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속 | 이주배경 학생과 함께하는 학교
용기, 연대, 저항
- 착하게 살자는 구호를 넘는 다문화교육에 대한 고민[ref]켄 로치(2023), 영화 〈나의 올드 오크〉에서.[/ref]
한채민
chaemin02@naver.com
각색 교사모임,
연대하는 교사잡것들
차별하고 차별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학교라는 공간에서 그러한 원리에 의문을 품는 것은 그 자체로 얼마간 급진적인 일로 비치는 것 같다.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공존하는 학교 현장은 내게 교사의 역할과 위치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했다. 그러한 고민들은 혼자 품고 있을 때보다 여러 사람 앞에 꺼내어 놓는 용기를 내었을 때, 여러 동료들과 학생들에 비추어 나의 무지와 무신경함을 따갑게 직면하게 되었을 때 변화나 새로운 시도로 연결되곤 했다. 그러므로 아래 실린 사례들의 주어에는 지면 관계상 일일이 언급하지 못한 동료들과 학생들의 이름이 생략되어 있는 셈이며, 이 글 또한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시도들을 꺼내어 놓고 민망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그다음을 맞이하려는 다짐, 정도로 쓰일 것이다. 이를 통해 또 한 번 부족함이 탄로 나고, 더 많은 이들과 새로운 시도를 함께 궁리하게 되기를.
고백 : 교실의 ‘독재자’
나는 현존하는 지배 체제를 강화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는 확신을 절대로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려면 교수가 강의실에서 독재자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꼭 알아야 했다.[ref]벨 훅스, 윤은진 옮김(2008), 《벨 훅스,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 모티브북, 26쪽.[/ref]
독재를 못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때가 있다. 신규 발령을 받으면 주변으로부터 으레 듣는 이야기는 이런 거다. “3월엔 웃어주지 말고 엄하게 대해야 (학생들이) 잡힌다”, “젊은 교사는 (학생들이) 쉽게 보니까 신규라고 말하지 말라”. 그 밖에도 학생들을 솜씨 좋게 휘어잡는 것이 능력 있는 교사의 모습이라는 메시지가 사방에서 울려 퍼진다. 나 역시 3월 첫 출근 날 검은색 옷을 찾아 입고 ‘카리스마, 교사의 권위, 웃지 말 것’ 같은 말을 중얼대며 학생들 앞에 무시무시하게 등장할 준비를 했던 기억이 있다. 학교생활에 관한 간단한 질문에도 시원히 답하지 못하고 쩔쩔맨다던가 담임을 맡게 된 포부를 지나치게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웃기는데도 웃음을 참다가 괴로운 표정을 짓는 비청소년 선주민 여성이 교사를 처음 한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알아차리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젊은 교사는 쉽게 본다’는 식의 시선이 젊은 동료, 어린 사람을 쉽게 보는 시선의 연장이며, 그것이 ‘현존하는 지배 체제를 강화’한다는 것을 내가 알아채기까지는 그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지만 말이다. 학생들을 억압하고 지배하려는 체제에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표한 때를 다 지난 해프닝인 양 농담거리 삼으려는 것은 아니다(지금도 그러고 있으니까 말이다……). 학교라는 공간의 일상적인 맥락에서 교사에게 따라붙는 힘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반성적으로 살피는 것으로부터 나와 동료들의 다문화교육에 대한 고민이 출발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아무리 애를 써도 교실의 ‘독재자’는 역시 나지만, 벨 훅스의 말처럼 ‘독재자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비청소년 선주민 교사인 내가 내면화한 가치가 학생들에게 표면적으로 또는 잠재적으로 전달될 때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보다 풍부한 상상을 가능하게 해 준다. 내가 옳음의 기준을 독점해 버린 교실은 ‘다문화적’이지 않다.
차별을 인식할 ‘용기’
처음 발령받았던 2017년 당시 A중학교는 전교생 중 중국 이주배경 학생이 3분의 1, 선주민 학생이 3분의 2 정도 되었다. 소수지만 베트남, 일본 배경 학생도 있었다. 이주배경 학생 중 다수가 초등학교 때나 그 이전부터 한국에 정착하여 한국어가 능숙했다. 학생들을 선주민과 이주배경(다문화)으로 구별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음에도 담임 교사들은 행정 절차에 따라 학생들을 만나자마자 출신 국가, 부모 중 외국인이 있는지, 중국 이주민의 경우 조선족인지 아닌지 등을 확인해야 했다. 신학년이 시작할 무렵 외국인 학생, 다문화가정 학생 수를 파악하여 교육청에 보고해야 하고, 서울의 경우 그 비율에 따라 특별 학급을 설치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새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교사들이 학생들의 출신 배경을 분류토록 하는 행정 절차는 차별적인 상황을 불러왔다. 일부 교사들은 늘 하던 것처럼 통계를 냈다. ‘떡볶이 먹을 사람’을 물을 때처럼 ‘엄마나 아빠가 외국인인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한 것이다. 어떤 학생들은 그런 상황에 부담을 느껴 손을 들지 않았다. 손을 들지 않았던 학생들의 자매/형제가 다문화가정 학생으로 집계된 것을 알게 된 교사는 해당 학생을 불러 출신 배경을 다시 조사했다. 행정 시스템(NEIS)에 외국 국적 학생 이름이 알파벳으로 표기된다는 점도 이주배경 학생들을 난감하게 했다. 대부분 시스템상의 명렬표를 그대로 출력하여 출석부에 끼워 넣다 보니 수업을 들어오는 선생님들마다 중국어 발음을 로마자로 표기한 한어 병음 읽는 법을 몰라 “3번, 네 이름 어떻게 읽니?” 하고 묻게 되는 것이었다. 이주배경 학생은 6교시쯤 되면 여섯 번, 운이 좋았다면 서너 번 자신의 이름을 답해야 했고, 여러 명의 교사들로부터 반복적으로 답변을 요구받은 학생에게 전달된 메시지는 명확했다. 너는 이방인이라는 것. 그리고 그러한 사실에 ‘우리’는 관심이 없다는 것. 선주민 학생들에게 건네지지 않는 질문들이 이주배경 학생들에게는 끈질기게 이어졌다.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고 선주민 교사들을 이해시켜야 했다.
