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호[연재] ‘공간으로서의 대학’을 고민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 | 강석남

202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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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으로서의 대학’을

고민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


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 박민상, 임서연, 황민용, 권세연

 

강석남

kim3soo91@hanmail.net

본지 편집위원,

중앙대 사회학과 박사 수료


 

다른 모든 학교들과 마찬가지로 대학은 우리가 흔히 캠퍼스라고 부르는 물질적인 실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장소이자 공간처럼 여겨진다. 어쩌면 대학은 캠퍼스 그 자체를 지칭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교문을 지나 캠퍼스에 진입해 마주하는 단과대 건물들, 중앙도서관, 학생회관과 대학을 대표하는 각종 상징들, 건물 곳곳에 자리한 강의실과 연구실, 과방, 동아리방 등 대학만의 고유한 공간들은 대학과 대학의 외부가 어떻게 다른지 보여 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때때로 대학 캠퍼스는 오래전 유행하던 시트콤이나 가끔은 너무 뻔해서 민망한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 속에서 꿈, 희망, 열정, 젊음과 낭만이 넘치는 청춘들의 공간처럼 그려진다. 혹은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에 대한 향수나 대학의 학문적이고 공공적인 기능에 대한 기대 속에, 대안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일종의 해방구처럼 회고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의 공간이자 장소로서 대학은 대학 바깥과의 구별이 흐려진 지 이미 오래다.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된 각종 프랜차이즈 상업 시설들의 대학 내 진입은 대학 구성원들이 일상을 향유하던 생활협동조합이나 학생 자치 공간 같은 대학만의 고유한 공간과 장소들을 빠르게 대체했다. 최근 들어서는 교육부가 나서서 대학 재정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이라며 대학 내에 스크린 골프장까지 설치가 가능하도록 규제 완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ref]“캠퍼스에 스크린 골프장이… 대학 재정 위해 허용 추진”, 〈세계일보〉, 2023년 1월 8일.[/ref]

 

대학에 외부 상점이 들어올 때마다 학교와 학생 간에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학생 자치 공간’ 때문이다. 새로 건물을 짓든, 기존에 있던 건물에 들어오든 업체가 둥지를 트는 곳은 대부분 학생들이 사용하던 자치 공간이었다.[ref]〈“학생 공간을 달라”… “주고 있잖아”〉, 《시사인》, 30, 2008년 4월 7일.[/ref]


그러나 “가까운 곳에 편리한 시설이 생기는 게 뭐가 나쁘냐”며 환영하는 학생들이 더 많은 편이다. 이화여대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ECC 상업 시설을 이용해 본 학생들의 소감이 많이 올라와 있다. 그중에는 “‘이화서림’은 계산하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는데, 교보문고에서는 소파에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다” “다른 학교 친구들이 부러워한다”는 내용들이 주류다. 한술 더 떠 “한솥도시락을 입점시켜 달라”는 추가 요구까지 이어지고 있다.[ref]“캠퍼스 내(內) 커피숍·극장… 찬·반 논란 거세져”, 〈조선일보〉, 2008년 4월 30일.[/ref]

 

거대 자본의 캠퍼스 진입과 함께 2010년대 전국 대학가에 몰아친 ‘클린 캠퍼스’ 정책도 대학이라는 공간의 성격을 크게 변화시켰다. 깨끗한 캠퍼스를 표방하며 학내 무분별한 홍보물 등을 예방하겠다는 대학 본부들의 의지는 자연히 본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학생 자치 표현물들에 대한 규제로 귀결됐다. 자유롭고 비판적인 공론장으로서 대학의 여러 장소들을 점유하고 있던 대자보나 ‘플랑(현수막)’들은 기타 광고지와 한데 묶여 처분되며 학내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들을 불러일으켰지만, 이내 대학들은 충분히 ‘클린’해졌다.

 

최근에는 학내에서 파업 중인 청소 노동자들에게 대자보 하나당 100만 원이라는 통보를 하고, 청소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까지 ‘클린 캠퍼스’라는 이유로 모두 철거했다. ‘안녕들’ 대자보를 모두 철거한 학교는 중앙대가 거의 유일하다. 나아가 지난 4일에는 학교 자유 게시판 댓글에까지 ‘법적 조처’를 언급해 논란이 일었다.[ref]“두산, 중앙대 인수 5년… “중앙대는 공론장이 없는 학교””, 〈미디어오늘〉, 2014년 1월 14일.[/ref]

 

이 밖에도 낭만화된 대학 캠퍼스의 이면에 ‘비가시화’를 강요받았던 공간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공간으로서의 대학이 얼마나 기만적인지를 환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학내 청소 노동자들의 열악한 휴게 공간 실태다. 계단 밑, 지하실, 심지어 화장실 앞이나 각종 기계실 한쪽으로 밀려나고 숨겨진 휴게 공간[ref]“대학 청소 노동자 휴게실 가 보니… “대소변 소리 들으며 밥 먹고 쉽니다””, 〈한겨레〉, 2019년 8월 19일.[/ref]은, 대학 캠퍼스의 일상을 구성하는 청소 노동자들의 노동을 어떻게든 시야에서 치워 두려는 노력의 산물에 가깝다.

