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사의 자격, 교사의 노동
야만적인 체제 속에 입은 상처를 직시하며
김현희
초등 교사
sickalien.earth@gmail.com
11년 차 교사.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저자.
딴지일보에서 SickAlien로 활동하고 있으며, 취미는 영화와 음악이다.
누구를 위한 싸움이었는지 모르겠다. 교육계를 한바탕 휩쓸고 간 ‘학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논란은 격렬한 다툼과 갈등 끝에 결국 한바탕 푸닥거리로 끝났다. 모든 학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즉각 전환하는 일은 처음부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논란이 시작될 무렵부터 소모적인 언쟁을 자제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학교 비정규직 고용을 묵인하고 방치한 교육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했다. 누구도 그 충고가 들리지 않는 듯했다.
학교 비정규직 중 특히 영어 회화 전문 강사와 스포츠 강사의 정규직 전환에 찬성하는 교사는 극히 드물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혹시 나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귀족 노동자’인가? 혹시 나는 교육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교사들을 무시하고, 순혈주의를 고집하는가? 기간제 교원들에 대한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가? 내 이해관계와 감정을 모두 배제하고 사회 정의만을 고려했을 때 무엇이 최선의 입장일까? 분리하고 해체하고 조립해 겨우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도 마음은 개운치 않았다. 격한 분노에 찬 교사들이 만든 의견 그룹이 있었다. “개나 소나 선생님 하려고 한다!” 그들이 내뱉은 말이 자꾸 귓가를 맴돌았다. 야만적이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참 야만적인 과정을 견뎌 가며 교사가 됐다.
교대, 임용 시험
교대 학생 시절 4년은 내 인생의 암흑기였다.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객관적으로는 좋은 일이 더 많았다. 친구들과 잘 어울렸고, 연애도 신나게 했고, 책과 음악에 빠져 살았다. 임용 시험도 원하는 지역에 지원해 한 번에 통과했다. 그래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도리 없이 우울하고 답답해진다. 영혼 파괴 시험, 하등 정신 능력 평가, 경쟁이 주입하는 독성을 빼낼 틈을 주지 않는 학교. 임용 시험과 교대 체제를 난 자주 이렇게 표현한다. 주위 환경과 임용 시험 자체 때문만은 아니다. 기억은 구성되기 마련이다.
한국인들은 학창 시절 한바탕 치열한 입시 경쟁을 치른다. 수능, 내신, 논술 고사, 면접 등 치러야 할 평가도 많다. 그중 내신 상대 평가는 학생들의 영혼 가장 깊숙한 곳을 할퀸다. 수능은 전국의 이름 모를 동급생들과 하는 경쟁임에 비해 내신은 옆자리에 앉은 친구 한 명 한 명을 밟고 올라서야 한다. 결이 다른 심리적 압박과 부작용을 초래한다.
보통 한국인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내신 상대 평가 압박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교대생들은 이 중압감을 4년간 다시, 좀 더 밀도 있게 겪는다. 물론 일반 대학생들도 학점 경쟁을 한다. 그런데 교대는 학점 내신 결과가 임용 시험 점수에 반영된다. 만약 내가 다니는 교대의 같은 학년 학생이 500명이라면, 4학년이 됐을 때 내 학점 평균이 500명 중 몇 등인지 정확한 등수가 나온다. 이를 10개 등급으로 자잘하게 나눠 임용 시험에 반영한다.
교대생들은 1학년 때부터 내신을 관리한다. 고등학교 성적이 상위권이 었던 학생들이 균질하게 모여 있어 경쟁은 더욱 미묘하고 치열하다.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한다고 늘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같은 과의 학생들 중 30%는 반드시 C 학점 이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03학번이다. 내가 시험을 보던 시기에 임용 선발 인원이 급격히 줄었다. 광역시를 지원하지 않거나 과락만 면하면 졸업생 누구나 교사가 될 수 있던 시절은 전설로만 남았다. 도 지역까지 선발 인원이 반 토막 났다. 절반은 반드시 불합격을 하는 구조였다. 3학년 때부터 눈치 전쟁이 시작되고, 불안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누구는 벌써 교육학을 한 번 다 훑었대”, “누구는 토익 가산점을 벌써 따 놨대”, “벌써 노량진에 고시원 예약해 놓은 애가 있대”.