바로 그해 교사들의 교내 다문화교육 공부 모임이 꾸려졌다. 이주배경 학생들이 학교에서 소외되거나 차별받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지원과 교육, 문화는 어떤 것일지 의논해야 한다는 막연한 느낌만을 가지고 동질적인 집단에 익숙한 교사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났다. 첫해에는 함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 후 비평을 나누는 식으로 감수성을 쌓았고, 다음 해부터는 혁신학교로 지정되면서 다문화교육 공부 모임에서 논의한 내용을 학년별 교원학습공동체에서 더 많은 동료들과 나누었다. 이야기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유의미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출신 배경 조사가 행정상 불가피하다면 학생을 이방인으로 낙인찍는 공개적인 방법은 지양하고 개인적인 상담 자료를 활용하기로 하였고, 행정 절차가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마다 새로 오는 교사들과도 신학년 준비 기간에 자체 연수를 실시하여 맥락을 공유하기로 했다. 외국 국적 학생 이름은 담임 교사가 출석부를 한국식 독음으로 수정해 두면서 발음을 묻고 답하는 상황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다 북경을 베이징으로 중국어 발음대로 표기하듯, 학생에게 원하는 발음을 물어보고 이름을 기재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에 따라 담임 교사가 학생의 의사를 반영하여 명렬을 작성했다. 이주배경 학생들을 단일한 집단이나 묶음으로 이해하거나 특정 문화적 배경에 주목하여 ‘중국 학생’이나 ‘다문화 학생’으로 부르는 대신 이름으로 부르자는 의견에도 힘이 실렸다. 교사들이 인식하지 못했던 차별적인 행동이나 언어를 함께 돌아보기도 했다. 아울러 가정통신문을 중국어로도 제작하여 가정과 학교의 소통을 돕는 방안도 실천에 옮겨졌다.
차별은 그대로 있고 그저 표면일 뿐인 ‘말’을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으로 대체하는 것 아니냐고, 차별을 시정하는 시늉일 뿐 그런다고 전 사회적인 차별의 문화가 학교 안으로 밀려드는 것을 막을 수 있느냐고 물어 올지 모르겠다.
호명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호명은 분명 중요한 단계다. (……) 일단 우리가 이것을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면, 그때부터 우리는 비로소 우선순위와 가치에 대해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잔학함에 대한 저항은 그 잔학함을 숨기는 언어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ref]리베카 솔닛, 김명남 옮김(2018),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창비, 8~15쪽.[/ref]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가 누구를 중심에 두고 있는지, 누구를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고 그런 고민을 동료 교사들, 학생들과 나누는 것으로부터, 차별하는 문화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차별을 인식하지 못했던 상태는 적극적으로 차별에 동조하는 상태이기도 했다. 적극적인 동조보다는 차별하는 자신에 화들짝 놀란 다음, 작은 시도에 불과할지언정 얼른 몸을 움직여 뭐라도 실천하는 편이 나았다. 혐오와 차별의 언어를 바라보는 예민하고도 삐딱한 마음 자세가 혐오와 차별에 저항하려는 실천에 더 가까이 머물도록 해 주지 않을까.
‘연대’의 확장 : 다문화교육 영역, 함께 고민하는 단위
그렇다면 학생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교실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가능할까. 선주민 학생들은 이주배경 학생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때로 이주배경 학생들이 있는 곳에서도 ‘우리 동네는 ○○ 때문에 집값이 안 오른다’, ‘◯◯ 거리를 지날 때 무섭다’는 이야길 하거나, 혐오표현을 장난이나 농담으로 사용했다. 교사인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사람이 하는 일이 다 그렇듯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교육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견인하는 것은 아니다. 안 하느니만 못한 교육도 있다. 나의 첫 다문화교육 수업이 그랬던 것 같다. 첫 수업에서 나는 이주민에 대한 차별을 줄이자는 선주민 교사의 수업이 오히려 편견을 강화하거나 당사자 학생을 타자화할 수 있다는 지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문화적 배경, 언어, 출신 지역을 이유로 사람을 판단하고 차별하는 짓거리의 폭력성에 대해 수업을 하기로 했다. 이주배경 학생과 선주민 학생이 뒤섞인 교실에서 선주민 교사가 이주민 차별을 이야기하는 것,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당사자의 목소리를 배제한 채 주제 넘은 소리를 하는 것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몰랐다. 그 수업에서 나는 이주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과 차별을 다룬 영상을 보여 주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자고 해 버렸다. 예고받지 못한 수업에 당황한 이주배경 학생들은 말이 없었고, 선주민 학생들 역시 교사가 왜 영어 시간에 이런 주제를 꺼낸 것인지 금세 알아차렸기에 나의 첫 다문화교육 수업은 교훈적인 독백으로 끝나고 말았다. 수업이 끝나고서야 그 모든 내용이 ‘너는 한국에서 이런 차별을 받는단다’ 하는 정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 수업이 이주민들의 삶을 열악하고 안쓰러운 것으로 납작하게 재현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도 그때의 기억에서 도망치고 싶다. 몇몇 학생들이 자괴감에 시달리는 담임 교사를 안쓰러워한 나머지 필요한 이야기였다는 피드백을 주기도 했지만 앞으로도 같은 문제를 반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사자가 아니면 그 주제를 다룰 자격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특히 구성원 중에 당사자가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전하는 방법에 대해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이 시혜적인 수업 분위기를 조장하게 되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통렬하게 반성한다는 뜻이다. 당사자 학생들에게 미리 취지와 내용을 알려 주고 불편한 부분이 없는지를 확인하거나, 이야기해 볼 내용을 함께 구성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공부 모임 교사들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우리는 반(反)차별을 말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외와 차별 또한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아, 참 쉬운 것이 없다.
반성하는 차원에서 담임 반 학생들을 두세 명씩 그룹을 지어 만나 조심스럽게 학교에서 외로움, 소외감, 차별을 겪는 순간이 있었는지 물었다. 묻기 위해 나부터 외로워지는 순간을 털어놓았다. 고맙게도 학생들도 자신이 느낀 것들을 말해 주었다. 학생들은 문화적 배경, 언어적 차이에 의한 차별이나 학급에서의 혐오표현에 문제를 느끼고 있었다. 편견을 담은 표현에 불편함을 표시한 이주배경 학생들과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고 응수한 선주민 학생들이 서로를 경계하고 있다고도 했다. 또 다른 학생은 영화 〈청년경찰〉, 〈범죄도시〉 등 미디어가 강화하는 중국 동포의 이미지 때문에 자신의 배경에 부끄러움을 가지게 되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학생들은 성차별, 외모 차별, 성적 차별, 장애 차별, 선생님에게 친근하게 구는 학생에 대한 칭찬, 지역 차별, 경제력에 의한 차별, 학교폭력 등 학교 안의 여러 차별과 폭력에 대해 교사의 눈이 포착하지 못한 구체적인 사례를 들려주었다. 여러 차별이 얽히고 연결되어 단단해졌다. 이주배경 학생에 대한 차별 역시 언어와 문화적 배경에 의한 것으로만 이해하기 어려웠고 그와 연결된 차별에 의해 강화되었다.
