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사역사학의 영향력과 위험성
이문영
역사 작가
orumi@paran.com
서강대학교 사학과 졸업. 출판사 편집 주간으로 근무하며 주로 역사와 관련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색깔을 훔치는 마녀》, 《이야기보따리 조선 시대》, 《사마천, 아웃사이더가 되다》, 역사 소설 《신라 탐정 용담》, 《취리산》 등과 역사 비평서 《만들어진 한국사》, 청소년 소설 작법서 《누구에게나 이야기는 있다》 등을 냈다.
‘환빠’라는 말을 들어 봤나요?
‘환빠’라는 말이 있다. 인터넷에서는 오래전부터 사용되었지만 일반인에게 알려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환빠’는 ‘《환단고기》 추종자’를 가리키는 속어다. ‘빠’는 본래 아이돌 연예인을 쫓아다니는 여자들을 낮잡아 부른 말에서 유래했다. 여자 팬들이 연예인을 ‘오빠’라고 부른다고 해서, ‘공순이’처럼 여자를 낮잡아 보는 ‘순이’라는 표현을 붙여서 ‘빠순이’라는 말이 생겼다. 그리고 ‘빠순이’로부터 특정 현상을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빠’라는 말이 나타났다. 그래서 《환단고기》를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사람을 가리켜 ‘환빠’라고 부른다.
《환단고기》는 한민족의 고대사를 비밀리에 전해 온 역사책이라고 주장 하는 가짜 역사책(위서僞書)이다. 위서, 즉 가짜 역사책이라는 건 뭘까?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막 적혀 있는 책을 위서라고 부르는 걸까? 《삼국사기》를 보면 알에서 사람이 나오는가 하면, 용이 사람을 낳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가 실제일 리가 없다. 그렇다면 《삼국사기》는 위서가 되는 걸까? 물론 그렇지 않다. 옛날 사람들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도 역사책에 기록해 놓았다. 그런 이야기들이 적혀 있다고 위서가 되지는 않는다.
위서는 시대를 거슬러 만들어진 위조 사서를 가리킨다. 《환단고기》는 신라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 사람이 지은 책들을 묶어 놓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짜 그 시대에 만들어진 책들이 아니다. 이 책은 현대에 만들어졌다.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고대의 인물들이 만든 책이라고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환단고기》의 소유자였던 이유립은 북한 출신으로 해방 후에 빈 몸으로 남하했다. 그러니 설령 집안에 비전의 책이 있었다 해도 그것을 가져올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1970년대가 되어서 갑자기 자신이 해방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면서 《환단고기》를 꺼내들었으니 이것이 위서가 아닐 도리가 없다. 사료의 내·외적 비판을 통해 봤을 때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것은 수다한 논문과 책자에 의해 증명된 바 있다.➊
➊ 자세한 것은 《역사비평》 2017년 봄호(통권 118호) 특집 ‘위사와 위서’에 실린 〈환단고기의 성립 배경과 기원〉(이문영), 〈위서를 말하다〉(박지현) 등을 참조.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고 위서가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믿을 수 있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고 신뢰할 수 있는 사서가 되는 것도 아니다. 《환단고기》는 1970년대까지 알려진 여러 가지 사료들을 참조하여 담고 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이 들어 있는 책이므로 믿을 수 있는 사서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 안에 민족주의적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들을 양념처럼 뿌려 놓는다. 우리 민족이 드넓은 영토를 소유하고 중국, 일본, 여진 등을 모두 지배했다는 망상을 집어넣은 것이다. ‘우리 역사는 왜 이렇게 못났는가’라고 생각하고, 중국과 일본한테 침략이나 당하고 결국은 식민지가 되어 버린 못난 역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이 웅장한 가짜 역사에 혹하게 된다. 그리하여 《환단고기》에 푹 빠진 추종자, 즉 ‘환빠’가 되는 것이다.
《환단고기》는 1979년에 한문본이 출판되었지만 당시에는 아무 반응을 일으키지 못했다. 《환단고기》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1986년에 《한단고기》라는 이름으로 한글 번역본이 처음 나왔을 때였다.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은 임승국이었다. 《환단고기》를 위조한 이유립과는 ‘국사찾기협의회’라는 같은 단체에 속했던 사람이다. 두 사람 다 5.16 쿠데타에 동참했던 박창암이 발간한 월간지 《자유》를 기반으로 활동했다.
