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호[특집] 교사는 전문직을 꿈꾸는가? | 장인하

2024-06-10
조회수 591

특집 | 돌봄 사회로의 전환과 교육의 과제


교사는 전문직을 꿈꾸는가?

- 교육과 돌봄의 위계화와 교사들의 전문직 정체성 구축[ref]이 글은 [장인하(2024), 〈교육과 돌봄의 위계는 왜 지속되는가? 초등돌봄교실을 둘러싼 갈등을 통해 본 돌봄 노동의 가치 절하 기제〉, 《페미니즘연구》, 24(1), 한국여성연구소]의 일부 내용을 수정·보완하였습니다.[/ref]

 

장인하

terrelune124@gmail.com

대학원생, 교육노동자현장실천 회원



“돌봄은 교육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계속 생각해 보게 된다. 2020년에 처음 이 구호를 들었을 때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당시까지 나는 돌봄과 돌봄 노동에 대해 고민해 보기는커녕 하다못해 돌봄이라는 말을 사용해 본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돌봄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상태였다. 떠올려 보면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본격화되었고, 초등 돌봄 교실을 둘러싼 갈등이 분출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돌봄 노동이 필수 노동이라 불리기 시작하더니, 돌봄 윤리를 필두로 하는 돌봄 담론이 그야말로 급격하게 확산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내가 학교에서 해 오던 많은 일들이 사실은 돌봄이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특히나 비대면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을 만날 일이 없게 되었던 당시의 상황은, 교사의 노동에서 관계성이 삭제되었을 때 남는 것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어찌 보면 지극히 실험적인 상황이었던 것도 같다. 이를 조금 과장하면, 돌봄 없는 학교교육이 무엇이고 또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낳는지는 팬데믹 당시에 이미 경험적으로 확인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돌봄과 돌봄 노동이 갖는 의미가 점차 선명해졌던 만큼이나 “돌봄은 교육이 아니다”라는 구호도 커져만 갔으니, 당시에는 이 사안을 접할 때마다 무척이나 혼란하고 당혹스러웠다.

시간이 지나고서도 “돌봄은 교육이 아니다”라는 말을 계속 곱씹게 되었던 것은 이 구호가 스스로에게도 명쾌하게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이제는 “어떻게 저런 구호를”에서 “왜 하필 저런 구호를”로 생각의 초점을 옮길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교사들이 왜 “돌봄은 교육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외쳤던(그리고 외치고 있는) 것인지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돌봄 교실을 지자체로 이관하려는 교사들’이라는 표상 이면에는 교사들의 모순적 위치와 정체성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교사와 돌봄 노동자의 갈등으로, 혹은 학교 내 돌봄과 지자체 이관이라는 대립 구도로, 나아가 교육과 돌봄의 결합 혹은 분리로 환원되지 않는 여러 층위의 문제들이 얽혀 있는 것이다. “돌봄은 교육이 아니다”라는 구호에 얽혀 있는 하나의 실타래를 풀어 보려는 시도로, 교사들이 자신들의 집단적 정체성을 구축해 가는 ‘정체성 노동(identity work)’의 맥락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자 한다.

이 글의 전체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최근 몇 년간 교사들과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여러 사안들에서 교사들이 보여 준 대응 방식은 교사의 전문직 정체성을 강화함으로써 교사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개선하려는 시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돌봄 전담사들과의 갈등 국면에서 교사들의 대응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돌봄은 교육이 아니다”라는 교사들의 구호가 갖는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전문직화 전략에 더해 하나의 층위를 더 고려할 필요가 있는데, 역사적으로 젠더화된 교직과 돌봄 노동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교직의 돌봄적 특성으로 인해 주로 여성들이 교직에 진출하였고 이로 인해 교사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반면 정확하게 동일한 이유로 교직은 비전문적인 일로 가치 절하되었고, 이에 따라 교사들은 자신들의 전문성을 지속적으로 의심받아 왔다. 결국 젠더화된 돌봄과 이에 수반된 돌봄 노동의 가치 절하는 교사들의 정체성에 지속적으로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었다. 교사들이 돌봄 전담사들과의 갈등 국면에서 교육과 돌봄을 위계화하는 “돌봄은 교육이 아니다”라고 선언한 이면에는 자신들의 전문직 정체성을 강화하는 정체성 노동의 수행이 있었던 것이다.