공부 모임에서의 여러 고민과 논의 끝에 우리는 다문화교육이 국적, 언어, 문화에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냈다. 제임스 뱅크스(2008)는 다문화교육을 ‘다양한 인종, 성별, 민족, 계층, 문화 집단의 학생이 평등한 교육 기회를 경험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과 교육 제도를 개선하고자 하는 교육 개혁 운동’[ref]제임스 뱅크스, 모경환 외 옮김(2008), 《다문화교육 입문》, 아카데미프레스.[/ref]으로 정의했는데, 다문화교육 공부 모임도 이러한 입장에 공감했다. 이주배경 학생들이 처한 상황은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맥락에서 이해해야 했다. 생활 한국어가 능숙한 이주배경 학생이더라도 학습 한국어는 익숙지 않아 속도가 느리거나,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고 있더라도 한국어로 적당히 표현하지 못해 기초학력 수준이 낮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있었다. 성적 만능주의, 능력주의, 학벌주의 사회는 적절한 교육 지원을 제공하기보다는 낮은 성취를 낸 학생을 문제시한다. 이는 선주민 학생에게도 적용되는 차별의 원리이기도 하다. 교차하는 차별의 그물망은 이주민과 선주민 모두를 위협한다. 그러므로 다문화교육은 이주배경 청소년뿐만 아니라 선주민 청소년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차별하는 학교’에 대해 구성원이 함께 고민하고 일상 구석구석 깃든 차별에 대항하는 공동의 힘을 길러 가야 했다.
차별은 성별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보건학자 김승섭은 구직 과정에서의 차별 경험이 있었는지 묻는 조사에서 ‘예’ 또는 ‘아니요’ 대신 ‘해당 사항 없음’을 선택한 노동자의 답변을 분석했다. 여성의 경우 ‘해당 사항 없음’은 차별을 받았다는 뜻이고, 남성의 경우에는 그 반대였다. “여성 노동자가 구직 과정에서 혹은 일터에서 차별을 경험했다고 말하는 것이 남성에 비해 더 어렵고 예민한 일임을 보여” 준다.[ref]김승섭(2017), 《아픔이 길이 되려면》, 동아시아, 16쪽.[/ref] 또한 김승섭은 2012년 다문화가정 청소년 3,627명을 대상[ref]여성가족부(2012),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 김승섭(2017)에서 재인용.[/ref] 으로 학교폭력을 겪고 있는지를 물은 조사에서 청소년의 학교폭력 대응이 우울 증상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를 분석했다. 학교폭력에 어떻게 대응했냐는 질문에 학교폭력을 경험한 학생들은 다음의 세 가지 중 하나를 골라 답했다. ‘주위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고 있었지만, 여성과 남성을 나누어 분석하자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고 답한 남학생 그룹이 모든 집단 중에서 가장 우울 증상 유병률이 높았다. 아무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경우에 비해서도 그랬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남자라면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회”[ref]김승섭(2017), 앞의 책, 19~20쪽.[/ref] 에서 다문화가정 청소년이 겪는 차별과 폭력, 이에 대한 반응은 ‘이주배경 학생에 대한 차별’로만 바라보기엔 너무도 복합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이주배경 학생이 겪는 차별이라는 당면한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면서도 공존을 위한 논의의 범위를 확장할 수는 없을까?
평등한 교육 기회, 교육과정과 교육 제도 개선을 위해서, 여러 층위에서 작동하는 차별과 폭력을 예민하게 감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감수성을 섬세하게 단련할 필요가 있었다. 시선을 예민하게 벼리는 과정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학교를 만들 방안을 학생들과 이야기해 볼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들부터 공부해야 했다. 교내 공부 모임을 상황이 비슷한 다른 학교 교사, 다문화교육에 관심 있는 교사들로 확장하는 한편, 지역 사회 단체들과도 긴밀한 연결을 유지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네트워크를 조직했다. 확장 전문가 박복희 선생님[ref]《오늘의 교육》 78(2024년 1·2월)에 〈낯선 이에게 따스한 환대를 하는 학교는 가능할까?〉라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ref]의 기획이었다. 이 네트워크는 ‘(각각의 색으로 빛나는) 각색 교사모임’과 ‘각색 모임’으로 지금까지 활발히 연대하고 있다. 인권, 청소년 참정권, 여성, 젠더, 노동, 장애, 이주민, 생태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들을 모셔 강연을 듣는 것에서 시작해서 활동가들과 함께 각 분야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게 되었다.
다문화교육 커리큘럼
2019년, 지역 사회 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1주에 1시간씩 2학년 창체 시간에 다문화교육을 실시하게 되었다. 교사들, 활동가들이 주제에 맞는 수업 교안을 준비하여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다른 단체와 교사들에게 내용을 공유하고 함께 내용을 수정한 후, 수업을 실시하고 나서 학생들의 반응과 수업 후기를 나누었다. 다문화교육 커리큘럼 첫 차시는 ‘나’를 탐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다양한 삶의 모습을 존중하는 태도와 그 즐거움을 담았다. 이 부분은 교사들이 맡았다. 김광규 시인의 〈나〉라는 시를 패러디하며 학생들은 자신 안의 다양한 모습을 끌어내고 서로에게 들려주었다. 이후 차시는 활동가들이 2시간씩 맡았다. 문화다양성과 존중(이주민센터 친구), 공정 무역과 공정 여행(구로 아이쿱 생협), 기후 변화와 환경(여성환경연대 더초록), 성인권(구로학교안전사회적협동조합), 장애인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청소년 노동인권(청소년인권 꿈틀), 청소년 참정권(교육플랫폼 Be.Do.), 일본군 위안부 역사와 여성인권(구로여성회) 등의 주제로 기획하였다. 학생들은 당사자나 해당 분야 활동가로부터 전해지는 생생한 내용을 들으며 이야기에 활발하게 참여했다. 교사에게는 하지 못한 학교 비판을 자유롭게 풀어내는 모습도 보였다.