‘국사찾기협의회’는 당시 국정 교과서였던 국사 교과서가 식민사관을 담고 있고 좌경화되어 있다고 공격하면서 국수주의적 역사관으로 국사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한다고 주장하던 단체였다. 이들 멤버는 국회의 정치인들을 동원할 수 있을 만큼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여, 이들에 의해 1981년에는 국회에서 국사 교과서를 놓고 공청회가 열렸다. 이들을 이끈 수장은 바로 초대 문교부 장관이었던 안호상이었다. 안호상은 이승만 독재 철학인 ‘일민주의’를 만든 사람이고 학원의 병영화를 꾀해 학도 호국단을 만든 장본인이었다. 임승국과 안호상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이자 국수주의자였다. 이들은 극우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별로 숨기지도 않았다. 임승국은 국회에서 히틀러의 발언을 인용하여 훈계를 늘어놓기도 했다. 그는 전두환에게 아첨을 떨며 국사 교과서 개정을 꾀했다.
역사학처럼 굴지만 역사학이 아닌 것
《환단고기》가 등장하기 전에도 국사찾기협의회 회원들은 위대한 한민족의 역사를 떠벌리고 있었다. 사실 《환단고기》는 이런 이야기들을 집대성한 책일 뿐이다. 이들은 《환단고기》 등장 이전의 사람들이니까 ‘환빠’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환빠’라는 말은 그 탄생부터 여성 비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런 말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역사학은 고증과 비판의 학문이다. 그러나 위대한 한민족의 역사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가치와 신념에 의해 주장을 펼친다. 자신들의 가치와 신념에 맞는 증거만을 채택하고 그렇지 않은 증거는 기각한다. 그들에게 자신의 믿음에 어긋나는 증거는 잘못된 것이거나 음모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민족을 위해서 유리한 증거를 거론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고 다른 나라도 다 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마치 역사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의 신념을 떠드는 사람을 가리켜 ‘유사역사가’라고 하고, 이들의 활동을 ‘유사역사학’이라고 말한다. 학자에 따라서는 ‘사이비역사학’이라는 말을 더 선호하기도 한다. 같은 뜻이다.
유사역사가들은 스스로를 가리켜 ‘재야 사학자’라고 불러 왔는데, 그것은 본래 대학과 학계 밖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명칭을 통해 1970년대로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동안 독재 정권과 싸워 온 ‘재야’ 인사들의 이미지를 차용함으로써 이들은 부도덕한 집단과 싸우는 투사의 이미지를 공짜로 얻어 낼 수 있었다. 그들이 맞서는 ‘부도덕한 집단’은 대학 강단에 서는 역사학자들이었고. 유사역사가들은 역사학자들을 ‘재야 사학자’와 대비하여 ‘강단 사학자’라 불렀다. 이렇게 대립 구도를 그림으로써 이들은 스스로의 세력을 터무니없이 과장할 수 있었다.
〈나는 부정한다〉라는 영화가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 영화의 시청을 적극 권유한다. 이 영화는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유사역사가와 법정 투쟁을 벌인 미국인 역사가 데보라 립스타드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립스타드는 유사역사가와 논쟁을 벌이는 일을 극구 사양한다. 그 이유는 역사학자가 이런 사이비와 논쟁을 벌이면 대중은 그 둘이 대등한 의미를 가지고 대립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점을 노리고 우리나라의 유사역사가들도 끊임없이 학자들과의 논쟁을 요구한다. 학문적 방법론으로 공부하지도 주장하지도 않는 사람과 학문적 방법론으로 연구하고 주장하는 사람들 간에는 논쟁이 성립할 수가 없다.
어떻게 극우의 이념이 좌파에도 넘어왔나
국내 유사역사학의 대부분을 일군 것은 문정창이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일제 강점기 때 고위직 공무원을 한 친일파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유사역사학에 이런 친일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아는 이가 별로 없다. 오히려 유사역사가들이 역사학계를 가리켜 “친일파의 후예들”이라고 맹공을 가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연유가 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1986년에 《한단고기》가 나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1년 전에는 역시 민족주의적 감성을 자극하는 《단》(김정빈 씀, 정신세계사)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였다. 이런 책들이 먹혀들 수 있는 토양은 박정희가 깔아 놓았던 민족주의 중심의 교육이었다. 유신 체제도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선전되던 시대였다. 학생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 했다. ‘국민학교’ 시절, 이걸 다 외우지 못하면 하교를 할 수 없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도 애국가가 나왔다. 그때는 물론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저녁 6시가 되면 전 국민이 국기 하강식에 흘러나오는 애국가가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차렷 자세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며 서 있어야 했 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민족에 대한 ‘세뇌’가 벌어지던 시대였다. 그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민족’에 대해서 들었지만 정작 실제 역사는 그런 세뇌에 상응할 만한 것을 제공하지 못했다. 고구려가 조금 튀는 듯했지만 곧 신라의 ‘배신’으로 멸망했고 발해는 흐지부지 사라져 버렸다. 그런 뒤에는 반도에 갇혀 살던 나라가 결국은 야만스런 일본에 먹혀 버렸다. 이렇게 못마땅한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니!