 


직업 정체성과 전문직 정체성의 구축

 

‘도덕’이나 ‘진로와 직업’ 교과서에서 볼 법한 말이기는 하지만, 직업 정체성은 여러모로 중요한 문제이다. 직업 정체성은 개인이 자신의 노동과 직업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해당 직업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인식되고 어떤 지위가 부여되는지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또한 직업 정체성은 개인적 차원만이 아니라 집단적 차원에서 형성되고 재생산된다. 즉자적·대자적 계급을 가르는 계급 의식이나 톰슨이 말한 계급 형성의 문제는 결국 노동자들이 집단적 경험을 통해 계급이라는 집단적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톰슨, 2000). 단순화해서 말하면, 특정 직업 집단의 정체성이 전체 노동자 계급의 정체성과 맞닿을 때 계급이 형성되고, 직업 정체성이 개별 직업 집단별로 분절되거나 더 나아가 개인 단위로 파편화될 때 계급은 해체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노동자들의 직업 정체성에 대한 일각의 사회학적 연구들은 노동의 불안정성이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 각 개인이 자신의 ‘가치(value)’를 높이고 직업 커리어를 구축해 가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개인의 직업 정체성에 주목한다(Beech et al., 2016; 노성철, 2019). 신자유주의화와 노동의 불안정성의 심화로 인해 노동자들의 계급 정체성이 약화되고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직업 정체성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직업 정체성은 단지 개인적·사회적 인식과 인정의 차원을 넘어서 구체적으로 노동자 개인의 노동을, 나아가 특정 직업 집단의 행동과 의식을 통제하는 기제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는 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이 개발자 정체성이 가진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은 (실제로 그런 것과는 별개로) 능력주의와 도전·창의 따위로 대표되는 ‘개발자 문화’ 규범과 ‘개발자 정체성’을 기업 조직 내에 구체화함으로써 이를 매개로 개발자들의 헌신과 경쟁, 그리고 과다 노동을 이끌어 낸다(Kunda, 1992). 미국에서의 공교육 교사 담론도 대표적인 예인데, 공교육 제도의 발달과 더불어 미국의 교사들은 (여성적 자질에 입각한) 양육과 돌봄의 전문가로 호명됨과 동시에 그 여성적 자질로 인해 교육의 전문성을 의심받아 왔다. 이때 정부는 관료제적인 공교육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교사들이 전문직이라는 담론을 지속적으로 유포하면서 동시에 교사의 전문성 부족을 문제 삼았다. 이를 매개로 정부는 교사들의 자율성을 박탈하고 표준화·획일화된 관료적 통제 안으로 묶어 두려고 했다. 위로부터 교사들에게 전문직 정체성을 부여하려는 이러한 정체성 형성 작업은 교사들을 비난하는 담론의 근거로 활용되어 교육과 교사의 노동을 관료제적으로 통제하는 핵심 기제가 되었던 것이다(폴레비치, 2022).

지금까지 개인적·집단적 차원의 직업 정체성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전문직 정체성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회적으로 전문직으로 인정되는 직업 집단은 자신들이 가진 경제적·조직적·문화적 자원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관할 권역(jurisdiction)을 확보하고 법적·제도적 진입 장벽을 설정함으로써 전문직으로서의 지위와 위세를 획득하고 유지한다(Abbot, 1988; Larson, 1977). 역사적으로 의사, 간호사 등 전문성을 인정받는 직업 집단들은 전문직으로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사회적 인정을 획득하기 위해서 자신들이 담당하는 업무와 관련 지식 중에서 전문적인 것과 비전문적인 것, 핵심 업무와 비핵심 업무를 구분하고, 비전문적 지식과 비핵심 업무를 다른 직업 집단의 몫으로 할당함으로써 자신들만의 독점화된 관할 권역을 설정하였다(맥도널드, 1999). 대학교육으로 대표되는 제도화된 전문적 교육과정의 이수와 시험 등을 통한 자격 부여(licensing)는 전문직의 관할 권역을 명확히 하는 사회적 폐쇄(social closure)의 대표적인 방식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전문성의 정치는 돌봄 노동을 대상으로도 이루어졌다. 돌봄과 의료를 복합적으로 수행하던 간호사들은 종래에 자신들이 수행하던 노동 중 저숙련 노동과 돌봄 관련 노동을 간병 노동자나 간호보조원들에게 할당했다. 이렇게 간호사들은 자신들의 업무 범위를 전문적인 의료 행위를 중심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전문직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었다(Duffy, 2011; Witz, 2016).


