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이케 히로미 인터뷰 모두의 다양성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나? 한국 선주민 강사 3명과 일본(나), 중국, 몽골, 네팔, 베트남, 마다가스카르 이렇게 여섯 나라에서 온 이주민 강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주로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가? 유아부터 성인까지 다양한데, 주로 초등학생을 만난다. 선주민과 이주민이 짝이 되어 수업에 들어가는데, 선주민이 다양성과 인권과 관련된 수업을 하고 이주민이 출신국 문화를 소개한다. 이주민을 입체적으로, 다방면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자기 경험을 많이 전달하려 노력한다. 예를 들어 “나는 일본에서 왔고 일본의 문화는 이래요”라고 소개할 수도 있지만 “일본에서도 나고야라는 곳이 고향이고, 나고야라는 지역의 문화는 어떻고, 우리 집안에서 먹던 가정 음식은 어떻고……”라고 소개하는 식이다. 또 나는 귀가 좋지 않아서 보청기를 사용하는데, 그런 나의 차이를 소개하면서 일본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비슷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전달하려고 한다. 우리는 강의를 할 때 ‘다문화교육’이 아닌 ‘상호문화교육’이라고 소개하는데, ‘나를 뺀 다른 문화에 대한 교육’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 ‘나와 함께하는 다양한 문화가 있는 사회를 바라보는 자세’에 대한 교육이라고 이해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다문화 사회는 출신국, 외모를 비롯해서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말한다. 그래서 이주민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교육이다. 이주민 당사자가 직접 강사로 활동할 때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책에 나오지 않는 문화를 알려 줄 수 있다. 한국에 살며 직접 겪었던 것들을 이야기할 때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일본은 그릇을 손에 들고 먹고 한국은 식탁에 두고 먹는 문화다. 한국에 살다 보니 버릇이 되어 얼마 전 일본 집에 가서 그릇을 식탁에 두고 먹었다가 엄마에게 혼났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사실만 전달할 때와는 수용하는 정도가 다르다고 느꼈다. ‘이주민 강사도 한국어로 내 문화를 잘 알리고 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강의를 한다’는 데서 자신감을 얻는다. 모두의 다양성의 강의 활동으로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다문화가정과 아동에 대한 차별이 없어지기를 바란다. 한번은 학교 축제 행사에서 만난 한 학생이 나에게 와서 귓속말로 “우리 엄마는 캄보디아에서 왔어요”라고 말했다. 왜 그 아이는 그 말을 다른 학생들 앞에서는 할 수 없었을까? 우리가 학교에 수업을 가면, 학생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우리 엄마는 ○○에서 왔다’고 밝혀 그 사실을 몰랐던 다른 학생들이 놀라는 일이 왕왕 있다. ‘우리 엄마는 다른 나라에서 왔다’라는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모두의 다양성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캡션 : 상호문화교육 강사단 ‘모두의 다양성’ 오오이케 이주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위축되거나 따돌림을 겪는 경우가 많은가? 나의 경우 아이가 학교에서 서대문형무소로 현장 학습을 갔는데, 친구가 아이에게 “너네 엄마는 나쁜 엄마야”라고 말하는 일이 있었다. 선생님께서 주의를 주었지만 일은 벌어졌고 여러 힘든 상황이 시작되었다. 고민하다 학교 선생님께 직접 찾아가서 “저는 일본 사람으로서 일본 문화를 가르쳐 주는 수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며 기회를 달라고 했다. 내가 직접 그 학생들을 만나 보면 우리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바로 바뀌진 않았지만 우리 아이에게는 ‘우리 엄마도 멋지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얻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교육 활동도 있다고, 소개해 준다면? 여기 도당동은 공장과 빌라가 많고, 이주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이 많이 살고 있다. 