이런 사람들에게 《단》은 자부심을 가져다주었다. 초능력을 지닌 선인! 통일 한국의 밝은 미래 예언! 그리고 이런 자부심에 부응하는 가짜 역사가 《환단고기》에 실려 등장했다. 이미 민족주의에 경도되어 있던 세대는 순식간에 《환단고기》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우리 민족의 위대한 역사를 왜곡하고 숨겨 온 집요한 세력이 있다. 친일파, 그들은 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진실을 숨겨 왔다.’
피가 뜨겁고 순수한 사람일수록 더 쉽게 이 판타지 세계에 빠져들었다. 친일파에 뿌리를 둔 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고 사람들을 세뇌하고 있다는 것이 1980년대 운동권의 논리 중 하나였다. 의식화 공부라는 것은 그런 기득권들이 보여 준 세계관을 벗어 버리는 길이었다. 역사학에 대해서도 이 논리를 끼워 넣기가 아주 쉬웠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 온 역사는 기득권이 보여 준 것이고 기득권의 논리에 맞춰진 것이다. 그들이 숨긴 진실을 이제 보여 주겠다. 이리 와서 《환단고기》를 보라!
사실 ‘이리 와서 《환단고기》를 보라’는 말만 빼면 아주 틀린 것도 아니었다. 1980년대는 아직 역사학 연구에서도 미진한 부분이 많았고 기득권을 옹호하는 방식의 왕조 중심, 지배자 중심의 역사 공부를 하던 것도 일정 부분 사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답이 가짜 역사에 있을 수는 없다. 많은 이들이 《환단고기》의 뿌리를 알지 못한 채 《환단고기》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본래 극우의 논리였던 유사역사학은 훨씬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이른바 진보 언론이라고 하는 〈한겨레〉, 〈경향신문〉, 〈프레시안〉과 같은 신문들에서 유사역사가들이 지면을 확보하고 대중 선전·선동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사회 풍토 속에서 유사역사학은 정치 이념과 진영을 넘어 우리 사회에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이다.
권력을 탐하는 유사역사학
인터넷에서 주로 쓰이던 ‘환빠’라는 말은 2016년에 갑자기 언론 지면에 많이 등장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한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환빠’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그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련이 있다.
2013년 8.15 경축사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고려 말의 대학자 이암 선생은 ‘나라는 인간에 있어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고 하셨습니다”라 고 말했다. 이암은 《환단고기》를 감수했다는 인물(이것은 《환단고기》에 실린 주장일 뿐이다)이며 해당 인용구는 《환단고기》 <단군세기> 서문에 나오는 구절이다. 대통령의 경축사에 《환단고기》가 인용된 것이다. 정권의 핵심 에 유사역사학 추종자가 있지 않고서는 있기 힘든 일이다. 더구나 당시 여당 국회의원이었던 정문헌은 ‘으라차차 치우천황’과 같은 유사역사학 주장이나 심지어는 ‘신라는 한반도에 없었다’는 터무니없는 주제의 모임에서 축사를 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이런 주장은 우파 정당에서만 오가는 것이 아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불거진, 전교조 교사 출신인 도종환 의원의 경우이다. 도종환 의원의 역사관에는 문제가 있다는 말이 일찌감치 많이 있었다. 2015년 3~4월에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에서 동북아 역사 지도 사업을 점검했고 이때 도종환을 비롯한 다수 국회의원들이 유사역사학적 시각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 결과 동북아 역사 지도 편찬 사업은 폐기되어 버렸고 수년에 걸쳐서 역사학계의 역량이 투입된 결과물은 내놓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당시 국회 회의록에 기록된 도종환 의원의 발언을 읽어 보면 낙랑군에 관한 유사역사학의 주장을 옮기거나 ‘재야 사학자들의 주장을 귀를 열고 받아들이라’고 하는 등 유사역사학의 영향을 받았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도종환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에 지명되자 역사학계 일각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인터넷에서는 ‘환빠는 안 된다’는 말까지 나왔다. 도종환 의원은 ‘《환단고기》를 본 적도 없다’는 말로 맞섰다. 하지만 《자본론》을 읽지 않은 사회주의자도 얼마든지 있는 법이며 《국부론》을 읽어야 자본주의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이미 ‘환빠’라는 말은 아이스크림콘을 대표하는 ‘부라보콘’처럼 ‘유사역사학 추종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환단고기》만이 유사역사학은 아니나 ‘유사역사학 추종자’를 가리키는 인터넷의 속어가 ‘환빠’로 대표되는 것이다. 즉 도종환 의원에 대한 우려는 역사 인식의 문제를 제기한 것인데, 이를 《환단고기》를 보았는지 보지 않았는지로 가를 필요는 전혀 없다. 다행히도 도종환 장관은 청문회에서 역사학에 정치 권력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권력은 언제나 감시되어야 하겠지만, 도종환 장관의 경우는 더욱 날카로운 눈으로 그 행보를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역사학계가 우려한 것과 대조적으로 유사역사학 추종 세력들은 도종환의 장관 내정에 일제히 환영의 발언을 내놓았다. 