20년 가까운 세월 속에 공간으로서의 대학은 외부와 구별되는 고유한 의미나 역할을 거의 상실해 온 것은 아니었을까. 여기에 코로나19에서 비롯된 대학교육의 비대면화는 대학과 대학교육이 꼭 물질적인 공간을 가져야 하는지 근본적인 의문마저 제기하고 있다. 팬데믹 와중에 한국 사회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캠퍼스라는 공간에 근거하지 않은 대학교육이 가능한지에 대한 실험을 벌였고, 좌충우돌 속에서 어찌 됐든 2년에 가까운 비대면 교육이 겉으로 보기에 큰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이와중에 등록금 반환 운동 등 일각에서 제기했던, 캠퍼스의 대면 상황에서만 가능한 대학교육의 그 ‘무엇’은 제대로 제시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대학 사회는 공간으로서 대학이 대학교육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냐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을 따라 2024년 현재 대학에서 ‘공간’과 결합된 고민을 이어 가는 생활도서관 운동, 그중에서도 최초로 개관해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 중인 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생도)을 만났다. 대학과 공간에 대한 맥락을 다루다 보니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생활도서관 운동에 대한 소개와 생활도서관과 공간이 어떻게 만나는지에 대해서는 인터뷰에서 마저 다룬다. 인터뷰는 2024년 7월 16일 온라인 화상 회의로 진행했다.

 


도서관에서 대안적 공간에 대한 운동으로

 

강석남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각자 소개를 부탁드린다.

박민상
현재 생도는 실질적인 (도서)관장 같은 대표자를 두고 있지 않다. 5개 부서가 있고 부서장들이 있다. 연대사업부장을 맡고 있고, 국문과 19학번이다.

임서연
전임 총무부장이고 현재도 총무부 업무에 주로 참여한다. 국문과 21학번이다.

황민용
사회학과 18학번이다. 맡고 있는 직책은 없지만 주로 연대사업부 위주로 활동하고 있다.

권세연
국제학부 22학번이다. 전담해서 맡은 부서는 없고 두루두루 참여하고 있다.

강석남
고려대 생도에 대한 소개와 함께, 독자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생활도서관 운동에 대해서도 개괄적으로 소개해 주시면 좋겠다.

박민상
생도의 설립 취지와 계기에 대해, 새로 들어오는 운영위원들과 공유하는 데 사용하는, 20주년 때 정리된 자료가 있다. 고려대 생도는 1990년에 한국 대학 최초로 설립됐다. 그 이전에 정부의 금서 조치에 저항하는 시민운동이 있었고 그런 문제의식에 따라 정부의 검열이나 자본의 논리가 자리 잡은 제도권 도서관과 단절을 모색하는 한편, 당시 학생운동 내의 생활 문화 운동과 결합해 학생회 활동의 전초 기지로서 생활도서관을 건립하려는 시도의 결과가 고려대 생활도서관이다. 이후 서울대, 이화여대, 연세대 등 여러 대학에서 생활도서관이 건립되었다.
고려대 생도는 1990년 설립 당시 문과 대학 건물 지하를 강제 점거 하면서 출발했다고 한다. 당시 학교 측에 학생 자치 공간에 대한 요구를 제기했고, 그 결과 처음엔 문과 대학을 점거해서 활동하던 생활도서관이 학생회관 건물에 넓은 공간을 제공받아 옮기게 됐다. 1990년대 후반 들어 학생회 운동이 정체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동력을 찾으려는 시도로 대학의 공간을 대학생들뿐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하고 돌려준다는 모토가 제시되면서, 지역의 여러 풀뿌리 도서관 운동으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생도 이용자를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학생들에게만 한정하지 않으려는 취지와 개성을 잘 전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계속 학생회 운동과 연결성을 갖고 활동해 왔는데, 이후 학생회가 조금씩 무너지고 운동권에 대한 학생 대중의 반감이 심해지면서 이런 연결이 무색해진 면이 있다. 2000년대까지 인문사회과학의 자치 학술 운동 장려를 취지로 활동을 이어 가다가 2010년대 전후로 단절기를 겪었다. 현재 17명이 생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당시에 구성원이 2명까지 줄어들어 도서관으로서의 기본적 업무도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한다. 한편, 기존 학생운동의 영향하에 있던 생도 문화에 대한 자성을 계기로, 위기를 극복하고자 현재 구성원 간 위계를 두지 않고 서로 별명을 부르면서 반말을 하는 문화를 이어 오고 있다.

강석남
고려대 생도의 조직 구성이 궁금하다. 현재 활동의 방향이나 목표는 무엇인지?

박민상
생도는 5개의 부서로 구성된다. 책들을 관리하고 전시 등의 사업을 기획하는 도서부, 신간 도서를 들여올 때나 강연 등의 여러 사업을 진행할 때 생도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홍보부, 예산을 관리하는 총무부, 노동이나 페미니즘 등 여러 의제에 따른 연대 사업을 담당하는 연대사업부, 마지막으로 학생 사회 내에서 학생 자치 관련 자료를 아카이빙, 보존하는 자료부다. 구성원 모두가 모인 회의에서 부서별 안건을 논의한다. 2024년 현재 총 17명의 운영위원이 함께한다.

임서연
생도에서 활동하게 되면 도서 구매나 자료 전수 조사, 수집의 과정에 참여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도서부나 자료부에서 활동하게 된다. 여기서 관심 분야에 따라 조금 더 활발하게 활동할 부서를 정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관장이 없는 대신 외부 회의에 생도가 참여해야 할 경우 예산 관련 회의에는 총무부장이, 연대 사안에는 연대사업부장이 대표로 참여한다.