불안과 공포는 시험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증폭된다. 교대 4학년 시기는 지뢰밭 같았다. 특히 여학생들 사이에 크고 작은 다툼과 기만들이 이어졌다. 스터디 모임을 조직할 때 서로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인지를 치밀하게 살피고 계산했다. 공부에 필요한 자료를 서로 숨기고, 사소한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왕왕 발생했다.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어이없는 다툼과 충돌은 모두 그 시기에 벌어졌다. 한번은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교육과정 내용으로 문제를 내 달라고 했다. 묻고 답하는 식으로 함께 공부를 하자는 거였다. 책을 보며 문제를 냈는데 그 친구가 다소 엉뚱한 대답을 했다. 평소 짓궂은 농담을 주고받던 사이라 장난을 쳤다. “아닌 거 같은데~ 아닌 거 같은데~”. 그 친구가 느닷없이 외쳤다. “내가 틀린 게 그렇게 좋아?” 말릴 틈도 없이 그 친구는 문을 벌컥 열고 뛰쳐나갔다. 지금은 서로 농담하듯 그때 일을 회상하지만 당시는 정말 심각했다. 4년간 쌓은 우정이 송두리째 흔들릴 뻔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친구가 어느 지역으로 임용을 볼지 마음을 정할 수 없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내가 물었다. “네 부모님 계신 집이 어딘데?” “○○”. “아, 그럼 ○○으로 쓰는 게 좋지 않아?” 그 친구는 정색하며 날 바라봤다. “왜 내게 그런 말을 해? 내가 ○○ 지역을 지원해야 네 경쟁자가 줄어들기 때문이지?” 당황스러워 대답을 못했다. 다들 평소 나보다 훨씬 심성이 곱고 친절한 친구들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때 일을 생각한다. “내가 틀린 게 그렇게 좋아?” “네 경쟁자를 줄이려고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처음에는 마냥 황당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문득 모르겠는 기분이 든다. 정말 내게 그런 의도가 조금도, 정말 조금도 없었는지. 그러고 보면 그 친구가 틀린 답을 말했을 때 조금 안심했었던 것 같다. 잠이 많고 게으른 나와 달리 늘 새벽같이 도서관으로 달려가는 그 친구를 보며 위기감을 느꼈으니까. 어느 지역을 지원할지 몰라 고민하는 친구에게 내가 지원할 지역은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던 것 같다. 경쟁자가 한 명이라도 줄길 바랐던 것 같기도. 또 어찌 보면 난 정말 아무 의도가 없었던 것 같기도 했다. 혼란스럽고, 부끄럽고, 우울했다. 억울하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임용 시험을 통과해 교사가 됐다. 아이들은 우리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1정 연수
교사가 되고 학생들 덕에 즐거운 일이 많았다. 내가 꽤 재능 있는 교사 같아 한동안 우쭐하기도 했다. 교사로서 자랑스러웠던 마음은 교직 4년 차에 ‘1정 연수(1급 정교사 자격 연수)’를 받으며 산산조각이 났다. 교사란 직업이 부끄러웠다. 교대 4학년 시기의 악몽도 부활했다.