유사역사학 쪽에서 도종환 장관을 환영한 것은 물론 도 장관이 자기네 편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제나 권력을 탐한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만 해도 위대한 고대사를 만들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유사역사학의 대표 주자인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심지어 국정 교과서 반대 강연에 나와서 강연 시간 거의 대부분을 역사학계가 식민사학을 따르고 있다고 비난하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이들은 결국 정치권과 뉴라이트 세력까지 동원해서 역사학자들의 역량을 끌어 모아 제작한 동북아 역사 지도를 좌초시켰다. 이런 지도가 만들어지면 자신들의 설 자리가 좁아질 것이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방해 공작을 펼친 것이다. 덕분에 세계에 자랑할 만한 최첨단 기술로 만들어지던 지도 제작이 물거품이 되었다. 이덕일은 자기에게 맡기면 훨씬 더 잘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유사역사학의 위험성
유사역사가는 획일적으로 민족이라는 집단을 최우선하는 쇼비니즘의 소유자들이다. 인도에서는 이런 유사역사학을 정체성으로 하는 인도인민당이 집권을 한 뒤 2002년에 구자라트 폭동이 일어났고 2천여 명의 이슬람교도들이 죽임을 당했다. 이런 일로부터도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 ‘민족’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진보 성향의 언론 매체들도 지난 10여 년간 이런 쇼비니즘을 선전하는 데 열을 올렸다는 사실은 차마 믿기 힘들 정도이다. 언론 매체 외에도 유사역사학의 영향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전 행자부 장관 허성관은 유사역사학 단체인 ‘미래로가는바른역사협의회(미사협)’의 공동 의장이다. 전 금융감독원 원장 김석동은 기자들을 불러 모아 놓고 ‘역사’ 강의를 하며 쇼비니즘 역 사관을 선전한 바 있다. 전 한국천문연구원 원장 박석재는 《환단고기》에 기초한 소설을 발매하기도 했다. 이렇듯 사회 지도층 곳곳에 유사역사학은 스며들어 있다. 유사역사가들은 특히 정치권에 접근하고자 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1981년의 국사 교과서 공청회 이후에 국사 교과서 개정 등에 자신들의 입김을 불어넣는 데 성공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이에 앞장섰던 언론도 〈조선일보〉였는데, 작년에 유사역사학 비판을 위해 개설되었던 한국고대사학회의 시민 강좌를 가장 열성적으로 보도한 언론도 〈조선일보〉였다. 이는 오늘날 유사역사학 문제에서 좌우가 역전된 상황을 보여 준다. 다행히 올해 들어 《한겨레21》에서 유사역사학을 본격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한 점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 하겠다.
자국, 자민족을 우선시하는 움직임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21세기임에도 이런 움직임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우리는 우등 민족이고 너희는 열등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한 갈등을 멈출 방법은 없다. 유사역사학은 민족의 자부심을 기른다는 미명 아래 중국과 일본에 대한 증오를 키우고 있고, 동남아 국가들은 아예 불가촉천민처럼 다룬다. 인류가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자유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이상을 실현하는데 유사역사학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이들이 권력에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불안한 세계로 한 걸음씩 가까워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교육계에서도 유사역사학에 대한 경계심이 더 필요하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그 대상을 사랑하는 일과 비슷하다. 그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면 그 나라를 사랑하게 되고, 한 시대의 역사를 공부하면 한 시대를 사랑하게 된다. 유사역사학이 역사와 완전히 다른 지점도 그 점에 있다. 그들은 중국과 일본을 미워하기 위해 역사를 이용한다. 조지 오웰의 걸작 《1984》를 보면 ‘증오의 시간’이라는 것이 나온다. 맹렬한 증오를 터뜨리는 시간이다. 그렇게 현실의 불만을 쏟아 버리게 하는 것이다. 유사역사학이 주는 증오의 감정도 이와 같다. 이런 맹목적인 증오가 동북아의 평화에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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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의 영향력과 위험성
이문영
역사 작가
orumi@paran.com
서강대학교 사학과 졸업. 출판사 편집 주간으로 근무하며 주로 역사와 관련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색깔을 훔치는 마녀》, 《이야기보따리 조선 시대》, 《사마천, 아웃사이더가 되다》, 역사 소설 《신라 탐정 용담》, 《취리산》 등과 역사 비평서 《만들어진 한국사》, 청소년 소설 작법서 《누구에게나 이야기는 있다》 등을 냈다.
