·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이나 혐오로 이어질 수 있는 내용일 수 있어 이것저것 물었다. 한 외부 강사가 진행한 성교육 수업이었다. 남자는 이성이, 여자는 감성이 발달한 건 남녀의 생물학적 성차로 성역할 구별은 당연하다는 성차별적 내용부터, 청소년기의 이성 교제를 ‘지양’하라는 ‘금욕적’ 메세지도 담겨 있었던 것 같았다.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사실 관계 확인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먼저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수업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지만 강사 C의 이름 외에 특별히 교육 내용은 알 수 없었다. 교육청에 사실 확인을 요청하면서 수업 내용과 강사 섭외 절차 및 검토 기준에 대해 질의했다. 아이로부터 전해 들은 성차별적이고 성소수자/감염인 혐오적인 수업 내용이 사실이라면 재발 방지 대책과 재교육을 요구하는 민원을 넣은 것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실제 그런 성교육이 이뤄졌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해당 학교의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는 “해당 강사는 성교육 전문가 양성 교육 프로그램에 섭외될 정도로 적합한 강사였고, 당일 수업에서 직접적으로 차별적이거나 혐오적 발언을 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말을 바꿨다. A는 지역 사회에서 성평등 기반의 성교육 활동을 하는 B 단체에 상황을 알리며 “적합한 자격을 가진 성교육 강사가 맞는지, 강사의 자격 요건은 무엇인지” 문의했다. 지역에서 여성운동을 하며 성평등 기반 성교육을 연구하고 진행하는 활동을 하는 B 단체는 사안의 심각성에 동의하여 해당 학교와 교육청을 상대로 사실 관계 확인 및 재발 방지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성명을 작성하여 보도 자료로 배포했다. 사안에 관심을 가진 지역 언론 2, 3곳에서 보도했지만 학교나 교육청 차원의 응답이나 적절한 조치는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A는 법원으로부터 소장을 받았다. 해당 성교육 수업의 강사 C가 A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 A의 허위 사실 제보로 인해 지역 사회에서 시대착오적 성교육을 하는 강사로 평가 절하되는 명예훼손을 당했고, 예정된 대학 강의가 취소되는 등 영업상 손해를 입었다는 취지였다. 이어 A는 피고소인 신분으로 경찰서 출석 요청도 받았다(A의 국민신문고 민원이 익명 접수되어 민사 소송의 상대방을 찾기 어렵자, C 측이 민사 절차를 이용해 민원인의 주소지 등을 확인하여 피고소인을 특정하게 되어 뒤늦게 형사 고소 사실이 전달된 것). A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으로 공익 소송 지원을 요청하면서, 나는 문제가 된 그날의 성교육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됐다.



소위 ‘성경적’ 성교육 자료를 사용하는 현장을 목격하다  


민사 소장에 ‘부끄러움 없이’ 증거로 첨부된 강의 자료를 넘겨 보니, A가 아이로부터 전해 들은 건 일부분이었다. 성별 이분법을 근거로 한 성차와 성역할의 고정 불변성, 정상가족과 생명의 소중함, 그리고 성병 유의라는 주제를 담고 있었다.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설명하며 성별화된 직업군을 그 결과로 설명하는 내용(‘남녀는 뇌 발달이 달라 기능도 다르다’, ‘남자 소방관이 많은 이유는 남자가 더 육체적으로 강하기 때문이다’, ‘남녀는 염색체로 구별되므로 성별은 바꿀 수 없다’ 등), 여성의 임신 출산의 기능이 강조된 가족관을 소개하면서 태아 사진을 연결해 보여 주는 내용(한 학생이 태아 사진을 보며 그럼 이때 (낙태)하는 것은 살인이냐고 질문하자, 강사가 그것도 뒤에 설명한다고 답했다는 아이의 진술이 있었다), 10대 때는 우정이 우선이고 이성 교제는 나중이라는 ‘금욕적’ 가치관에 이어 뜬금없이 청소년 성병 감염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고, 특히 HIV/AIDS 감염인이 늘고 있는데 감염인의 절대다수는 남성이며, 그 원인으로 남성 간 성행위를 꼽는 언론 보도가 인용되어 있었다. 