한 학기 동안 배운 내용을 담아 ‘다문화교육 주간’을 1학기 말에 축제 형식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이 주간에는 2학년 중심으로 교육했던 내용을 일주일 동안 전체 학급에 방송하거나 교과 수업과 연계하여 실시했다. 국어 시간에는 《달려라 차은》, 《완득이》를 읽고 감상을 나누고, 영어 시간에는 영어로 〈세계 인권 선언〉을 해석하고 영미권 미디어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독해하며 성차별적인 표현이나 장면을 골라 보고 대항 표현을 논의했다. 사회 시간에는 인권과 차별의 개념을 공부하고, 미술 시간에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다뤘다. 이렇게 일주일 동안 다룬 내용을 바탕으로 학생들은 저마다 학급의 부스를 꾸몄고, 오전 동안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다른 학급의 부스를 체험하고 도장을 모았다. 개인적으로는 ‘왼손나라’ 부스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오른손잡이가 주류인 세상에서 왼손잡이로 살아가는 어려움을 표현한 부스였다. 왼손용으로 설정된 마우스를 이용하여 컴퓨터로 1단계 과제를 해결한 후, 왼손을 써서 오른손잡이용 가위로 종이를 제시된 모양으로 자르는 2단계를 지나, 왼손으로 잉크 펜을 잡고 소감을 작성하는 3단계 미션까지 완료하면 작은 간식과 스탬프를 받을 수 있었다. 왼손으로 글씨를 쓰면서 손날에 잉크가 묻지 않게 하려면 힘을 주어야 했다. (왼손잡이는 오른손으로 미션에 참여했다.) 오른손잡이 중심으로 설계된 세상을 왼손잡이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다른 나라의 음식, 전통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학급 부스도 있었다. 〈세계 인권 선언〉 중 몇 조항을 뽑아 제한 시간 내에 암기하는 부스, 자신이 겪은 차별 경험을 포스트잇에 적고, 다른 학생들이 적은 차별 경험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적는 부스 등 다양한 내용의 부스가 구성되었다. 교육 활동이 한 번의 큰 행사를 향해 달려가는 것에 대한 교사들의 비판적인 고민도 있었다. 여전히 행사보다는 그 이전 단계의 수업과 논의의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문화교육 주간 학급 부스는 창체 시간이나 교과 시간에 논의한 내용을 학생들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다름’의 풍성함을 느끼는 즐거운 기회이기도 했다.
이듬해에는 다문화교육 커리큘럼을 학교가 주관하여 마을의 네트워크를 모으는 대신 혁신교육지구 마을교육과정으로 발전시키게 되었다. 구로 온마을교육센터에서 주관하여 마을 강사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교육 자료를 개발하여 다른 학교에도 교육을 실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팬데믹으로 등교가 미뤄지고 온라인 교육이 실시되면서 준비한 내용을 축소하거나 변경하여 진행해야 했다. 등교가 정상화되고 나서야 다문화교육 커리큘럼도 다시 자리를 잡아 갔다.
제도적 차별에 대한 ‘저항’ : 팬데믹 시기의 아동양육한시지원금
팬데믹은 교육 현장의 제도적 차별을 드러내기도 했다. 2020년 9월, 코로나19로 1인당 15만 원의 돌봄 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공문이 왔다. 문제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중학생’이라는 부분이었다. 바이러스는 국적을 가리지 않건만 내국인만을 구하겠다는 이 공문에는 교사들더러 대상자와 계좌를 확인하라는 묵시적 지시가 깔려 있었다. ‘한국인에게만 지원금을 주기 때문에 이 교실의 3분의 1 정도인 외국인 학생들은 헷갈려서 돈을 받지 않도록 지원 대상자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해 달라’는 말을 돌려 돌려 안내해야 하는 상황인 거다. 차별에 동참하라는 지시를 뻔뻔스럽게 공문이랍시고 보내 오다니 기가 찼다. 그간 열심히 다문화교육을 고민하고 실천했지만 이런 제도적인 차별 한 번에 그 모든 것이 위선이며 가짜가 되는 것 같았다. 학생들에게 실컷 거짓말을 한 것 같았다. 분노는 행동을 불러일으켰다. 학교에서 다문화교육을 실천하며 감수성을 쌓아 온 동료들도 예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교육청과 교육부의 차별에 분노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모였다. 교사들은 교육부와 교육청을 규탄하는 서류를 작성했고 60여 명의 교직원 중 47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한겨레〉, 〈국민일보〉 등에 글을 투고한 동료도 있었다. 지역 사회, 여러 시민단체에서도 이를 알고 별도의 서명을 조직하여 함께 대응했다. 마침내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아동양육한시지원금을 외국 국적의 학생과 학교 밖 학습자에게까지 확대하여 지급하기로 했다. 아쉬운 점은 교육부에서 내국인만을 대상으로 지원금을 지급한다는 방침을 바꾸지 않았기에 시·도교육청마다 지원 대상 확대 여부가 달랐다는 점이다. 아동양육한시지원금 외국인 차별 문제에 대응하면서 또 한 번 다문화교육 영역이 확장되었다. 교육 주체로서 교실 속 교육을 넘어 사회의 변화에 목소리를 낼 책임과 의무가 교사들에게 있다. 다문화교육은 학교 밖으로 뻗어 나가야 한다.
‘다름’과 함께하는 위험을 무릅씀으로써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같은 것, 동질적인 것만의 결속과 유대를 추구한다면 이는 연대에 반하는 일이다. 연대는 ‘다름’과 함께하는 위험을 무릅씀으로써 위험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ref]류은숙(2019), 《사람을 옹호하라》, 코난북스, 186쪽.[/ref]
공감은 인간다움을 지키는 안간힘이다. 인지상정으로 절로 되는 게 아니다.[ref]류은숙(2019), 앞의 책, 264쪽.[/ref]
“다문화교육, 다문화교육 공부 모임은 내가 어떤 교사가 되어가고 있는가를 성찰하게 했다. 학생들을 향하는 나의 말과 행동이 ‘다문화적’인지를, 학생들에게 소외와 차별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진 않은지를. 다문화적인 가치를 학생들에게 말로써 가르치고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이 평화와 공존, 그리고 연대의 가치를 지닌 사람이 되어 학생들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 원고를 작성하며 A중학교 다문화교육에 대한 교사들의 후기와 평가가 어땠는지 찾아보다가, 내가 다문화교육을 3년째 했을 때 적어 둔 평가를 만났다. 학생, 동료들과 함께한 공동의 기억을 허락 없이 나를 중심에 두고 기록해 버린 것 같아 겸연쩍다. 눈에 보이는 결과와 변화가 있었기를 기대한다기보다는 다양한 가치를 이야기하는 과정이 좋은 만남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런 가치들이 공허한 말에 지나지 않기 위해 교사인 나의 일상 속에서 실천하고 행동하는 노력을 계속 이어 가고 싶다. 지금은 이주배경 학생 비율이 높지 않은 중학교에서 다문화교육을 고민하는 중이다. “‘다름’과 함께하는 위험을 무릅씀으로써 위험에 빠지지 않”을, 함께 ‘안간힘’을 쓸 청소년, 비청소년 동료들을 잔뜩 만나고 싶다.