박민상
생도의 활동 방향이나 목표를 물으면, 사실 다른 학생운동단체처럼 이론적인 기조와 신입 회원을 교육하고 운동을 재생산하는 체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생도는 운영위원 모두가 합의하는 기조나 이념, 정서가 있지는 않은 것 같다. 현재 생도의 정체성은 ‘읽고 소통하고 연대하는 생활도서관’인데, 과거에는 ‘진보적 사상의 대중화’라는 표어를 걸기도 했지만, 지금은 생도의 정체성 자체를 느슨하게 잡고 있다. 다른 학생운동, 학생 자치 공간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생도가 운동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폭넓은 대안적인 자치 공간을 제공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느슨한 정체성을 가지되 진보적인 스탠스로 여러 활동에 임하다 보니, 이 공간을 통해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려는 목적의식도 있다. 최근 고려대 안의 비거니즘, 페미니즘, 노동, 평화 등의 의제를 다루는 단체들이 모인 ‘학내인권단체협의회’에 참여한 맥락이기도 하다.

강석남
고려대 생도의 주요 활동은 어떻게 진행되나? 생활도서관으로서 정기적인 활동과 함께, 연대 사업이나 대관 사업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박민상
기본적으로 도서관이기 때문에 월요일부터 금요일, 12시부터 18시까지 문을 열고 이용자를 받고 있다. 동시에 여러 도서를 관리하고 두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30~40부의 도서를 구매하고 있다. 얼마 전 교육공동체 벗에서 출판한 책도 들여왔는데, 마침 인터뷰 요청이 와서 반가웠다. 신간 도서들을 큐레이팅하고 이용자들에게 소개하는 역할도 한다.
대관 사업도 하고 있다. 꼭 학교 구성원이 아니더라도 지역 주민이나 학내 청소 노동자 등에게도 모두 개방한다. 정기적으로 학생 자치 자료를 아카이빙하는 사업도 있다. 지속적으로 여러 단체에 연락을 취해 여러 학과나 단과대 학생회의 선거 자료, 각종 활동 자료를 수집한다. 실물도 따로 보존하고, 온라인 자료도 넘겨받아 수집하고 보존한다. 이렇게 세 가지 사업이 생도가 기본적으로 수행하는 활동이다.
생도에서는 반년마다 방학이 끝날 때쯤 수련회를 가서 지난 학기를 리뷰하고 다음 학기에 어떤 활동을 할지 논의한다. 이때 첫 번째로 기획하는 것이 연대 사업이다. 최근에는 노학연대 기획단에 참여하고 있고 고려대 청소 노동자 식대 인상 투쟁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결합하려 하고 있다. 한편, 소장 도서나 학생 자치 자료를 특정한 테마 아래서 전시하는 컨셉 도서전이나 여러 강연을 월별로 기획하기도 한다. 이번 학기에는 ‘모두의 화장실’을 주제로 연구자를 모시기도 했고, 호국 보훈의 달을 맞이해 청년 남성들의 보수화와 군대 문제와 관련해 평화주의 연구자를 섭외해 군인권 강연을 열기도 했다. 앞서 말한 학내인권단체협의회의 소속 단위들, 다른 생활도서관들과 소통하면서 함께 기획할 수 있는 활동에 대해서도 논의를 이어 오는 중이다.


2024년 6월,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김선우 운영위원이 강연한 ‘군대의 논리에서 한발자국 물러나기’ 강연.



강석남
대관 사업이 흥미로운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신다면?

박민상
생도의 대관 사업은 말 그대로 대관만 해 주고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는 주의다. 누구나 대관할 수 있기 때문에 생도의 진보적인 성격과 맞지 않는 단체가 대관을 하면 어떻게 할 거냐는 이의 제기도 계속 나오는 한편, 반대로 진보적인 단체의 대관이 마치 생도의 사업처럼 비쳐서 보수화된 학내 여론에 의해 생도가 공격받을 때도 있다. 대표적으로 최근 팔레스타인 문제 관련 강의를 위해 대관했을 때 그런 일이 있었다. 오히려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대관해 주기 때문에 생도가 이러한 공격으로부터 공간을 대관한 주체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 같다.
진보적인 성격의 단체나 행사에만 대관을 한정하지 않는 이유는 생도의 설립 취지인 학생 자치에 대한 장려가 꼭 진보적인 성격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드 게임 동아리든 동영상 창작 동아리든, 학내 청소 노동자들의 회의이든 폭넓게 열어 두려고 한다. 이런 면에서 연대 사업을 할 때의 생도의 성격과 대관 사업을 할 때의 생도의 성격은 조금 다른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강석남
생도가 처음에는 대안적인 도서관운동으로 출발했다가, 물론 여전히 도서관의 기능을 다하고 있지만, 최근으로 올수록 학생 자치 공간이나 플랫폼으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는 이야기로 이해된다. 이러한 변화는 학생운동의 부침과 같은 외부적인 환경의 요인 때문일까? 아니면 생도 내부에서 보다 능동적인 전환의 계기가 있었을까?