강사 C가 속한 자칭 ‘성교육 연구 기관’은 소위 ‘성격적’ 성교육을 대표하는 조직의 협력 기관 중 하나였다. 유사 기관들의 대표 격인 조직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기독교성가치관’, ‘생애주기별 성경적 성가치관’과 같은 제목의 강의를 소개했다. 교회나 교인 대상이 아니라 학교나 공공 기관으로의 출강뿐만 아니라 (아마도 민간 자격증을 발급할) 성교육 강사 양성 교육 프로그램도 홍보하고 있었다. 자료실에는 동성애자나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왜곡된 정보 혹은 혐오적 의견을 담은 강의안과 카드뉴스를 만들어 활용할 수 있게 두기도 했다. 민사 소송의 원고 C의 강의안과 내용(인용 기사, 사진 등)이 겹쳤다. 


차이가 차별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평등 의식에 반하고, 질병이 아닌 것을 질병‘화’하여 다양한 정체성을 폄훼하고, 질병일 ‘뿐’인 것에 낙인을 더해 차별을 정당화하는 강의 내용을 문제라 인지할 수조차 없는 수준의 이가 해당 강의의 정당성을 확인받겠답시고, 자신의 강의안과 함께 양육자이자 민원인을 소송으로 ‘끌고 간’ 상황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성평등 관점과 인권 감수성 없는 교육이
공론장에서의 가치 판단 기회를 박탈한다    


교실은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전제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많은 요즘이다. 학교가 왜곡된 역사관을 심는 소위 ‘극우 인큐베이터로 활용되었다’는 보도를 접하고 놀라지 않은 것은 이미 이 사건을 겪어 봤기 때문이었다. 특정 종교색이 반영됐다는 점 자체도 문제지만, 교육의 내용이 비현실적 금욕주의를 강조하고 왜곡된 정보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성차별적 문화를 답습하고 사회적 소수자(성소수자, 감염인)에 대한 낙인을 강화하여 혐오를 부추긴다면 공적 개입을 통해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


교육’관’이 없는 ‘무(無)’의 상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교육 방향은 가치 평가와 판단을 전제한다. 「교육기본법」에 담긴 교육의 중립성(제6조, 정치적 파당적 개인의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되며 국공립학교에서 종교관교육 금지), 교육 기회의 평등 원칙(제4조), 성평등 의식 증진 교육 의무(제17조의2)도 가치 판단을 전제로 최소한의 제동 장치를 둔 것이다. 성교육은 사회적 필요에 의해 폭력 예방의 차원에서 상호 존중과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르치는 성평등교육이 강조되기도 하고, 성(섹스, 섹슈얼리티,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성적 쾌락 등 여러 주제들)을 접할 기회가 증폭된 환경의 변화를 반영하여 성 건강 관련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성교육이 요구되기도 하며, 반복되는 성폭력 사건의 근본적 예방을 위해 성평등 의식 수준 상향을 견인하려는 여성주의 관점 성교육의 필요성이 알려지기도 했다.


사회 구성원 개인은 자신의 고유한 자아와 가치관을 바탕으로 성적 권리를 구성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권리는 사회와 단절하여 구성되지 않기에 경계 또는 한계를 지니고, 교육이나 사회 경험,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넓어지기도 하고 달라지기도 할 테다. 정보와 경험치의 차이나 처한 상황과 필요에 따라 그 경계와 한계가 달리 결정될 수 있기에, 교실에서 10대들에게 어떤 정보를 제공하고 무엇을 경험하도록 가르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고, 계속 ‘논란’이 되어야만 하는, 될 수밖에 없는 주제다. 성교육의 관점도 그렇고 구체적 내용이나 정보도 성숙한 논의 속에서 다뤄질 문제지, 숨길 문제는 아니다. 10대들은 학교 안팎의 경계 없이 여러 정보와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하는 민감한 문제’랍시고 삭제한다고 숨겨질 리 없다. 오히려 공론장에서 가치 판단의 기회가 적극 제공되어 더 나은 토의가 가능한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성교육과 관련해서, 학교는 ‘민감한 주제’를 다룰 공론장으로서 역할을 박탈(혹은 포기)당한 것 같다. 동시에 10대들도 공론장을 얻을 기회를 잃었다. 가치관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성과 관련해서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알아선 안 되는 정보는 누가 정하는가? 보수적인 기독교계 단체들의 ‘공격적 민원’으로 특정 관점을 배제하는 데 집중하다가 무지와 진공(빈 공간)으로 방치된 교실에 강사로 누구를 세웠는지 확인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폭력 예방 교육이나 관련 콘텐츠 제작에는 많은 자원이 투여된다. 새로운 폭력의 양상(실태) 혹은 피해 발생 시 대처 방안(신고처 등 소개)을 가르치는 교육 콘텐츠에 ‘예방’ 교육 자료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도 어색하다. 대부분은 사후 처방에 가까운 내용이기 때문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지’ 10대들에게 물을 기회도, 답할 기회도 주지 못한다. 성차별(정확히 성별 권력관계)에 대한 이해 없는 성폭력 예방 목적의 교육이 성교육의 전부가 될 때, 성은 공포나 금기라는 부정적 경험과 연결되어 인식되기 쉽다. 특히 필사적으로 ‘피해자 되지 않기’를 목적으로 한 학습 과정에서 자기결정, 동의, 안전, 관계에 있어서의 소통과 존중에 대해 다룰 기회가 마련될지 모르겠다. 설령 ‘부정적 경험’을 하더라도 자신을 잃지 않고 자기결정, 동의, 안전, 관계에 있어서의 소통과 존중의 중요성을 재탐색하고 그 경험을 딛고 서는 법은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