4~5년 경력을 쌓은 교사들이 다시 깊이도, 체계도, 맥락도 없는 얄팍한 정보 나부랭이들에 밑줄 긋고, 별표를 쳐 가며 목을 매야 한다. 지엽적인 내용, 강사가 시험에 낼 듯 강조하는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폐쇄적인 스터디가 조직된다. 스터디 그룹 외부 사람들에게 정보를 차단한다. 자료를 숨긴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인다. 상대 평가에서 조금이라도 불리해지는 건 참을 수 없다. 지각하는 동료 교사가 있으면 장학사에게 알려 점수를 깎도록 하는 사람도 있다. 일부 교사들은 가산점을 받기 위해 반장 선거에 나간다. 선거 전에 공약 발표를 한다. 누구도 ‘우리 반을 위해 봉사하고 싶어서’라는 거짓말은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한다. “제가 꼭 승진을 해야 합니다”, “저희 학교 교장 선생님과 선배들이 꼭 반장이 되라고 하셨거든요”. 그 모습을 지켜보는 다른 교사들은 기분이 묘하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민망하지도 않은가. 문득 나도 저길 나갔어야 하나 싶어 질투도 느낀다. 연수 후 최종 점수는 학교 관리자들에게도 알려진다.(이건 왜 개인 정보권 침해가 아닌지 모르겠다.)
얼마 전 1정 연수를 마친 후배 교사의 말에 따르면 최근 상황도 전혀 다르지 않았다. 후배가 전해 준 이야기다. 한 교사가 몸이 아파 조퇴 신청을 하자 연수원 장학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 조퇴하는 거 교장 선생님도 알아요? 선생님 앞으로 승진 안 할 거예요?”
교육부와 교육청은 교사들에게 각종 선진적인 학습 방법과 평가를 계획하고 실행하도록 요구한다. 자기 성장 평가, 협력과 잠재 가능성을 이끌어 내는 평가도 권장한다. 학생을 대상으로 표준화된 평가, 순위를 매기는 평가는 지양하라고도 한다. 그러면서 교사들은 한국에서 가장 저급하고, 비인간적인 상대 평가의 노예로 만든다. 공동체를 파괴하고, 동료 교사를 밟고 넘어서도록 강요한다. 1정 연수뿐인가. 근무 평정, 차등 성과급 체제도 마찬가지다.
발버둥이라도 치자
이번 학교 비정규직 정규직 논란이 초래한 갈등은 분명 역대 정부들의 잘못이다. 전체 학교 교직원의 41%가 비정규직이 될 때까지 이 문제를 방관한 교육부에게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부가 졸속 전환 심의회를 열어 갈등을 조장하는 바람에 엉뚱한 주체들이 피해를 입었다. 현장 교사들 중 다수, 특히 전교조는 기간제 교원 정규직화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 와중에도 ‘귀족 노조’, ‘집단 이기주의’ 프레임으로 눙치는 언론 역시 비겁하다.
그럼에도 생각해 볼 문제는 남는다. 학교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반대한 교사들의 모든 주장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와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렇지만 그 행간은 여전히 병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었다. “억울하면 임용 시험 통과해라”, “개나 소나 다 선생님 하려고 한다”, “비정규직들이 떼쓰면 다 들어줘야 하는 거냐”. 기간제 교원들을 개와 소에 비유하는 그 야만성과 성마름은 분명 우리가 직시해야 할 상처다.
미국 심리학자 엘리어트 애런슨과 저드슨 밀스는 ‘엄청난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 내고 뭔가를 얻은 사람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같은 것을 획득한 사람보다 그것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어떻게 해서 얻은 자격인데……’라는 생각은 소속 집단을 과대평가하고,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느끼게 한다. 교사들이 대단한 엘리트거나,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이기적인 집단이라는 뜻은 아니다. 교사가 되기 위해 거쳤던 과정 속에서 우리가 구성한 경험을 한 번쯤 다른 관점으로 돌아보자는 말이다.
교원 임용 절차의 타당성과 신뢰성 문제는 익히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공허하고 야만적인 체제를 통과하며 입은 상처는 스스로 직시해야 한다. 죄 없는 사람,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인정하고 노력해도 완전히 치유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도 계속 발버둥쯤은 쳐야 하지 않나 싶다.