후속 | 이주배경 학생과 함께하는 학교
용기, 연대, 저항
- 착하게 살자는 구호를 넘는 다문화교육에 대한 고민[ref]켄 로치(2023), 영화 〈나의 올드 오크〉에서.[/ref]
한채민
chaemin02@naver.com
각색 교사모임,
연대하는 교사잡것들
차별하고 차별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학교라는 공간에서 그러한 원리에 의문을 품는 것은 그 자체로 얼마간 급진적인 일로 비치는 것 같다.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공존하는 학교 현장은 내게 교사의 역할과 위치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했다. 그러한 고민들은 혼자 품고 있을 때보다 여러 사람 앞에 꺼내어 놓는 용기를 내었을 때, 여러 동료들과 학생들에 비추어 나의 무지와 무신경함을 따갑게 직면하게 되었을 때 변화나 새로운 시도로 연결되곤 했다. 그러므로 아래 실린 사례들의 주어에는 지면 관계상 일일이 언급하지 못한 동료들과 학생들의 이름이 생략되어 있는 셈이며, 이 글 또한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시도들을 꺼내어 놓고 민망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그다음을 맞이하려는 다짐, 정도로 쓰일 것이다. 이를 통해 또 한 번 부족함이 탄로 나고, 더 많은 이들과 새로운 시도를 함께 궁리하게 되기를.
고백 : 교실의 ‘독재자’
나는 현존하는 지배 체제를 강화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는 확신을 절대로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려면 교수가 강의실에서 독재자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꼭 알아야 했다.[ref]벨 훅스, 윤은진 옮김(2008), 《벨 훅스,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 모티브북, 26쪽.[/ref]
독재를 못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때가 있다. 신규 발령을 받으면 주변으로부터 으레 듣는 이야기는 이런 거다. “3월엔 웃어주지 말고 엄하게 대해야 (학생들이) 잡힌다”, “젊은 교사는 (학생들이) 쉽게 보니까 신규라고 말하지 말라”. 그 밖에도 학생들을 솜씨 좋게 휘어잡는 것이 능력 있는 교사의 모습이라는 메시지가 사방에서 울려 퍼진다. 나 역시 3월 첫 출근 날 검은색 옷을 찾아 입고 ‘카리스마, 교사의 권위, 웃지 말 것’ 같은 말을 중얼대며 학생들 앞에 무시무시하게 등장할 준비를 했던 기억이 있다. 학교생활에 관한 간단한 질문에도 시원히 답하지 못하고 쩔쩔맨다던가 담임을 맡게 된 포부를 지나치게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웃기는데도 웃음을 참다가 괴로운 표정을 짓는 비청소년 선주민 여성이 교사를 처음 한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알아차리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젊은 교사는 쉽게 본다’는 식의 시선이 젊은 동료, 어린 사람을 쉽게 보는 시선의 연장이며, 그것이 ‘현존하는 지배 체제를 강화’한다는 것을 내가 알아채기까지는 그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지만 말이다. 학생들을 억압하고 지배하려는 체제에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표한 때를 다 지난 해프닝인 양 농담거리 삼으려는 것은 아니다(지금도 그러고 있으니까 말이다……). 학교라는 공간의 일상적인 맥락에서 교사에게 따라붙는 힘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반성적으로 살피는 것으로부터 나와 동료들의 다문화교육에 대한 고민이 출발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아무리 애를 써도 교실의 ‘독재자’는 역시 나지만, 벨 훅스의 말처럼 ‘독재자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비청소년 선주민 교사인 내가 내면화한 가치가 학생들에게 표면적으로 또는 잠재적으로 전달될 때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보다 풍부한 상상을 가능하게 해 준다. 내가 옳음의 기준을 독점해 버린 교실은 ‘다문화적’이지 않다.
차별을 인식할 ‘용기’
처음 발령받았던 2017년 당시 A중학교는 전교생 중 중국 이주배경 학생이 3분의 1, 선주민 학생이 3분의 2 정도 되었다. 소수지만 베트남, 일본 배경 학생도 있었다. 이주배경 학생 중 다수가 초등학교 때나 그 이전부터 한국에 정착하여 한국어가 능숙했다. 학생들을 선주민과 이주배경(다문화)으로 구별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음에도 담임 교사들은 행정 절차에 따라 학생들을 만나자마자 출신 국가, 부모 중 외국인이 있는지, 중국 이주민의 경우 조선족인지 아닌지 등을 확인해야 했다. 신학년이 시작할 무렵 외국인 학생, 다문화가정 학생 수를 파악하여 교육청에 보고해야 하고, 서울의 경우 그 비율에 따라 특별 학급을 설치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새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교사들이 학생들의 출신 배경을 분류토록 하는 행정 절차는 차별적인 상황을 불러왔다. 일부 교사들은 늘 하던 것처럼 통계를 냈다. ‘떡볶이 먹을 사람’을 물을 때처럼 ‘엄마나 아빠가 외국인인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한 것이다. 어떤 학생들은 그런 상황에 부담을 느껴 손을 들지 않았다. 손을 들지 않았던 학생들의 자매/형제가 다문화가정 학생으로 집계된 것을 알게 된 교사는 해당 학생을 불러 출신 배경을 다시 조사했다. 행정 시스템(NEIS)에 외국 국적 학생 이름이 알파벳으로 표기된다는 점도 이주배경 학생들을 난감하게 했다. 대부분 시스템상의 명렬표를 그대로 출력하여 출석부에 끼워 넣다 보니 수업을 들어오는 선생님들마다 중국어 발음을 로마자로 표기한 한어 병음 읽는 법을 몰라 “3번, 네 이름 어떻게 읽니?” 하고 묻게 되는 것이었다. 이주배경 학생은 6교시쯤 되면 여섯 번, 운이 좋았다면 서너 번 자신의 이름을 답해야 했고, 여러 명의 교사들로부터 반복적으로 답변을 요구받은 학생에게 전달된 메시지는 명확했다. 너는 이방인이라는 것. 그리고 그러한 사실에 ‘우리’는 관심이 없다는 것. 선주민 학생들에게 건네지지 않는 질문들이 이주배경 학생들에게는 끈질기게 이어졌다.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고 선주민 교사들을 이해시켜야 했다.