그런데 우연히 어떤 선주민이 “이주민은 분리수거를 안 하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린다”라고 말하는 걸 듣게 됐다. 많은 이주민들이 한국어가 서툴고 모국어로 설명을 들을 기회가 없다 보니 분리수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못 하는 상황이었다. 그걸 계기로 경기도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을 신청해 분리수거 교육을 진행하게 됐다. 베트남, 필리핀(따갈로그어), 중국 배경이 많아 그에 해당하는 여러 언어로 전단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주민들을 강사로 초청했다. 그분들이 참여자도 직접 모집하고 모국어로 교육을 진행하고 영상도 촬영했다. 참여자들은 꼭 필요한 교육이었다며 반가워했고, 엄마에게 전단지를 가져다주겠다는 어린이도 있었다. 또 이 공간에서 ‘음식 공감’이라고 해서 이주민 강사가 출신 국가 음식을 준비해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만들고 먹으면서 이야기 나누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열어 왔다. 예를 들어 네팔에서 온 사누는 ‘짜파티’를 준비하고, 나는 야끼소바를 만들었다. 강사는 그 음식을 왜 준비했는지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른 사람들도 함께 이야기 나누다가 끝난다. 교육이라기보다는 소통의 장소에 가깝다. 지역 주민들을 초대하는 활동을 할 때 참여자는 주로 이주민인가? 우리는 선주민과 이주민을 구별하지 않는다. 어떨 때는 지역아동센터에서 다 같이 오기도 하는데 그중에 이주배경을 가진 아이들도 있고, 그렇게 아이들끼리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문화다양성 감수성이 높아지는 거다. 한번은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시간에 한 초등학생이 놀러 왔다가 다른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야, 이리 놀러 와, 맛있는 거 있어” 해서 학생들이 우르르 오는 일이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이주민과 한국인이라는 구별이 없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다. 그게 정말 다문화 사회에서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주민 가정이 지역 사회와 연결되는 데 학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학교와 협력하면서도 바깥에서 이주민과 선주민이 함께하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단체로서 앞으로 더 시도하고 싶은 것이나 학교에 요구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강남시장에 이주민이 운영하는 가게가 많은데, 체험학습처럼 학생들이 가게에 직접 와서 사장님과 직접 이야기 나누는 프로그램을 시도해 보고 싶다. 다문화 사회라는 것이 멀리 있지 않고 이렇게 서로 어울려 살고 있는 모습이라고 보여 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특수 교육 대상 학생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 딱 두 번 기회가 있었는데, 한 번은 펄벅 기념관에서의 프로그램이었고, 두 번째는 발달장애 특수학교에 초대받아서 춤 수업을 준비해 갔었다. 일반 학교에는 꾸준히 가고 있는데 특수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만날 기회가 없었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 모든 학생에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는 만큼 특수 교육 대상 학생들에게도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
후속 | 이주배경 학생과 함께하는 학교
갈등을 만남의 기회로 삼다
- 만남을 엮어 변화를 만들어 가는 상호문화교육 강사단 ‘모두의 다양성’ 인터뷰
서경
seogyeong2101@gmail.com
본지 기자
이주민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다문화교육이란 어떤 것일까? 상호문화교육 강사단 ‘모두의 다양성’은 경기 부천에서 초·중·고 학교에서의 강의와 지역 사회에서의 이주민 커뮤니티 운동을 주로 하고 있다. 2008년부터 아시아인권문화연대에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이 단체가 활동을 종료함에 따라 2020년에 독립된 모임을 꾸렸다. 선주민과 이주민이 함께 활동하며, 다문화교육이 문화 이해나 체험에 그치는 것을 경계한다. 《오늘의 교육》은 오오이케 히로미 강사를 만나 인터뷰하고, 김광염, 사누, 이란희, 최선회 네 명의 강사가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수업을 참관하는 시간을 가졌다.