특집/ 교사의 자격, 교사의 노동
야만적인 체제 속에 입은 상처를 직시하며
김현희
초등 교사
sickalien.earth@gmail.com
11년 차 교사.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저자.
딴지일보에서 SickAlien로 활동하고 있으며, 취미는 영화와 음악이다.
누구를 위한 싸움이었는지 모르겠다. 교육계를 한바탕 휩쓸고 간 ‘학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논란은 격렬한 다툼과 갈등 끝에 결국 한바탕 푸닥거리로 끝났다. 모든 학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즉각 전환하는 일은 처음부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논란이 시작될 무렵부터 소모적인 언쟁을 자제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학교 비정규직 고용을 묵인하고 방치한 교육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했다. 누구도 그 충고가 들리지 않는 듯했다.
학교 비정규직 중 특히 영어 회화 전문 강사와 스포츠 강사의 정규직 전환에 찬성하는 교사는 극히 드물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혹시 나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귀족 노동자’인가? 혹시 나는 교육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교사들을 무시하고, 순혈주의를 고집하는가? 기간제 교원들에 대한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가? 내 이해관계와 감정을 모두 배제하고 사회 정의만을 고려했을 때 무엇이 최선의 입장일까? 분리하고 해체하고 조립해 겨우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도 마음은 개운치 않았다. 격한 분노에 찬 교사들이 만든 의견 그룹이 있었다. “개나 소나 선생님 하려고 한다!” 그들이 내뱉은 말이 자꾸 귓가를 맴돌았다. 야만적이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참 야만적인 과정을 견뎌 가며 교사가 됐다.
교대, 임용 시험
교대 학생 시절 4년은 내 인생의 암흑기였다.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객관적으로는 좋은 일이 더 많았다. 친구들과 잘 어울렸고, 연애도 신나게 했고, 책과 음악에 빠져 살았다. 임용 시험도 원하는 지역에 지원해 한 번에 통과했다. 그래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도리 없이 우울하고 답답해진다. 영혼 파괴 시험, 하등 정신 능력 평가, 경쟁이 주입하는 독성을 빼낼 틈을 주지 않는 학교. 임용 시험과 교대 체제를 난 자주 이렇게 표현한다. 주위 환경과 임용 시험 자체 때문만은 아니다. 기억은 구성되기 마련이다.
한국인들은 학창 시절 한바탕 치열한 입시 경쟁을 치른다. 수능, 내신, 논술 고사, 면접 등 치러야 할 평가도 많다. 그중 내신 상대 평가는 학생들의 영혼 가장 깊숙한 곳을 할퀸다. 수능은 전국의 이름 모를 동급생들과 하는 경쟁임에 비해 내신은 옆자리에 앉은 친구 한 명 한 명을 밟고 올라서야 한다. 결이 다른 심리적 압박과 부작용을 초래한다.
보통 한국인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내신 상대 평가 압박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교대생들은 이 중압감을 4년간 다시, 좀 더 밀도 있게 겪는다. 물론 일반 대학생들도 학점 경쟁을 한다. 그런데 교대는 학점 내신 결과가 임용 시험 점수에 반영된다. 만약 내가 다니는 교대의 같은 학년 학생이 500명이라면, 4학년이 됐을 때 내 학점 평균이 500명 중 몇 등인지 정확한 등수가 나온다. 이를 10개 등급으로 자잘하게 나눠 임용 시험에 반영한다.
교대생들은 1학년 때부터 내신을 관리한다. 고등학교 성적이 상위권이 었던 학생들이 균질하게 모여 있어 경쟁은 더욱 미묘하고 치열하다.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한다고 늘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같은 과의 학생들 중 30%는 반드시 C 학점 이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03학번이다. 내가 시험을 보던 시기에 임용 선발 인원이 급격히 줄었다. 광역시를 지원하지 않거나 과락만 면하면 졸업생 누구나 교사가 될 수 있던 시절은 전설로만 남았다. 도 지역까지 선발 인원이 반 토막 났다. 절반은 반드시 불합격을 하는 구조였다. 3학년 때부터 눈치 전쟁이 시작되고, 불안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누구는 벌써 교육학을 한 번 다 훑었대”, “누구는 토익 가산점을 벌써 따 놨대”, “벌써 노량진에 고시원 예약해 놓은 애가 있대”.