박민상
2010년대의 단절, 기존의 학생운동이나 특히 선배들과의 네트워크와 단절했던 것이 계기였던 것 같다. 직접 전해 들은 것은 아니고 기록을 통해 확인한 것이지만. 생도의 문화를 바꾸고 계승하면서 생도를 하나의 동질적인 단체로 만들어 주는 요소가 없어졌기 때문에, 중구난방의 성격에서 출발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게 된다. 곧 10월부터 학생회관을 리모델링하게 되어 10개월 가까이 공간을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 도서관으로서의 사업 없이 생도를 운영해야 하는데, 그때 어떤 단체가 돼야 할 것인지 운영위원들 사이에서 토론하는 중이다. 구성원과 의제가 계속해서 바뀌는 다소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그때그때 구성원들의 합의에 따라 활동한다는 것이 학생운동과의 단절 이후 변화하는 생도의 성격인 것 같다.

강석남
오늘날 많은 대학생 단체들이 이전까지의 활동들, 특히 이전 세대와의 단절로부터 활동의 노하우나 유산이 제대로 계승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공유하는 것 같다. 고려대 생도는 단절로부터 활동의 전환점을 적극적으로 찾아낸 것으로 이해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없었는지?

황민용
사실 생활도서관이 이전에 뭘 가지고 있었는지 알기가 어렵다. 생도 구성원들이 어떤 걸 배우고 가르치고 조직했는지, 그런 커리큘럼이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생도뿐만 아니라 요즘은 다 그런 게 없는 것 같다. 뭔가 판단을 내릴 기준으로서 조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이나 커리큘럼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물론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통일되지 않은 사람이 모여 있는 지금의 생도에는 그런 형식이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도 있다.

강석남
생활도서관 운동에서부터 출발한 고려대 생도의 역사와 현재를 개괄적으로 잘 설명해 주신 것 같다. 그렇다면 고려대 생도가 학생회나 동아리 같은 보다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학생 조직이나 단체들과는 어떻게 구별되는지 궁금하다.

박민상
생도는 총학생회 체계상으로는 총학 산하의 아카이빙 특별 기구로 지정되어 있다. 총학이 1년에 한 번씩 학생 자치 단위들의 자료를 수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관련 예산도 배정한다. 그렇다고 해서 총학의 지휘를 받는다는 개념은 아니고, 운영과 의사 결정에 있어 자치성과 독립성을 충분히 보장받고 있다. 흔히 전통적인 학생 사회라고 부르는 것 내에서 공식적으로 아카이빙 관련 역할을 부여받았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다만 이는 고대 생도의 특수성이고 다른 생도들은 상황이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임서연
예산 같은 경우, 총학생회에서 받는 예산은 자료 아카이빙이나 보관 및 관리 용도에 한정되어 있고, 예결산특별위원회에서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이 외에 학생회관 내 특별 기구로서 학생회비를 지원받기도 하고, 학교 본부로부터 봉사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단위로 지정되어 있어 운영위원이 받는 장학금을 활용하기도 한다.

강석남
사실 신입 운영위원 모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도서관을 운영하고, 이 외 수시로 발생하는 여러 실무와 연대 활동을 병행한다는 것이 2020년대 기준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은데.

임서연
생도 운영 모집은 항상 열려 있는 상시 모집이다. 홍보를 하기는 하지만 효과가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박민상
생도를 이용하던 이용자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경우도 많다.

황민용
생도가 지속적으로 간담회나 강연회, 연대 활동을 하면서 이런 활동에 관심을 갖고 들어오는 경우도 많고, 도서관이란 특성상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기도 한다. 생도 이용자가 이 공간이 따뜻한 것 같아서라며 공동체성에 집중해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현재 17명의 규모가 유지되는 건 특별한 비법이 있다기보다는 우연의 결과인 듯하다.

임서연
생도의 여러 가지 폭넓고 느슨한 활동이 학생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박민상
생도 운영위원이 시간도 많이 들여야 하고 일을 많이 해야 하지만 금전적인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를 이 공간에 붙들어 두는 원인이 있다면 이 ‘공간’ 자체라는 생각을 종종한다. 운영 시간 외에도 운영위원들이 같이 공부하고 시간을 보내는 순간이 많다. 어떤 애정도 가지게 된다.

강석남
다른 대학 생활도서관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소개해 줄 수 있을까?

박민상
1990년대에도 2010년대에도, 생활도서관 네트워크나 연대체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은 항상 있었고 잘 작동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개인 간의 관계나 실제 소통 경험에 기반하다 보니 구성원이 바뀌고 조금만 소홀해져도 금방 와해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특히 코로나19 이후에는 네트워크나 연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다가 올해부터 다시 조금씩 이야기를 진행 중이다.
한국외대 생도와 이화여대 생도가 의욕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함께 생활도서관 네트워크를 다시 꾸려 보자고 이야기 중이다. 이 외에 다른 대학에서 활동 중인 도서관으로는 연세대 노수석 생활도서관과 연세대 자치도서관이 있다. 고려대 내에도 생도뿐만 아니라 자연계 캠퍼스의 애기능 생활도서관이 따로 운영 중이다. 강원대나 인하대 등 다른 생도들도 많았던 걸로 알고 있지만 최근 활동에 부침을 겪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아예 문을 닫은 곳도 있고 인원이나 재정 문제를 겪고 있다. 일단 활동 여력이 있는 생도들끼리 네트워크를 단단히 구축한 다음 다른 생도들의 현황도 확인하려 한다.