‘환빠’라는 말을 들어 봤나요?
‘환빠’라는 말이 있다. 인터넷에서는 오래전부터 사용되었지만 일반인에게 알려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환빠’는 ‘《환단고기》 추종자’를 가리키는 속어다. ‘빠’는 본래 아이돌 연예인을 쫓아다니는 여자들을 낮잡아 부른 말에서 유래했다. 여자 팬들이 연예인을 ‘오빠’라고 부른다고 해서, ‘공순이’처럼 여자를 낮잡아 보는 ‘순이’라는 표현을 붙여서 ‘빠순이’라는 말이 생겼다. 그리고 ‘빠순이’로부터 특정 현상을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빠’라는 말이 나타났다. 그래서 《환단고기》를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사람을 가리켜 ‘환빠’라고 부른다.
《환단고기》는 한민족의 고대사를 비밀리에 전해 온 역사책이라고 주장 하는 가짜 역사책(위서僞書)이다. 위서, 즉 가짜 역사책이라는 건 뭘까?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막 적혀 있는 책을 위서라고 부르는 걸까? 《삼국사기》를 보면 알에서 사람이 나오는가 하면, 용이 사람을 낳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가 실제일 리가 없다. 그렇다면 《삼국사기》는 위서가 되는 걸까? 물론 그렇지 않다. 옛날 사람들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도 역사책에 기록해 놓았다. 그런 이야기들이 적혀 있다고 위서가 되지는 않는다.
위서는 시대를 거슬러 만들어진 위조 사서를 가리킨다. 《환단고기》는 신라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 사람이 지은 책들을 묶어 놓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짜 그 시대에 만들어진 책들이 아니다. 이 책은 현대에 만들어졌다.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고대의 인물들이 만든 책이라고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환단고기》의 소유자였던 이유립은 북한 출신으로 해방 후에 빈 몸으로 남하했다. 그러니 설령 집안에 비전의 책이 있었다 해도 그것을 가져올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1970년대가 되어서 갑자기 자신이 해방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면서 《환단고기》를 꺼내들었으니 이것이 위서가 아닐 도리가 없다. 사료의 내·외적 비판을 통해 봤을 때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것은 수다한 논문과 책자에 의해 증명된 바 있다.➊
➊ 자세한 것은 《역사비평》 2017년 봄호(통권 118호) 특집 ‘위사와 위서’에 실린 〈환단고기의 성립 배경과 기원〉(이문영), 〈위서를 말하다〉(박지현) 등을 참조.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고 위서가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믿을 수 있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고 신뢰할 수 있는 사서가 되는 것도 아니다. 《환단고기》는 1970년대까지 알려진 여러 가지 사료들을 참조하여 담고 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이 들어 있는 책이므로 믿을 수 있는 사서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 안에 민족주의적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들을 양념처럼 뿌려 놓는다. 우리 민족이 드넓은 영토를 소유하고 중국, 일본, 여진 등을 모두 지배했다는 망상을 집어넣은 것이다. ‘우리 역사는 왜 이렇게 못났는가’라고 생각하고, 중국과 일본한테 침략이나 당하고 결국은 식민지가 되어 버린 못난 역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이 웅장한 가짜 역사에 혹하게 된다. 그리하여 《환단고기》에 푹 빠진 추종자, 즉 ‘환빠’가 되는 것이다.
《환단고기》는 1979년에 한문본이 출판되었지만 당시에는 아무 반응을 일으키지 못했다. 《환단고기》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1986년에 《한단고기》라는 이름으로 한글 번역본이 처음 나왔을 때였다.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은 임승국이었다. 《환단고기》를 위조한 이유립과는 ‘국사찾기협의회’라는 같은 단체에 속했던 사람이다. 두 사람 다 5.16 쿠데타에 동참했던 박창암이 발간한 월간지 《자유》를 기반으로 활동했다.