불안과 공포는 시험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증폭된다. 교대 4학년 시기는 지뢰밭 같았다. 특히 여학생들 사이에 크고 작은 다툼과 기만들이 이어졌다. 스터디 모임을 조직할 때 서로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인지를 치밀하게 살피고 계산했다. 공부에 필요한 자료를 서로 숨기고, 사소한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왕왕 발생했다.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어이없는 다툼과 충돌은 모두 그 시기에 벌어졌다. 한번은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교육과정 내용으로 문제를 내 달라고 했다. 묻고 답하는 식으로 함께 공부를 하자는 거였다. 책을 보며 문제를 냈는데 그 친구가 다소 엉뚱한 대답을 했다. 평소 짓궂은 농담을 주고받던 사이라 장난을 쳤다. “아닌 거 같은데~ 아닌 거 같은데~”. 그 친구가 느닷없이 외쳤다. “내가 틀린 게 그렇게 좋아?” 말릴 틈도 없이 그 친구는 문을 벌컥 열고 뛰쳐나갔다. 지금은 서로 농담하듯 그때 일을 회상하지만 당시는 정말 심각했다. 4년간 쌓은 우정이 송두리째 흔들릴 뻔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친구가 어느 지역으로 임용을 볼지 마음을 정할 수 없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내가 물었다. “네 부모님 계신 집이 어딘데?” “○○”. “아, 그럼 ○○으로 쓰는 게 좋지 않아?” 그 친구는 정색하며 날 바라봤다. “왜 내게 그런 말을 해? 내가 ○○ 지역을 지원해야 네 경쟁자가 줄어들기 때문이지?” 당황스러워 대답을 못했다. 다들 평소 나보다 훨씬 심성이 곱고 친절한 친구들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때 일을 생각한다. “내가 틀린 게 그렇게 좋아?” “네 경쟁자를 줄이려고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처음에는 마냥 황당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문득 모르겠는 기분이 든다. 정말 내게 그런 의도가 조금도, 정말 조금도 없었는지. 그러고 보면 그 친구가 틀린 답을 말했을 때 조금 안심했었던 것 같다. 잠이 많고 게으른 나와 달리 늘 새벽같이 도서관으로 달려가는 그 친구를 보며 위기감을 느꼈으니까. 어느 지역을 지원할지 몰라 고민하는 친구에게 내가 지원할 지역은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던 것 같다. 경쟁자가 한 명이라도 줄길 바랐던 것 같기도. 또 어찌 보면 난 정말 아무 의도가 없었던 것 같기도 했다. 혼란스럽고, 부끄럽고, 우울했다. 억울하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임용 시험을 통과해 교사가 됐다. 아이들은 우리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1정 연수
교사가 되고 학생들 덕에 즐거운 일이 많았다. 내가 꽤 재능 있는 교사 같아 한동안 우쭐하기도 했다. 교사로서 자랑스러웠던 마음은 교직 4년 차에 ‘1정 연수(1급 정교사 자격 연수)’를 받으며 산산조각이 났다. 교사란 직업이 부끄러웠다. 교대 4학년 시기의 악몽도 부활했다.