  

전문직 정체성을 구축하려는 교사들

 

내가 직업 정체성의 의미 및 전문직 정체성의 구축과 관련한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근 10년 사이에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교사들의 집합 행동에서 제기되는 주된 서사가 교사들의 정체성 노동(identity work), 즉, 전문직 정체성을 형성·강화하려는 흐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2017년,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 논란을 들 수 있다. 당시 정규직 교사들이 집단적으로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에 반대하고 전교조가 중앙집행위원회 결정 사항으로 “현재 근무 중인 기간제 교원의 일괄적이고 즉각적인 정규직 전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정할 때 (명시적으로 언급을 하였든 아니든) 그 주장의 핵심에는 교원 임용 시험의 통과 여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시험을 통과한 교사들에게만 정규직으로의 입직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인원 수급을 통제하는 사회적 폐쇄 전략은 전문직의 직업 범주를 획정하고 전문직 정체성을 구축하는 핵심적인 수단임을 앞에서 살펴본 바 있다.

2023년 서이초 사건 이후 교사들이 내세운 집합적인 서사 및 교권 관련 요구 역시 위와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사 노조 및 단체들은 ‘5개 교원단체 공동 요구안’(요구안)을 제출하며 교권 보장을 위한 입법 요구를 하였는데, 사실 이 요구안에 담긴 ‘「아동학대법」 개정 및 학생 생활지도(교육) 권한 법제화(“지도 불응 수업 방해 학생 분리 법제화”)’ 요구는 서이초 사건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한 내용이다. 그런데 요구안으로 제시된 ‘교권 보호 담론’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서사는 교사의 “전문적인 판단으로 학생을 교육·지도 할 수 있도록”하는 것이다. 즉, 해당 요구들은 교사 스스로의 전문성에 기반한 교육적 판단은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에 보호자로 대표되는 비전문가의 개입은 배제해야 하며, 따라서 교사들의 전문적 판단에 제약을 가하는 법적 개입 장치들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교권 문제와 관련된 일련의 흐름들 속에서 교사들은 교육의 전문성이라는 명분으로 자신들의 관할 권역을 명확히 하고 이를 보장하는 법·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함으로써 교사들의 전문직 정체성을 구축하는 한편 이를 통해 교원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고자 하는 전문성의 정치를 수행하였던 것이다.

돌봄 교실을 둘러싼 갈등에서 제시된 “돌봄은 교육이 아니다”라는 구호 역시 단지 교사들이 특정 갈등 국면에서 우발적으로 표출한 구호로 보기보다는, 교사들이 전문직으로서 자신들의 직업 정체성을 (재)구축해 가는 과정에서 제기된 것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교사들의 교육과 돌봄의 구별 짓기는 교육과 돌봄의 위계화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교육 활동을 안정적으로 펼쳐야 할 학교에서 교육 활동이 뒷전으로 밀려 오히려 주객이 전도된 꼴이다. (……) 학교는 보육 기관이 아닌 교육 기관이다”(전국교직원노동조합, 2020)라는 말에서도 드러난다. 교사들은 학교를 교육이 중심이 되는 위계화된 공간으로 정체화하고, 학교의 핵심 기능과 부가적 기능을 구분하여 교육과 돌봄 사이의 상징적 경계를 설정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조직에서 역할·업무 간에 경계를 설정하고 위계화하는 것은 조직 내 자원을 특정한 곳으로 집중시키고 이를 특정 집단이 독점하기 위한 대표적인 방식이다(Tilly, 1998).

특히 이 과정에서 교사들은 ‘전문적인’ 교육과 ‘비전문적인’ 돌봄을 구분함으로써 교육과 돌봄을 위계화하였다. 한국의 교사들은 과거부터 정부를 상대로 교육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행정 잡무’를 담당할 노동자들을 별도로 채용할 것을 요구해 왔고, 교무 실무사, 과학 실무사, 특수교육 실무사 등이 학교 비정규직의 주요 직종으로 채용되었다. 그 결과 교사들은 자신들의 업무에서 비전문적인 업무로 규정된 ‘잡무’를 일부 배제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전문성의 영역을 더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이는 동시에 교육 활동을 ‘지원 또는 보조’하는 직종의 등장과 함께 학교 안의 직종 간 위계를 세분화·강화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교사들은 돌봄 전담사와의 갈등 국면에서 교육과 돌봄의 구별 짓기를 통해 돌봄 교실 관련 업무들은 자신들의 업무가 아님을 선언하였다. 교사들은 이를 통해 전문적인 교육을 담당하는 전문직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돌봄 전담사들의 노동을 전문적인 교육의 공간인 학교에 적합하지 않은 비전문적인 것으로 규정했다. 나아가 돌봄 교실의 지자체 이관을 통해 이를 학교 밖으로 내보내고자 하였다.