바로 그해 교사들의 교내 다문화교육 공부 모임이 꾸려졌다. 이주배경 학생들이 학교에서 소외되거나 차별받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지원과 교육, 문화는 어떤 것일지 의논해야 한다는 막연한 느낌만을 가지고 동질적인 집단에 익숙한 교사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났다. 첫해에는 함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 후 비평을 나누는 식으로 감수성을 쌓았고, 다음 해부터는 혁신학교로 지정되면서 다문화교육 공부 모임에서 논의한 내용을 학년별 교원학습공동체에서 더 많은 동료들과 나누었다. 이야기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유의미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출신 배경 조사가 행정상 불가피하다면 학생을 이방인으로 낙인찍는 공개적인 방법은 지양하고 개인적인 상담 자료를 활용하기로 하였고, 행정 절차가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마다 새로 오는 교사들과도 신학년 준비 기간에 자체 연수를 실시하여 맥락을 공유하기로 했다. 외국 국적 학생 이름은 담임 교사가 출석부를 한국식 독음으로 수정해 두면서 발음을 묻고 답하는 상황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다 북경을 베이징으로 중국어 발음대로 표기하듯, 학생에게 원하는 발음을 물어보고 이름을 기재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에 따라 담임 교사가 학생의 의사를 반영하여 명렬을 작성했다. 이주배경 학생들을 단일한 집단이나 묶음으로 이해하거나 특정 문화적 배경에 주목하여 ‘중국 학생’이나 ‘다문화 학생’으로 부르는 대신 이름으로 부르자는 의견에도 힘이 실렸다. 교사들이 인식하지 못했던 차별적인 행동이나 언어를 함께 돌아보기도 했다. 아울러 가정통신문을 중국어로도 제작하여 가정과 학교의 소통을 돕는 방안도 실천에 옮겨졌다.
차별은 그대로 있고 그저 표면일 뿐인 ‘말’을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으로 대체하는 것 아니냐고, 차별을 시정하는 시늉일 뿐 그런다고 전 사회적인 차별의 문화가 학교 안으로 밀려드는 것을 막을 수 있느냐고 물어 올지 모르겠다.
호명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호명은 분명 중요한 단계다. (……) 일단 우리가 이것을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면, 그때부터 우리는 비로소 우선순위와 가치에 대해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잔학함에 대한 저항은 그 잔학함을 숨기는 언어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ref]리베카 솔닛, 김명남 옮김(2018),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창비, 8~15쪽.[/ref]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가 누구를 중심에 두고 있는지, 누구를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고 그런 고민을 동료 교사들, 학생들과 나누는 것으로부터, 차별하는 문화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차별을 인식하지 못했던 상태는 적극적으로 차별에 동조하는 상태이기도 했다. 적극적인 동조보다는 차별하는 자신에 화들짝 놀란 다음, 작은 시도에 불과할지언정 얼른 몸을 움직여 뭐라도 실천하는 편이 나았다. 혐오와 차별의 언어를 바라보는 예민하고도 삐딱한 마음 자세가 혐오와 차별에 저항하려는 실천에 더 가까이 머물도록 해 주지 않을까.
‘연대’의 확장 : 다문화교육 영역, 함께 고민하는 단위
그렇다면 학생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교실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가능할까. 선주민 학생들은 이주배경 학생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때로 이주배경 학생들이 있는 곳에서도 ‘우리 동네는 ○○ 때문에 집값이 안 오른다’, ‘◯◯ 거리를 지날 때 무섭다’는 이야길 하거나, 혐오표현을 장난이나 농담으로 사용했다. 교사인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사람이 하는 일이 다 그렇듯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교육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견인하는 것은 아니다. 안 하느니만 못한 교육도 있다. 나의 첫 다문화교육 수업이 그랬던 것 같다. 첫 수업에서 나는 이주민에 대한 차별을 줄이자는 선주민 교사의 수업이 오히려 편견을 강화하거나 당사자 학생을 타자화할 수 있다는 지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문화적 배경, 언어, 출신 지역을 이유로 사람을 판단하고 차별하는 짓거리의 폭력성에 대해 수업을 하기로 했다. 이주배경 학생과 선주민 학생이 뒤섞인 교실에서 선주민 교사가 이주민 차별을 이야기하는 것,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당사자의 목소리를 배제한 채 주제 넘은 소리를 하는 것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몰랐다. 그 수업에서 나는 이주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과 차별을 다룬 영상을 보여 주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자고 해 버렸다. 예고받지 못한 수업에 당황한 이주배경 학생들은 말이 없었고, 선주민 학생들 역시 교사가 왜 영어 시간에 이런 주제를 꺼낸 것인지 금세 알아차렸기에 나의 첫 다문화교육 수업은 교훈적인 독백으로 끝나고 말았다. 수업이 끝나고서야 그 모든 내용이 ‘너는 한국에서 이런 차별을 받는단다’ 하는 정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 수업이 이주민들의 삶을 열악하고 안쓰러운 것으로 납작하게 재현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도 그때의 기억에서 도망치고 싶다. 몇몇 학생들이 자괴감에 시달리는 담임 교사를 안쓰러워한 나머지 필요한 이야기였다는 피드백을 주기도 했지만 앞으로도 같은 문제를 반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사자가 아니면 그 주제를 다룰 자격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특히 구성원 중에 당사자가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전하는 방법에 대해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이 시혜적인 수업 분위기를 조장하게 되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통렬하게 반성한다는 뜻이다. 당사자 학생들에게 미리 취지와 내용을 알려 주고 불편한 부분이 없는지를 확인하거나, 이야기해 볼 내용을 함께 구성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공부 모임 교사들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우리는 반(反)차별을 말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외와 차별 또한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아, 참 쉬운 것이 없다.
반성하는 차원에서 담임 반 학생들을 두세 명씩 그룹을 지어 만나 조심스럽게 학교에서 외로움, 소외감, 차별을 겪는 순간이 있었는지 물었다. 묻기 위해 나부터 외로워지는 순간을 털어놓았다. 고맙게도 학생들도 자신이 느낀 것들을 말해 주었다. 학생들은 문화적 배경, 언어적 차이에 의한 차별이나 학급에서의 혐오표현에 문제를 느끼고 있었다. 편견을 담은 표현에 불편함을 표시한 이주배경 학생들과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고 응수한 선주민 학생들이 서로를 경계하고 있다고도 했다. 또 다른 학생은 영화 〈청년경찰〉, 〈범죄도시〉 등 미디어가 강화하는 중국 동포의 이미지 때문에 자신의 배경에 부끄러움을 가지게 되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학생들은 성차별, 외모 차별, 성적 차별, 장애 차별, 선생님에게 친근하게 구는 학생에 대한 칭찬, 지역 차별, 경제력에 의한 차별, 학교폭력 등 학교 안의 여러 차별과 폭력에 대해 교사의 눈이 포착하지 못한 구체적인 사례를 들려주었다. 여러 차별이 얽히고 연결되어 단단해졌다. 이주배경 학생에 대한 차별 역시 언어와 문화적 배경에 의한 것으로만 이해하기 어려웠고 그와 연결된 차별에 의해 강화되었다.