부천은 전국 ‘다문화 가구원’의 29.6%가 거주하는 경기도에서 그 수(2만 7,271명)가 두 번째[ref]1위는 안산(3만 908명).[/ref]로 많은 곳이다. 1980년대 공업 도시로 개발이 시작되면서부터 외국인 이주 노동자가 대거 유입되었으나 이들의 사회 통합을 지원하고 권리를 구제하는 시스템은 거의 준비되지 않았다. ‘외국인은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는 등의 편견과 저학력의 단순 노무자라며 무시하는 시선이 먼저 자리 잡았다. 차별과 갈등이 심각해지자 민간이 나서 공백을 메꾸기 시작했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부천 ‘외국인노동자의 집’(1995~, 현재 부천이주민지원센터)과 아시아인권문화연대이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장소는 부천의 원미구에 위치한 강남시장 2층의 ‘문화공간 디디’이다. 그림책들이 꽂혀 있는 낮은 책장이 있는 널찍한 강의실이 있고, 가벽으로 구획된 공간에는 8명 남짓 앉을 수 있는 크기의 식탁과 큰 냉장고가 있는 부엌과 사무실이 있다. 강의실은 학생들이 하교 후에 공부하는 공간이라 인터뷰는 부엌에서 진행됐다. 음식을 해서 나누어 먹거나 영화를 함께 보는 등 지역 주민들과 교류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지만 공공의 임대료 지원이 7월에 만료되어 존속이 불투명하다.
오오이케 히로미 인터뷰
모두의 다양성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나?
한국 선주민 강사 3명과 일본(나), 중국, 몽골, 네팔, 베트남, 마다가스카르 이렇게 여섯 나라에서 온 이주민 강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주로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가?
유아부터 성인까지 다양한데, 주로 초등학생을 만난다. 선주민과 이주민이 짝이 되어 수업에 들어가는데, 선주민이 다양성과 인권과 관련된 수업을 하고 이주민이 출신국 문화를 소개한다. 이주민을 입체적으로, 다방면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자기 경험을 많이 전달하려 노력한다.
예를 들어 “나는 일본에서 왔고 일본의 문화는 이래요”라고 소개할 수도 있지만 “일본에서도 나고야라는 곳이 고향이고, 나고야라는 지역의 문화는 어떻고, 우리 집안에서 먹던 가정 음식은 어떻고……”라고 소개하는 식이다. 또 나는 귀가 좋지 않아서 보청기를 사용하는데, 그런 나의 차이를 소개하면서 일본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비슷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전달하려고 한다.
우리는 강의를 할 때 ‘다문화교육’이 아닌 ‘상호문화교육’이라고 소개하는데, ‘나를 뺀 다른 문화에 대한 교육’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 ‘나와 함께하는 다양한 문화가 있는 사회를 바라보는 자세’에 대한 교육이라고 이해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다문화 사회는 출신국, 외모를 비롯해서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말한다. 그래서 이주민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교육이다.
이주민 당사자가 직접 강사로 활동할 때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책에 나오지 않는 문화를 알려 줄 수 있다. 한국에 살며 직접 겪었던 것들을 이야기할 때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일본은 그릇을 손에 들고 먹고 한국은 식탁에 두고 먹는 문화다.
한국에 살다 보니 버릇이 되어 얼마 전 일본 집에 가서 그릇을 식탁에 두고 먹었다가 엄마에게 혼났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사실만 전달할 때와는 수용하는 정도가 다르다고 느꼈다.
‘이주민 강사도 한국어로 내 문화를 잘 알리고 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강의를 한다’는 데서 자신감을 얻는다.
모두의 다양성의 강의 활동으로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다문화가정과 아동에 대한 차별이 없어지기를 바란다. 한번은 학교 축제 행사에서 만난 한 학생이 나에게 와서 귓속말로 “우리 엄마는 캄보디아에서 왔어요”라고 말했다. 왜 그 아이는 그 말을 다른 학생들 앞에서는 할 수 없었을까?
우리가 학교에 수업을 가면, 학생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우리 엄마는 ○○에서 왔다’고 밝혀 그 사실을 몰랐던 다른 학생들이 놀라는 일이 왕왕 있다. ‘우리 엄마는 다른 나라에서 왔다’라는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모두의 다양성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캡션 : 상호문화교육 강사단 ‘모두의 다양성’ 오오이케
이주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위축되거나 따돌림을 겪는 경우가 많은가?