 


국가의 검열과 자본의 논리에 저항하는 대안적 도서관운동과 대학 내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던 학생운동의 결합으로 탄생한 대학 생활도서관에 관해 최초의 대학 생활도서관인 고려대 생도의 경로를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요점은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겠다. 첫째로 고려대 생도의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생활도서관은 대학 안에 학생 자치의 공간을 점거하고 확보하면서 출발했다. 둘째로 1990년대 이후 대학 생활도서관은 학생운동의 흥망과 함께 ‘생도에 있는 책들을 중도(중앙도서관)에서도 찾을 수 있는’[ref]“살아 있는 생활 속 도서관, 고려대 ‘생활도서관’”, 〈경향신문〉, 2012년 10월 7일.[/ref] 조건의 변화 속에 도서관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학생 자치 공간으로서의 가능성에 보다 집중하는 전환에 나서게 됐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학 생활도서관은 그 출발과 전환점에서 ‘공간’이라는 질문과 결합해 있다. 물론 학생운동 단위나 대학생 단체는 각자의 의제를 따라 대학이라는 공간의 범위 내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필연적으로 자치 공간을 필요로 하고, 때때로 대학 자체 혹은 대학 내 공간들의 변화를 추구한다. 하지만 생활도서관은 공간의 점유와 활용이 활동의 목적이며, 자연히 점유하고 있는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의제로 다룬다.

비록 모든 대학 도서관의 보편적인 전환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고려대 생도가 공간을 매개로 전개하는 활동들, 도서관 사업, 각종 강연 및 연대 사업, 그리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대관 사업은 공간으로서 대학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나름의 고민을 제기한다고 볼 수 있다. 어느새 자본의 상업 시설이 자치 공간과 생활 공간을 대체하고, 공론장이 사라지고, 대학의 일상을 구성하는 노동을 은폐하는 오늘날의 대학에서 생도는 그 존재 자체로 대안적 공간의 가능성을 증명한다. 이제 구체적으로 고려대 생도가 어떤 대안적 공간을 추구하고 있는지와 그에 관한 쟁점들을 살펴본다.

 


공간으로서의 대학과 고려대 생도가 추구하는 ‘마주침’

 

강석남
고려대 생도처럼 플랫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대학 생도들의 보편적인 경향일지, 고려대 생도만의 특수함일지 궁금하다.

임서연
생활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시기에 생겨나긴 했지만 학생운동 자체의 붕괴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또 학내 분위기나 그 단체의 위치나 공간, 인원에 따라 워낙 많은 나름의 역사와 변화가 있을 것이다. 플랫폼으로서의 기능도 고려대 생도만의 변화의 결과이고 역할 수행이라고 생각한다.

황민용
생도가 플랫폼 기능을 강조하게 된 건 명확한 지향성을 공유하고 있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면 넓은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을 살려 우리의 콘셉트를 명확히 해 보자는 의미였다.



고려대 생활도서관 열람실의 모습 



강석남
2000년대 이후 대학의 공간이 자본과 상업 시설로 대체되고 공론장이 사라지는 흐름 속에서, 생도는 공간과 결합된 고민을 바탕으로 활동을 이어 온 것으로 이해된다. 어찌 보면 다른 대학생운동에 비해 생도는 공간과 분리될 수가 없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공간으로서의 대학은 어떤 것인가, 혹은 어떠해야 하는가’라고 생도에 질문한다면?

임서연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학생이나 대학공동체 구성원이 아니더라도 지역공동체나 노동자들도 사용할 수 있게 공간을 여는 것은 생도가 점유한 공간을 다 함께 자치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환원의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대학이라는 공간이 지향해야 하는 바를 생도가 실천하는 것이라고 느낀다. 도서관에서 정숙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소통하고, 운영 시간이 아니어도 운영위원이 있다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고, 대관 신청의 자격을 따지지 않는 것이 생도가 추구하는 공간의 목적이자 의미고, 이는 대학 전체로 확대되어야 한다. ‘내가 돈을 내고 다니고 있으니 나의 공간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배제하는 공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존재할 수 있으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보다 존중받고 자유롭게 말해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박민상
고대 에브리타임 같은 곳에서 자주 화두로 나오는 게 고려대 세종 캠퍼스다. 안암 캠퍼스 학생들이 왜 ‘우리와 다른 캠퍼스 학생들이 우리와 같은 축제에서 놀고 제도를 이용해 같은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라며, 같은 곳에서 등록금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공간을 활용하면 안 된다는 이유를 댄다. 꼭 세종 캠퍼스 학생들이 아니라도 지역 주민이나 학내 청소 노동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논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전통적인 학벌주의가 가져온 특권 의식이 상업주의와 결부되는 지점들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