‘국사찾기협의회’는 당시 국정 교과서였던 국사 교과서가 식민사관을 담고 있고 좌경화되어 있다고 공격하면서 국수주의적 역사관으로 국사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한다고 주장하던 단체였다. 이들 멤버는 국회의 정치인들을 동원할 수 있을 만큼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여, 이들에 의해 1981년에는 국회에서 국사 교과서를 놓고 공청회가 열렸다. 이들을 이끈 수장은 바로 초대 문교부 장관이었던 안호상이었다. 안호상은 이승만 독재 철학인 ‘일민주의’를 만든 사람이고 학원의 병영화를 꾀해 학도 호국단을 만든 장본인이었다. 임승국과 안호상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이자 국수주의자였다. 이들은 극우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별로 숨기지도 않았다. 임승국은 국회에서 히틀러의 발언을 인용하여 훈계를 늘어놓기도 했다. 그는 전두환에게 아첨을 떨며 국사 교과서 개정을 꾀했다.
역사학처럼 굴지만 역사학이 아닌 것
《환단고기》가 등장하기 전에도 국사찾기협의회 회원들은 위대한 한민족의 역사를 떠벌리고 있었다. 사실 《환단고기》는 이런 이야기들을 집대성한 책일 뿐이다. 이들은 《환단고기》 등장 이전의 사람들이니까 ‘환빠’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환빠’라는 말은 그 탄생부터 여성 비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런 말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역사학은 고증과 비판의 학문이다. 그러나 위대한 한민족의 역사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가치와 신념에 의해 주장을 펼친다. 자신들의 가치와 신념에 맞는 증거만을 채택하고 그렇지 않은 증거는 기각한다. 그들에게 자신의 믿음에 어긋나는 증거는 잘못된 것이거나 음모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민족을 위해서 유리한 증거를 거론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고 다른 나라도 다 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마치 역사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의 신념을 떠드는 사람을 가리켜 ‘유사역사가’라고 하고, 이들의 활동을 ‘유사역사학’이라고 말한다. 학자에 따라서는 ‘사이비역사학’이라는 말을 더 선호하기도 한다. 같은 뜻이다.
유사역사가들은 스스로를 가리켜 ‘재야 사학자’라고 불러 왔는데, 그것은 본래 대학과 학계 밖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명칭을 통해 1970년대로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동안 독재 정권과 싸워 온 ‘재야’ 인사들의 이미지를 차용함으로써 이들은 부도덕한 집단과 싸우는 투사의 이미지를 공짜로 얻어 낼 수 있었다. 그들이 맞서는 ‘부도덕한 집단’은 대학 강단에 서는 역사학자들이었고. 유사역사가들은 역사학자들을 ‘재야 사학자’와 대비하여 ‘강단 사학자’라 불렀다. 이렇게 대립 구도를 그림으로써 이들은 스스로의 세력을 터무니없이 과장할 수 있었다.
〈나는 부정한다〉라는 영화가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 영화의 시청을 적극 권유한다. 이 영화는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유사역사가와 법정 투쟁을 벌인 미국인 역사가 데보라 립스타드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립스타드는 유사역사가와 논쟁을 벌이는 일을 극구 사양한다. 그 이유는 역사학자가 이런 사이비와 논쟁을 벌이면 대중은 그 둘이 대등한 의미를 가지고 대립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점을 노리고 우리나라의 유사역사가들도 끊임없이 학자들과의 논쟁을 요구한다. 학문적 방법론으로 공부하지도 주장하지도 않는 사람과 학문적 방법론으로 연구하고 주장하는 사람들 간에는 논쟁이 성립할 수가 없다.
어떻게 극우의 이념이 좌파에도 넘어왔나
국내 유사역사학의 대부분을 일군 것은 문정창이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일제 강점기 때 고위직 공무원을 한 친일파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유사역사학에 이런 친일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아는 이가 별로 없다. 오히려 유사역사가들이 역사학계를 가리켜 “친일파의 후예들”이라고 맹공을 가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연유가 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1986년에 《한단고기》가 나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1년 전에는 역시 민족주의적 감성을 자극하는 《단》(김정빈 씀, 정신세계사)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였다. 이런 책들이 먹혀들 수 있는 토양은 박정희가 깔아 놓았던 민족주의 중심의 교육이었다. 유신 체제도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선전되던 시대였다. 학생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 했다. ‘국민학교’ 시절, 이걸 다 외우지 못하면 하교를 할 수 없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도 애국가가 나왔다. 그때는 물론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저녁 6시가 되면 전 국민이 국기 하강식에 흘러나오는 애국가가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차렷 자세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며 서 있어야 했 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민족에 대한 ‘세뇌’가 벌어지던 시대였다. 그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민족’에 대해서 들었지만 정작 실제 역사는 그런 세뇌에 상응할 만한 것을 제공하지 못했다. 고구려가 조금 튀는 듯했지만 곧 신라의 ‘배신’으로 멸망했고 발해는 흐지부지 사라져 버렸다. 그런 뒤에는 반도에 갇혀 살던 나라가 결국은 야만스런 일본에 먹혀 버렸다. 이렇게 못마땅한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니!