공부 모임에서의 여러 고민과 논의 끝에 우리는 다문화교육이 국적, 언어, 문화에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냈다. 제임스 뱅크스(2008)는 다문화교육을 ‘다양한 인종, 성별, 민족, 계층, 문화 집단의 학생이 평등한 교육 기회를 경험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과 교육 제도를 개선하고자 하는 교육 개혁 운동’[ref]제임스 뱅크스, 모경환 외 옮김(2008), 《다문화교육 입문》, 아카데미프레스.[/ref]으로 정의했는데, 다문화교육 공부 모임도 이러한 입장에 공감했다. 이주배경 학생들이 처한 상황은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맥락에서 이해해야 했다. 생활 한국어가 능숙한 이주배경 학생이더라도 학습 한국어는 익숙지 않아 속도가 느리거나,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고 있더라도 한국어로 적당히 표현하지 못해 기초학력 수준이 낮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있었다. 성적 만능주의, 능력주의, 학벌주의 사회는 적절한 교육 지원을 제공하기보다는 낮은 성취를 낸 학생을 문제시한다. 이는 선주민 학생에게도 적용되는 차별의 원리이기도 하다. 교차하는 차별의 그물망은 이주민과 선주민 모두를 위협한다. 그러므로 다문화교육은 이주배경 청소년뿐만 아니라 선주민 청소년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차별하는 학교’에 대해 구성원이 함께 고민하고 일상 구석구석 깃든 차별에 대항하는 공동의 힘을 길러 가야 했다.
차별은 성별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보건학자 김승섭은 구직 과정에서의 차별 경험이 있었는지 묻는 조사에서 ‘예’ 또는 ‘아니요’ 대신 ‘해당 사항 없음’을 선택한 노동자의 답변을 분석했다. 여성의 경우 ‘해당 사항 없음’은 차별을 받았다는 뜻이고, 남성의 경우에는 그 반대였다. “여성 노동자가 구직 과정에서 혹은 일터에서 차별을 경험했다고 말하는 것이 남성에 비해 더 어렵고 예민한 일임을 보여” 준다.[ref]김승섭(2017), 《아픔이 길이 되려면》, 동아시아, 16쪽.[/ref] 또한 김승섭은 2012년 다문화가정 청소년 3,627명을 대상[ref]여성가족부(2012),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 김승섭(2017)에서 재인용.[/ref] 으로 학교폭력을 겪고 있는지를 물은 조사에서 청소년의 학교폭력 대응이 우울 증상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를 분석했다. 학교폭력에 어떻게 대응했냐는 질문에 학교폭력을 경험한 학생들은 다음의 세 가지 중 하나를 골라 답했다. ‘주위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고 있었지만, 여성과 남성을 나누어 분석하자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고 답한 남학생 그룹이 모든 집단 중에서 가장 우울 증상 유병률이 높았다. 아무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경우에 비해서도 그랬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남자라면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회”[ref]김승섭(2017), 앞의 책, 19~20쪽.[/ref] 에서 다문화가정 청소년이 겪는 차별과 폭력, 이에 대한 반응은 ‘이주배경 학생에 대한 차별’로만 바라보기엔 너무도 복합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이주배경 학생이 겪는 차별이라는 당면한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면서도 공존을 위한 논의의 범위를 확장할 수는 없을까?
평등한 교육 기회, 교육과정과 교육 제도 개선을 위해서, 여러 층위에서 작동하는 차별과 폭력을 예민하게 감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감수성을 섬세하게 단련할 필요가 있었다. 시선을 예민하게 벼리는 과정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학교를 만들 방안을 학생들과 이야기해 볼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들부터 공부해야 했다. 교내 공부 모임을 상황이 비슷한 다른 학교 교사, 다문화교육에 관심 있는 교사들로 확장하는 한편, 지역 사회 단체들과도 긴밀한 연결을 유지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네트워크를 조직했다. 확장 전문가 박복희 선생님[ref]《오늘의 교육》 78(2024년 1·2월)에 〈낯선 이에게 따스한 환대를 하는 학교는 가능할까?〉라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ref]의 기획이었다. 이 네트워크는 ‘(각각의 색으로 빛나는) 각색 교사모임’과 ‘각색 모임’으로 지금까지 활발히 연대하고 있다. 인권, 청소년 참정권, 여성, 젠더, 노동, 장애, 이주민, 생태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들을 모셔 강연을 듣는 것에서 시작해서 활동가들과 함께 각 분야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게 되었다.
다문화교육 커리큘럼
2019년, 지역 사회 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1주에 1시간씩 2학년 창체 시간에 다문화교육을 실시하게 되었다. 교사들, 활동가들이 주제에 맞는 수업 교안을 준비하여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다른 단체와 교사들에게 내용을 공유하고 함께 내용을 수정한 후, 수업을 실시하고 나서 학생들의 반응과 수업 후기를 나누었다. 다문화교육 커리큘럼 첫 차시는 ‘나’를 탐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다양한 삶의 모습을 존중하는 태도와 그 즐거움을 담았다. 이 부분은 교사들이 맡았다. 김광규 시인의 〈나〉라는 시를 패러디하며 학생들은 자신 안의 다양한 모습을 끌어내고 서로에게 들려주었다. 이후 차시는 활동가들이 2시간씩 맡았다. 문화다양성과 존중(이주민센터 친구), 공정 무역과 공정 여행(구로 아이쿱 생협), 기후 변화와 환경(여성환경연대 더초록), 성인권(구로학교안전사회적협동조합), 장애인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청소년 노동인권(청소년인권 꿈틀), 청소년 참정권(교육플랫폼 Be.Do.), 일본군 위안부 역사와 여성인권(구로여성회) 등의 주제로 기획하였다. 학생들은 당사자나 해당 분야 활동가로부터 전해지는 생생한 내용을 들으며 이야기에 활발하게 참여했다. 교사에게는 하지 못한 학교 비판을 자유롭게 풀어내는 모습도 보였다.