황민용
생도가 대안 공간으로 기능하기를 바란다고 할 때, 대안 공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외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겠고, 둘째로 그 대안 공간을 외부로 확장한다는 의미가 있겠다. 첫째 의미로 대학을 마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피로감을 느끼고 자신이 환대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찾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서 외부와 구별되는 생도가 있다. 사람들이 기대하고 바라는 대학은 차이들이 존중받고 교차될 수 있는 공간인데, 실상 대학이 그러지 못하니 생도를 찾게 된다. 둘째 의미로 대안성을 확장하는 공간으로서 생도는, 생도에서 교차되는 이야기나 담론들이 생도에만 머물지 않고 외부로 확장되는 걸 추구하는, 상상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다시 공간으로서 대학에 대한 논의로 나아갈 수 있다. 대안적인 공간에서 교차되는 생각들과 이질성들에 대한 환대가 대학 전체로, 대학 외부로 확장되기를 소망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공간이라는 것도 ‘행위성’을 갖는다고 하지 않나? 그건 공간을 활용하는 것만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소통하고 관계 맺도록 하는데, 그럴 수 있을 법한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권세연
대학에 들어온 지 3년 차인데, 학생들에게서 우리가 학생이라고 여기는 집단이나 교수 집단 외에, 대학의 대표적 구성원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사람들을 계속 밀어내려는 심리, 그들이 완전히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심리를 느낀다. 예컨대 등록금을 내지 않았거나 대학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지위를 가지지 않았는데 왜 우리 공간을 침범하느냐는 적대적인 심리들이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상상했던, 나의 위치나 지위에 상관없이 당연히 그 공간을 향유할 수 있는 대학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실망감이 컸다. 그래서 우리가 학교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동네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도 공간을 기꺼이 이용할 수 있도록 내어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강석남
한편 코로나19 팬데믹 때, 물리적인 대학 캠퍼스가 없어도 대학교육이 가능한지에 대한 실험을 강제적으로 경험던 것 같다. 어쨌든 그 기간 대학교육은 비대면으로 이뤄졌고, 이제 대학은 캠퍼스라는 물리적인 공간 없이도 존재할 수 아닐까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고 보인다.

황민용
대학교육이 비대면으로 이뤄졌을지라도 그것이 기존의 대학과 동일하다고 사람들이 느끼지는 않았다. 분명 무언가 결여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이 나오는 것 같다. 나는 신체의 ‘마주침’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느꼈다. 생도라는 공간이 물리적으로 존재하면서 간담회나 강연을 했을 때, 실제로 마주칠 수 있는 계기에서 연속성 있는 또 다른 관계가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신체적으로 만나고 마주친다 해서 반드시 이어진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은 공간이 아닐까. 마주침의 핵심은 성찰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다. 성찰이란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것인데, 머리만이 아니라 오감을 다 사용하는 성찰은 비대면 상황에선 얻지 못한다. 공간 자체가 성찰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게 아닌가?

임서연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21학번으로 코로나19 상황이 너무 피로했어서 한 학기 만에 휴학을 했다. 나의 화두는 ‘서울에 있는 주요 대학교’라는 공간에서 지워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다. 온라인으로 화면 속의 얼굴로만 만날 때, 추상적인 공간에서 지워짐의 정도가 더 심해진다고 생각했다. 캠퍼스에서 만나면서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고 그들의 눈에 보이고 목소리를 직접 낼 수 있는, 몸과 몸의 만남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박민상
한편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이후 학내 여론이 가장 크게 바뀐 점이라면, 극우적이라고 할 만한 정치적인 목소리들이 인터넷 여론에서 주류가 되어 가고 오프라인에서도 분출되고 있다는 인상이 있다. 과하게 폭력적이고 납작한 이런 주장들은 우리가 대학에서 마주침과 오감을 사용한 만남이 있었다면 조금은 완화됐을 것이라고 느낀다.

강석남
고려대 생도의 플랫폼으로서의 전환과 관련해서 조금 삐딱한 질문을 제기해 보겠다. 앞서 말했듯 연대 사업을 할 때의 생도와 대관 사업을 할 때의 생도가 구별된다고 했을 때, ‘모두에게 열어 준다’라는 원칙에 따른 공간의 제공은 사실 학교 본부의 행정적인 역할이 아닐까? 40년 가까운 시간을 이어 온 생도라는 공간이, 그 공간에서 어떤 활동을 하느냐에 대한 질문 없이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은, 단지 큰 공간을 갖고 있단 이유로 학교의 행정적인 역할을 대행하는 일종의 후퇴는 아닐지?

박민상
물론 생도가 대관하는 단체의 성격을 따지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대관을 자주 하는 단체들은 생도와 지향이 맞고 공감대가 있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행정적인 공간 제공만이 아니라, 앞서 말한 마주침의 계기로서, 이후 파생될 수 있는 사업에 대한 제안까지도 이어진다. 학교가 마땅히 제공해야 할 공간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생도가 부득이하게 나서고 있지만, 동시에 자치 공간으로서 생도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이기도 하다. 생도와 여러 의제들, 단체들이 대관을 통해 만나면서 활동과 소통을 타진하는 것도 중요하다. 연대 단위로서의 생도와 공간을 대관하는 생도의 두 측면 모두를 지향하고 있다.


2024년 3월 27일 열린 학내 운동 단위 간담회. 학생 사회의 보수화 경향에 대한 대응 방향과 과제를 공유했다.


황민용
모두에게 열려 있는 플랫폼에 대해서, 생도 내부에서도 사전에 대관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지 않나 논의가 활발했다. 반인권적이거나 소위 이상한 단체들의 모임을 방치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생도가 그걸 사전에 인지해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제일 컸다.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의미는 어떻게 보면 이런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나온 것이 맞고, 앞서 말했듯 (생도나 공간을 대관한 단체를 겨냥한) 공격에 대한 방어적인 수사라는 의미도 있어서 우려가 될 만한 부분이기도 하다. 단순한 후퇴라기보다는 전략적 선택에 가깝다는 생각도 있다.