 

젠더화된 돌봄과 젠더화된 교직 - 교사 전문성에 내재된 긴장과 교사들의 대응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마치 교사들은 전문직 정체성 구축을 통한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돌봄의 가치를 등한시하고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차별·배제하는 이기적인 집단이 되어 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단선적인 설명은 현실의 일부만을 보여 준다는 한계가 있다. 돌봄 교실을 둘러싼 갈등과 교사들의 전문직화 전략이 갖는 의미는 교직과 돌봄 노동이 배태하고 있는 사회적 맥락, 즉 젠더화된 사회 구조 속에서 교사들이 처한 모순적인 위치를 고려할 때 보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한편으로, 여성적인 관계성(relationality)은 기술적 숙련과 전문적 지식의 반대편에 놓였다. 다른 한편으로, 관계성은 발전되고 가치 있게 여겨져야 할 숙련으로 제시되었다. 이 긴장은 (……) 이러한 직업들(간호사, 교사-인용자)이 발전하는 데에 있어 번영의 원천이자 심대한 갈등의 원천이 되었다.[ref]Duffy. M.(2011), Making Care Count: A century of gender, race, and paid care work, Rutgers University Press, p73.[/ref]

 

인용문에서 드러나듯이, 공교육 제도의 발달과 함께 교직이 여성들의 직업으로 여겨지고 또 여성들의 교직 진출이 장려되었던 것은 돌봄을 여성의 본성적 특성과 연결 짓고 공·사적 영역에서 돌봄을 여성에게 강제적으로 할당해 왔던 역사적 맥락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미국 공교후 성립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별다른 공적 지원 체계가 갖춰지지 않고 충분한 자원이 할당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점차 공교육의 사회적 필요에 대한 인식과 수요가 높아지자, 여성들에게 가정에서 수행하던 돌봄과 헌신을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도 수행하라는 요구가 강화되었다. 이처럼 미국에서의 초기 공교육의 발달은 여성 교사 개인의 헌신에 기댄 측면이 컸다. 그런데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점차 공교육이 제도화되고 공교육에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다. 여성에게 적합한 것으로 여겨졌던 공교육은 바로 여성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학적이거나 전문적이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었으며 (대부분이 여성이었던) 교사의 전문성을 저평가하는 핵심적인 요인으로서 돌봄 노동에 대한 가치 절하가 작용한 것이다(폴레비치, 2022).

따라서 오늘날 교사들의 전문직화 전략은 젠더화된 돌봄과 젠더화된 교직이라는 사회적 맥락과의 관계 속에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 돌봄 노동은 여성들의 일이기 때문에 그 가치가 제대로 인정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주로 여성들이 하는 일은 (사실은 어떤 노동에나 포함되어 있는) 돌봄적 특성이 부각되고 따라서 전문적이지 못한 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과 동전의 양면이다. 이에 따라 교사들은, 특히나 젠더화된 양상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 초등학교 교사들은 전문직 정체성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교육의 전문성 인정과 교육과 돌봄의 위계화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돌봄은 교육이 아니다”라는 교사들의 구호는 돌봄 노동과 교직의 젠더화라는 성차별적 사회 구조가 교사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제약 조건으로 작용하는 상황 속에서, 교사들이 전문직 정체성을 구축하여 이에 대응하고자 하는 집단적 행위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가며

 