나의 경우 아이가 학교에서 서대문형무소로 현장 학습을 갔는데, 친구가 아이에게 “너네 엄마는 나쁜 엄마야”라고 말하는 일이 있었다. 선생님께서 주의를 주었지만 일은 벌어졌고 여러 힘든 상황이 시작되었다. 고민하다 학교 선생님께 직접 찾아가서 “저는 일본 사람으로서 일본 문화를 가르쳐 주는 수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며 기회를 달라고 했다. 내가 직접 그 학생들을 만나 보면 우리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바로 바뀌진 않았지만 우리 아이에게는 ‘우리 엄마도 멋지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얻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교육 활동도 있다고, 소개해 준다면?
여기 도당동은 공장과 빌라가 많고, 이주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이 많이 살고 있다. 그런데 우연히 어떤 선주민이 “이주민은 분리수거를 안 하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린다”라고 말하는 걸 듣게 됐다. 많은 이주민들이 한국어가 서툴고 모국어로 설명을 들을 기회가 없다 보니 분리수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못 하는 상황이었다. 그걸 계기로 경기도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을 신청해 분리수거 교육을 진행하게 됐다. 베트남, 필리핀(따갈로그어), 중국 배경이 많아 그에 해당하는 여러 언어로 전단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주민들을 강사로 초청했다. 그분들이 참여자도 직접 모집하고 모국어로 교육을 진행하고 영상도 촬영했다. 참여자들은 꼭 필요한 교육이었다며 반가워했고, 엄마에게 전단지를 가져다주겠다는 어린이도 있었다.
또 이 공간에서 ‘음식 공감’이라고 해서 이주민 강사가 출신 국가 음식을 준비해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만들고 먹으면서 이야기 나누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열어 왔다. 예를 들어 네팔에서 온 사누는 ‘짜파티’를 준비하고, 나는 야끼소바를 만들었다. 강사는 그 음식을 왜 준비했는지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른 사람들도 함께 이야기 나누다가 끝난다. 교육이라기보다는 소통의 장소에 가깝다.
지역 주민들을 초대하는 활동을 할 때 참여자는 주로 이주민인가?
우리는 선주민과 이주민을 구별하지 않는다. 어떨 때는 지역아동센터에서 다 같이 오기도 하는데 그중에 이주배경을 가진 아이들도 있고, 그렇게 아이들끼리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문화다양성 감수성이 높아지는 거다. 한번은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시간에 한 초등학생이 놀러 왔다가 다른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야, 이리 놀러 와, 맛있는 거 있어” 해서 학생들이 우르르 오는 일이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이주민과 한국인이라는 구별이 없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다. 그게 정말 다문화 사회에서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주민 가정이 지역 사회와 연결되는 데 학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학교와 협력하면서도 바깥에서 이주민과 선주민이 함께하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단체로서 앞으로 더 시도하고 싶은 것이나 학교에 요구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강남시장에 이주민이 운영하는 가게가 많은데, 체험학습처럼 학생들이 가게에 직접 와서 사장님과 직접 이야기 나누는 프로그램을 시도해 보고 싶다. 다문화 사회라는 것이 멀리 있지 않고 이렇게 서로 어울려 살고 있는 모습이라고 보여 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특수 교육 대상 학생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 딱 두 번 기회가 있었는데, 한 번은 펄벅 기념관에서의 프로그램이었고, 두 번째는 발달장애 특수학교에 초대받아서 춤 수업을 준비해 갔었다. 일반 학교에는 꾸준히 가고 있는데 특수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만날 기회가 없었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 모든 학생에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는 만큼 특수 교육 대상 학생들에게도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부천에 거주하는 등록 외국인 중 절반 이상은 중국 배경이다.[ref]2022년 통계 기준, 디지털부천문화대전 부천향토문화백과 참조[/ref] 많은 공단이 안산으로 이전되며 주거 지역으로서 역할이 확대되는 한편, 서울 대림 지역 재개발로 중국 배경 이주민들이 이주해 오며 더욱 밀집 거주 지역이 되었다. 중국 동포로서 이주해 온 김광염은 자녀들이 학교에서 겪은 차별이 강사 활동의 동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초등학교에서는 직접적으로 다루기 어렵지만, 중등학교에서는 조선족(중국 동포)에 대한 편견을 다루는 수업을 한다. 이주민이 직접 자신이 가진 차이로부터 출발해 국가와 관련된 차별이나 첨예한 갈등을 이야기할 때,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위적으로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른 힘이 있음을 느낀다.