임서연
후퇴라고 볼 지점이 아예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대관이 단지 공간 제공에 그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 공간에서 청소 노동자들이 회의를 하고 앞으로의 활동을 도모할 때 마주침을 통해서 네트워크가 형성되며 생도가 가진 성격과 결부되어 활동이 강화되는 등 장점도 있다. 노학연대의 측면에서도, 생도가 지향하는 바에 있어서도 전략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생도는 좀 더 긍정적이고 전략적으로 열린 공간을 지향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이 생도에서 무언가를 도모할 수 있도록 구성하고 활동하고자 한다.

박민상
사실 일반 학우들이 정치적인 것들에 대해 반발심을 가지는 조건 속에서 당장 생도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비정치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부분도 없지 않다. 대관 사업의 무차별성이나 총학생회로부터 부여받은 학생 자료 아카이빙 업무를 강조하는 것이 그런 맥락이다.

강석남
에브리타임 등 온라인상에서의 비난 외에도, 생도가 위협을 느낄 만한 공격과 구체적으로 마주한 적이 있나?

임서연
생도는 결산특별위원회에서 관련 예결산이 통과된 뒤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서 1년마다 한 번씩 단체 인준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예결산특별위원회에서 문제없이 통과됐던 부분을 전학대회에서 문제 삼아 굉장히 오랜 시간 소명해야 했고, 그러면서 인준받지 못했을 경우 당할 경고나 불이익에 대해 우려가 커졌던 적이 있었다.

강석남
한국 사회에서 캠퍼스라는 물질적인 속성에 집중하자면 대학 서열 체제의 주요한 근거 중 하나인 지역적 위치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고려대 안암 캠퍼스의 ‘안암’은 서울대의 ‘관악’과 함께 캠퍼스가 위치한 지리적 위치가 대학 그 자체를 상징하는 거의 유이한 예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한데.

박민상
고민이 얽혀 있는 지점이다. 안암이 곧 고려대가 되는 상황에서 고려대라는 라벨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특권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또 이와 별개로 우연히 안암에 존재하고 여기서 생활을 꾸리는 사람들로서 생도가 있다. 이런 공간성이나 위치에서 출발해 보자는 움직임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생도가 이 공간에서 출발할 수 있는 공동체성 회복을 1차적인 과제로 제시하면서, 캠퍼스의 지리적 위치에서 비롯된 특권에 소홀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한다.

황민용
고려대 생도에 앉아 있으면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문제 등 지역적, 공간적으로 균등하게 일어나지 않는 변화를 위기로 체감하기 어렵다. 이런 지점도 특권성이라는 생각이 들고, 생도가 확보한 공간성도 이 특권성 위에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생도가 추구하는 대안적인 공간을 버리는 것이 전략적으로 좋은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권성을 이해하는 맥락과 그 이후에 이 공간성을 어떻게 대안적으로 끌어 갈 것인지는 다른 질문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강석남
기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마저 질문하자면, 학령 인구 감소를 중심으로 대학의 위기를 진단하는 담론들이 일반적이고, 이미 구체적인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진단에 대한 고려대 생도의 입장이 궁금하다. 혹은 오늘날 대학의 위기를 어떻게 진단하는가?

박민상
방금 공간의 특권성을 이야기하며 말했듯, 학령 인구 감소에서 파생되는 위기는 지방대에서부터 시작되고 있고 고려대에서는 당장 체감하기 어렵다. 오히려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은 재정 건전성이라는 목적 아래 행해지는 대학 본부의 행보들이다. 예를 들어 학내 노동자 수를 계속해서 감축하고, 처우에 대해서도 원청의 위치를 강조하면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강사 수도 줄이는 등 전방위적으로 재정 지출을 최소화하면서 대학의 학술적인 조건도 점점 악화되고 있다.
대학교육의 위기에 대해서도 지적할 수 있다. ‘학생’이라는 존재의 위기다. 나중에 로스쿨에 진학할 때 써먹을 수 있도록 학점을 잘 주는지의 여부가 강의 평가의 지표로 떠오르고, 이런 평가가 강사 노동자들의 생계를 쥐게 되는 것 같은 문제들이다. 가령 강의가 너무 정치적이라는 이유만으로 평가가 깎여서 하나 마나 한 이야기만 하게 되는 경향들, 조금이라도 정치적인 것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학내 구성원들 등. 학생이라는 정체성이 현실에 발 딛을 뿌리 같은 것들이 점점 와해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학생이라는 정체성을 새롭게 상상해야 할 필요성을 고민하게 된다.

임서연
대학 자체의 위기나 대학이라는 기관의 위기를 진단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대학이라는 공간의 위기라면, 대학 자체가 계급적 상징으로 기능하고, 배우고 생활하는 공간으로서의 대학이라는 공감대가 상실되는 것이라고 할까? 한국에서 손꼽히는 대학이라는 라벨이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싶다.

황민용
한편으로 일자리 문제가 심화되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대학이 대학생들의 삶과 생애 주기에서 정말 중요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보장해 주는 것이 없다는 점에서 대학생들의 심리적, 생애 주기적 위기가 강화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대학의 재정 위기라는 건 대학 내부에서 재정 리스크를 어떻게 분배하는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결국 문제를 학내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면서 대학의 위기는 노동자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학령 인구 감소가 노동자의 위기를 강화하는 느낌이다.