과문한 탓이 크겠지만, 내가 접해 왔던 논의들은 주로 교사의 전문직 정체성을 노동자 정체성과 대립시키는 구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전교조는 창립에서부터 교사의 노동자성을 선언하고 이를 쟁취하기 위한 길을 걸어왔고, 정부 주도의 교원 전문성 담론을 교사 주도의 ‘참교육’으로 대신하며 교사의 직업적 이해에 갇히지 않는 계급적 연대를 추구해 오기도 했다. 그런데 전교조의 서사에서 교사의 전문직 정체성이 노동자 정체성에 대한 일종의 대립물로 상정되다 보니, 전교조 활동 내용들 속에 분명한 경향으로 존재하였던 전문직 정체성 추구의 흐름이 비가시화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전문직 정체성은 그 자체로 노동자 정체성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며, 전문직 정체성은 직업 정체성의 일종으로서 노동자 정체성과는 다른 층위의 개념이다. 물론 특정 직업 집단의 구성원으로서의 직업 정체성의 강화가 전체 노동자의 계급 정체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지만, 그 둘은 다른 층위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돌봄 전담사들과의 갈등,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에 대한 반대, 그리고 교권을 앞세우며 다른 교육 주체들과의 이해관계의 대립이 부각되는 국면에서의 교사들의 행보는 단순히 노동자 정체성의 약화로 설명하기보다는 (노동자인) 교사로서 어떠한 직업적 정체성을 구축하고자 하는지의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전문직 정체성을 구축하려는 시도가 당장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개선에 도움이 된다면, 교사들의 이와 같은 전략이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교직의 전문직화 과정은 의사, 변호사와 같은 다른 전문 직종처럼 직업 집단의 주도 아래 전문 관할 권역을 확보하고 국가로부터 이에 대한 법·제도적 보장을 이끌어 내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교사의 전문직화는 교사들에 대한 관료제적 통제를 관철시킬 목적으로 국가 주도로 위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에 따라 전문직 담론을 매개로 교사들의 전문성 부족이 문제시되면서 성과급제, 표준화 평가가 도입되었고 교사들의 교육 활동의 자율성은 제약되었다. 한국에서도 정부 주도의 교원 전문성 담론이 주로 교사들을 개혁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신자유주의적 교원 정책을 강화하는 방편으로 활용되어 왔다는 것을 고려하면, 오늘날 여러 갈등의 국면들 속에서 표출되고 있는 교사들의 전문직 정체성 강화 흐름에 대한 우려를 거두기 어렵다. 특히나 유념할 것은 모든 전문직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해당 직업 집단에 독점적 권한과 자율성을 부여하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높은 수준의 윤리적 기준과 책무성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교사와 국가의 관계, 교사들에게 부과되는 관료제적 통제의 압력, 나아가 시장 논리에 입각한 경쟁 교육 담론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서 교사의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교사의 전문직화는 미국의 교사 전문직화의 역사에서처럼 권한과 자율성은 부여하지 않으면서 책무성만 강하게 요구받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학교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이런 말을 하기 조심스럽지만, 돌봄 교실을 둘러싼 갈등뿐 아니라 서이초 사건과 이에 대한 교사들의 대응을 보면서 교사들이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과정이 생각보다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각 국면마다 교사들은 특정한 정서를 공유하며 집단적 실천을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다는 정치적 효능감을 축적해 왔다. 이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교사들의 의식과 정체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깊이 고민을 해 보지 않았기에 교사들의 정체성 구축의 방향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집단의 정체성은 선험적으로 부여되거나 특정한 정체성을 선언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 만약 교사들의 지향이 학교라는 불평등 구조 속에서 제한된 자원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다른 직업 집단, 혹은 학생·보호자들과 경쟁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주체들 간의 분절을 극복하고 연결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현안들에 대응하며 주체들 간의 연대를 만들어 나가고 공동의 전선을 구축해 가는 과정 속에서 개인적·집단적 정체성이 형성되고 변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계급 정체성의 형성은 그런 과정의 축적을 통해 이루어진다.

 



참고 문헌

교사노동조합연맹·새로운학교네트워크·실천교육교사모임·전국교직원노동조합·좋은교사운동, 〈[보도자료]5개 교원단체 국회 입법 공동요구안 발표〉, 2023년 8월 22일.

노성철(2019), 〈The Changing Face of Work Precarity: Dependent self-employed professionals and collective response to work precarity〉, 《산업관계연구》, 29(1),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다이애나 폴레비치, 유성상·김민조 옮김(2022), 《비난 받는 교사》, 살림터.

애드워드 파머 톰슨, 나종일 외 옮김(2000),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 상》, 창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보도자료] 교육부는 방과후학교(돌봄교실) 학교운영 입법 예고안 철회하고 지자체로 이관하라〉, 2020년 5월 21일.

케이스 M. 맥도널드, 권오훈 옮김(1999), 《전문직의 사회학》, 일신사.

Abbot, A.(1988). The System of Professions: An Essay on the Division of Expert Labor. University of Chicago Press.

Beech, Nic., Gilmore, Charlotte., Hibbert. Paul., Ybema, Sierk.(2016). “Identity-in-the-work and musicians’ struggles: the production of self-questioning identity work”. Work, Employment and Society 30(3).

Duffy, M.(2011). Making Care Count: A century of gender, race, and paid care work. Rutgers University Press.

Kunda, G.(1992). Engineering culture: Control and commitment in a high-tech corporation. Temple University Press.

Larson, M. S.(1977). The Rise of Professionalism.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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