네팔 이주민 강사 사누는 2000년대에 취업 목적으로 이주했다가 선주민과 결혼해 정주하게 되었고, 오랜 한국 생활 동안 쌓인 노하우로 네팔 커뮤니티에서 노동자들을 상담하며 이주 인권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네팔 식당을 운영하며 이주민 커뮤니티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2008년에 강사단 활동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는 교사와 학생들이 차별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게 뻔하다고 생각해 꺼렸다. 당시 선주민이 이주민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던 교육 방식도 탐탁지 않았다. 그가 강사단으로 10년 이상 활동을 이어 가고 있는 이유는 동네에서 만나는 청소년들로부터 변화를 체감하기 때문이다. “(활동 초기에는) 동네에서 청소년에게 ‘안녕’ 하고 인사하면 도망가 버리곤 했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교육 활동의 영향이 분명히 있다고 느낀다.”(사누)
직접 참관한 수업에서도 만남 자체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주민 강사가 들어서자 학생들은 질문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무례하거나 차별적일 수 있는 아슬아슬한 질문도 있었다. 네팔 국기를 보고 왜 네모가 아닌지 묻거나 네팔어 인사말을 따라 써 보자고 하자 “그림 같아!”라고 외치는 상황이 있었다. 서구 선진국 및 OECD 국가 외의 문화가 배울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자칫 다름이 희화화되거나 흥밋거리로만 다뤄질 수 있겠다는 긴장감이 들었다. 이때 사누가 “나에게도 한글이 처음에는 그림 같았어요”라고 말하자 수긍하는 웃음이 이어졌다. 전혀 다른 언어인 한글을 배워야 했던 사누의 어려움과 동시에, 네팔어는 이상한 언어가 아니라 한글과 다른 언어일 뿐이라는 관점이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문화 수업과 짝지어 이뤄진 선주민 강사의 인권 수업에서는 차별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는 활동이 주가 되었다. 열기구와 모래주머니 비유를 들어,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 전쟁으로부터 안전할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충분히 쉬고 놀 권리,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 권리 등 여러 권리 중 어떤 것을 가장 먼저 버릴 수 있는지, 가장 마지막까지 남겨 둘 것은 어떤 것인지 질문하여 순위를 매기게 했다. 모든 권리가 우열을 매기기 어려울 정도로 필수적이지만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권리가 서로 다르다. 그건 평소에 어떤 권리가 위협받는지 그래서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지와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던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 먼 이야기로만 느껴지던 ‘전쟁으로부터 안전할 권리’가 많은 표를 얻은 것은 최근에 일어난 변화에 따라 우리가 체감하는 바와 관련이 있다. 마찬가지로 어떤 이가 나에게는 별거 아닌 일에 화를 내거나 민감하게 반응할 때, 어쩌면 그는 반복해서 비슷한 일을 겪어 왔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이 차별인지, 차별을 하는 것이 왜 나쁜지 당위적으로 설명하지 않고도 차별이 어떤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지 체감할 수 있는 활동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공기처럼 당연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누군가에게는 늘 겪어 왔던 공격이 반복되는 상황일 수 있다는 것, 그 말을 하고 싶고 듣고 싶었던 학생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학교에 다양한 주제의 일회성 의무 교육이 도입되면서 부담이 과중하고 형식적으로 진행된다는 비판이 오랫동안 제기되어 왔다. 특강보다는 일상적으로 교과 수업과 관계 속에서 지향을 녹여 내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수업에서 소수자와 차별 문제를 강조할수록 오히려 그 이미지가 전형화되거나 교실 안의 누군가가 특정되고 위축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다. 이번 모두의 다양성과의 만남은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일회성 교육을 솎아 내는 과정에서 같이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음을 상기하게 했다. 기존 구조의 변화와 외부에서의 개입 두 방향이 서로 상충하는 것이 아니며, 학교의 문턱이 더 낮아지고 다양한 주체들이 넘나들 때 학교 안의 구성원들이 더욱 고르게 존중받을 수 있음을 예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