4~5년 경력을 쌓은 교사들이 다시 깊이도, 체계도, 맥락도 없는 얄팍한 정보 나부랭이들에 밑줄 긋고, 별표를 쳐 가며 목을 매야 한다. 지엽적인 내용, 강사가 시험에 낼 듯 강조하는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폐쇄적인 스터디가 조직된다. 스터디 그룹 외부 사람들에게 정보를 차단한다. 자료를 숨긴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인다. 상대 평가에서 조금이라도 불리해지는 건 참을 수 없다. 지각하는 동료 교사가 있으면 장학사에게 알려 점수를 깎도록 하는 사람도 있다. 일부 교사들은 가산점을 받기 위해 반장 선거에 나간다. 선거 전에 공약 발표를 한다. 누구도 ‘우리 반을 위해 봉사하고 싶어서’라는 거짓말은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한다. “제가 꼭 승진을 해야 합니다”, “저희 학교 교장 선생님과 선배들이 꼭 반장이 되라고 하셨거든요”. 그 모습을 지켜보는 다른 교사들은 기분이 묘하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민망하지도 않은가. 문득 나도 저길 나갔어야 하나 싶어 질투도 느낀다. 연수 후 최종 점수는 학교 관리자들에게도 알려진다.(이건 왜 개인 정보권 침해가 아닌지 모르겠다.)
얼마 전 1정 연수를 마친 후배 교사의 말에 따르면 최근 상황도 전혀 다르지 않았다. 후배가 전해 준 이야기다. 한 교사가 몸이 아파 조퇴 신청을 하자 연수원 장학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 조퇴하는 거 교장 선생님도 알아요? 선생님 앞으로 승진 안 할 거예요?”
교육부와 교육청은 교사들에게 각종 선진적인 학습 방법과 평가를 계획하고 실행하도록 요구한다. 자기 성장 평가, 협력과 잠재 가능성을 이끌어 내는 평가도 권장한다. 학생을 대상으로 표준화된 평가, 순위를 매기는 평가는 지양하라고도 한다. 그러면서 교사들은 한국에서 가장 저급하고, 비인간적인 상대 평가의 노예로 만든다. 공동체를 파괴하고, 동료 교사를 밟고 넘어서도록 강요한다. 1정 연수뿐인가. 근무 평정, 차등 성과급 체제도 마찬가지다.
발버둥이라도 치자
이번 학교 비정규직 정규직 논란이 초래한 갈등은 분명 역대 정부들의 잘못이다. 전체 학교 교직원의 41%가 비정규직이 될 때까지 이 문제를 방관한 교육부에게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부가 졸속 전환 심의회를 열어 갈등을 조장하는 바람에 엉뚱한 주체들이 피해를 입었다. 현장 교사들 중 다수, 특히 전교조는 기간제 교원 정규직화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 와중에도 ‘귀족 노조’, ‘집단 이기주의’ 프레임으로 눙치는 언론 역시 비겁하다.
그럼에도 생각해 볼 문제는 남는다. 학교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반대한 교사들의 모든 주장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와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렇지만 그 행간은 여전히 병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었다. “억울하면 임용 시험 통과해라”, “개나 소나 다 선생님 하려고 한다”, “비정규직들이 떼쓰면 다 들어줘야 하는 거냐”. 기간제 교원들을 개와 소에 비유하는 그 야만성과 성마름은 분명 우리가 직시해야 할 상처다.
미국 심리학자 엘리어트 애런슨과 저드슨 밀스는 ‘엄청난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 내고 뭔가를 얻은 사람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같은 것을 획득한 사람보다 그것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어떻게 해서 얻은 자격인데……’라는 생각은 소속 집단을 과대평가하고,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느끼게 한다. 교사들이 대단한 엘리트거나,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이기적인 집단이라는 뜻은 아니다. 교사가 되기 위해 거쳤던 과정 속에서 우리가 구성한 경험을 한 번쯤 다른 관점으로 돌아보자는 말이다.
교원 임용 절차의 타당성과 신뢰성 문제는 익히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공허하고 야만적인 체제를 통과하며 입은 상처는 스스로 직시해야 한다. 죄 없는 사람,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인정하고 노력해도 완전히 치유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도 계속 발버둥쯤은 쳐야 하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