 


공간으로서 대학에 관해서,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캠퍼스라는 물리적인 조건이 대학에 반드시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현시점에 고려대 생도가 제시하고 있는 ‘마주침’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생도가 추구하는 마주침은 팬데믹 기간 작동했던 비대면 교육에서는 결여되었던 대면적 관계의 필요성을 보여 준다. 나아가 오감을 활용한 몸과 몸의 마주침으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가능성들은 대학이 왜 대학이 아닌 곳과 구별되는 대안적 공간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비록 자본과 상업 시설의 침탈과 공론장의 소거, 대학 구성원의 은폐로 점철된 오늘의 대학이지만 생도는 자신들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을 활용해 스스로 대안 공간으로 기능하며 대안 공간으로서의 대학을 실험한다. 상업 시설이 아닌 자치 공간이자 생활 공간으로서, 학내 공론장의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의제를 제공하고, 은폐된 학내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공간으로 기능하면서.

이 실험이 기본적인 도서관 기능의 유지를 위해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는 운영위원 하나하나의 헌신 위에서 가능했다는 점이 인상 깊다. 고려대 생도가 생활도서관 운동의 짧지 않은 역사 속에서, 환경과 조건의 변화에 따라 소명을 다했다는 자족 속에 소멸한 것이 아니라 나름의 고민 속에 공간 그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플랫폼으로 전환해 왔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다만 그 마주침이 구체적으로 어떤 만남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선 쟁점을 제기할 수 있다. 마치 공간(空間)의 근본적인 속성처럼, 그 마주침이 어떤 관계와 도모를 파생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소간 ‘비어 있다’라는 인식을 지우기 어렵다. 마주침이 생도의 존재 이유가 되려면 단순히 마주침 자체를 권장하는 것을 넘어서, 보다 적극적으로 마주침 이후의 경로를 제시할 수는 없는지 질문해 본다. 다시 말해 캠퍼스를 장악한 상업 시설이나 에브리타임, 학교 본부가 행정적으로 제공하는 자치 공간이 아닌 공간들, 나아가 대학 바깥 공간에서, 생도가 아닌 공간의 마주침과 생도에서 벌어지는 마주침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 더 분명해져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 공백이 생도의 무책임이 아니라, 한편에서는 생도를 위협하는 공격으로부터의 대응이라는 점, 캠퍼스 내외의 보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생도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점에 수긍이 간다. 그럼에도 앞선 다른 대학생운동 인터뷰에서도 다뤘던 것처럼[ref]강석남(2024), 〈편협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가 보여 주는 대학생운동의 가능성〉, 《오늘의 교육》, 76(2024년 1·2월).[/ref]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느슨한 연대’는 결국 ‘어느 수준까지 느슨해질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방향성 상실의 ‘좌표 없음’과 근본적으로 구별되기 어렵다는 고민을 남긴다.

반드시 정치적이고 이론적인 완결된 체계와 단일한 대오를 갖추는 것만이 기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고려대 생도가 여러 의제에의 연대 활동을 통해 활발하게 보여 줬던 방향성을 마주침의 의미와 결합한다면 돌파구가 열리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연대 활동의 생도와 대관 사업의 생도가 굳이 구별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재고를 청하고 싶다. 앞으로 예정된 리모델링으로 당분간 공간을 떠나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는 생도의 활동에 응원을 보내며, 생도가 점유하고 있는 비어 있는 장소를 어떤 마주침으로 채워 나갈 것인지에 대한 대답을 기대한다.

 


운동으로서의 생활도서관

 

강석남
인터뷰를 마무리하기에 앞서 이전 인터뷰에서도 던졌던 공통 질문을 드리고자 한다. 고려대 생활도서관은 학생운동인가?

박민상
계속 언급하는 화두지만, 고려대 생도는 기존의 학생운동의 역사에서는 한 발짝 비켜 서 있는 게 맞다고 본다. 2010년대 단절을 선언하기도 했고. 그럼에도 다른 학생운동 단위나 학생운동에서 이어진 활동들과 결합하고 있고, 학생운동이라고 의심 없이 부르는 것들과 연결 지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학생이라는 정체성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새롭게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한다는 점에서 학생운동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더 어렵다. 우리는 학생운동이라고 생각하려고 하는 편이다.

황민용
학생운동이 맞다고 생각하면서 두 가지 단서를 달고 싶다. 첫째로 여기서 학생운동이란 지성인으로서의 학생운동이 아니라 생활인으로서의 학생운동이라는 점. 생활의 영역에서 운동을 하나의 생활의 요소로 생각하고, 연대를 하나의 삶의 방향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둘째로 생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생도를 모두 학생운동이라고 생각한다기보다는 어떤 삶의 터전이라고 생각한다는 점. 사실 오늘도 당장 고려대 본관 점거에 동참하고 오는 길이다.

임서연
생도를 하나의 단체로만 봤을 때 연대하여 참여하는 활동, 지지하는 의견들을 보면 학생운동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어렵다.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한편에서 생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학생운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목적을 공유하고 있다고 하기도 어렵다. 학생운동의 맥락은 있지만 황민용이 이야기한 것 같은 단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강석남
마지막으로 《오늘의 교육》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박민상
고려대 생도의 슬로건은 ‘읽고 소통하고 연대하는 생활도서관’이다. 독자 여러분도 읽고, 소통하고, 연대하셨으면 좋겠고 언제 어딘가에서는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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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