한 학기 동안 배운 내용을 담아 ‘다문화교육 주간’을 1학기 말에 축제 형식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이 주간에는 2학년 중심으로 교육했던 내용을 일주일 동안 전체 학급에 방송하거나 교과 수업과 연계하여 실시했다. 국어 시간에는 《달려라 차은》, 《완득이》를 읽고 감상을 나누고, 영어 시간에는 영어로 〈세계 인권 선언〉을 해석하고 영미권 미디어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독해하며 성차별적인 표현이나 장면을 골라 보고 대항 표현을 논의했다. 사회 시간에는 인권과 차별의 개념을 공부하고, 미술 시간에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다뤘다. 이렇게 일주일 동안 다룬 내용을 바탕으로 학생들은 저마다 학급의 부스를 꾸몄고, 오전 동안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다른 학급의 부스를 체험하고 도장을 모았다. 개인적으로는 ‘왼손나라’ 부스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오른손잡이가 주류인 세상에서 왼손잡이로 살아가는 어려움을 표현한 부스였다. 왼손용으로 설정된 마우스를 이용하여 컴퓨터로 1단계 과제를 해결한 후, 왼손을 써서 오른손잡이용 가위로 종이를 제시된 모양으로 자르는 2단계를 지나, 왼손으로 잉크 펜을 잡고 소감을 작성하는 3단계 미션까지 완료하면 작은 간식과 스탬프를 받을 수 있었다. 왼손으로 글씨를 쓰면서 손날에 잉크가 묻지 않게 하려면 힘을 주어야 했다. (왼손잡이는 오른손으로 미션에 참여했다.) 오른손잡이 중심으로 설계된 세상을 왼손잡이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다른 나라의 음식, 전통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학급 부스도 있었다. 〈세계 인권 선언〉 중 몇 조항을 뽑아 제한 시간 내에 암기하는 부스, 자신이 겪은 차별 경험을 포스트잇에 적고, 다른 학생들이 적은 차별 경험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적는 부스 등 다양한 내용의 부스가 구성되었다. 교육 활동이 한 번의 큰 행사를 향해 달려가는 것에 대한 교사들의 비판적인 고민도 있었다. 여전히 행사보다는 그 이전 단계의 수업과 논의의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문화교육 주간 학급 부스는 창체 시간이나 교과 시간에 논의한 내용을 학생들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다름’의 풍성함을 느끼는 즐거운 기회이기도 했다.
이듬해에는 다문화교육 커리큘럼을 학교가 주관하여 마을의 네트워크를 모으는 대신 혁신교육지구 마을교육과정으로 발전시키게 되었다. 구로 온마을교육센터에서 주관하여 마을 강사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교육 자료를 개발하여 다른 학교에도 교육을 실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팬데믹으로 등교가 미뤄지고 온라인 교육이 실시되면서 준비한 내용을 축소하거나 변경하여 진행해야 했다. 등교가 정상화되고 나서야 다문화교육 커리큘럼도 다시 자리를 잡아 갔다.
제도적 차별에 대한 ‘저항’ : 팬데믹 시기의 아동양육한시지원금
팬데믹은 교육 현장의 제도적 차별을 드러내기도 했다. 2020년 9월, 코로나19로 1인당 15만 원의 돌봄 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공문이 왔다. 문제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중학생’이라는 부분이었다. 바이러스는 국적을 가리지 않건만 내국인만을 구하겠다는 이 공문에는 교사들더러 대상자와 계좌를 확인하라는 묵시적 지시가 깔려 있었다. ‘한국인에게만 지원금을 주기 때문에 이 교실의 3분의 1 정도인 외국인 학생들은 헷갈려서 돈을 받지 않도록 지원 대상자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해 달라’는 말을 돌려 돌려 안내해야 하는 상황인 거다. 차별에 동참하라는 지시를 뻔뻔스럽게 공문이랍시고 보내 오다니 기가 찼다. 그간 열심히 다문화교육을 고민하고 실천했지만 이런 제도적인 차별 한 번에 그 모든 것이 위선이며 가짜가 되는 것 같았다. 학생들에게 실컷 거짓말을 한 것 같았다. 분노는 행동을 불러일으켰다. 학교에서 다문화교육을 실천하며 감수성을 쌓아 온 동료들도 예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교육청과 교육부의 차별에 분노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모였다. 교사들은 교육부와 교육청을 규탄하는 서류를 작성했고 60여 명의 교직원 중 47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한겨레〉, 〈국민일보〉 등에 글을 투고한 동료도 있었다. 지역 사회, 여러 시민단체에서도 이를 알고 별도의 서명을 조직하여 함께 대응했다. 마침내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아동양육한시지원금을 외국 국적의 학생과 학교 밖 학습자에게까지 확대하여 지급하기로 했다. 아쉬운 점은 교육부에서 내국인만을 대상으로 지원금을 지급한다는 방침을 바꾸지 않았기에 시·도교육청마다 지원 대상 확대 여부가 달랐다는 점이다. 아동양육한시지원금 외국인 차별 문제에 대응하면서 또 한 번 다문화교육 영역이 확장되었다. 교육 주체로서 교실 속 교육을 넘어 사회의 변화에 목소리를 낼 책임과 의무가 교사들에게 있다. 다문화교육은 학교 밖으로 뻗어 나가야 한다.
‘다름’과 함께하는 위험을 무릅씀으로써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같은 것, 동질적인 것만의 결속과 유대를 추구한다면 이는 연대에 반하는 일이다. 연대는 ‘다름’과 함께하는 위험을 무릅씀으로써 위험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ref]류은숙(2019), 《사람을 옹호하라》, 코난북스, 186쪽.[/ref]
공감은 인간다움을 지키는 안간힘이다. 인지상정으로 절로 되는 게 아니다.[ref]류은숙(2019), 앞의 책, 264쪽.[/ref]
“다문화교육, 다문화교육 공부 모임은 내가 어떤 교사가 되어가고 있는가를 성찰하게 했다. 학생들을 향하는 나의 말과 행동이 ‘다문화적’인지를, 학생들에게 소외와 차별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진 않은지를. 다문화적인 가치를 학생들에게 말로써 가르치고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이 평화와 공존, 그리고 연대의 가치를 지닌 사람이 되어 학생들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 원고를 작성하며 A중학교 다문화교육에 대한 교사들의 후기와 평가가 어땠는지 찾아보다가, 내가 다문화교육을 3년째 했을 때 적어 둔 평가를 만났다. 학생, 동료들과 함께한 공동의 기억을 허락 없이 나를 중심에 두고 기록해 버린 것 같아 겸연쩍다. 눈에 보이는 결과와 변화가 있었기를 기대한다기보다는 다양한 가치를 이야기하는 과정이 좋은 만남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런 가치들이 공허한 말에 지나지 않기 위해 교사인 나의 일상 속에서 실천하고 행동하는 노력을 계속 이어 가고 싶다. 지금은 이주배경 학생 비율이 높지 않은 중학교에서 다문화교육을 고민하는 중이다. “‘다름’과 함께하는 위험을 무릅씀으로써 위험에 빠지지 않”을, 함께 ‘안간힘’을 쓸 청소년, 비청소년 동료들을 잔뜩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