나는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나의 몸과 관련한 경험에 대해 더 많이 편히 이야기할 기회를 우리가 가질 수 있었다면, 자기 선택의 보람이나 실수로 배운 것과 잃은 것을 나눌 수 있었다면,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기회를 가졌다면, 누군가 선을 넘었을 땐 소리칠 수도 있고 자신을 돌보며 다시 경계를 세울 수도 있다고 배웠다면, 피해자 자신이 스스로를 보는 시선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보는 우리의 시선도 매번 같진 않을 거라고 말이다. 유난히 자주 반복되는 사건들을 마주할 때마다 피해자를 탓하거나 가해자를 두둔하는 우리,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우리가 피해자가 그 일을 겪게 되는 원인, 약점이다. 그 일을 겪은 이의 곁에 설 용기, 그의 곁에서 일상 회복을 함께 할 이를 위한 성교육이 필요하다.



보수 단체의 ‘민원 공격’에 휘청대는 공교육


2020년 여성가족부의 ‘나다움 어린이책’ 선정에 대한 맹공격과 정부의 회수 결정, 2023년 충남과 2024년 경기에서 벌어진 성평등 도서 열람 제한 및 폐기 사건으로 볼 수 있듯, 페미니즘과 섹슈얼리티, 성 다양성이나 성소수자를 지우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데 공공 정책과 공교육은 매번 이리저리 휘청였다. 10대들이 보다 나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할 ‘어른’들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노력보다는 자신의 ‘종교적’ 혹은 ‘정치적’ 신념을 지키는 데 집착했다. 교육 당국 등은 극성스런 민원 공격에 몸을 사리며 논란이 될 만한 주제들을 ‘금지어’ 목록에 올리는 데에 집중했다. 성평등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이념 ‘편향’ 또는 ‘경도’라고 공격하는 ‘조직적 민원’에, 포괄적 성교육은 논란거리로만 치부된 채 10년이 지나가고 있다(2015년에 문제가 되었던 교육부의 ‘국가 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은 2023년 「교육기본법」 개정으로 활용되지 않으니 참고만 하라는 안내와 함께, 여전히 교육부 학생건강정보센터 홈페이지에 공개 중이다). 


‘순결주의’나 ‘금욕주의’를 전제로 한 성교육의 문제는 10대들이 경험하고 있는 여러 상황을 다루기에 적절하지 않다. 성폭력 사건을 마주하는 것이 주업무인 내게 ‘여러 상황’이라는 것은, 디지털 환경에서의 괴롭힘부터 물리적 성폭력 가해/피해에 이르기까지 성/폭력이 날마다 양태를 달리하여 발생 중이지만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하며 기댈 곳은 많지 않은 상황, 거름망 없이 학습되는 성적 대상화 문화로 타인을 소비하는 주체가 되거나 혹은 자기 스스로를 대상화하여 주체가 되는 상황, 수사 기관에 오기까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가해자도 피해자도(그들의 양육자들조차도) 어리둥절해하는 상황을 뜻한다. 성차별적이고 소수자 혐오적인 강의에 대한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공익적 민원에 ‘당당히’ 소송으로 응대하는 이는 이런 여러 상황에 무슨 답을 가지고 있는지 묻고 싶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야 우르르 쏟아지는 학내 징계 강화나 법정형 상향 정책은 반복되는 사건의 원인에 대한 진정한 성찰의 결과가 아니며, 적절한 해결책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예방,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일이 일어난 원인, 지켜져야 할 권리에 대한 구체적이고 진지한 논의를 포함한 성교육이다.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서 타인을 존중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책임감 있는 결정을 내릴 때 고려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자극적 사건 보도 뒤에 이 일이 일어나게 한 공동체가 책임지는 방식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다름과 다양성에 대한 무지의 부정적 효과와 이에 대한 대처 방법까지도 논의하는 것이 교육에 포함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에 학교폭력위원회 조사 절차나 법적 절차는 부적절하기도 하고 뒤늦은 감도 있다. 그 일이 일어나게 된 이유에 관심을 가질 여력도 없다(사실 그건 위원회나 법원의 역할도 아니다).