이런 사람들에게 《단》은 자부심을 가져다주었다. 초능력을 지닌 선인! 통일 한국의 밝은 미래 예언! 그리고 이런 자부심에 부응하는 가짜 역사가 《환단고기》에 실려 등장했다. 이미 민족주의에 경도되어 있던 세대는 순식간에 《환단고기》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우리 민족의 위대한 역사를 왜곡하고 숨겨 온 집요한 세력이 있다. 친일파, 그들은 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진실을 숨겨 왔다.’
피가 뜨겁고 순수한 사람일수록 더 쉽게 이 판타지 세계에 빠져들었다. 친일파에 뿌리를 둔 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고 사람들을 세뇌하고 있다는 것이 1980년대 운동권의 논리 중 하나였다. 의식화 공부라는 것은 그런 기득권들이 보여 준 세계관을 벗어 버리는 길이었다. 역사학에 대해서도 이 논리를 끼워 넣기가 아주 쉬웠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 온 역사는 기득권이 보여 준 것이고 기득권의 논리에 맞춰진 것이다. 그들이 숨긴 진실을 이제 보여 주겠다. 이리 와서 《환단고기》를 보라!
사실 ‘이리 와서 《환단고기》를 보라’는 말만 빼면 아주 틀린 것도 아니었다. 1980년대는 아직 역사학 연구에서도 미진한 부분이 많았고 기득권을 옹호하는 방식의 왕조 중심, 지배자 중심의 역사 공부를 하던 것도 일정 부분 사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답이 가짜 역사에 있을 수는 없다. 많은 이들이 《환단고기》의 뿌리를 알지 못한 채 《환단고기》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본래 극우의 논리였던 유사역사학은 훨씬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이른바 진보 언론이라고 하는 〈한겨레〉, 〈경향신문〉, 〈프레시안〉과 같은 신문들에서 유사역사가들이 지면을 확보하고 대중 선전·선동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사회 풍토 속에서 유사역사학은 정치 이념과 진영을 넘어 우리 사회에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이다.
권력을 탐하는 유사역사학
인터넷에서 주로 쓰이던 ‘환빠’라는 말은 2016년에 갑자기 언론 지면에 많이 등장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한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환빠’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그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련이 있다.
2013년 8.15 경축사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고려 말의 대학자 이암 선생은 ‘나라는 인간에 있어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고 하셨습니다”라 고 말했다. 이암은 《환단고기》를 감수했다는 인물(이것은 《환단고기》에 실린 주장일 뿐이다)이며 해당 인용구는 《환단고기》 <단군세기> 서문에 나오는 구절이다. 대통령의 경축사에 《환단고기》가 인용된 것이다. 정권의 핵심 에 유사역사학 추종자가 있지 않고서는 있기 힘든 일이다. 더구나 당시 여당 국회의원이었던 정문헌은 ‘으라차차 치우천황’과 같은 유사역사학 주장이나 심지어는 ‘신라는 한반도에 없었다’는 터무니없는 주제의 모임에서 축사를 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이런 주장은 우파 정당에서만 오가는 것이 아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불거진, 전교조 교사 출신인 도종환 의원의 경우이다. 도종환 의원의 역사관에는 문제가 있다는 말이 일찌감치 많이 있었다. 2015년 3~4월에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에서 동북아 역사 지도 사업을 점검했고 이때 도종환을 비롯한 다수 국회의원들이 유사역사학적 시각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 결과 동북아 역사 지도 편찬 사업은 폐기되어 버렸고 수년에 걸쳐서 역사학계의 역량이 투입된 결과물은 내놓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당시 국회 회의록에 기록된 도종환 의원의 발언을 읽어 보면 낙랑군에 관한 유사역사학의 주장을 옮기거나 ‘재야 사학자들의 주장을 귀를 열고 받아들이라’고 하는 등 유사역사학의 영향을 받았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도종환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에 지명되자 역사학계 일각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인터넷에서는 ‘환빠는 안 된다’는 말까지 나왔다. 도종환 의원은 ‘《환단고기》를 본 적도 없다’는 말로 맞섰다. 하지만 《자본론》을 읽지 않은 사회주의자도 얼마든지 있는 법이며 《국부론》을 읽어야 자본주의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이미 ‘환빠’라는 말은 아이스크림콘을 대표하는 ‘부라보콘’처럼 ‘유사역사학 추종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환단고기》만이 유사역사학은 아니나 ‘유사역사학 추종자’를 가리키는 인터넷의 속어가 ‘환빠’로 대표되는 것이다. 즉 도종환 의원에 대한 우려는 역사 인식의 문제를 제기한 것인데, 이를 《환단고기》를 보았는지 보지 않았는지로 가를 필요는 전혀 없다. 다행히도 도종환 장관은 청문회에서 역사학에 정치 권력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권력은 언제나 감시되어야 하겠지만, 도종환 장관의 경우는 더욱 날카로운 눈으로 그 행보를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역사학계가 우려한 것과 대조적으로 유사역사학 추종 세력들은 도종환의 장관 내정에 일제히 환영의 발언을 내놓았다. 유사역사학 쪽에서 도종환 장관을 환영한 것은 물론 도 장관이 자기네 편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제나 권력을 탐한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만 해도 위대한 고대사를 만들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유사역사학의 대표 주자인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심지어 국정 교과서 반대 강연에 나와서 강연 시간 거의 대부분을 역사학계가 식민사학을 따르고 있다고 비난하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이들은 결국 정치권과 뉴라이트 세력까지 동원해서 역사학자들의 역량을 끌어 모아 제작한 동북아 역사 지도를 좌초시켰다. 이런 지도가 만들어지면 자신들의 설 자리가 좁아질 것이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방해 공작을 펼친 것이다. 덕분에 세계에 자랑할 만한 최첨단 기술로 만들어지던 지도 제작이 물거품이 되었다. 이덕일은 자기에게 맡기면 훨씬 더 잘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유사역사학의 위험성
유사역사가는 획일적으로 민족이라는 집단을 최우선하는 쇼비니즘의 소유자들이다. 인도에서는 이런 유사역사학을 정체성으로 하는 인도인민당이 집권을 한 뒤 2002년에 구자라트 폭동이 일어났고 2천여 명의 이슬람교도들이 죽임을 당했다. 이런 일로부터도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 ‘민족’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진보 성향의 언론 매체들도 지난 10여 년간 이런 쇼비니즘을 선전하는 데 열을 올렸다는 사실은 차마 믿기 힘들 정도이다. 언론 매체 외에도 유사역사학의 영향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전 행자부 장관 허성관은 유사역사학 단체인 ‘미래로가는바른역사협의회(미사협)’의 공동 의장이다. 전 금융감독원 원장 김석동은 기자들을 불러 모아 놓고 ‘역사’ 강의를 하며 쇼비니즘 역 사관을 선전한 바 있다. 전 한국천문연구원 원장 박석재는 《환단고기》에 기초한 소설을 발매하기도 했다. 이렇듯 사회 지도층 곳곳에 유사역사학은 스며들어 있다. 유사역사가들은 특히 정치권에 접근하고자 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1981년의 국사 교과서 공청회 이후에 국사 교과서 개정 등에 자신들의 입김을 불어넣는 데 성공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이에 앞장섰던 언론도 〈조선일보〉였는데, 작년에 유사역사학 비판을 위해 개설되었던 한국고대사학회의 시민 강좌를 가장 열성적으로 보도한 언론도 〈조선일보〉였다. 이는 오늘날 유사역사학 문제에서 좌우가 역전된 상황을 보여 준다. 다행히 올해 들어 《한겨레21》에서 유사역사학을 본격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한 점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 하겠다.
자국, 자민족을 우선시하는 움직임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21세기임에도 이런 움직임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우리는 우등 민족이고 너희는 열등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한 갈등을 멈출 방법은 없다. 유사역사학은 민족의 자부심을 기른다는 미명 아래 중국과 일본에 대한 증오를 키우고 있고, 동남아 국가들은 아예 불가촉천민처럼 다룬다. 인류가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자유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이상을 실현하는데 유사역사학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이들이 권력에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불안한 세계로 한 걸음씩 가까워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교육계에서도 유사역사학에 대한 경계심이 더 필요하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그 대상을 사랑하는 일과 비슷하다. 그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면 그 나라를 사랑하게 되고, 한 시대의 역사를 공부하면 한 시대를 사랑하게 된다. 유사역사학이 역사와 완전히 다른 지점도 그 점에 있다. 그들은 중국과 일본을 미워하기 위해 역사를 이용한다. 조지 오웰의 걸작 《1984》를 보면 ‘증오의 시간’이라는 것이 나온다. 맹렬한 증오를 터뜨리는 시간이다. 그렇게 현실의 불만을 쏟아 버리게 하는 것이다. 유사역사학이 주는 증오의 감정도 이와 같다. 이런 맹목적인 증오가 동북아의 평화에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