양육자들은 사비를 들여서라도 성교육을 하고자 해 성교육 과외 ‘시장’이 돈이 된다는 뉴스에, 학폭위 대응이나 성폭력 범죄 변론으로 법조 ‘시장’이 성장했다는 뉴스를 겹쳐 읽는다. 과연 그 내용은 적절한지도 의문이지만 ‘누구나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교육’을 자부담으로 구매해야 하니 접근성에 차별이 생겨 문제이기도 하다. 성병, 피임, 임신 등 정확한 성과 관련한 의료 정보와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권리에 더불어 자기뿐만 아니라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에 대해 배울 기회가 양육자의 의지와 돈으로 제한되는 조건의 공동체가 안전할 리 없다. 정보 습득을 넘어 삶의 다양한 측면에서 성과 관련된 문제를 이해하게 돕는 역할을 해야 할 성교육이 정체성을 잃은 결과를 우리는 매일 밤 뉴스로 확인한다.



무엇으로부터 교실을 지킬 것인가? 누구를 지켜야 하는가?


다시 사건으로 돌아오자. 형사 사건이 민사 사건에 영향을 미칠 사건이라 형사 고소에 적극 대응해야 했다. 사건의 법적 쟁점은 여느 명예훼손이나 영업방해 건과 다르지 않게 허위에 대한 인식 여부, 비방 목적과 같은 고의와 이를 평가하기 위한 정황에 대한 사실 확인이었다. 결과는 경찰의 ‘혐의 없음’, 불송치였다. 상대방이 이의 신청을 하여 재수사가 이뤄졌으나 모두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형사 사건에서 불기소 처분이 나고 나서야 C 측이 민사 소송을 취하했다. 거의 2년 가까이 송사에 휘말린 A에게는 긴 시간이었을 것 같다. 그 수업을 들었던 아이를 포함해 그 학급의 아이들은 10대 중반을 넘어 중학생이 됐다. 오늘 성교육을 들은 10대도 금방 20대가 된다.


그 수업에 대해 담임 교사의 진술(원고 C 측이 제출한 증거)을 참고하면, 학급의 한 아이가 동성 급우 간 스킨십을 목격했다고 제보하면서 담임이 “놀라”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급히 ‘(부)적절한’ 강사를 섭외했다는 맥락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날 그 수업이 있었던 교실에 성소수자 학생이 앉아 있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이가 자신을 성소수자로 스스로를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이 뭔가 잘못했단 생각에 두렵진 않았을까? 이내 무언가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포기하거나 단념해야 한다고 결심했다면 어쩌지? 슬프고 무섭다. 


어느 날 저녁을 준비하며 아이로부터 듣게 되는 수업의 한 줄 요약이 사회의 무지와 편견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얻은 경험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무엇으로 나를 정체화하건, 내가 무슨 일을 경험하건 나의 잘못이 아니다, 나는 존중받아야 하고 옆에 누군가는 함께할 것이라는 ‘안심’으로 요약될 수 있는 수업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인가. 최근 서울시가 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운영 지침에서 ‘포괄적 성교육’ 개념을 포함해 ‘성소수자’ 관련 용어를 삭제하라고 지시해 문제가 되었다. 성차별로 자신의 가능성의 모퉁이를 접은 이가 됐건, 당장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데 주저앉게 된 성폭력 피해자가 됐건, 성소수자 혐오 발언에 자신의 미래를 낙담한 이가 됐건, 누구도 제대로 지킬 생각이 없는 ‘어른’들의 교실에서. 오늘도 어떤 이가 차별적 혐오적 수업을 ‘교육’이랍시고 받으면서 스스로에게 생채기를 내지 않게 하기 위해, 그이를 지켜 줄 민원인, 그이의 상처를 같이 걱정하고 함께 다독일 민원인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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